<마의>도 <신의>도 누른 <울랄라부부>의 힘

 

이 정도면 코믹도 명품이다. 사실 <울랄라부부>에 대한 기대감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이미 최순식 작가의 <돌아와요 순애씨>에서 보여준 영혼 체인지 이야기의 반복 정도가 아닐까 여겨졌다. 게다가 경쟁작들이 모두 사극이다. 그것도 이병훈PD와 김이영 작가, 김종학PD와 송지나 작가 같은 쟁쟁한 이들이 쓰고 연출하는.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그저 평범해 보이는 영혼 체인지의 로맨틱 코미디인 <울랄라부부>가 모든 예상을 깨고 수위에 올라섰다. 도대체 이 반전의 이유는 뭘까.

 

'울랄라부부'(사진출처:KBS)

단순하지만 웃기다는 것이다. 아니 웃기는 정도가 아니라 빵빵 터진다. 이제 서로에 대해 시들해진 30대 부부인 나여옥(김정은)과 고수남(신현준)의 영혼체인지는 생각 외로 재미있는 요소들을 많이 내포하고 있었다. 그잖아도 무시당하며 가족들 뒷바라지에 지친 나여옥에게 고수남의 불륜이 드러나고 그것 때문에 이혼을 결심한 바로 그 순간에 영혼체인지가 일어났다는 점이 포인트다.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 난 듯 툭탁대면서도 그 바뀐 성과 역할 속에서 뒤집어지는 일상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적지 않다.

 

고수남의 영혼이 들어간 나여옥이 아침을 대충 차리면서 ‘먹으면 단박에 배부른 캡슐’ 같은 건 없냐고 툴툴 대는 장면이나, 영혼을 다시 되돌리기 위해서 합방이 효과가 있을 거라는 얘기에 잠자리에서 뒤바뀐 역할로 아옹다옹하는 모습은 일상적인 성 역할을 뒤집는 통쾌함이 묻어난다. 나여옥(사실은 고수남)이 고수남의 몸을 노골적으로 스킨십하고 그걸 징그러워하며 거부하는 고수남의 여성스런 몸짓은 그 자체로 웃음을 주면서도 그 안에 남녀 간에 부지불식간에 만들어져 왔던 권력관계를 뒤집는다.

 

결국 영혼체인지는 과거 이미 셰익스피어의 희곡 같은 작품에서 역할 바꾸기를 통해 보여준 것처럼 ‘소통’의 문제를 건드린다. 부부 간의 소통이 그 전면에 놓여 있지만 이야기는 그런 사적인 위치에만 머무르진 않는다. 거기서 나아가 가정과 사회 속에서의 남자와 여자라면 서로 공감할만한 상황과 설정들을 집어넣음으로써 소통의 폭을 넓힌다. 로맨틱 코미디지만, 그래서 보는 내내 빵빵 터지며 웃을 수 있지만, 그러면서 결국 도달하는 건 서로에 대한 소통과 공감이다. 울랄라부부는 지금 30대 시들해진 부부가 겪을 수 있는 극단에 서서 영혼체인지라는 코드를 활용해 서로의 삶을 되돌아보고 그 소통의 물꼬를 열어보려 하고 있다.

 

이렇게 거창하게 얘기해도 그 소재가 이미 여러 번 다뤄진 것은 물론이다(이건 심지어 고전적이다). 그만큼 진부할 수 있는 소재지만, 그것을 단번에 넘어서게 해주는 건 김정은과 신현준의 물이 오를 대로 오른 코믹 연기다. 물론 코믹 연기라고 해서 의도적으로 웃기려고 하는 그런 코미디를 얘기하는 게 아니다. 완전히 남자와 여자의 성 역할이 바뀐 상황에 몰입함으로써(따라서 그들은 진지하다) 그걸 보는 시청자들을 포복절도하게 만든다는 얘기다. 심지어 이 과정에서 (나여옥 영혼에 빙의된) 신현준은 하소연을 하면서 실제로 눈물을 흘린다. 그것은 진심이지만 보는 이들에게는 큰 웃음을 준다.

 

쩍벌남에 때론 거친 모습을 보여주는 (고수남 영혼을 갖게 된) 김정은 역시 마찬가지다. 귀여운 외모를 가진 그녀가 털털한 모습을 보일 때마다 그 반전이 주는 웃음의 진폭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이것은 남성적인 외모의 신현준이 여성적인 목소리 톤과 몸 동작을 할 때 배가 되는 그 반전효과와 마찬가지다. 코믹 연기로서 <울랄라부부>는 신현준과 김정은에게 하나의 전기가 될 작품으로 보인다.

 

<울랄라부부>가 <마의>나 <신의> 같은 쟁쟁한 작가와 PD들의 작품들과 경쟁해 수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그 영혼체인지가 주는 코믹함과 더불어 소통의 쾌감이 많은 공감대를 불러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모든 걸 효과적으로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신현준과 김정은의 연기다. 이 둘의 연기가 있었기 때문에 <울랄라부부>는 평작이 되지 않을 수 있었다.

상황극 버라이어티, ‘오늘을 즐겨라’의 한계와 가능성

‘일밤’의 새 코너 ‘오늘을 즐겨라’에는 두 가지 키워드가 들어가 있다. 그것은 ‘오늘’과 ‘즐거움’이다. 이 두 키워드는 현재의 라이프 트렌드를 잘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프로그램의 기획 포인트는 꽤 잘 맞춰져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지금은 과거나 미래가 아닌 지금 현재, 즉 ‘오늘’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시대고, 또 어떤 진지함만큼 ‘즐거움’의 가치가 조명 받는 시대다.

'오늘을 즐겨라'는 즉 이 두 키워드에 합치되는 미션을 통해 웃음과 의미를 지향하는 프로그램이다. '1박2일'이 1박2일이라는 시간적 제한 속에서 다양한 여행의 재미를 추구하고 있다면, '오늘을 즐겨라'는 오늘이라는 시간적 제한 속에서 다양한 즐거움을 찾는다는 점에서 '1박2일'보다 더 포괄적이다. 즉 여행은 즐거움의 한 부분이 된다.

따라서 '오늘을 즐겨라'가 처음 가진 미션이 일상탈출을 모토로 한 여행이었다는 점은 이 프로그램이 가진 기획의 폭이 상당히 유리한 가능성들을 많이 갖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하지만 같은 여행이라고 해도, '1박2일'이 보여주는 여행과 '오늘을 즐겨라'가 하는 여행은 다르다. '1박2일'이 좀 더 날 것의 다큐멘터리 같은 여행을 추구해왔다면, '오늘을 즐겨라'가 일상탈출 편에서 보여준 여행은 상황극에 가까웠다.

시골로 떠난 정준호, 신현준, 공형진, 김현철은 낚시터에서 때 아닌 상황극을 벌였다. 몰래 라면을 먹고 온 정준호와 김현철을 신현준과 공형진이 취조하듯 몰아세우는 장면은 코미디 영화처럼 연출되었다. 어색함을 없애려고 시도한 일일커플(?) 미션 역시 상황극의 연속이다. 신현준은 김현철과 '우리 오늘 커플 됐어요'를 찍고, 정준호와 서지석은 스승과 제자 상황극을 만들어 웃음을 준다.

시골과 도시로 나뉘어 불가능할 것 같은 물건을 파는 미션을 선보인 '세일즈를 즐겨라'편은 그 미션 자체가 상황극이다. 도시에서 가마솥을 리어카에 싣고 광화문 한복판을 지나가는 장면은 마치 한 편의 영화 포스트를 연상시킨다. 임권택 감독을 위해 '최고의 밥상'을 차리는 과정을 보여준 '감사의 마음을 즐겨라'편 역시 마치 '식객'을 패러디한 것 같은 인상이 강하다. 배고픔을 시로 표현하기 위해 신현림 시인과 떠난 '시를 즐겨라' 편은, 이 시와는 어울리지 않는 MC들이 '시를 쓴다'는 것 자체가 웃음을 주는 상황이 된다. 또 '빵을 즐겨라'편은 '제빵왕 김탁구'의 예능 버전이다.

잘난 체에 일장연설을 해대는 정준호의 캐릭터는 본래 있던 내면이 자연스럽게 겉으로 표출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정준호가 일련의 상황극에 맞게 연출해낸 연기의 한 부분이다. 즉 이들이 '오늘을 즐겨라'에서 보여주는 웃음은 날 것 그대로가 아니다. 그것은 상당부분 연기에 의한 것들이다. 정준호, 신현준, 공형진이 배우라는 점은 이들이 얼마나 상황극에 능한가를 에둘러 말해준다.

사실 아무리 리얼 예능이 대세라고 하더라도, 그것만이 재미를 줄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즉 리얼한 상황극 속에서 보여주는 어떤 연기를 통한 웃음 역시 예능 프로그램이 만들어줄 수 있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라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오늘을 즐겨라'는 여타의 리얼 예능과 확실한 차별점을 갖는다. 따라서 이 프로그램에 일단 눈을 맞추기 시작하면 리얼 예능이 보여주지 못하는 꽤 흥미로운 웃음들을 우리는 발견해낼 수 있다.

문제는 이렇게 제시되는 상황극의 미션들이 '오늘을 즐겨라'라는 프로그램 기획의도와 얼마나 잘 맞아 떨어지는가 하는 점이다. 상황극이 그저 웃음만을 끌어내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프로그램의 정체성과 겉돌면서 자극으로만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세일즈를 즐겨라', '감사의 마음을 즐겨라', '빵을 즐겨라' 같은 아이템은 이 프로그램 기획의도를 생각해보면 억지로 짜 맞춘 느낌이 짙다.

물론 '즐긴다'는 키워드에는 어느 정도 맞을 지 몰라도 여기에는 '오늘'의 키워드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가 간과되고 있다. '오늘'이 의미하는 것은 단지 시간적인 한정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좀 더 일상을 지향한다는 의미다. 좀 더 우리 생활 주변의 것들을 소재로 삼는다는 이야기다. 그런 점에서 '오늘을 즐겨라'는 아이템 선정에 있어서 좀 더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것들을 끌어올 필요가 있다. 기자간담회에서 승리가 얘기한 것처럼, '하루 100원을 가지고 즐기기' 같은 소소한 아이템이 세일즈를 하거나 최고의 밥상을 만드는 거창한 아이템보다 훨씬 더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다는 것이다.

결국 '오늘을 즐겨라'가 이러한 소소한 아이템들을 통해 거둬야 하는 성과는 우리네 일상이 얼마나 소중하고 또 즐거운 것인가를 복원하는 일이다. 매일 매일 반복되는 그 일상에 즐거움을 되돌려주는 일. 그것은 소소해 보이지만 또 그것만큼 거대하고 거창한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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