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에도 꽃이 핀다’, 드디어 꺼내놓은 이 드라마의 찐한 매력

모래에도 꽃이 핀다

“그래 내 니한테 물어볼 거 있다. 내가 그 날 경기 끝나고 나서 바로 니한테 물어볼라 캤거든?” 지니TV 오리지널 드라마 <모래에도 꽃이 핀다>에서 김백두(장동윤)는 오유경(이주명)과 함께 임동석(김태정)을 찾아온다. 거산군청에서 형 동생 하며 김백두와 지냈던 임동석은 씨름 유망주로 다른 팀에 스카웃됐다. 그런데 거산군청에 있을 때 마지막으로 했던 김백두와의 시합으로 갖가지 의혹에 휩싸이게 됐다. 

 

그 때 임동석을 지도했던 코치가 사망한 채 발견되고, 그 코치가 죽은 것이 불법 도박에 손을 댔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면서다. 즉 김백두와 한 그 경기에서 코치는 임동석에게 일부러 져 달라는 승부조작 요구를 했고 그것으로 도박을 했는데, 결국 임동석이 이기면서 다 날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게 됐다는 소문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던 거였다. 그래서 이 사건을 비밀수사하는 오유경과 함께 임동석에게 따지러 온 줄 알았는데, 김백두는 엉뚱한 소리를 꺼내놓는다. 

 

“니 어금니 괘안나? 와! 아니 단오전 시합 때 니 진짜로 이 갈면서 하데? 니 이 가는 소리가 내한테 들렸다, 임마! 와, 니 평소에는 뭐 내한테 형, 형 거리면서 따르는 척 하더만은 야, 니 어금니 나가는 소리에 내가 억수로 배신감을 느꼈어, 임마! 뭐 그리 진지하게 하냐, 마!” 모두가 승부조작이라 생각하는 걸 당시 경기를 같이 했던 김백두는 아니라고 그런 식으로 강변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해준다. “내는 니 믿는다. 샅바를 잡아 본 놈이 제일 잘 알지 않겠나, 어? 니 헛짓거리 안 한 거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는 잘 알지.”

 

그 말을 들은 임동석의 눈은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출렁인다. 왜 그렇지 않을까. 그 누구도 믿어주지 않고, 섣불리 자신이 승부조작에 가담했을 거라 떠들어대는 상황이 아닌가. 그는 코치가 자신에게 승부조작 제안을 한 건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하지만 그건 도저히 아니라고 생각해 제안을 수락하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코치가 그렇게 진짜 죽게 될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며 괴로워했다. 그 때 차라리 그 제안을 수락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자책한다. 그러자 김백두의 일침이 또 날아든다. 

 

“야, 임동석이! 내 딱 한 번만 말한다이? 니 잘 들어. 니는! 아무! 잘못이! 없다! 잘못이 있다커면은 아끼는 제자 끌어안고 불구덩이 뛰어든 그 코치 잘못이지, 안 그러나!” 잘못 한 게 없지만 그 결과로 누군가 죽음을 맞이한 사실에 어찌 자책감이 들지 않을까. 하지만 김백두는 그런 임동석에게 분명한 어조로 넌 잘못이 없다는 말로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들어준다. 

 

김백두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임동석은 돌아서는 길에 굳이 김백두에게 그 날 막판 애매했던 경기결과에 대해 털어놓는다. “형! 형도 알지? 형이 사실 그 날 이겼다는 거. 막판에 내가 먼저 닿었잖아. 형 알고 있었지?” 하지만 정작 김백두는 판정까지가 경기라며 그가 이긴 게 맞다고 선을 긋는다. “아 이 됐다 마. 야, 그날 니랑 내랑 온 힘을 다해서 경기 치렀고, 심판 판정이 그래 난 거는 니가 이긴 거 맞지. 원래 판정까지가 경기다, 인마.”

 

<모래에도 꽃이 핀다>의 이 장면은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와 이 드라마가 가진 매력이 무엇인가를 극적으로 드러낸다. 이 드라마는 제목처럼 모래 같은 척박한 상황에서도 꽃을 피우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그리려한다. 불법 도박에 승부조작까지 벌어지기도 하는 씨름판은, 그 위에서 승패를 떠나 공정한 승부를 통해 꿈을 향해 나가기를 원하는 청춘들 앞에 놓이기도 하는 불공정하고 부패한 현실의 축소판이나 마찬가지다. 

 

승자는 기회를 잡고 패자는 쓸쓸하게 모래판을 떠나기도 해야 하는 이 현실의 축소판에서 김백두와 임동석이 보여주는 모습은 심지어 비현실적으로까지 보여지는 순수함이다. 경기에서 진 김백두가 오히려 승자인 임동석을 위로해주는 이 역전된 상황은 그래서 거꾸로 저 비정하고 부정한 현실을 에둘러 꼬집는다. 김백두의 진면목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어딘가 밍밍한 듯 보였던 드라마 역시 진가를 드러낸다. 

 

“니 맹탕이지. 남 생각한다고 자기 실속 못챙기고 허허실실 니가 좋으면 내도 좋다 주의에 만사가 천하 태평인 덜덜이 아이가.” 어려서부터 절친이자 김백두의 첫사랑이었던 오유경(실은 오두식)은 김백두에 대해 그렇게 말한다. 그건 핀잔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에둘러 하는 칭찬에 가깝다. 비정한 현실의 관점으로 보면 ‘맹탕’으로 여겨질지 모르는 김백두의 이런 말과 행동들은 따뜻한 휴머니티의 관점으로 보면 ‘진국’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점점 맹탕으로 보였던 김백두의 변함없는 따뜻함에 빠져드는 오유경이다. 마치 밍밍해보였던 드라마에 점점 빠져드는 시청자들처럼.(사진:지니TV)

씨름, 트로트 그리고 뮤지컬까지... 오디션 2.0의 시대

 

오디션 시대는 지나갔다? 지난해 오디션 조작 사건이 터지면서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생겼던 게 사실이다. 또 오디션 프로그램이 갖는 경쟁적 틀은 더 이상 시청자들이 원하지 않는다는 인식의 변화도 생겨났다. 그래서 오디션 형식은 이제 끝났을까.

 

그것이 섣부른 속단이었다는 걸 증명하듯 오디션 형식을 가져온 프로그램들이 그 건재함을 드러내고 있다. KBS <씨름의 희열>과 TV조선 <미스터트롯>은 단적인 사례다. 하지만 오디션 형식을 가져왔다고 해도 이들 프로그램들이 과거의 오디션과 같다고 보기는 어렵다. 거기에는 이 프로그램들만의 독특한 진화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씨름의 희열>은 씨름이라는 민속 스포츠를 소재로 예능 프로그램에 담으면서 그 형식으로 오디션 프로그램을 차용하는 신선한 시도를 실험했다. 선수들을 캐릭터화하고 그 특장점을 오디션에서 자주 봐왔던 짤막한 영상으로 스토리텔링화한 후, 씨름판의 대결로 이어 붙였다. 그러자 우리가 명절 때 주로 봐왔던 씨름 중계방송과는 사뭇 다른 그림이 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무대 밑에서 노래하는 가수의 스토리를 들려준 후 그걸 기반으로 부르는 노래를 감상할 때의 느낌이 다르듯, 씨름 선수들도 그 스토리가 더해지면서 경기가 훨씬 재미있어졌다. 여기에 마치 심사를 하듯 코멘트를 달아주는 중계와 해설이 더해지고 여러 대의 카메라로 정교하게 찍혀진 경기 영상들이 슬로우 모션으로 경기를 정밀중계하면서 씨름은 훨씬 박진감 넘치는 스포츠로 변모했다.

 

오디션 형식을 차용하면서 씨름선수들이 아이돌처럼 스타화하는 팬덤 현상도 가속화되었다. 말미에 치러진 관객들이 직관하는 경기는 그래서 아이돌에 열광하는 팬들의 풍경을 재연시켰다. 관객이 사라졌던 씨름이란 종목이 오디션이라는 형식을 차용하면서 얻은 큰 성과다. 비록 코로나19로 인해 쓸쓸한 무관중 결승전을 벌여야 했지만 이 성과는 향후 여타의 비인기 종목으로 치부되던 스포츠를 소재로 하는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으로 시도될 수도 있다는 여지를 남겼다. 같은 스포츠라도 보는 관점을 달리해줌으로써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오디션 형식을 차용한 <씨름의 희열>이 보여줬기 때문이다.

 

TV조선 <미스터트롯>은 종편 역사상 최고의 시청률인 30%대를 넘겨버렸다. <미스터트롯>이 몰려든 참가자들을 추리고 추려 101명을 세웠다는 건 꽤 의미심장하다. 그건 마치 Mnet <프로듀스101>의 트로트 버전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디션 조작논란으로 추락한 <프로듀스> 시리즈와 달리 <미스터트롯>은 고공행진을 거듭하며 모든 세대가 찾아보는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성장했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건 무엇보다 트로트라는 장르가 그간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던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미스트롯>으로 그 성공기를 들여다본 많은 실력 있는 지망생들이 몰려들었고 타 장르에서도 지원이 잇따랐다. 이렇게 되자 프로그램은 자연스럽게 오디션이면서도 경쟁을 그리 강조할 필요가 없어졌다. 실력자들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무대를 선보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차고 넘쳤기 때문이다.

 

트로트 같은 지금껏 주목받지 못했던 장르를 오디션 형식으로 담았을 때 그만한 시너지가 생긴다는 건 이미 JTBC가 <팬텀싱어>나 <슈퍼밴드>를 통해 입증해보인 바 있다. 뮤지컬, 성악이나 밴드 뮤지션들이 주목받게 되는 자리인 만큼 오디션 형식은 그들이 설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한다는 의미만으로도 환영받고 응원 받았다. 이런 경향은 최근 tvN <더블캐스팅>이 뮤지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할을 하지만 ‘병풍’으로 불리곤 하던 앙상블을 하는 뮤지컬가수들의 오디션으로 이어지고 있다. 즉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의 경우, 아이돌이나 K팝 가수를 뽑는 것 이외에 그간 소외됐던 분야를 가져온다면 여전히 환영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오디션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이전까지 경쟁을 중심으로 합격이냐 불합격이냐를 드라마틱한 스토리텔링으로 세우던 트렌드가 오디션 1.0 시대의 풍경이었다면, 지금은 경쟁보다는 상생을 목적으로 형식적으로 오디션을 차용하는 오디션 2.0 시대가 열렸다고 볼 수 있다. 향후 어떤 장르와 소재가 이 형식을 타고 등장할지 주목해볼 일이다.(사진:KBS)

예능화 된 스포츠에서 리얼 스포츠 예능으로

 

새로 시작한 SBS 예능 <진짜 농구, 핸섬타이거즈(이하 핸섬타이거즈)>에서 처음으로 체육관에 모인 출연자들은 관중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의 환호성에 놀란다. 감독으로 자리한 서장훈은 곧바로 유니폼을 나눠주며 옷부터 갈아입으라 한다. 그리고 서장훈의 모교였던 중등농구 최강자 휘문중학교 선수들과의 한 판 대결이 벌어진다.

 

보통 스포츠예능들은 본 게임으로 가기 전 몸 풀기에 가까운 인물 소개가 이어지곤 했다. 그 인물 소개에는 당연히 예능적인 포인트들이 들어가고 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의 캐릭터가 부여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핸섬타이거즈>는 이런 부분들을 재빠르게 편집을 통해 보여준 후 거두절미하고 경기부터 시작한다.

 

한 번도 맞춰본 적이 없는 핸섬타이거즈 선수단. 그러니 초반부터 휘문중학교 선수들에게 밀리는 기색이 역력하다. 던지기만 하면 들어가는 3점 슛에 난감해하는 핸섬타이거즈 선수들. 하지만 금세 경기에 몰입하면서 이들의 근성이 발휘된다. 체력과 근력이 좋은 줄리엔 강을 센터로 세워 몸싸움을 하며 던지는 공들이 들어가며 가능성을 보인다.

 

여기에 모델 문수인이 투입되면서 분위기는 반전된다. 이미 농구 실력으로 정평이 나있던 문수인은 골밑을 공수로 장악해내며 골을 넣기 시작한다. 이상윤은 전체 게임의 흐름을 파악하고 전략을 짜내고, 김승현과 줄리엔 강은 골밑에서 맹활약한다. 키가 작은 쇼리는 빠르고 재치 있는 패스로 기회를 만들어내고, 차은우는 골은 번번이 아깝게 빗나갔지만 굉장한 승부욕과 순발력으로 팀에 기여한다. 여기에 강경준, 이태선, 유선호까지 골고루 활약하며 의외로 핸섬타이거즈는 선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건 서장훈의 감독으로서의 면모 또한 확실히 빛났다는 점이다. 서장훈은 정확히 선수교체를 통해 팀에 분위기를 반전시켰고, 빠른 패스를 주문하거나 후반에 이르러 좀 더 빨리 상대 진영으로 뛰어 들어가라 주문하는 것으로 실제 득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물론 점수에서는 졌지만 괜찮은 가능성을 보여준 경기였다. 다짜고짜 경기부터 시작한 첫 방송은 그래서 예능 프로그램이라기보다는 진짜 농구 경기 한 편을 본 것 같은 리얼함을 안겨줬다. 어째서 <핸섬타이거즈> 앞에 ‘진짜 농구’라는 수식어가 붙었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최근 들어 스포츠 예능프로그램이 많아지고 있다. 그런데 이 스포츠 예능들은 과거의 그것들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KBS <천하무적 야구단>이나 <우리동네 예체능> 같은 스포츠예능은 상당부분 예능적인 요소에 신경을 썼다. 하지만 <핸섬타이거즈>를 보면 그런 것보다 스포츠 자체의 묘미에 더 집중하는 모습이다. 농구가 갖고 있는 골과 패스로 이어지는 팀플레이 그리고 작전과 정신력 같은 스포츠 자체의 요소들이 주 관전포인트로 제시되고 있는 것.

 

최근 씨름의 새로운 붐을 만들어내고 있는 KBS <씨름의 희열>도 그런 관점에서 보면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씨름의 희열>은 심지어 그간 스포츠중계로 보던 씨름에서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없어 느끼지 못했던 재미요소들을 오히려 더 부각시킴으로써 시청자들을 즐겁게 하고 있다. 선수들의 특장점을 충분히 캐릭터화해 보여주고 그 기술들을 슬로우모션으로 자세히 설명해줌으로써 경기장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실감나는 씨름의 세계를 들여다보게 해준 것.

 

초반에는 몸 풀기에 가까운 선수들의 라이벌전이 이어졌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탈락자가 생기는 대결로 들어오면서 이변이 속출하고 있다. 작은 체구의 태백급 선수인 윤필재가 금강급 최강자인 임태혁을 무너뜨리고, 최약체로 여겨졌던 박정우 선수가 철저한 준비로 황재원과 허선행을 꺾는 이변은 역시 예측할 수 없는 씨름 승부의 세계로 시청자들을 빨아들였다.

 

물론 <씨름의 희열>은 상당한 예능적 요소들을 가미하고 있지만 그래도 주 관전 포인트로서 경기 자체가 주는 ‘희열’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핸섬타이거즈>와 <씨름의 희열> 같은 스포츠 예능은 비슷한 방향성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웃음을 만들어내려는 예능적 포인트가 아니라, 경기장이나 중계에서 제대로 포착해내지 못한 스포츠의 다양한 매력들을 전하기 위한 예능적 접근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스포츠 예능이 잘 안됐던 건 스포츠 자체가 더 재밌기 때문이었다. 흔히들 스포츠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부르지 않던가. 그러니 스포츠를 보는 편이 스포츠 예능을 보는 것보다 훨씬 나은 지점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의 스포츠 예능은 스포츠 자체에 더 집중함으로써 ‘각본 없는 드라마’를 더욱 드라마틱하게 만들어내고 있다. 늘 비슷한 형식으로 보여줬던 스포츠중계가 이제는 스포츠 예능의 방식을 차용하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사진:SBS)

‘씨름의 희열’, 보는 방식만 바꿨을 뿐인데 씨름이 이렇게 재밌었나

 

KBS 새 예능프로그램 <씨름의 희열>은 과거 화려했던 씨름 부흥기의 회고로 시작한다. 만가지 기술을 가진 이만기라는 불세출의 스타가 등장했고, 인간 기중기 이봉걸이나 모래판의 신사 이준희 여기에 모래판의 야생마 강호동까지, 저마다의 캐릭터를 가질 정도로 화려했던 씨름의 르네상스 시절이 그것이다. 씨름방송도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60%가 훌쩍 넘는 놀라운 시청률까지 기록했던 그 시절의 이야기.

 

하지만 씨름의 부흥기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이만기나 강호동 같은 스타들이 모래판을 떠나면서 조금씩 열기가 식었고, 열기가 식자 어딘지 구닥다리 스포츠 같은 이미지로 남아 대중들의 외면을 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졌다. 여기에는 이를 중계하는 씨름 방송의 늘 똑같은 형식이나 방식도 한 몫을 차지했다. 시대가 바뀌면 중계방송의 영상도 또 그 스포츠를 보여주는 방식도 달라졌어야 했는데 씨름 방송은 과거 부흥기 시절의 추억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이다.

 

<씨름의 희열>이라는 프로그램이 탄생하게 된 건 그나마 최근 들어 경량급 씨름 선수들이 마치 아이돌처럼 팬덤이 생기는 새로운 현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씨름계의 여진구’ 황찬섭이나 ‘씨름계의 옥택연’ 손희찬 같은 지칭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은 잘 생긴 외모에 조각 같은 몸으로 모래판에 등장해 대중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씨름의 희열>은 씨름이라는 전통스포츠를 부흥시키겠다는 취지에, 최근 이들이 마치 아이돌처럼 소비되는 새로운 현상을 더함으로써 시도될 수 있었다.

 

씨름의 경량급이라고 할 수 있는 태백장사와 금강장사들을 각각 8명씩 선출해 총 16명을 모래판 위에 세우고 그들의 체중을 비슷하게 맞춘 후 서로 대결을 벌이게 해 최종 승자를 뽑는 <씨름의 희열>은 일단 그 경기장과 중계 방식 자체가 다르다. 물론 예능의 방식이 동원된 것이지만, 마치 쇼 무대처럼 구성된 모래판과 대기자석이 있고 한 편에는 이를 중계하고 해설하는 공간이 있다. 이건 그래서 오디션 프로그램의 무대처럼 보인다. 씨름이란 종목으로 샅바를 매고 나와 대결을 벌이는 것이 다를 뿐.

 

카메라는 <씨름의 희열>이 실제로 오디션 프로그램의 영상을 추구하고 있다는 걸 잘 보여준다. 도처에 세워져 있어 순식간에 승부가 나버려 놓칠 수 있었던 장면들을 카메라는 빼놓지 않고 포착해내고, 그 장면들은 슬로우 모션으로 자세히 보여지며 마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누군가 추는 춤사위처럼 아름답게까지 그려진다. 옆과 위에서 또 아주 가까이에서 본 모습과 조금 떨어져 보는 모습들이 교차 편집되면서 씨름의 자세한 기술들이 드디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씨름이 이렇게 재미있었나 싶은 건 바로 이 기술과 수싸움이 카메라에 의해 또 해설이 더해지면서 살아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씨름의 희열>이 성공적이라고 여겨지는 건 첫 방송에서 라이벌전을 시범적으로 보여주며(이것 역시 오디션 형식 그대로다) 여기 등장하는 선수들의 캐릭터를 하나씩 잡아냈다는 점이다. 씨름계 여진구, 옥택연이라 불릴 정도로 수려한 외모와 조각 몸을 가진 황찬섭과 손희찬, 승부욕이 강한 허선행과 대학선수지만 만만찮은 노범수, 늦깎이 장사 이준호와 최고령 장사로 남다른 경륜이 돋보이는 오흥민 등등. 선수들은 그저 경기만 하고 내려가는 게 아니라 그들이 가진 개성과 스토리가 더해지며 하나의 캐릭터로 보여졌다. 이렇게 만들어진 캐릭터는 향후 다양한 경기 속에서 훨씬 흥미진진한 스토리로 풀어내질 것이었다.

 

물론 토요일 밤에 편성된 <씨름의 희열>의 첫 방 시청률은 2%로 낮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그 실험적 시도 자체가 돋보이고, 한 번 보면 씨름에 관심이 없던 이들도 빠져서 볼 수밖에 없는 재미를 선사하는 프로그램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오디션 형식을 가져와 씨름을 부활시킨다는 그 취지와 의도도 박수 받을 만하다.(사진:KBS)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