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애받지 마세요, 내가 정답입니다.”

전현무

현재 한국에서 가장 많은 방송 프로그램을 하는 예능인은 누굴까. 유재석도 신동엽도 아닌 전현무다. 굿데이터코퍼레이션에 의하면 그가 지난해 고정출연한 프로그램이 무려 21편이다. 이게 가능해진 건 그만큼 그가 해내는 프로그램에서의 역할이 폭넓기 때문이다. 그는 ‘히든싱어’나 ‘팬텀싱어’, ‘트로트의 민족’ 같은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을 맛깔나게 진행하는 MC면서, ‘나 혼자 산다’ 같은 관찰카메라 형식의 프로그램의 메인 출연자다. ‘전지적 참견 시점’ 같은 웃음과 재미에 특화된 프로그램에서도 특유의 깐족과 재치를 자랑하지만, ‘톡파원 25시’나 ‘성적을 부탁해:티처스’, ‘선을 넘는 녀석들’ 같은 정보를 다루는 프로그램에서도 지식을 바탕으로 한 진행 능력을 선보인다. 그러니 예능가에는 새로운 프로그램이 런칭하면 몇 개 중 하나에는 반드시 전현무가 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그의 영역은 전방위적이다. 그는 어떻게 이런 전천후 방송인이 될 수 있었을까. 

 

인포테인먼트의 흐름, 전천후 방송인의 탄생

전현무는 방송의 흐름이나 시대의 변화를 앞서 내다보는 능력이 탁월해 보였다. 2012년 그가 프리 선언을 했을 때 마침 방송가에는 ‘인포테인먼트’의 흐름이 생기고 있었다. 교양에서조차 정보만이 아닌 재미를 요구하는 새로운 변화였다. 그래서 아나운서로 시작했지만 본격적인 아나테이너의 길로 나아간 선택은 이런 변화에 딱 맞는 거였다. 진행자인 MC로서의 역할, 예능에서의 플레이어로서의 역할, 또 코멘테이터의 역할을 다양하게 할 수 있게 된 건 이 변화의 흐름에 적응한 결과였다.

 

“저는 근데 예전에 이렇게 역할이 다 나뉘어 있을 때부터 그냥 옷만 다르게 입는 거지 다 똑같은 전현무를 하는 거다 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실제로 예전에는 게스트, 패널, MC, 플레이어 다 이렇게 나뉘어져 있었는데 요즘에 그런 게 없잖아요. 예전에 넌 MC가 왜 이렇게 플레이어를 하려고 해 라고 누군가 얘기한 적이 있는데, ‘하고 싶으니까 하는 건데요?’라고 했던 적이 있어요. 역할을 구분 짓는 것 자체가 옛날부터 저는 좀 아니었던 것 같아요. 물론 역할이 다르긴 한데, 약간 MBTI처럼 제가 MBTI P인데 P만 있지는 않을 거 아니에요. 저도 J가 한 20% 정도 있거든요. 그런 식으로 다 모든 게 섞여 있듯이 진행자로서는 진행자의 색깔을 좀 넣는 거고 게스트일 때는 게스트를 좀 하고... 100% 완벽하게 하나의 성향만 있지 않은 사람이다 보니까 그것만 조금씩 조절을 하는 거지 역할은 다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새로운 역할에 적응하려 노력해온 시간들이 들어있다. 과거 ‘해피투게더’에 게스트로 출연했을 때 ‘루시퍼’ 춤을 추고 하던 모습은 어딘가 어색한 면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훨씬 여유로워진 예능인으로서 자연스러움이 묻어난다. 

 

“가끔 케이블 채널 몇백 번대에 가면 그거(루시퍼) 나와요. 아직도 나오고 있죠. 진짜 민망해서 못 봐요. 저런 멘트를 하고 저런 표정을.. 그리고 남의 말 듣지도 않고 그냥 나 하나 웃기려고 그냥 너무 안쓰러울 정도로 그러고 있어요. 그런데 그랬던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여기 있는 것 같고, 지금 이제 막 예능하는 친구들을 제가 이렇게 MC로서 보면 제가 그랬던 모습이 보여요. 귀여워요. 얘들도 10년 뒤에 얼마나 이걸 흑역사로 생각하고 민망해 할까. 근데 누구나 그 과정을 거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이러한 여유를 갖기까지 꾸준히 노력하고 그 초심을 잃지 않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방송에서 능력만큼 중요한 건 태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전현무가 방송가에서 섭외 일순위로 꼽히는 건 어쩌면 이 태도와 자세가 남달라서일 게다. 

 

“사실 본질적으로는 저는 캐스팅을 당하는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캐스팅을 하는 사람한테 캐스팅 하길 잘했다 라는 말을 들어야 되겠다는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게스트로 나가도 춤을 한 번이라도 더 추고 편집을 하더라도 그건 알아서 할 일이고 나는 섭외해 줬으니 이렇게 120% 하고 가겠다 라는 마인드로 지금도 하고 있고, 그 초심은 지금도 여전해요.”

 

변화하는 트렌드에 적응하는 법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하고 있고, 트렌드에 민감한 방송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OTT같은 새로운 플랫폼이 등장하고 모바일이 일상화되면서 콘텐츠들도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그가 ‘나 혼자 산다’에서 이른바 ‘트민남(트렌드에 민감한 남자)’ 캐릭터로 MZ들의 다양한 취향에 뛰어들고 있는 건 우연이 아니다. 그에게 트렌드란 도대체 뭘까. 

 

“몸이 늙는 거는 병원 가서 어떻게든 노화를 더디게 할 수는 있는데 정신 늙는 거는 답이 없다. 예전부터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정신이 늙으면 진짜 두 배 세 배로 늙는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나이가 몇이든 간에 요즘 세대들하고 소통하려는 노력을 계속하려 하죠. 근데 그거를 재미있게 풀어서 ‘트민남’이라고 한거예요. 요즘 애들은 뭐 이거 한대 이러면 이미 나는 늙는 거예요. 근데 어떻게든 그걸 알려고 하고 따라해보려고 하면 주책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 친구들이 저를 귀엽게 봐요. 저를 친근하게 생각 하거든요. 그리고 실제로도 요즘 유행하는 패션이 어떤 추세고, 맛집은 어디가 힙한지 관심이 많고 또 그걸 즐기며 살고 있어요.”

 

트렌드 변화는 방송도 예외가 아니다. 연예인보다 인플루언서들이 힘을 발휘하는 시대로 돌입했다. 그래서 역으로 연예인들이 유튜브에 뛰어드는 트렌드도 생겨나고 있는데 환경이 너무 다르다 보니 실패하는 경우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전현무는 아직 그 대열에 들어 있지 않다. 트렌드 변화에 잘 적응해온 그의 이력을 생각해보면 의외의 행보다.

 

“주변에 유튜브를 안하는 사람이 거의 저밖에 없더라구요. 그래서인지 요즘은 제가 오히려 레어템이 돼서 방송이 더 많이 들어오는 것 같아요. 유튜브 하다 보면 콘셉트가 겹치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서 방송을 안하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저도 유튜브가 하고 싶기는 해요. 하지만 남들 하니까 나도 계정이나 만들어 놓을까 하는 자세로는 처음 잠깐 주목받다 흐지부지될 것 같아요. 유튜브는 정말 자기가 하고 싶은 거를 해야 성공할 거라고 생각해요. 또 방송에서 이미 했던 캐릭터를 갖고 비슷한 걸 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차라리 방송에서 소화못하는 콘텐츠가 있다면 그걸 한 번 해보고 싶은데 아직은 손에 잡히지는 않고 있어요.” 

 

예전에 ‘Moo진기행’이라는 제목으로 전현무는 브런치 스토리에 ‘트렌드를 대하는 자세’라는 글을 쓴 바 있다. 거기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가장 나다운 게 곧 트렌드’라고 한 문구다. ‘나를 가장 잘 표현하고 드러낼 수 있는 문화에 진심인 것. 그게 가장 트렌디한 일이다.’라고 그는 썼다.

전현무와 함께


뻔한 엄숙주의를 넘어선 펀(fun)한 인물

전현무는 누가 봐도 엘리트다. 연세대를 나왔고 2003년 조선일보 공채 43기 기자로 입사했다 1주일만에 나와 YTN에 앵커로 들어갔으며, 2006년에는 KBS에 공채 아나운서로 합격했다. 언론고시에 있어서 기자, 앵커, 아나운서 모두를 합격한 브레인이었던 것. 하지만 그의 행보는 기자에서 앵커로 앵커에서 아나운서로 옮겨간 후에도 또다시 이전에는 없던 ‘예능에 최적화된 아나운서’로 그리고 프리선언 이후에는 본격적인 예능인으로 변모했다. 이 과정을 보면 한때 엘리트주의와 엄숙주의에서 벗어나 서서히 유연해진 시대의 흐름이 엿보인다. 

 

“저는 예전부터 영상 매체는 뉴스든 다큐든 예능이든 교양이든 재밌어야 된다는게 제 철칙이었거든요. 요즘 종편을 보면 앵커들조차 재밌게 하려고 하는데요, 과거에는 이런 모습이 너무 낯설어서 거부감이 있었던 건데 저는 이럴 때가 올 거라고 예상을 했었어요. 왜냐하면 바쁜 와중에 TV를 켠다는 건 대단한 행위인데 진지한 얘기만 들으려고 보지는 않거든요. 재미가 있어야 보는 거다 라는 생각이 있어서 예전 싸이월드 제 계정에 제가 이렇게 쓴 적도 있어요. ‘재미 없는 건 재앙이다’라고요. 당시에는 아나운서, 코미디언, PD, 기자 등등 역할이 완전히 나눠져 있었는데 그게 좀 안타까웠어요.”

 

인포테인먼트 시대를 지나 어느 순간에는 교양과 예능이 뒤섞이는 시대로 넘어갔다. 실제로 SBS에서는 당시 교양국과 예능국이 통합되어 ‘정글의 법칙’ 같은 프로그램이 탄생하기도 했다. 교양의 다큐적 요소들이 예능 속으로 들어와 점점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경향도 생겼다. 아나테이너들이 등장하게 된 건 당연지사였고, 전현무는 그 시대의 아이콘으로 얘기해도 될 법한 인물이었다. 

 

“아나테이너들이 훨씬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제가 장성규와 조정식을 응원하거든요. 너무 이쁜 동생들 좀 더 활발히 설쳐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아나운서를 지망하는 후배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데 그건 ‘나다움’을 잃지 말라는 거예요. 나다움을 잃고 기존의 아나운서를 흉내내는 순간 불합격입니다. 나다움이 굉장히 중요한 시대이기 때문에 흔히들 하는 얘기거든요. 면접장에서도 본인이 보지도 않는 방송의 아나운서를 제 롤모델이라고 하면 거짓말인 거 다 알거든요. KBS 시험 볼 때 제일 좋아하는 프로그램으로 ‘개콘’을 얘기했었어요. 실제로  전 ‘개콘’을 매주 일요일마다 봐서 그렇게 얘기했는데 술렁술렁거렸어요. 당시 아나운서들이 진행할 확률이 제로인 ‘개콘’을 얘기했다는 거는 굉장히 전략적이지 않은 답변이었죠. 근데 거기서 그분들은 솔직하게 본 거죠. 제 아이덴티티를 보여준 거고.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나는 어떤 사람이 되겠다. 나는 이런 걸 되게 잘한다. 방송에서 그 누구보다 잘 할 수 있다 이런 게 있을 거예요. 그런 거를 잃지 말고 면접장에서 어필을 하시면 훨씬 더 합격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겁니다.”

사실 요즘 아나운서는 직종 자체가 위기다. 이미 정확한 발음에 특화된 아나운서보다 조금 익숙지 않아도 개성있는 배우가 멘트를 하는 걸 더 선호하는 시대로 바뀌고 있어서다. 또한 아무 개성 없이 멘트만 하는 아나운서는 AI를 이기기가 어렵다. 전현무가 말하듯 자기만의 어떤 개성이 확실한 목소리와, 자기가 좋아하는 것, 또 감정도 실을 수 있는 그런 부분들이 요구된다. 

 

‘나다움’의 아이콘
이른바 ‘멀티테이너’가 당연해진 우리의 일상이다. 연예인들도 그렇지만 일반인들도 한 가지 캐릭터만으로는 살기 힘들어졌다. ‘부캐’가 대세가 되고, 역할도 많아졌다. 어떨 땐 굉장히 진지해야 되고 어떨 땐 굉장히 가벼워야 하고 이걸 균형 있게 잘해야 삶을 잘 살아갈 수 있다. 한 가지의 나의 모습에 갇혀 있기보다는 다양한 나의 가능성을 열어 놓는 삶이 중요해진 현재, 전현무가 말하는 나다움에 대한 이야기는 그 울림이 적지 않다. 그는 예전에 ‘다움’에 대한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다움’에 갇히면 다 같아지고 ‘나’가 보이지 않는다. ‘나’를 가장 잘 드러내는 자가 백만 유튜버가 되고 파워 블로거가 되고 인플루언서로 인기를 얻는다.”

 

“‘나다운 게 다움에 갇혀 있었다’라고 저는 생각을 하는데, 학생다워야 한다, 아나운서다워야 된다는 말을 제일 많이 들었어요. 저는 근데 아나운서답지 않게 해서 성공을 했어요. 그 다움이라고 하는 거는 남이 규정해 놓은 거잖아요. 내가 생각했을 때 아나운서는 이래도 돼라고 생각하면 그게 맞는 겁니다. 제가 예전에 싸이월드에 ‘내가 정답이다’라는 글을 썼었어요. 부모님도 정답이 아니고 선생님도 아니고 직장 상사, 사장님, 본부장님도 아닌 당신이 정답이에요. 당신 인생의 정답은 당신이라는 거죠. 그래서 저는 아나운서 들어가자마자 아나운서다움도 버려 버렸고 이제 프리를 해서도 아나운서 출신 다움에 대한 선입견도 버렸어요.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유튜브를 예로 들면, 방송과는 전혀 상관없는 곤충에 미쳐있거나, 피규어에 미쳐 있고 또 ASMR에 빠져있는 이런 분들이 콘텐츠 제작자가 되고 있잖아요. 100만 유튜버가 되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내가 너무 좋아 죽겠는거, 나다운 거에 답이 있다고 생각해요.”

 

나다움은 요즘 시대의 키워드가 되고 있다. 과거 직장인다움이라는 틀 안에서 야근을 당연히 생각하고 자신을 희생해 가족을 부양하는 삶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걸 벗어나 퇴근 후 자신만의 또 다른 삶을 살아가는 워라밸이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자리하게 됐다. 흔히들 ‘MZ 같다’고 표현하지만 그것은 결코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게 된 현 세대들의 긍정적인 삶의 방식을 말하는 것일 게다. 전현무는 그런 점에서 스스로도 말하듯 MZ라는 개념이 나오기 전부터 MZ였다고도 볼 수 있다. 

 

“MG들의 성향을 20대 때 이미 갖고 있었어요. 내가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하고, 회식도 하기 싫으니까 안 가는 게 그 때는 쉽지 않았어요. 신입 아나운서 때부터 저는 회식을 안갔는데, 제 아나운서 송별회 하는 날도 제가 안 갔어요. 그만큼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다 그렇게 살아왔죠. 저는 나이 50, 60이 돼서도 이런 나다움을 잃지 않으려고 해요. 아직도 음악 방송을 많이 하지만 아이돌들이 인사하고 오는 걸 싫어합니다. 진심으로 싫어합니다. 그리고 누가 인사를 안 왔다고 싸가지 없다고 얘기하기도 하는데, 아니 바빠 죽겠는데 자기 할 일 하고 가면 되지. 그 시간에 쉬고 무대에 집중하는 편이 더 나아요.”

 

왜 전현무가 이 급변하는 방송 환경의 변화 속에서도 지금 가장 많은 방송 프로그램을 하는 인물이 됐는가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기보다는 오히려 나다운 것을 잃지 않으려는 데서 비롯됐다고 보인다. 그리고 그 ‘나다움’이란 사회적 잣대가 들이미는 무수한 ‘다움’의 틀에 갇히는 게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고 좋아하는 것들 속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발견해나가는 것이다. 전현무의 나다움은 그래서 복잡해진 현대인들의 삶에 중요한 가치를 던진다. 진정한 자신을 찾아내고 그 가능성을 넓혀가는 것. 그건 어쩌면 이 엄청난 속도로 변화해가는 세상을 좀더 행복하게 영위하며 살아갈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글, 사진:뉴스1)

 

‘비밀은 없어’, 위선적인 세상에 날리는 고경표, 강한나의 로맨틱 팩트 펀치

비밀은 없어

“정신 차렷!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자기 일 하러 온 거야. 갑질 당하러 온 사람? 여기에 아무도 없어!” 송기백(고경표)은 약한 스텝들만 골라서 지능적으로 괴롭히는 갑질 아이돌 피엔(장원혁)에게 그렇게 일갈한다. 잘 나가는 아이돌이라 그가 없으면 프로그램이 굴러가지 않는 현실 때문에 늘 갑질을 당해도 누구 하나 제지하는 이가 없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전기 감전을 당한 후 속에 있는 말을 숨기지 못하고 꺼내놓게 된 송기백의 일갈에 모두가 충격을 받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고소해한다. 

 

이 장면은 JTBC 수목드라마 ‘비밀은 없어’가 가져온 코미디와 판타지의 정체가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사회생활에서 어디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며 사는 이가 몇이나 될까. 아니 갑질이 일상인 세상에서 오히려 하고 싶은 말을 꾹꾹 눌러야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아닌가. 송기백 역시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회인이지만, 전기충격 후 갑자기 생겨난 후유증(혹은 능력이라 해야할까)은 그간 하지 못했던 말들을 마구 쏟아놓는 상황들을 만들어낸다. 

 

챙겨주는 척 하면서 자기 일을 떠넘기는 선배들에게 “귀찮은 건 후배들 다 시키면서 뒤에선 일 못한다고 욕하는 거 모를 줄 아냐?”고 쏘아대고, 후배의 미래를 걱정하고 위하는 척 하지만 사실은 제 안위만 생각하며 이 김에 푹 쉬라고 말하는 상사에게 “뭘 자꾸 쉬라고 하시냐”며 그건 쉬는 게 아니라 “벌 받는 것”이고 “결국 귀찮은 일은 다 시킬 것 아니냐”고 속에 있는 말을 꺼내놓는다. 

 

송기백에게는 집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직장에서는 부유한 집안 자제인 것처럼 알려져 있고(그것도 송기백이 그렇게 한 건 아니다) 그것이 사회생활에 도움이 될 거라는 이야기에 그런 척하며 살아왔지만 송기백의 가족들은 그가 보내주는 생활비에 용돈에 의지하며 살아간다. 그런 가족에게 한 마디 못하고 살았던 송기백이지만, 그는 전기충격의 후유증으로 드디어 속내를 토로한다. “솔직히 내가 죽든 말든 지금 내가 주는 용돈에 생활비에 그게 더 중요한 거 아니야?”

 

물론 거짓말을 할 수 없게된 공인의 코미디를 담은 작품은 이미 있다. 라미란이 출연한 ‘정직한 후보’가 그런 작품이다. 하지만 ‘정직한 후보’가 신뢰를 잃은 정치권에 돈키호테처럼 등장한 거짓말 못하는 정치인을 통해 진실한 정치에 대한 판타지를 담는 작품이라면, ‘비밀은 없어’는 할 말은 있지만 차마 꺼내놓을 수 없는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모순 투성이 사회에 대해 후유증으로 헐크 혓바닥을 갖게 된 송기백이라는 아나운서를 통해 때론 코믹하게 때론 시원하게 풍자하는 작품이다. 

 

송기백이 아나운서이고 그 직업이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는 사실은 그래서 이 드라마가 갖고 있는 풍자적 코미디의 양면을 드러내는데 최적이다. 어딘지 바른 모습으로만 방송을 통해 비춰지지만 어디 그게 진짜 모습일 수 있을까. 그것이 깨지는 지점에서는 방송사고라는 형태로 드라마는 코미디의 웃음을 찾아낸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아나운서의 진짜 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아나테이너’의 탄생과 맞닿아 있다. 

 

어째서 최근들어 많은 아나운서들이 프리를 선언하고 나와 아나테이너의 길로 들어서게 됐을까. 그건 방송이 점점 일상화되면서 공적 영역이라 여겨졌던 것들조차 사적인 리얼함을 요구하기 시작한 변화와 맞닿아있다. 즉 아나운서들의 신뢰는 이제 그 기계 같은 공적 업무의 영역만을 보여줄 때 생겨나는게 아니고 오히려 사적인 차원에서의 인간적 면모를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보여줄 수 있을 때 오히려 더 공고해진다. 그것이 진짜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 방송에 생겨난 변화의 관점을 염두에 두고 ‘비밀은 없어’를 보면 왜 송기백이라는 아나운서가 후유증을 통해 점점 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 그 과정에 온우주(강한나)라는 예능 작가와의 로맨틱 코미디적 관계가 필요했는가가 납득된다. 온우주는 예능 작가 특유의 감각으로 송기백이라는 단단한 아나운서의 껍질 이면에 예능적(인간적) 가능성이 있다는 걸 알아본다. 그래서 온우주와 송기백이 궁극적으로 그려나갈 멜로적 관계는 송기백의 벗겨진 껍질 안의 실체를 온우주가 매력으로 바라보게 되고 그걸 또한 타인들에게도 납득시키는 과정이 되지 않을까. 

 

‘비밀은 없어’는 코미디의 밀도가 높은 로맨틱 코미디다. 그래서 연속적으로 펼쳐지는 웃기는 상황들에 정신없이 웃으면서 때론 설레는 멜로 감정을 토핑처럼 맛볼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지금껏 사회생활과 가족의 생계를 위한 삶 때문에 벗어버릴 수 없었던 껍질을 온우주와 함께 하나씩 벗어가며 그걸 인정해가는 송기백의 모습은 단순한 로맨틱 코미디 그 이상의 감흥을 줄 것으로 생각한다. (사진:JTBC)

‘나혼자 산다’부터 ‘전현무계획’까지 가장 방송을 많이 하는 예능인

전현무계획

현재 한국에서 가장 많은 방송 프로그램을 하는 예능인은 누구일까. 유재석도 신동엽도 아니다. 바로 전현무다. 그는 현재 고정출연하는 프로그램만 무려 21편이다. 이게 가능한 건 그가 감당하는 프로그램의 스펙트럼이 넓기 때문이다. 그는 ‘히든싱어’나 ‘팬텀싱어’, ‘트로트의 민족’ 같은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을 맛깔나게 진행하는 MC이면서, ‘나 혼자 산다’ 같은 관찰카메라 형식의 프로그램의 메인 출연자다. ‘강심장VS’나 ‘전지적 참견 시점’ 같은 웃음과 재미에 특화된 프로그램에서도 특유의 깐족과 재치를 자랑하지만, ‘톡파원 25시’나 ‘성적을 부탁해:티처스’, ‘선을 넘는 녀석들’ 같은 정보를 다루는 프로그램에서도 지식을 바탕으로 한 진행 능력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니 예능가에는 새로운 프로그램이 런칭하면 몇 개 중 하나는 전현무가 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그의 영역은 전방위적이다. 

 

이게 가능해진 건 그가 지금까지 걸어왔던 특유의 이력 때문이다. 흔히 ‘트민남(트렌드에 민감한 남자)’이라고 스스로를 이야기하듯 그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끊임없이 새로운 영역으로 자신을 밀어넣는 놀라운 추진력을 보여줬다. 손범수를 롤모델로 삼아 아나운서가 되겠다는 꿈을 일찍이 갖게 된 그는 그가 다니는 연세대학교에 들어갔고 거기서 선배 손범수가 했던 것처럼 대학방송국(YBS)에서 꿈을 키웠다고 한다. 그리고 2003년 조선일보 공채로 입사했지만 1주일만에 그만두고 YTN에 들어가 1년 간 앵커로 활동했고 2006년 KBS 공채 아나운서로 들어갔다. 결국 손범수처럼 되겠다는 꿈을 끝없는 도전 끝에 이루게 된 셈이다. 기자부터 앵커, 아나운서를 모두 섭렵한 이 이력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다. 향후 그가 정보나 지식을 다루는 프로그램에서도 특출난 진행능력을 선보이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아나운서가 된 후 그는 그 직종의 역할이 방송에서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뉴스 앵커가 되려는 거라면 모를까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아나운서들의 자리는 갈수록 줄어들었다. 아나운서들의 자리를 연예인들이 점점 차지하기 시작했고, 프로그램을 여러 개 해도 같이 출연하는 연예인들의 수입과 비교해보면 너무나 작은 출연료(방송사에 소속된 직장인이라 당연한 일이지만)를 받아야 했다. 그래서 방송국에서 벗어나 프리랜서로 활동하려는 아나운서들이 생겨났고 그 중에는 연예인들처럼 교양은 물론이고 예능 프로그램에까지 진출하는 이른바 아나테이너(아나운서+엔터테이너)들이 탄생했다. 스포츠 아나운서로 활동하다 프리 선언을 한 김성주는 그 성공사례가 됐다. 특유의 스포츠 진행 능력이, 대결과 결과발표가 이어지는 오디션 프로그램 같은 데서 유용한 능력이 된다는 걸 보여준 것이다.

 

전현무는 KBS 아나운서 시절부터 차분히 아나테이너로의 전향을 준비한다. 마침 ‘비타민’이나 ‘스타골든벨’ 같은 교양과 맞물린 예능프로그램들이 나오던 시절에 그는 그런 예능 프로그램을 전담하다시피하며 자신의 이력을 쌓는다. 그러면서 때때로 아나운서가 맞나 싶을 정도로 촐싹대는 이른바 ‘깝’을 보여줘 그 고정된 이미지를 깨는 방식으로 오히려 큰 웃음을 준다. 그리고 2012년에 드디어 프리선언을 하고 KBS를 퇴사한 후에는 본격적인 예능인으로서의 면모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아나운서라면 피해야 할 비호감, 밉상 캐릭터를 선보이면서 초반에는 팬과 더불어 많은 안티팬도 생겼지만 차츰 캐릭터가 정착되고 적당하게 선을 넘는 방법들을 찾아나가면서 전무후무한 방송인이자 예능인으로서 자리매김하게 됐다. 오디션 프로그램 같은 경연 프로그램의 진행 능력을 인정받았고, 스튜디오에서 진행되는 예능 프로그램이나 토크쇼는 물론이고 리얼 버라이어티, 관찰 예능까지 섭렵한 예능인이 탄생한 것이었다. 

 

그의 ‘트민남’ 캐릭터가 가장 도드라진 건 ‘나 혼자 산다’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 프로그램을 시대의 조류에 맞는 형태로 이끌어낸 점이다. ‘나 혼자 산다’는 전체 가구의 4분의 1이 1인가구로 들어온 시대에 혼자 사는 삶을 관찰카메라 방식으로 들여다 본다는 취지로 시작됐다. 하지만 이러한 취지가 갖는 명분의 이면에는, 연예인의 내밀한 사생활을 들여다보겠다는 리얼리티쇼의 태동이 있었다. 즉 리얼리티쇼를 하기 위한 명분으로서 1인 라이프를 앞세웠던 것. 하지만 점차 관찰카메라로 불리는 리얼리티쇼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러한 명분보다 중요해진 건 더 리얼한 내용들이었다. 노홍철이 하차하고 시청률이 떨어지는 추락기를 거치면서 일찍부터 합류해 프로그램을 이끌어온 전현무를 중심으로 기안84, 박나래, 이시언 같은 인물들이 영입되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고정 출연자들을 중심으로 세우고 간간히 새로운 인물들을 소개하는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고정 출연자들 간의 케미가 리얼하게 만들어지는 과정들이 담기게 됐다. 리얼리티쇼에 캐릭터쇼가 더해진 느낌이랄까. 이 두 가지 형식 모두에 최적화된 전현무는 여러 위기 국면을 돌파하며 최근 다시 ‘나 혼자 산다’의 부흥기를 만든 장본인이 됐다. 트민남, 무스키아, 무든램지, 프레디 무큐리 같은 캐릭터들을 탄생시켰고, 박나래, 이장우와 함께 이른바 ‘팜유라인’을 만들어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까지 먹방여행을 다니는 모습으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최근 그는 여행유튜버인 곽튜브와 함께 무작정 길을 떠나 맛을 즐기는 ‘전현무계획’에 출연했다. ‘길바닥 먹큐멘터리’라는 프로그램 설명에도 나와 있듯이, 이 프로그램은 제목처럼 ‘무계획’과 ‘계획’을 넘나드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최근 유튜브 예능의 영향을 받아 대본대로 움직이는 계획적인 프로그램들보다는 계획 없이 돌발상황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프로그램들이 더 주목받는 상황이다. ‘전현무계획’은 바로 이러한 새로운 예능 트렌드에 발맞추면서 동시에 기존 예능의 방식(계획이 있는)을 오가는 형태로 기획되었다. 그래서 ‘전현 무계획’을 바탕으로 길거리에서 아무 곳이나 무작장 찾아들어가 먹방을 선보이며 사람을 만나다가, ‘전현무 계획’으로 미리 계획한 누군가를 특정 장소에서 만나는 모습 또한 보여준다. 

 

‘전현무계획’이라는 프로그램의 제목은 여러모로 아나운서에서 예능인으로, 캐릭터쇼에서 관찰예능으로 뻗어나가는 전현무의 강점을 그대로 표현하는 말 같다. 계획을 하면 목표를 이룰 때까지 끈질긴 추진력을 보여주면서도, 때론 계획 바깥으로 뻗어나가는 유연함을 갖는 일. 이루고 싶은 꿈이 있는 분들이라면, 계획과 무계획을 넘나드는 전현무의 행보가 시사하는 점이 분명 있을 게다. (글:국방일보, 사진:MBN)

‘쌈마이’, 무엇이 이 청춘들의 꿈과 사랑을 가로막나

“왜 짐이 이것 밖에 안 되냐?” 이젠 헤어져 자신의 짐을 챙겨달라는 백설희(송하윤)에게 김주만(안재홍)은 화가 났다. 그건 아마도 그녀에게 내는 것이라기보다는 자신에게 화가 나는 것이리라. 무려 6년 간 사귀면서 그녀가 자신을 위해 산 물건들이라는 것이 한 박스도 안 되는 싸구려들뿐이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그토록 살뜰히도 챙겼던 그녀가 정작 자신을 위해서는 돈을 쓰지 않았다는 사실.

'쌈마이웨이(사진출처:KBS)'

KBS 월화드라마 <쌈마이웨이>의 백설희는 결국 김주만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하지만 그렇게 빠져나간 백설희의 빈자리를 김주만은 톡톡히 느낄 수밖에 없었다. 매 순간 자신에게 최선을 다했던 그녀가 아니던가. 그러니 그녀가 없는 자리가 마치 살점이 떨어져 나간 것처럼 아프고 허전하고 멍할 수밖에. 

그들이 헤어지게 된 결정적인 원인은 김주만이 자신을 따르던 인턴 장예진(표예진)의 집에서 어쩔 수 없이 외박을 하고 들어온 것이었지만, 그것만이 이별의 원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미 이전부터 그들 관계는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지나치게 김주만만을 챙기고 자존감이 바닥인 백설희. 그녀의 사랑은 헌신적이지만, 그런 헌신은 김주만에게는 부담스러운 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온통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지만, 그래서 어떻게든 그녀를 현실적으로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6년 간을 뛰고 또 뛰었지만 그다지 바뀌지 않는 현실. 최고는 아니어도 “중간” 정도를 해주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것조차 쉽지 않은 상황 속에서 그녀가 말하는 ‘소소한 행복’은 그에게는 어떤 무력감을 주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김주만과 백설희의 이별은 서로를 지나치게 사랑하고 챙기려 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서로 사랑하고 챙기는 것이 행복으로 이어지겠지만, 그것이 무거운 현실 앞에 서게 되자 서로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결과로 이어졌던 것. 백설희를 위해 김주만은 전셋집 한 칸이라도 마련하려 애써왔고, 김주만을 위해 백설희는 그를 챙겨도 자신은 돌보지 않았다. 이들의 이별이 남다른 아픔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쌈마이웨이>는 청춘들의 꿈과 사랑을 쉽게 부숴버리는 현실을 담고 있다. 그들은 그저 대단한 건 아니더라도 하고픈 일을 하는 것을 꿈으로 여기고, 최고는 아니더라도 중간 정도의 행복을 원하지만 그건 번번이 갑질 하는 현실 앞에 무너진다. 그 현실의 시스템이라는 것이 가진 것 없는 흙수저 청춘들에게는 기회조차 주지 않는 비열한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쌈마이웨이>는 이런 현실에 대한 청춘들의 ‘돌려차기 한 방’을 그리려 한다. 그래서 일찍이 가난한 현실 때문에 접었던 무도의 꿈을 고동만(박서준)은 다시 걸어가려 하고, 스펙이 없어 접었던 아나운서의 꿈을 최애라(김지원)는 다시 꿈꾼다. 그렇다면 김주만과 백설희는 이 현실 앞에 무너진 사랑 앞에서 어떤 ‘돌려차기’를 보여줄까. 그깟 현실 따위 훌훌 털어내고 다시 그들은 사랑할 수 있을까. 

고동만과 최애라의 꿈이 작게라도 이뤄지길 바라는 것처럼 시청자들은 김주만과 백설희의 사랑이 그 현실 앞에 꺾이지 않기를 바란다. 시스템이 요구하는 성공과 사랑이 아니더라도 그 바깥에서 얼마든지 꿈을 꾸고 사랑할 수 있기를. 저 부조리하고 비열하기까지 한 시스템이 그들을 무릎 꿇게 하지 않기를.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