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룡><리멤버>, 멜로에 대한 기대와 우려

 

SBS <육룡이 나르샤> 도화전에서 벌어진 이성계파와 조민수파의 혈투는 약 20분간 숨 가쁠 정도로 휘몰아쳤다. 이성계와 그 일파를 제거하기 위해 조민수는 수많은 살수들을 세워놓았지만 삼한제일검 이방지(변요한)와 각성한 무휼(윤균상)의 칼 앞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결국 이방원(유아인)과 가별초들이 들이닥치면서 조민수의 암살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육룡이 나르샤(사진출처:SBS)'

그런데 이 한 편의 액션 활극을 본 것처럼 여겨지는 이야기는 어린 시절 연희(정유미)를 겁탈했던 사내의 뒤를 따라간다. 그를 쫓는 이방지와 분이(신세경) 그리고 그 앞에 나타난 연희. 연희와 이방지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와 굴욕을 안겼던 그 사내는 결국 이 두 사람의 손에 의해 처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두 사람의 관계를 깨뜨려 놓았던 사내의 죽음으로 인해 새록새록 피어나는 건 향후 연희와 이방지가 다시 사랑하는 사이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이다. <육룡이 나르샤>는 그 촘촘한 이야기와 긴박감 넘치는 대결구도가 압권이지만 상대적으로 멜로는 별로 없는 드라마다. 그래서 한 편에서는 멜로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낸다. 이방지와 연희 그리고 이방원과 분이의 멜로가 이 사극에서는 가능한 부분이다.

 

하지만 정반대로 굳이 멜로가 필요한가 하는 의견도 심심찮게 나온다. 어설픈 멜로는 오히려 극의 긴장감을 흐트러뜨리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육룡이 나르샤>는 고려 말 혼돈기를 깨치고 나와 조선을 건국하는 여섯 용의 영웅담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 그 과정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더 흥미진진해질 수 있다는 것.

 

멜로에 대한 이런 상반된 입장은 이제 지상파 드라마가 어떤 과도기에 놓여있다는 걸 말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과거 지상파 드라마는 어떤 식으로든 어떤 장르든 항상 멜로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전통적인 지상파 시청층은 드라마는 멜로라는 어떤 공식화된 틀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알고 있듯이 <미생>이 지상파가 아닌 케이블 채널 tvN에서 방영되게 된 것도 결국이 멜로의 부재 때문이었다. 그런데 과연 지금도 멜로에 대한 이러한 강박은 여전히 유효할까.

 

SBS 수목드라마 <리멤버-아들의 전쟁>은 복합장르 드라마다. 변호사가 나오는 법정극 장르에 사회극 요소가 가미되어 있고 거기에는 또한 조폭물의 흔적들도 들어가 있다. 그런데 이 복합장르에서도 빠질 수 없는 것이 멜로다. 주인공인 서진우(유승호)와 이인아(박민영)가 그 멜로의 대상이다. 이 둘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사형수가 된 서진우 부친의 무고함을 풀어내기 위해 변호사가 된 인물이다.

 

그런데 누가 봐도 다분히 멜로 구도를 예감케 하는 서진우와 이인아의 관계설정에 대해 굳이 멜로가 필요한가를 묻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공분을 일으키는 갑질 재벌 후계자를 응징하는 복수극이자 사회극에 더 충실해지는 것이 작품의 몰입도를 올릴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5년 만에 서진우를 만난 이인아가 달라진 그의 모습에 실망하고 술에 취해 그를 불러내는 에피소드는 현실적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검사와 변호사가 그런 식으로 만나는 것이 비현실적이지만 그건 다분히 두 사람의 멜로를 위한 설정으로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

 

드라마 시청자들의 눈높이가 높아지면서 드라마 하면 무조건 멜로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조금씩 사라지고 있는 추세다. 물론 멜로에 대한 기대는 어떤 순간에서도 불쑥불쑥 수면 위로 피어오르지만 그만큼 우려 섞인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 아예 멜로드라마거나 아니면 반드시 필요한 멜로가 아니라면 그것이 물과 기름처럼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이제는 시청자들도 몰입감의 차이로서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탐정>, 권상우 성동일 콤비를 보며 부부를 떠올렸다면

 

미드 <셜록>에서 셜록은 마치 편집증 환자 같은 탐정의 독특한 매력에 전 세계 시청자들을 푹 빠뜨린 바 있다. <셜록>으로 인해 국내에서도 탐정물에 대한 관심이 한층 높아졌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셜록 같은 캐릭터를 흉내 내는 것만으로 우리네 관객들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그건 아닐 것이다. 어디까지나 우리의 상황과 정서에는 거기에 맞는 그만한 캐릭터가 필요할 테니까. 그런 점에서 보면 <탐정 : 더 비기닝(이하 탐정)>은 이러한 질문에 마치 정답지를 내미는 듯한 영화다.

 


사진출처: 영화 <탐정 더 비기닝>

별 기대 없이 <탐정>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은 관객이라면 그 소소하고 일상적이며 나아가 비루하기까지 한 시작에 혹시나가 역시나가 아닐까 후회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탐정>은 초반의 이 소소함이 향후의 긴박감 넘치는 추리와 액션으로 점점 흥미진진해지는 이색적인 경험을 하게 해준다.

 

미제사건카페를 운영하는 파워블로거로 탐정을 꿈꾸는 만화방 주인 강대만(권상우)과 레전드 형사였지만 지금은 후배에게 밀려날 처지에 놓여있는 노태수(성동일). 읽고 본 건 많아 촉이 살아있는 강대만과 몸으로 부딪치며 갖게된 감이 살아있는 노태수. 버디 무비의 전형적인 틀을 갖고 있지만 어딘지 덜컥거릴 수밖에 없는 너무 다른 두 사람은 하지만 바로 그 다르다는 점 때문에 살인사건을 수사하는데 있어서 결과적으로는 환상의 콤비가 된다.

 

하지만 이렇게 너무 다른 성격과 삶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공유하고 있는 것도 있다. 그것은 살벌한 살인 현장에서 범인을 잡기 위해 뛰고 또 뛰는 이 인물들이 마누라의 한 마디에 !”하고 뭐든 할 것 같은 공처가들이라는 사실이다. 바로 이 점은 깨알 같은 웃음으로 관객들을 빠뜨린다. 이 정도면 코미디로서 괜찮은 조합과 선택이다.

 

그런데 이 정도의 코미디 영화를 만들면서 굳이 더 비기닝이라는 의욕을 내비쳤을까. ‘더 비기닝이라면 이번 영화로 만들어진 설정과 캐릭터를 바탕으로 앞으로도 계속 <탐정> 시리즈를 이어가겠다는 포부다. 그게 말이 된다고 여겨지는 건, 아내에게 꼭 잡혀 살면서 눈치 보며 그래도 제 하고 싶은 일을 기웃거리는 강대만이나, 살벌한 비주얼과 느낌이지만 역시 빨간 고무장갑이 손에 맞지 않아 설거지가 어렵다는 노태수가 너무나 우리네 정서에 딱 맞으면서도 우리식의 추리와 형사물에 잘 어울리는 조합이기 때문이다.

 

추리물이 갖는 의외의 반전들이 주는 재미와 함께 이들의 일상에 대한 공감이 각자 다른 이야기처럼 움직이다가 후반부에 하나의 메시지로 묶여지는 것도 흥미롭다. 이런 점은 이 영화가 단순한 추리물이나 형사물이 아니라 그 장르를 통해 일상의 메시지까지를 던지는 깊이를 숨기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그래서 영화는 시종일관 유쾌한 웃음이 터지고, 그러면서도 긴박한 상황이 이어지다가 다시 편안한 일상으로 돌아온다.

 

흥미로운 지점은 이렇게 공처가로 내몰린 두 남자가 마치 남편과 아내 같은 케미로 엮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노태수가 힘과 경험만을 내세우는 남편이라면 강대만은 꼼꼼하게 생각하고 문제를 풀어나가는 아내 같은 느낌. 그래서 마치 남편과 아내가 공조해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듯한 이 영화의 느낌은 공처가인 두 남자의 판타지처럼 읽혀지기도 한다. 분위기가 싸해져도 또 뭐가 잘 맞지 않아 툭탁거려도 결국은 문제를 잘 해결해나가는 그런 관계에 대한 판타지. 그 관계가 부부건 아니면 버디무비의 형제 같은 느낌이건.



<용팔이>, 깨어난 김태희 멜로의 시작은 독?

 

<용팔이>가 방영되기 전부터 김태희 연기력에 대한 지적이 있었다. 제작발표회 현장에서도 대놓고 기자들은 연기력 논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김태희 역시 이제는 그런 논란에 대해 익숙해진 모습이었다. 너무 많이 제기되다 보니 그 대처에 있어서도 당황하는 모습보다는 능수능란하다는 느낌마저 있었다. 그녀는 그런 지적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노력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용팔이(사진출처:SBS)'

드라마가 방영되었지만 막상 김태희의 분량은 적었다. 간간히 회상 신에서 그녀의 분량이 나왔지만 대부분은 병실에 누워 있는 모습이었다. 사실상 4회까지 김태희가 한 연기는 반듯이 누워 있는 모습이라는 지적들이 나왔다. 심하게는 누워서 돈 번다는 얘기도 나왔고, 누워만 있는데도 불구하고 연기력이 여전하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사실 이건 김태희의 입장에서 보면 억울한 평가일 수 있다. 즉 본격적으로 연기를 보여준 것도 없는 상황에서 제기되는 연기력 논란이라면 사실 어떤 연기를 보여줘도 논란은 나올 수밖에 없다는 걸 말해준다. 게다가 누워 있는 연기도 연기이고 그것 역시 결코 쉬운 연기는 아닐 것이다. 본래 대사라는 것이 움직이면서 나올 때 가장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니 움직임이 제한된 누운 상태에서 던지는 대사는 자칫 잘못하면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주게 된다.

 

객관적으로 보면 김태희의 연기는 대단히 뛰어나다고는 말할 수 없어도 논란이 나올 정도는 아니라는 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논란이 끊이지 않는 건 한 번 엇나간 흐름을 되돌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잘 보여준다. 젊은 시절부터 꼬리표가 달려버린 연기력 논란은 그렇게 떼어버리기 어려운 주홍글씨처럼 김태희라는 이름 석 자에 달라붙어 있다.

 

거기에 지금의 연기야 그렇다 쳐도 그 연기까지 오는 기간이 10여 년의 세월을 훌쩍 넘겼다는 사실을 덧붙이면 연기력 논란의 문제는 더욱 떨치기 어려운 사실이 되어버린다. 누군가는 연기력 논란을 한 번 겪고는 그대로 영원히 드라마에서 보기 힘든 상황을 겪기도 하는데, 김태희는 그런 논란 속에서도 현재까지 끊임없이 작품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불공평하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그리고 4회가 지난 후 <용팔이>에서 김태희는 눈을 뜨고 본격적인 연기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녀가 눈 뜨고 보여주는 연기의 선이 멜로. <용팔이>는 진화된 의학드라마 형태로 그 안에 누아르적인 요소부터 액션, 사회극까지 다양한 장르들을 포괄한 작품이다. 그런데 김태희가 보여줄 연기가 이 많은 틀 중에서 우선 멜로에 집중되어 있다는 건 그녀로서는 불리할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물론 이 선택은 드라마의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즉 많은 이들이 멜로가 끼어든 장르물을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사실상 아직까지 지상파 드라마에서 멜로 없이 성공한 장르는 없다는 점이다. 드라마의 대중성을 높여주는 건 결국은 멜로다. 그러니 김태희가 눈을 뜨는 시점은 정확히 새로운 장르를 보여주던 드라마가 이제 멜로라는 틀로 그 몰입도를 높여놓는 단계와 일치한다.

 

멜로 연기는 지금껏 김태희가 계속 보여줬던 연기다. 그러니 아무리 잘해도 잘한다는 평가가 나오기 어렵다. 오히려 악역을 하거나, 액션을 선보이거나 한다면 다른 반응이 나왔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주원처럼 젊은 배우의 사랑을 받는 여성의 역할을 연기하게 되었다. 이 멜로 구도는 분명 드라마에 새로운 힘을 부여한다. 하지만 김태희의 연기력 논란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물론 김태희 스스로 밝혔듯이 이 모든 건 그녀로부터 생겨난 일들이다. 그래서 그녀 스스로 그 난관을 극복해내야 한다. <용팔이>는 훌륭한 작품이지만 그것이 김태희에게도 좋은 선택인지는 한번쯤 생각해봐야 한다. 만일 연기력 논란을 제대로 털어내고 싶다면 지금껏 하지 않았던 역할로 기존 이미지를 깨버리는 과감한 선택이 필요하지 않을까.



여름 성수기에 어울리지 않는 <협녀>의 부진

 

영화의 성패는 개봉시기와도 무관하지 않다. 겨울방학 시즌과 여름 성수기는 영화를 찾는 관객들의 기대치가 다르다. 겨울방학 시즌이 조금 무거운 영화라도 영화적인 완성도가 있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는 시기라면, 여름 성수기는 말 그대로 블록버스터가 대결하는 시기다. 이 시기에 과한 메시지를 담아내는 영화는 어울리지 않는다.

 


사진출처:영화 <협녀, 칼의 기억>

<협녀, 칼의 기억(이하 협녀)>이 겨우 8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개봉 첫날 박스오피스 4위를 차지한 건 그 영화적인 완성도라기보다는 그 개봉시기가 영 어울리지 않았다고 보는 편이 낫다. 이 영화는 여름 성수기에 보기에는 너무 무겁다. 끝없이 이어지는 독백과 마치 연극처럼 비일상화되어 있는 대사들, 그리고 유려한 영상미는 충분하지만 역시 반복되는 슬로우 액션은 영화를 한없이 무겁게 만들었다.

 

<협녀>는 웃음의 포인트를 거의 찾기 힘들다. 두 시간짜리 영화가 쉬지 않고 비장함으로 흘러가는 건 마치 피서하듯 영화관을 찾는 여름 성수기 관객들이 바라는 일은 아닐 것이다. 물론 예고편으로 보기에는 마치 <와호장룡>이나 <동사서독> 같은 느낌의 시각적 즐거움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실로 <협녀>는 그 영상 연출만 놓고 보면 마치 한 편의 무용을 보는 것처럼 우아하고 스펙터클하다.

 

하지만 그런 영상미도 이야기의 무거움을 이겨내지는 못한다. <협녀>는 사사로움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이라고 설명하며 원죄를 가진 부모를 자식이 처결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즉 대의를 위해 가족 관계의 사사로움을 뛰어넘는 비극적인 주인공들의 이야기다. 욕망에 의해 덕기라는 이름을 버리고 유백(이병헌)이 된 사내와 그에 대한 사랑 때문에 사형을 죽인 월소(전도연) 두 사람 사이의 애증이 만들어낸 비극이다.

 

마치 그리스의 비극이나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보는 듯한 비장미는 너무 과도하게 무거워 자칫 실소가 나올 정도지만 그나마 그 무게를 버텨내는 건 연기자들이다. 이 영화는 실로 이병헌과 전도연, 그리고 이 영화를 통해 확실한 자기 색깔을 드러낸 김고은 같은 배우들에 깊은 몰입에 의해 겨우 그 비장미를 유지하는 작품이다.

 

50억 협박 사건으로 인해 그 불편한 사생활이 공개되면서 이병헌에 대한 대중적인 정서는 결코 좋지 않지만 연기자로서 그가 갖는 아우라가 이 영화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야기하면 <협녀>의 부진은 이병헌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연기의 문제가 아니라 그의 사생활 문제로 인해 개봉시기가 겨울에서 여름 성수기로 들어오게 되면서 생긴 일이다.

 

<베테랑><암살>, <미션 임파서블> 같은 여름철 더위를 날려버릴 블록버스터에 딱 어울리는 작품들과 비교해보면 <협녀>는 그 무겁고 과한 메시지와 비장함 때문에 오히려 더 더워지는 영화다. 만일 이병헌 논란이 터지지 않고 그대로 지난 겨울에 개봉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큰 흥행을 거두기는 어려운 작품임에 분명하지만, 그래도 영화를 보고 나오는 그 찜찜함이 이 정도까지는 아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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