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힙합, <무한도전>이 현 시국을 꼬집는 방식

 

역시 <무한도전>이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현 시국을 이만큼 <무한도전>만의 방식으로 풀어냈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다. 역사와 힙합의 만남. 그 기획 자체가 그렇다. 이 날 방송에 나온 설민석 강사의 첫 마디로 E.H 카의 말을 빌어 얘기한 것처럼, 역사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 그러니 하필 이 시국에 <무한도전>이 역사를 소재로 들고 나온 건 그 자체가 현재에 대한 문제제기이자 그 해법을 들여다보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그리고 이것을 힙합이라는 장르를 빌어 하겠다는 건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어 누구나 쉽게 사안을 이해할 수 있게 했듯이 누구나 지금의 역사적 문제를 힙합을 통해 익숙하게 하기 위함이다. 물론 힙합이라는 장르가 갖고 있는 사회 비판적 특징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그러니 역사와 힙합의 만남은 이 시국에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무한도전>의 화답이 아닐 수 없다.

 

이미 요즘 뉴스 안 보시는 듯’, ‘상공을 수놓는 오방색 풍선같은 자막을 통해서 <무한도전>이 아예 이 시국에 대해 작정하고 나선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 바 있다. 역사와 힙합을 소재로 한 위대한 유산특집에서도 이런 자막 센스는 여전히 돋보였다.

 

다이내믹 듀오의 개코가 출연하자 절친인 하하가 계속 칭찬을 해대자, 유재석이 나서서 친한 거 알겠는데 그만 띄워!”라고 일침을 하고 이어진 자막으로 지인 특혜의혹에 추방’, ‘이런 친구는 버리는 게 상책같은 자막도 이 시국에 보면 달리 보일 수밖에 없다.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에서 우리가 무수히 봤던 그런 부적절한 관계를 드러내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송민호가 출연해 을 부를 때 아버지!”라고 부르는 대목을 큰엄마’, ‘고모부’, ‘당숙모등으로 계속 요청해 부르자 이러다 사돈의 팔촌까지 다 나올 기세라고 붙여진 자막도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물론 그건 장난스럽게 노래 가사를 갖고 코믹하게 만든 한 대목일 뿐이지만, 최근 최순실 사태를 떠올리는 분들은 점점 그 사안 자체가 최씨 가족사 전체로 번져가는 상황을 떠올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역사 강의 도중 정조 이야기가 나올 때 하하와 양세형이 유재석의 완벽함을 찬양하는 목소리를 내자 자막으로 붙은 충성충성충성 MC유님 사랑합니다 충성이란 문구는 다름 아닌 이정현 대표가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에게 보낸 문자를 패러디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 위대한 유산특집이 보다 본격적으로 현 시국을 담고 있다고 여겨지게 된 건 설민석 강사가 우리네 역사를 짧게 시대별로 풀어낸 강의의 내용 덕분이다. 단군시대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그 역사를 설민석 강사는 기득권세력의 무능과 방만으로 인해 위기에 처할 때마다 그 위기를 넘어선 장본인이 , 돼지 취급 받은 백성들이었다는 걸 그 밑바탕에 깔아두었다.

 

단군을 설명하며 인내와 끈기가 우리네 원천적 힘이라고 말하고, 몽골의 침략 속에서 왕은 강화도로 숨어들어갈 때 우리네 백성들이 그 환란을 이겨내기 위해 팔만대장경을 만들었다는 이야기와 임진왜란 때 도성을 버리고 도망친 선조의 이야기가 그렇다. 또 자신의 시력을 버려가면서까지 한글을 만들어 백성들에게 전파하려 한 그 애민사상은 거꾸로 지금의 시국을 그 어떤 목소리보다 강하게 개탄하게 만들었다.

 

12<무한도전>이 방영되는 시간, 광화문 광장은 넘실거리는 촛불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물론 그 광장에 직접 나가지는 않았지만 <무한도전><무한도전>의 방식으로 촛불을 들고 있었다고 보인다. 그건 아마도 광장을 나가지 않았어도 마음만은 광장에 함께 한 많은 분들의 마음과 같지 않았을까.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방식으로.

연기신들도 <무도> , 곽도원 애청자의 팬심 인증

 

병정게임에 기반한 추격전을 하는 와중, 상암동 MBC 사옥으로 이동하는 차안에서 주지훈은 뜬금없이 <무한도전>의 대폭망 사례인 좀비특집이야기를 꺼낸다. 수백 명의 엑스트라를 동원해 준비했던 특집이 박명수가 사다리 하나를 치워버림으로써 그대로 끝나버렸다는 이미 <무한도전> 팬들에게는 전설이 되어버린 실패사례. 그 이야기를 들으며 정우성, 황정민, 정만식, 김원해 같은 연기신들도 황당해한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그러더니 이제는 황정민이 슬쩍 자신이 봤던 퍼펙트센스에서 박명수가 눈이 가려진 채 승합차에 태워 헬기처럼 꾸며냈던 몰래카메라 이야기를 꺼낸다. 그걸 보며 웃겨 죽는 줄 알았다는 것. 그 이야기에 다른 연기신들도 맞장구를 쳐준다. 영화 속에서는 그 누구보다 존재감이 강렬한 연기신들이지만 그들은 이 프로그램을 보며 깔깔 웃는 자신들을 이야기하며 스스럼없이 <무한도전>의 팬임을 인증한다.

 

출연해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서 그것이 겨우 오프닝에 불과하다는 걸 안 연기신들은 은근히 놀라는 눈치였다. 그러면서 춤이면 춤, 연기면 연기, 순발력 있게 들어와 웃음을 빵빵 터트리게 만드는 그들이 바로 예능신이라는 걸 확인한다. 그리고 처음에는 이방인처럼 어색했지만 어느새 <무한도전> 깊숙이 들어와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예능 출연이 거의 처음이라고 할 수 있는 곽도원은 심지어 덩치에 걸맞지 않은 귀여운 춤을 추고 곽블리라 불리면서 웃음을 주체하지 못하는 리액션을 보여준다.

 

본 게임에 들어가 추격전을 하면서도 그들은 이렇게 뛰고 또 뛰고 하루를 온전히 고달프게 보내는 <무한도전>의 노동을 실감한다. 일찌감치 <무한도전> 팀들에게 잡혀 포로가 된 곽도원은 그 현장을 가까이서 목격하는 시청자의 시선을 보여준다. 설명하고 또 설명해도 게임의 룰조차 잘 이해하지 못하는 광희에게 하나하나 다시 설명해주고, 유재석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가를 묻는 양세형에게도 친절하게 그 이유를 밝혀준다.

 

가까이서 그 장면을 보는 곽도원은 새삼 유느님의 진가를 실감한다. 이렇게 11년 간을 이끌고 온 그의 저력을. “형 도 닦아!”라고 말한 대목은 그래서 단지 농담만이 아니다. 물론 광희도 양세형도 모두 새내기에 가깝기 때문에 그토록 오랫동안 여러 추격전 속에서 갖가지 상황들을 경험한 베테랑 유재석에게는 비교될 수가 없는 일이다. 그러니 그는 모든 걸 설명해주고 새내기들은 그의 이야기를 경청한다.

 

MBC 사옥에 도착해 왕을 잡는 마지막 추격전을 벌일 때 이제 버려진 곽도원은 “<무한도전>을 이렇게 빡세게 만드는구나하고 의자에 누워버린다. 그리고 다른 동료 연기자들이 나타나자 무얼 아침부터 이렇게 힘들게 찍어대냐고 넋두리를 한다. 그들은 물론 재밌게 <무한도전>을 시청해 왔지만 그것이 이렇게 힘든 과정을 거쳐 나온다는 걸 직접 그 안에 들어와서야 실감했을 것이다.

 

이 날은 <무한도전>500회를 맞는 날이기도 했다. 500회 동안 그들은 아마도 연기신들이 추격전을 통해 느꼈던 그 노동의 강도로 쉬지 않고 달려왔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노동의 진정성들은 우리에게 부지불식간에 방송을 통해 조금씩 느껴졌을 것이다. 연기신들조차 <무한도전>의 팬임을 자처하게 되는 건 그들마저 놀라게 만드는 제작진과 출연자들의 남다른 노력이 쌓여진 결과다. 이러니 팬이 될 수밖에.

<라스> 박나래, 웃음을 위해 그 누가 이만큼 할 수 있을까

 

완전 골퍼 다리예요.” 등장과 함께 뜬금없이 박나래에게 던진 김구라의 요청에 그녀는 골프 스윙을 보여주고는 손으로 엉덩이를 찰싹 때리는 특유의 세리머니를 선보인다. 역시 박나래다. 등장부터가 남다르다. 조금 어색할 듯도 싶지만 시키면 시키는 대로 뭐든 웃음으로 살려낸다.

 


'라디오스타(사진출처:MBC)'

MBC <라디오스타>에 박나래가 다시 나온 건 이전에 이 프로그램에 나왔을 때 던졌던 양세찬에 대한 짝사랑 이야기를 이어가기 위함이다. 이 날 방송에는 박나래의 옆에 박나래의 남자, 제대로 똥 밟은(?)’ 양세찬이 앉아 있었고, 그 옆에는 연적(?) 설정으로 장도연이 그리고 그 옆에 이 모든 사건(?)을 목격해온 양세찬의 형 양세형이 앉아 있었다.

 

박나래가 등장과 함께 골프 세리머니로 웃음을 주자 김구라는 그녀의 웃음을 자판기에 비유하며 “(동전을) 넣으면 커피가 나온다고 즐거워했다. 대세 개그우먼답게 병신년이 잘 어울리는 여자 연예인 미녀개그우먼 박나래입니다라는 인사 한 마디에도 기분 좋은 웃음을 주는 그녀였다.

 

김구라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박나래에게 윤종신이 설에 인사 한 번 가라고 하자 아예 그 자리에서 테이블 위에 올라 세배를 올리는 모습은 웃음을 위해서는 거리낌이 없는 그녀의 진심을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사실 제 아무리 개그우먼이라고 해도 여자로서 감추고 싶은 것들도 있게 마련이지만 이 날 박나래는 양세찬을 짝사랑했던 그 에피소드들을 모두 도마 위에 올려도 괜찮다는 쿨한 모습이었다.

 

박나래가 좋아한다는 말에 똥 밟았다고 했다는 양세찬의 이야기에 대해서도 그녀는 유쾌하게 받아주었다. 심지어 나는 똥이에요라고 말하고, 그걸 웅변으로 풀어보라는 김구라의 요청에도 피하는 일이 없었다. 결국 박나래의 이런 자세가 그 날 나온 양세찬, 절친인 장도연 그리고 양세형까지 존재감을 만들어내게 해주었다.

 

특유의 19금 개그는 그녀가 의도하지 않아도 캐릭터에 의해 만들어지기도 했다. 장도연이 김구라에게 호감을 표하는 모습을 슬쩍 보이자 서로 두 사람을 이어주려고 부추기는 와중에 박나래가 아무 뜻 없이 저런 사람들이 잘해요라고 툭 던진 말이 19금으로 해석되어 큰 웃음을 주었다. 오해라며 여자한테 잘 한다는 뜻이라고 손사래를 쳤지만 그 당황한 모습마저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그녀였다.

 

양세찬과 혹시 결혼하게 되면 박나래가 술 취해 동그랑땡 부치는 모습이 너무 꼴불견일 것 같다며 웃음을 준 양세형의 이야기에도 그녀는 심지어 그 모습을 막간 콩트로 보여주기도 했다. 양세형이 던지는 한 마디 한 마디가 빵빵 터질 수 있었던 것도 사실 따지고 보면 박나래가 쿨하게 자신을 모두 이야기의 도마 위에 올려놨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만일 그녀가 이 모든 불편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불편하게 받아들였다면 어땠을까. 자칫 잘못하면 그 상황 자체가 불편한 모습으로 비춰질 수도 있는 일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박나래가 스스로 이를 기꺼이 즐겁게 받아들이자 출연자들은 물론이고 시청자들 또한 유쾌한 방송이 가능해졌다.

 

<무한도전>에 깜짝 출연했던 잭 블랙은 대스타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신의 모든 걸 내려놓은 듯한 모습으로 큰 웃음을 주었다. 그 모습은 웃음 그 이상의 감동을 주기도 했다. 코미디언의 진심이 거기서 느껴졌기 때문이다. <라디오 스타>에서 보인 박나래의 모습은 마치 그 웃음을 위해 뭐든 다 받아주는 잭 블랙을 연상시켰다. 이러니 잘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대세 개그우먼이라는 말이 그냥 붙은 게 아니라는 걸 그녀는 다시금 확인시켜 주었다

<개콘>의 대항마로 떠오른 <코빅>, <웃찾사>

 

<개그콘서트>10%대 이하의 시청률로 떨어졌다는 사실은 이미 어느 정도는 예고됐던 일이다. 시청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했으며 화제성도 현저히 떨어지고 있어 이미 여러 차례 위기론이 등장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굵직한 간판스타 개그맨이 배출되지 않은 점도 그렇다. 세대교체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건 <개그콘서트>처럼 소비 속도가 빠른 예능에는 치명적인 일이 되었다.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하지만 이를 부정적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즉 지금껏 <개그콘서트>가 독점하듯 코미디 프로그램의 대명사처럼 자리한 것이 코미디 전체에도 그리 바람직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개그콘서트>에도 결과적으로는 좋은 일이 아니다. 어떤 식으로든 긴장감을 갖고 서로 경쟁하는 체제를 갖는 것이 코미디 전체의 생명력을 강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과거 공개 코미디 전성시대에 <개그콘서트><웃음을 찾는 사람들> 그리고 <개그야>가 삼국지를 이룬 것처럼, <개그콘서트>가 주춤하는 사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웃찾사><코미디 빅리그>는 이제 새로운 개그삼국지를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주말로 시간대를 옮겨 본격적으로 <개그콘서트>와 대결을 벌이고 있는 <웃찾사>역사 속 그날이나 뿌리 없는 나무같은 오래도록 자리한 코너는 물론이고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남자끼리’, ‘불편한 복남씨’, ‘내 친구는 대통령같은 코너들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웃찾사>가 배출한 개그맨들에 집중도도 높아졌다. “재훈 재훈으로 유행어를 만든 남자끼리의 이은형이나 배우고 싶어요에 이어 이야로 새로운 개그의 영역을 열어가는 안시우, ‘백주부TV’에서 빅마마 분장으로 나와 주목을 끌고 있는 홍윤화 등이 그들이다.

 

<코미디 빅리그>는 케이블이라는 플랫폼이 가진 장점을 잘 발휘해 조금은 강한 코미디들이 시도되면서 꽤 탄탄한 마니아층을 확보해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여기서 배출된 이국주나 박나래, 장도연 같은 개그우먼들이 예능에서 맹활약하면서 일반 시청자들에게도 조금씩 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코너들도 꽤 탄탄하다. ‘여자사람친구의 망가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장도연의 연기나, ‘중고나라에서 매번 새로운 인물로 깜짝 분장을 하고 나타나 큰 웃음을 주는 박나래, ‘깝스의 황제성이나 깽스맨의 양세형 그리고 작업의 정석같은 코너에서는 개그맨 뺨치는 관객들이 매주 등장하는 등 그 웃음의 강도도 역시 높다.

 

<웃찾사><코미디 빅리그>가 이처럼 최근 들어 그 프로그램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건 어쩌면 절대강자로 군림하던 <개그콘서트>가 조금씩 내준 자리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개그콘서트>에 위기론이 자주 언급되는 건 이제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 위기를 새로운 경쟁력을 만들어내는 기회로 활용한다면 <개그콘서트>는 물론이고 <웃찾사><코미디 빅리그>까지 새로운 개그의 전성기를 불러올지도 모른다. 공개 코미디가 경쟁시스템을 바탕으로 세워진 것처럼, 이제 개그 프로그램들 역시 새로운 경쟁 체제 하에서 상생의 길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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