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폰>, SF 스릴러가 이렇게 토착적인 느낌을 주는 까닭

 

우리에게 SF 스릴러는 어딘지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어울리는 어떤 것처럼 여겨지는 면이 있다. 그만큼 많이 시도되지도 않았고 시도됐다고 해도 할리우드를 따라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게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더 폰>은 적어도 이런 전형적인 궤도에서는 벗어나 있다. 꽤 촘촘히 짜여진 구성으로 SF와 스릴러가 잘 엮어져 있는데다가 시간을 중첩시키는 편집도 괜찮다.

 


사진출처:영화<더 폰>

하지만 무엇보다 <더 폰>의 성취라고 한다면 SF 스릴러라는 낯선 장르가 꽤 토착적인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청계천과 종로 뒷골목에서 추격전이 벌어진다는 사실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 아니고 거기에는 우리네 정서를 자극하는 범죄물의 코드들이 담겨져 있고 무엇보다 가족이라는 끈끈함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 이런 토착적인 느낌은 이 영화에 대한 몰입을 높여준다.

 

<더 폰>의 설정은 그리 새로운 건 아니다. 해외의 SF 스릴러물이나 국내의 웹툰 등에서 종종 봐왔던 시간의 중첩(과거와 현재가 연결되는 것)이 이 영화의 핵심적인 장치다. 1년 전 살해당한 아내 연수(엄지원)에게 1년 후 전화가 오면서 그 남편 고동호(손현주)가 과거를 되돌려 현재를 바꾸려고 뛰고 또 뛰는 것. 이렇게 한 줄로 설명하면 어딘가 뻔해 보이지만 실제 영화는 훨씬 더 긴박감이 넘친다. 게다가 이 첫 번째 SF 설정은 이야기가 진전되어가면서 다양한 방향으로 변주하며 반전에 반전을 일으킨다.

 

과거의 결과가 바로 현재에 변화를 준다는 점에서 그 교차 편집은 이 영화가 가진 스릴러의 긴박감을 높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즉 과거의 일들이 벌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현재 어떤 일들을 해야할 것인가 하는 점과, 과거의 일로 인해 현재 겪게될 것들을 어떻게 미연에 방지해낼 것인가 하는 점들이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교차편집을 통해 효과적으로 중첩되어 있다는 점이다. 클라이맥스의 액션 역시 과거와 현재가 겹쳐지며 벌어진다는 점에서 그 효과도 두 배로 다가온다.

 

하지만 이런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스릴러 요소들보다 더 강력한 힘을 만드는 건 부부인 연수와 고동호가 전화를 통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며 어떻게든 복원해내려고 하는 가족이라는 틀이다. 이들은 1년 이라는 시간으로 떨어져 있지만 서로를 도우며 자신을 대신 희생하려고까지 한다. 그러면서 차츰 깨닫는 건 평상 시 자신이 소홀해왔던 가족의 소중함이다.

 

<더 폰>이라는 한국형 SF 스릴러를 이처럼 토착적인 느낌으로 만들어내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연기자는 단연 손현주다. 이미 드라마 <추적자>를 통해 가족을 위해 뛰고 또 뛰는 가장연기로 한국의 리암 니슨이라는 별칭을 얻은 그가 아닌가. 평범했던 가장이 점점 사건 속으로 깊숙이 뛰어들어 살인자와 대적해가는 과정은 손현주라는 배우에 의해 훨씬 더 현실적인 느낌으로 그려졌다.

 

사실 SF와 스릴러가 연결되어 있는 것도 이색적이지만 거기에 한국형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도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이 그저 무리한 장르의 퓨전만이 아니고 꽤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고 그것이 효과적인 시너지를 내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역시 손현주라는 믿고 보는 배우가 있다



<세결여>, 김수현 작가의 한계와 저력

 

왜 김수현 작가는 채린(손여은)과 임실댁(허진)을 선택했을까. <세 번 결혼하는 여자(이하 세결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은수(이지아)와 현수(엄지원). 이것은 드라마 제목에도 들어가 있고(세 번 결혼할 여자가 바로 은수니까), 드라마의 등장인물 소개란에 맨 앞자리에 이들이 소개되고 있다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채린과 임실댁은? 등장인물 소개란에서도 맨 끄트머리에 들어있을 정도로 이 작품에서 애초부터 비중이 있는 인물들은 아니었다.

 

'세 번 결혼하는 여자(사진출처:SBS)'

하지만 지금 현재 <세결여>를 보면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 마치 바뀐 듯한 느낌마저 든다. 물론 은수와 현수의 이야기가 여전히 주제이기는 하지만,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동력은 이들이 아니라 채린과 임실댁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채린이라는 계모가 슬기(김지영)가 친엄마를 만난다는 것에 격분하고 아이를 다그치며 심지어 녹음기를 부수고 아이를 때리기까지 하는 아동학대를 저지르면서부터 드라마는 조금씩 시청률에 탄력을 받았다.

 

채린은 이제 비뚤어진 계모의 수준을 넘어 거의 미저리가 되어가고 있다. 격분해 시어머니나 시누이에게조차 반말로 대드는 장면은 비정상적인 이 캐릭터의 면면을 제대로 보여준다. 채린과 슬기가 함께 서 있으면 마치 공포영화 같은 긴장감이 만들어지는 건 이 캐릭터의 막장 행보가 이미 시청자들에게 깊이 각인되어 있다는 증거다.

 

채린이 극한으로 치달을 때마다 슬기를 보호해주고 때로는 채린에게 잔소리를 해대기도 하는 임실댁이 주목을 받는다. 임실댁은 어찌 보면 이 마녀들의 공간 같은 최여사(김용림)네 집에서 거의 유일하게 숨 쉴 수 있는 여유를 만들어내는 인물이다. 임실댁과 최여사의 딸 정태희(김정난)는 슬기를 지켜준다는 측면에서 드라마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인물들이다.

 

주인공들과 조연들의 존재감이 뒤집어지게 된 것은 초반 부진을 금치 못했던 이 작품의 시청률과 무관하지 않다. <세결여>는 김수현 작가의 작품답지 않은 몇 가지 선택들을 보여주었다. 그 첫 번째는 세 번 결혼한다는 새로운 결혼세태를 제목에까지 집어넣고도 처음부터 확실한 파격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이다. 은수가 딸을 버리고 재혼을 한 설정은 파격으로 다가오지 못했고 오히려 담담하게 그려졌다.

 

이런 행보는 과거 <내 남자의 여자> 같은 작품에서 첫 회부터 불륜을 드러내는 파격을 보였던 것과는 사뭇 다른 선택이다. 김수현 작가 정도라면 불륜 같은 소재도 끝까지 밀어붙여 그 안에서 어떤 삶의 메시지를 포착해내는 일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김수현 작가는 <세 번 결혼하는 여자>를 다루면서 이런 과감한 모습을 처음부터 보여주지 못했을까. 어딘지 어정쩡한 선택은 <세결여>가 초반에 힘을 발휘하지 못한 가장 큰 패착의 원인이 되었다.

 

두 번째는 세 번 결혼하는 역할로 이지아라는 배우가 캐스팅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이지아의 상황은 이번 역할과 어울리는 면이 있었을 것이다. 서태지와의 숨겨진 결혼이라는 사실이 그녀의 족쇄처럼 작용하고 있으니 드라마를 통해 결혼과 이혼에 당당해지고 초연해지는 모습은 이지아라는 배우의 성장 그 자체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지아가 초반에 어쩐 일인지 얼굴이 잔뜩 부어 표정 연기가 거의 나오지 않는 상황이었다는 점이다. 물론 최근에는 그 붓기가 빠져서 훨씬 자연스러운 연기가 나오고 있지만 초반의 이 무표정은 드라마의 힘을 상당 부분 뺀 것이 사실이다. 캐스팅에 있어서도 연기자들의 연기에 있어서도 철두철미하기로 유명한 김수현 작가의 선택치고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은수 역할의 이지아는 주인공인데다 그나마 드라마의 핵심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여전히 비중이 높지만, 현수 역할의 엄지원은 거의 감초 역할처럼 비중이 줄어들었고, 은수의 전남편인 태원(송창의) 역시 답답할 정도로 수동적인 느낌을 주는 들러리에 머물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준구(하석진)라는 인물이나 박주하(서영희) 그리고 한때 한참 극성을 끌어올리던 또 다른 막장 캐릭터 다미(장희진)는 드라마에서 거의 비중이 사라져버렸다. 이런 균형 잡히지 않은 캐릭터 운용 또한 김수현 작가의 작품 치고는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소한 것일지 모르지만, 손보살(강부자)이 등장할 때마다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방안을 돌아다니는 로봇청소기의 노골적인 PPL 또한 어울리지 않는 선택이다. 손보살이 방에 들어와 로봇청소기의 버튼을 누르는 장면은 너무 의도적이라 실소가 나올 정도다. 보통은 소음 때문에 사람들이 없을 때 눌러 놓기 마련인 로봇청소기를 공공연히 드러내는 PPL이라니.

 

놀라운 일은 이런 수많은 엇나간 선택들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중심에 세워놓은 채린과 임실댁이라는 선택으로 상당한 화제와 시청률을 끌어 모았다는 점이다. 이것은 아마도 김수현 작가가 가진 저력을 말해주는 일일 게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필요하면 시청률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노장의 작가가 많은 희생들이 필요하기 마련인 이러한 시청률을 위한 선택을 했다는 것도 의외의 일로 느껴진다.

 

물론 드라마의 극성을 끌어올리는데 능수능란한 다른 작가가 이런 일련의 선택들을 했다면 그러려니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작가도 아니고 김수현 작가가 아닌가. 국내 드라마의 기틀을 마련한 작가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그녀의 작품이나 행보는 후배 작가들에게 귀감이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세결여>의 많은 선택들은 김수현 작가의 한계와 저력을 동시에 보게 된다는 점에서 아쉬운 마음이 앞선다.

 

아마도 김수현 작가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시간은 앞으로 그다지 많이 남지는 않았을 것이다. 모쪼록 김수현 작가다운 의미 있는 작품들을 그 남은 시간 동안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앞으로도 이 대작가 앞에 많은 이들이 존경을 표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 남은 시간들 동안 김수현이라는 작가의 유종의 미를 느낄 수 있기를.

임창정표 로맨틱 코미디, '불량남녀'

‘불량남녀’에서 임창정은 여타의 작품에서 늘 그래왔듯이 어딘지 궁지에 몰리는 사내다. 강력계 형사로 칼과 주먹이 난무하는 폭력의 현장에서도 굳건히 살아가지만, 30분마다 울려대는 빚 독촉 벨소리에 신경 쇠약 직전에 놓인다. 신용사회에서 신용불량자들이 겪는 현실적인 고충은 실로 묵직한 것이지만, 이런 아픔이 풍자가 뒤섞인 코미디로 전화될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임창정의 공이다. 그는 그저 조금 맥 빠진 얼굴로 서 있기만 해도 웃음이 터져 나오게 하는 능력을 지녔다. 그것도 진한 페이소스가 묻어나는.

‘불량남녀’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사회적인 메시지에 로맨틱 코미디가 엮여있다. 자본주의 사회가 가진 피도 눈물도 없는 돈에 대한 집착은 하나의 시스템이 되어 있고, 그 시스템 위에 김무령(엄지원)은 빚 독촉하는 카드사 채권팀 사원으로 살아간다. 김무령은 살아가기 위해 독하게 신용불량자 방극현(임창정)을 달달 볶아댄다. 그래서 이 시스템 위에서는 두 남녀가 불량한 존재들이 된다. 하나는 신용이 불량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성이 불량이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이 두 불량한 존재들이 서로 실체로서 마주할 때이다. 전화상으로는 마치 기계와 얘기하듯 극한 말들이 오고가지만, 서로 눈을 마주치고 서 있을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거기에는 자신이 칼침 같은 독한 말을 던지는 상대가 인간으로 버젓이 서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영화 속의 두 불량한 남녀가 시스템 속에서 서로의 실체를 모른 채 돈을 매개로 칼침 같은 말을 던지다가, 차츰 서로를 알아가고 사랑하게 되는 과정은 멜로의 과정이면서도 시스템을 고발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30분마다 독촉 전화로 지긋지긋해진 전화기는 이제 서로가 서로를 알게 되면서 그 벨소리를 기다리게 되는 전화기로 바뀐다. 사라진 그녀의 목소리를 기다리는 일은 이제 방극현이라는 강력계 형사에게는 범죄자들의 격투보다 더 힘겨운 일이 된다. 전화기에 대한 달라진 방극현의 태도는 이 영화가 가진 미디어에 대한 풍자까지를 담아낸다. 편리해진 통신수단 위로 날아드는 무수히 많아진 스팸들이 우리의 신경을 곤두세우게 하는 것은 아마도 거기에 인간적인 마음이 거세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말과 통신수단이 매개하며 발생하는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는 방극현과 김무령의 만남에서부터 사랑의 결실이 이루어지는 클라이맥스에 이르기까지 진지하면서도 코믹하게 전개된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임창정만이 가진 독특한 매력 덕분이다. 어딘지 B급 같지만 그래도 잡아당기는 힘이 있고, 그래서 그다지 큰 기대 없이 보게 된 후에는 의외로 꽤 재미있었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것. ‘불량남녀’는 그 임창정만의 매력이 한껏 발산된 영화다.

극중에서 마지막 프로포즈 장면을 구경하기 위해 달려온 한 여고생은 "그런데 남자가 좀 더 잘생겼으면 좋았을 걸"하고 말한다. 바로 이 장면은 '불량남녀'라는 영화와 임창정이라는 아이콘이 어떻게 만나는지를 정확히 설명해준다. 사실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으로서 임창정은 여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할 정도의 외모를 갖추지는 못했다. 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불량남녀' 같은 어딘지 소외된 이들의 사랑이야기에 임창정 만큼 어울리는 인물도 없다. 그저 바라보면 어딘지 '불량(?)'해 보이지만 보면 볼수록 인간적인 매력이 넘쳐나는. '불량남녀'는 그런 임창정이기에 가능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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