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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된 남자’의 성공비결, 파격을 끌어안은 연출과 연기

tvN 월화드라마 <왕이 된 남자>가 종영했다. 결론은 해피엔딩. 왕이 된 광대 하선(여진구)을 위협하던 진평군(이무생)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이규(김상경)의 칼에 맞고 대비(장영남)에게 버려져 처참한 죽음을 맞이했고, 신치수(권해효)는 하선의 칼에 죽었으며, 대비 역시 하선에 의해 폐모된 후 사약을 받았다. 하선은 기성군(윤박)에게 선위하고 궁을 떠났고, 대비의 원수를 갚으려는 무리들에게 공격을 받았지만 끝까지 그를 지킨 장무영(윤종석)의 희생으로 목숨을 지킬 수 있었다. 그리고 2년 후 중전 소운(이세영)과 꿈같은 재회를 한 하선은 함께 손을 잡고 갈대밭을 걸어 나갔다. 

하선이 모든 궁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본래 자신의 위치로 돌아가는 엔딩이었지만 다소 급하게 마무리된 듯한 느낌을 주는 건 어쩔 수 없다. 그건 <왕이 된 남자>라는 사극이 가진 파격이 워낙 컸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파격은 이 드라마가 가진 장점이자 취약점이기도 했다. 다행스러운 건 이 취약점을 드라마의 연출과 연기가 장점으로 바꿔놓았다는 것. 

<왕이 된 남자>가 파격인 건, 원작인 영화 <광해>와 너무나 다른 길을 걸었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원작 영화 <광해>는 제목부터 실존 임금의 이름을 붙였기 때문에 스토리 전개에 있어 지켜야할 역사적 사실의 선 같은 게 존재했다. 그래서 다소 안전한 선택 안에서 영화적 재미를 만들었던 것. 하지만 드라마 <왕이 된 남자>는 달랐다. 실존 임금의 이름을 떼어내고 역사와 거리를 두면서 드라마는 원작과는 다른 파격의 길을 걸었다. 

그 첫 번째 파격은 실제 왕을 죽이는 신하의 이야기를 선택했다는 점이다. 광대를 진짜 왕으로 옹립시키고, 자신이 꿈꾸던 정치를 펴려는 이규의 욕망은 어찌 보면 ‘왕위 찬탈’과 ‘국정 농단’의 하나로도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주인공인 하선이나 이규의 이런 파격적인 선택이 부정적인 느낌을 주지 않기 위해서는 그만한 연출과 연기가 더해져야 가능한 일이다. 

다행스럽게도 이 파격은 여진구의 폭군과 선한 광대를 넘나드는 연기와 김상경의 잔혹한 선택 뒤에 존재하는 백성을 위한 마음을 이해시키는 연기를 통해, 또 김희원 PD 특유의 유려한 연출을 통해 시청자들을 설득시킬 수 있었다. 

두 번째 파격은 하선이 광대라는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신치수나 대비 앞에서 당당히 대적해가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다. 실제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하선은 조금씩 광대놀음에서 진짜 왕이 되어가는 면모를 보여줬고, 그래서 중전 소운의 마음도 또 이규의 마음도 얻었다. 이런 파격적인 변신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만든 것 역시 연기와 연출의 힘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파격은 엔딩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모든 일들이 정리되고 선위한 후 궁을 떠나는 하선의 이야기가 그렇다. 그것 역시 지금껏 그 어떤 사극에서도 보기 힘든 파격이었지만 의외로 선선히 받아들여졌다. 물론 너무 많은 파격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를 정리하는 마지막회의 안간힘은 다소 급하게 돌아간 느낌을 줬지만, 그래도 이 정도의 마무리를 해냈다는 건 나름의 성공이라고 볼 수 있다. 

파격은 자칫 잘못하면 사극이 가진 유려한 틀을 깨버리는 취약점이 될 위험성이 있었다. 파격적 사건들이 마구 전개되다 보면 마치 막장 같은 뉘앙스를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왕이 된 남자>의 파격은 그렇지 않았다. 그것을 실제처럼 몰입감 높게 연기해준 연기자들이 있었고, 이를 튀지 않고 우아하게 그려낸 연출이 있었다. 따라서 파격은 취약점이 아니라 극성을 높여주는 강점으로 바뀌었다. 

이헌(여진구)이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한 하선에게 “제대로 놀지 못하겠느냐?”하고 일갈하던 장면을 떠올려보면, 이 드라마는 확실히 한 판 제대로 논 듯한 인상을 준다. 진짜는 아니지만 진짜 같았고, 그래서 진짜였으면 하는 마음을 갖게 만들 정도로 잘 논 한 판. 이건 어쩌면 이제 사극 같은 ‘역사’를 갖고 ‘노는’ 드라마들이 취해야할 선택이 아닐까 싶다. 파격이라도 어떻게 잘 노느냐에 따라 시청자들의 마음을 잡아끌 수 있으니.(사진:tvN)

Posted by 더키앙

‘왕이 된 남자’, 원작과 달라진 팽팽한 대결구도

그저 또 다른 멜로 사극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닌가 했다. 하지만 그 멜로가 만들어낼 팽팽한 대립구도가 원작과는 또 다른 이야기를 예고했다. 


tvN 월화드라마 <왕이 된 남자>는 원작 <광해>가 그랬던 것처럼 광대인 하선(여진구)이 시시각각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약에 중독된 폭군 이헌(여진구)을 대신해 왕 노릇을 하며 생기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폭군 이헌과는 너무나 다른 착한 성정을 가진 하선이 백성들을 위한 선정을 펼치는 대목은 <광해>에서도 그랬지만 <왕이 된 남자>의 중요한 재미 포인트다. 

공납을 쌀로 할 수 있게 바꾸려는 대동법 시행을 두고 이를 막으려는 신치수(권해효)와 그 무리들과 맞서며 셈이 빠른 주호걸(이규한)을 통해 비리를 찾아내는 대목은 통쾌한 사이다를 선사한다. 신치수는 자신의 잘못이 드러나게 될 위기에 처하자 꼬리를 자르듯 호조의 잘못으로 몰아붙이고, 주호걸을 살인교사하려 했던 그의 아들 신이겸(최규진)의 죄 역시 공신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사면될 거라는 걸 알게 된 하선은 이규(김상경)의 계략대로 신하들이 보는 앞에서 신치수에게 신이겸의 회초리를 치라는 벌을 내려 치욕을 안긴다. 

하지만 그런 백성의 입장으로 하는 ‘왕 노릇’의 사이다만큼 <왕이 된 남자>에서 좀 더 강화된 부분은 하선과 중전 유소운(이세영)과의 멜로다. 모략에 의해 유소운의 아버지 유호준(이윤건)이 죽을 위기에 몰렸을 때 하선은 그를 구해줬고, 궁에서 의지할 데 없이 홀로 버티고 있는 중전에게 조금씩 빠져들었다. 동생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잠행을 나왔다가 우연히 피접을 나온 유소운을 만난 하선은 함께 중양절을 맞은 저잣거리에서 서로의 애틋한 마음을 확인한다. 

그런데 이 멜로구도는 약에 중독되어 치료를 받던 진짜 왕 이헌이, 그를 오라비라 착각한 하선의 동생에 의해 풀려나 저잣거리로 나오고 두 사람이 마주하는 장면을 통해 팽팽한 대결구도로 바뀌었다. 유소운의 손을 잡고 있는 하선을 보는 이헌의 눈빛은 분노로 이글거리며 향후 하선이 맞게 될 고난을 예고했다. 

결국 이 장면은 멜로구도가 향후 하선과 이헌이 벌이게 될 ‘왕좌의 게임’을 더 치열하게 만들 거라는 걸 예고하는 게 아닐까. 왕이 되고 싶다기보다는 유소운이 처한 비극을 그냥 두고 보기 어렵게 된 하선의 결단과 행동이 이어질 거라는 점이다. 실제로 예고편에서 살짝 보여진 궁 밖으로 내쳐진 하선과 궁으로 돌아와 유소운과 강제로 관계를 맺으려 하는 이헌, 그래서 다시 궁으로 돌아가겠다 외치는 하선의 모습은 향후 이 사극의 전개가 그저 달달한 멜로로만 가지 않을 거라는 걸 보여줬다. 

어차피 ‘광해’라는 실존 인물의 딱지조차 떼어버린 리메이크 작이다. 그러니 역사의 사실적 틀에 얽매이기보다는 좀 더 과감한 하선과 이헌의 대결을 그려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이미 하선과 유소운의 애틋한 관계가 깨지지 않길 바라는 시청자들은 하선이 왕좌를 차지하고 멜로는 물론,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푸는 모습을 보길 기대하고 있다. 과연 <왕이 된 남자>는 원작과는 다른 과감한 이야기로 나갈 수 있을까. 자못 궁금해지는 대목이다.(사진:tvN)


Posted by 더키앙

‘왕이 된 남자’는 여진구에게 제대로 연기의 판을 깔아줬다

영화 <광해>로 연기력 확장을 입증했던 이병헌을 보는 듯하다. tvN 월화드라마 <왕이 된 남자>의 여진구 이야기다. 그런데 이렇게 된 것이 그저 우연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것은 <왕이 된 남자>가 가진 이야기가 여진구라는 연기자의 잠재력을 끄집어내는 특별한 힘을 발휘하고 있어서다. 그건 바로 여진구가 연기하는 하선이라는 광대 캐릭터에서 비롯된다. 


하선(여진구)은 가면을 쓰고 당대의 시국을 연기로 풍자하곤 하던 광대다. 얼굴이 왕 이헌(여진구)과 같다는 이유로 암살위협을 받는 왕 대신 왕좌에 앉아 왕을 연기한다. 하선을 그 자리에 앉힌 건, 점점 잔혹해지고 정신을 놓고 있는 이헌에게 그래도 충성하던 이규(김상경)다. 이규는 이헌을 모처에 옮겨 놓고 마약에 중독되고 환청에 시달리는 그를 회복시키려 한다. 

하선과 이헌은 그 성격이 극과 극이다. 이헌은 자신이 살기 위해 자신을 따르던 경인대군마저 죽게 만들고, 그것은 내내 그의 악몽으로 되돌아온다. 심지어 장인마저 죽이라 명하는 포악함을 보이지만, 그 포악함은 그의 유약함이 만들어내는 공포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하지만 하선은 이헌과는 달리 죽을 지라도 ‘인간다운 선택’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인물이다. 그건 어쩌면 광대라는 직업과 무관하지 않을 게다. 광대는 결국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 감정이입을 통해 연기를 하는 이가 아닌가. 

물론 1인2역은 같은 연기자가 얼마나 상반된 모습을 연기해내는가를 통해 그 연기공력을 드러내게 해주는 장치일 수 있다. 하지만 <왕이 된 남자>에서 여진구의 연기가 남다르게 보이는 건 단지 1인2역을 하고 있어서가 아니다. 그것보다는 하선이라는 광대의 직업적 특성이 여진구의 연기에 대한 몰입을 더 극대화시켜주고 있어서다. 

영화 <광해>에서 이병헌이 그랬듯이, <왕이 된 남자>에서 여진구는 왕을 연기하다 점점 왕이 되어가는 광대를 연기한다. 그것은 연기자가 어떤 역할에 빠져들어가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궁에 들어와 이헌의 역할을 연기하던 하선은 차츰 왕이라는 자리가 만들어내는 역할들을 조금씩 해나간다. 자신의 누이동생 달래(신수연)가 신치수(권해효)의 아들 신이겸(최규진)에게 욕보였다는 사실을 알고 생겨난 복수심은 그 몰입을 더 강화시킨다. 또 궁에서 만난 중전(이세영)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그를 지키려는 행보 역시 하선을 그저 왕 연기에서 점점 왕처럼 몰입시키는 힘을 부여한다.

즉 <왕이 된 남자>는 폭군을 대신해 왕이 된 광대가 궁에 적응해가며 진짜 왕이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해내는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여진구라는 연기자(광대)가 왕 역할에 조금씩 빙의되어가며 나중에는 온전한 왕에 몰입하는 그 과정을 담고 있기도 하다. 중전을 구할 증좌를 갖고도 그를 구하기보다는 대비를 몰아낼 생각을 하는 이규에게 하선이 “비단옷 차려입고 권세를 누리면 뭐합니까? 짐승만도 못한 생각만 가득 차 있는데! 사람다운 생각은 조금도 못하는데!”라고 일갈하는 장면은 하선의 변화를 잘 보여준다.

자신이 죽게 한 경인대군의 목소리가 자꾸만 들린다며 제 귀를 찔러버린 이헌을 보고 그가 다시 왕으로 돌아올 수 없게 되었다는 걸 알게 된 이규는 결국 하선을 벼랑 끝으로 데려가 칼을 꽂고 “광대 하선은 죽었다. 이제 네가 이 나라의 임금이다.”라고 선언한다. 이제 온전히 하선이 왕의 위치에 서서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단계로 들어서는 장면이다. 연기의 관점으로 보면 여진구라는 배우가 한 걸음 더 왕 역할 깊숙이 들어가는 장면이기도 하다.

여진구는 <해를 품은 달>, <뿌리깊은 나무>, <무사 백동수> 등에서 아역으로 등장해 주목받은 배우다. 사극과의 인연은 그래서 그 후에도 <대박>이나 영화 <대립군> 같은 작품으로 이어진 바 있다. 하지만 아역이 성인역으로 넘어오는 과정은 모든 연기자들에게 쉽지 않은 일이다. 실제로 성인 역할을 하며 출연했던 드라마들에서 여진구는 도전적이었지만 그만한 성과를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그런 그에게 <왕이 된 남자>는 확실한 한 판 무대를 열어주고 있다. 잘하면 살판이고 못하면 죽을 판이라는 남사당패 광대들의 대사들이 그의 입을 통해 전해질 때, 그가 지금 하고 있는 연기의 절절함 또한 그만한 진정성으로 전해진다. 그는 이렇게 깔린 판 위에서 광대가 왕이 되는 신명 나는 한 판 연기의 세계 속으로 시청자들을 빠져들게 하고 있다.(사진:tvN)



Posted by 더키앙

지난 정권의 비선실세, ‘왕이 된 남자’가 새롭게 보이네

“이놈! 제대로 놀지 못하겠느냐?” 폭군 이헌(여진구)이 내리는 불호령에 광대 하선(여진구)은 마치 진짜 왕이 된 듯한 목소리로 “이놈! 제대로 놀지 못하겠느냐?”라고 똑같이 외친다. 그 순간 이헌은 광기와 희열이 교차하는 웃음을 터트린다. 마치 거울을 앞에 두고 있는 것처럼 똑같은 얼굴을 한 두 사람. 하지만 둘의 표정은 사뭇 다르다. 하나는 웃고 있지만 다른 하나는 당혹스런 얼굴이다. 

이 한 장면은 tvN 새 월화드라마 <왕이 된 남자>가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담을 것인가를 압축해 보여준다. 자객의 습격으로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인 채 용상을 지키고 있는 이헌은 도승지 이규(김상경)에게 자신이 살 방도를 찾아 달라 요청하고, 이규는 우연히 마주하게 된 하선을 통해 그 방도를 찾는다. 이헌의 대역으로 하선을 세우는 것.

저잣거리에서 탈을 쓰고 왕을 풍자하며 한바탕 광대놀음을 하며 살아온 하선은 진짜 왕의 대역을 맡게 됨으로써 일생일대의 광대놀음을 하게 됐다. 어차피 살 판 아니면 죽을 판이라며 위험할 수 있는 나라님을 갖고 놀기도 했던 하선이었다. 만석꾼 김진사(유형관)네 집에서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쫓겨나게 됐던 것도 나라님을 갖고 놀았다는 사실이 빌미를 줘서다. 

하지만 하선은 그렇게 쫓겨나면서도 다시 담장을 넘어 들어가 김진사의 장독을 모두 깨고 보리굴비를 훔쳐 달아날 정도로 자유분방한 인물이다. 이제 어디서도 광대놀음을 할 수 없게 된 그들에게 하선은 차라리 큰 판 한양으로 가자 제안한다. 어차피 인생사 살 판 아니면 죽을 판 아니냐며.

우리에게 <왕이 된 남자>는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로 익숙한 이야기다. 이 리메이크 드라마가 굳이 ‘광해’라는 실제 역사 속 왕의 이름을 지워버린 건, 역사적 사실에 얽매이지 않고 좀 더 자유로운 이야기를 전개하려는 뜻일 게다. 2012년 개봉해 1200만 관객을 동원한 <광해, 왕이 된 남자>는 일찌감치 충분히 드라마화 될 수도 있는 작품이었지만, 지난 정권에서는 이 영화가 곱게 보이지 못했던 모양이다. CJ가 그 박근혜 정권 시절 유독 힘들었던 이유로 이 영화가 지목되기도 했으니 말이다. 

지금 <왕이 된 남자>가 다시 드라마로 만들어진다는 건 그래서 그 자체로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비선실세니 꼭두각시니 하는 이야기들이 나왔던 지난 정권은 <왕이 된 남자>의 이야기를 또다시 새롭게 다가오게 만든다. 과연 <왕이 된 남자>는 지난 정권을 지났던 우리의 경험들을 더해 영화와는 또 다른 감흥을 우리에게 전해줄 것인가. 물론 이 왕을 대역한다는 소재 자체가 이미 남다른 의미로 다가오고 있지만.

이 작품에서 1인2역을 맡게 된 여진구는 아마도 그의 인생캐릭터가 될 가능성이 높다. 1인2역의 어려움도 어려움이지만, 작품이 갖고 있는 한바탕 ‘광대놀음’의 이야기는 그에게 연기자로서의 남다른 의미를 전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한 그의 신명나는 ‘왕 놀음’을 기대하게 하는 건, 지난 정권 동안 블랙리스트로 분류될 정도로 억눌려 오며 표현에 자유롭지 못했던 그 시대의 어둠을 벗어나 이 작품이 맘껏 놀아주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이놈! 제대로 놀지 못하겠느냐?” 왕의 으름장과 거기에 맞춰 제대로 왕이 된 양, 그 말을 외치는 광대의 그 장면은 이런 관점으로 들여다보면 의미심장하기 이를 데 없다. 권력과 예술 사이에 기묘한 긴장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왕과 광대를 마음대로 바꿔 한 바탕 놀아보는 이 드라마의 거침없는 행보와 연기인생의 새 전환점을 맞게 될 여진구를 기대한다.(사진:tvN)

Posted by 더키앙

‘현지에서’, 아쉬움 남는 현지인들과의 보다 긴밀한 접점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태국음식 요리사.’ 홍석천은 푸드트럭에 이렇게 새겨진 문구가 못내 불편했는지 ‘가장 유명한’이라는 문구를 빼달라고 했다. 바로 이 지점은 tvN 예능 <현지에서 먹힐까>가 새로운 관전 포인트로 내놓은 부분이다. 외국에 선보이는 한식이라면 간단하게 라면을 끓여도 그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지만, 그들이 늘상 먹는 팟타이를 홍석천이 태국에서 내놓는 일은 부담될 수밖에 없다. 태국에서 홍석천이 내놓는 태국음식이 과연 먹힐 것인가?

그래서 그런 제목을 달은 것이고, 그것은 이 프로그램에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윤식당>과 관전 포인트를 달리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홍석천은 첫 날부터 내놓은 팟타이에 꽤 높은 평점을 받았다. 현지인들도 그 맛이 고급 레스토랑의 팟타이 맛이라고 칭찬했다. 그런데 이렇게 홍석천이 만든 팟타이가 ‘현지에서 먹힌다’는 걸 확인하고 나는 순간부터 프로그램은 새롭게 할 이야기를 잃어버린 느낌이다.

물론 이것을 뛰어넘기 위해 <현지에서 먹힐까>는 하루 걸러 장소를 이동한다. 치앙마이에서 살짝 선을 보인 후, 님만해민에서는 손님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며 먹을 정도로 장사가 잘 됐다. 모든 재료가 소진되었고, 뒤늦게 찾아온 외국인 손님들은 내일도 여냐고 물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들은 다음 날 롭부리로 또 이동했다. 이동은 그들이 내놓는 음식이 어떤 지역에서는 먹혔을지 몰라도 다른 지역에서도 먹힐 것인가 하는 궁금증을 위해 필요하다고 여긴 장치처럼 보인다. 

메뉴도 조금씩 바뀌었다. 팟타이에서 피시케이크로 바꾸고 시작한 롭부리에서 홍석천이 만들었다는 그 메뉴도 성공적이었다. 물론 현지인들 중에는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호의적이었다. 이 정도면 홍석천이 태국에서 내놓는 요리들은 현지에서도 ‘먹힌다’는 게 증명된 셈이다. 하지만 그렇게 현지에서 먹히는 게 증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의 시청자들에게도 이 프로그램이 먹혔는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프로그램에서 관심이 가는 건 홍석천의 요리와 그 요리를 맛보는 사람들의 반응이 아니라, 여진구가 보여주는 작은 모험담들과 이른바 ‘꽃미남 마케팅’이 현지에서도 먹힌다는 사실이다. 너무 덥고 식사시간이 지나 사람들이 찾지 않던 푸드트럭에 하교하는 학생들이 등장하고, 그들의 눈에 확 뜨인 여진구의 미소가 그들을 끌어들이는 그 장면들은 요리보다 흥미롭다. 여진구가 만드는 땡모반(수박주스)이 마치 이 푸드트럭의 시그니처 메뉴처럼 느껴지는 건 그래서다. 

도대체 무엇이 어긋나 현지에서는 잘 먹히는 것이 우리네 시청자들에게는 잘 먹히지 않게 된 걸까. 그건 애초에 ‘현지에서 먹힐까’라는 관전 포인트를 내세우면서(그래서 푸드트럭이라는 콘셉트를 세우면서) 상대적으로 적게 만들어진 현지인들과의 보다 긴밀한 접점이다. 만일 계속 이동하지 않고 치앙마이의 숙소에서 지내며 같은 장소에서의 영업(?)을 계속했더라면 어땠을까.

이런 아쉬움이 남게 되는 건, 롭부리에서 아무도 푸드트럭을 찾지 않자 이민우가 시장 상인 아줌마들에게 다가갔고, 거기서 과일을 주자 푸드트럭 음식을 갖다 주면서 생겨나던 ‘친밀함’을 목격하게 되면서다. 그 상인 아줌마들이 푸드트럭에 다가와 음식을 맛보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적극적으로 홍보를 해주는 모습과, 그래서 찾아드는 다른 상인들과의 관계가 좀 더 진척되었다면 어땠을까. 마지막으로 남은 피시케이크를 할머니에게 건네는 홍석천의 모습 같은 것에서 어쩌면 이 프로그램의 해법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결국 이 프로그램이 진짜 관전 포인트로 삼았어야 할 지점은 바로 그 현지인과의 접점이고, 그 관계들이 처음에는 서먹하다가 차츰 친숙해지는 과정들 속에 어쩌면 흥미진진함이 있었을 거라는 점이다. 요리 잘하고 수완도 좋은 홍석천에 밝은 에너지가 넘쳐나는 이민우, 게다가 보고만 있어도 미소가 지어지는 꽃미남 여진구가 형제 케미를 보여주고 있어 그 조합은 더할 나위 없어 보인다. 다만 그 조합이 현지인들과 진정으로 어우러지는 모습이 아쉬울 따름이다. 우리가 보고 싶은 건 음식 솜씨가 아니라 타자가 친구가 되는 그 관계의 진전이었을 테니 말이다.(사진:tvN)

Posted by 더키앙

'현지에서 먹힐까', '홍식당'이라고 내걸어도 괜찮았을 듯

새로 시작한 tvN 예능 <현지에서 먹힐까>는 여러모로 <윤식당>의 그림자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그건 외국에 가서 음식을 만들어 외국인들에게 평가받는다는 그 형식이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첫 방에 등장하는 장면들은 그래서 <윤식당>의 그것과 장소만 다를 뿐, 큰 틀에서는 비슷한 느낌을 준다. 개업이 주는 부담감과 장보기, 음식을 만들어 현지인이 처음 맛봤을 때 나올 반응에 대한 긴장감, 그리고 드디어 첫 날 처음 마주하게 되는 손님들이 주는 설렘 등등. 

물론 <현지에서 먹힐까>가 <윤식당>과 다른 지점이 없는 건 아니다. 가장 큰 것은 한식이 아니라 현지식을 시도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태국에서 팟타이를 만들어 판다. 종주국(?) 사람들에게도 우리가 만든 현지 음식이 먹힐까 하는 점이 이 프로그램의 포인트다. 그래서 아마도 프로그램 제목을 그렇게 잡았을 게다. 

여기에 국내에 태국음식 전도사를 자칭하고 있는 홍석천이 메인 셰프로 투입되었다. 그는 전문 셰프는 아니지만 이미 여러 개의 음식점을 갖고 있고 그만큼 경험이 풍부하다. 특히 태국음식은 끝없는 공부와 노력을 통해 현지에 가까운 자신만의 노하우를 갖고 있다. 그러니 이 프로그램이 보여주는 태국 음식이 태국사람들의 입맛에도 먹히는가 하는 점은 홍석천이라는 인물이 투입됨으로써 더 흥미진진해진다.

식당이 아닌 푸드트럭이라는 점도 <윤식당>과는 다른 지점이다. 푸드트럭은 협소하고 야외 개방형이라는 점이 단점이지만, 또한 이동이 가능하고 다양한 공간에서의 영업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장점도 갖고 있다. 그래서 <현지에서 먹힐까>는 치앙마이부터 시작해 태국을 훑어 내려오며 여러 다른 공간에서의 장사 풍경들을 보여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차별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지에서 먹힐까>를 보며 <윤식당>의 잔상을 지우기는 쉽지 않다. 푸드트럭을 함께 하는 홍석천과 이민우, 여진구가 만들어가는 형제 케미 같은 나름의 재미 지점들이 충분히 있고, 첫 날 온천 유원지에서 푸드트럭을 오픈하면서 겪는 시행착오들이 향후 어떻게 개선되어가는가를 들여다보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그 이야기의 흐름은 이미 <윤식당>에서 어느 정도 봤던 패턴이다. 

같은 방송사인 tvN에서 하는 것이고, 나영석 PD와 <신혼일기>를 함께 했던 이우형 PD의 프로그램이니 <윤식당>의 노하우가 이어지는 것이 무슨 문제일까 싶지만, 시청자들로서는 비슷한 포맷을 다른 이름으로 꾸리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윤식당>의 패러디 혹은 스핀오프라는 걸 정면에 내세워 <강식당>이 탄생했듯, 홍석천을 전면에 세운 <홍식당>으로 내놓고 했다면 어땠을까. 

물론 <윤식당>이 너무 다양한 버전으로 여기저기 소비되는 것이 저어되는 일일 수 있지만, 성공한 프로그램의 스핀오프들이 다양하게 나오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닐 수 있다. <현지에서 먹힐까>는 이 프로그램만의 차별성들이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을 좀 더 어필하기 위해서는 <윤식당>과의 유사성을 먼저 끄집어내놓고 “우리는 이렇다”고 하는 편이 더 먹히지 않았을까. <윤식당>과의 고리를 어떻게 잇고 그걸 확장시키는가 하는 점은 그래서 이 프로그램이 향후 자리를 잡는 중요한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사진:tvN)

Posted by 더키앙

‘다시 만난 세계’, 왜 첫사랑의 시간을 유예시켰을까

SBS 새 수목드라마 <다시 만난 세계>는 주인공의 죽음과 부활로부터 시작한다. 고등학생이었던 성해성(여진구)가 교통사고로 죽음을 맞이하고 12년 후 학교 옥상에서 깨어나는 것. 그러니 이 드라마의 장치는 최근 들어 빈번히 장르물에서 활용되는 바로 그 타임슬립이다. 12년을 뛰어넘어 과거의 그녀 정정원(이연희)과 친구들 그리고 가족들을 다시 만남으로써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드라마. 

'다시 만난 세계(사진출처:SBS)'

물론 이 타임슬립이 갖는 장치적인 힘은 크다. 12년 전 죽었던 인물이 다시 그 모습 그대로 돌아왔기 때문에 그 때의 죽음이 자신의 탓이라 자책해온 그의 첫사랑 정정원이 갖게 될 충격과 놀라움 그리고 반가움 같은 것들이 극적인 힘을 발휘할 것이기 때문이다. 첫사랑뿐만 아니라 그토록 친했던 친구들과, 그의 죽음 이후 뿔뿔이 흩어져버린 가족들과의 만남 또한. 

하지만 <다시 만난 세계>에서 시선을 잡아끄는 건 그러한 특이한 타임슬립 설정이 아니다. 그것보다는 고교시절 성해성과 정정원이 나란히 자전거를 타고 등교하던 그 시골길에 담겨지던 푸르름과, 등하교하며 간간히 휴식을 취하던 넉넉한 품을 가진 나무 밑 평상이 주는 한가로움, 호젓한 강이 보이는 자그마한 마을이 주는 따뜻함 그리고 무엇보다 그 순수했던 시절 불쑥 핫도그를 뺏어먹는 소녀와 부끄러움을 느끼는 소년 사이에 오가는 설렘 같은 것들이 더 시선을 끈다. 

그 풍경은 마치 <너의 이름은>으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 세계 속에 들어간 듯한 느낌을 준다. 12년이 흘러 다시 마주친 성해성과 정정원이 둘 사이를 갈라놓는 듯한 기찻길 양편에 서서 기차가 다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그런 장면이나, 타임슬립이 벌어질 때 마치 로켓이 솟구치듯 무언가 하늘을 향해 긴 꼬리를 남기며 날아가는 그런 장면들은 <너의 이름은>에서 모티브를 얻은 느낌을 준다. 물론 그것은 그 첫사랑을 이제 막 느끼는 순수한 시간이 주는 낭만적이고 몽상적인 분위기를 표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지만.

<다시 만난 세계>의 타임슬립은 그래서 그 장치적인 극적 효과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 순수했던 시절의 아름다움을 다시 되새기기 위한 목적이 더 크다고 여겨진다. 12년 후 나이 든 정정원이나 친구들은 저마다 그 세월만큼의 때가 묻어 있고 그래서 과거의 그 시점은 한 때의 추억일 뿐 돌아갈 수 없는 세계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 세계 그 모습 그대로를 갖고 12년 후의 세계로 들어온 성해성으로 인해 어떤 변화를 겪지 않을까. 

특히 정정원의 삶에서는 과거 성해성의 죽음에 대한 자책이 묻어난다. 요리사가 꿈이었던 성해성 대신 그녀가 별 재능은 없어 보이는 요리사의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이 그걸 말해준다. 다시 돌아온 성해성으로 인해 정정원은 그 자책의 삶을 벗어나 자신의 순수했던 삶의 시간들을 되찾을 수 있을까. 성해성과 정정원의 다시 시작되는 풋풋한 첫사랑의 과정들은 그래서 그 자체로 순수를 찾아가는 시간이 된다. 

흔히들 첫사랑은 각색된다고 말한다. 실제 벌어진 사건보다 더 미화된 채 기억에 담아진다는 것.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우리가 나이 들어가며 본래 갖고 있던 그 순수의 세계를 더 이상 믿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닐까. 그 경험이 얼마나 소소했던 간에(어쩌면 그렇게 소소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첫사랑을 강렬하게 기억하는 건 그 때 실제로 모든 것들이 그토록 예민했을 정도로 순수했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만난 세계>는 그래서 12년 후로 돌아온 소년이 다시 만나게 된 세계에 대한 이야기지만, 거꾸로 그 세계에서 이제는 나이 들어버린 이들이 12년 전의 순수했던 시간으로 되돌아가는 이야기다. 각박한 세상에서 살면서 누구나 더 강렬해지는 욕망은 바로 그 때의 그 시간들로 돌아가고픈 것일 게다. <다시 만난 세계>는 그 욕망을 첫사랑을 유예시키는 판타지로 재현해냄으로써 우리에게도 잊고 있던 그 시간을 다시금 떠올리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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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립군’, 왕과 백성은 어떻게 소통하고 성장하는가

‘남을 대신해 군역을 하는 사람’을 뜻하는 <대립군>이라는 제목은 두 가지 의미가 담겨져 있다. 그렇게 누군가의 허깨비가 되어 오로지 살아남아야 그 존재가 의미를 갖는 ‘대립질’을 하는 민초들을 뜻하기도 하지만, 임진왜란 시절 선조의 분조에 의해 반쪽짜리 왕으로 추대된 광해를 뜻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군’은 군대를 뜻하기도 하지만 임금을 뜻할 수도 있는 것이니 말이다. 

사진출처:영화<대립군>

영화 <대립군>은 그래서 임진왜란이라는 절체절명의 국가위기 상황을 전제하고, 그 안에 왕과 백성이라는 두 존재를 ‘대립군’이라는 하나의 틀로 묶어낸다. 애초에 왕이 되고 싶지 않았던 유약한 왕 광해는 대립군과 함께 하는 여정을 통해 조금씩 백성들의 고단함이 무엇인지 또 그들이 원하는 왕이란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를 깨달아간다. 

백성을 대표하는 인물은 대립군의 수장 토우(이정재)다. 그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광해를 절벽 끝에 세우는 인물이다. 그는 용감하게 적과 맞설 수 있는 그 힘은 바로 그 절벽 끝에 서있어 갖게 되는 두려움 때문이라고 광해에게 말한다. 편안한 삶을 살아왔을 광해는 이 대립군과 함께 지내는 절벽 끝의 시간들을 통해 점점 왕으로서의 자신을 세워나간다. 

자신을 죽이려는 조정의 세력들과 또 왜군들에게도 추격당하며 굶주림 속에 산속을 헤매던 광해가 일단의 백성의 무리들을 만나는 장면은 드디어 왕과 백성이 제대로 마주하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백성들로부터 식량을 빼앗으려는 신하들을 광해는 제지하고, 그래서 백성들이 밥을 지어 왕과 나누자 광해는 자신이 그들에게 해줄 게 잠시간의 고단함을 풀어줄 춤사위밖에 없다며 춤을 춘다. 백성 앞에서 춤을 추는 왕. 그렇게 한껏 자신을 낮추는 순간, 백성들은 저절로 고개를 숙인다. 

왕이 제대로 된 왕으로 서게 되고, 또 백성이 백성의 자리를 찾아가는 그 과정은 또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누군가를 대신하는 삶을 살아온 광해와 대립군이 절벽을 뒤로 한 작은 성에서 결사항전을 하며 그들은 그 전쟁이 이제 누군가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위한 사투라는 걸 확인한다. 광해는 그 결사항전을 거쳐 스스로를 왕이라고 자인하게 되고, 대립군들은 비로소 자신의 이름으로서 당당히 서게 된다. 

<대립군>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이 이야기가 작년부터 현재까지 우리가 겪고 있는 정국과 맞물려 묘한 여운을 남기기 때문이다.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를 접하고 대통령 탄핵과 새로운 대통령을 세우는 그 과정을 온전히 해낸 건 다름 아닌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갔던 국민들이 아닌가. 문재인 대통령이 ‘운명’이라고 말하며 그 힘겨운 여정을 통해 대통령이 된 과정에는 항상 함께하는 국민들이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지지하며 국가의 위기상황에 힘을 모으고 그럼으로써 대통령과 국민이 스스로 자신들의 존재를 확인하고 그 역할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아가는 과정은 그래서 저 영화 <대립군>의 광해와 대립군 사이의 소통과 성장을 닮았다. 

<대립군>은 물론 스펙터클한 전투 장면들이 있지만 그런 액션 장르를 추구하는 영화는 아니다. 대신 왕과 백성의 소통을 통한 성장과정을 그들이 겪는 혹독한 전쟁을 통해 담아낸다. 그래서 속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보여주기보다는 한번쯤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주는 영화다. 특히 지금의 정국을 영화 속 상황과 견주어보면 더더욱 큰 울림을 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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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근석, 전략 수정이 절실하다

 

종영한 사극 SBS <대박>의 주인공은 단연 장근석이다. 여진구, 전광렬, 최민수 같은 인물들이 있지만 그래도 전체 이야기의 중심은 대길이라는 인물이 겪는 고난과 성장 스토리를 통해 흘러가기 때문이다. 그가 서 있는 인물들 사이의 위치는 막중하다. 위로는 아버지인 숙종(전광렬)과 연결되고, 옆으로는 형제가 되는 연잉군(여진구)이 있으며 시대의 공적인 이인좌(전광렬)와 대적하고 있으니 말이다.

 

'대박(사진출처:SBS)'

하지만 이 드라마는 온전히 장근석의 것이 되지는 못했다. 드라마 초반부터 중반 이후까지 강렬한 존재감을 남긴 건 독특한 숙종 역할을 맡은 최민수였고, 드라마가 끝까지 굴러가게 만든 장본인 역시 그가 아니라 공공의 적으로서 조정을 농단하는 이인좌 역할을 연기한 전광렬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연기 공력의 틈바구니에서 자기 존재를 드러낸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장근석은 절치부심한 흔적이 역력했다. 아버지인 백만금(이문식)이 죽고(물론 나중에 다시 살아 돌아오지만) 벼랑 끝에서 이인좌의 칼에 맞고 떨어지는 그의 모습은 그간 봐왔던 그의 연기와는 사뭇 달랐다. 심지어 뱀을 물어뜯는 연기까지 선보였다. 그것은 마치 <레버넌트>로 꽃미남이 아니라 연기자라는 걸 확실히 증명해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행보처럼 보였지만, 그런 노력은 그리 큰 효과를 가져 오지는 못했다.

 

장근석이 이처럼 <대박>을 선택하고 지금껏 해오지 않았던 연기에 도전한 건 스스로도 늘 현대극의 허세남 캐릭터에 붙박여 있는 것을 벗어던져야 한다는 현실인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2009<미남이시네요> 이후로 이렇다 할 성공작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매리는 외박중><미남이시네요>의 연장처럼 여겨졌고 야심차게 준비했던 <사랑비>는 아쉽게도 그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예쁜 남자> 역시 마찬가지. 장근석이 갖고 있는 꽃미남의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소비했을 뿐, 이렇다 할 그의 성장을 느끼게 만들지는 못했다.

 

배용준 이후 일본 한류의 새로운 물꼬를 튼 장근석이지만 후속작을 내지 못한다는 건 그에게는 커다란 숙제로 다가오고 있다. 아쉽게도 이번 <대박> 역시 대박이 되지 못한 건 어쩔 수 없는 결과다. 물론 대본의 완성도가 높지 못했다거나, 함께 하는 연기자들의 면면이 워낙 강했다거나 하는 이유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어쨌건 중심에 서 있던 연기자로서 드라마의 실패에 책임이 없다 말하긴 어렵다.

 

이번 <대박>을 경험하면서 장근석에게 필요한 건 적절한 전략의 수정이다. 연기변신이 절실하다고 해도 너무 급작스런 변화는 그에게도 또 그를 바라보는 시청자들에게도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 물론 연기자라면 이걸 넘어서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만, 장근석처럼 너무 강하게 이미지가 구축되어 있는 연기자라면 적절한 수위 조절을 통한 변신을 꾀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시도와 그 의지는 나쁘지 않았다. 다만 방법이 너무 과했다고 여겨진다. 자신이 갖고 있는 허세 꽃미남의 이미지가 자신의 경쟁력이라면 거기서부터 시작해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대박>은 여러모로 장근석이라는 연기자에게는 많은 걸 생각하게 만드는 기회가 되어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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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 최민수, 어떤 사극에도 없던 숙종을 연기하다

 

SBS <대박>의 시청률 성적은 좋지 않다. 동시간대 지상파 꼴찌는 물론이고, tvN <또 오해영>이 기록한 7.9%(닐슨 코리아)보다도 낮은 7.7%까지 추락했다. 공교롭게도 이렇게 시청률이 급락한 19회에 숙종(최민수)이 죽음을 맞이했다. 시청자들은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다. 역대급 숙종을 연기한 최민수의 퇴장은 마지막까지 강렬했다.

 

'대박(사진출처:SBS)'

최민수가 연기한 숙종은 지금껏 어떤 사극에서도 보지 못했던 카리스마를 보여줬다. 장희빈의 머리채를 잡아끌고 가는 장면은 시청자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사실 그건 대본에 있던 장면은 아니었다. 최민수가 현장에서 숙종의 당시 상황이라면 그랬을 수 있다며 제안한 것이었고 그래서 나온 장면은 의외로 시청자들을 반색하게 만들었다.

 

최민수의 숙종 연기가 역대급이었다는 것은 과거 MBC <동이>에서의 숙종(지진희)과 비교해보면 확실히 드러난다. <동이>에서 숙종은 왕의 위엄보다는 사랑꾼의 모습을 더 많이 보였다. 그래서 숙빈 최씨(한효주)와의 신분의 뛰어넘는 알콩달콩한 사랑을 선보였던 인물로 해석됐다. 하지만 <대박>에서 숙종은 모든 걸 꿰뚫어보는 왕의 절대적인 카리스마를 드러내는 인물이었다.

 

이인좌(전광렬)라는 혁명을 꿈꾸는 인물이 압도적인 힘을 발휘하는 <대박>이라는 드라마의 성격 상 자칫 숙종 역할은 가려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인좌의 농간을 내려다보듯 눌러버리는 숙종의 카리스마 있었기 때문에 드라마는 훨씬 더 팽팽해질 수 있었다. 대길(장근석)과 연잉군(여진구)이 이인좌를 잡기 위해 갖가지 명분들을 생각할 때, 왕의 명이라며 그를 잡아 능지처참하라고 소리치는 숙종의 모습은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면면을 드러내기도 했다.

 

마치 아편에 취한 듯 몽롱한 표정을 짓는 숙종의 모습은 숙빈 최씨(윤진서)의 죽음으로 인해 점점 몸이 쇠해가는 모습으로 변해갔다. 가까스로 숨이 붙어 있는 듯한 숙종의 마지막이지만 최민수는 그 모습에서도 카리스마를 잃지 않았다. 자신의 사후에 벌어질 연잉군과 대길의 대결을 걱정하며 서로가 살 길을 일러주는 모습에는 제왕으로서의 면모와 자식을 걱정하는 아비의 면모가 뒤섞여 있었다.

 

드라마는 숙종의 죽음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았다. 대신 연잉군에게 마지막 당부를 하는 모습으로 피곤해하는 숙종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여줬다. 이로써 최민수가 만들어낸 숙종의 이미지는 그 인물이 죽고 난 후에도 강렬하게 여운으로 남게 되었다.

 

사실 <대박>은 기대치를 만족시키는 드라마는 아니다. 이야기 전개가 너무 과도하거나 자의적인 느낌이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최민수의 숙종만큼은 건졌다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그만큼 최민수의 존재감이 확실했다는 걸 말해주는 대목이다. 연기자라면 드라마가 어떻건 자기 몫을 해내야 한다는 걸 최민수는 실제 연기를 통해 보여줬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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