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도>, 해외 극한 알바로 진짜 하려던 이야기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이 호도협의 풍광을 즐길 때 저 분들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가마에 태웠던 걸까. 1200여 개의 계단을 가마에 관광객을 태운 채 오르내리며 그 분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일이 더 힘든 건 노동 그 자체가 아니라 어쩌면 자신들은 일할 때 누군가는 놀고 있다는 그 상대적 박탈감은 아닐까.

 

'무한도전(사진출처:MBC)'

<무한도전>이 국내에서 극한알바를 도전했던 의미도 바로 그것이었다. 고층빌딩의 유리벽을 일일이 손으로 닦아내고, 지하 탄광에서 탄가루를 온 몸에 뒤집어쓴 채 석탄을 캐고, 그 많은 택배 상자들을 일일이 차에 실어 나르는 것 같은 일들. 우리가 그 고층빌딩 안에서 창밖의 풍광을 내려다보고, 편안하게 연탄 위에 고기를 구우며, 클릭 하나로 물건을 주문해 받을 때 저편에서는 누군가 그 힘겨운 일을 하고 있다는 것.

 

<무한도전>해외 극한 알바특집은 그것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것이었다. 포상휴가를 간다며 방콕까지 가서 굳이 케냐, 중국, 인도로 각각 팀을 나눠 일을 하게 된 것에 대해 심지어 유재석마저 분통을 터트렸지만 그들은 차츰 그 선택의 의미를 알게 되었고 그 고된 일을 한 것에 대해 보람마저 느끼게 되었다.

 

중국에서 위험천만한 잔도공 작업을 너무 무서워 포기했던 하하와 정형돈은 가마꾼 알바를 하기 위해 간 호도협에서 그 잔도공 작업 덕분에 관광객들이 관광을 즐길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또 가마꾼들의 그 힘겨운 노동 덕분에 가마를 탄 관광객들이 편안히 호도협을 관광할 수 있게 됐다는 것도. 그래서였을까. 하하와 정형돈이 마지막으로 10여년 째 그 일을 해온 가마꾼들을 태워주는 장면은 실로 감동적이었다. 잠시 동안이지만 그 일과 관광의 역할을 바꿔 해본다는 것.

 

인도에서 300벌의 빨래를 쉴 새 없이 해야 했던 유재석과 광희는 자신들이 그렇게 힘겹게 한 빨래를 고객에게 갖다 주며 보람을 느꼈다. 도비왈라라 불리는 이 빨래꾼(?)들에게 10년 동안 휴가 없이 매일 새벽 4시부터 오후 4시까지 빨래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유재석은 “10년 동안 매일 일한 사람도 있는데 무슨 10주년을 기념 하냐고 말하기도 했다. 극한 해외 알바 체험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몰랐을 사실들이다.

 

케냐에서 상처 입은 아기코끼리들을 보살피는 일을 한 박명수와 정준하는 상대적으로 노동 강도는 약해보였지만 그 일이 주는 보람은 그 어느 것보다 컸다고 여겨진다. 마치 부모 자식 같은 감정을 점점 느끼며 아기코끼리들에게 마음을 주는 그들의 모습은 그저 아프리카의 자연과 야생을 즐기는 관광객들이었다면 느끼지 못했을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렇게 자연을 보호하려고 헌신하는 이들이 뒤에 있었다는 것.

 

물론 그렇다고 모두가 휴가를 떠나지 말고 일을 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우리가 휴가를 즐길 때 그 뒤에는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고마운 분들의 땀이 있다는 걸 잊지 말자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방콕으로 돌아온 출연자들이 이제야 비로소 진짜 휴가를 즐기게 되는 모습은 우리에게는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그 즐거움이 또한 누군가의 노동에 의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휴가를 극한 노동으로 바꾼 것에 대해 우리가 해도 너무 했다고 했던 마음은 그래서 고스란히 그 해도 너무한 노동이 주는 가치를 절감하게 만든다. 역시 <무한도전>다운 역발상이 아닌가. 그 극한의 노동 체험이 짜증에서 보람으로 바뀌는 그 과정 역시 시청자들에게 똑같은 경험을 하게 했으니 말이다.

 

무주산골영화제, 그 소박함의 역발상

 

영화 <시네마천국>의 토토가 사는 작은 마을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 이럴까. 어둑해진 야외, 운동장과 야외 캠프장에 소박하게 만들어진 작은 영화관(?)에는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의 눈이 별빛처럼 반짝반짝 빛난다. 어찌 보면 반딧불이가 사랑을 할 때 내는 불빛처럼 보이기도 한다. 자연을 온 몸으로 느낄수록 영화에 대한 애정 어린 눈빛은 더 깊어진다.

 

'무주산골영화제(사진출처:MJFF)'

영화는 스크린 위에만 펼쳐지는 게 아니다. 고개를 들면 저 하늘 위에 펼쳐진 대자연의 스크린 위에 별들이 펼쳐놓는 영화가 쏟아져 들어오고, 귀를 기울이면 숲속 풀벌레 소리가 영화와 어우러져 기막힌 정서를 만들어낸다. 세상에 이런 영화제가 있을까 싶지만 지금 현재 무주에서 펼쳐지고 있는 산골영화제가 바로 그것이다.

 

등나무 운동장에서 열린 무주산골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찰리 채플린의 <유한계급>이 상영되었다. 1921년에 만들어진 영화. 흑백 화면에 무성영화지만 지금 봐도 충분히 재밌는 그 영화는 김종관 감독과 뮤지션 모그가 참여해 독특한 퍼포먼스가 곁들여졌다. 영화 속 찰리 채플린이 영화 밖으로 튀어나온 듯 똑같은 분장을 한 인물들의 무대가 영화와 어우러졌다. 마치 시간이 거꾸로 흘러간 듯한 개막작 퍼포먼스는 무주산골영화제만이 가진 소박하고 아날로그적이며 복고적인 정서를 잘 표현해냈다.

 

메르스 공포가 전국을 강타했지만 무주는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영화제 자체가 시끌벅적한 도시의 영화제와는 성격을 달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관이 거의 없는 무주라는 지역에 자연 속에 스크린을 걸고 영화를 틀자는 소박한 취지에서 시작한 이 영화제는 인구가 고작 2만 명인 이 조용한 산골 마을에 기막힌 역발상의 묘미를 선사했다.

 

산골영화가 어떻게 기묘한 조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는 그 무주라는 공간에 들어와 보면 쉽게 이해되는 일이다. 도시의 밤풍경이란 불야성에 가깝지만 무주의 밤은 칠흑 같은 어둠이 포근하게 마을을 감싼다. 그러니 야외 어디고 스크린을 걸고 영사기를 돌리면 영화관이 되는 것이다. 이 어찌 기막힌 역발상이 아닐 수 있을까. 무주하면 먼저 떠오르는 반딧불이 축제의 반딧불은 그래서 산골영화제에서는 어둠 속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영화가 되는 셈이다.

 

상대적으로 세상에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욱 소중하게 여겨지는 것. 최근의 문화 트렌드가 지향하는 소박함이나 스몰 지향 그리고 자연 같은 키워드는 산골영화제가 도시인들에게 하나의 로망으로 다가오는 이유일 것이다. <삼시세끼> 같은 시골의 소박한 삶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에 열광하고, 화려한 호텔 예식장이 아니라 소박한 시골의 밀밭이 협찬(?)해준 식장에서 치러진 원빈과 이나영의 결혼식에 열광하는 것처럼, 산골영화제는 작고 소박하고 자연친화적인 특색을 모두 담고 있다.

 

화려한 레드카펫 대신 소소한 그린카펫을 지향하고, 복잡한 인파를 벗어나 소박한 가족, 친구, 연인과의 추억을 만들어내며, 화려한 도시의 불빛 대신 어두워 더 잘 보이는 별빛을 지향하는 그런 영화제. 상상 속으로만 꿈꾸던 그런 영화제가 바로 이 땅에서 펼쳐지고 있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풀벌레 소리 들으며 보는 영화라니. 세상 어디에도 없는 영화제가 아닌가

 

.

자연스러운 역발상, <삼시세끼>의 저력

 

tvN <삼시세끼> 어촌편 승승장구의 일등공신은 단연 차승원이다. 그가 만들어낸 놀라운 요리들은 <삼시세끼>의 밥상을 한 차원 업그레이드시켰다. 홍합을 채취해와 만든 홍합짬뽕에서부터 보였던 쿡방의 향연은 생선찜에 어묵탕으로 이어지더니 심지어 아궁이를 개조해 만든 가마에서 빵을 구워 내는 단계로까지 이어졌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만일 보통의 연출자라면 차승원의 부재는 용납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딸 바보 차승원이 딸 예니의 생일을 챙겨주기 위해 무려 20시간의 왕복을 감행(?)한다는 건 물론 훈훈한 일이지만 방송 프로그램의 입장에서 보면 상당한 공백을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시세끼>는 이런 빈 자리 또한 새로운 스토리텔링의 기회로 삼는 모습을 보여줬다.

 

차승원이 있는 만재도와 그가 없는 만재도는 너무나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니 그가 빠져나간 만재도와 거기 남은 유해진과 손호준이 이 빈 자리를 어떻게 채워나가는가 하는 건 또 다른 이야기가 된다. 차승원이 있을 때의 상차림과 그가 뭍으로 나간 후 유해진이 처음으로 회를 떠 회덮밥을 만들고 얼렁뚱땅 만들어낸 된장국과 먹는 모습은 자연스러운 비교점을 만들어준다.

 

그러면서 엉성하지만 어딘지 여유가 묻어나는 유해진의 밥상은 <삼시세끼> 어촌편의 새로운 이야기가 된다. 차승원이 뭍으로 나가기 전 레시피를 알려준 손호준이 거기에 집착해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유해진이 설렁설렁 대충대충 요리를 해내는 모습은 그 자체로 흥미롭다. 물고기 한 마리를 죽이지 못하는 그가 어찌 어찌 회까지 떠서 내놓은 회덮밥을 감탄하며 먹다가 손호준이 가시가 가득하다며 뱉는 장면은 코미디의 한 대목을 보는 것처럼 큰 웃음을 준다.

 

게다가 이런 차승원 없이 지내는 유해진과 손호준의 20시간은 누구나 공감할만한 정서를 담아낸다. 마치 잔소리꾼 엄마가 여행이라고 가고 나면 남겨진 이들이 한편으로는 자유(?)를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리움을 갖게 되는 것처럼, 이들의 20시간은 겉보기의 여유로움과 빈자리가 만드는 허전함을 동시에 느끼게 만들었다. 이 정도면 차승원은 없어도 충분히 있는 존재로서 기능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차승원의 부재가 새삼 떠올리게 한 것은 <삼시세끼>의 본질이다. 이 프로그램의 본령은 본래 화려한 밥상을 거의 요리 수준으로 매번 챙겨먹는 그런 것이 아니다. 소박하더라도 거기 나는 재료로 무언가를 해먹는다는 것에 더 큰 의미가 있다. 물론 차승원은 자신의 숨겨졌던 재능을 보인 것뿐이지만, 그 매번 화려한 밥상은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게 만들 수 있다. 차승원의 등장 이후 시청자들은 무언가를 점점 더 바라게 되었다. 이번에는 또 어떤 요리가 선보여질까를 기대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본래 <삼시세끼>의 핵심은 더하기가 아니라 빼기에 있다. 자꾸만 뭔가를 더 바라는 것이 아니라 빠져 있어서 오히려 새로운 걸 발견하게 되고 또 갖고 있는 것들의 소중함을 느끼는 그런 것이다. 그러니 쉴 새 없이 업그레이드된 요리를 선보이던 차승원이 잠시 부재한 상황은 본래의 <삼시세끼>를 되돌아보게도 해주고, 또 그의 요리가 실로 특별했다는 걸 상기시켜주는 계기도 된다.

 

나영석 PD<삼시세끼>가 힘을 발휘하는 가장 큰 이유 역시 이 차승원의 부재를 대하는 프로그램의 면면을 통해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는 제작진의 무리한 욕심보다는 자연스러운 흐름이 느껴지고, 그 흐름 안에서 오히려 또 다른 스토리텔링이 가능해진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이런 역발상이야말로 무언가를 하기 보다는 오히려 하지 않는 것으로 예능의 새로운 이야기를 가능하게 한 <삼시세끼>의 저력일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놀라운 <무도>의 역발상

 

대담한 기획이라고밖에 할 수 없을 것 같다. 보통 프로그램에서 출연자가 불미스런 일로 하차를 하거나 하면 프로그램 입장에서는 그 사실을 되도록 빨리 잊게 하고픈 게 인지상정이다. 그것이 자칫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져와 프로그램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한도전>은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노홍철의 음주운전 하차를 오히려 하나의 기회요소로 바꿔놓은 것.

 

'무한도전(사진출처:MBC)'

녹화 전날 술자리로 불려나온 출연자들은 과연 술을 마실 것인가.’ 사실 이 몰래카메라의 주제는 그 자체만으로 보면 아무런 아이템이 될 수가 없다. 사실 녹화 전날이라고 해도 맥주 한 잔 정도는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박명수가 그러했던 것처럼 그게 뭐 이상한가하는 반응은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노홍철이 음주운전으로 하차한 <무한도전> 입장에서 이 아이템은 굉장히 흥미로운 몰래카메라 소재가 되었다. 그것 자체가 술에 대한 경각심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노홍철이라는 맥거핀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 단순한 몰래카메라는 보는 이들에게 양가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하나는 술을 마시는 출연자를 몰래카메라로 당황하게 만들고 싶은 욕구이고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몰래카메라를 실패로 만드는 출연자를 기대하는 욕구다.

 

즉 이 몰래카메라는 실패해야 성공이고 성공하면 또한 실패하는 아이템이기도 하다. 그래서 유혹의 거인으로 나선 서장훈이 무려 3주 간이나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 몰래카메라를 장기 프로젝트로 만들었다는 사실은 거꾸로 말하면 <무한도전> 출연자들이 상당한 자기 관리를 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니 3주째에 결국 몰래카메라에 걸려든 박명수, 정형돈, 하하는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기본은 한 셈이다.

 

중요한 것은 이 몰래카메라가 가져오는 효과다. 그것은 노홍철의 음주운전 물의를 오히려 꺼내 공론화하고 심지어 거기에 불편한 정서를 가진 시청자들까지 이 몰래카메라에 적극적으로 참여시키는 힘을 발휘하게 했다는 점이다. 몰래카메라라는 어찌 보면 악취미 같은 이 기획은 그래서 대중들이 길에 이어 또 터진 노홍철의 음주운전 사건으로 <무한도전>에 갖는 불편한 욕구마저 끌어들였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이 몰래카메라가 출연자들에게도 괜찮은 경각심을 주었다는 점이다. “이제 애가 아프다고 해도 의심 해야겠다고 말한 박명수처럼 이 몰래카메라를 통해 출연자들은 평소의 자기관리에 대해 더 예민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언제 어디서 그게 몰래카메라가 되어 찾아올지 알 수 없으니 말이다.

 

즉 이 <무한도전>의 몰래카메라 역발상은 어찌 보면 이 위기상황을 회피하기보다는 오히려 더 직시하려는 노력에서 비롯된 것이란 점에서 놀라움을 준다. 사실 사건이 터지면 기억하기보다는 잊으려는 게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특히 특권층들이 어떤 불미스런 사건을 터트렸을 때 서둘러 덮어오기만 했던 건 어쩌면 이런 사건들이 끊이지 않고 계속 발생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무한도전>의 역발상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 잊기보다는 기억하라는 것.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