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캠프> 김상중, 그가 <그알>을 연기로 소화하는 까닭

 

세상에 이렇게 일관되게 진지한 톤으로 때론 웃기고 때론 진짜 진지하게 얘기했던 게스트가 있을까. “그런데 말입니다라는 이제는 유행어가 된 김상중의 말투에는 이 진지함과 웃음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가가 잘 나타나 있다. 이제 1000회를 맞게 되는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김상중은 그런데 말입니다를 반복했고, 그럴 때마다 시청자들은 그 말이 만들어내는 궁금증에 채널을 돌릴 수 없는 마법에 빠져버렸다. 그래서 그 진지한 한 마디는 이제 말해지기만 하면 웃음을 터트리게 만드는 김상중만의 유행어가 되었다.

 


'힐링캠프(사진출처:SBS)'

김상중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신뢰감이 있는 중저음이다. 그의 말대로 <그것이 알고 싶다>라는 프로그램이 그 신뢰감을 더욱 공고하게 해주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이 본래 자신의 목소리가 아니라 발성연습을 통해 생긴 목소리라고 했다. 연기자로서의 연극적인 톤이 살아있는 그 목소리가 사실은 신뢰감 있는 김상중의 이미지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힐링캠프>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도 그는 좀체 그 목소리 톤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한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하나는 이제 1000회를 맞게 된 <그것이 알고 싶다>MC라는 자리가 그에게 섣불리 일상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피하게 했을 거라는 점이다. 그 스스로도 너무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주게 되면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그가 어떤 멘트를 던질 때 몰입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 걱정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또 다른 이유도 존재한다. 그것은 그의 신뢰감 있는 목소리가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진지한 몰입감을 주지만, 그것이 반복되면서 하나의 유행어처럼 웃음을 주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말입니다는 대표적이다. 그래서 김상중은 <힐링캠프>에 출연하면서도 시종일관 <그것이 알고 싶다>의 목소리톤과 표정을 유지했다. 그러면서 그런 모습 그대로 그가 EXID 하니와 함께 위 아래의 춤을 추거나, “기싱꿍꼬또를 하는 모습 자체가 더 큰 웃음을 다가올 수 있었다. 물론 그 끝에는 다시 <그것이 알고 싶다>의 목소리로 돌아오는 모습을 잊지 않았지만.

 

자신을 스마트하지 않고 스위트하다고 말하면서도 진지한 톤을 유지하고, ‘뻐카충이나 낄끼빠빠같은 신조어의 뜻을 마치 사건 추리하듯이 맞추는 모습 속에서 진지함이 웃음으로 전달되었다면, <그것이 알고 싶다>를 하며 알려만 주고 제대로 해결해주지 못해 늘 미안함을 느낀다거나 반복되는 현실에 대한 분노를 얘기할 때는 그 진지함이 더욱 진지한 이야기로 전해진다.

 

이것은 아마도 김상중이라는 연기자가 가진 대체불가 매력의 비밀일 것이다. 그는 <그것이 알고 싶다>MC를 하나의 연기로서 받아들이고 있다. 배역을 선택할 때도 <그것이 알고 싶다>를 의식해 지나친 악역이나 우스운 캐릭터를 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그 단서다. 그는 좀 더 진지하고 신뢰감을 주는 목소리로 <그것이 알고 싶다>MC를 소화해냄으로써 시청자들의 몰입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힐링캠프>가 끝날 때쯤이 되자, 김상중이 뜬금없이 던지는 “<그것이 알고 싶다>는 자주 보시나요?”라는 진지한 질문은 어느새 웃음이 터지는 질문이 되어 있었다. 어울리지 않는 상황에서 훅 들어오는 질문이 웃음을 준 것이지만 거기에는 또한 그가 <그것이 알고 싶다>에 갖고 있는 애정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애정은 우리 사회에 대한 애정이기도 했다.

 

그는 두 번에 걸쳐서 미안하다는 얘기를 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알려는 주지만 해결해주진 못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하지만 하니가 고마움을 전하며 말한 것처럼 그저 덮여지고 묻혀지는 진실에 대해 질문을 던져 알고 싶은 욕구를 만들어내는 것만큼 세상을 바꾸는 일도 없을 것이다. “다양한 얘기에 관심을 가지고 공감해줘야 한다고 김상중은 마지막 말을 전했다. 그 공감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김상중이 <그것이 알고 싶다>를 하나의 연기로 받아들여 많은 이들을 몰입하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꽃할배>의 여행이 특별해지는 순간

 

학교 때부터 배우면서 언제 한 번 가보나 했는데 잊어버렸다. 막상 보니 다시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다.” tvN <꽃보다 할배> 그리스편에서 박근형은 디오니소스 극장에 가만히 앉아서 그 남다른 소회를 밝혔다. 오랜 세월이 흘러 여기저기 깨지고 부서진 그 곳은 마치 폐허처럼 보였지만 배우인 박근형에게는 고향 같은 느낌을 줬을 지도 모른다. 먼 길을 돌아 연극의 시발지로 다시 돌아온 듯한 그 기분.

 

'꽃보다 할배(사진출처:tvN)'

신구에게도 디오니소스 극장은 남다른 곳이었다. “우리 연극하는 사람들에게 디오니소스는 친숙한 이름이다. 술의 신, 축제의 신 디오니소스 이름을 따서 극장을 만든 것이다.” 2013년 그는 연극 <안티고네>에서 크레온왕 역할을 연기한 바 있다. 그러니 그 디오니소스 극장에서 오래 전 그리스인들을 위해 올려 졌을 <안티고네>가 떠오르지 않았을까.

 

그는 돌아오는 길에 연극을 같이 준비하는 동료들에게 자신만 빠져 있어 미안한 마음을 표하며 정성을 담은 작은 선물을 샀다. 곧 무대 위에서 만날 후배들을 위해 여행 중에도 틈틈이 대본을 외우는 신구는 천상 배우였다. 그는 디오니소스 극장을 둘러본 소회를 죽기 전에 아주 귀한 경험을 한 것이라고 밝혔다.

 

백일섭은 저녁 술자리에서 나이 들어가는 것에 대한 쓸쓸함을 밝혔다. “나는 나이가 이렇게 먹었다는 걸 생각도 못했는데.. 내가 영감이구나 내가 노인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 요즘에는 느껴져. 72. 상상을 못했는데...” 그리고 그 나이 들어가는 것에 대한 배우로서의 소회를 이렇게 얘기했다. “이젠 아버지 역할도 안줘. 할배가 돼버려서...” 나이가 들면서 하나 둘 씩 고장 나는 몸이 세월을 실감하게 하고 있었다.

 

그리스는 꽃할배들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그들이 밝혔듯 배우들에게 이 공간은 특별했을 수밖에 없다. 연극이 생겨난 곳이라는 의미에 덧붙여 이제는 깨진 돌무더기들로 남아 있는 그 폐허 같은 유적들은 긴 세월을 살아낸 어르신들의 쓸쓸함을 고스란히 보여주지 않았을까. 그러니 어르신들이 그 유적에서 과거 그리스의 영광을 떠올릴 때, 자신들의 젊은 날 또한 새록새록 떠오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스는 그 어느 장소보다 시간의 흔적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화려했던 그 문명이 지금은 퇴색되어 있지만, 바로 그 퇴색마저 시간이 그려내는 작품처럼 남는 곳. 꽃할배 어르신들의 면면은 그래서 그리스라는 공간을 그대로 닮아있다. 그들이 그 곳을 함께 걷고 느끼고 때론 잠시 멈춰서 어떤 시간의 소회를 얘기하는 모든 것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이것은 <꽃보다할배>라는 프로그램의 여행이 지금껏 나영석 PD가 그려왔던 여타의 여행과는 사뭇 달라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2년 전의 짱짱했던 백일섭의 모습이 지금은 어딘지 상냥해진 느낌은 그래서 마음 한 구석에 아련함을 남긴다. 시간의 흐름을 본다는 것은 쓸쓸한 일이다. <꽃보다 할배> 그리스편은 그런 점에서 공간적으로나 어르신들로서나 진한 감흥을 남긴다. 좀 더 오래도록 이 어르신들이 건강하게 여행하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눈에는 눈, <적도>의 복수극에 담긴 함의

 

이제 그 단순하게 시작되어 점점 고조되는 반복되는 배경음악만 들어도 우리는 <적도의 남자(이하 적도)>를 떠올릴 수 있다. 갑자기 시간이 멈춘 듯한 장면 속에 대면하는 것조차 불편할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이 서 있다. 겉으로는 친구처럼 행동하지만, 그 이면에 공격성과 복수심을 감추고 있기 때문에 그 느릿느릿 움직이는 장면의 긴장감은 고조될 수밖에 없다.

 

 

'적도의 남자'(사진출처:KBS)

이 '불편한 상황'이 끊임없이 반복되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드라마 자체가 하나의 연극적인 느낌을 주기도 한다. 심지어 실험적인 심리극처럼 여겨질 때도 있다. 그 안에 놓인 사람들, 즉 선우(엄태웅)와 그와 관계된 사람들(장일(이준혁), 진노식 회장(김영철), 수미(임정은), 이용배(이원종), 최광춘(이재용))과의, 혹은 사건 속에서 불편해진 사람들(예를 들면 진노식 회장과 이용배, 이용배와 최광춘 같은)간의 이면이 발가벗겨진다.

 

김경필이 죽었고 그들은 모두 이 죽음 앞에 죄를 지었다. 진노식 회장은 살인을 미수했고, 이용배는 자식의 앞날을 위한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살인을 저질렀으며, 최광춘은 그것을 목격하고도 덮어버렸다. 또 아버지가 김경필을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장일은 사실을 캐내려는 친구 선우의 뒤통수를 치고 바닷물에 던져버렸고, 수미는 그 장면을 목격하고도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그렇게 모든 게 덮어지는 줄 알았다. 선우가 눈을 뜨고 다시 돌아오기 전까지는.

 

선우의 복수극은 이들이 묻어버린 진실을 하나씩 끄집어내 그들의 눈앞에 던져 놓는 것이다. 죄 위에서 성공한 후, 그 죄 자체가 없는 것처럼 살아온 그들에게 이만한 형벌은 없다. <적도>의 복수극이 질깃질깃하고 여타의 복수극과 확연히 다르게 여겨지는 건, 그 복수과정이 단번에 이뤄지지 않고 서서히 진행되기 때문이다. 선우는 너무 쉬운 복수를 원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과 아버지가 당한 것들을 똑같이 그들에게 되돌려주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복수의 양상이 과거 그들이 저질렀던 죄로 그들에게 되돌아온다는 점이다. 도심의 빌딩 옥상에서 벌어진 과거 바닷가 벼랑에서의 사건을 재현하는 수미와 선우와 장일의 퍼포먼스는 연극적일 정도로 의미심장하다. 여기서 선우는 장일이 벼랑 끝에서 자신에게 저질렀던 행위들을 똑같이 재현한다. 장일은 선우에 의해 빌딩 난간 끝으로 몰린 채 당시 선우가 느꼈을 그 배신감을 경험하지만 거기서도 끝내 용서를 구하지 않는다. "선우야 그 때 내가 널 더 세게 쳐서 죽여 버렸어야 됐는데."하고 그는 말한다.

 

하지만 선우의 진짜 복수는 장일의 아버지 이용배의 죽음으로 이루어진다. 자식인 장일에게 피해가 가는 걸 원치 않는 이용배는 유서를 남긴 채 자신이 매달았던 김경필처럼 스스로 목을 매단다. 그것을 본 장일은 선우가 그랬던 것처럼 오열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똑같은 상황으로 복수를 하는 셈이다. 사실을 알고도 덮어버린 최광춘은 바로 그 사실을 안다는 것 때문에 이용배에 의해(그가 자살하기 전에) 뒤통수를 맞는데, 이것은 진실을 파헤치려다 뒤통수를 맞는 선우가 겪은 일의 현재적 재연이다.

 

사실을 목격하고 그것을 그림으로 그리고도 장일을 가지려는 욕망 때문에 사실을 숨겨온 수미는 그 그림이 선우에 의해 만천하에 공개됨으로써 무너져버린다. 장일이 다시는 그녀에게 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진노식 회장은 어떻게 될 것인가. <적도>가 그려내고 있는 이 절묘한 복수극의 양상을 생각해보면 그 결말이 예측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가 딴 남자(아마도 문태주의)의 아이를 가졌다고 오해함으로써 그 분노가 어이없게도 김경필의 죽음으로까지 이어지게 된 진노식 회장의 경우, 실제로는 그 아이가 자신의 친 아들이라는 사실에 의해 복수를 당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이 복수의 대상에는 복수를 하고 있는 선우 또한 들어가 있다는 점이다. 그는 과거 자신이 겪은 고통을 그들에게 그대로 되돌려주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 또한 복수에 눈이 멀어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진노식 회장이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실은 선우에게 부메랑처럼 돌아온 가장 큰 보복인지도 모른다. 이 드라마의 첫 회 첫 장면을 다시 떠올려 보라. 절망적인 장일이 진노식 회장에게 총을 겨누고, 이제는 거꾸로 선우가 그 앞을 가로막는 장면을. 이 얼마나 기가 막힌 상황인가.

 

그렇다면 이 과거가 똑같이 현재에 반복되는 복수의 양상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모든 죄와 벌이 그러하듯이 그것은 상대방이 당한 고통을 똑같이 겪으며 참회한다는 의미가 들어가 있을 것이다. 즉 어떤 의미에서 보면 복수극이란 가해자와 피해자가 똑같은 공감에 이르는 이야기다. <적도>의 복수극은 이미 지나버린 과거의 묻혀 사라진 듯한 그 고통이 다시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지금 살아남은 자들에게 똑같은 고통으로 되돌려지는 과정이다. 그래서 <적도>를 보다보면 그 안에 담겨진 역사의식 같은 것을 보게 된다. 어쨌든 진실의 역사는 은폐되거나 거스를 수 없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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