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시세끼’, 정우성이 산골에서 발견한 불편한 과정의 즐거움

 

커피 한 잔을 내려 먹기 위해 정우성은 아마도 이런 불편한 과정을 감수하지는 않았을 게다. 어쩌면 버튼 하나 누르면 뚝딱 만들어지는 에스프레소를 편안히 아침마다 즐겼을 지도. 하지만 tvN 예능 <삼시세끼> 산촌편에서 정우성은 커피를 만들기 위해 먼저 장작으로 불을 피워야 했다. 그렇게 피워놓은 불 위에 솥뚜껑을 뒤집어놓고 그 위에 생두를 부어 검게 익혀질 정도로 손수 로스팅을 하고, 만들어진 원두를 식힌 후 맷돌에 갈아 가루를 냈다. 그리고 면포를 놓고 그 위에 갈아놓은 원두를 넣은 후 끓인 물을 주전자로 조금씩 흘려 커피를 내렸다.

 

버튼 하나면 뚝딱 마실 수도 있는 도시에서의 커피와 일일이 생두를 원두로 만들고 이걸 갈아서 물로 내려 마시는 산골에서의 커피. 그 맛의 차이를 경험해보지 않아도 시청자들은 알 것 같다. 그렇게 공을 들였는데 맛이 없을 리가. 얼음을 가득 채운 컵에 담아 아이스커피로 마시는 그 맛은 입보다 몸이 반응할 것 같다. 설사 전문 커피숍에서 사 먹는 커피보다 맛이 떨어질 진다해도 체감하는 맛은 더 좋을 게다. 왜? 그 하나하나의 과정을 직접 경험한 맛이 추가되기 때문이다.

 

이건 <삼시세끼>라는 프로그램이 애초 시작될 때부터 갖고 있던 기획의도다. 뭐든 사서 쉽게 먹을 수 있는 것들도, 하나하나 직접 따거나 키우거나 만들어서 해먹는다는 것. 사실 산골에 염정아, 윤세아, 박소담에 정우성 같은 배우들을 데려다 놓고 ‘삼시세끼’만 챙겨 먹으라는 건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인다. <1박2일> 시절 무수한 복불복을 통해 끼니를 거르거나 야외취침을 해오던 미션 홍수와 비교해보면 이건 차라리 휴양에 가까워 보이니까.

 

하지만 그 삼시세끼를 산골에서 장작으로 불을 직접 피워가며 솥에 밥을 하고 찌개를 만들어먹는 일은 의외로 쉽지 않은 미션으로 다가온다. 우리가 너무나 편리하게 완비되어 있는 주방 시스템에 적응해 있고, 필요하면 뭐든 사다 먹거나 배달해 먹는 데 익숙해져 있어서다. 그래서 염정아도 윤세아도 말한다. 여기서는 아침 먹으면 점심 뭐 먹을까 고민하고, 잠자기 전에 아침에 뭐 먹을까를 고민한다고. 그것만 내내 고민하다 보니 다른 고민은 없어지더라고.

 

생각해보면 <삼시세끼>는 도시에서의 우리의 삶이 편리하고 빨리 모든 걸 처리함으로써 여유 시간들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착각이라는 걸 보여주는 것만 같다. 사실 우리는 그 편리한 시스템이 만들어낸 여유를 생각보다 즐겨본 적이 있었을까. 빈 시간들은 무언가 또 다른 일과 고민으로 채우기 바빴고, 편리함의 이유로 과정이 사라진 결과만 경험하는 삶은 어딘가 우리를 소모되게 만들진 않았는지.

 

밭에서 감자를 잔뜩 캐서 한 박스 당 1만5천 원씩을 받아 번 6만 원으로 장터에 나가 장을 보는 마음도 그래서 다르게 다가온다. 카드로 척척 그어 먹고 싶은 걸 마음껏 사서 먹던 도시에서의 생활과 달리, 노동으로 땀 흘려 번 6만 원은 천 원이 소중하게 다가온다. 물론 도시에 적응되어 있는 우리의 입맛이 나영석 PD가 <삼시세끼>의 기획의도로 생각한 것과는 다른 도회적인 음식들에 출연자들을 빠뜨리곤 하지만, 소시지 하나를 먹어도 직접 숯불에 구워먹는 맛이 같을 수는 없다.

 

이 <삼시세끼>의 본래 본질에 충실한 이번 산촌편을 보다보면 염정아나 윤세아, 박소담, 정우성 같은 누가 봐도 도시남녀의 이미지를 가진 배우들이 어째서 이 산골과 의외로 잘 어우러지고 남다른 재미를 만들어내는가를 새삼 확인하게 된다. 너무나 도시적인 이미지의 그들이 산골에서 밥 한 끼를 해먹는 일은 그 과정들을 하나하나 경험하는 새로움으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끌 수밖에 없다.

 

이런 부분들은 재미요소로만 머무는 게 아니다. 몸소 키우고 재배해 만들어 먹는 과정들을 들여다보며 우리가 잃고 있던 것이 바로 그 과정이었다는 걸 깨닫게 만드는 면이 있어서다. 비가 촉촉하게 내린 산골에서 가마솥에 밥만 해놓고 깍두기 하나만 놔도 얼마나 기분 좋은 한 끼가 될 수 있을까. 노동의 과정을 경험하는 일은 그 결과를 만끽하게 만든다. <삼시세끼> 산촌편은 그걸 보여주고 있다. 염정아와 정우성 같은 배우들이 산골에서 밥을 챙겨 먹는 것만으로도 충분히.(사진:tvN)

염정아부터 정우성까지 화려한 출연진... 하지만 너무 익숙한 형식

 

tvN 예능 <삼시세끼> 산촌편은 출연자들의 면면이 기대감을 만들기에 충분했다. 지금껏 남성 출연자들 중심으로 이끌어왔던 프로그램에 염정아, 윤세아, 박소담을 투입했다. 염정아와 윤세아는 JTBC <스카이캐슬>로 호흡을 맞췄던 배우들이고 여기에 척 봐도 싹싹하고 귀여운 막내 박소담이 더해졌다. 어딘지 허당기가 엿보이지만 시원시원한 성격의 염정아와 다정다감하고 유쾌한 윤세아 그리고 어리지만 의외로 이 시골살이가 더 익숙해 보이는 박소담의 조합은 나쁘지 않다.

 

이번 <삼시세끼> 산촌편을 떠나기 전 사전 미팅 자리에서 나영석 PD는 이 프로그램의 ‘본래 기획의도’를 강조했다. 그건 이 곳에서 나는 작물들을 직접 수확해 음식을 해먹는다는 그 취지를 이번 편에서는 제대로 살려보겠다는 의미다. 다른 말로 하면 도회적인 방식의 요리나 식사는 잠시 접어두라는 나영석 PD의 은근한 엄포(?)다.

 

세 명 중 그나마(?) 요리를 하는 염정아가 메인셰프가 되었지만, 이 산골집에서 아궁이도 직접 만들고 솥을 걸어 불을 피워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은 주부9단이라도 허둥대게 만들 수밖에 없다. 게다가 식재료들을 텃밭에서 직접 가져와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솥밥에 콩나물국을 끓여먹으려던 식단은 만들면서 콩나물밥에 이상하게도 매운탕 맛이 나는 된장찌개(혹은 국)로 변신한다.

 

불 하나 피우는 일이 어렵고, 솥단지를 세워 요리를 하는 일도 쉽지 않다. 하지만 이것도 금세 익숙해진다. 염정아는 반나절만에 자신이 마치 그 곳에서 오래 산 사람처럼 밥을 하고 있다고 토로한다. 감자를 잔뜩 캐와 부쳐 먹고 삶아먹고, 야채들을 가져와 즉석에서 겉절이를 무쳐 먹는 맛은 비가 촉촉한 산골 풍경과 어우러져 시청자들의 허기(정신적 허기까지)를 돋운다. 저런 곳에서 하루만이라도 아무 생각 없이 지낸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하룻밤을 지내고 아침으로 전날 남은 밥을 볶아 만든 볶음밥을 쌈으로 싸먹는 아침도 식욕을 돋운다. 박소담이 좋아하는 계란국은 속은 뜨듯하게 데워준다. 실로 <삼시세끼>의 본래 취지에 맞는 그림들이 나온다. 모난 인물 하나 없이 모두가 쉬지 않고 부지런히 움직이며 끼니를 챙겨먹는 풍경. 하지만 처음 당황했던 상황에서 금세 적응해 너무 척척 잘 맞아 돌아가는 세 사람의 모습은 프로그램으로 보면 다소 심심하게 다가온다.

 

굳이 비교할 일은 아니지만, <삼시세끼>는 지금껏 ‘아무 것도 안하고 세 끼만 챙겨먹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그 안에 인물들끼리의 툭탁거림이나 투덜댐이 예능적 재미를 부여했던 프로그램이다. 이서진은 계속 투덜댔고, 심지어 이 프로그램은 망했다고 선언했던 인물이고, 유해진과 차승원은 살가우면서도 툭탁대는 부부케미를 보여줬다. 아직 진면목이 드러난 건 아니지만 염정아와 윤세아 그리고 박소담은 이들과 비교하면 너무 ‘평화로운’ 정경을 보여준다.

 

그 어딘지 심심함을 나영석 PD가 가만 놔둘 리가 없다. 그래서 슬슬 고기반찬으로 유혹해 감자 한 상자에 1만5천원을 쳐주겠다며 노동을 부추긴다. 이렇게 키워낸 욕망은 향후 장터에서 의외의 재미를 만들어줄 것이고, 거기서 사온 재료들이 식단 또한 풍부하게 만들 것이다. 게다가 서둘러 정우성 같은 초특급 게스트를 투입한다. 정우성의 등장은 프로그램 초반부의 심심함을 한방에 날려버리고 다음 편에 대한 기대감으로 이어놓는다.

 

<삼시세끼>를 워낙 다양한 버전으로 다양한 인물들과 해왔기 때문인지 나영석 PD는 캐스팅부터 과정까지 능수능란하게 어떤 흐름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마음을 열고 들여다보면 이번 편에서 염정아와 윤세아 그리고 박소담이라는 새로운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를 즐기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흡족해지는 걸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너무 여러 번 반복되어 갖게 된 익숙함과 능숙함은 이 프로그램의 최대 난적이다. 시청자들은 이미 그런 자연이 주는 힐링의 시간들을 그간의 <삼시세끼>를 통해 익숙하게 경험해왔다. 그래서 인물은 바뀌었지만 비슷한 패턴으로 보여지는 풍경들은 예전만큼의 감흥을 주기가 어렵다. <삼시세끼>는 여전히 재밌다. 하지만 그 반응은 예전만큼 100%의 호평으로만 이어지지는 않는다.

 

이건 어쩌면 나영석 PD가 지금 처한 가장 큰 난제가 아닐까 싶다. 그는 이제 베테랑이고 자기만의 세계를 확고히 갖고 있지만, 그것이 이제는 대중들에게도 너무 익숙한 세계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 이 문제는 지금도 여전히 재밌지만 앞으로도 계속 더 재밌어지려면 나영석 PD가 반드시 넘어야할 산으로 보인다.(사진:tvN)

'SKY캐슬', 어른들보다 나은 아이들이 있다는 건

“3대째 의사가문. 그거 왜 만들어야 되는데요?” 예서(김혜윤)가 우주(찬희)의 무고를 밝히기 위해 시험지 유출 사건의 진실까지 드러냄으로써 학교를 포기하게 된 사실을 알게 된 윤여사(정애리)가 한서진(염정아)에게 ‘3대째 의사가문’ 운운하며 질책하자 예서는 그렇게 되묻는다. 그걸 마치 당연한 일처럼 여기고 있던 윤여사는 그 질문에 “당연히 가야지” 같은 궁색한 답변밖에 내놓지 못한다. 하지만 예서는 그 ‘당연함’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그니까 왜 당연하냐고요? 도대체 그게 왜 당연한 건데요? 난 할머니하고 다른데. 나이도 외모도 다 다른데 왜 내가 할머니랑 똑같은 생각을 해야하냐고요?” 그러자 그 옆에서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예서 동생 예빈(이지원)이가 한 마디를 거든다. “그러게 그렇게 가고 싶음 할머니가 가시지 그랬어요?” 속이 다 시원해지는 사이다 일갈이다. 거기에 예서가 마무리 한방을 날린다. “서울의대를 가든지 말든지 이제 내가 결정할 거예요. 할머니가 이래라저래라 상관하지 마세요.”

JTBC 금토드라마 <SKY 캐슬>은 활짝 열렸던 지옥문이 이제 하나씩 정리되며 닫혀간다. 그런데 그렇게 된 건 이렇게 ‘똑 부러지는’ 아이들이 있어서다. 예서를 서울대 의대에 보내기 위해 우주의 무고도 밝히지 않고 시험지유출 사건도 숨긴 채 버티려 했던 한서진은 결국 아이들 때문에 마음을 돌린다.

이 집의 예빈이는 어른들보다 더 무섭게 일침을 가하는 인물이다. 혜나(김보라)가 숨은 딸인 줄도 모르고 장례식날 골프를 간 아빠 강준상(정준호)에게 “아빠가 사람이야?”라고 일갈했던 것도 바로 예빈이었다. 예빈은 한서진에게도 정신이 번쩍 드는 한 마디를 던진다. 학원 안갔냐는 물음에 가시 돋친 속내를 드러낸 것. “어. 뭐 하러 학원을 가? 뭐하러 공부를 하냐구? 빼돌린 시험지로 100점 맞으면 되는데. 엄마가 강예서보다 더 나빠. 개실망이야.”

예빈의 그 말은 한서진을 충격에 빠뜨린다. 예서를 어떻게 서울대 의대에 보낸다고 하더라도 그 때부터 지옥문이 열릴 거라는 이수임(이태란)의 말을 실감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예빈은 집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하나하나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아이가 보고 있다는 것. 그래서 숨긴 사실은 결국 아이를 엇나가게 만들 수 있다는 걸 한서진은 실감하게 됐다.

예서 또한 우주가 그 차가운 구치소에서 고생을 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잠을 자지 못한다. 그걸 본 한서진은 밤새워 고민 끝에 결국 예서에게 모든 걸 제자리로 돌려놓자고 말한다. 김주영(김서형)이 시험지를 유출하고 혜나를 죽게 했다는 사실을 모두 밝히자는 것. 그런데 그 의미는 예서가 모든 걸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시험지 유출 사건이 밝혀지면 지금껏 해왔던 예서의 노력이 모두 매도될 수 있고 자퇴를 해야 하는 일이었다. 모든 게 자신의 탓이라며 자책하고 버틸 수 있겠냐는 한서진의 질문에 예서는 오히려 단단한 답변을 내놓는다. “걱정마 엄마. 내 실력은 내가 증명해 보일께.”

이제 다음 주 마지막회만을 남기고 있는 <SKY 캐슬>을 되돌아보면, 어른들은 어른답지 못했던 반면 아이들은 오히려 어른스러웠다는 걸 깨닫게 된다. 지나친 기대 때문에 하버드에 들어갔다고 거짓말을 하다 덜미를 잡혀 집으로 돌아온 딸 세리(박유나)에게 차민혁(김병철)이 ‘실패작’이라고 말하자 세리가 던진 일갈이 남기는 여운이 그렇다. “아빠 지금 나한테 실패작이라고 했어? 내가 왜 실패작이야? 아빠야말로 실패한 인생이야. 자식한테 존경받는 부모가 성공한 인생이라는데 너희들 아빠 존경해?” 동생들이 모두 아니라고 하자 세리는 “봤지 아빠? 실패작은 내가 아니라 아빠야. 아빠야말로 제일 불쌍해. 아빠는 철저히 실패했어. 바닥이야 빵점!.”

결국 <SKY 캐슬>의 파국을 막은 건 아이들이다. 물론 혜나가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지만, 그로 인해 대신 우주가 누명을 썼고 그걸 보다 못한 예서가 많은 걸 포기하면서 친구를 선택함으로써 파국은 거기서 멈출 수 있었다. 어른들의 욕심 때문에 지옥문 속으로 들어가던 걸 막아 준 이들이 다름 아닌 아이들이었다는 사실은 결국 교육의 목표가 아이들의 행복에 있는 것이 아니냐는 드라마의 메시지를 담아낸다. 어른들은 늘 “아이를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무엇이 진정 아이를 위한 일일까. 아이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귓가에 쟁쟁한 울림으로 다가온다.(사진:JTBC)

'SKY캐슬' 학부모와 아이들의 피눈물로 세워진 피라미드 사회

매 회 피눈물의 연속이다. 아마도 이건 어쩌면 JTBC 금토드라마 <SKY 캐슬>이 초반에 보여준 영재네 집안의 비극에서부터 이미 예고되었는지도 모른다. 서울대 의대에 들어갔지만 부모와의 연을 끊어버린 영재(송건희) 때문에 그 엄마 명주(김정난)가 자살하고 아빠인 박수창(유성주)은 거의 폐인이 된 바 있다. 그리고 그 뒤에는 김주영(김서형)이라는 괴물 입시 코디네이터가 있었다.


이제 그 피눈물은 한서진(염정아)의 집안으로 들이닥쳤다. 김주영을 자신의 딸 예서(김혜윤)의 입시 코디네이터로 붙이게 되면서 한서진은 조금씩 자신의 욕망이 자신을 지옥 속으로 밀어넣었다는 걸 뒤늦게 깨닫게 됐다. 딸 예서를 서울대 의대에 반드시 보내야 한다는 욕망과 집착은 김주영이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는 인물이라는 걸 알면서도 딸을 맡기게 만들었다. 결과는 파국이었다.

예서를 전교 1등 만들어준 것이 김주영이 시험지를 빼돌렸기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된 혜나(김보라)가 이를 갖고 협박하자 김주영은 혜나를 살인교사했고 대신 황우주(찬희)를 용의자로 만들어버렸다. 그 사실을 알았지만 한서진이나 예서는 김주영의 덫에 걸려버렸다. 사실을 밝히면 시험지 유출 사실도 발각되게 되고 그러면 0점 처리 될 성적과 쏟아질 비난이 그들을 공포로 몰아넣었기 때문이다.

혜나가 자신의 숨겨진 딸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는 분노한 강준상(정준호) 역시 김주영을 찾아갔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차마 딸 예서까지 비극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잘못 때문에 딸이 지옥 속에 빠져버렸다는 걸 알고는 예서 앞에서 피눈물을 흘리는 한서진. 자신 때문에 자신이 좋아하는 우주가 용의자로 몰려 구치소에 있다는 사실과 시험지 유출이 드러날 경우 매장될 수 있다는 공포 속에 피눈물 흘리는 예서. 자신의 권력욕 때문에 혜나를 죽음에 이르게 만들고 예서 또한 위기로 몰아넣은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후회하며 피눈물 흘리는 강준상.

그런데 그 피눈물은 이미 윗대에서부터 시작됐던 것이었다. 강준상의 어머니인 윤여사(정애리)가 강준상을 그렇게 키웠던 것. 서울대 의대에 보내기 위해 어떤 짓이든 했던 윤여사의 그 과거는 마치 예서를 서울대 의대에 보내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는 한서진으로 그대로 이어지고 있었다. 뒤늦게 예서가 잘못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강준상이 윤여사에게 서울대 의대니 병원장 같은 허울 대신 “그냥 엄마 아들”이면 안되냐고 묻는 대목은 그래서 뼈아프다.

<SKY 캐슬>의 피눈물은 노승혜(윤세아)와 차민혁(김병철)의 집안에서도 쏟아져 내렸다. 아이들에게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서야 한다고 강변하며, 폭력적인 훈육을 일삼았던 차민혁은 결국 노승혜의 이혼 서류를 받게 됐다. 아이들과 집을 떠나버린 노승혜는 마지막으로 차민혁에게 남긴 반성문에서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그로부터 아이들을 힘겹게 한 자신을 반성한다는 글을 남겼다. 피라미드 조형물만 남견 텅 빈 집에서 차민혁은 피눈물을 쏟아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학부모와 아이들이 흘리게 된 피눈물은 무엇 때문에 생겨난 것일까. 김주영이라는 절대 악역이 촉매제로 들어가 있지만, 실상 그 피눈물의 연원은 자신들이 가진 엇나간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피라미드 경쟁사회에서 꼭대기에 서기위해 아이들에게 가해진 폭력적인 일들과,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일이라며 자행된 불법적인 행위들이 결국은 부메랑처럼 돌아와 자신들의 파국을 만들었던 것.

<SKY 캐슬>은 치열한 입시 경쟁에 뛰어든 대한민국 0.1% 부모들의 사교육 전쟁을 소재로 했지만, 어느새 우리네 사회 전체의 시스템이 어떤 욕망으로 굴러가고 있고, 그것이 어떤 파국을 예고하는가를 냉엄한 목소리로 꾸짖고 있다. 매회 이어지는 학부모와 아이들의 피눈물을 통해. 도대체 무엇을 위해 우리는 이런 바보 같은 피라미드 경쟁에 뛰어들게 되었을까.(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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