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시대로 바뀐 예능, 그래도 유재석이다

 

9일 여론조사기관인 한국갤럽이 연말을 맞아 조사한 올해를 빛낸 개그맨’ 1위에 유재석이 올랐다. 올해만이 아니라 4년 연속 1위다. 전체 응답자 가운데 절반 이상인 51.3%가 유재석을 꼽았다고 한다.

 


'런닝맨(사진출처:SBS)'

물론 개그맨을 뽑는 것이니 그 중에서 유재석을 넘어설 인물을 찾기는 쉽지 않다. 유재석은 매년 해왔던 한국갤럽의 조사에서 2007년부터 2015년까지 단 두 차례(2010년 강호동 2011년 김병만)를 제외하고 전부 1위를 차지해왔다. 심지어 2010, 2011년에도 유재석이 단 몇 프로 차이로 2위에 랭크되어 있으니 사실상 거의 매년 부침없이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낸 유일한 개그맨이 아닐 수 없다.

 

올해 조사 결과에서 눈에 띠는 건 2위에 이국주가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4위에 김준현(SNL코리아), 6위에 정형돈(무한도전, 냉장고를 부탁해), 7위에 박나래(코미디빅리그), 9위에 신동엽(SNL코리아, 마녀사냥, 수요미식회)이 나란히 들어 있어 예능에서 지상파보다 비지상파(tvNJTBC)의 성장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된 건 다분히 과거 스타 MC 파워에서 이제는 스타 PD 파워로 예능의 지분이 변화하고 있다는 걸 상당부분 드러내는 일이다. 비지상파가 이처럼 힘을 발휘하는 이유는 지상파의 스타 PD들이 대거 비지상파로 거처를 옮긴 일과 무관하지 않다. 이제 유재석도 강호동도 어떤 PD를 만나느냐에 따라 부침을 겪을 수 있다. 그들이 최근 나란히 JTBC 예능의 문을 두드린 건 이런 변화를 잘 말해준다.

 

중요한 건 이처럼 스타 MC 시대가 저불고 대신 스타 PD 시대가 열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재석의 존재감이 그 어떤 개그맨들보다 강렬한 한 해로 남는다는 점이다. 그는 여러 사건 사고들이 많았던 <무한도전>에서도 여전히 중심을 잡아주고 있고, 상대적으로 관심이 줄어든 <런닝맨>에서도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동상이몽 괜찮아 괜찮아> 같은 관찰카메라 시대에 일반인들과 함께 하는 스타MC들의 새로운 위치를 만들어내기도 했고, <투유 프로젝트-슈가맨>을 통해 이제 지상파와 다름없는 비지상파의 본격적인 물꼬를 트게 하기도 했다.

 

특히 올해 유재석의 존재감이 확실히 느껴졌던 장면들은 <런닝맨><무한도전>에서 수십 혹은 수백 명의 출연자들을 마치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하나하나 배려해가며 프로그램을 이끌었던 그 놀라운 진행 능력이었다. <런닝맨> ‘100 vs 100’ 특집은 무려 200명이나 되는 출연자들이 체육관에 모여 대결을 벌이는 콘셉트였는데, 자칫 무리수가 될 수밖에 없었던 아이템을 유재석은 발군의 진행능력으로 살려냈다. 또 방송국 PD들을 잔뜩 모아놓고 했던 <무한도전> ‘무도드림자선 경매쇼에서도 이런 유재석의 진행능력은 여지없이 발휘되었다.

 

확실히 스타 MC의 파워는 이제 거의 사라져가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아마도 유재석 스스로도 인정하는 바일 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유재석은 의기소침하기보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도전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에 10을 보여줬다면 지금은 20을 보여주는 격이다. 그를 유느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그저 허명만이 아니라는 걸 그의 올해 남다른 도전이 증명해 보여주고 있다.



아쉬움도 예능으로, <12>의 이별이란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기 마련이지만 구탱이형 김주혁을 보내는 <12>의 마음이 헛헛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만큼 맏형으로서의 비빌 언덕 하나가 사라지는 듯한 아쉬움. 그러니 김주혁이 떠난 그 맏형의 자리를 김준호가 극구 싫다며 차태현에게 넘기려 한 건 단지 그 부담감 때문만은 아니었을 게다. 늘 김주혁이 서 있던 그 자리가 이제 빈다는 것이 낯설게 느껴졌을 테니.

 


'1박2일(사진출처:KBS)'

하지만 <12>은 그 아쉬움도 예능으로 풀어낸다. 들어올 땐 맘대로 들어와도 나갈 땐 맘대로 못 나간다며 김주혁의 마지막 촬영을 고난의 시간으로 채워 넣으려 한 것. 처음 만났을 때 그랬던 것처럼 새벽 잠자리에 기습해 잠을 깨우고, 미리 짜놓은 대로 가장 가기 힘든 여행지 고흥을 선택하게 만든다. 고흥에는 몸으로 하는 예능의 성지(?)’가 되어버린 갯벌과 꼬막채취가 기다리고 있다.

 

힘든 일정을 함께 소화해가며 멤버들은 이게 다 김주혁 탓이라고 몰아세운다. 김주혁이 하차하는 것 때문에 이렇게 어려운 하루를 보내게 됐다는 것. 그러니 뻘밭에서 게임을 하며 김주혁을 공격하는 일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얻은 꼬막으로 저녁 식사 요리를 놓고 벌인 경매에서도 동생들은 김주혁이 꿈꾸던 소박한 식사를 못하게 방해하며 즐거워한다.

 

부친인 고 김무생이 방송을 통해 증언한 것처럼 김주혁은 속내를 잘 표현하지 않는 무뚝뚝한 성격이란다. 그러니 괜스레 하차하는 걸 갖고 동생들이 울적해하거나 마음 쓰는 걸 김주혁은 원치 않았을 터다. <12>은 그래서 평상시보다 더 세게 하던 대로의 복불복을 진행했을 것이다. 동생들도 그 어느 때보다 김주혁에게 짓궂은 장난을 걸었을 테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보면 고흥으로 간 <12>은 김주혁의 마지막 촬영이라고 해도 특별히 다를 바 없는 한 회로 채워진 느낌이다. 이런 방식은 <12>이 왜 여전히 인기 있는지를 잘 설명해준다. 사실 <12>은 꽤 많은 변화가 있었다. 시즌2는 프로그램의 존폐를 얘기할 정도로 위기 상황도 겪었다. 하지만 시즌3에 와서 다시 안정기를 되찾았다.

 

출연자가 들어오고 나가는 상황은 사실 <12> 같은 리얼 버라이어티 형식에서는 큰 사건이지만, 유호진 PD가 이를 대하는 방식은 지극히 차분하다. 아쉬움이 있고 그 빈자리가 큰 건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대단히 호들갑을 떨거나 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어쩌면 유호진 PD가 생각하는 여행이고, <12>일 지도 모른다. 여행이라는 것이 본래 거창하지 않아도 함께 만나고 떠나고 헤어지는 일을 반복하는 일이 아닌가. 그것이 우리네 사는 모습이기도 하고.

 

유호진 PD가 그간 2년 동안 <12>이 찾아간 곳을 채워 넣은 지도는 전국 방방곡곡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만큼 빽빽했다. 그렇게 한 회 한 회 걷다보면 그렇게 거대한 족적이 남겨진다는 걸 그 지도 한 장이 보여준다. 그리고 그 지점 하나를 손으로 찍으면 그 때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돋아난다. 김주혁은 그 많은 기억들 속에서 오래도록 남아있을 것이다.

 

아쉬움을 예능으로 풀어낸 <12>이 맏형 김주혁을 떠나보내는 방식은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더 즐거워 보이면서도 그 안에서 페이소스가 묻어난다. 그것은 10년을 달려온 <12>을 우리가 떠올릴 때 갖게 되는 감정이기도 하다. 먼저 왁자한 웃음이 피어나오지만 한편으로는 아련한 느낌을 갖게 만드는 그런 감정. 그 많은 만남들이 사실은 늘 헤어짐을 내포하고 있었다는 데서 오는 흐뭇하고 아쉬운 그 느낌.



논란만 가중시킨 <슈퍼맨><장영실>의 콜라보

 

송일국이 KBS 대하사극 <장영실>에 출연하겠다는 의사를 보였을 때 많은 이들이 우려를 표했다. 그가 이미 출연하고 있는 <슈퍼맨이 돌아왔다><장영실>을 동시에 소화해낸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저 보통의 드라마라면 모를까 <장영실>은 사극이다. 사극은 그 특성상 노동 강도가 높고 때로는 산 속에 들어가 며칠씩 촬영을 하기도 한다.

 


'슈퍼맨이 돌아왔다(사진출처:KBS)'

그래도 KBS로서는 송일국을 <장영실>에서도 또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도 포기하기 어려웠을 게다. 송일국은 <주몽> 이후에 이렇다 할 연기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주몽>에서 보여줬던 그 저력은 여전히 사극에서 그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만든다.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사실상 송일국과 삼둥이에 의해 견인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하차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KBS가 생각해낸 건 이 둘을 엮어보려는 것이었나 보다.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송일국이 아이들에게 아빠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아냐고 물어보고 그걸 잘 모른다고 하자 배우라고 말해주지만 여전히 그게 뭔지 모르는 모습을 보여준 건 다분히 <장영실>과의 연계를 염두에 둔 포석처럼 보인다.

 

그리고 역시나 아빠 송일국의 <장영실> 촬영현장을 찾은 삼둥이의 모습이 스틸로 공개됐다. 그 사진 속에서 삼둥이는 거지 분장을 한 채 흙바닥에서 장난을 치고 송일국이 태워주는 수레에서 즐거워하는 모습이다. <장영실>을 찍으면서 송일국은 그렇게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통해 간간히 그 비하인드를 삼둥이와 함께 보여줄 수 있다. 그건 <장영실>이라는 사극의 자연스러운 홍보효과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이 홍보효과가 거꾸로 역효과를 내고 있다. 사진 몇 장이 공개된 것뿐이지만 금수저 논란까지 가세되는 모양새다. 배우인 아빠를 둔 아이들이 촬영현장에 가서 분장도 하고 사극을 체험하는 모습은 일상적인 아빠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아이들이 거지 분장을 하고 나오자 항간에는 흙수저 흉내냐는 얘기까지 나온다.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겠나. 다만 그걸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정서가 그리 곱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송일국과 삼둥이에게 만들어지고 있는 금수저 이미지<장영실>이라는 사극에도 그다지 도움이 될 것 같지가 않다. 장영실이 누구인가. 천출로 태어나 평생을 노비로 살아갈 뻔한 인물이다. 그러니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때만 되면 화보모델처럼 단장하고 나와 사진을 찍고 그것이 화제가 되는 집안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다고 할 수밖에 없다.

 

<슈퍼맨이 돌아왔다><장영실>의 만남이 그다지 좋은 효과를 낼 것처럼 여겨지지 않는 건 그래서다. 아이들이 너무 많이 방송에 노출되고 소비되는 것에 대해서 시청자들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또한 서민들의 삶과는 너무나 다른 그 괴리감에 불편함도 호소하고 있다. 만일 이러한 우려와 불편함이 <장영실>이라는 드라마를 보는 데에도 어떤 몰입감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면 그 후폭풍은 송일국이 고스란히 맞을 수 있다



금수저 논란은 실력이 아닌 불공평한 기회의 문제

 

이젠 정말 혜정이가 연기력으로 증명하는 길 밖엔 없다고 생각된다.” 조혜정의 금수저 논란이 점점 커져가는 가운데 그녀의 오빠인 조수훈은 자신의 SNS에 이런 글을 남겼다. 오빠로서 동생에게 쏟아지는 악플이 못내 안타까웠을 것이다. 그러니 계속해서 그가 동생을 위해 이런 저런 해명을 하고 있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아빠를 부탁해(사진출처:SBS)'

하지만 이번 금수저 논란이 마치 연기력을 통해 그 캐스팅을 증명함으로써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사안을 너무 간단하게 바라보는 일이다. 사실 금수저 논란은 연기력과는 무관하다. 대중들이 불편하게 생각하고 있는 건 연기력을 검증받지 못했는데 캐스팅 됐다는 것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기회의 문제다. 세상에는 실력이 있어도 기회를 얻지 못해 좌절하는 청춘들이 넘쳐난다.

 

물론 조수훈은 자신은 물론이고 자신의 동생 혜정도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그는 SNS혜정이가 다른 연기 지망생분들에 비해 너무나도 큰 혜택을 받고 있는 것을 안다고 했고, “저는 살면서 단 한 번도 부모님 덕으로 받는 것을 당연히 여기지 않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았다. 혜정이도 그 사실을 안다고 말하기도 했다. 즉 부모님의 혜택이 있다는 걸 스스로도 인정하지만 그걸 늘 감사하며 살고 있다는 얘기다.

 

대중들의 반감이 조혜정에게 집중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금수저 논란은 그런 개인적인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즉 그녀가 <상상고양이>에 캐스팅 되면서 보다 촉발됐다는 것일 뿐 그녀에게만 해당되는 사안은 아니라는 점이다. 사적으로야 그녀가 얼마나 연기를 하고 싶어 했는가를 방송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 일이고, 그녀가 <아빠를 부탁해>를 통해 보여준 착한 심성을 이해 못하는 일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 사안은 그런 개인적인 심성의 문제나 검증받지 못한 실력의 문제와는 무관한 상대적 박탈감과 불균등한 기회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되는 일이다. 누구는 부모 덕분에 방송 출연을 하고 그 방송을 통해 자연스럽게 높여진 인지도로 이런 저런 드라마에 쉽게 캐스팅이 되는 그 사회적 구조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우리는 가끔씩 드라마를 보면서 이렇게 연기 잘하는 배우가 왜 이제야 얼굴을 보여줬지 하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이른바 중고신인들도 많다. 사실상 지금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배우들은 꽤 오랜 세월동안 연극판에서 박봉에 시달리며 힘겨운 삶을 살아왔던 이들이 많다. 그들이 말해주는 건 무엇인가. 결코 연기자의 길이라는 게 단기간에 쉽게 제 존재를 드러내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만일 조혜정이 진정한 연기자의 길을 가기로 마음먹었고, 아버지 조재현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아빠를 부탁해>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는 애초에 나오지 않는 편이 나았다. 그것은 조혜정으로서는 연기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일이 아니라 조재현이라는 아버지와의 관계로 자신을 먼저 드러내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아버지와의 관계를 통해 방송에 출연하고 캐스팅 기회까지 쉽게 얻을 수 있었던 것이 팩트다. 대중들은 어쩌다 기회가 불균등하게 주어지는 이 일련의 과정을 보게 된 것이고 그것이 못내 불편하게 되었던 것이다. 조혜정에게 쏟아지는 불편한 감정은 그래서 그녀에 대한 사적인 감정이 아니라 이런 불공평한 사회적 구조에 대한 것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러니 그녀가 좋은 연기력을 보인다고 해서 금수저 논란은 해결될 수 없다. 그건 연기력과 무관한 기회의 문제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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