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로 음악을 즐기는 다양한 방법

'나는 가수다'(사진출처:MBC)

음악은 얼마나 즐거운 것인가. '무한도전-서해안고속도로 가요제'는 음악이 전하는 교감의 즐거움을 전해주었다. 어색함이 매력으로 발산된 정형돈과 정재형의 언발란스하면서도 진지한 탱고의 선율과, 음악을 통해 신구세대의 교집합을 만들어낸 박명수와 지드래곤의 디스코풍 리듬, 에너지의 끝을 보여준 노홍철과 싸이, 서로의 아픔까지 공감하며 음악으로 승화시킨 길과 바다, 강렬한 중독성의 음악을 선보인 정준하와 스윗소로우, 자유로움을 음악으로 탄생시킨 하하와 10cm, 그리고 흥겨운 한바탕 무대 뒤에 깊은 감동을 전해주었던 유재석과 이적. '무한도전'이 보여준 음악은 결과로서 보여지는 무대 위의 전율이 아니라 과정 자체가 주는 감동이었다.

'무한도전'이 무대 바깥의 감동이라면, '나는 가수다'는 무대 위의 전율이다. 감미로움과 기교의 끝을 보여준 정엽, 귀에 척척 감기는 감칠맛 나는 목소리의 김건모, 호소력 짙은 백지영, 단단하게 느껴지는 미성의 김연우, 깊은 울림의 JK 김동욱, 감성적인 이소라, 한이 뚝뚝 떨어지는 애끊는 가성의 조관우, 도전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김범수,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목소리의 박정현 등등... 이 프로그램은 지금껏 TV에서 보기 힘들었던 가창력 가수들을, 그리고 그들이 부르는 전율의 명곡들을 재발견하게 만든다.

'나는 가수다'가 어른들(?)의 무대라면 '불후의 명곡2'는 절정의 가창력을 가진 아이들의 무대다. 한 시대를 풍미한 가수를 모셔놓고 그 가수의 노래들을 재해석해 아이돌이 부르는 풍경은 신구세대 간의 교감의 즐거움을 준다. 그 과정에서 아이돌들에 대한 편견이 깨지고 그들도 풍부한 가창력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폭풍가창력의 효린, 호소력 있는 목소리의 이홍기, 감성이 돋보이는 지오, 즐거운 무대를 선사하는 창민, 에너지가 느껴지는 준수... 아이돌이 부르는 절정의 노래 앞에 감동하는 선배가수와 관객을 보는 재미가 쏠쏠한 프로그램이다.

한편 '톱밴드'는 지금껏 TV가 외면해왔던 밴드 음악을 소개한다는 점에서 특별하면서도 큰 의미가 있다. 가창력만이 아니라 악기 연주가 있고, 유행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재기발랄한 개성이 있으며, 혼자만의 음악이 아니라 밴드 전체의 조화와 균형이 있다는 점에서 이 밴드들의 경연장은 색다른 감동을 선사한다. 특히 이미 실력을 인정받은 인디밴드들처럼 지금껏 방송에 출연하지 못했던 뮤지션들을 만난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심사를 해야 할 심사위원들이 심사가 아닌 감탄을 하는 이색적인 풍경은 이 프로그램이 주는 덤이다.

또한 경연이 아닌 서로 하모니를 맞춰가며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남자의 자격-청춘합창단'의 감동 역시 빼놓을 수 없다. 50세 이상 어르신들로 구성되는 이 '청춘합창단'의 남다른 이야기는 그 삶이 녹아있는 어르신들의 노래에서 나온다. 이미 먼저 세상을 떠나버린 아들을 위해 노래 부르고, 결혼을 하는 딸 앞에서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래 부르는 어르신들에게 조금 힘에 부치는 발성과 음정 박자가 뭐가 중요할까. 그래서 이 프로그램은 음악과 인생을 생각하게 만든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TV로 음악을 즐기는 방법은 그다지 다양하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어느 정도 다양함이 있다고 해도 그걸 즐길 수 있을 만큼 편성이 공정하지 못했다. 프라임타임대에 들어가 있는 음악프로그램은 대형기획사와 아이돌 중심으로 편제된 '뮤직뱅크', '음악중심', '인기가요'가 유일했다. 좀 더 다양한 라이브 음악을 들으려면 KBS '유희열의 스케치북'이나 MBC '음악여행 라라라' 혹은 EBS '스페이스 공감'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됐지만, 이 프로그램들은 모두 자정에 편성되었다. 게다가 '음악여행 라라라'는 작년 10월 종영해버렸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 상황은 바뀌었다. TV의 프라임타임대는 이제 거의 음악이 장악하다시피 하고 있는 상황. 오디션 프로그램을 비롯한 이른바 음악 예능이 대세로 자리하면서다. '나는 가수다'가 주말 예능의 모든 이슈를 잡아먹으면서 이제 오디션 형식은 지상파가 우선 건드려야할 지상과제가 되었다. 또한 '세시봉'이나 '하모니' 같은 음악을 소재로 한 특집이 화제를 모으면서 기존 예능 형식들, 즉 토크쇼나 리얼 버라이어티쇼에서도 너나 할 것 없이 음악을 접목하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이토록 음악이 우리네 방송의 중심에 선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어쨌든 음악도 골라보는 재미가 생긴 요즘, 이제 음악을 좀 더 제대로 느껴보고 싶다면 TV를 켤 일이다. 각자 취향에 따라, 기호에 따라 음악을 즐겨볼 일이다.

가수들의 예능출연을 바라보는 두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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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수다'(사진출처:MBC)

우리 시대, 가수란 도대체 어떤 존재일까. 가수의 정체성을 묻는 질문은 해묵은 것처럼 보인다. 즉 90년대 비주얼을 내세운 기획형 아이돌 그룹들이 등장했을 때도 이 질문은 등장했었다. 하지만 그 때로부터 또 많은 것들이 변했다. 디지털 환경을 맞아 음반시대가 저물고 음원시대가 열렸다. 가수들은 더 이상 노래만 해서는 살아남기 어려운 상황을 맞이했고 재빨리 대형기획사들은 방송사에 드라마에서부터 예능까지 아이돌들을 포진시켰다. TV 어디를 틀어도 아이돌을 발견할 수 있는 시대가 되어갈수록 '노래만 하는 가수들'이 설 무대는 점점 사라졌다.

가수들의 '예능-드라마 러쉬'가 이어졌다. 예능과 드라마를 모두 석권하고(?) 이른바 트리플 크라운을 이룬 이승기의 등장은 모두들 그를 경이롭게 바라보게 했지만, 이제 아이유가 '영웅호걸'에 출연하고 '드림하이'에서 연기를 한다고 해서 호들갑을 떠는 이들은 없다. 그만큼 가수들의 예능 드라마 출연은 그다지 새로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예능 프로그램이 아이돌뿐만이 아니라 이른바 '노래만 하는 가수들'이 설 자리까지 마련해주었다는 점이다. 아무도 찾아주지 않던 '세시봉 친구들'은 '놀러와'에 놀러온 후 세간에 주목을 받았다.

'세시봉 친구들'에서 확인한 것은 예능이 '노래하는 가수들'을 끌어안았을 때 엄청난 시너지 효과가 나온다는 것이었다. 토크쇼에 나온 가수들은 노래에 스토리를 엮었다. 김태원은 '네버 엔딩 스토리'의 탄생배경을 특유의 재치 있는 입담으로 전해주었고, '세시봉 친구들'의 노래는 그들의 전설 같은 세시봉 시절 스토리와 결합되어 환상의 하모니가 되었다. 노래가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노래에 스토리가 곁들여지면서 노래에 대한 집중도가 그만큼 높아졌던 것이다.

이 변화하는 가수들의 환경과 대중들의 기호를 재빠르게 포착해 예능으로 끌어들인 건 쌀집아저씨 김영희 PD였다. 그는 '나는 가수다'를 통해 '노래하는 가수들'의 노래 자체에 대한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한편, 그 노래를 위한 최고의 무대도 만들었다. '세시봉'이 우연한 발견이었다면 '나는 가수다'는 적극적인 기획의 산물이었다.

'나는 가수다'는 제목처럼 가수의 정체성을 묻는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논란을 야기했다. 즉 가수들이 '서바이벌' 같은 혹독한 예능의 장치 속에 들어가면서까지 노래를 해야 하는가 하는 전통적인 가수상에 힘이 실린 비판적 관점과, 가수들도 달라진 대중문화의 환경 속에 들어와 노래해야 한다는 우호적 관점이 갈렸다. 실제로 '나는 가수다'에서 노래를 부른 가수들의 곡은 순식간에 음원차트를 쓸어버렸다. 신보를 내고 활동을 하는 아이돌들이 순위권 바깥으로 밀려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가수의 예능 출연에 대한 엇갈린 두 시선. 이것은 대중음악의 예능 종속인가, 아니면 예능과의 동거인가.

이러한 대중음악과 예능이 한 틀 속에서 공존하게 된 것은 예능의 환경이 바뀌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리얼 예능이 등장하면서 무언가 예능적인 기술들, 예를 들면 연기력이나 개인기 같은 것들이 그다지 필수요건이 되지 않게 됨으로써 현재 예능은 장르와 상관없이 거의 모든 인물들을 끌어들이는 블랙홀이 되었다. 김태원 같은 전설의 기타리스트가 국민할매로 불리고, 양준혁 같은 야구의 전설이 '남자의 자격'에 출연하게 된 건 모두 이 리얼 예능이라는 형식 덕분이다. 리얼 예능은 거꾸로 리얼리티를 더 강조해야 한다는 점에서 점점 더 개그맨 같은 예능 기술자(?)들에서 멀어져 새로운 분야의 인물들로 넓혀져 가는 추세에 있다.

'나는 가수다'는 가수들이 예능의 콘테스트 형식 속으로 들어온다는 점에서 단지 예능 출연을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가수들의 정체성 논란이 더 증폭된 것은 그 때문이다. 음악 프로그램이 하지 못하는 것을 예능이 해줄 때, 음악은 또한 예능에게 해줘야할 몫이 있게 마련이다. '왜 가수는 그저 노래만 하면 안 되는가', 하는 일부 전문가들의 지적은 일견 타당하지만, 이미 스토리텔링과 맞물리고 대중들과 더 밀착되어 호흡하기를 요구받고 있는 현 상황에서 이런 지적은 심지어 보수적으로까지 읽힌다.

이제 달라진 환경 속에서 질문은 '왜 가수는 그저 노래만 해야 하는가'로 바뀌고 있다. 물론 애호가들이나 전문가들은 그저 노래만으로도 가수들의 음악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는 콘텐츠들 속에서 대중들에게 노래는 배경음악이 되어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 배경음악을 다시 집중해서 듣게 만드는 방법으로서 예능의 툴은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완전히 새로운 일도 아니다. 한때 뮤직비디오라는 이름으로 음악이 영상의 서사를 빌려왔던 것이나, 또 영화나 드라마 OST라는 장치를 빌어 스토리텔링을 하려 했던 것들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경규-유재석-강호동, 3인 체제 언제까지 갈까

결국 SBS 연예대상은 예상대로 강호동이 받았다. 이것이 지극히 당연한 수상이라고 생각되는 건, 올해 SBS 예능 프로그램에서 단연 주목되는 두 프로그램, '강심장'과 '스타킹'을 그가 모두 이끌었기 때문이다. 이 두 프로그램이 올해 SBS 연예대상을 거의 휩쓸었다는 점은 이런 분위기를 잘 말해준다. '강심장'은 이승기에게 최우수상을 안겨주었고, '스타킹'은 올해의 프로그램상을 받았다. 강호동은 그 중심에 서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강호동이 SBS 연예대상을 수상함으로써 KBS 연예대상의 이경규, MBC 연예대상의 유재석과 함께 지상파 예능의 삼등분할이 완성되었다는 점이다. 강호동의 수상소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강호동은 먼저 KBS 연예대상에서 이경규가 수상소감으로 한 말을 끄집어냈다. "후배들에게 어떤 길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그 말에 답하듯 강호동은 그 길을 "무소의 뿔처럼 달려 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이어서 자신에게는 "유재석 라이벌이라는 말이 가장 큰 찬사"라며 유재석에게 "재석아, 같이 가자"고 말했다. 이경규라는 지향점을 향해 유재석과 함께 걸어가겠다는 강호동의 다짐이었다.

이로써 향후 예능 프로그램은 당분간 이들 세 사람의 영향력 하에 놓일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각자 예능의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자신들만의 독특한 색깔은 프로그램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이경규는 '남자의 자격'처럼 아저씨 예능 프로그램의 선두주자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아저씨라는 세대적 공감대가 바탕이 되기 때문에 이경규라는 존재는 그 자체로 예능 프로그램의 외연을 확장시킨다. 무리함이 없고 편안하면서도 아저씨라는 위치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감동도 빼놓을 수 없다.

강호동은 스포츠 선수 출신 특유의 강인함이 돋보인다. 그가 이끌고 있는 '1박2일'은 그의 캐릭터가 반영된 야생 버라이어티의 포문을 열었다. 돌발적인 상황에 대한 특유의 순발력은 '1박2일'의 리얼리티로 드러나고 있다. 한편 '강심장'과 '스타킹'은 다른 프로그램이지만 강호동의 역할은 유사하다. 한쪽은 연예인들이, 다른 한쪽은 일반인들이 출연한다는 차이가 있지만, 출연진들의 끼와 독특한 스토리를 조명한다는 점에서 이 두 프로그램은 공통점이 있다. 강호동은 온몸을 던져 그 출연진들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한다.

유재석은 특유의 '배려 토크'와 성실성으로 출연진들마저 돋보이게 하는 장기를 갖고 있다. '놀러와'나 '해피투게더'는 그가 가진 특유의 편안함을 프로그램화 하고 있다. 올해 '추억의 세시봉'으로 대변되는 옛 추억이 토크쇼에서 한 몫을 차지한 것은 유재석이 가진 융화력이 그 힘을 발휘했다고도 볼 수 있다. 이처럼 그의 융화력은 세대적인 폭까지 넓힌다는 점에서 예능에서 주목되는 점이다. 한편 그의 아이콘이 된 '무한도전'은 그의 성실함이 잘 묻어난 프로그램이다. 힘겨운 도전에도 포기하지 않는 그의 근성은 예능 자체의 도전정신을 늘 일깨운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 세 사람의 영향력은 프로그램을 통해서 형성된 나름의 라인들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전체 예능의 판도를 만들어낸다고도 말할 수 있다. 이경규는 '남자의 자격'을 중심으로 세우고 '해피 버스데이'나 '붕어빵' 같은 다양한 형식의 토크쇼로 외연을 확장해나가고, 무엇보다 케이블TV 나들이를 통한 향후 종편 이후의 변화까지도 포석에 넣고 있다. 그 과정에 다양한 라인들이 생겨난다. 이수근은 그렇게 라인이 형성된 대표적인 인물이다.

유재석은 '무한도전' 멤버들과의 1차적 라인을 통해 '놀러와'나 '해피투게더' 같은 토크쇼로 그 영역을 넓히고 '런닝맨' 같은 새로운 버라이어티의 구축을 노린다. '무한도전'에서부터 길은 '놀러와'로, 하하는 '런닝맨'으로, 박명수는 '해피투게더'로 확장된 인물들이다. 한편 강호동은 '1박2일'을 주축으로 세우지만 특정 라인을 세운다기보다는 한 프로그램을 통해 알게 된 인사들을 타 프로그램에 끼워 넣는 힘을 발휘한다(물론 '강심장'의 이승기는 그의 가장 강력한 라인이지만). '무릎팍 도사'에서 만난 양준혁이 '1박2일'의 명사로 출연하는 식이다.

물론 이경규, 유재석, 강호동의 예능 3인 체제는 결국 비슷비슷한 프로그램들과 출연진들을 양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획일화의 위험성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독보적인 능력을 갖춘 데다 늘 도전과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3인 체제는 오히려 어떤 기대감을 갖게 한다. 2011년, 그 기대에 걸맞는 다양한 웃음과 감동을 안방에 전해주길 바란다.

예능의 자격, 몸 개그 말 개그보다 더 필요한 공감

'남자의 자격'의 '남자, 새로운 생명을 만나다'편이 우리에게 준 감동의 실체는 무엇일까. 먼저 이번 소재가 다름 아닌 생명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여기 등장한 개들은 인간에게 한 번씩 버림을 받았던 존재들이다. 그러니 그들을 거두어 그 상처 입은 생명을 보듬고 마음을 여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이 어찌 감동이 없을까. 이 감동은 제작진이 이 소재를 101가지 아이템 중 하나로 선정하는 순간부터 예고되어 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일까. 아무리 학대를 받아온 덕구가 가진 이야기가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을 아프게 한다고 해도, 그 덕구를 진심으로 쓰다듬어주고 아낌없이 사랑을 줌으로써 그 마음을 열게 하는 김국진이 있지 않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따라서 이 예능이 준 감동의 다른 반쪽은 다름 아닌 멤버들의 진정성에서 나온다. 그리고 이 소재에서 진정성이란 꾸며지기조차 어렵다. 그 상대가 해주는 대로 반응을 보이기 마련인 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개들은 마음을 닫고 있다).

물론 '남자의 자격' 제작진은 이 소재가 줄 수 있는 감동 포인트를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아무런 인위적인 조미료를 첨가하지 않는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이 소재에서 주로 주목받는 짝은 덕구와 김국진, 그리고 제제와 김성민이다. 물론 이건 상대적이다. 모든 개들이 보여준 변화는 그 자체로 감동이지만, 어느 정도 각각의 짝들 간의 소통에는 차이가 느껴진다.

특히 김태원은 짝을 이룬 깜돌이에게 기타로 '넬라 판타지아'를 연주해주었지만 여전히 어색한 관계를 보여주었다. "나하고 안 맞는 것 같다"는 솔직한 얘기가 나오고, 거기에 대해 이경규가 모든 사람에게 애견을 강요할 수는 없다는 취지의 말을 자연스럽게 건네는 것은 덕구와 김국진이 기적 같이 서로를 공감하게 된 이야기만큼 중요하다. 진정성은 이런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균형 감각에서 나오게 된다.

억지로 감동을 강요하지 않는 것처럼, '남자의 자격'은 또한 억지로 웃음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이번 소재에서 '남자의 자격'이 주는 웃음 포인트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김국진의 재치있는 멘트들, 예를 들면 서로 애정을 확인한 후부터 "밤새 잠을 자지 못했다"는 진술이나, 이경규가 남순이에게 "네가 말만 하면 팔자를 고칠 수 있다"고 말하거나, 김성민을 그대로 빼닮은 개의 행동, 또 마지막에 개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이는 김태원에게 개들이 서로 모여들고 영역표시(?)를 하는 장면 등 웃음 포인트 자체가 소소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웃기기 위해서 어떤 인위적인 설정을 가미하거나 하지 않는 것이 '남자의 자격'이 가진 웃음의 특징이다.

이렇다보니 '남자의 자격'은 말 개그나 몸 개그에 그다지 집착하는 모습이 별로 없다. 그럼에도 '공감하는 재미'가 있다. 이런 점은 자극으로 치닫는 작금의 예능 프로그램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근 예능 프로그램들은 작정한 듯 상황을 시끄럽게 몰고 간다. 심지어 시끄럽지 않으면 인기 없는 프로그램이 되는 것처럼. 이런 분위기 속에서 무개념 후배가 자신에게 굴욕을 주었다고 말한다거나, 한때 사귀었거나 사귈 뻔한 동료 연예인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는 것은 심지어 자연스러워 보일 지경이다.

이경규는 우스갯소리로 개에게 "말을 해. 고맙다고."라고 말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남자, 새로운 생명을 만나다'편이 우리의 마음을 울린 것은 거기에 말이 아닌 온 몸으로 전해지는 진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극적인 말이나 행동이 사라진 곳에서 우리는 공감을 발견한다. '남자의 자격'이 보여주는 이 '자연스러운 공감'은 작금의 예능이 가져야할 새로운 자격이 아닐까. 예능 하면 우리는 화려한 개인기나 포복절도의 몸 개그 아니면 현란한 토크를 떠올린다. 하지만 그것만이 예능의 자격은 아닐 것이다. 적어도 '남자의 자격'은 지금 예능들에서 좀체 찾기 힘들지만 반드시 필요한 그 자격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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