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만, 예능 정글을 바꿀까

'정글의 법칙'(사진출처:SBS)

김병만이 '달인' 폐지를 선언했다. '달인'은 김병만이라는 코미디언의 존재감을 세워준 코너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무려 4년 간이나 지속해오면서 소재고갈로 힘겨워했던 것도 사실이다. 또 어떤 면으로는 김병만의 다양한 가능성이 '달인'이라는 틀에 갇혀 더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족쇄 역할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여러 모로 '달인' 폐지는 아쉽기는 하지만 시의적절한 선택임에 분명하다. 김병만은 이제 그의 캐릭터가 되어버린 '달인'이라는 무기를 들고 좀 더 넓은 예능의 정글로 나가고 있는 중이다.

'김연아의 키스 앤 크라이'가 그 가능성을 타진한 것이었다면, '김병만의 정글의 법칙'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예능이라는 정글에 하나의 깃발을 꽂은 것이나 다름없다. 실제로 '정글의 법칙'은 작금의 정체되어 있는 예능계에 새 바람을 일으킬 소지가 다분하다. 먼저 이 프로그램으로 인해서 그간 '리얼 버라이어티'가 주창하곤 했던 '야생'이나 '리얼리티'가 더 이상 먹히지 않게 되리라는 점이다. 사실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처음 등장했을 때는, 연예인들이 노숙을 하고, 끼니를 굶고, 아침에 퉁퉁 부은 민낯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그것은 '야생'이라 불릴 만큼 충분히 신선했다.

하지만 '정글의 법칙'을 보라. 김병만을 위시한 리키 김, 류담 그리고 광희가 처한 상황을 보면 리얼 버라이어티의 '야생'이니 '리얼리티'니 하는 얘기가 실로 우습게 여겨진다. 그들은 먹을 것도 주어지지 않고, 텐트도 하나 없이, 낯선 땅에서 생존해야 한다. 게다가 이 땅은 뱀과 악어와 벌레들이 득시글대는 곳이다. '김병만의 정글의 법칙'은 그래서 그 자체로 기존 예능의 형식들을 압도해버리는 면모가 있다.

이것은 또한 어찌 보면 '연예인 리얼리티쇼'의 시발점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리얼리티쇼'란 주로 일반인들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말하지만, '김병만의 정글의 법칙'은 연예인이 그 특수한 상황 속에 들어가 자신의 모든 것들을 드러낸다. 김병만은 '달인'이라는 캐릭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정글 속에 들어가서도 그 캐릭터를 실제로 보여준다. '달인'의 정글 버전인 셈이다.

'김병만의 정글의 법칙'은 또 다른 연예인 리얼리티쇼의 탄생을 예고한다. 특정 캐릭터를 가진 연예인이 있다면 그가 가진 면모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환경이나 상황을 만들어 하나의 리얼리티쇼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바람에 실려'는 물론 짜여진 틀이 너무 촘촘해 보이는 것이 리얼리티쇼와는 다른 특징을 보이지만, 그래도 임재범의 리얼리티쇼라고 볼 수 있는 구석이 있다. 이런 식으로 보면 연예인 리얼리티쇼의 가능성은 무한해진다. 과거 예능 프로그램이 주로 형식을 만들고 그 속에 세울 인물을 찾았다면, 연예인 리얼리티쇼는 거꾸로 한 인물에 주목하고, 그에 맞춰진 쇼를 구성함으로써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김병만의 정글의 법칙'은 리얼의 강도라는 측면에서, 또 연예인 리얼리티쇼의 기점이라는 측면에서 현 정체된 예능의 새 판을 짤 가능성이 다분하다. 만일 이 새 판이 시작된다면,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하나의 트렌드가 되면서 유재석과 강호동이 그 투톱으로 섰듯이, 김병만과 같은 독특한 자기 개성을 가진 연예인들이 이 새 판의 중심으로 들어올 가능성도 높다. 이렇게 되면 예능의 축이 달라지게 된다.

물론 이러한 예측은 김병만이라는 인물에 대한 깊은 애정과 가능성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병만이 가진 성실성과 남다른 재능, 그리고 포부를 눈여겨 본 사람이라면 이 예측이 그저 허망한 바람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달인'의 폐지는 이제 좀 더 다양한 예능이라는 정글의 환경과 일상 속에서의 달인을 기대하게 만든다. 김병만은 그 첫 번째 발자국을 떼고 있는 중이고, 이것은 무수한 또 다른 달인을 꿈꾸는 이들이 지나다닐 새로운 길이 될 지도 모를 일이다. 달인 김병만은 그렇게 예능의 정글을 향해 자신만의 족적을 만들며 들어서고 있다.


상황극을 통해 '무도'가 보여준 바른 언어의 어려움

'무한도전'(사진출처:MBC)

'무한도전'의 언어와 자막에 대해 방통위가 내린 경고조치는 '무한도전' 스스로도 고민이 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방통위의 결정대로 바른 말을 사용하려니 '무한도전' 멤버들만의 캐릭터가 나타나기 어렵고, 무엇보다 리얼 버라이어티쇼로서 마치 대본을 읽는 듯한 어색함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결정을 무시할 수도 없는 일이다. 다른 프로그램도 아니고 '무한도전' 아닌가. 이만큼 방송을 통해 우리네 언어생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도 없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선택한 것은 그 고민스러운 상황 자체를 프로그램으로 녹여서 하나의 공론의 장을 만들자는 것이다. 역시 '무한도전'다운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가 생길 때, 그것을 덮어두거나 무시하기보다는 그 자체마저도 방송으로 끌어들이는 역발상. 이렇게 함으로써 문제 자체에서 소외되지 않고(가만 놔두면 방송이 아닌 다른 곳에서 문제는 저 스스로 커지기 마련이다) 주도적으로 문제를 바라보겠다는 '무한도전'다운 대처방식.

'무한도전 상사'라는 상황극 속에 이른바 '바른 말 쓰기 특강'을 집어넣고, '무한도전'은 스스로의 언어와 자막, 행동을 하나의 논제로 올려놓았다. 배현진 아나운서가 아나운서로서 '잘못된 언어 표현'을 집어낼 때, '무한도전' 멤버들도 저마다 자신들의 반론을 제기하는 방식이 이어졌다. '에×이, ×씨'같은 표현에 대해 박명수가 "하루에도 한 4백 번씩은 합니다"라고 말하자, 배현진 아나운서가 "거칠다는 느낌 안드세요?"하고 반문하고 박명수가 "아니요."라고 주고받는 식으로 이어진 이 난상토론(?)은 과연 '무한도전' 같은 리얼 버라이어티쇼에서 교양 프로그램에 걸맞는 바른 언어 사용이 가능한 것인가를 질문하게 만들었다.

박명수는 "리얼 버라이어티쇼에서 정말 리얼하게 어떤 상황이 생길지 모르는데 거기서 에잇, 에×이를 준비해서 할 수는 없다"고 했고, 길은 "예능은 순발력"이라고 했다. 그만큼 바른 언어 준비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피력한 것이다. 거기에 대해 배현진 아나운서는 "표현이 부드러워진다고 해서 웃기지 않은 건 아니다"고 하며 "이런 걸 조금만 노력을 해주시면 말을 예쁘게 하되 더 재밌는 방송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해봤습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박명수는 현장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한번 웃기기가 얼마나 힘든데 말씀을 그렇게 편안하게 하세요. 데스크에만 계시지 마시고 현장에서 보세요. 좀."

물론 이런 문제제기에 대해 서로 수긍하는 입장도 보였다. 유재석은 자신들의 입장이 어렵다는 걸 공감하면서도, 배현진 아나운서의 입장을 반박하기보다는 수긍하는 편이었고, 배현진 아나운서 역시 이들의 반박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무한도전'의 영향력이 그만큼 크다는 것과 그렇기 때문에 "조금만 더 신경 써 달라"는 주문을 빼놓지 않았다.

사실 어떤 언어는 그것이 거친 표현이라고 하더라도 순화해서 표현하면 예능의 맛을 낼 수 없는 게 현실이다. 하하가 '뻥'이라고 표현한 것을 배현진 아나운서가 제안한 것처럼 '거짓말'이나 '허풍'으로 바꾸는 것으로는 그 말이 주는 어감의 맛을 제대로 표현하기 어렵다. 하하가 소리를 지르는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은 하하의 캐릭터 하나를 없애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또 어떤 표현은 엄밀한 바른 말이 친근감 있는 속어보다 더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만들기도 한다. 길이 '빠박이' 보다 '대머리'가 더 기분 나쁘다고 한 것은 그 단적인 사례다.

또 하하가 박명수의 머리를 예의 없이 잡아당긴 것은 '슬랩스틱'의 고전에 해당한다. 이것을 가지고 '무한도전'에 대해서만 유독 "어린학생들이 따라한다"고 문제시하는 것은 형평성이 잘 맞지 않는다. '멍×아'라는 표현은 물론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표현"이지만, 리얼 버라이어티쇼에서 늘 배려있는 행동을 기대하는 건 예능을 이해하지 못하는 처사다. 대결구도와 말싸움이 하나의 웃음의 코드가 되는 것은 이미 고전적인 마당극에서조차 허용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무한도전'이 이 상황극을 통해 보여준 것은 리얼 버라이어티쇼 같은 예능에서 바른 말을 사용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는 점이다. 바른 말이 갖는 형식적인(Formal) 특징은 리얼 예능이 가질 수밖에 없는 형식을 따지지 않는(Informal) 특징과는 애초부터 배치되는 면이 있다. 이것은 '무한도전' 뿐만 아니라 '개그콘서트'는 물론이고 과거 코미디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웃으면 복이 와요'나 그 이전의 판소리들, 마당극, 남사당패의 말놀이에도 모두 해당되는 것이다.

물론 '무한도전'만큼의 프로그램이 가진 영향력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래서 어느 정도 순화될 필요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리얼한 예능이 바른 언어라는 틀에 의해 조련되는 것 역시 어딘지 건강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상황극이 제시한 것처럼 이 자체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능의 언어와 일상의 언어는 어쩌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 맥락을 이해하는 선에서는 욕도 때로는 정감가게 느껴질 수 있다. 많은 문학작품이 그러하듯이.


최민수, 그 캐릭터가 가진 예능에서의 가치

'런닝맨'(사진출처:SBS)

연기자 최민수를 예능 프로그램에서 본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세 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그 첫 번째는 그가 겪은 일이 그는 물론이고 그의 팬들에게도 웃음조차 사라지게 만들만큼 큰 충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 그가 '런닝맨'이나 '강심장'에 나와 좌중을 압도하며 웃음폭탄을 날리는 모습은 그만큼 편안해진 그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이제 아문 상처가 더 굳어진 살이 되어 강건한 마음을 만들기를.

최민수를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는 두 번째 즐거움은 그가 실제로 예능에 딱 적합한 캐릭터인데다 또 그 캐릭터를 잘 살리기 때문이다. '런닝맨'에 출연한 최민수는 그가 카리스마있는 캐릭터로서 예능에서 할 수 있는 두 가지 기능을 모두 보여주었다. 첫째 날에는 특유의 카리스마로 최민수만이 할 수 있는 이른바 '런닝맨 헌팅' 미션을 효과적으로 수행했다.

최민수라는 모두를 떨게 하는(물론 이미지일 뿐이다) 캐릭터는 그저 세워놓기만 해도 미션에 긴장감을 부여한다. 웃음의 본질이 바로 '두려움에서 벗어났을 때 생겨나는 이완감'에서 비롯된다는 걸 생각해보면 왜 최민수 같은 캐릭터가 예능 프로그램에서 더 큰 웃음을 만들어내는가를 이해할 수 있다. 정극에서의 섬뜩할 정도의 카리스마는 예능에 들어오면 겁먹는 상대방을 조명해주는 것만으로도 웃음을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최민수가 예능 프로그램에서 상대방을 겁주는 것만으로 웃음을 만드는 건 아니다. '런닝맨' 둘째 날에 최민수가 보여준 웃음 포인트는 첫째 날과는 정반대였다. 즉 어딘지 무서울 것 같은 이 카리스마의 대명사가 보통 사람과 다를 것 없는 허술한 면모를 드러냄으로서 이른바 반전 캐릭터로 웃음을 주었다. 최민수는 둘째 날 모습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편안하고 남다를 바 없는 사람인가를 보여주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웃음이 만들어졌다.

최민수가 카리스마를 활용해 웃음을 주는 이 두 가지 방식(상대방을 겁먹게 하거나, 본인이 무너져 반전 캐릭터를 보여주는)은 '강심장'에서도 여전했다. 이 토크 배틀 형식에서 최민수는 슈퍼주니어와 10대1의 대결구도를 만들어냈고, 강한 캐릭터인 강호동을 무너뜨리는 모습을 보여줘 웃음을 주면서 동시에 귀요미의 표정을 짓거나 자신이 망가졌던 이야기를 통해 반전의 웃음도 만들어냈다. 자신이 어떻게 해야 상대방이 웃을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최민수를 예능에서 보는 것은 그래서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최민수를 예능에서 보는 가장 큰 즐거움은 그가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최민수는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너무나 강한 캐릭터의 아우라에 갇혀 있었다. 지나간 일이라 웃으며 할 수 있는 얘기지만, 최민수가 실제로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쓰기 2년 전에 죄민수라는 캐릭터가 '개그야'에 등장해 인기를 끈 적이 있다. 결국 이 개그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죄민수가 실제 상황으로 비화되는 아이러니를 겪은 셈인데, 그만큼 최민수의 강한 캐릭터는 대중들에게 뭔가 닫혀있어 개그로라도 인간적인 모습을 확인하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소문에 의해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어버린 상황도 어찌 보면 이 욕망의 발현이었는 지도 모른다. 그런 그가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자신의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며 소통하는 장면은 그 자체로 최민수의 이미지에 균형감을 만든다.

"나 떨고 있냐?" '모래시계'에서 그가 내뱉은 이 한 마디의 대사는 최민수의 아우라를 만들었다. 죽음 앞에서도 남자다움을 잃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지만, 그래도 인간이라 어쩔 수 없이 떨고 있는 그 모습은 바로 최민수가 가진 양면적인 매력의 결정체다. 때론 마초적으로까지 느껴지는 카리스마를 내뿜으면서도 때론 지극히 인간적인. '태왕사신기'에서의 화천회 장로로 보여준 카리스마나 '무사 백동수'에서 천을 통해 보여주는 강렬함은 드라마를 이끄는 힘을 만들어줄 정도로 강렬하다. 하지만 그런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그는 또한 '결혼이야기'나 '사랑이 뭐길래'로 살짝 망가지는 털털한 모습을 연기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자칫 소문에 의해 잃을 뻔 했지만 다시 돌아온 최민수. 그가 앞으로도 계속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세 가지 즐거움을 주기를 바란다. 그것은 어쩌면 그의 연기자로서의 편안하고 탄탄한 삶을 말해주는 것일 수도 있을 테니까.


만들 필요 없다, 그저 한 부분을 떼어내 보여줘라

'무한도전'(사진출처:MBC)

김태호 PD는 ‘만들어진 것’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을 갖고 있다. 그 ‘만들어진 것’은 기성관념일 수도 있고, 일상적인 관계일 수도 있으며, 사회적인 통념일 수도 있다. 물론 예능 프로그램으로 돌아오면 그것은 기성형식이나 상투적인 주제의식 같은 것이 된다. 김태호 PD가 ‘무한도전’을 통해 매번 만들어내는 웃음의 소재들과 형식들이 다른 것은 다분히 이런 성향 덕분이다. 물론 그 역시 어쩔 수 없이 대중성을 확보해야 하는 방송 PD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대중성을 확보하는 방식은 여타의 예능 PD와는 방향성이 다르다.

보편성의 웃음을 추구함으로써 대중성을 확보할 수밖에 없는, 그래서 시청률로 대변되는 대중들의 반응을 기웃거릴 수밖에 없는 방송 예능의 한계 속에서도 그는 대중을 따라가기보다는 대중을 이끄는 방식을 선택했다. ‘무한도전’은 그래서 따라온 대중들에게는 그 능동성에 걸맞는 달콤하기 그지없는 웃음을 선사하지만, 따라오기만을 원하는 대중들에게는 외계어처럼 들리기도 한다. 20% 안팎의 시청률은 어쩌면 그래서 김태호 PD의 적절한 선택인 셈이다. 그에게 지나치게 대중적인 것은 ‘만들어진 것’을 그저 잘 따라한 증거가 되고, 지나치게 무관심한 것은 자신이 정한 방향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걸 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중간 어디 즈음에 김태호 PD는 자신이 서야할 예능의 방점을 찍는다.

이것은 김태호 PD가 언론을 상대하는 방식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만큼 언론의 인터뷰를 기피하는 인물도 없다. 그 이유를 들어보면 “자신의 뜻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언론에 노출되곤 한다는 것이다. 즉 자신이 하려는 얘기는 A인데, 언론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것만 골라 B를 보여준다는 얘기다. 그래서 어찌 어찌 해 어렵게 김태호 PD를 만난다고 해도 그 인터뷰는 기자와 PD 사이의 좀 더 편안한 사적 관계를 만들어준다기보다는 오히려 팽팽한 거리감과 긴장감을 만들어내곤 한다.

이런 김태호 PD도 단박에 반하는 인물이 있다. 무언가 ‘만들어진 것’ 바깥에서 놀라운 도전정신으로 부딪치는 인물들이다. 이것은 아마도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을 하면서 생겨난 경향일 것이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고 제대로 된 경기장 하나 없지만 묵묵히 도전정신을 보여준 봅슬레이팀이 그렇고, 퉁퉁 부운 얼굴이 가장 아름다운 얼굴이라는 것을 보여준 여성 복싱선수가 그러하다. 김태호 PD의 페르소나, 유재석은 말할 것도 없다. 어떠한 미션을 줘도 성실함과 무모할 정도의 도전정신을 발휘하는 유재석이 없었다면 김태호 PD의 ‘무한도전’이라는 세계는 만들어지지 못했을 테니.

김태호 PD가 “그렇고 그런 사이”라며 장기하의 새 음반에 적극적인 애정공세를 펼친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에 참가를 권유했지만 자신의 새 음반이 성공할 자신감이 있다며 그 성공이 ‘무한도전’ 덕이라는 얘기를 듣고 싶지 않아 고사한 장기하의 무모할 정도의 도전정신을 그가 높게 산 것이다. 이 에피소드는 기성사회가 갖는 통상적인 관계의 틀 바깥으로 탈주한다는 점에서 김태호 PD의 성향과 그대로 만난다.

김태호 PD의 이런 ‘만들어진 것’에 대한 거부는 ‘무한도전’이 왜 예술 같은 예능이 되었는가를 잘 말해준다. 사실 ‘무한도전’이 예능의 레전드가 된 것은, 그 하나 하나가 도전이었던 과정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많은 이들이 ‘무한도전’을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새로운 형식의 선구자 정도로 인식하지만, 사실 처음부터 그렇게 거창한 것은 아니었다. 김태호 PD의 말대로 표현하자면 “‘무한도전’이 거둔 가장 큰 공적은 예능 프로그램에 촬영 카메라와 마이크를 여러 대로 늘린 것”이다. 삽과 포크레인이 대결을 벌이던 ‘무모한 도전’이 뭔가 스펙타클하기는 해도 ‘깨알 같은 재미’를 선사하지 못한 것은 그 광경을 포착하는 카메라와 마이크가 몇 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장 방송국에 카메라를 더 달라고 요청했지만 요지부동. 김태호 PD는 결국 외주 카메라를 직접 모았다고 한다. 그들이 지금의 많은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바탕이 된 셈이다.

카메라가 늘어나자 비로소 각각의 인물들의 개성 넘치는 이야기들이 담기기 시작했고, 쌓여진 비디오테이프만큼 후반작업에 들어가는 공도 커지게 되었다. 깨알 같은 재미를 북돋워주는 자막이 붙기 시작했고 각각의 캐릭터는 좀 더 공고해졌으며, 그 캐릭터들을 각각 따라다니는 카메라로 인해 다양한 미션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많아진 카메라로 인해 캐릭터들 간의 중심과 변경의 벽이 무너진 것이다. 물론 메인 MC로서 1인자 유재석이 서 있지만 그만큼 비슷한 비중의 다른 인물들도 이제 수평적인 위치에서 멘트를 쏟아낸다. 즉 카메라를 좀 더 늘리겠다는 그 새로운 도전의 결과는 우리에게 이미 ‘만들어진 어떤 것’이 아닌 전혀 다른 세계를 가져왔던 셈이다.

그러나 김태호 PD의 ‘무한도전’이 예능의 벽을 넘어서 예술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열려진 작품세계(?)’ 덕분이다. 이미 ‘정해진 어떤 틀’ 속에서 움직이던 예능이 이제 미션 하나를 던져놓고 보는 하나의 실험이 되면서, 그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과정들은 독특한 흐름을 만들어냈다. 그 미션을 수행하는 인물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일상적인 경험들과 습관들을 이 미션 속으로 끌어옴으로써 상황에 상징성을 부여한다. 스키 점프대 꼭대기까지 전원이 오르기 위해 벌이는 미션은 가상적이고 게임적이지만, 그것이 그려내는 이야기가 현실을 상기시키는 것은 그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미션 과정에 가타부타 없는 설명은 대중들의 좀 더 적극적인 개입을 끌어낸다. 그래서 대중들에 의해 이런 저런 의미로 해석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무한도전’이라는 예능은 비로소 예술이 되어간다.

웃음은 과연 예술이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의 답은 명쾌하다. 물론 중세시대를 거치면서 비극만이 예술인 것처럼 오인되기도 했지만, 이미 수많은 희극들이 우리에게 예술로 자리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웃음의 방송버전인 예능은 과연 예술이 될 수 있을까. 여기에는 의문점이 있다. 이것은 웃음이라는 소재 때문이 아니라, 방송이라는 매체 때문이다. 매스미디어로 대변되는 보편성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방송이 독창적인 웃음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어찌 보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태호 PD를 본다면 그것이 어렵긴 해도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물론 이 ‘무한도전’ 역시 방송 프로그램으로서의 보편성을 버릴 수 없는 것은 분명하지만, 어떤 경우 그 틀을 넘어 예술의 차원을 언뜻 우리에게 보여줄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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