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 작가에 대한 기대와 우려

 

김수현 작가가 SBS 주말극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아졌다. 애초에 광고시장 침체로 주말극을 없애고 대신 예능과 교양으로 그 자리를 채웠던 SBS. 그런데 다시 SBS가 이 주말극의 자리를 부활시키는 데는 아무래도 김수현 작가라는 이름 석 자의 힘이 컸을 것이다. 내놓는 작품마다 화제와 이슈는 물론 시청률도 담보했던 작가가 아닌가.

 


김수현 작가(사진출처:김수현 작가 트위터)

게다가 SBS는 언젠가부터 MBC 주말극에 그 자리를 내주게 된 것이 못내 자존심이 상했을 터다. MBC는 자극적인 막장 코드들을 주말극에 집중적으로 포진시킴으로써 그 시간대를 장악해왔다. 본래 가족드라마였던 주말극을 막장드라마로 바꿔 놓았다는 비판이 있지만 그래도 MBC 주말극이 시청률에서 동시간대 타방송사들을 압도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니 SBS는 이 흐름에 반전을 만들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막장에 지친 시청자들이라면 어쩌면 김수현 작가의 주말극에 시선을 돌릴 수도 있는 일이다. 무엇보다 이 주말극의 시청층은 MBC 주말극이나 김수현 작가의 주시청층이나 동일할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니 시청층의 유입을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김수현 작가에 대한 기대만큼 우려도 깊다. 즉 최근 들어 김수현 작가의 작품들이 너무 비슷비슷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무언가 김수현 작가만의 시대를 꿰뚫는 날카로움이 무뎌졌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런 확실한 주제 의식 없이 만들어지는 김수현 작가의 가족드라마는 자칫 자기 복제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 대사의 상찬으로만은 지금의 시청자들을 만족시키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여기에 이미 MBC가 확보해 놓은 자극적인 전개의 주말극이 만만찮은 도전으로 자리하는 것도 사실이다. 본래 드라마의 자극이라는 건 한번 강하게 보여지고 나면 더 강한 것을 요구하기 마련이다. 이런 상황에 너무 진지하게 주제의식을 파고드는 작품은 좋은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을 수도 있다.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가 갖는 빠른 대사와 때로는 연극적인 톤들이 지금의 드라마 트렌드와는 많이 벗어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물론 스타일리쉬한 작품을 기대하는 건 어려운 일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요즘의 드라마 트렌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자연스러움은 갖춰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반된 우려에도 불구하고 김수현 작가의 작품에 어떤 기대를 걸게 만드는 이유는 현재 주말극의 오염도가 너무 심해졌다는 인식 때문이다. 물론 그저 그런 설정의 자기 복제식 가족드라마들이 나오는 것도 문제지만 드라마의 판 자체를 파괴시키려는 듯 개연성 없이 폭주하는 주말극들의 양산은 더욱 큰 문제다. 그래서 김수현 작가가 가족드라마의 본령을 다시 보여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어떤 가치와 의미를 가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과연 김수현 작가는 MBC 주말극을 이겨낼 수 있을까. 독한 자극과 개연성 따위는 슬쩍 지나쳐버리는 속도로 무장한 이 괴물 같은 드라마 앞에서 과연 거장은 굳건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이것은 그래서 마치 우리네 가족드라마의 전통이 앞으로도 계속 생존할 수 있을 것인가를 묻는 리트머스지 같다. 과연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왕가네>를 통해 보는 가족주의의 해체

 

저렇게 될 줄 알았지. 시작부터 나 미스코리아 나갔던 여자야를 외치며 온갖 민폐를 끼치던 왕수박(오현경)이 집을 나와 식당에 취직했다가 쫓겨나고 노숙자처럼 길거리를 전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마도 많은 시청자들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왕가네 식구들>이 이제 종반으로 치달으면서 왕가네 가족들에게 패악질 하던 캐릭터들이 이제 권선징악, 개과천선의 결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것 또한 시청자들이 예상 못했던 일은 아닐 것이다.

 

'왕가네 식구들(사진출처:KBS)'

수박이 동생 호박(이태란)을 만나 오늘이 아부지 생신이라며 돈 봉투를 전하는 장면이나 호박아, 너하고 광박이한테 정말 고맙다. 집도 얻어주고. 난 맏이 노릇도 못하고 못난 짓만 하는데라는 대사를 던지는 것도 그래서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사실 <왕가네 식구들>의 등장인물들이 수박과 호박이라는 이름으로 정해진 순간부터 예정된 일이다. 즉 수박이 엄마로부터 편애를 받고 비뚤어지는 인물이며 호박이 구박을 받으나 결국은 성실하게 살아가는 인물이라는 것은 이름에 나타나 있다.

 

문영남 작가의 등장인물 작명 방식은 주말드라마의 공식과 패턴을 잘 드러낸다. 즉 아버지 왕봉(장용)은 가족의 봉이고, 이앙금(김해숙)은 마음 속 앙금으로 비뚤어진 엄마이며, 수박의 남편인 고민중(조성하)은 이혼을 고민하게 되는 캐릭터이고 호박의 남편 허세달(오만석)은 실속 없이 허세만 가득한 민폐형 캐릭터다. 마치 RPG 게임처럼 시청자들은 이들 앞으로의 전개를 예감케 하는 이름의 캐릭터들이 벌이는 마인드 게임에 들어가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름이 정해지는 순간부터 <왕가네 식구들>의 이야기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예기치 못한 전개나 드라마를 통해 새로운 의미의 발견 같은 것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권선징악이나 가족이 최고같은 누구나 다 아는 가치의 반복이면서 비슷비슷한 가족드라마 전개의 반복이지만 그래도 시청률이 45%에 육박하는 놀라운 수치다.

 

물론 막장드라마를 통해서 흔히 봐왔듯이 시청률과 완성도 혹은 작품성에는 아무런 비례관계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현재 드라마의 평균적인 시청률이 10%대이고 20%를 넘기면 성공작으로 치부되는 시대에 무려 50%를 넘보는 시청률을 내고 있다는 것은 작품성과 상관없이 이 시간대의 드라마가 보여주는 사회적인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도대체 무엇이 이 시간대의 가족드라마에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걸까.

 

<왕가네 식구들>만이 아닌 이 시간대의 KBS 주말극이 일정하게 높은 시청률을 내왔다는 것은 작품 그 자체보다 이 시간대가 가진 프리미엄이 있다는 걸 말해준다. 시청자들은 무슨 일인지 이 시간대에 KBS 주말극에 채널을 고정시키고 있다. 거기에는 편안한 기대감이 있고 그 기대감을 적절히 배반하다가도 채워주는 말 그대로 시청자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하는 드라마의 공식이 있다. 그 공식을 시청자들이 모르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알기 때문에 즐기는 면이 더 크다. 마치 한 시간 동안 벌어지는 게임처럼.

 

여기에는 이 시간대의 주말드라마가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가족주의가 큰 몫을 차지하는 것 같다. 즉 최근 주중 드라마들을 보면 가족주의보다는 해체되는 가족의 이야기가 더 많이 등장한다. <따뜻한 말 한 마디>가 불륜을 통해 결혼이라는 제도의 불완전함을 얘기하고, <미스코리아><별에서 온 그대> 같은 작품은 가족이 등장하긴 하지만 가족과는 상관없는 이야기 전개가 대부분이다. 최근 종편이나 케이블에서 방영되는 드라마들도 그렇다. 물론 시대극을 다루고 있는 <맏이>는 예외가 되겠지만(이 드라마 역시 과거 가족에 대한 향수를 다룬다는 점에서 현 가족의 해체를 역으로 보여주기도 하지만) <로맨스가 필요해3><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 같은 드라마들은 가족보다는 개인의 행복을 더 추구한다.

 

결국 작금의 현실에서 가족은 과거 같은 가족드라마 틀로는 더 이상 유지되지 못하는 변화를 겪고 있다. 늘 가족주의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던 김수현 작가마저 <세 번 결혼하는 여자>에서는 결혼에 대한 회의적인 담론들을 담고 있다. 이 드라마가 시청률이 저조한 이유는 김수현 작가의 팬들이라면 기대하기 마련인 가족주의의 틀을 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족의 해체가 드라마에서 하나의 흐름을 만들고 있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보면 <왕가네 식구들> 같은 KBS 주말드라마의 성공은 거꾸로 가족주의에 대한 판타지를 이어가는데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문영남 작가의 드라마가 과도한 민폐 캐릭터 때문에 막장 논란을 일으키면서도 높은 시청률을 이어가는 것은 결국 이 민폐 캐릭터가 권선징악의 형태로 결말을 맞을 것이며 또한 가족이라는 오히려 더 공고해진 틀 속으로 들어올 것이라고 시청자들은 안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왕가네 식구들>을 보다보면 해체되어가는 가족주의에 대한 지독한 향수와 반발을 느끼게 된다. 거기 등장하는 민폐 캐릭터들은 그것을 촉발시키는 촉매제인 셈이다. 그들을 미워하고 욕하고 결국은 용서하고 다시 끌어안는 동안 우리는 가족은 여전히 지켜져야 할 최후의 보루라고 느끼게 되는 것. 하지만 이러한 안간힘은 이 시간대가 마치 유일하게 남은 가족주의의 성전처럼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뻔하고 식상해도 자꾸만 되새기며 스스로를 안심시키는.

무수한 장르와 설정의 결합, <별그대>의 명암

 

3회 만에 20%에 육박하는 시청률. 하지만 첫 회 만에 생긴 표절 논란. <별에서 온 그대>는 놀라운 성과와 동시에 논란이 야기된 흔치 않은 결과를 갖게 됐다. 어째서 이런 상반된 결과가 동시에 벌어진 것일까.

 

'별에서 온 그대(사진출처:SBS)'

우선 인정해야 할 것은 이 작품이 분명 꽤 괜찮은 완성도와 화제성을 갖고 있다는 것일 게다. 표절 논란이 제기되는 건 대부분 그 작품이 성공작이었을 때가 많다. 상식적인 얘기지만 굳이 실패작에 표절 논란을 제기하는 작가는 흔치 않을 것이다.

 

<별에서 온 그대>의 완성도는 무수히 많은 장르와 설정들을 한 작품으로 통합하면서 그다지 어색하지 않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드라마가 흘러간다는 점이다. 먼저 톱스타 연예인이라는 소재가 대중들의 시선을 잡아끄는데다, 여기에 외계에서 온 특별한 능력을 가진 꽃미남이 더해지니 금상첨화다.

 

물론 톱스타 연예인에 대해 지금의 대중들은 신비감을 잃은 지 오래다. 오히려 인간적이고 털털한 모습을 통해 톱스타의 매력을 재발견하는 시대가 아닌가. 그러니 이 드라마에서 천송이(전지현)는 예쁘지만 무식하고 싸가지 없는 여배우다. 대신 신비감은 외계에서 온 도민준(김수현)이 갖고 있다. 그는 천송이가 짧은 순간이었지만 굉장히 신비스러우면서도 다정한 느낌이라 말한 것처럼 초능력을 가진 신비로운 존재이고 대단히 이지적인 꽃미남이다.

 

털털한 연예인과 신비로운 외계인의 병치는 이 드라마의 독특한 힘을 만들어낸다. 무개념처럼 보이지만 가끔씩 진심을 드러내는 여배우 천송이는 전생과 현생에 모두 죽을 위기에 몰리고 그 때마다 초능력을 가진 존재, 도민준은 남몰래 그녀를 구한다. 그녀만을 위한 슈퍼히어로, 시공을 초월한 운명적인 사랑이야기. 이것이 연예인과 외계인의 전 우주적인 멜로를 강력하게 만드는 이유다.

 

하지만 이러한 연예인 소재의 로맨틱 코미디와 불사의 존재가 만들어내는 판타지와 비극적인 사랑이야기가 한 드라마로 이종결합하면서 너무 많은 장르와 유사한 설정들이 들어가게 된 것도 사실이다. 판타지와 사극과 로맨틱 코미디와 미스테리, 심지어는 범죄 스릴러 장르까지 우리는 이 드라마 한 편에서 발견할 수 있다.

 

게다가 이 특별한 이야기들의 모티브를 발견할 수 있는 많은 작품들의 흔적이 보이기도 한다. 이를테면 불사의 운명적인 사랑 이야기는 <하이랜더> 같은 작품이 떠오르고, 불로불사의 존재로서 다시 깨어나 똑같은 인연을 이어가는 이야기는 <진용> 같은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연예인 소재의 로맨틱 코미디류는 굳이 찾아보려면 너무나 많아 하나하나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강경옥 작가는 표절의 근거로, 같은 역사적 사건 인용(광해군 일기), 불로, 외계인, (타액)로 인한 변화, 환생, 같은 얼굴의 전생의 인연 찾기, 전생의 인연이 연예인, 톱스타 같은 8가지 클리쉐가 동시에 나온다는 점을 제시했다. 아마도 위에서 열거한 각각의 클리쉐들은 말 그대로 다른 작품들에서 너무 많이 사용됐던 것들이다. 하지만 자신의 작품에서 사용됐던 그 클리쉐들이 다른 작품 속에서 비슷한 설정으로 공존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실로 표절이냐 아니냐를 판정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클리쉐는 마치 장르나 관습처럼 누구나 작품을 쓰면서 활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교롭게도 그것이 한 작품에 비슷하게 들어있다는 건 찜찜함을 남긴다. 최근 창작이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유에서 유를 창조하는 즉 이종결합과 융복합 혹은 구성에 의해 이뤄진다는 점은 앞으로 표절 논란이 콘텐츠 분야에서 얼마나 첨예해질 것인가를 짐작케 한다.

 

<별에서 온 그대>가 시청률의 성공과 표절 논란을 동시에 갖게 된 것은 이 작품이 현재의 창작방식이 가진 다양한 장르의 이종결합을 과할 정도로 잘 수행해내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것이 의도적인 표절인지 아니면 장르 이종결합의 과정에서 발생한 우연적 결과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작품이 향후 콘텐츠 창작의 애매모호한 경계 사이에서 벌어질 표절 논란의 한 징후를 보여주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신처럼 군림하며 맘대로 써서 거액을 번다면...

 

흔히들 대중들은 잘 나가는 드라마 작가에 대한 부러움이 있다. 물론 창작의 고통이라는 것은 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필자가 아는 드라마 작가는 작품 하나를 할 때마다 10년씩은 늙는다고 한다. 그래서 고료가 많아 보이지만 사실은 제 피와 살을 깎는 비용이라고 토로하기도.

 

'오로라공주(사진출처:MBC)'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우리네 드라마 제작현실은 특히 작가들에게 더 취약하다. 어느 정도의 위치에 올라가지 않은 작가라면 대중들의 요구에 의해, 방송사의 요구에 의해 때로는 스타 배우의 요구에 의해 굴욕적이게도 대본을 고쳐야 하는 상황을 겪기도 한다. 피 말리는 쪽대본을 생각해보라. 지옥이 따로 없을 게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제대로 작가가 작품에 대해 진지하고도 심각한 고민을 할 때의 이야기다. 만일 마치 작가가 신처럼 군림하고 자신이 원하면 언제든 인물을 뺄 수도 있고 새롭게 끼워 넣을 수도 있으며 심지어 분량도 마음껏 조절할 수 있다면 어떨까. 심지어 방송사의 통제에서도 벗어나 요구사항 따위는 들어줄 필요도 없고, 원한다면 50부 정도는 연장해달라고 요청할 수도 있다면?

 

그렇게 하면서도 회당 몇 천만 원씩을 원고료로 받아간다면 이만큼 편한 일도 없을 게다. 작품을 할 때는 모두가 두려워하기까지 하는 신적인 존재고, 작품이 끝나고 나면 손에 몇 십 억을 벌 수 있으니 이만큼 손쉽고 즐거운 일도 없겠다.

 

<오로라 공주>의 임성한 작가가 실제로 이렇게 즐거울 지는 알 수 없다. 물론 나름대로의 스트레스와 고충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작품을 통해 비춰지는 모습은 이렇게 편안한 작가도 없다는 느낌이다.

 

인물 하나가 죽는 일에는 거기에 합당한 개연성을 만들어줘야 하는 게 작가의 소임이다. 그런데 그녀의 드라마에서는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별로 없다. 갑자기 웃다가 죽어버리거나 초자연적인 현상을 경험하다가 죽는 데는 이유란 것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주요 캐릭터들이 중도에 하차하거나 새롭게 들어가는 것에도 상당한 고민이 필요한 게 드라마 작업이다. 완성도가 있는 작품이란 필요 없는 인물이 존재하지 않고 유기적으로 끝까지 각자의 기능과 역할을 할 때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별다른 이유 없이 해외로 보내버린다거나 하는 식으로 캐릭터를 하차시킨다면 어떨까.

 

작가로서는 완성도를 포기하는 대신 고민을 덜게 된다. 결국 피해는 그 캐릭터에 몰입해온 시청자들에게 돌아간다. 시청자들의 비난이나 원성이 생기겠지만 거기에 별 개의치도 않는다면 작가는 별다른 스트레스도 없을 게다. 이런 작가 생활만큼 편안한 일이 있을까.

 

이것이 드라마 작가라면 사실 아무나 할 수 있을 것이다. 대충 캐릭터 몇 명을 세워놓고 이리저리 관계를 엮다가 뭔가 반응이 온다 싶으면 발전시켜나가고 그게 아니라면 중도에 캐릭터를 죽이던가 해외로 보내는 식으로 하차시키고 다른 인물을 세워 또 다른 관계를 엮어나가면 그만이다. 애초에 완성도 같은 건 염두에 두지 않았으니 그걸 두고 쏟아지는 논란이나 비난은 그다지 부담될 일도 아니다. 게다가 논란은 때로는 화제로 이어지기도 하니까.

 

일일드라마를 보는 서민들의 입장을 생각해보자. 어느 누구는 하루 종일 뼈 빠지게 일해도 돈 10만원 벌기가 힘든 이들도 있을 게다. 그러니 하루의 값싼 여가로 드라마를 통해서라도 캐릭터들에 감정이입해 다른 삶을 경험하고 싶은 욕구는 당연할 것이다. 그런데 언제든 목이 날아갈 수 있는 현실과 똑같은 일이 드라마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면 어떨까. 또 완성도는커녕 개연성마저 찾기 힘든 드라마에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면?

 

그리고 누구는 그렇게 해서 시청률이라는 이름으로 엄청난 돈을 벌어가고, 반대로 스트레스를 받으며 욕하며 애써 드라마를 봄으로써 그 허수의 시청률을 만들어준 시청자들은 다시 생활전선으로 나가게 되는 상황. 어찌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임성한 작가에게 쏟아지는 비난은 그래서 단지 작품의 무개념 때문만은 아니다. 거기에는 대중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 들어가 있다. 작품을 쓰는 창작자로서의 작가가 아니라 단지 작가라는 이름을 빌어 펜대의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며 그 대가로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가는 것에 대한 박탈감. 이러한 박탈감과 거기서 비롯되는 분노는 자칫 이런 권력을 가능하게 해주는 방송국에게로 옮아갈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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