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문화 속에 담긴 현실을 모색하는 곳 더키앙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4694)
블로거의 시선 (96)
네모난 세상 (4483)
SPECIEL (19)
문화 코드 (1)
생활의 발견 (23)
술술 풀리는 이야기 (4)
스토리로 떠나는 여행 (10)
책으로 세상보기 (8)
문화 깊게 읽기 (4)
스토리스토리 (24)
사진 한 장의 이야기 (4)
드라마틱한 삶을 꿈꾸다 (7)
대중문화와 마케팅 (9)
Total13,207,387
Today75
Yesterday245

어째서 <무도><1>이 찾는 역사가 더 감동적일까

 

역시 <12>이다. 하얼빈까지 날아간 데는 우리가 누구나 예상했던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발자취를 찾아가기 위함이었다. 물론 예능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대놓고 감동과 눈물을 전면에 내세우는 게 꺼려졌었던 모양이다. 이 특집이 시작하기 전 유호진 PD3.1절 특집의 성격이 아니라고 말했고, 실제로 방송의 앞부분은 하얼빈에서 벌이는 혹한기 체험을 통한 웃음이 채워졌다. 하지만 하얼빈까지 가서 어찌 안중근 의사의 역사적 순간들을 놓칠 수 있었으랴.

 


'1박2일(사진출처:KBS)'

<12>1909년으로 시간을 되돌려 당시 안중근 의사의 흔적을 되짚자, 교과서에 그저 짧은 문장 몇 줄로 나와 있던 그 역사가 생생히 우리 눈앞에 되살아났다. 당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의 사건이 당시 뉴욕 타임즈부터 이태리, 영국의 신문까지 대서특필되던 세계적인 사건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고, 중국 정부가 안중근 의사를 영웅으로 기리고 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고국에서 25백리나 떨어진 그 곳. 우덕순과 구체적 거사를 논의했던 조린공원에는 안중근 의사의 손도장과 이름이 새겨진 비석이 세워져 있었고, 하얼빈역에는 당시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던 그 장소가 특별하게 표시된 채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2년 전 건립된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는 지금까지 25만 명이 방문했는데, 그 중 90%가 중국인이라고 했다. 그만큼 안중근 의사는 국적을 뛰어넘어 존경받고 있었다는 것.

 

<12>이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을 되짚으며 출연자들마저 숙연하게 만들었던 건 그 역시 사사롭게는 아빠이고 남편이며 자식이었다는 점이다. 이미 많이 알려져 있는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의 편지는 더더욱 절절하게 다가왔다. 먼저 가는 걸 불효라 생각하지 말고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고 자식에게 전하는 어머니의 심정은 얼마나 만 갈래로 찢어졌을까.

 

이미 거사 직전에도 죽음을 예감했을 그지만 단정한 몸가짐을 하고 아침 기도를 하고 나서는 안중근 의사의 마음은 또 어땠을까. <12>의 행로는 그 마음을 헤아려보려는 노력이었다.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144일의 흔적이 남아있는 다롄 역의 뤼순 감옥에 도착한 차태현과 김준호는 새삼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옥중에서조차 신념과 사상으로 싸웠던 안중근 의사는 일본이 적이 아니라, 일본의 군국주의가 적이라는 걸 분명히 했다. 그리고 사형 집행 5분 전에 찍은 사진 속에서 그는 어머니가 보낸 수의를 입은 채 초연한 얼굴이었다.

 

<무한도전>배달의 무도특집에서 일본의 우토로 마을을 찾아가고, 하시마섬을 찾아가 그 감동이 컸던 것처럼, 이번 <12>이 하얼빈 특집으로 안중근 의사의 발자취를 찾아간 것 역시 더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아마도 교양 다큐멘터리 등에서 무수히 소개됐을 이야기지만 이토록 더 큰 감동이 느껴지는 건 아마도 이들 예능 프로그램들이 보통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그 역사적 현장들을 바라보기 때문일 것이다.

 

<12>의 하얼빈 특집은 그래서 역사책의 몇 줄로 기록된 그 박제된 역사를 생생히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물론 예능 프로그램이기에 지나친 무거움을 내세우는 것이 부담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행을 담는 <12>에서 역사적 현장을 찾아가 웃음이 아닌 숙연한 마음을 느끼는 것 역시 그 어떤 것보다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Posted by 더키앙

완벽한 신이 되거나 부족한 사람이 되거나

 

왜 우리는 유재석을 유느님이라고 부를까. 물론 이건 예능 프로그램 속에서 만들어진 캐릭터일 것이다. 너무나 완벽한 자기 관리를 보여주는 그의 모습이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라는 것. 최근 우토로 마을과 관련한 유재석의 미담은 왜 그가 유느님으로 불리는가를 알게 해주었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최근 <무한도전>에서 방영된 우토로 마을을 하하와 함께 찾은 유재석이 강제징용되어 끌려간 1세대 동포 중 유일하게 생존해계신 강경남 할머니 앞에서 죄송합니다. 너무 늦게 왔습니다.”라고 말했을 때 우리는 그것이 그가 이 마을에 대해 이제 겨우 알게 된 사실에 죄송한 마음을 표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는 이미 10년 전에도 이 마을에 후원을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2005년 우토로 마을의 우리 동포들이 강제 퇴거 위기에 몰렸을 때 국내의 시민단체들이 함께 모금을 진행했던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당시에도 뜻있는 연예인들이 십시일반 기부에 참여했고, 거기에는 유재석 또한 기부자로 들어 있었다는 것. 그러니 우토로 마을이 그에게 낯선 것도 아니었고 그가 이 사안에 대해 외면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강경남 할머니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너무 늦게 왔다고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 한 마디는 <무한도전>을 시청하는 시청자들을 울렸다. 우리들이 갖고 있던 죄송함을 그가 대신한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번 방송에서도 50만 엔을 기부했다고 한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밝혀진 이야기는 없다. 소속사에서도 그건 사적인 기부이기 때문에 확인이 어렵다고 말했고, 유재석 또한 이에 대해 일언반구 언급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이 알려진 건 우토로 마을을 후원하고 있는 시민단체인 지구촌 동포연대를 통해서다. 미담이 그저 묻히지 않고 전해지길 바랐을 것이다.

 

유재석의 이런 이야기는 자기관리라는 표현으로 상찬하는 것조차 어딘지 부족하다는 인상을 남긴다. 이것은 관리된 것이 아니라 그냥 그가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무언가 미담은 보다 많이 알리고 그렇지 않은 일들은 되도록 숨기는 것이 연예계의 생리라고 볼 때, 유재석은 무언가를 알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걸 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것이란 점이다.

 

유재석은 어찌 보면 리얼 버라이어티쇼에 최적화된 인물이다. 지금은 관찰카메라로 불리는 리얼리티쇼의 시대다. 그러니 예능에 있어서 조금은 트렌드가 지나간 인물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그것을 압도하는 건 바로 이런 그의 앞뒤가 다르지 않은 면면 때문이다. 그는 방송에서도 반듯하지만 방송을 떠나서도 반듯하다. 얻은 것만큼 베풀 줄 알고, 가진 힘만큼 책무도 잊지 않는다. 그러니 그가 리얼리티쇼의 시대에 여전히 캐릭터쇼를 보여줘도 대중들 입장에서는 그 캐릭터 뒤에 숨겨진 진심까지를 모두 읽어낼 수 있다.

 

유재석을 조금은 과한 표현으로 유느님이라 부르는 건 이러한 자기관리의 차원을 넘어서 진짜 반듯한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거꾸로 말해준다. 요즘처럼 리얼을 요구하는 시대에 진정성은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연예인의 자질이 되고 있다. 이제 자기 관리를 통해 적당히 좋은 면을 보이고 그렇지 않은 면들을 숨기는 건 언제든 드러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있다. 그러니 많은 연예인들은 과거 신비주의 시절에 갖고 있었던 신적인 이미지를 버리고 있다. 인간적인 면모들을 오히려 드러내는 것이 밝혀진 진면목으로 대중들을 실망시키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되었다.

 

달라진 환경 속에서 연예인은 인간적이거나 혹은 아예 신적인 모습을 요구받는다. 대중들은 점점 연예인의 사적인 영역까지 올바르기를 요구하고 방송에 비춰진 모습이 실제이기를 바란다. 물론 유재석은 인간적이고 친근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뒤에 숨겨진 아우라는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 것은 그의 타인에 대한 배려와 헌신하는 삶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진짜이기 때문이다.

 

유느님처럼 산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아마도 유재석 스스로도 쉽지만은 않을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렇게 되려고 노력하며 살 수는 있지 않을까. 선거철을 전후해 이야기가 뒤집히는 모습을 자주 보여온 우리네 일부 정치인들이나 공직자들의 앞뒤가 다른 모습을 접할 때마다 대중들이 느끼는 실망감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래서일 것이다. 어찌 보면 기본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지극히 당연한 삶의 태도를 보여주는 유재석에게 대중들이 심지어 유느님이라는 칭호를 붙이고 있는 건



Posted by 더키앙

<배달의 무도>, 그 어떤 역사 교육보다 효과적이었던 까닭

 

그저 전 세계로 떠나는 배달 정도가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무한도전>이 기획한 배달의 무도는 그런 정도가 아니었다. 일단 배달하는 것이 음식이라는 점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머나먼 이국 생활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다름 아닌 고향의 음식이 아닐까. 거기에는 그리워하는 사람들과 고향의 기억들이 방울방울 묻어나기 마련이었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그래서 가족과 친지가 보낸 음식을 먹으며 그 마음을 나누는 이 훈훈한 이야기는 그저 배달이상의 의미를 담아냈다. 하지만 역시 그 정도의 감동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배달의 무도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갔다. 일본 우토로 마을의 아픈 사연들이 소개되면서 우리가 잊고 있었던 그 곳 우리 동포들의 삶이 하하와 유재석에 의해 담겨진 데 이어, 이번에는 일본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논란을 일으켰던 하시마섬의 묻혀지고 있는 아픈 역사가 하하와 서경덕 교수의 두 차례에 걸친 방문으로 소개됐다.

 

파고가 높아 들어가지 못하게 되자 굳이 다시 찾아가 하시마 섬에 직접 발을 딛게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강제 징용되어 지옥 같은 삶을 살았던 우리네 동포들의 아픈 이야기가 삭제된 채 세계문화유산 등재되어 그저 일본 근대화의 상징처럼만 포장되어 있는 그 곳을 찾는 관광객들은 그 아픈 역사를 까마득히 모른 채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사진으로 보여지는 당시 하시마 섬의 일본인 광부들은 제복을 차려입고 당시 무려 50만엔에 달하는 봉급을 받으며 풍족한 삶의 모습을 보여준 반면, 이제 90줄을 넘기신 하시마섬의 생존자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통해 전해진 당시 강제 징용된 우리 동포의 삶은 끔찍하기 이를 데 없었다. 팬티 한 장 입고 온 몸에 탄가루를 뒤집어쓴 채 탄광에서 일했던 어르신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비명 소리와 배고픔에 대한 호소로 당시 상황은 아비규환이었다고 했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강제로 끌려가 노역을 하시다 돌아가신 어르신들은 사람들의 발길이 도저히 닿기 어려운 외진 곳에 초라하게 합장되어 있었다. 합장되기 전, 그들의 인명부조차 모조리 태워버려 그 분들이 누구인지조차 모르게 덮여진 채, 쓸쓸한 비석 하나로 남아있는 그 곳을 땀을 뻘뻘 흘려가며 찾아간 하하와 서경덕 교수는 말을 잇지 못했다. 다시 그 곳을 찾은 하하와 서경덕 교수가 챙겨 간 그분들이 그토록 먹고 싶었다던 쌀밥 한 그릇과 뜨끈한 고깃국은 저 우토로 마을을 찾았던 유재석이 했던 말처럼 너무 늦어 죄송한 배달이 아닐 수 없었다.

 

사실 우토로 마을에 대한 이야기나 하시마 섬의 아픈 역사는 여러 차례 뉴스나 다큐멘터리를 통해 소개된 바 있다. 하시마섬이 아픈 역사를 숨긴 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을 당시만 해도 신문지상에서는 이 문제를 심층 보도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안타까운 건 뉴스나 다큐멘터리 같은 매체를 통한 이런 보도들이 대중들에게는 그다지 큰 임팩트를 주지 못하는 현실이라는 점이다. 특히 청소년들의 경우 입시경쟁 속에서 역사교육에 대한 관심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다큐멘터리나 시사 프로그램이 몇 주에 걸쳐 한다고 해도 과연 이번 배달의 무도가 불러일으킨 관심만큼을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무한도전>이라는 가장 뜨거운 예능 프로그램이기에 이번 우토로 마을이나 하시마 섬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은 각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무한도전>은 물론 예능 프로그램이다. 그러니 즐거움과 재미를 줘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즐거움과 재미 역시 그저 휘발되는 것만이 아니라 의미와 가치 있는 것들을 추구할 때 지속 가능한 것이 될 것이다. 물론 <무한도전>은 계속 해서 새로운 도전들을 즐겁게 추구해야하겠지만, ‘배달의 무도라는 아이템은 일회적으로 끝내기에 너무나 아쉽게 느껴진다. 이런 프로그램이야말로 상시적으로 방송이 해줘야 하는 아이템이 아닐까. ‘배달의 무도는 분명 다큐보다 시사보다 더 효과적으로 우리에게 중대한 사안들과 가치들을 일깨워줬다.



Posted by 더키앙

우토로 마을 찾은 <무도>, 유재석이 사과한 까닭

 

죄송합니다. 너무 늦게 왔습니다. 우리가.” 유재석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참고 참으며 누르고 눌렀던 감정이 터져 나왔다. 우토로 마을에 1세대로서는 이제 혼자 남은 강경남 할머니는 눈물을 보이는 하하와 유재석에게 오히려 울지 말라며 다독였다. 일제 강점기에 강제징용 되어 이주한 우리네 동포들이 지금껏 살아가는 곳 우토로 마을. 그곳에 따뜻한 한식을 들고 찾은 <무한도전>의 하하와 유재석은 그렇게 강경남 할머니 앞에서 한없이 고개를 떨궜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사실 하하와 유재석이 무슨 잘못이 있을까. 하지만 그들이 강경남 할머니 앞에서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흘리며 죄송하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시청자들도 똑같이 느꼈을 것이다. 그 분들에게 우리가 너무나 잘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라가 어려워 그렇게 힘겹게 한 세상을 살게 됐던 우리네 동포들이 아닌가. 도움을 주지는 못할망정, 기억 속에서조차 지워버리고 있었다는 건 크나큰 잘못이었다.

 

우토로 마을이 우리에게 재조명 됐던 건 약 10여 년 전인 2004년이다. 당시 일본의 시민단체인 우토로를 지키는 모임회원과 주민들이 강원도 춘천에서 열린 한중일 거주문제 국제회의에 참여해 했던 애끓는 호소는 여러 민간단체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 89년 일본정부는 우토로 거주 동포들에게 우토로에서 나가라는 퇴거 명령을 내렸고 2000년 일본 최고재판소는 퇴거명령 확정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강제로 끌려와 강제 노역을 했던 우리 동포들에게 터전을 주기는커녕 아무런 권리가 없다는 이유로 땅을 매각해 이제 강제 퇴거를 명령했다는 것이다.

 

2004년 이 사실이 알려지고 민간단체들이 발 벗고 나섰다. 민간단체와 재단들은 '그까이꺼 사버리자'며 우토로 토지 매입을 위한 모금운동에 나서기도 했다. 이 사연을 접한 서민들은 꾸깃꾸깃 모아뒀던 쌈짓돈을 모아 성금을 보내왔다. 그리고 여론에 의해 국회에서도 우토로 땅 매입을 위한 30억 원 지원이 의결되기도 했다. 2011년 이렇게 모인 기금으로 우토로 지역의 832평을 시민사회의 모금으로 또 1152평을 한국정부의 지원금으로 매입할 수 있었다. 전체 크기의 3분의 1 정도 되는 규모였지만 그렇게라도 터전을 지킬 수 있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우토로 마을을 찾은 <무한도전>의 하하와 유재석은 여전히 하수도 시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그 곳에서 살아가는 그 분들에 대한 우리의 부채감을 마치 대변하는 듯 보였다. 그분들을 위해 <무한도전>이 정성껏 차려낸 한 끼의 밥상과 사라질 집 앞에서 그것을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듯 사진을 찍어두는 장면에는 그래서 시청자들의 마음이 얹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고향의 음식을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며 한없이 행복해지고, 이별을 아쉬워하는 할머니 앞에서 결국 눈물을 터트리는 하하와 유재석의 마음은 그래서 우리들의 마음 그대로였다.

 

죄송합니다. 너무 늦게 왔습니다.” 유재석의 이 말 속에 모든 게 들어 있었다. 이제 1세대로서는 단 한 분 남아있는 강경남 할머니. 그 할머니의 연세는 91세였다. 여덟 살의 어린 나이에 이 곳으로 와서 벌써 8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오래도록 흘렸을 눈물로 더 이상 말라버렸을 것만 같은 할머니의 두 눈에서는 여전히 눈물이 흘렀다. 그렇게라도 찾아준 그들에게 할머니는 연실 고마움을 표했다. 잊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그분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유재석의 사과는 같은 동포로서 아마도 그 최소한의 예의도 지키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자책이었을 것이다. 그걸 바라보는 우리들이 그러하듯이.



Posted by 더키앙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