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무도' 유재석의 눈물, 왜 우리들의 눈물이 되었나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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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도' 유재석의 눈물, 왜 우리들의 눈물이 되었나

D.H.Jung 2015. 9. 7.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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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토로 마을 찾은 <무도>, 유재석이 사과한 까닭

 

죄송합니다. 너무 늦게 왔습니다. 우리가.” 유재석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참고 참으며 누르고 눌렀던 감정이 터져 나왔다. 우토로 마을에 1세대로서는 이제 혼자 남은 강경남 할머니는 눈물을 보이는 하하와 유재석에게 오히려 울지 말라며 다독였다. 일제 강점기에 강제징용 되어 이주한 우리네 동포들이 지금껏 살아가는 곳 우토로 마을. 그곳에 따뜻한 한식을 들고 찾은 <무한도전>의 하하와 유재석은 그렇게 강경남 할머니 앞에서 한없이 고개를 떨궜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사실 하하와 유재석이 무슨 잘못이 있을까. 하지만 그들이 강경남 할머니 앞에서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흘리며 죄송하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시청자들도 똑같이 느꼈을 것이다. 그 분들에게 우리가 너무나 잘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라가 어려워 그렇게 힘겹게 한 세상을 살게 됐던 우리네 동포들이 아닌가. 도움을 주지는 못할망정, 기억 속에서조차 지워버리고 있었다는 건 크나큰 잘못이었다.

 

우토로 마을이 우리에게 재조명 됐던 건 약 10여 년 전인 2004년이다. 당시 일본의 시민단체인 우토로를 지키는 모임회원과 주민들이 강원도 춘천에서 열린 한중일 거주문제 국제회의에 참여해 했던 애끓는 호소는 여러 민간단체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 89년 일본정부는 우토로 거주 동포들에게 우토로에서 나가라는 퇴거 명령을 내렸고 2000년 일본 최고재판소는 퇴거명령 확정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강제로 끌려와 강제 노역을 했던 우리 동포들에게 터전을 주기는커녕 아무런 권리가 없다는 이유로 땅을 매각해 이제 강제 퇴거를 명령했다는 것이다.

 

2004년 이 사실이 알려지고 민간단체들이 발 벗고 나섰다. 민간단체와 재단들은 '그까이꺼 사버리자'며 우토로 토지 매입을 위한 모금운동에 나서기도 했다. 이 사연을 접한 서민들은 꾸깃꾸깃 모아뒀던 쌈짓돈을 모아 성금을 보내왔다. 그리고 여론에 의해 국회에서도 우토로 땅 매입을 위한 30억 원 지원이 의결되기도 했다. 2011년 이렇게 모인 기금으로 우토로 지역의 832평을 시민사회의 모금으로 또 1152평을 한국정부의 지원금으로 매입할 수 있었다. 전체 크기의 3분의 1 정도 되는 규모였지만 그렇게라도 터전을 지킬 수 있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우토로 마을을 찾은 <무한도전>의 하하와 유재석은 여전히 하수도 시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그 곳에서 살아가는 그 분들에 대한 우리의 부채감을 마치 대변하는 듯 보였다. 그분들을 위해 <무한도전>이 정성껏 차려낸 한 끼의 밥상과 사라질 집 앞에서 그것을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듯 사진을 찍어두는 장면에는 그래서 시청자들의 마음이 얹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고향의 음식을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며 한없이 행복해지고, 이별을 아쉬워하는 할머니 앞에서 결국 눈물을 터트리는 하하와 유재석의 마음은 그래서 우리들의 마음 그대로였다.

 

죄송합니다. 너무 늦게 왔습니다.” 유재석의 이 말 속에 모든 게 들어 있었다. 이제 1세대로서는 단 한 분 남아있는 강경남 할머니. 그 할머니의 연세는 91세였다. 여덟 살의 어린 나이에 이 곳으로 와서 벌써 8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오래도록 흘렸을 눈물로 더 이상 말라버렸을 것만 같은 할머니의 두 눈에서는 여전히 눈물이 흘렀다. 그렇게라도 찾아준 그들에게 할머니는 연실 고마움을 표했다. 잊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그분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유재석의 사과는 같은 동포로서 아마도 그 최소한의 예의도 지키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자책이었을 것이다. 그걸 바라보는 우리들이 그러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