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영웅

사춘기 청소년들이 마주한 폭력적 현실은 글로벌 화두가 되고 있는 걸까.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영국드라마 ‘소년의 시간’과, 최근 웨이브에서 넷플릭스로 옮겨 시즌1이 선공개되고 곧 시즌2 공개를 앞두고 있는 ‘약한영웅’ 이야기다. ‘소년의 시간’이 어른들은 모르는 아이들이 마주한 혐오의 폭력을 편집점 없는 원테이크로 그 막막한 현실 그대로를 담아냈다면, ‘약한영웅’은 범죄와도 맞닿은 학교폭력에도 불구하고 이를 방치하는 어른들의 무관심 속에서 아이들이 맞닥뜨리는 무력감을 전형적인 ‘너드 히어로물’의 틀로 그려냈다. 범죄와는 거리가 멀 것처럼 느껴지고 또 응당 그래야 할 아이들이 마주한 끔찍한 폭력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사건들은 자못 충격적이지만, 두 작품 모두 그 폭력의 밑그림을 제공하는 사회 현실의 문제들을 놓지 않고 있다. 두 작품 모두 글로벌 화제작으로 떠올라, 글로벌 OTT 순위 사이트인 플릭스 패트롤에는 ‘소년의 시간’이 부동의 1위에 올라있고, ‘약한영웅’ 역시 공개되자마자 글로벌 3위까지 오르는 놀라운 결과를 보여줬다. 

 

특히 ‘약한영웅’이 넷플릭스 공개만으로 글로벌 흥행의 신호탄을 쐈다는 건 주목할만한 일이다. 이미 2022년 웨이브 오리지널 드라마로 공개됐던 ‘약한영웅’은 당시에도 웨이브 구독자 유입에 혁혁한 성과를 낸 바 있다. 시즌2에 대한 요구들이 봇물처럼 쏟아졌지만 누적적자로 인해 웨이브의 투자가 어려워졌던 ‘약한영웅’은 넷플릭스에서 시즌2를 제작 공개하는 이례적인 선택을 하게 됐다. 그래서 복습 차원으로 넷플릭스에서 선공개된 ‘약한영웅’ 시즌1이 순식간에 글로벌 반응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는 건 이 작품이 ‘국내용’ 그 이상의 콘텐츠였다는 걸 말해준다. 

 

사실 웨이브 오리지널로 ‘약한영웅’이 공개됐을 때, 이 작품은 토종 OTT의 영민한 선택으로 여겨진 면이 있었다. 즉 넷플릭스처럼 거대 제작비를 투여할 수 없는 토종 OTT로서 탄탄한 웹툰 원작을 대본화하고, 신인이라고 할 수 있는 박지훈, 최현욱, 홍경, 신승호, 이연 같은 배우들을 캐스팅해 최적의 효과를 내는 결과물을 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넷플릭스로 옮겨진 후 복습의 차원으로 다시 ‘약한영웅’ 시즌1을 들여다본다면 이 작품이 갖고 있는 파괴력과 완성도를 다시금 실감하기에 충분하다. 글로벌 반응이 당연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다시 보면 신인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박지훈의 시종일관 공허한 듯한 반항적인 눈빛 연기가 인상적이고, 최현욱의 액션과 홍경의 기막힌 내면 연기를 새삼 발견하게 된다. 박지훈이 ‘약한영웅’이 가진 무관심한 어른들에 대해 속으로 이글이글 타오르는 분노를 응축해냄으로써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압도한다면, 최현욱의 발랄한 액션은 그 무게감에 질식되지 않게 하면서 작품을 즐기게 해주고 여기에 홍경이 보여주는 ‘자신도 왜 그러는지 모르는 엇나가는’ 모습을 정교한 내면연기는 작품에 밀도와 깊이감을 만들어낸다. 특히 국회의원의 이미지메이킹용으로 입양되어 마치 전리품처럼 이용만 당하는 오범석(홍경)이라는 인물이 마주하게 되는 막막함과 분노 그리고 탈선을 끝까지 막으려 하고 이해해주려 하는 이가 어른들이 아닌 친구인 연시은(박지훈)과 안수호(최현욱)라는 지점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도 찌르는 면이 있다. ‘약한영웅’이 흔한 학원액션물이나 너드 히어로물에 머물지 않고 진한 여운을 남겼던 건 바로 이 지점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던 ‘소년의 시간’처럼 ‘약한영웅’ 역시 어른들을 충격에 빠뜨리는 아이들의 현실을 우리 눈앞에 던져 놓는다. 물론 ‘소년의 시간’이 보다 진지한 사회극의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작품이라면, ‘약한영웅’은 훨씬 학원액션물의 타격감을 갖춘 작품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시원시원한 도파민 액션이 매회 폭발하지만 이 아이들에게 내재된 불안과 분노와 막막함이 주는 문제의식이 결코 약하다 말하긴 어렵다. 

이 달 25일 ‘약한영웅 Class 2’가 드디어 넷플릭스를 통해 돌아온다. 시즌1이 공개되자마자 글로벌 반응이 터진 것처럼, 이 시즌2가 불러일으킬 반향이 궁금해진다. 과연 넷플릭스라는 새로운 글로벌 무대 위에 선 ‘약한영웅’은 어떤 글로벌 평가를 받게 될까. 박지훈이 새로 전학가게 된 은장고등학교에서 또 어떤 폭력과 마주해 싸우게 될지 자못 궁금해진다. (글:일간스포츠, 사진:넷플릭스)

‘내 이름은 김삼순 2024’, 웨이브의 뉴클래식이 시작됐다

내 이름은 김삼순

웨이브에는 최근 드라마, 예능, 영화, 애니 등의 분류 맨 앞에 ‘뉴클래식’이라는 새로운 꼭지가 생겼다. 클래식은 ‘고전’을 의미하는데 여기에 ‘뉴’가 붙었다는 건,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마치 ‘레트로’에 ‘뉴’가 더해져 ‘뉴트로’라고 불리는 것처럼 읽힌다. 

 

‘뉴클래식’으로 내놓은 첫 작품은 ‘내 이름은 김삼순 2024’. 2005년에 방영됐던 ‘내 이름은 김삼순’에 2024년 버전이라는 의미다. 김선아와 현빈, 정려원, 다니엘 헤니를 단박에 스타덤에 올렸던 그 드라마. 최고시청률이 무려 50%를 기록했던 레전드 드라마다. 19년의 세월을 뚫고 이 드라마는 어떻게 다시 돌아왔을까. 

 

이것은 최근 웨이브가 시작한 ‘뉴클래식’ 프로젝트의 첫 발일 뿐이다. 이미 예전부터 웨이브가 가진 가장 큰 강점 중 하나는 방대한 아카이브 콘텐츠라는 이야기가 업계에서는 공공연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상파 3사가 그간 오래도록 방영해왔던 옛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들이 웨이브에 독점적으로 가득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한때 ‘전원일기’가 다시 화제로 떠올랐을 때도 웨이브는 그 드라마를 다시 정주행 할 수 있는 유일한 OTT였다. 19년 전 레전드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이 2024년 버전으로 리마스터링해 돌아오게 된 건 그런 의미였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웨이브는 보유하고 있는 아카이브 중 레전드 작품들을 대상으로 뉴클래식 프로젝트를 이어갈 작정이다. 다음 작품으로는 역시 레전드 드라마인 이경희 작가의 ‘미안하다 사랑한다’가 서비스될 예정이다. 

 

물론 19년의 세월이 주는 간극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래서 뉴클래식 프로젝트는 16부작을 8부작으로 압축 재편집했고 화질을 4K로 업스케일링했다. 또 OST 역시 클래지콰이의 ‘쉬 이즈(She is)’를 가수 이무진과 쏠이 재해석해서 다시 불렀다. 현재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 흔적이 역력하다. 

 

중요한 건 내용이 시대를 훌쩍 뛰어넘어도 여전히 공감 가능한가 하는 지점이다. ‘내 이름은 김삼순’은 촌스러운 이름과 뚱뚱한 체형 그리고 노처녀라는 콤플렉스를 가진 파티쉐 김삼순(김선아)이 고급 레스토랑 사장 현진헌(현빈)과 티격태격 로맨스를 그려나가는 드라마다. 시대의 흐름을 확실히 느낄 수 있는 건 나이 서른을 노처녀라고 불렀던 당대와 현재의 차이다. 지금의 서른이라면 결혼은 아직 먼 한창 연애할 청춘으로 여겨지니 말이다. 

 

그래서 현재의 관점으로 ‘내 이름은 김삼순 2024’를 통해 당대를 들여다보면 오히려 그 시대의 김삼순이 얼마나 시대를 앞서간 멋진 인물이었는가가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누구 앞에서도 당당하고, 자기 일에 있어서는 프로페셔널하며, 또 ‘예쁜 척’ 같은 가식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인간적인 매력이 풀풀 피어난다. 

 

또한 현재 이른바 K드라마라고도 불릴 정도로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각광받는 한국드라마(그 중에서도 로맨틱 코미디)의 원형적인 서사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 작품에 들어 있는 ‘계약 연애’를 담은 로맨스 서사나, 전문적인 일의 영역을 드라마 인물들의 직업으로 가져와 풀어나가는 방식, 또 남녀 간의 티키타카와 관계의 진전을 기막힌 코미디로 풀어내는 과정들은 ‘고전’이라는 말이 공감갈 정도로 웃음과 설렘을 준다. 

 

반응은 어떨까. 이미 2005년에 MBC를 통해 이 드라마를 접했던 세대들에게는 향수와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뉴’라는 접두어를 붙였듯이 이 작품을 처음 접하는 젊은 세대들 역시 이 ‘빈티지’한 매력에 빠져들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사랑의 불시착’ 같은 작품으로 글로벌한 인기를 끌고 있는 현빈의 젊은 시절이 등장하고, ‘키스 먼저 할까요?’, ‘붉은 달 푸른 해’, ‘가면의 여왕’에 출연했던 김선아와 ‘졸업’으로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정려원 또 ‘연예인 매니저로 살아남기’ 등의 작품으로 국내와 해외를 종횡무진하는 다니엘 헤니의 젊은 시절이 등장한다. 일종의 ‘레어템’ 같은 작품이랄까. 

 

웨이브의 뉴클래식 프로젝트는 요즘처럼 K콘텐츠가 글로벌하게 저변을 넓혀가는 상황에는 그만큼 가치있는 작업이 될 것으로 보인다. 콘텐츠 팬덤이 점점 형성되고 있어 이들의 소비욕구 또한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내 이름은 김삼순’과 ‘미안하다 사랑한다’에 이어 앞으로도 더 많은 레전드 드라마들의 귀환을 기대한다. 그것은 어쩌면 웨이브라는 지상파를 베이스로 하고 있어 아카이브가 충분한 OTT가 던지는 회심의 일격이 될 수도 있을 테니. (사진:웨이브, MBC)

‘약한 영웅’, 웨이브의 다양한 색깔 보여준 미친 드라마

약한 영웅

뭐 이런 미친 드라마가 다 있나. 웨이브 오리지널 시리즈 <약한 영웅>을 보다 보면 절로 이 드라마 속 안수호(최현욱)가 연시은(박지훈)과 농담처럼 주고받는 “넌 진짜 또라이야”라고 하는 그 말 속의 감정에 빠져들게 된다. 오로지 공부만을 위해 사는 것 같은 공부벌레에, 이른도 어딘가 연약해 보이는 연시은이지만, 이 약해 보이는 고교생이 보는 내내 감정을 쥐고 흔든다. 

 

피가 끓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그러다 절규처럼 쏟아내는 주먹질에 무언가 카타르시스가 느껴지지만 그 뒷 끝에 남는 건 지독한 쓸쓸함과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뒤틀어진 감정이다. 연시은의 허무로 가득 채워진 눈빛에 빨려 들어가 그 감정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이 약해 보이는 인물이 안수호의 말처럼 무언가에 의해 미쳐버린 광기를 내뿜는 인물로 보이기 시작한다. 그 즈음 알게 된다. <약한 영웅>이라는 제목의 진짜 뜻을. 그건 연약한 영웅 연시은이 아니라, 시쳇말로 ‘약 빤’ 영웅이라는 것. 

 

무엇이 그저 평범하게 공부하며 살아가려던 이 인물을 ‘약 빨게’ 만들었을까. 겉으로 보이는 건 ‘학교 폭력’이다. 이 학교 교실은 폭력이 일상이다. 주먹질은 물론이고 술과 담배 나아가 심지어 펜타닐 같은 마약 패치를 하기도 한다. 오범석(홍경)처럼 어딘가에서 왕따를 당하다 전학 온 친구는 여지없이 또 다시 먹잇감이 된다. 격투기를 배워 싸움 잘 하는 안수호는 그나마 약한 애들을 돕는 정의파지만, 그는 할머니를 혼자 부양하기 위해 갖가지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도 바쁜 친구다. 

 

그런데 이 겉으로 보이는 ‘학교 폭력’의 이면을 파고 들어가면 이들을 방치하거나 이들을 이용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은폐하는 어른들이 있다. 부모가 있지만 없는 거나 마찬가지로 방치하며 살아가는 연시은의 부모가 그렇고, 자신의 이미지 세탁을 위해 입양해 놓고 이용해먹기만 하려는 오범석의 국회의원 아버지가 그렇다. 안수호는 아예 자신을 보호해주는 보호자 자체가 없고 오히려 부양해야할 할머니만 있지만 이를 들여다봐주는 어른은 없다. 

 

학교 선생님들도 모두 이 폭력들을 알고 있지만 거기에는 관심을 주지 않는다. 오로지 성적과 학교 정문에 플래카드로 붙는 명문대 명단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폭력이 터져도 오범석의 국회의원 아버지와 결탁해 사건을 덮어버리는 게 다반사다. 또 길수(나철) 같은 인물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아이들을 이용해 범죄를 저지른다. 도박 게임에 빠지게 만들고 돈을 빌리게 해서 고리대금을 뜯어내며 그걸 빌미로 부모까지 협박한다. 전석대(신승호)나 영이(이연)처럼 집 밖으로 나온 아이들은 길수 같은 인간이 쳐놓은 거미줄에 걸려 범죄의 길로 들어선다. 

 

그래서 의지할 데 없고 심지어 살아남아야 했던 연시은과 안수호 그리고 오범석은 그 과정에서 친구가 된다. 단 한 번도 웃음을 보이지 않던 연시은이 유일하게 웃음을 보이는 건 친구들 앞에서 뿐이다. 하지만 이미 폭력적인 상황 속에서 연약해질 대로 연약해진 아이들의 그 빈 틈이 조금씩 균열을 만든다. 아버지의 상습적인 폭력에 노출되어 자존감이 없고 지독하게 외로운 오범석은 친구들을 통해 조금씩 회복되는 듯 보이지만 금세 그 연약한 감정 속에 억눌려져 왔던 분노가 엉뚱한 방향으로 터져 버린다. 

 

이미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뜨거운 반응을 받았던 <약한 영웅>은 그 자극의 강도가 상상 그 이상이다. 과거 넷플릭스가 오리지널 시리즈로 만들어 큰 반향을 일으켰던 <인간수업>이 고등학생이 등장하는 드라마지만 청소년 성매매부터 학교 폭력까지 적나라하게 다룸으로써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이끌어냈다면, <약한 영웅>은 그보다 한 발 더 나간 느낌이다. 학교폭력이 소재이고 그 이면에 깔린 부조리한 어른 사회들에 대한 비판의식이 담겨 있지만, 하나의 ‘하드 보일드 액션 드라마’로 봐도 될 정도로 강렬한 인상과 몰입감을 주는 작품이다. 

 

특히 이 작품은 그간 웨이브라는 OTT에 선입견처럼 드리워져 있던 ‘지상파’ 이미지를 일소할 만큼 강렬한 인상을 준다. 마치 <영웅본색>의 한국식 고교생 버전처럼도 느껴지는 이 작품은 원작이 가진 탄탄한 스토리와 감정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연출 그리고 무엇보다 말 그대로 ‘약 빤’ 연기를 보여주는 연기자들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최현욱이나 <D.P.>, <환혼>의 신승호는 이미 대중들에게 눈도장을 찍은 배우들이지만, 연시은 역할의 박지훈이나 오범석 역할의 홍경은 말 그대로 엄청난 잠재력을 폭발시킨 연기를 보여준다. 특히 박지훈은 워너원 출신의 아이돌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깊이 있는 감정 연기를 보여줌으로써 극에 끝까지 밀고 나가는 추진력을 만들어냈다. 

 

“넌 진짜 또라이야”라고 안수호가 연시은에게 말할 때마다 연시은은 “네가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라고 응수하곤 한다. 하지만 드라마 말미에 안수호가 연시은의 상상 속에서 “넌 진짜... 진짜 또라이야. 알아?”라고 물을 때 연시은이 “미안해”라고 말하고, 안수호 또한 자기도 미안하다고 말하는 장면은 너무나 아프고 슬프다. 그건 이들을 이렇게 극으로까지 몰고 왔지만 이들에게 그 누구도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어서다. 그래서 이들은 서로에게라도 미안하다고 말하며 버텨내고 있는 게 아닐까. 드라마가 끝나고 나서도 이들이 나눈 이 대화가 주는 먹먹한 감정이 긴 여운으로 남는다. 

 

드라마는 8부작으로 <약한 영웅 Class 1>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건 Class 2를 기대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로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된 연시은은 또 다시 그 곳에서 똑같이 이어지고 있는 학교폭력을 마주하게 되는 것으로 ‘Class 1’을 끝맺는다. Class 2로 돌아온다면 연시은은 다시금 안수호와 오범석과 함께 보내며 잠깐 동안 가졌던 그 행복한 웃음을 되찾을 수 있을까. 이제 막 공개된 작품이지만 벌써부터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게 된다.(사진:웨이브)

‘위기의 X’가 꺼낸 웨이브 오리지널의 가능성

위기의 X

잘 나가던 대기업 차장 a저씨(권상우). 권고사직을 당한 후 부정하고 분노하다 타협하고 우울해지다가 수용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친 이 웃픈 a저씨는 퇴직금마저 홀라당 주식과 코인에 말아먹고 발기부전에 원형탈모까지 겪는다. <위기의 X>라는 제목이 딱 어울리는 인물이고 그래서 이를 코믹하게 연기해내는 권상우의 면면에 빵빵 웃음이 터지지만 어딘가 보면 볼수록 짠한 마음이 깊어진다. 

 

에세이 <아재니까 아프다>가 원작으로 이를 코미디로 풀어낸 웨이브 오리지널 시리즈 <위기의 X>의 이야기는 어딘가 낯설지가 않다. 그건 어디선가 이런 작품을 봤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런 이야기를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해왔다는 의미다. 중년의 아저씨들이 권고사직을 당하는 일이나, 그래서 주식에 투자했다가 떡락의 지옥을 경험하고 육체적이고 심리적인 충격이 겹쳐 발기부전으로 병원을 찾는 경험들은 아저씨들의 술자리에는 늘상 농반진반의 안주거리로 올라오는 이야기들이다. 

 

그런데 술자리 농담이 그러하듯이, 자신들의 위기를 호기롭게 웃음을 풀어내며 빵빵 터지는 이야기들이 <위기의 X>에는 가득 채워져 있지만, 그렇게 웃고 나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얼큰하게 취한 마음 한 구석에 헛헛한 쓸쓸함이나 슬픔 같은 것들이 남는 것처럼 이 작품에는 짙은 페이소스가 밑바닥에 깔려 있다. 

 

특히 지난 대선을 요동치게 만들었던 부동산 관련 정책들과 그로 인해 분양을 받고도 대출을 받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이 아저씨네 부부의 이야기는 ‘눈물 나게’ 웃기는 면이 있다. 수치적으로는 청약에 ‘당첨(?)’된 것만으로도 시세차익으로 10억대가 넘는 돈을 번 것처럼 여겨지지만, 그것이 현실이 되려면 그만한 현금을 넣을 수 있는 여력이 되어야 하는 현실. 그래서 분양 사무실 앞에서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까 포기할까를 고민하며 우왕좌왕하는 부부의 모습은 빵빵 터지면서도 슬프다. 

 

그 당첨된 아파트를 손에 쥐려면 남편은 이사급으로 스카웃되어야 하고, 아내는 상위 5프로 웹소설 작가가 되어야 한다. 그건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인생 역전의 욕망 앞에서 이들은 이들은 스스로를 그 지옥의 레이스 위에 밀어 넣는다. 하지만 현실은 너무나 요원하다. 남편은 재취업을 위해 얼마나 자신이 젊은 마인드를 갖고 있는가를 보여주기 위해 면접자들 앞에서 되도 않는 랩을 선보이고, 아내는 어떻게든 웹소설 작가로 성공하기 위해 19금을 쓰기 시작하다 덜컥 임신을 하게 되면서 흥분만 하면 입덧을 하는 통에 19금 소설을 포기하는 상황을 맞이한다. 

 

어쩌다 남편은 부사장으로 스타트업 회사에 틀어가지만 수평적인 관계를 강조한다며 툭하면 회의 중 욕설에 멱살잡이를 하는 회사 분위기에 절망한다.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차량 세척 관련 관리 회사라는 점에 마음을 다잡고 몸과 영혼을 갈아 넣는 이 아저씨와 그 회사 젊은 사무직 여직원 김대리(박진주)가 나누는 대화는 일과 미래에 대한 너무나 다른 관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담배 한 개비도 아껴 피우며 돈을 모아 ‘파이어’를 꿈꾼다는 김대리는 물불 안 가리고 일에 몰두하는 아저씨에게 쉬엄쉬엄 하라며 그러다 번아웃 온다고 말해주지만, 이 아저씨가 “우리 때 번아웃은 과로사”였다는 말은 너무나 웃프다. 과로사를 해야 겨우 번아웃이라고 인정해줬던 노동 착취의 시대를 꼬집는 말이다. 하지만 김대리는 회사가 이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마당에도 자신이 계획한대로 목표금액 8억을 모았다며 곧 퇴사할 거라고 말한다. 

 

애써 퇴사를 막기 위해 설득하려는 이 아저씨에게 김대리가 하는 말은 반박불가의 설득력으로 다가온다. “부사장님. 저 이거 오랫동안 생각하고 준비한 거예요. 그건 노는 걸로 폄훼하시면 곤란해요. 그리고 저는 대리든 과장이든 10년 뒤에 제가 서 있을 위치 같은 거는 중요치 않아요.” 대신 그는 그 “10년”이 중요하다고 한다. “10년이라는 시간 그 자체”가. “인생의 모든 시간을 오로지 나만을 위해 쓸 수 있다면 얼마나 가치 있어요?” 그 말에 아저씨는 할 말을 잃는다. 

 

<위기의 X>는 어찌 보면 가벼운 터치의 코미디처럼 보이지만, 그 무엇보다 깊은 현실 공감과 세태 풍자의 맛이 ‘거침없이 강렬하게 느껴지는’ OTT 특유의 색깔이 묻어나는 작품이다. 거기에는 40대 중년 부부가 마주한 경제적 상황에서부터 부부관계 같은 성담론에 이르기까지 주저하지 않고 풀어내는 시원시원함이 있고, 무엇보다 이 무거운 이야기를 빵빵 터지는 풍자와 코미디로 밝게 끌고 나가는 힘이 있다. 

 

2021년에 웨이브 오리지널의 진수를 보여줬던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라는 작품이 있었던 것처럼 2022년작 <위기의 X>가 그 계보를 잇는 느낌이다. 지극히 한국적이면서 거침없는 풍자와 코미디의 맛. 웨이브라는 토종OTT의 색깔이 뭐냐고 물었을 때 아직까지 선명하게 다가오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를 대표하는 콘텐츠로서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를 잇는 <위기의 X>를 떠올리는 건 그래서 자연스러울 것 같다. 

 

권상우는 물론이고 임세미, 성동일 같은 이 코미디의 페이소스를 제대로 만들어낸 배우들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권상우나 성동일이야 웃픈 코미디 연기로 이미 정평이 나 있지만, 아내 역할로 나온 임세미는 기대 이상의 코미디 연기를 보여준다. 여기에 신현수, 박진주. 이이경, 조한철 같은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도 빼놓을 수 없다. 6부작으로 끝났지만 못내 시즌2가 궁금하고 기다려지게 만든 건 이들 배우들의 매력이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으니.(사진:웨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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