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수'의 탈락자도 '나가수' 출신 가수다

'나는 가수다'(사진출처:MBC)

한 달 간 재정비의 시간을 갖고 있는 '나는 가수다'에 대한 관심이 다시 커지고 있다. 자진 하차를 결정한 김건모와 백지영 그리고 탈락자인 정엽이 빠져나가고, 남은 김범수, 박정현, 윤도현, 이소라는 계속 출연하기로 결정했고, 새로운 멤버로 김연우와 임재범 그리고 또 한 명의 가수(아직은 베일에 싸인)가 결정되었다. 흥미로운 건, 새로운 멤버들이 구성되는 과정에서 여러 가수들의 이름이 물망에 올랐다는 점이다.

양파는 기회가 오면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고 인순이는 고민 중이라고 했다. 아이유는 주변에서 자꾸만 '나는 가수다'와 연결시키는 바람에 부담을 느끼는 눈치다. 하지만 실제로 출연을 하지 않더라도 가수들 입장에서는 '나는 가수다'에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이 나쁠 게 없는 상황이다. 그만큼 쟁쟁한 가창력의 가수들 사이에 선다는 것 자체가 자신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MBC 예능국 관계자에 의하면, 애초에 많은 가수들이 '나는 가수다'가 가수에게 순위를 매겨 서열화한다는 우려를 표명했던 것과는 상반되게 지금은 꽤 많은 가수들이 출연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여기 출연한 가수들은 거의 모두가 확실한 이득을 거둬가고 있다. 이소라는 9년 만에 부활된 '이소라의 두 번째 프로포즈(케이블채널 KBS JOY)'를 진행하게 되었다. 뛰어난 가창력에도 불구하고 1위를 해본 적이 없는 김범수는 '나는 가수다'에서 1위를 한 후, 팬들의 시선 자체가 달라졌다고 한다. 막상 탈락한 정엽은 심지어 가장 많은 걸 얻은 가수가 되었다. 정엽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들에게 완전한 호감을 심어주었다.

아직까지 정산이 되지 않아(3개월마다 정산한다고 한다) 그 수익이 얼마일지는 알 수 없으나 여기서 부른 노래들의 음원 수익 역시 쏠쏠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음원 차트 상위권을 거의 휩쓸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세션에서부터 심지어 리메이크할 때 들어가는 편곡료까지 모두 방송사에서 지급하기 때문에 가수들 입장에서는 그만큼 부담이 없는 셈이다. 그러니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려는 가수들이 줄을 설 수밖에.

문제는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거나 출연할 가능성이 있는 가수들과 그렇지 못한 가수들 사이에 느껴질 괴리감이다. 5월에 재개되어 차츰 프로그램이 정착을 해가게 된다면 이른바 '나가수 출신 가수'라는 말이 나오지 않으란 법이 없다. "나 이대 나온 여자야"라고 김혜수가 '타짜'에서 했던 대사를 살짝 패러디해 말하면 "나 나가수 출신 가수야"라는 말이 현실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이것은 이미 '나는 가수다'의 출연 제의가 왔다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가치를 높일 수 있게 된 작금의 상황을 보면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제작진들이 갖고 있는 다양성에 대한 마인드는 오히려 이런 우려를 가능성으로 보게 만든다. 제작진들은 애초에 밝힌 대로 트로트 가수에서부터 아이돌 가수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좀 더 다양한 무대를 대중들에게 선보이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즉 어느 누구에게나 무대가 열려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되도록 많은 가수들이 '나는 가수다'의 무대에 오르고 각자의 매력을 재발견하게 해주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진심이라는 것이다.

'나는 가수다'는 오디션 형식을 갖고 있지만 일반인 오디션과는 정반대의 방향성을 갖고 있다. 즉 일반인 오디션은 다수의 지원자들이 경쟁을 통해 소수의 삼각형으로 줄어들고 거기서 결국 최후의 1인을 뽑는 과정을 보이지만, '나는 가수다'는 일단 7명의 소수의 삼각형으로 시작해 차츰 '나는 가수다' 출신 가수들의 풀을 넓혀가면서 점점 커지는 삼각형 구조로 간다는 얘기다.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을 무대 위에 오르는 가수에만 집중하지 않고 거기서 노래를 불렀던 가수들(탈락했을 지라도 정엽 같은)까지 함께 끌고 가는 이른바 '나는 가수다' 출신 가수 개념으로 끌어안는다면 이 프로그램의 긍정적인 가능성은 더 커질 수 있지 않을까. 진심으로 노래하는 이 땅의 모든 가수들이 '나가수'의 무대에 오르고 또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나 '나가수' 출신 가수야!"

서점에 나가보면 썰렁한 분위기에도 유독 활활 타는 코너가 있다. 이른바 '자기 계발 서적' 코너다. 성공에 관한 저마다의 방법들이 실용적으로 담겨진 그 책들은 언제 갑자기 도태될 지 모르는 경쟁 부추기는 사회 속에서 불안한 현대인들을 유혹한다.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그 '자기 계발을 해준다'는 책들의 주장들은 정말 달콤하다. 아침에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고, 사회생활 속에서 상대방의 심리를 파악하며 전술적으로 행동하는 그런 것이 성공을 보장해줄 것이란 믿음을 주기 때문이다.

'자기 계발'이라는 말은 그 뉘앙스만 보면 우리 속에 있는 가능성을 성장시켜주는 어떤 것으로 여겨진다. 아마도 그 책 코너 속에 몇몇 책들은 실제로 이런 기능을 할 것이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부분의 '자기 계발서'들은 사회를 상정하고 그 사회 속에서 개인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지침처럼 내세운다. 즉 사회 속에 있는 개인을 통제하는 것으로 그 사회의 기존 질서에 부합하는 성공을 열매로 제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기 계발'이란 이제는 직접적으로 통제하지 않아도 스스로 통제하게 만드는 보다 견고해진 사회의 통제 시스템으로 보이기도 한다.

불안하기는 방송사 같은 조직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자신을 채찍질하고 어떤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방송사도 새로운 사장을 뽑고, 조직을 새로 짜고, 매번 방송 개편을 하면서 자기계발을 한다. 사실 개인이야 누군가의 통제를 받는다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심각한 자유의 침해로 여겨지지만, 방송사 같은 거대 권력 조직이 어떤 통제를 받는다는 것은 그다지 이상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통제 없이 달려 나가는 방송사는 언제 터질 지 모르는 지뢰처럼 사회를 불안하게 만들 것이다.

중요한 건 그 통제가 누구에게서 나오느냐는 것이다. 방송사가 누구의 눈치를 보면서 자기계발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그것은 방송사가 존립하는 이유인 대중들에게서 나와야 한다. 대중들의 눈높이, 사회 윤리적 잣대, 볼 권리, 알 권리... 굳이 공익이라고 거창하게 말하지 않더라도, 늘 대중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 만일 이 통제가 대중들을 통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정부에 의해 나온다면 그것은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이것은 단순히 과거 군사정권 하의 우리네 방송을 돌이켜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물론 지금은 군사정권처럼 시시콜콜 이거 해라 저거 하지 마라 하면서 방송을 통제하는 시대도 아니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을 그대로 내버려둘 국민들도 아니다. 문제는 누가 지시하거나 압력을 행사하지 않더라도 알아서 자기 통제를 하는 방송사다. 늘 자기 계발을 위해 좀 더 나은 방송을 위해 했다고는 하지만, 대중들에 의해 논란이 야기되는 건 그것이 혹 자기검열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기 때문이다. 좀 더 나은 방송을 위한다는 명분의 자기 계발은 그 통제가 대중들로부터 나오는 것이지만, 자기검열은 권력으로부터 통제되는 것이기에 이 부분에 대한 논란은 뜨거울 수밖에 없다.

최근 들어 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외압설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윤도현의 '러브레터' 하차와 정관용씨의 시사 프로그램 하차, 그리고 계속해서 외압의혹을 낳고 있는 김제동씨의 결국 불발된 '김제동쇼'. 그 밖에도 '개그콘서트'의 몇몇 코너들에 대한 외압설 등등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아마도 직접적인 외압은 가능성이 희박한 이야기일 것이다. 그럼에도 방송사가 스스로 단행하는 자기 통제 방식의 압력은, 그것이 대중들의 논란을 야기시키는 것으로 볼 때, 분명히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만일 대중들을 위한 자기 통제라면 논란이 나올 까닭이 없지 않은가. 자기 계발 시대의 통제 시스템은 이처럼 더 견고해졌고 그 실체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아졌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