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태웅보다 정치적 사안에 관심보이는 대중들

 

본래 많던 연예계 이슈들이 그간 잘 드러나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면 최근 들어 연예계 이슈가 부쩍 늘어난 것일까. 하루가 멀다 하고 이슈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엄태웅이 마사지 업소에서 성폭행을 했다며 피소된 사실이 터져 나온 지 하루 만에 신하균과 김고은의 열애사실이 공식적으로 뉴스화 됐다. 하루가 짧게 느껴질 정도다.

 

'원티드(사진출처:SBS)'

돌이켜 생각해보면 올해 연예계 이슈는 유독 많았다. 가까이는 AOA 설현과 지민의 역사 무지 논란에 이어 티파니의 광복절 전범기 논란이 터져 나왔고, 유상무, 이주노, 박유천, 이진욱까지 성추문이 쏟아져 나와 대중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배우 김민희와 홍상수 감독의 불륜 이슈도 한동안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었고 조영남은 대작 논란으로 대중들의 질타를 받았다. 이창명을 비롯해 윤제문까지 쏟아져 나온 음주운전 논란은 이제 너무 많이 나와 그다지 화젯거리가 되지 않는 모양새다.

 

과거 스포츠지 시절에는 연예계 이슈가 프로야구 시즌이 끝나는 10월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었다. 스포츠 이슈가 없기 때문에 스포츠지가 나서서 그간 숨기고 있던 이슈를 꺼내놓았던 것. 그래서 10월은 연예인들이 조심해야 하는 달로 인식되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의 양상을 두고 보면 이제 논란과 이슈는 거의 하루 걸러 터져 나오는 상황이다. 사실 연예가에서 수면 아래 있는 이슈성 이야기들은 이전까지만 해도 특별한 일이 아니면 넘어가거나 덮여지는 경향이 있었지만 지금은 사실이 밝혀지지 않은 들마저 일단 까발려지는 형국이다.

 

연예가의 이런 폭로성 황색 저널리즘이 대중들을 피곤하게 만드는 건 사실이지만 또한 대중들이 여기에 관심을 보이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런데 이것이 요즘처럼 하루 걸러 나오게 되자 양상이 조금 달라지고 있다. 결국 자극적인 이슈는 반복될수록 둔감해지기 마련이다. 박유천과 이진욱 같은 바른 이미지의 연기자들이 성추문 논란에 휘말렸을 때 받은 엄청난 충격 때문인지 엄태웅의 성폭행 혐의 기사가 보도는 생각보다 그 충격이 덜한 느낌이다. 물론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아이들과 함께 나온 그에게 이런 혐의가 덧씌워졌다는 것에 대한 충격은 컸지만 하루가 지나자 그 이슈는 한풀 꺾인 양상이다.

 

신하균과 김고은의 열애 사실 보도 역시 마찬가지다. 나이 차가 많이 나는 그들이지만 그렇게 남녀가 좋아하고 사귀는 것이 뭐 그리 큰 이슈가 될까 싶을 정도다. 물론 사실 자체는 잠깐 대중들의 시선을 끌지만 이 보도 역시 하루가 지나면 그다지 이슈거리로 남지 않을 것이 뻔하다.

 

사실 이렇게 반복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연예가 이슈에 대해 이제는 대중들도 심드렁해진 상황이다. 항간에는 이렇게 갑자기 연예가 이슈가 쏟아져 나온 이유로 공교롭게도 그 시점에 터진 박대통령의 동생 박근령씨가 사기로 검찰에 고발된 사건을 덮기 위함이라고 추측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연예가 이슈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와 그 자극이 자극으로 느껴지지 않는 현재, 대중들이 더 집중하과 관심 있어 하는 건 오히려 박근령씨 사안이다.

 

사실 나와도 너무 많이 나왔고, 그 이슈들도 너무 비슷비슷해졌다. 그래서 반응들도 영 예전만 못하다. 그러니 정치적 이슈를 덮기 위해 나오기 위한 음모론이라고 말하기도 무색한 지경에 이르렀다. 덮여지기는커녕 오히려 음모론으로 더 관심이 집중되는 관심의 역류가 생기고 있으니 말이다

박유천 사태, 한류스타들의 위기관리 제고의 기회로

 

정말 눈 뜨고 보기 힘든 추문들이 하루 걸러 터져 나온다. 음주운전은 연예인들이라면 한 번씩 하는 논란 중 하나처럼 여겨질 정도고, 그간 굳게 닫혀 있었던 성추문 관련 판도라의 상자 역시 열려버렸다. 그냥 듣기에도 인상이 찡그려질 수밖에 없는 추문들. 그러니 팬들은 오죽할까. 이건 단지 국내 팬만이 아니라 해외 팬들까지 고스란히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한류가 만난 의외의 복병이 될 가능성이 높다.

 

'냄새를 보는 소녀(사진출처:SBS)'

박유천 사태는 그 문제가 사안 하나만을 보여준다기보다는 우리 사회 전반의 문제들을 송두리째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선한 이미지로 대중들의 사랑을 받던 한류스타는 단 일주일도 되지 않아 충격적인 고소가 연이어 터지며 바닥으로 곤두박질 쳤다. 수사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이미지 회복은 불가다. 오죽하면 팬들조차 공식적으로 지지와 신뢰를 철회했을까.

 

이 문제가 터진 이면을 들여다보면 연예인들의 자기관리가 얼마나 많은 허점을 갖고 있는가가 드러난다. 이것은 박유천 개인의 자기관리도 문제지만, 이런 문란한 생활을 거의 방치한 소속사의 매니지먼트에도 커다란 문제로 다가온다. 성폭행 혐의가 아니더라도 이런 식으로 유흥업소를 다녔던 적절치 못한 행실들은 요즘 같은 시대에는 언제고 드러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 근거 없는 자신감이 놀라울 정도다. 이 정도면 은퇴불사, 맞고소 등 초강수 대응에 대한 근거를 제시할 때가 됐다. ‘도덕적 해이라는 표현은 여기에 적확할 것이다. 그런 정도의 마비 상태가 아니라면 어떻게 이런 행실들을 반복할 수 있었을까.

 

옹달샘 논란이 채 가시기도 전에 터져버린 유상무의 성폭행 혐의 피소 건도 마찬가지다. 그 짓을 했는가 안했는가의 문제보다 더 충격적인 건 그가 여러 여자들에게 마치 애인처럼 했던 행실들이다. 연예인으로서 갖게 된 지위와 신뢰감이 이런 식으로 오용되고 있다는 걸 대중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자기 관리의 부재를 넘어서 이것 역시 그것이 잘못된 일이라는 걸 인지하지 않는 도덕적 해이가 그 행실들 속에서 느껴진다.

 

그토록 많이 터진 음주운전과 그로 인해 자숙을 결정하고 당분간 활동을 접은 무수한 연예인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음주운전이 적발된 연예인들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최근 강인은 이미 과거에도 전적이 있었지만 또다시 음주사고를 일으켰고, 윤제문 역시 음주운전으로 적발되어 충무로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들의 사건사고들은 그들 한 명의 문제가 아니라 주변 나아가 한류까지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작게는 그들이 관여한 프로그램이나 콘텐츠에 심각한 차질을 불러일으키고, 크게는 기껏 어렵게 지펴놓은 한류의 불씨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까지 일으킨다. 이미 쯔위 사태를 통해 한 한류스타의 행동 하나와 소속사의 잘못된 대처가 불러일으키는 엄청난 결과를 우리는 목도한 바 있지 않은가. 이건 자칫 잘못하면 국가적인 분쟁으로까지 이어지는 일이다.

 

박유천 사태는 현재 한류스타들의 자기관리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다는 걸 드러내준다. 갖가지 유혹이 많은 자리인 만큼 자기 관리 또한 철저해야 하는 법이지만, 지금의 한류 스타들은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조차 제대로 배우지 못한 상태다. 결국 자기 관리의 핵심은 인성 교육이다. 자존감을 어떻게 가져야 하는가와 스트레스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또 나아가 연예인이라는 직업의 실체가 무엇인가 같은 근본적인 자기 정체성을 둘러싼 교육이 이뤄지지 않는 한 제2의 박유천 사태는 언제고 또 터질 수밖에 없다

<육룡>의 무명, <뿌리>의 밀본에서 보이는 작가의 야심

 

SBS 월화사극 <육룡이 나르샤>에서 드디어 밀본(숨은 뿌리)’이 등장했다. <뿌리 깊은 나무>에서 세종의 한글 창제와 유포를 막는 세력으로 등장했던 비밀조직이 밀본이다. 밀본이란 조직은 꽃은 꽃일 뿐 뿌리가 될 수 없다라는 말로 그 조직의 성격을 설명한다. 정도전(김명민)1대 본원인 밀본은 그가 주장한 대로 왕의 나라가 아닌 사대부의 나라를 꿈꾸는 조직. 왕은 상징성을 드러내는 꽃일 뿐, 실질적으로 나라가 움직이는 건 사대부들에 의한 관료 시스템이며, 그들의 근본적인 힘은 백성(민본)이라는 뿌리에서 나온다고 밀본은 주장한다.

 


'육룡이 나르샤(사진출처:SBS)'

1대 본원인 정도전은 사대부들을 모아 놓은 자리에서 밀본을 세우며 위민(爲民), 애민(愛民), 중민(重民), 안민(安民), 목민(牧民) 같은 강령을 외친다. 김영현, 박상연 작가의 <뿌리 깊은 나무>에 열광했던 시청자라면 그 장면이 익숙할 것이다. <뿌리 깊은 나무>에서 가리온이라는 이름으로 정체를 숨긴 채 밀본을 움직이던 정기준(윤제문)이 사대부들을 모아놓고 연설을 하던 그 장면과 똑같기 때문이다.

 

물론 <육룡이 나르샤>에서 정도전이 세운 밀본<뿌리 깊은 나무>에서 정기준이 움직이는 밀본은 사뭇 성격이 다르다. 근본적으로 왕을 견제하는 세력이라는 점에서 같지만 그래도 정도전은 이성계(천호진)라는 왕을 견제하면서도 보필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뿌리 깊은 나무>의 정기준은 다르다. 세종(한석규)이 왕이 되면서 오히려 왕은 애민을 실천하는 인물로 등장하고 정기준과 밀본 세력은 그 왕이 하려는 일을 막는 비밀조직으로 전락한다.

 

이미 작가들이 밝힌대로 <육룡이 나르샤><뿌리 깊은 나무>의 프리퀄이다. 그러니 밀본이라는 조직의 등장은 자연스럽게 <육룡이 나르샤>의 이야기를 <뿌리 깊은 나무>와 연결시킨다. 무휼이나 이방지 같은 동일인물이 들어가 있다는 점에서 <뿌리 깊은 나무>에서 저마다의 존재감을 드러내던 그들이 어떻게 성장했는가를 살펴보는 재미가 <육룡이 나르샤>의 전편에 깔려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제는 마무리가 되어가는 지점에 <뿌리 깊은 나무>와의 연결고리 또한 흥밋거리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육룡이 나르샤>에는 무명이라는 조직이 등장한다. 이 조직은 밀본과는 또 다른 조직이다. 밀본의 1대 본원인 정도전과 대립하는 조직이 무명이다. 그 무명은 여러모로 이방원(유아인)과 뜻을 같이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처음 정도전과 사제지간으로 있을 때는 이방원 역시 무명과 대립했지만, 이제 정도전과 한 판 승부를 벌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방원은 무명과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한 배를 타게 되었다. 결국 <육룡이 나르샤>의 후반부는 역사가 이미 얘기하듯 정도전과 이방원의 대결이 되겠지만, 그것은 또한 밀본과 무명이라는 두 비밀조직의 대결이 되기도 한다.

 

<육룡이 나르샤><뿌리 깊은 나무>는 이토록 비밀조직들을 등장시킬까. 그것은 이제는 사극에서 너무 많이 다뤄져 역사적 사실이 뻔히 드러나 있는 소재들을 어떻게 하면 더 흥미진지하게 만들까를 고심한 데서 나온 결과다. 김영현 작가는 과거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세종 대의 이야기를 고민하다가 이정명 작가의 소설 <뿌리 깊은 나무>를 보고 그 해답을 찾았다고 말한 바 있다. 즉 너무나 뻔해 보이는 세종대의 역사적 사실을 이면에 있는 비밀 스런 이야기를 덧붙임으로 해서 새롭게 그려내는 방식이 그것이었다.

 

밀본은 그렇게 탄생한 것이고, 무명 또한 마찬가지 이유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 새로운 방식은 우리가 퓨전사극이라고 부르던 역사에 상상력을 덧대 만든 사극의 시도와는 사뭇 다르다. 퓨전사극은 역사적 사료가 거의 없는 인물을 그리거나, 있다고 해도 그 빈 공간을 상상력으로 채워 넣을 수 있는 인물을 찾아 그려왔다. 하지만 이성계, 이방원, 이도 같은 역사적 사료가 풍부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리면서도 그것이 뻔하지 않고 그 안에 새로운 이야기를 상상력으로 붙일 수 있는 방법이 무명이고 밀본이 되었던 것이다.

 

이미 해외의 슈퍼히어로 블록버스터들이 성공적으로 그려냈던 것처럼 무명과 밀본 같은 비밀스런 조직의 등장은 뻔한 역사적 사실을 흥미롭게 만든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을 최대한 손상하지 않으면서도 사실 그 이면에서 움직였던 비밀 조직들의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뿌리 깊은 나무>의 프리퀄로서 <육룡이 나르샤>가 이미 성공적으로 그려진 마당에 이제 또 이 무명과 밀본 세력을 중심으로 조선의 역사가 사극으로 새롭게 탄생하길 기대하는 건 그래서다. 무명의 암호인 초무자 무진(初無者 無盡: 애초에 없는 자 영원히 있으리니라는 말은 그래서 또 다른 후속작들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게 만든다. 김영현, 박상연 작가의 야심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감흥을 포기한 삶에 발랄한 일격, <나 공무원>

 

어쩌다 공무원이 로망인 시대가 됐을까. 물론 여기서 말하는 공무원이란 모두를 통칭하는 얘기가 아니다. 흔히들 말하는 공무원이라는 이미지, 즉 ‘복지부동’으로 통하는 그 이미지로서의 공무원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공무원이다>는 이 감흥 없는 삶(심지어 “흥분하면 지는 거다”라고 말하는)에 발랄한 일격을 날리는 영화다.

 

'나는 공무원이다'(사진출처:마포필름)

7급 공무원 한대희(윤제문)는 나이 38세에 마포구청 환경과 생활공해팀 주임이다. 이 구청에서 그는 내용보다는 파워포인트 양식을 잘 다루는 것으로 자칭 좀 잘 나가는 공무원이다. 연봉 3천5백에 정시 출근 정시 퇴근. 임금 체불 없고 정년 보장되고, 미래를 위해 집도 하나 갖고 있는데다, 퇴근 하면 자신을 반겨주는 10년째 TV친구 유재석, 경규형이 있는 그는 자신의 삶에 200% 만족한다. 어떤가. 이 정도면 만족할만한 삶으로 여겨지는가? 글쎄.

 

끝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민원으로 속이 부글부글 끓어도 오로지 평정심만이 자신의 위치를 지켜줄 것이라 믿고 살던 그의 삶에 어느 날 인디밴드 하나가 불쑥 침입한다. 그리고 밤마다 쿵쾅대는 소음에 사람이 “전두환이나 세계금융위기 이런 거시적인 걸로만 시달리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가던 그는 차츰 잊고 있던 심장박동소리를 듣게 된다. 평정심의 대가에게 흥분은 위험하고도 달콤하게 다가온다.

 

공무원이 로망이 되고 흥분이 위험인 시대. 어딘지 불온한 이 시대의 기점은 어디서부터 비롯됐을까. 아마도 저 IMF라는 그늘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 이전까지 사자 직업이나 혹은 사업가, 심지어 예술가를 꿈꾸던 이들은 이 생존이 불안한 시대에 접어들면서 꿈이 아닌 현실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평생 직업으로서의 교사나 공무원을 꿈꾸게 된 것. 물론 교사나 공무원이란 직업이 잘못된 건 아니다. 다만 이 직업 자체의 매력이 아니라 그 직업이 갖는 안정성을 좇는 세태가 문제라는 것.

 

사실 이렇게 공무원이 로망이 되어버린 힘겨운 현실은 서민들이 의도했다기보다는 가진 자들의 방만한 경영으로 어느 날 갑자기 서민들에게 쏟아진 날벼락이라는 점에서 공분을 자아낼만한 일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분노’보다는 ‘흥분’이라는 문제를 선택한다. 이 영화의 제목은 본래 영어 제목으로 알 수 있듯이 <Dangerously Excited>, 즉 <위험한 흥분>이었다. 왜 분노가 아니라 흥분일까. 이 지점에서 이 영화가 포착하고 있는 보다 날카로운 세태의식을 느낄 수 있다.

 

본래 흥분이란 영어 표현으로 ‘Excited’라 표현하듯 그다지 나쁜 감정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 흥분이라는 단어는 마치 부정적인 감정 상태인 것처럼 해석되는 게 사회적 통념이다. 흔히들 “흥분하지 마”라고 얘기할 때 흥분이란 어딘지 일을 그르치는 요소로 받아들여진다. 왜 자신의 감정을 밖으로 표출하는 흥분이라는 상태가 부정적일까. 그 안에는 사회적으로 암묵된 억압의 그림자가 들어 있는 건 아닐까.

 

영화는 한대희가 민원인들의 전화를 받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한껏 흥분해 있는 민원인들의 항변을 한대희는 마치 그것을 아무런 항변 없이 받아주는 것이 자신의 직무인 양 넙죽넙죽 받아낸다. 하지만 한대희라는 공무원 역시 사람일진대 어찌 흥분하지 않을까. 다만 억누르고 있을 뿐이다. 이 억눌려진 감정은 어느 날 한계수위를 넘으면 분노로 표출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한대희가 선택하는 건 분노가 아니라 흥분이다. 자신의 가슴을 다시 뛰게 만드는 그 무엇을 찾는 것. 이 영화가 그토록 귀엽고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 무거운 현실을 등에 짊어지고 있음에도 바로 이런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 흥분이라는 주제를 툭 던져놓는 <나는 공무원이다>라는 영화를 얘기하면서 윤제문이라는 배우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윤제문이라는 배우가 그간 해온 연기들의 맥락 속에 이 흥분이라는 주제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의 외모에서 풍겨져 나오는 강렬한 인상 때문인지 그는 어딘지 격한 감정을 꾹꾹 눌러 그 안에 숨겨두고 있는 그런 역할을 주로 해왔다.

 

최근작 <뿌리 깊은 나무>에서 정기준은 그 감정이 한없이 숨겨졌다 분노로 표출되는 인물이다. <더킹 투 하츠>의 김봉구 역시 이 분노의 감정을 한없이 억누르고 풀어내는 역할이다. 그런 그이기에 갑작스럽게 보이는 귀요미 연기 변신이 새로우면서도 낯설게 여겨지지 않는다. 억눌려진 감정이 분노에서 흥분으로 바뀐 그 역할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공무원이다>라는 영화는 온전히 윤제문이라는 배우 하나를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고 의미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그 안에는 포복절도의 코미디와 부글부글 끓는 듯한 억눌린 감정들, 그리고 그것이 긍정적으로 풀어져 나오는 기분 좋은 해소의 과정들이 모두 들어 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