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호진 PD가 말하는 <응답> 신원호 PD

 

예능 PD가 어떻게 이런 드라마를 연출했을까. <응답하라 1994> 신원호 PD에는 일종의 편견과 선입견이 있다. 어딘지 드라마 PD보다 예능 PD를 평가절하하거나, 혹은 이 두 분야가 전혀 달라서 연출을 한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모험이자 도전이라는 것.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응답하라1994(사진출처:tvN)'

<응답하라 1994>의 이우정 작가나 <주군의 태양>의 홍자매,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박혜련 작가 같은 예능작가 출신들이 드라마작가로 전업해 전성시대를 구가하고 있는 것처럼, 예능을 연출하다가 드라마 PD로 이름을 날린 경우도 적지 않다. 현재 <기황후>를 연출하고 있는 한희 PD도 예능 연출 출신이고, <파스타>, <골든타임> 등으로 스타PD 반열에 오른 권석장 PD 역시 <일밤> 조연출 출신으로 <테마극장> 연출로 잔뼈가 굵었다.

 

<응답하라> 시리즈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신원호 PD 역시 <여걸식스>, <남자의 자격> 등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두각을 나타냈지만 본래 본인은 영화 연출에 뜻이 있었다고 한다. 바로 이런 남다른 신 PD의 성향은 고스란히 <응답하라> 시리즈의 연출에도 묻어나고 있다.

 

<응답하라 1994>가 특별한 느낌으로 전달되는 이유는 그저 정보 전달만이 아니라 그 안에 담겨진 감성이나 정서를 묶어내는 신 PD만의 연출력에서 비롯된다. 예를 들어 <응답하라 1994>에서 쓰레기(정우)와 빙그레(바로)가 비오는 날 가게 앞 평상에 앉아 소주를 마시는 장면이 그렇다. 정보적으로는 그냥 술을 마시는 장면이면 족하겠지만, 이 장면에서 정우는 평상에 앉아 맨발을 쭉 뻗어 빗물에 내놓은 채 소주를 마신다. 이런 디테일한 연출에는 당시 상황이 주는 특유의 감각적이고 정서적인 느낌들이 묻어나기 마련이다.

 

<12>의 새 매거폰을 잡은 유호진 PD는 신원호 PD가 가진 정서적인 연출에 대한 일화를 들려주었다. 신원호 PDCJ로 이적하기 전 마지막으로 <남자의 자격>을 연출할 때 유호진 PD는 인사차 편집을 하고 있는 신 PD를 찾은 적이 있다고 한다. 당시 <남자의 자격> 아이템은 아저씨들이 호주 사막을 여행하는 것이었는데, 그냥 원샷으로 편집해도 되는 자동차가 달려가는 장면을 굳이 중간에 끊어서 나뭇가지 흔들리는 장면 같은 것을 인서트로 넣더란다. 왜 그렇게 하냐고 묻자 신 PD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렇게 하면 더 아련한 느낌 같은 게 묻어나잖아.”

 

사실 연출이라고 하는 분야를 그저 그 장면이 갖는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정도로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신원호 PD의 경우 연출이란 다만 이야기가 아니라 그 안에 어떤 정서나 심리상태까지를 담아내는 것이란 얘기다. 이것은 어쩌면 <응답하라 1994>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정서가 바로 이 연출에서 비롯하는 것이라는 걸 말해주는 대목일 것이다. 똑같은 장면도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잡아내느냐에 따라 그 효과는 달라진다.

 

유호진 PD<12>에 있어서도 그저 스토리나 상황을 전달하는 것만이 아니라, PD가 연출을 통해 보여주는 그런 정서를 잡아내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 얘기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12>이 시즌2를 통해 추락하게 됐던 것이 바로 이 특유의 정서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저 여행가고 복불복 게임을 하고 벌칙을 수행하는 것을 반복하는 것처럼 느껴진 데는 똑같은 그림 안에서도 그 속에 담겨진 인물들의 심리나 정서적인 느낌 같은 것이 잘 연출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확실히 요즘은 예능과 드라마의 경계가 점점 흐려지는 시대다. 예능은 언제부턴가 스토리텔링을 하기 시작했고, 드라마는 스토리텔링 속에서 예능에서 두드러지던 캐릭터에 대한 집중력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다른 것 같아도 이 두 장르가 하나로 맞닿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스토리텔링이라는 영역이다. 스토리(이야기)는 물론 중요하지만 거기에 텔링(어떻게 이야기 할 것인가)이 담기지 않으면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기가 쉽지 않다. 신원호 PD가 추구하는, 또 유호진 PD가 배우고 싶은 그 정서까지 담아내는 연출은 어쩌면 앞으로 예능이든 드라마든 그 성패를 가늠하는 필요조건이 될 가능성이 높다.

신데렐라 없어도 더 쫄깃한 '응답1994'의 멜로

 

멜로는 신데렐라가 있어야 된다? 적어도 <응답하라 1994>에는 해당되지 않는 얘기다. <상속자들> 같은 드라마가 초거대 재벌가들 사이에 들어간 신데렐라 이야기로 너무 뻔하다는 비판을 받는 반면, <응답하라 1994>는 신데렐라 없고 심지어 촌스럽게까지 보이는 멜로만으로도 오히려 시청자들의 호평을 이끌어내고 있다.

 

'응답하라1994(사진출처:tvN)'

과거 <시크릿 가든>의 현빈과 하지원이 그랬고, <최고의 사랑>의 차승원과 공효진이 그랬듯이 잘된 멜로의 연기자들이 주목받는 건 당연한 일. <응답하라 1994>의 멜로는 정우라는 배우에 대한 신드롬을 만들고 있고 또한 늘 연기력 논란에 시달리던 고아라까지 매력적인 연기자로 재탄생시켰다. 놀라운 일이 아닌가. 이처럼 촌스런 멜로의 주인공들이 이토록 주목받게 된 것은.

 

<응답하라 1994>는 <응답하라 1997>이 그랬듯이 현재의 여주인공이 과거 1994년의 어떤 인물과 결혼을 했는가를 찾는 다소 단순한 멜로를 그린다. 그런데 이 단순해 보이는 멜로가 의외로 힘을 발휘한다. 누가 누구와 만났고 어떤 일이 있었으며 그로 인해 어떻게 관계가 발전됐는가 하는 점은 마치 첫사랑의 추억담처럼 우리를 아련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친오빠처럼 다가와 점점 가슴 뛰게 만드는 오빠로 느껴지게 되는 쓰레기 정우나, 그저 하숙집을 들락거리다 점점 가까워지게 되는 칠봉이 유연석은 그 설정 자체가 신데렐라 멜로와는 다른 <응답하라 1994>의 특별한 멜로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들은 연세대라는 괜찮은 학벌의 소유자에다 직업적으로도 향후 의사가 될 의대생이거나 프로야구의 에이스가 될 야구선수다.

 

이것은 나정이(고아라)네 하숙집에 들어와 그녀와 장차 결혼할 지도 모를 다른 후보군들도 마찬가지다. 해태(손호준)는 순천시 버스회사의 막내아들이고, 빙그래(바로)의 부모는 충북 최대 규모의 양계장을 운영하며, 삼천포(김성균)는 한번 나가면 기름 값 1500은 드는 배를 가진 집의 아들이다. 물론 이들은 초재벌도 아니고, 드라마는 오히려 이 ‘잘사는 촌놈들’이라는 설정을 신데렐라 이야기로 활용하려 들지도 않는다. 유머 코드라면 모를까.

 

이들 촌놈들이 상경해 벌이는 멜로는 특별할 것 없는 당대 대학생들의 그것이다. MT를 가고 미팅을 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팬클럽 활동을 하며 하숙방에서 술내기 게임을 하는 식이다. 그러면서 조금씩 마음이 움직이게 되는 그들이 보여주는 멜로란 오지 않는 삐삐를 밤새워 기다리거나 게임을 빙자해 뽀뽀를 하거나 혹은 아플 때 꼭 껴안아주는 정도가 대부분이다.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에 등장하는 그 흔한 결혼 반대하는 부모들도 보이지 않고 백화점을 통째로 쇼핑하듯 과시하는 남자의 모습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응답하라 1994>의 멜로가 그 어떤 신데렐라 스토리보다 쫄깃하게 다가오는 것은 그 멜로 속에 존재하는 평등한 시선과 특유의 공감대 덕분이다. 이 드라마에는 1994년의 공기가 그대로 느껴진다. 어딘지 촌스럽고 능숙하지 못한 인물들의 행동들이 오히려 멜로를 더 아련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나정이를 좋아하면서도 표현은 친오빠처럼 무뚝뚝하게 던지는 쓰레기가 그렇고, 또 약간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애써 속내를 감추려는 칠봉이가 그렇다. 해태와 조윤진(도희)의 관계를 보라. 그들은 대부분 못 잡아먹어 안달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면서 가까워진다.

 

<응답하라 1994>가 신데렐라 이야기 없이도 더 아련한 멜로를 그려낼 수 있는 것은 1994년이라는 과거의 한 지점이 가진 힘 때문이다. 현재가 아닌 과거, 그것도 첫 사랑의 추억이 있는 그 청순의 한 기억이란 현실적인 것과 일정부분 거리가 만들어지게 마련이다. 첫 사랑의 설렘에 집안 형편이나 학벌 따위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것은 또한 어쩌면 1994년만 해도 지금처럼 극심한 양극화가 진행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주는 대목이기도 할 것이다. 초재벌이 남자 주인공으로 나와 거의 하녀처럼 살아가는 여자 주인공을 보호해주는 이야기는 그것이 판타지를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치졸한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돈이 많으면 많았지 그것이 사랑도 넘을 수 없는 계급이 되는 현실, 얼마나 치졸하고 치사한가.

 

그래서 이러한 양극화로 인한 수직적인 계급구조가 잘 보이지 않는 나정이네 하숙집에서 벌어지는 수평적이고 평등한 멜로는 이 시대에는 오히려 더 큰 판타지로 다가온다. 돈이나 현실이나 집안이나 학벌과 상관없이 누군가에 대해 진정으로 가슴 설레며 하는 사랑.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이 사랑은 그러나 심지어 치사한 신데렐라 스토리에마저 빠져들게 만드는 요즘 같은 세상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랑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요즘 청춘들은 학비 마련하랴 취업 준비하랴 누군가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것조차 사치로 여겨지는 대학생활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응답하라 1994>가 보여주는 이 너무나 편안하고 때로는 낭만적으로 여겨지는 청춘과 사랑이 왜 판타지가 되지 않을까. 이것은 양극화를 더 첨예하게 드러내는 것으로 멜로의 극성을 만들어내는 신데렐라 스토리보다 <응답하라 1994>의 평범한 멜로가 더 강력한 이유다. 양극화 자체를 지워버린 완전한 평등의 멜로라니. 대단히 매력적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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