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이 이용된 듯한 느낌을 받을 때

 

씨름선수 출신 방송인 이만기가 갑자기 <자기야-백년손님>에서 하차한다는 소식은 의외였다. 사실 그는 이 프로그램에서 꽤 괜찮은 모습들을 보여왔고 시청자들 역시 그의 그런 소탈한 모습에 호감을 보였기 때문이다. 거구의 덩치에 씨름선수다운 괴력을 보여주지만 장모에게 당하기 일쑤인 그는 톰과 제리의 톰 같은 이미지를 만들었다. 제리 장모의 인기도 더불어 올라갔다.

 


'자기야-백년손님(사진출처:SBS)'

그런데 그 좋던 이미지가 하차 소식과 함께 급전직하하는 느낌이다. 그것은 하차만이 아니라 그 하차의 이유가 총선 출마라는 정치의 뜻 때문이라는 소식 때문이다. 그는 2016413일 치러지는 20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할 것이라고 했다. 선거 90일 전부터는 방송 출연이 금지되기 때문에 본격적인 출마 행보를 위해 방송에서의 하차를 결정하게 된 것.

 

사실 이만기는 그간 꽤 오랫동안 정치 출마의 뜻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1617대 총선에서 낙마했고 작년 김해 시장 선거에서도 떨어졌다. 그렇지만 지난 9월 경남 김해을 새누리당 당협위원장에 선출됐다. 그 때부터 본격적인 정치인으로서의 행보를 시작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지난 10월 그는 한 라디오 방송에서 이미 밝혔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사실은 <자기야-백년손님>의 시청자들에게는 낯선 소식이었을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그다지 정치인으로서의 뜻을 가진 이만기의 모습을 보여준 적이 별로 없다. 다만 제리 장모가 정치 그거 그만하라고 얘기했던 적은 있다. 대신 그는 장모에게 투덜대면서도 우직하게 일을 하는 기분 좋은 머슴 같은 모습을 보여줬다. 때로는 장모의 손에 이끌려 동네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이런 일꾼의 모습이 당시 방송에 나왔을 때 주었던 그 기분 좋은 느낌이 이제 정치 출마를 공식적으로 선언하고 나자 불편하게 다가오는 건 왜일까.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마치 그 모습들이 정치 출마를 의도한 모습처럼 비춰지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일꾼 이미지는 정치인들이 선거전에서 가장 많이 쓰는 모습이다.

 

정치에 뜻을 갖고 있다는 것이 흉이 될 일은 아니다. 그러니 하던 방송을 그만두고 본래 갖고 있던 정치 출마를 선언하는 건 잘못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잘잘못을 떠나 불편한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마치 방송이 정치적인 목적에 의해 활용된 듯한 기분을 주기 때문이다.

 

정치 출마는 잘못된 일이 아니지만, 시청자들에게 어떤 양해나 이해를 구하지 않고 갑작스레 방송 하차 결정을 선언하는 건 지금껏 만들어진 신뢰나 진정성에 금을 가게 하는 일이다. 시청자들은 방송에서 나오는 그에게 어떤 호감을 느꼈었고 또 지지하는 마음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절차적인 문제나 사전에 어떤 이해를 구하지 않은 채 훅 떠나는 모습은 방송이 목적을 위한 하나의 수단처럼 보이게 만든다. 대중들이 불편해하는 지점은 바로 그것이다.



논란만 가중시킨 <슈퍼맨><장영실>의 콜라보

 

송일국이 KBS 대하사극 <장영실>에 출연하겠다는 의사를 보였을 때 많은 이들이 우려를 표했다. 그가 이미 출연하고 있는 <슈퍼맨이 돌아왔다><장영실>을 동시에 소화해낸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저 보통의 드라마라면 모를까 <장영실>은 사극이다. 사극은 그 특성상 노동 강도가 높고 때로는 산 속에 들어가 며칠씩 촬영을 하기도 한다.

 


'슈퍼맨이 돌아왔다(사진출처:KBS)'

그래도 KBS로서는 송일국을 <장영실>에서도 또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도 포기하기 어려웠을 게다. 송일국은 <주몽> 이후에 이렇다 할 연기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주몽>에서 보여줬던 그 저력은 여전히 사극에서 그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만든다.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사실상 송일국과 삼둥이에 의해 견인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하차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KBS가 생각해낸 건 이 둘을 엮어보려는 것이었나 보다.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송일국이 아이들에게 아빠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아냐고 물어보고 그걸 잘 모른다고 하자 배우라고 말해주지만 여전히 그게 뭔지 모르는 모습을 보여준 건 다분히 <장영실>과의 연계를 염두에 둔 포석처럼 보인다.

 

그리고 역시나 아빠 송일국의 <장영실> 촬영현장을 찾은 삼둥이의 모습이 스틸로 공개됐다. 그 사진 속에서 삼둥이는 거지 분장을 한 채 흙바닥에서 장난을 치고 송일국이 태워주는 수레에서 즐거워하는 모습이다. <장영실>을 찍으면서 송일국은 그렇게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통해 간간히 그 비하인드를 삼둥이와 함께 보여줄 수 있다. 그건 <장영실>이라는 사극의 자연스러운 홍보효과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이 홍보효과가 거꾸로 역효과를 내고 있다. 사진 몇 장이 공개된 것뿐이지만 금수저 논란까지 가세되는 모양새다. 배우인 아빠를 둔 아이들이 촬영현장에 가서 분장도 하고 사극을 체험하는 모습은 일상적인 아빠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아이들이 거지 분장을 하고 나오자 항간에는 흙수저 흉내냐는 얘기까지 나온다.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겠나. 다만 그걸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정서가 그리 곱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송일국과 삼둥이에게 만들어지고 있는 금수저 이미지<장영실>이라는 사극에도 그다지 도움이 될 것 같지가 않다. 장영실이 누구인가. 천출로 태어나 평생을 노비로 살아갈 뻔한 인물이다. 그러니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때만 되면 화보모델처럼 단장하고 나와 사진을 찍고 그것이 화제가 되는 집안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다고 할 수밖에 없다.

 

<슈퍼맨이 돌아왔다><장영실>의 만남이 그다지 좋은 효과를 낼 것처럼 여겨지지 않는 건 그래서다. 아이들이 너무 많이 방송에 노출되고 소비되는 것에 대해서 시청자들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또한 서민들의 삶과는 너무나 다른 그 괴리감에 불편함도 호소하고 있다. 만일 이러한 우려와 불편함이 <장영실>이라는 드라마를 보는 데에도 어떤 몰입감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면 그 후폭풍은 송일국이 고스란히 맞을 수 있다



최시원을 위한 최시원에 의한 최시원의 '그녀는 예뻤다'

 

알고 보니 진짜 주인공은 최시원? MBC <그녀는 예뻤다>에서 똘기자 신혁(최시원)의 정체는 진성매거진 회장 아들이 아니라 소설가 텐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신혁의 정체로서 소설가 텐의 등장은 사전에 아무런 복선이 깔려 있지 않았다는 점에서 너무 갑작스러운 느낌을 준다. 애초에 계획된 내용이라기보다는 새롭게 끼워 넣어진 듯한 인상을 주는 것.

 


'그녀는 예뻤다(사진출처:MBC)'

소설가 텐은 14회에 갑자기 그 이름이 등장한다. 즉 더 모스트지가 인터뷰하기로 했던 레너드 킴이 약속을 취소하면서 그 대체인터뷰 인물을 거론하면서 나온 이름이 소설가 텐이다. 모스트지의 피처 디렉터인 김풍호(안세하)는 소설가 텐을 언급하며 이렇게 말한다. “텐이라는 세계적인 익명의 소설가가 최근에 한국인이라는 게 밝혀졌다 이 말이지. 그리고 메모리 신간도 초 대박이 터져버렸고. 이거보다 핫한 사람이 또 어디 있노.”

 

드라마는 이 한 마디로 소설가 텐이 모스트지의 구세주로 만들어낸다. 그리고 회장 아들의 정체와 소설가 텐의 정체가 누구인가에 대한 궁금증을 키워놓은 후 마지막에 그 텐의 정체가 최시원임을 밝혀준다. 물론 회장 아들은 김풍호라는 반전도 끼워 넣는다. 그동안 덥수룩했던 수염을 말끔히 밀어내고 놀라는 지성준(박서준)에게 손을 내미는 신혁의 모습. 이러니 그 역할을 맡은 최시원이 주목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는 사실상 이 드라마의 구원자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아무도 몰랐던 김혜진(황정음)의 진가를 발견해준 인물이고 그녀의 주변에서 우정을 가장한 사랑을 해온 인물이며 그러다 그녀의 마음이 다른 곳에 있다는 걸 알고는 그녀를 보내준 인물이다. 게다가 이제는 모스트지를 구원해낼 인물로서 등장하고 있다.

 

이 정도 되면 <그녀는 예뻤다>가 얼마나 최시원에게 최적화된 드라마인가를 알 수 있다. 일단 신혁이란 캐릭터와 우리가 예능 프로그램 등을 통해 봐왔던 최시원의 이미지가 너무나 잘 어울린다. 이것은 아마도 예능 작가 출신들이 갖는 장점 중 하나로 보인다. 캐릭터와 출연자의 이미지를 최적화시키는 능력. 그래서 최시원은 <그녀는 예뻤다>를 통해 자신의 이미지 또한 신혁이라는 인물과 동일시될 정도로 대중들의 호감을 갖게 되었다.

 

게다가 <그녀는 예뻤다>는 의도적인 것인지 아니면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인지 알 수 없어도 로맨틱 코미디에서 남녀 간의 사랑 문제를 일찌감치 해결해버렸고 그 나머지 공백을 모스트지의 생존과 연결된 일의 이야기로 풀어냈다는 점이다. 갈등 없는 사랑이야기가 조금은 밋밋해져 갈 때 오히려 드라마의 분위기를 쇄신한 인물은 결국 최시원이었다는 점이다.

 

그는 여전히 김혜진의 옆에서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그녀와의 데이트 같은 장면들로 드라마에 웃음을 주는 존재가 됐다. 그 장면들은 이 드라마의 흐름이라기보다는 따로 떼어낸 시트콤의 하나처럼 보이기도 한다. 시청자들의 시선이 알콩달콩한 김혜진과 지성준에게서 조금씩 신혁이라는 인물로 쏠리게 된 것은 드라마의 흐름이 그에 대한 몰입을 더욱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갖가지 엔딩에 대한 추측들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에, 신혁이 소설가 텐이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심지어 이 모든 것이 신혁의 소설 혹은 상상이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이러니 최시원이 사실은 숨은 주인공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밖에. 실로 <그녀는 예뻤다>는 최시원을 위한, 최시원에 의한, 최시원의 드라마로 기억될 수 있지 않을까.



자숙했던 이태임과 방송 강행했던 예원이 만든 차이

 

사실 이태임과 예원 모두 잘한 건 없다. 방송 프로그램을 찍던 중에 발생한 태도와 욕설 논란은 정확히 보면 두 사람 모두 일정 부분 잘못이 있다. 물론 그것은 사적인 영역이라 공적인 잣대를 갖고 뭐라 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하지만 대중들에게 노출되기 마련인 연예인이라는 특성과 최근 리얼리티 예능이 들여다보는 것이 이제는 겉면만이 아닌 그 내면이라는 사실은 이 사안에 대한 논란에 불을 지폈다.

 


'띠동갑내기 과외하기(사진출처:MBC)'

사적인 영역이지만 어쨌든 적나라하게 드러난 상황 속에서 두 사람은 모두 잘한 것이 없다. 그래서 두 사람은 모두 서로에게 사과했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이태임과 예원은 서로 다른 대중들의 시선을 받게 되었다. 처음 후배에게 욕설을 퍼부었다는 사실만 대서특필되면서 그 인성까지 의심받았던 이태임에 대한 지금의 대중들의 반응은 호의적이다. 일정기간 자숙의 시간을 가진 후 방송복귀를 결정한 그녀에게 대중들은 응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물론 그것은 실제 동영상이 유포되면서 나온 반전효과 때문이기도 하다. 욕설 부분만 강조해서 호도된 이태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은 실제 동영상 속의 예원이 눈을 치켜뜨고 던진 "제가 마음에 안 들죠?"라는 말 한 마디에 녹아버렸다. 대신 그간 마치 모든 잘못이 이태임에게만 있다는 듯 침묵하고 사과 받아주는 모습을 보여줬던 예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져갔다. 예원 역시 이 반응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방송이었다. 이태임이 잠시 방송에서 물러나 자숙했던 반면, 예원은 자신이 출연하고 있던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끝까지 하차하지 않고 방송을 마무리했다. 방송사 입장에서는 이런 사안들을 문제 삼아 하차시킨다는 것이 과도한 선택이라 여겼을 만하다. 하지만 문제는 시청자들이 불편함을 호소했다는 점이다. 실제 동영상을 본 시청자들로서는 <우리 결혼했어요>가 가진 알콩달콩함이 거짓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또한 그 안에서 쏟아내는 눈물이 자칫 이미지를 바꾸려는 의도처럼 여겨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결국 사안이 터지고도 몇 주 동안 계속 강행한 방송은 고스란히 예원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만 더 쌓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졌다. 사실상 논란이 벌어지면 그 사안의 진위와 상관없이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대중들의 정서에 반하는 결정들이다. 만일 이런 선택을 하게 되면 그것은 자칫 사안을 떠나 대중들과 대결하는 듯한 인상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만일 예원이 이 사안이 터졌을 때 그냥 지나치거나 덮으려 하지 않고 보다 적극적으로 사과하고 잠시 방송을 떠나는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어느 정도의 기간이 지난 후 다시 활동을 재개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를 가질 수 있지 않았을까. 이태임과 예원. 둘 다 잘한 건 없는 사안이었지만 그 대처에 있어서 너무나 다른 선택이 너무나 다른 결과를 낳았다.

 

자숙이란 잘못된 일을 저지른 것에 대한 반성의 의미도 있지만, 잘잘못을 떠나 불편한 이미지가 생겨난 연예인 당사자를 위한 회복의 시간을 의미하기도 한다. 자숙했던 이태임과 달리 방송을 강행했던 예원은 그 회복의 시간을 갖지 못했다. 이태임과 예원 해프닝은 자숙의 의미를 다시금 떠올려보게 하는 사례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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