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성변경에 이상민 투입, ‘미우새’ 신의 한 수 됐다

“룰라가 다 그렇잖아요.” SBS 예능 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에 새롭게 출연한 이상민의 모친은 그렇게 솔직한 심경을 전했다. 그 말에 스튜디오에 나온 다른 어머니들과 MC들은 빵 터졌지만 정작 이상민의 모친은 진심으로 씁쓸한 얼굴이었다. 69억8,000만 원의 빚. “부도가 나면 바로 잡혀가는 줄 알았어요”라며 이상민의 빚 이야기를 꺼내놓는 어머니의 마음이 오죽했을까. 

'미운 우리 새끼(사진출처:SBS)'

아마도 타인들은 빵 터지고 당사자들은 짠한 이상민의 이야기는 <미운 우리 새끼>가 새로운 편성시간대로 들어와 무려 18.9%(닐슨 코리아)의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중요한 요인이 아니었을까. 에어컨을 안 다는 조건으로 싸게 들어온 집에서 이제 다른 집으로 이사하는 날. 이사 비용을 아끼려고 새벽부터 일어나 바리바리 짐을 싸는 모습은 한 마디로 ‘웃프다’. 

누군가 버리려던 걸 가져왔거나 누군가에게 잠시 빌려 썼던 가구들을 놔두고 가고, 또 스스로 짐을 싸는 조건으로 조금이라도 이사 비용을 아끼려는 모습이나, 한 번도 틀어보지 못한 어머니가 가게를 접으며 갖다 놓은 에어컨을 팔기 위해 중고점에서 안사겠다는 주인에게 2만원이라도 받으려 흥정하는 모습이 그렇다.

유독 더웠던 작년 여름, 그 폭염 속에서 선풍기에 분무기를 뿌려 물바람을 맞고, 콜라를 얼려 수건으로 감싸 안고 자며 겨우 버텼다는 그에게 프로그램은 ‘궁상민’이라는 별칭을 붙여 주었다. 에어컨을 너무 틀어 놔 감기가 걸렸다는 서장훈의 이야기에 “있는 자의 감기가 부럽다”고 말하는 모습은 시청자들은 물론이고 스튜디오에 나온 어머니들에게 우스우면서도 짠한 느낌을 주었다. 

싸게 물건을 사기 위해 3월3일 새벽 3시, 4월4일 새벽 4시 이렇게 이벤트로 인터넷 쇼핑몰이 세일일 때 싸게 물건을 샀던 이야기를 대단한 무용담처럼 늘어놓고, 생수를 3천 원 이상 주고 먹어본 적이 없고, 양말은 350원 짜리라는 그의 이야기는 빚 가진 이들의 마음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힘들면 파산해라.” 보다 못한 어머니가 그렇게 얘기했지만 “열심히 벌어서 다 갚고 살 것”이라고 말했다는 그 대목에서는 다른 어머니들이 “잘 살거라”고 덕담해주는 그 마음이 고스란히 공감된다. 힘들어도 그것을 오히려 웃음으로 버텨내며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살려는 그 모습이 어떤 지지의 마음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미운 우리 새끼>는 금요일 밤에서 일요일 밤으로 시간대를 변경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격전지가 된 금요일 밤에 굳이 타 프로그램과의 경쟁을 피해 상대적으로 힘이 많이 빠진 일요일 밤으로 편성을 옮긴 것. 그런데 그 옮긴 시간대에 이상민이라는 새로운 인물을 투입한 건 결과적으로 보면 신의 한 수가 되었다. 

물론 69억 8,000만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빚은 일반인들이 체감하기 어려운 수치일 게다. 하지만 저마다 집 장만에, 결혼 비용에, 심지어 당장의 생활을 위해 누구나 크건 작건 빚을 지며 살아가는 삶이 어디 이상민 뿐일까. 그래서 그의 이야기는 남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처럼 가슴 한 구석을 쿡쿡 찌른다. 웃음을 주지만 또한 짠하기도 하며 공감가기도 하는. <미운 우리 새끼>가 단숨에 새로운 시간대를 장악한 힘은 바로 거기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아는 형님>, 이시영의 모든 것이 허용됐던 까닭

 

아는 형님. 넘 좋은 형님들. 편하게 제발 막 하라고 하셔서 정말 막 했어요. 죄송해요. 수근오빠 호동오빠가 더 신경도 써주고 고마워요. 예체능팀. 으어허헝.” JTBC <아는 형님>에 나왔던 소감을 이시영은 이렇게 인스타그램에 남겼다. 그녀가 새삼 죄송하다는 말을 남긴 건 <아는 형님>에서 그녀가 보여준 모습들이 한 마디로 거침이 없었기때문이다.

 

'아는 형님(사진출처:JTBC)'

보통의 경우 <아는 형님>에서 여성 출연자는(그것도 단독 출연이라면 더더욱) 이 아재들의 짓궂은 농담에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 날은 아예 작정이라도 한 듯 이시영이 아재들을 압도하는 모습들로 채워졌다. 물론 아재들의 짓궂은 모습은 여전했지만 그럴 때마다 그녀는 그들을 향해 시원한 한 방을 날렸다.

 

권투를 배우겠다며 나선 이상민을 몇 방 만에 포기하게 만들고, 35살의 적지 않은 나이지만 절대 동안인 그녀는 아재들이 서로 애정공세를 펼칠 만큼 그들을 쥐락펴락했다. 데뷔전에 찜질방 매점에서 일을 했었다는 이야기부터 복싱 연습을 너무 심하게 해 생수병 마개를 딸 힘도 없어 서러웠었다는 이야기까지 소탈함과 털털함은 아재들마저 빠져들게 만들었다. 같은 스포츠인으로서 서장훈은 그녀가 했을 연습량을 얘기하며 존경스러운 마음을 표하기도 했다.

 

즉석 상황극으로 펼쳐진 일주일 남친 인사이드는 이시영이 일곱 명의 아재들을 상대로 일곱 다리를 걸친 상황을 통해 그들을 오히려 당황하게 만드는 모습을 보여줬다. 말로 게스트를 당황시켜운 월요일 남친 김희철에게 뱃속 아기 아빠를 찾아주기로 약속하지 않았냐는 드립을 날려 당황하게 만들었고, 화요일 남친 거구의 서장훈을 군 부사관이 되어 점호를 실시하고 얼차려를 주는 모습으로 큰 웃음을 주었다.

 

이수근은 스스로 샌드백이 되어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남친으로 등장해 이시영에게 펀치를 맞고 베개에 맞고 또 딱밤을 연거푸 맞는 굴욕을 당했고, 돈 자랑하던 이상민은 반지부터 신발, 목걸이까지 모두 빼앗긴 채 쫓겨났으며, 강호동은 먹방 훈련이라며 연거푸 레몬을 통째로 먹고 휘파람을 불어야 했다. 이시영이 아니라면 보기 어려웠을 <아는 형님>의 역전된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이것이 가능한 건 저 이시영의 인스타그램이 얘기해주듯이 그녀가 맘껏 모든 걸 할 수 있게 해준 <아는 형님> 아재들의 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동네 예체능>으로 이시영은 강호동, 이수근과 친분을 갖고 있던 사이가 아니던가. 그러니 이시영의 자신감 넘치고 털털하며 인간미 가득한 모습들을 맘껏 꺼내놓을 수 있게 기꺼이 아재들이 온갖 굴욕을 감수하고 나선 것일 게다.

 

무엇보다 이런 모습은 그간 여성 출연자들에게 짓궂은 장난을 해오면서 쌓인 불편한 느낌들을 한 방에 날려버린다는 차원에서 <아는 형님>에도 나쁘지 않은 시도라고 보인다. 물론 뭘 해도 예뻐 보이는 이시영 같은 출연자가 아니라면 시도되기 어려운 것이 분명하지만. 이시영이 가진 매력은 <아는 형님>을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코미디 몬스터에서 발견한 우리 코미디의 가능성

 

사실 이번 제4회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의 코미디 몬스터라는 공연을 보기 전까지 임우일이라는 개그맨을 아는 일반인들을 별로 없었을 것이다. 필자 역시 KBS <개그콘서트> 어딘가에서 봤던 얼굴이기는 하지만 잘 기억이 나지 않는 인물이었다. 후에 다시 찾아보니 그는 현재 <개그콘서트> ‘사랑이 Large’라는 코너에서 항상 거대하게 시키는 유민상과 김민경에게 음식을 주문받고 갖다 주는 웨이터 역할을 연기하고 있었다.

 

'코미디 몬스터(사진출처: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

방송에서는 잘 몰랐던 인물이지만 코미디 몬스터공연에서는 단연 돋보이는 인물이었다. 물론 그것은 코미디 몬스터라는 공연에서 그가 맡은 역할이 시종일관 당하는 역할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네 정서상 코미디에서 맞고 당하는 역할은 관객들의 심정적 지지를 갖게 마련이다. 게다가 웃기는 역할 역시 이런 위치에 있는 인물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심형래가 그랬고 옥동자 정종철이 그랬으며 맹구 이창훈이 그랬던 것처럼.

 

코미디 몬스터는 호러와 웃음이라는 이질적으로 보이는 요소를 결합해낸 독특한 스토리텔링을 보여줬다. 좀비가 등장하고 귀신, 도깨비가 등장해 으스스한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바로 그런 공포스런 설정 때문에 웃음이 터진다. 공연은 여러 코너들을 모아서 보여주는데 코너와 코너 사이에는 암전이 들어간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관객들은 불이 켜졌을 때 무엇이 튀어나올지 몰라 긴장할 수밖에 없다. 바로 이 긴장을 풀어 이완시키는 다음 장면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웃음이 터진다. 긴장과 이완은 웃음의 본질적인 측면이라는 점에서 호러와 웃음이 기가막힌 조화를 만들어낸다.

 

코미디 몬스터에는 임우일만 있는 게 아니다. 우리가 잘 아는 쌍둥이 개그맨 이상호-이상민이 있고, <개그콘서트>에서 독특한 캐릭터를 갖고 있는 송준근 그리고 <진지록>에서 시제를 내는 왕 역할로 잘 알려진 이동윤이 함께 한다. 이상호와 이상민, 쌍둥이 형제의 퍼포먼스는 거울 콘셉트를 활용한 코미디로 웃음을 선사했고 송준근과 이동윤이 관객들과 함께 즉석에서 선보이는 애드립형 코미디는 관객들을 자연스럽게 참여시키며 어떤 가족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특히 조금만 더 다듬어 언어적 요소들을 더 논버벌 퍼포먼스로 꾸며낸다면 해외에서도 충분히 먹힐만한 공연이었다. 이들은 실제로 에딘버러 프렌지 페스티벌을 직접 찾아가 참여하면서 국제적인 코미디로서의 코미디 몬스터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돌아왔다고 한다.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을 위해 공연을 찾아온 몇몇 외국인들은 코미디 몬스터를 전혀 언어적 어려움 없이 즐기고 있었다.

 

물론 아직까지 코미디 몬스터는 다듬어야 될 것들이 많다고 개그맨들은 스스로 밝혔다. “공연이라는 것이 계속 현장에서 하면서 좋은 건 추가하고 그렇지 않은 건 빼는 식으로 완성되어가는 거거든요.” 하지만 이 공연을 찾아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충분히 이 코미디에 푹 빠져 즐기는 얼굴이었다.

 

우리네 코미디는 현재 지나치게 TV 중심으로 들어오면서 콩트 코미디가 마치 전부인 것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하지만 코미디 몬스터를 통해 보는 공연형 코미디의 맛은 TV형 콩트 코미디가 주지 못하는 새로운 것들이 있었다. 또한 퍼포먼스가 결합된 논버벌 형태의 코미디들은 해외의 코미디 페스티벌이 그러하듯이 국제적으로도 먹힐 수 있는 것들이었다.

 

방송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공연에서는 확고한 자신의 캐릭터를 선보이는 개그맨을 본다는 건 여러모로 우리네 코미디의 외연이 너무 좁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코미디는 콩트만 있는 게 아니다. 공간을 바꾸고 미디어를 달리 하면 또 다른 코미디들이 더 많이 나올 수 있다는 걸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은 확인시켜줬다. ‘코미디 몬스터같은 공연들이 나올 수 있었던 것도 이제 4회를 맞은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을 통해 해외의 코미디들을 경험하면서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공연들이 더 풍성해지기를.

<님과 함께>, 리얼 주장하는 가상연예가 식상해졌다면

 

MBC <우리 결혼했어요>2008년 명절 파일럿으로 등장했다가 좋은 반응을 얻어 <일밤>에 정규 편성됐고 후에는 독립 편성되어 토요일에 자리 잡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초반 이 프로그램에 대한 열광은 대단했다. 가상 부부라고는 하지만 가상과 실제가 살짝 살짝 넘나드는 순간들이 포착되기 때문이었다.

 

'최고의 사랑(사진출처:JTBC)'

하지만 <우리 결혼했어요>는 무려 4기를 거치면서 그 힘도 조금씩 빠져버렸다. 가상 결혼 콘셉트임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진정성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고, 최근 들어서는 과도한 스킨십이 논란의 소지를 만들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오래도록 프로그램이 지속되면서 여기 들어왔다 나간 연예인들이 점점 많아지고 그들 중에는 다른 사람과 연인이 된 이들도 생겨났다는 점이다. <우리 결혼했어요>의 가상 결혼은 말 그대로 가상이라는 것이 확연히 드러났다. 물론 여전히 상황 속의 리액션은 실제라고 강조하지만.

 

JTBC <님과 함께><우리 결혼했어요>의 중년판 같은 느낌으로 시작했다. 김범수와 안문숙, 이상민과 사유리 그리고 지상렬과 박준금은 나이는 조금 있어도 여전히 연애감정을 드러내는 모습으로 <우리 결혼했어요>와 차별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그것 역시 그다지 큰 감흥을 만들어내기가 어려웠다. 이미 <우리 결혼했어요>를 통해 학습된 시청자들은 <님과 함께> 역시 진짜인 척 하는 가짜임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지만 <님과 함께> 시즌2는 이렇게 가상 결혼 콘셉트의 예능 프로그램에 대해 갖고 있는 시청자들의 시각을 부정하기보다는 오히려 프로그램 콘셉트로 끌어들이는 역발상을 시도했다. 즉 아예 내걸고 이들은 쇼윈도 부부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 윤정수와 김숙 커플은 시청률 7%가 넘으면 결혼한다는 대국민 공약을 내걸고는 점점 오르는 시청률 때문에 불안해하는 모습으로 큰 웃음을 주었다. 허경환과 오나미 커플은 대쉬하는 오나미와 도망가다가 조금씩 붙잡히는 허경환의 상황을 보여주며 허경환의 목소리로 이것이 결코 진짜 결혼이 아니라는 것을 오해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흥미로운 건 출연한 쇼윈도 부부들이 이건 그저 비즈니스일뿐이라고 공공연히 얘기하는 순간, 시청자들의 이들 관계에 대한 의심은 정반대로 작용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쇼윈도 부부라고 주장하고 늘 툭탁대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때때로 보이는 이들의 다정함이 저건 혹시 진짜가 아닐까하는 의심을 오히려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가모장제를 주장하며 바깥일 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여주는 김숙이 윤정수의 생일날 투덜대면서도 외식을 하며 선물까지 챙겨주는 모습이나, 부부상담을 받으러 가서 윤정수의 손을 마사지하며 집안 일 하느라 거칠어졌다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저게 진짜일까 상황극 일까 애매모호해진다. 허경환과 팔씨름에서 이겨 소시지 뽀뽀를 하게 된 오나미가 살짝 눈을 감고 설레는 그 표정에서도 그것이 진짜인지 아니면 콩트의 하나인지가 헷갈린다.

 

확실히 가상 결혼 예능 프로그램들이 마치 진짜인 것처럼 꾸며서 보여주고 그것이 시청자들에게 어떤 감흥을 주던 시대는 지나가는 것 같다. 오히려 <님과 함께2> 같은 정반대로 쇼윈도 부부를 주장하는 커플의 리액션이 훨씬 더 달달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쇼윈도 부부들이 마치 인형처럼 예쁜 커플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보통의 커플이라는 점은 그 이야기를 보다 일상적으로 만들어낸다. 어찌 결혼이 늘 이벤트로만 가득 찰 수 있겠는가. 보통 사람들의 일상으로 들어온 개그맨 쇼윈도 부부들의 가짜인 듯 진짜 같은 부부생활. 시청자들은 거기서 오히려 더 달달함을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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