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여진의 재발견, <공항>의 사랑만큼 진한 우정

 

너 나 결혼할 때 왜 안 말렸어? 뜯어말렸어야지. 박진석, 가족이랑 못산다. 네가 숨 쉬는 것도 지나다니는 것도 싫어할 거다. 나랑 살면서 최수아 너 만났듯이 너랑 살면서 끝없이 딴 여자 만날 거다. 넌 박진석 인생에서 곧 아웃이다. 왜 말 안했냐고? ? ? ?” KBS <공항 가는 길>에서 절친인 송미진(최여진)에게 최수아(김하늘)는 그간 쌓여온 감정을 쏟아낸다. 그 감정에는 자신의 남편 박진석(신성록)과 결혼한 자신에 대한 회한이 더 깊게 자리해있다.

 

'공항 가는 길(사진출처:KBS)'

송미진은 말렸어도 그녀가 박진석과 결혼했을 거라며 그녀를 속속들이 잘 알고 있는 자신을 드러낸다. “네가 내 말을 들었겠다. 미치도록 사랑해놓고. 너 거기서도 못살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미치겠지? 잘 살아? 못살아? 그것만 말해. 너 걱정돼서 그래. 어쩌자고 간건지 확실하게 말해. 내가 도울 수 있으면 도울 테니까.” 결국 송미진은 그녀와 다투면서도 그녀를 걱정한다. 그녀의 입장에서 그녀를 도울 거라고 말한다.

 

친구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KBS <공항 가는 길>의 송미진은 절친인 최수아에게 결국 사과했다. 그녀가 최수아의 남편 박진석과 결혼 전에 동거했었고 결혼 후에도 두 사람이 사사로이 만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그녀가 박진석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던 건 아니다. 어찌 보면 그녀 역시 피해자라고도 볼 수 있다. 그건 박진석이라는 애초부터 여성 편력이 있는 나쁜 남자에 의해 생겨난 일이기 때문이다. 박진석은 송미진과 동거하면서 심지어 그녀의 절친인 최수아를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 남자친구와 절친이 관계를 맺는 아픔을 먼저 겪은 건 바로 송미진이다.

 

최수아 역시 주변 사람들의 수근거림에도 불구하고 송미진이 남편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고는 결코 믿지 않는다. 다만 그녀가 과거 남편과 동거까지 했었다는 사실을 숨겼고, 박진석이 그런 인간이라는 걸 자신에게 말해주지 않았던 것이 못내 화가 날뿐이다. 그래서 송미진이 사과한 것은 최수아 남편과의 관계 때문이 아니라, 최수아와의 우정관계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만큼 두 사람의 우정이 끈끈하다는 것.

 

그리고 그들의 우정은 힘겨운 상황에서 빛을 발한다. 최수아가 결국 서도우(이상윤)의 아내인 김혜원(장희진)을 만나게 되고 그 관계를 들킨 후 뺨까지 맞게 됐을 때 그녀가 먼저 전화를 한 건 바로 송미진이었기 때문이다. 송미진은 유경험자(?)로서 최수아를 진정시킨다. 그리고 그녀가 살고 있는 제주도를 찾아온다.

 

<공항 가는 길>은 이미 결혼한 남녀 사이에 생겨난 인연을 다루는 드라마지만, 그 안에 사랑만큼 절절하게 다가오는 관계는 우정이다. 어찌 보면 송미진과 최수아 그리고 박진석의 관계란 미묘하게 얽힐 수 있는 잘못된 만남일 수 있다. 하지만 그 힘겨운 관계에서조차 어떤 위로를 주는 건 송미진과 최수아의 변치 않은 우정이다.

 

시원시원하면서도 타인에 대한 배려가 묻어나는 면면은 송미진이라는 인물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다. 보통 멜로드라마에서 주인공의 절친은 마치 연애 코치를 하는 듯한 호감을 주기 마련이다. 송미진은 진정성 있는 우정은 물론이고 어딘지 어쩔 줄 몰라 하는 최수아 옆에서 든든한 지원자가 될 것 같은 걸 크러시의 면면까지 갖고 있다.

 

참 많은 드라마에 출연했지만 최여진이라는 배우가 특히 이번 작품에서 주목되는 건 아무래도 이 송미진이라는 인물이 제 옷을 입은 듯 그녀에게 잘 어울리기 때문일 듯싶다. 복잡한 남녀관계 속에서 명쾌한 우정관계를 드러내주는 인물이 주는 속 시원함과 든든함. 송미진이란 캐릭터를 통해 최여진이라는 배우 역시 달리 보인다

<공항>, 우연을 인연으로 엮어주는 공간의 마법

 

온 우주가 엮어주는 인연? 그들은 어떻게 그리도 우연의 만남이 반복되는 걸까. KBS <공항 가는 길>의 최수아(김하늘)와 서도우(이상윤)는 이상할 정도로 인연이 이어진다. 그 첫 번째 인연은 최수아의 딸 효은(김환희)과 서도우의 딸 애니(박서연)가 유학중 홈스테이 룸메이트로 지낸 데서부터 시작한다. 애니가 사고로 죽자 딸의 시신과 유품을 수습하러 가는 길에 최수아와 서도우는 만나고 마침 애니의 유품이 든 가방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그걸 기다리며 두 사람은 공항에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

 

'공항 가는 길(사진출처:KBS)'

애니의 죽음은 최수아와 서도우의 관계를 이어주는 끈이 된다. 그것은 딸을 둔 부모로서의 공감대이면서 죽음을 애도하는 한 인간으로서의 공감대이기도 하다. 그 공감대는 그래서 두 사람의 인연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남편 박진석(신성록)과 절친인 송미진(최여진)이 오래 전부터 관계를 맺어왔다는 걸 알게 되고 모든 일들이 뒤틀어지게 되면서 최수아는 더 이상 서도우와의 관계를 이어가지 못한다. 자신의 일탈 때문에 모든 것들이 잘못되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다.

 

결국 최수아는 딸을 데리고 무작정 떠난 제주도에서 다시금 정착해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 한다. 하지만 최수아와 서도우의 끊어져보였던 인연은 다시금 제주도에서 이어진다. 그것은 최수아가 막연히 꿈꾸던 공간이 바로 허허벌판에 불어오는 조용한 바람과 하늘을 가르는 전깃줄들 위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새들을 볼 수 있는 제주도의 한 마을이었고, 마침 돌아가신 서도우의 모친이 자신의 매듭 작품이 전시됐으면 하는 공간으로 이야기한 곳이 바로 제주도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물론 우연의 일치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우연 밑에는 필연이 감춰져 있다. 즉 최수아와 서도우가 만나서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최수아가 했던 제주도의 어느 바람 많지만 조용한 곳의 이야기는 어쩌면 서도우가 어머니의 유언으로 그녀의 작품 전시 공간을 생각할 때 막연히 떠올렸을 풍경이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두 사람은 저 마다 겪게 된 절망감(최수아는 남편과 친구 문제로 서도우는 어머니의 죽음으로)을 극복하기 위해 제주도라는 공간을 떠올렸고 찾아왔을 수 있다.

 

물론 이건 추정이지만 이야기는 독자들의 추정을 하나의 개연성으로 삼기도 한다. <공항 가는 길>에서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만남이 그저 우연의 남발이 아니라 어딘지 신비로운 인연처럼 여겨지게 되는 건 그래서다. 그런 만남은 사실 굉장히 확률이 낮은 것이지만, 공항이나 제주도 같은 특정한 느낌을 주는 공간을 매개로 하고 거기에 개인적인 욕망과 그들이 관계를 통해 서로에게 했던 이야기들 같은 것들이 얹어지면 의외로 가능성이 있는 만남으로 여겨지게 된다.

 

이것은 공간의 마법이다. 우리는 공간을 그저 물리적인 위치 정도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공간이 머금고 있는 이야기들은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만들어낸다. 굉장히 우연히 아는 사람을 어떤 공간에서 마주쳤을 때 어떤 경우에는 두 사람이 똑같이 떠올리는 어떤 공통의 기억이 그들의 발길을 그 곳으로 이끌었을 수 있다.

 

<공항 가는 길>에서 최수아와 서도우가 주로 공항에서 만나게 되는 건 그 공간이 주는 상징(일탈의 설렘과 두려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곳이 어딘가로 떠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의 공감대로 이어주는 공간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마음속으로 그리워하던 누군가를 우연히 만나는 것은 굉장히 확률이 낮은 일이지만, 그 그리워하는 마음들이 그들의 발길을 어느 한 공간(그것도 두 사람의 추억이 있는)으로 향하게 하고 그래서 거기서 우연히 그들이 만나게 되는 일은 그래도 가능할 것 같은 일이다.

 

<공항 가는 길>의 이 공간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만남과 헤어짐은 그래서 여타의 멜로드라마들이 갖고 있는 만남과 헤어짐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마치 하늘 위에서 공간을 내려다보는 것처럼, 헤어진 사람들이 그들이 나누었던 어떤 작은 이야기나 기억 같은 것이 계기가 되어 다른 곳에서 다시 만나는 그 과정들을 관조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다. 이 관조적 관점은 우리가 인연이라고 부르는 관계의 신비함을 드러내면서 어떤 위로와 위안을 준다. 마음 아픈 이별을 하기도 하지만 언젠가 만날 사람은 그 공유된 기억을 통해 발길이 이끌린 어떤 공간에서 결국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를 건네고 있기 때문이다

<공항 가는 길>, 공간이 주는 위안과 기억들

 

비행이 있어 공항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최수아(김하늘)는 서도우(이상윤)가 보낸 메시지를 받는다. 조심히 잘 다녀오라는 것. 그런데 그 때 딸 효은(김환희)에게서 전화가 온다. 텅 빈 집에 아이가 혼자 서 있다. 기장인 아빠는 시드니에 있고, 승무원인 엄마는 이제 비행을 하기 위해 공항으로 간다. 그런데 문득 최수아는 그 텅 빈 집에 홀로 있을 아이의 잔상이 마음에 못내 가시처럼 박힌다.

 

'공항가는길(사진출처:KBS)'

버스에서 내린 최수아는 갑자기 많은 일들이 떠오른다. ‘현주언니한테 효은이 데리고 병원 가서 진단서 끊어야 한다고 말하는 걸 깜박 했다. 하 김밥. 속은 만들었는데 효은이 한테 말도 못했고. 아 밥을 안했다. 아 김도 없지. 아 내가 뭘 해놓고 나온 거지?’ 그녀는 갑자기 모든 일들이 낯설어진다. 그러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이불 빨래를 햇볕에 너는 아줌마를 보고는 어느 날 불쑥 사표를 내버린 선배 현주(하재숙)가 했던 말을 떠올린다. “너무 평온해 보이는 거야. 오늘 날씨가 이렇게 좋았구나. 그때서야 하늘도 보이고 내가 왜 이러고 사나 왜 이렇게 하루하루 미친년처럼 사나...”

 

KBS 수목드라마 <공항 가는 길>의 이 장면은 이 드라마가 그려내는 정서의 많은 것들을 담아낸다. 최수아에게 공항 가는 길은 이중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우리가 공항을 갈 때 느끼곤 했을 어떤 낯선 세계에 대한 막연한 설렘 같은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집으로부터 멀어진다는 부채감 같은 것이기도 하다. 챙겨줘야 할 아이가 있는 집. 그 곳은 벗어나고픈 곳이기도 하지만 돌아가야 할 곳이기도 하다.

 

최수아의 일상은 모든 것들이 뒤죽박죽되어 있다. 그 발단은 딸 효은이를 해외 유학시키려 보냈다가 그 룸메이트가 사고로 죽는 바람에 다시 귀국하게 되면서부터. 부부 둘 다 일을 하는 통에 딸 봐줄 사람을 구해야 하는 입장이 되고, 시어머니에게 부탁하지만 도리어 다치게 됨으로써 그녀 역시 최수아가 챙겨야 하는 입장이 된다. 게다가 효은이의 룸메이트였던 애니가 하나의 인연이 되어 그 아빠인 서도우(이상윤)와도 선을 넘는 관계가 되어 버린다.

 

그 복잡한 일상들로부터 최수아는 도망치고 싶다. <공항 가는 길>이라는 드라마는 그래서 이 공항이라는 현실에서 벗어나는 출구로서의 공간을 통해 최수아의 감정과 갈등을 담아낸다. 서도우와의 첫 만남과 서로가 서로에게 감정을 느끼게 되는 공간이 공항이라는 건 이 드라마가 얼마나 공간이 주는 상징과 느낌, 감정들을 이야기의 주요 모티브로 삼고 있는가를 잘 말해준다.

 

한강을 바라보며 전화 통화를 할 때의 그 느낌이나, 햇살 좋은 어느 날 고택의 툇마루에 앉아 선선히 불어오는 바람을 맞을 때의 그 좋은 느낌, 골목길을 걸을 때 그 좁은 공간이 주는 아늑함, 허허벌판에 불어오는 조용한 바람과 하늘을 가르는 전깃줄들 위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새들... ‘조종실에서 본 밤하늘, 알래스카의 연어 맛, 시드니의 맥주 한잔, 두바이 사막의 해질녘, 그리고 지금 여기 이층에서의 여명같은 일상에서 살짝 벗어난 공간에 서 있을 때 느껴지는 자유로움과 따뜻함과 설렘과 두려움 같은 것들이 이 드라마에는 배경이 아닌 주요 이야기로 다뤄진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허망하게 죽음을 맞이한 애니가 왜 아빠도 없는 그 낯선 곳의 작업실로 때만 되면 갔을까 하는 점은 그래서 이 드라마의 미스테리면서 동시에 주제의식이 될 것이다. 공간은 결국 누군가에 대한 기억이고 그리움이 아닌가. 공간은 시간이 흘러도 그대로 남아서 그 곳의 만남과 헤어짐과 아픔과 그리움을 담아내기 마련이다. 좋은 기억을 담은 공간은 자꾸만 발길을 잡아끌게 하기도 하지만, 힘겨운 기억들이나 복잡한 일상들은 그 공간으로부터의 일탈을 꿈꾸게 한다.

 

<공항 가는 길>이 놀라운 건 바로 이 공간이 주는 일탈과 위로의 미학을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벗어나려 하면서도 이끌리는 공간. 결혼이나 집, , 일상 등은 우리를 응집시켜 끌어당기는 힘을 발휘하지만 동시에 그 곳으로부터의 일탈을 꿈꾸게도 만든다. 그 사이에서 최수아라는 인물이 갈등하고 화해하는 모습은 그래서 우리에게 깊은 공감과 작지않은 위안을 준다. 복잡한 현실이 주는 힘겨움과 그 곳에서 잠시 벗어나는 순간의 위로. 그리고 어쩌면 우리는 그런 잠시간의 위로가 힘이 되어 살아갈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 순간 잊지 말아요. 두고두고 힘이 될 거예요.”라고 서도우가 말하듯.

<공항 가는 길>의 질문, 인연은 어떻게 이어지는가

 

어머님께 팥죽 드린 사람이 수아씨 맞아요?” 마지막 가는 길에 팥죽 한 그릇이 먹고 싶었나보다. 서도우(이상윤)의 모친인 매듭 장인 고은희(예수정)는 마침 그 고택에 왔던 최수아(김하늘)에게 사달라고 한 팥죽 한 그릇을 맛나게 먹었다. 아마도 자신의 끝을 그녀는 예감했을 것이다. 그러니 잘 모르는 최수아에게 아들에게 남긴 편지를 전해달라고까지 부탁했겠지.

 

'공항가는길(사진출처:KBS)'

고은희와 최수아가 이렇게 인연으로 엮어지는 과정은 신기할 정도로 작은 우연과 필연들이 겹쳐져 있다. 고은희의 아들인 서도우가 자신의 핸드폰에 최수아의 이름이 효은엄마라 적혀 있는 걸 다른 이름으로 바꾸려고 그녀에게 문자를 보낸 것이 계기가 됐다. 서도우는 자신의 이름은 뭐라고 적혀 있냐고 최수아에게 물었고, 그녀는 공항에서 만나 공항이라 적혀 있다고 말했다. 서도우는 그녀의 이름 역시 두 사람이 다시 만날 그런 공간으로 적었다며 그 곳에서 우연히만나자고 한다.

 

하지만 한강이라 적은 서도우와 고택이라 여긴 최수아는 서로 엇갈리게 된다. 서도우는 어머니의 집(고택)에 간 김에 툇마루에서 쉬었다 가라 하고, 그렇게 그녀가 그 곳에 앉아 쉬고 있을 때 바람 때문인지 문이 스르르 열리며 안에 있던 고은희와 다시 마주친다. 그래서 그녀가 가는 마지막 길에 팥죽 한 그릇을 사다 주는 인연이 만들어진 것.

 

그러고 보면 그 발단은 서도우의 아내인 김혜원(장혜진)이 그의 핸드폰에서 효은엄마라는 이름을 보게 되고 그걸 서도우에게 의심스럽게 물었던 것이 이 모든 일의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전개방식은 <공항 가는 길>이 전하려는 인연에 대한 메시지를 그 자체로 잘 드러낸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인연이란 작은 실타래들의 씨줄과 날줄이 마치 필연과 우연으로 엮어져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드라마는 그 기적 같고 운명 같은 인연이 만들어내는 과정이 우리네 삶이라고 말해주고 있다.

 

이런 인연의 실타래는 서도우와 최수아가 만나는 과정에서도 벌어진다. 그 중간 매듭을 이어준 건 다름 아닌 서도우의 딸 애니(박서연). 집이 그립고 거기 사는 가족들이 그리웠지만 무슨 일인지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돌아오지 못했던 애니. 할머니의 매듭 앞에 학교 잘 다녀왔습니다라고 인사할 정도로 집을 그리워했지만 교통사고로 영영 돌아오지 못했던 애니. 사고 직전 최수아와 공항에서 부딪치며 애니가 떨어뜨린 작은 구슬은 마치 애니의 분신처럼 최수아와 서도우를 이어주는 끈이 되었다.

 

애니에 대한 그리움과 아픔 연민 죄책감 같은 감정들이 매듭이 되어 서도우와 최수아는 공항에서 만나 가까워지고 같을 또래의 딸을 둔 마음은 두 사람 사이에 공감대의 끈을 묶어준다. <공항 가는 길>이 스스로도 질문하고 있듯, ‘이런 애매한 관계는 언제 어디서든 불쑥 고개를 내밀어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들 수 있다. 그것이 그저 불륜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것은 이 드라마가 그 만남의 과정이 너무나 소소한 사건들의 중첩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일어난 일들이라는 걸 시청자들에게 설득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항 가는 길>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인연이란 어떻게 이어지는가에 대한 것이다. 그것은 부부 사이의 인연일 수도 있고, 부모 자식 사이의 인연일 수도 있으며, 우연한 계기로 만들어진 일탈의 인연일 수도 있다. 소재가 불륜이지만 우리가 기꺼이 <공항 가는 길>에 빠져버린 건 바로 이 드라마의 초점이 사람 사이의 관계가 만들어지는 기적 같은 순간들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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