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스트로 보이는 <삼시세끼>의 초지일관

 

tvN <삼시세끼>의 가장 큰 특징은 정착형 예능이라는 점이다. 새로운 곳을 계속 찾아가는 여행과는 달리, 한 곳에 정착해 그 곳의 변화과정에 집중한다. 늘 새로움을 줘야 하는 일반적인 예능으로서는 그리 유리한 설정은 아니다. 하지만 이 무료할 정도로 단조로워 보이는 풍경이 격렬하게 아무 것도 안하고 싶은도시인들의 로망을 건드렸다. 그저 하루 세끼 챙겨먹는 일이 해야 할 일의 전부인 시간들. 일 분 일 초도 쉬지 않고 돌아가는 도시인들에게 그런 무료함은 어느새 판타지가 되었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그래도 예능 프로그램인지라 <삼시세끼>가 아무 것도 안할 수는 없다. 그래서 카메라는 옥순봉 세끼집 주변에 자라는 꽃을 벌의 시점으로 찍어 보여주기도 하고, 작물들이 자라나는 장면들을 생명의 신비처럼 보여주기도 한다. 물론 경이로운 장면들이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반복적인 예능 프로그램의 패턴을 벗어나게 해주는 건 아니다. 그래서 <삼시세끼>는 게스트라는 변수를 활용한다. 새로운 손님을 초대함으로써 그들과의 새로운 이야기를 꾸려가는 것.

 

최근 <삼시세끼>의 게스트 활용법을 보면 쿡방 전성시대를 총망라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집밥 백선생>에서 요리를 배워온 손호준,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15분 요리 대결을 벌이는 홍석천이 찾아온 데 이어 드라마 <파스타>로 버럭 셰프 캐릭터를 지금까지도 갖고 있는 이선균이 다음 게스트라고 한다.

 

그런데 쿡방의 주역들을 게스트로 출연시키면서도 거기에 <삼시세끼>만의 색깔을 잃지 않는 명민함이 돋보인다. <집밥 백선생>의 백종원이 아니라 손호준을 게스트로 출연시키고, <냉장고를 부탁해>의 전문 셰프들이 아니라 연예인 요리사인 홍석천을, 그리고 <파스타>의 실제 모델이었던 샘킴이 아니라 그 드라마 주인공인 이선균을 출연시킨다는 건 특별한 선택이다. <삼시세끼>는 전문 셰프들을 출연시키지 않을까.

 

아마도 그것은 <삼시세끼>가 요리사들의 화려한 요리를 선보이는 쿡방과는 다른 결을 가진 예능이라는 걸 지키기 위함이 아닐까. <삼시세끼>는 요리사들의 예능이 아니다.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 요리를 해먹는 것이 포인트다. 그러니 백종원보다는 요리 무식자에 가까운 손호준이 낫고, 요리만이 아니라 특유의 흥을 가진 홍석천이 훨씬 낫다. 물론 이선균은 요리가 궁금하기도 하지만 그의 버럭 캐릭터가 더욱 기대되는 대목이다.

 

손호준은 <집밥 백선생>에서 배워온 강된장으로 이서진과 옥택연, 그리고 김광규의 찬사를 받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삼시세끼> 내용 중 일부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오히려 손호준이 김광규를 애잔하게 바라보는 그 관계가 훨씬 더 주목되었다. 홍석천이 출연한 방송분도 마찬가지다. 그가 선보인 태국식 요리들만큼 흥미를 준 것은 딱딱하게 타버린 빵에 실망감을 드러내는 제빵왕 서지니의 변명이었다.

 

쿡방이 대세지만 <삼시세끼>는 그렇다고 전문 요리사들을 데려와 화려한 요리 쇼를 선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평범한 한 끼에 더욱 골몰하는 모습이다. 손호준이나 홍석천, 이선균이 모두 요리와는 관련이 있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출연이 화려한 쿡방을 예고하지는 않는다는 점. 그래서 평범하고 보통인 한 끼를 고수한다는 점은 <삼시세끼>가 가진 일관된 프로그램의 방향성을 잘 보여주는 일이다



<미스코리아>, 치열한 일과 멜로가 만났을 때

 

역시 서숙향 작가의 멜로는 확실히 다르다. 그저 그런 잘 난 남자와 신데렐라의 이야기 따위는 그녀의 드라마에서는 좀체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그녀의 드라마에는 치열한 일터의 현실이 있고, 그 안에서 고군분투하는 여성이 등장한다. 그녀를 구원하는 왕자 같은 남자? 아마도 여성들은 그런 판타지를 꿈꿀지 몰라도 그것이 현실은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판타지가 없는 건 아니지만 서숙향 작가의 작품 속 남자들은 그래도 우리 주변에서 있음직한 그런 남자들이 대부분이다.

 

'미스코리아(사진출처:MBC)'

리얼리티 멜로라고나 할까. <별에서 온 그대>가 심지어 외계인을 등장시켜 여심을 사로잡는 판타지 멜로의 극점이라면 <미스코리아>는 치열한 삶의 현장 속에서 벌어지는 리얼리티 멜로의 극점이다. 97IMF 시절, 한창 벤처 붐이 일었던 그 시대의 공기를 <미스코리아>는 제대로 포착해낸다. 순수한 벤처 정신을 가진 많은 창업자들이 한편으로는 조폭 같은 대부업체의 손에 의해 도산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벤처 투자가라는 명목으로 된다 싶은 업체를 사냥하는 이들에 의해 회사를 빼앗겼던 시절이다.

 

비비화장품 주변을 맴도는 정선생(이성민)이나 이윤(이기우) 같은 캐릭터는 그래서 당시의 조폭과 벤처 투자가라는 벤처의 위협을 표징하는 인물들이다. 비비화장품 사장 김형준(이선균)은 순수한 벤처정신으로 똘똘 뭉친 인물이지만 바로 그렇게 곧기 때문에 번번이 무너질 위기에 처한다. 성희롱이 일상이 된 엘리베이터걸 오지영(이연희) 역시 이 사라져버릴 직종의 끝자락에서 미스코리아라는 지푸라기를 잡고 안간힘을 쓰는 인물이다.

 

미스코리아라고 하면 어딘지 부정적인 인상이 먼저 떠오르지만 오지영이 미스코리아를 선택하는 건 그녀가 결국 가진 것이 몸뚱어리 하나뿐이라는 그 절박함을 드러내준다. 하지만 그녀가 미스코리아를 키워내는 마애리(이미숙)가 아닌, 가진 건 없지만 진짜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를 미스코리아로 만들어주려는 김형준을 선택한다는 이야기는 단지 멜로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상품화되는 몸이 아니라 진짜 사랑하는 몸으로서 오지영이 미스코리아가 되려는 진심을 담아내기 때문이다.

 

일과 사랑. 언젠가부터 멜로는 사랑 하나만이 아닌 이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추구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여성들의 달라진 삶이 반영된 탓이다. 점점 늘고 있는 직장여성들에게 사랑은 일과 무관하지 않고 또 일 역시 사랑과 무관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사랑을 다루는 멜로에서 남녀 주인공들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 하는 점은 실로 드라마에 중요한 포인트가 되었다.

 

하지만 서숙향 작가의 멜로드라마가 남다른 것은 그 일의 세계가 그저 배경이 아니라 마치 전쟁터 같은 느낌으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남녀 간의 성차별이 존재하고 그러기 때문에 파리 목숨이 되기도 하는 일하는 여성의 고충이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파스타>가 라스페로라는 이태리 레스토랑의 주방을 사나운 불길과 날카로운 칼이 난무하는 전쟁터로 그려지듯이 <미스코리아>의 드림백화점의 엘리베이터라는 폐쇄된 공간은 숨 막히지만 어쩔 수 없이 버텨내는 감옥 같은 공간으로 그려진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상황에 처한 여성들 앞에 나타난 남성들이 사랑 그 자체의 마취적인 탈출구로만 그려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남성들은 여성들의 일을 지지해지고 때로는 적극적으로 성공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인물들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여성들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일에서의 성공과 사랑으로의 성공. 이것은 현대여성들이 꿈꾸는 가장 현실적인 판타지일 수밖에 없다.

 

상대적으로 <별에서 온 그대>에 밀려 조금 저조한 시청률을 냈지만 그렇다고 <미스코리아>가 실패한 드라마는 아니다. 97년의 한 시대적 풍경 속에서 그려낸 서숙향 작가의 일과 사랑은 충분히 의미와 재미를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서숙향 작가가 여성들의 성장 멜로에 있어서 각별한 재능을 갖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었다.

<미스코리아>의 무엇이 이연희의 연기를 깨웠나

 

와이키키-” 하며 억지로 미소 짓는 연습을 하던 엘리베이터걸 오지영이라는 인물은 어쩌면 그녀를 연기하는 이연희의 모습 그대로는 아니었을까. 배고픔을 이기기 위해 엘리베이터 한 구석에서 CCTV를 피해 삶은 계란을 통째로 입안에 우겨넣는 오지영의 억지로 짜낸 듯한 미소는 그래서 노동자의 슬픈 데드마스크를 떠올리게 했다.

 

'미스코리아(사진출처:MBC)'

예뻐 보이려 노력하는 것은 그래서 예쁘다기보다는 슬프다. 예쁜 마네킹처럼 웃는 백화점 엘리베이터걸들은 상습적인 성희롱과 성추행을 일삼는 박부장(장원영) 같은 파렴치한 밑에서 퇴직을 강요당하고, 심지어 퇴직금까지 갈취 당한다. 97IMF 시절 사라져버린 엘리베이터걸이라는 직업은 그래서 마치 노동이 기계로 대치되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돈 없고 백 없고 학벌 없는 오지영이, 가진 자산이라고는 달랑 몸뚱어리 하나로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래서 그 몸을 상품화하는 것뿐이다. 엘리베이터걸에서 미스코리아로 그 목표가 수정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지영의 서글픈 상황이 바뀐 것은 아니다. 미스코리아를 대거 발굴해낸 퀸 미용실 원장 마애리(이미숙)를 오지영은 엄마 같은 존재로 따르지만(그녀에게는 엄마가 없다) 마애리는 또 다른 박부장이다. 관리하는 방식이 달라졌을 뿐, 성의 상품화는 훨씬 세련되어진다.

 

미스코리아가 되기 위해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하고, 힙을 업시키기 위해 고통을 참으며 다리부터 엉덩이까지 병으로 눌러대며, 틈만 나면 물구나무서기를 당하는 몸은 그래서 여전히 슬프다. 누군가의 시선에 예속당한 채 훈육되어지는 몸. 그리고 심지어 성형이라는 이름으로 조각되고 만들어지는 몸.

 

오지영이 가슴 성형을 위해 수술대에 올랐을 때 그녀의 이름을 애타게 불러주는 김형준(이선균)의 목소리는 그래서 하나의 구원이 된다. 마치 미스코리아 공장 같은 마애리의 퀸 미용실을 벗어나 소박하지만 꿈이 있는 김형준의 비비화장품을 찾아온 오지영은 비로소 처음으로 스스로의 선택을 한 셈이다. 미스코리아가 되겠다는 꿈은 똑같지만 김형준과 오지영의 그저 직업적인 관계가 아닌 사적 관계는 모든 걸 바꾸어 놓는다.

 

지지고 볶는 비비화장품의 사장과 직원들의 모습이 마애리 퀸 미용실의 풍경과 달리 하나의 공동체 같은 인상을 주는 건 그 때문이다. 거기서 직원들은 김형준을 사장이라 부르기보다는 형 혹은 오빠라고 부른다. 김형준이 오지영을 미스코리아가 되게 하려는 것은 물론 비비화장품을 살리기 위한 욕망 때문이지만, 거기에는 오지영이 그토록 쓰레기통에 구겨 버렸지만 그걸 다시 가슴에 주워 담는 김형준의 순수한 사심도 들어있다.

 

그래서 오지영이 김형준 앞에서 와이키키-”, “하와이-”를 하며 미소를 짓는 모습은 더 이상 슬프지 않다. 그것은 오지영의 김형준에 대한 마음을 거꾸로 직업적인 연습을 통해 감추려는 것이니까. 여기서 비비화장품과 미스코리아라는 목표는 오지영과 김형준의 사심을 숨기는 방편이 되기도 한다. 비로소 오지영은 누군가의 시선에 예속된 몸이 아니라 저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당당해진 몸으로 서게 된다.

 

오지영이라는 성장 캐릭터가 이연희라는 연기자에게 주는 의미는 그래서 남다를 것으로 여겨진다. 누군가의 시선에 포획된 존재가 아닌 저 스스로의 선택으로 선다는 것은 연기자에게도 가장 중요한 덕목이니 말이다. 연기자에게 예쁘다는 표현은 이중적이다. 그저 외모가 예쁘다는 건 연기자에게는 치명적인 비판일 수 있다. 그것은 배역으로서 주목되기보다는 연기자 자신으로서 주목되기 때문이다. 연기력 논란은 바로 이 지점, 배역과 연기자가 따로 노는 지점에서 생겨난다.

 

<미스코리아>에서 이연희의 연기가 자연스러워진 것은 그 배역인 오지영이라는 캐릭터가 그녀에게 맞춤의 역할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저 예쁜 데드마스크의 얼굴이 차츰 진짜 예쁜 살아있는 인물로 변해가는 모습을 우리는 <미스코리아>의 오지영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또 이연희라는 연기자를 통해서 보고 있다. 오지영이라는 캐릭터가 예쁜 것은 단지 외모 때문이 아니라 점점 당당해지는 그녀의 변신과 성장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연희에게도 그대로 전파된다. 그녀는 연기자가 진짜 예뻐 보일 때가 외모가 아닌 배역에 몰입할 때라는 걸 오지영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배워가고 있다. 예뻐 보이려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예쁜.

<드라마의 제왕>과 <골든타임> 작가 논란

 

<드라마의 제왕>의 이고은(정려원)은 신인작가다. 아직 정식데뷔도 못했고 유명작가 밑에서 갖은 심부름을 도맡아 하며 보조작가 생활을 해왔다. 그러다 악명 높은 제작자인 앤서니 김(김명민)에게 이용당하고는 드라마를 떠나게 된다. 그리고 몇 년 후 쫄딱 망한 앤서니 김은 이고은의 작품에 관심을 보이는 일본투자자에게 투자받기 위해 그녀와 다시 계약한다. 하지만 막상 드라마의 편성권을 따내게 되자 신인작가에게 작품을 맡길 수 없다는 방송국측의 의견에 따라 앤서니 김은 이고은을 교체해버린다.

 

'드라마의 제왕'(사진출처:SBS)

드라마라서 극화된 부분이 없잖아 있지만, 적어도 여기 등장하는 신인작가 이고은이 당하는 처지는 그다지 과장이 없다. 외주제작 시스템 속에서 신인작가들이 겪는 고충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제작자에 의해, PD에 의해, 방송국에 의해 이리저리 끌려 다니고 조금만 반응이 달리 나와도 전면적인 작품 수정을 요구 당한다. 심지어 이고은처럼 아이디어만 쪽쪽 빼먹고 이용만 하다 버려지는 경우까지 있다. 제 아무리 무던한 사람이라도 이런 환경에서 작품 하나를 하고나면 자신이 생각했던 작가라는 세계와의 괴리감에 자괴감마저 들게 마련이다.

 

<드라마의 제왕>을 보면서 최근 월간 <방송작가>에 게재된 인터뷰로 논란이 된 <골든타임>의 최희라 작가가 문득 떠오른 것은 왜였을까. “완장을 찬 돼지 같다는 생각까지 했어요.” 이 한 줄의 표현이 그대로 문자화되면서 최인혁이라는 놀라운 캐릭터를 연기한 이성민이 도마에 오른 것이 최희라 작가에게는 논란의 빌미가 되었다. 만일 그 표현을 하지 않았더라면, 또 했더라도 그것이 기자에 의해 활자화되지 않았다면 그 인터뷰의 전체 내용은 전혀 다른 뉘앙스를 풍겼을 것이다.

 

물론 그녀가 한 인터뷰와 그 인터뷰 내용을 지나치게 직설적으로 다룬 <방송작가>측의 행동이 경솔했고 잘못됐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거기에 대해서는 추호도 두둔할 마음이 없다. 하지만 이 인터뷰의 진짜 내용은 배우를 디스하려는 그런 목적에 있지 않았다. 거기에는 신인작가가 드라마판에서 겪고 있는 많은 충돌과 고충, 그리고 작가로서 지켜야할 소신과 현실 사이의 갈등 같은 것들이 담겨 있었다. 다만 그것이 너무 거친 표현으로 직설적으로 다뤄졌다는 것이 본질을 호도하게 된 원인이 되었을 뿐이다.

 

최희라 작가는 2010년 <산부인과>로 데뷔한 후, <골든타임>이 두 번째 작품으로 거의 신인이나 마찬가지다. 그녀는 <방송작가>와의 인터뷰의 첫머리에서 <산부인과>를 쓸 때 겪었던 고충을 밝히기도 했다. “신인작가가 쓴다고 하니 제작 여건이 어땠겠어요. 그런데 시청률이 오르고 조금씩 반응이 오니까 그제서야 오만 군데서 달려들어 흔들어 대기 시작하는 거예요. 한번은 한 회 대본 전체를 다시 써야 했죠. 한 회가 바뀌면 이미 써 놓은 뒷부분의 대본도 다 고쳐 써야 하는 거잖아요. 드라마가 방송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9일 동안 5회 대본을 다시 썼어요. 그런 고통을 겪고 나니까 이 바닥이 나와 맞을까? 하는 근원적인 의문이 들었어요.”

 

흔히들 드라마 작가라고 하면 모두가 엄청난 고료를 받고 배우들 누구나 고개를 숙이며 존경하는 그런 존재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전체 작가들 중 상위 몇 프로에 해당되는 얘기다. 최희라 작가는 <골든타임>을 하면서도 권석장 감독과 부딪쳤던 점들을 인터뷰를 통해 피력했다. 그녀의 말로는 권석장 감독은 “청년 인턴의 알콩달콩 사랑이야기”를 찍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희라 작가가 쓰려던 것은 좀 더 중증외상학과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였다고 한다. 그래서 감독과 실랑이가 벌어졌다는 것이다.

 

“10회를 넘어서부터 상황이 더 힘들어졌어요. 현장에서는 대본 대로 찍을 수 없다고 하지, 배우들은 자신의 분량을 늘려달라고 하지... 이 드라마를 지켜야 하는 건 순전히 작가의 몫이었어요.” 최희라 작가가 인터뷰를 통해 말한 것처럼 권석장 감독이 “최인혁과 이민우의 이야기보다 이민우와 장재인이 함께 하는 장면을 더 넣어달라고 요구”한 것은 나름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아무래도 시청률에 있어서 달달한 멜로라인이 갖는 힘이 분명 있다는 것을 권석장 감독이 알고 있기 때문일 게다. 하지만 작가는 시청자가 “이미 최인혁과 이민우를 통해 중증외상환자들의 이야기를 따라가고 있었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의견충돌은 당시 그녀를 괴롭혔을 게다. 물론 그녀는 인터뷰에서 “지금은 감독님께 미안한 마음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실 인터뷰 내용에서 문제가 된 배우에 대한 이야기는 격앙된 표현 부분만 떼놓고 보면 이해되지 않는 게 아니다. <드라마의 제왕>에서 강현민(최시원)이라는 배우가 이고은 작가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를 보면 드라마 제작에 있어서의 힘겨루기가 역할에 따라 나눠지기보다는 누가 힘을 갖고 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희라 작가는 “캐릭터를 일관성 있게 끌고 가 줘야 하는 게 주인공의 몫”이라고 했다. 최인혁이라는 캐릭터가 점점 대중들에 의해 중심으로 오면서 본래 다루려 했던 멘토와 멘티 관계를 넘어 지나치게 주목되고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게 작가로서는 부담이었을 수 있다.

 

이러한 불편함은 주목받으면서 대중들의 요구에 의해 갑자기 생겨난 최인혁과 신은아의 멜로에 대해 그녀가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에 어느 정도 담겨있다. “최인혁과 신은아 두 사람의 멜로도 그랬어요. 나이답지 않게 순수하고, 어색 어색하게 서로를 바라봐야 하는 시점에서 마치 작가 몰래 둘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처럼 연기했어요.” 이 캐릭터의 균형에 대한 작가의 생각은 이선균에 대한 칭찬 속에 들어 있다. “그에 비하면 이선균씨는 분량이 제일 많음에도 불구하고 눈에 띄지 않게 주위 배우들과 밸런스를 맞추면서 최인혁의 캐릭터가 빛이 날 수 있도록 해줬어요. 이선균씨가 그동안 왜 그렇게 많은 작품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는지 느꼈죠.”

 

<골든타임>에서 이성민의 연기는 분명 작품을 살리는 힘이 되어준 게 사실이다. 하지만 또한 분명한 건 연기가 살아나는 것이 전적으로 연기자의 힘만으로 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최인혁이라는 캐릭터가 작가에 의해 축조된 바탕에서 가능한 일이다. 이성민이 수많은 작품을 해왔지만 <골든타임>을 통해 주목받게 된 것은 그런 이유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최희라 작가가 최인혁이라는 캐릭터를 잘 만들었기 때문에, 이 인터뷰의 논란은 더 큰 파장을 낳게 되었다. 여전히 최인혁이라는 캐릭터는 서민들의 메시아 같은 이미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분명 경솔한 인터뷰였지만 거기에는 아직 신참으로서 현실의 때가 묻지 않은 작가의 순진함도 묻어난다. <드라마의 제왕>이 그리고 있는 것처럼 드라마 제작현실은 낭만적이지 않다. 그것은 전쟁터나 마찬가지니까. 최희라 작가는 인터뷰 말미에서 여전히 작가를 계속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고민 중이라고 했다. 신인작가라는 현실 속에서 작가라는 정체성 자체를 고민하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분명한 건 <골든타임>이 좋은 드라마였다는 것이다. 모쪼록 이 한 때의 실수로(그것이 작은 실수는 아니지만) 또 다른 좋은 드라마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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