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낭만닥터 김사부3’의 맛, 동시다발로 터지는 사건들

낭만닥터 김사부3

눈이 펑펑 내리는 날, 앙심을 품은 군인이 군내에서 총기 사고를 내고 부상을 입은 채 도주한다. 마침 비번이던 서우진(안효섭)이 마주친 그 군인을 돌담병원으로 데려오고, 군부대에서 총기 사고를 당한 병사들도 이송된다. 아마도 보통의 의학드라마라면 이 사건 하나만으로도 긴박하게 돌아가는 응급실 풍경으로 한 2회 분량의 에피소드를 채웠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SBS 금토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3>는 다르다. 이 사건 위에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는 또 다른 사건들이 겹쳐진다. 

 

마침 박은탁(김민재)을 과거 괴롭혔던 불량한 이들이 병원을 찾고, 박은탁을 협박하며 마약성 약물을 달라고 요구한다. 차은재(이성경)는 총기 사고로 심각한 부상을 입은 병사를 수술하면서, 아버지이자 돌담 외상센터장인 차진만(이경영)이 과잉의료가 될 수 있다고 해 하지 않은 조치 때문에 수술도중 환자가 죽을 수도 있는 위기를 맞는다. 총기사고로 의사들이 모두 수술방에 들어가자 신출내기 의사들인 장동화(이신영), 이선웅(이홍내)도 집도를 해야 할 상황에 놓인다. 여기에 눈길에 미끄러진 버스가 사고를 내 스무 명에 가까운 부상자들이 몰려와 병원을 아수라장으로 만든다. 

 

사건에 사건이 겹쳐지고 그래서 이 모든 사안들이 과연 제대로 처리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은 긴박감을 만들어낸다. 워낙 사건들이 많아서 장면들은 계속 빠르게 전환되며 해결되지 않은 사건들에 대한 궁금증들이 그 밑으로 깔린다. 시청자들로서는 시선을 뗄 수 없게 이어지는 사건들에 ‘시간 순삭’의 느낌을 갖게 된다. 

 

흥미로운 건 이 많은 사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오지만, 하나하나 해결이 되어간다는 점이다. 총기 사고를 낸 탈영병은 서우진과 대치하며 극강의 위기감을 만들어내고, 가진 것 없는 흙수저로 태어나 이 지경까지 오게 됐다 한탄하는 탈영병에게 서우진은 자신 또한 그런 처지로 태어났지만 노력으로 그 자리까지 오게 됐다고 설득한다. 결국 탈영병은 총까지 겨누지만 서우진에게 쏘지는 못한다. 그렇게 탈영병 사건이 마무리된다. 

 

차은재가 수술 중 맞이 한 위기는 김사부(한석규)에 의해 가까스로 넘길 수 있게 된다. 그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차진만은 차은재에게 자신이 했던 말이 잘못된 게 아니고 환자가 특이 케이스였다고 말하지만, 차은재는 그 말을 반박하지 않는다. 다만 이 곳은 외상센터이기 때문에 과잉진료라는 게 있을 수 없다며 그래서 최종결정을 내린 자신의 잘못이라고 인정한다. 그런 차은재의 말에 차진만은 성장한 딸을 기특한 눈으로 바라본다. 

 

이선웅은 첫 수술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장동화 역시 자신이 총기로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자신이 수술한 환자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애쓰는 모습을 보여준다. 모든 의사들이 수술방에 들어가 버스 사고로 몰려온 스무 명 가까운 부상자들은 윤아름(소주연)이 맡아 해결한다. 물론 협박당하던 박은탁 또한 거기에 넘어가지 않고, 마약 중독자로 박은탁을 괴롭히던 이들은 신고를 통해 경찰에 검거된다. 이 긴박한 상황 속에서 눈 때문에 길이 막혀 오도 가도 못하는 혈액운송차량 때문에 맞이한 위기 역시 마침 현장에 있던 박민국(김주헌) 원장과 양호준(고상호)이 마라톤을 하듯 혈액을 직접 메고 병원까지 뛰어옴으로써 문제를 해결한다. 

 

눈 내리는 날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진 사건의 연속. 도무지 모두 해결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이 사건들이 하나하나 해결되는 건 돌담병원이 김사부 하나에 의지해 굴러가는 병원이 아니라 모든 의사부터 간호사까지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곳이라는 점 때문이다. 모두가 제 역할을 해냄으로써 불가능해 보이는 사건들이 별 문제 없이 해결되는 것. 이것은 드라마의 긴박감을 만들어내는 에피소드 구성이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실제 응급실에서 매일 벌어지는 일들이 아닐 수 없다.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이 모여 ‘미션 임파서블’한 상황에서도 만들어내는 기적.

 

중요한 건 이런 상황들을 단 2회 만에 묶어내 모든 인물들이 생생히 살아나게 그려내고 엮어내는 대본과 연출의 능력이다. 강은경 작가가 쏟아내는 다양한 에피소드들과 그걸 하나하나 풀어내는 대본이 밑그림을 깔아 주고, 이를 복잡하지 않게 유기적으로 연출해내는 유인식 감독의 저력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인물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매력적인 캐릭터를 구축해내지 못하면 아예 시도조차 어려운 사건 전개가 아닐 수 없다. 

 

돌담병원에 마구 터져 나오는 외상 환자들을 당황하지 않고 척척 해결해가는 김사부가 있는 것처럼, 다양한 사건 케이스들을 유기적으로 묶어내 이야기로 풀어내고 이를 연출해내는 강은경 작가와 유인식 감독이 있다. 마치 김사부 같은 제작진이 있어 이런 불가능해 보이는 에피소드 전개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봉합되고 있다고나 할까. <낭만닥터 김사부>가 시즌3까지 와서도 여전히 흥미진진한 데는 이러한 장인의 손길이 느껴지는 제작진의 능숙함 덕분이 아닐까. (사진:SBS)

 

‘낭만닥터 김사부3’, 시즌3가 되니 새삼 보이는 배우들의 성장

낭만닥터 김사부3

SBS 금토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3>의 매직이 시작되는 걸까. 첫 회 공개와 동시에 12.7%(닐슨 코리아) 시청률로 가볍게 두 자릿수를 넘겨버렸다. 강원도의 작은 돌담병원을 배경으로 때론 긴박하게 때론 먹먹하게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이야기로 시청자들의 호평을 이끌어냈던 <낭만닥터 김사부>. 시즌3 시작부터 쏟아지는 대중들의 관심은 이 작품이 이제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는 걸 방증한다. 

 

<낭만닥터 김사부>가 가진 힘은 제목에도 담겨 있듯이 ‘낭만’이라는 키워드 하나에 집약되어 있다. 왜 낭만일까. 그건 돈과 권력에 의해서 굴러가는 낭만 없는 세상에 던지는 일침이다. 그것보다 더 소중한 건 사람이고 생명이라고 외치는 것. 김사부(한석규)는 그래서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는 낭만적인 의사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시청자들의 응원을 받는다. 

 

시즌3 첫 회도 김사부의 바로 이 ‘낭만적인’ 면면으로 채워졌다. 탈북자들이 해경에 구조되지만, 총상을 입어 사경을 헤매는 그들을 병원으로 이송하는 걸 함장은 허가하지 않는다. 마침 남북 실무자 회담이 열리고 있는 시점이라 민감한 사안이 될 수 있다는 이유였다. 김사부는 따끔하지만 시원시원한 소신을 털어놓으며 함장을 설득한다. “함장님. 함장님이나 나나 그 사람 목숨 지키자고 밤낮으로 이 짓거리 하고 있는 건데 그럼 사람부터 살리고 보는 게 우선이죠? 예? 정치적 상황이야 정치하는 양반들이 알아서 할 일이고. 아닌가요?”

 

결국 ‘비공식적으로’ 함장은 이송을 허락하고, 헬기로 환자들을 이송하면서 돌담병원의 새로운 모습이 공개된다. 옛 시골병원은 그대로지만, 바로 옆자리에 신축된 외상센터 건물이 세워진 것. 그 외상센터는 첨단장비들까지 갖춘 좋은 환경을 제공하지만, 묘하게 시골병원 그대로의 돌담병원과 긴장감을 갖게 한다. 앞으로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지만, 화려한 외관보다 중요한 건 환자의 생명을 살리겠다는 그 한 가지 소신이라는 걸 저 낡은 시골병원이 김사부와 함께 보여주지 않을까. 

 

시즌3가 되면서 유독 눈에 띠는 건 출연 배우들의 존재감이다. 2016년에 시즌1이, 2020년에 시즌2가 방영됐다. 그러니 벌써 이 드라마가 시작된 지 어언 7년째가 된 셈이다. 시즌1에서 시즌2로 오면서 유연석-서현진 대신 안효섭-이성경이 바톤을 이어받았지만, 한석규를 중심으로 진경, 임원희, 변우민, 김민재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 돌담병원을 지키고 있다. 그간 배우들이 저마다 여러 작품들을 통해 성장해와서인지 시즌3의 배우들은 훨씬 더 무게감 있는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한석규야 설명이 필요 없는 배우지만, 작년 <오늘은 좀 매울 지도 몰라> 같은 작품으로 주목받았고, 안효섭은 <홍천기(2021)>, <사내맞선(2022>)으로 또 이성경은 <별똥별(2022)>, <사랑이라 말해요(2023)>로 주연배우로서의 면모를 드러냈다. 김민재 역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2020)>부터 <조선 정신과 의사 유세풍(2022, 2023)>으로 급부상했고, 진경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2022)>부터 <퀸메이커(2023)>에 이르기까지 미친 존재감의 배우로 떠올랐다. 

 

사실 그간 성장해 이제는 원탑으로도 드라마를 끌고 갈 수 있는 역량을 갖게 된 배우들이 이렇게 한 자리에 모여 있는 것만으로도 시선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좋은 작품이 가능성 있는 배우들을 발견해낸 것이고, 그들의 성장이 다시 시즌을 거듭한 <낭만닥터 김사부>에 무게감을 얹어주게 된 것. 작품과 배우들의 시너지가 이보다 좋을 수 있을까. 시즌3에도 이어질 낭만적인 매직을 기대하게 되는 이유다. (사진:SBS)

‘사랑이라 말해요’, 이광영 감독의 섬세한 연출이 쌓은 감정의 더께

사랑이라 말해요

“캠핑을 중학교 입학하면서 대홍 아저씨한테 처음 배웠어요. 그 때는 아저씨를 아버지라고 불렀었고. 어머니가 결혼하셨던 분들 중에 처음으로 아버지라고 불렀던 분인데 3년만인가? 어머니가 다른 분하고 다시 결혼을 하셨어요. 그 때 아저씨는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고 캠핑한다고 전국을 떠돌고 나는 그 때부터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울타리 안에서 살아 본 적이 없었어요. 내 어머니는 내 약점이에요.” 

 

디즈니+ 오리지널 드라마 <사랑이라 말해요>에서 동진(김영광)은 우주(이성경)에게 자신의 약점을 이야기한다. 그 이야기 속에는 그가 왜 캠핑을 좋아하게 됐고 캠핑 전시 관련 일을 하다 회사까지 차리게 됐는가에 대한 것은 물론이고, 그의 엄마가 왜 그가 못 견딜 정도의 약점이 되었는가에 대한 것도 들어있다. 특히 ‘제대로 된 울타리 안에서’ 살아 본 적이 없다는 말은 못내 가슴을 후벼 판다. 

 

그건 물리적인 공간으로서의 집을 말하는 게 아니다. 자신을 따뜻하게 보듬어주고 행복감을 주는 그런 심리적인 의미의 집이다. 그는 마음 둘 데가 없었고 그래서 집이 아닌 캠핑을 할 때 오히려 편안함을 느낀다. 그 말을 들으며 우주는 어쩌면 동진이 퇴근 길 유난히 쓸쓸하게 보이는 ‘축축한 등’을 떠올렸을 지도 모른다. 버젓이 넓은 집이 있지만 퇴근해도 갈 곳이 없는 사람처럼 거리를 배회하던 그 등짝을.

 

동진이 우주에게 이 이야기를 하는 곳은 바로 그가 살고 있는 집이다. 그 집은 동진 홀로 있을 때 더할 나위 없이 쓸쓸하다. 어둠이 그를 삼켜버릴 듯이 축 가라앉아 있고, 우주의 표현처럼 금방 이사를 간다 해도 믿을 정도로 가구도 없고 냉장고도 텅 비어있다. 온기가 없다. 그런데 동진이 우주와 함께 그런 이야기를 하는 장면은 여전히 어둑하지만 어딘가 포근하다. 마치 캠핑을 온 것처럼 창가에 의자를 나란히 놓고 적당히 떨어져 앉아 차를 마시는 그들 사이에는 영상으로나마 모닥불이 타 오른다. 

 

이광영 감독은 이 장면을 문밖에서 그 문의 프레임 안에 마치 두 사람이 들어가 있는 것처럼 담아내는데, 그래서인지 너무 넓어서 휑하고 쓸쓸하기만 했던 집과는 너무나 다른 느낌을 준다. 작아서 귀엽고 오밀조밀한 공간에서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와 눈빛에서 온기가 느껴진다. “오늘 자고 갈래요?”라고 조심스럽게 던지는 동진의 말에 우주가 그저 고개를 짧게 끄덕이는 장면은 그래서 더 애틋해진다. 그건 이 두 사람이 더할 나위 없는 자신들만의 공간 속에 들어왔다는 걸 말해주는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다음 날 아침 동진이 깨어나 먼저 나간 우주가 챙겨 놓은 밥을 먹는 장면은 이전에 그가 혼자 먹던 장면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광영 감독은 이 작품에서 유독 인물들의 뒷모습을 많이 담아내는데, 동진의 뒷모습은 그가 살고 있는 집처럼 덩치가 커서 오히려 더 쓸쓸한 모습으로 담겨지곤 한다. 하지만 우주와의 하룻밤을 보내고 깨어나 동진이 아침을 먹는 장면에서는 창가에서 마치 축복처럼 햇볕이 쏟아진다. 그리고 카메라가 뒤로 빠져나가면 거기 우주가 동진을 위해 아침을 하는 모습이 오버랩된다. 마치 한 장면인 것처럼. 홀로 아침을 먹고 있어도 동진의 뒷모습이 왠지 축축해보이지 않는다. 

 

<사랑이라 말해요>를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 작품에서 이광영 감독의 연출이 만들어내는 지분은 절대적이다. 이광영 감독은 인물들을 프레임에 담을 때 그저 서사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담지 않는다. 그보다는 감정을 담아내려 한다. 부감으로 찍을 때와 정면으로 담을 때 그 안에 인물이 어떤 정도의 크기로 어느 위치에 들어가야 그 때의 감정이 살아나는가를 세심하게 배려해서 담는다. 

 

그건 동진의 회사에 앙심을 품고 망하게 하려고 한 신대표가 회사를 찾아와 최선우(전석호)가 대들면서 난리가 났을 때 모든 직원이 일어서 있는 상황 속에 동진과 우주만 자리에 앉아 있는 장면 같은 데서도 잘 드러난다. 그 앉은 눈높이에서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칠 때 전해지는 감정선 같은 걸 이광영 감독은 놓치지 않는다. 

 

물론 이러한 연출이 가능한 건 인물들의 감정을 세심하게 담아내는 대본과 대사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하지만 제아무리 좋은 대본이 있어도 연출이 그 감정을 켜켜이 쌓지 못하고 훑어지나가 버리면 그 느낌이 살 리가 없다. 오랜만에 느껴 보는 멜로 연출의 맛에 시청자들은 우동커플(우주와 동진) 얼굴만 봐도 눈물 나는 먹먹한 경험을 하고 있다. (사진:디즈니+)

‘사랑이라 말해요’가 말하는 사랑이란

사랑이라 밀해요

“세상 외로워 보이고 세상 심심해 보이는 그 등짝이 제일 별로라고. 겉만 멀쩡하면 뭐해? 그런 축축한 등짝을 달고 사는데. 미련해 보여서 싫어.” 디즈니+ 오리지널 드라마 <사랑이라 말해요>에서 우주(이성경)는 동진(김영광)에 대해 그렇게 말한다. 그 말 속에는 애증이 담겨있다. 그건 다름 아닌 ‘불쌍하다’는 이야기지만, 우주는 애써 그게 ‘별로’이고 ‘싫다’고 한다. 

 

이 복합적인 감정은 우주가 동진에게 접근한 이유에서부터 비롯된다. 우주가 동진의 회사에 계약직으로 들어가 의도적으로 접근한 건, 그의 어머니이자 자신의 아버지의 내연녀였던 마희자(남기애)에게 복수하기 위해서였다. 마희자는 우주의 인생을 꼬이게 만든 장본인이었기 때문이다. 내연녀 마희자 때문에 아버지는 집을 나갔고, 엄마는 화를 속으로 삭이다 암에 걸렸다. 겨우 언니와 동생과 함께 버텨가며 살았지만,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그들이 살던 집조차 마희자가 빼앗아버린다. 우주는 뭐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지경에 이른다.   

 

“매일 매 순간 매 초마다 생각했어. 내 주제에 무슨 복수냐. 관두자. 참는 게 남는 거다. 근데 이거 내 생각이 아니라 우리 엄마가 입에 달고 산 말이거든? 나는 여전히 그 때 우리 엄마가 그 아줌마 머리채라도 잡았어야 된다고 생각해. 그럼 적어도 암은 안 걸렸을 거 같아. 그래서 난 뭐라도 해야겠다고. 안 그럼 내가 미쳐버릴 것 같거든.” 

 

그런데 그렇게 복수하기 위해 동진의 회사에 들어온 우주는 가까이서 이 남자를 들여다보며 연민을 느낀다. 지독히도 당하고 아프게만 살아가는 사람인데 뭐 하나 아프다고도 말하지 않고 항변조차 않는 남자. 그의 주변에는 배신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7년 만났던 애인이 배신했고, 살뜰하게 자신이 가정사까지 일일이 챙겨줬던 거래처 본부장이 배신을 했으며, 직원마저 회사를 망하게 하기 위해 내부 정보를 빼돌리는 배신을 했다.

 

그런데도 이 남자는 그 배신의 상처 앞에 이렇다 할 말 한 마디를 토로하지 않는다. 애인이 배신했을 때는 죽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지만 꾹꾹 눌러 참았고, 배신한 거래처 본부장을 찾아가 “술 적게 드시고 건강 챙기라”고 말한다. 직원의 배신을 알고도 그는 대놓고 뭐라 하지 않는다. 라이벌업체의 신대표(신문성)가 그 배후인 걸 알고 그 사실을 드러내면 또 다른 직원에게 접근할 거라는 이유 때문이다.

 

그래서 뭐라 항변도 하지 않고 늘 당하기만 하는 그가 우주는 몹시 눈에 밟히기 시작한다. 혼자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거나 술을 마시고 힘겹게 걸어가는 뒷모습이 눈에 밟히고, 비틀대다 차가 달려와도 마치 그대로 죽고 싶다는 듯 가만히 서 있는 그를 애써 끌어당겨 구해낸다. 그러면서 뭐라도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은 우주는 끝없이 대놓고 동진에게 속에 있는 날이 선 말들을 쏟아낸다. 그러자 참다못한 동진이 드디어 입을 연다. 

 

“근데요, 그렇게 매번 속에 있는 말 다 하고 살면 편해요? 심우주씨 눈엔 다른 사람들이 미련해서 참는 거 같은가 본데, 속에 있는 말 다 해버리면 실시간으로 내 말에 상처받는 얼굴들 보고 있어야 하니까. 그게 참는 거보다 더 고역이라서 안간힘 쓰는 사람도 있어요.” 동진의 그 말은 우주를 주춤하게 만든다.  

 

<사랑이라 말해요>에서 우주와 동진의 관계는 결코 사랑처럼 시작하지 않는다. 아니 복수로 시작한다. 하지만 그 복수의 마음은 우주가 동진에게 연민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누그러지고 어떤 지점에서는 지독히도 상처받은 이들로서의 동질감을 느끼게 만든다. 한없이 저마다의 세상에서 눈물을 삼키며 버텨내던 두 사람이 어느 순간 그 지치고 지친 눈으로 서로를 바라볼 때 알 수 없는 뭉클함이 솟아오르는 건 그래서다. 그 눈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너도 아파? 나도 그래. 

 

우주는 뭐라도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은 상황에 놓여 있고, 정반대로 동진은 뭐라도 하면 누군가 상처를 입는 걸 봐야하는 걸 견디지 못해 아무 것도 하면 안 될 것 같은 상황에 놓여 있다. 상반되어 보이지만, 이 두 청춘의 공통점은 그래서 그 참혹한 현실 앞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위치에 서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부모들 사이의 관계로 들여다보면 결코 가까워지면 안 될 것 같은 두 사람이, 차라리 잘 됐으면, 그 아픔을 서로가 보듬었으면 하는 마음을 갖게 만든다. 

 

김영광은 <썸바디>의 그 살벌했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한없이 연민을 느끼게 만드는 동진을 뒷모습마저 공감하게 만들고, 이성경은 그저 밝기만한 청춘의 이미지를 탈피해 한없이 텅 빈 슬픈 눈빛으로 톡톡 쏘아대는 상반된 모습을 통해 이 복합적인 감정의 인물을 놀라울 정도로 잘 소화해내고 있다. 여기에 밑바닥을 긁는 주인공들의 축축함을 순식간에 말려주는 신스틸러 성준과 김예원, 전석호의 연기가 더해져 <사랑이라 말해요>는 균형 잡힌 드라마가 됐다.   

 

그래서 <사랑이라 말해요>가 말하는 사랑이란 뭘까. 어른들에 의해 꼬이고 꼬인 관계 속에 놓여 있고 그래서 참 많은 설명과 설득이 필요한 관계지만, 둘 다 굳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라만 봐도 서로를 이해하고 행복감이 느껴지며 마음이 따뜻해지는 어떤 것. 그걸 이 드라마는 사랑이라 말하고 있다. (사진:디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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