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켜켜이 쌓은 감정... 이성경 얼굴만 봐도 울컥하게 만든 건 본문

동그란 세상

켜켜이 쌓은 감정... 이성경 얼굴만 봐도 울컥하게 만든 건

D.H.Jung 2023. 4. 6.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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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 말해요’, 이광영 감독의 섬세한 연출이 쌓은 감정의 더께

사랑이라 말해요

“캠핑을 중학교 입학하면서 대홍 아저씨한테 처음 배웠어요. 그 때는 아저씨를 아버지라고 불렀었고. 어머니가 결혼하셨던 분들 중에 처음으로 아버지라고 불렀던 분인데 3년만인가? 어머니가 다른 분하고 다시 결혼을 하셨어요. 그 때 아저씨는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고 캠핑한다고 전국을 떠돌고 나는 그 때부터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울타리 안에서 살아 본 적이 없었어요. 내 어머니는 내 약점이에요.” 

 

디즈니+ 오리지널 드라마 <사랑이라 말해요>에서 동진(김영광)은 우주(이성경)에게 자신의 약점을 이야기한다. 그 이야기 속에는 그가 왜 캠핑을 좋아하게 됐고 캠핑 전시 관련 일을 하다 회사까지 차리게 됐는가에 대한 것은 물론이고, 그의 엄마가 왜 그가 못 견딜 정도의 약점이 되었는가에 대한 것도 들어있다. 특히 ‘제대로 된 울타리 안에서’ 살아 본 적이 없다는 말은 못내 가슴을 후벼 판다. 

 

그건 물리적인 공간으로서의 집을 말하는 게 아니다. 자신을 따뜻하게 보듬어주고 행복감을 주는 그런 심리적인 의미의 집이다. 그는 마음 둘 데가 없었고 그래서 집이 아닌 캠핑을 할 때 오히려 편안함을 느낀다. 그 말을 들으며 우주는 어쩌면 동진이 퇴근 길 유난히 쓸쓸하게 보이는 ‘축축한 등’을 떠올렸을 지도 모른다. 버젓이 넓은 집이 있지만 퇴근해도 갈 곳이 없는 사람처럼 거리를 배회하던 그 등짝을.

 

동진이 우주에게 이 이야기를 하는 곳은 바로 그가 살고 있는 집이다. 그 집은 동진 홀로 있을 때 더할 나위 없이 쓸쓸하다. 어둠이 그를 삼켜버릴 듯이 축 가라앉아 있고, 우주의 표현처럼 금방 이사를 간다 해도 믿을 정도로 가구도 없고 냉장고도 텅 비어있다. 온기가 없다. 그런데 동진이 우주와 함께 그런 이야기를 하는 장면은 여전히 어둑하지만 어딘가 포근하다. 마치 캠핑을 온 것처럼 창가에 의자를 나란히 놓고 적당히 떨어져 앉아 차를 마시는 그들 사이에는 영상으로나마 모닥불이 타 오른다. 

 

이광영 감독은 이 장면을 문밖에서 그 문의 프레임 안에 마치 두 사람이 들어가 있는 것처럼 담아내는데, 그래서인지 너무 넓어서 휑하고 쓸쓸하기만 했던 집과는 너무나 다른 느낌을 준다. 작아서 귀엽고 오밀조밀한 공간에서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와 눈빛에서 온기가 느껴진다. “오늘 자고 갈래요?”라고 조심스럽게 던지는 동진의 말에 우주가 그저 고개를 짧게 끄덕이는 장면은 그래서 더 애틋해진다. 그건 이 두 사람이 더할 나위 없는 자신들만의 공간 속에 들어왔다는 걸 말해주는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다음 날 아침 동진이 깨어나 먼저 나간 우주가 챙겨 놓은 밥을 먹는 장면은 이전에 그가 혼자 먹던 장면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광영 감독은 이 작품에서 유독 인물들의 뒷모습을 많이 담아내는데, 동진의 뒷모습은 그가 살고 있는 집처럼 덩치가 커서 오히려 더 쓸쓸한 모습으로 담겨지곤 한다. 하지만 우주와의 하룻밤을 보내고 깨어나 동진이 아침을 먹는 장면에서는 창가에서 마치 축복처럼 햇볕이 쏟아진다. 그리고 카메라가 뒤로 빠져나가면 거기 우주가 동진을 위해 아침을 하는 모습이 오버랩된다. 마치 한 장면인 것처럼. 홀로 아침을 먹고 있어도 동진의 뒷모습이 왠지 축축해보이지 않는다. 

 

<사랑이라 말해요>를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 작품에서 이광영 감독의 연출이 만들어내는 지분은 절대적이다. 이광영 감독은 인물들을 프레임에 담을 때 그저 서사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담지 않는다. 그보다는 감정을 담아내려 한다. 부감으로 찍을 때와 정면으로 담을 때 그 안에 인물이 어떤 정도의 크기로 어느 위치에 들어가야 그 때의 감정이 살아나는가를 세심하게 배려해서 담는다. 

 

그건 동진의 회사에 앙심을 품고 망하게 하려고 한 신대표가 회사를 찾아와 최선우(전석호)가 대들면서 난리가 났을 때 모든 직원이 일어서 있는 상황 속에 동진과 우주만 자리에 앉아 있는 장면 같은 데서도 잘 드러난다. 그 앉은 눈높이에서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칠 때 전해지는 감정선 같은 걸 이광영 감독은 놓치지 않는다. 

 

물론 이러한 연출이 가능한 건 인물들의 감정을 세심하게 담아내는 대본과 대사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하지만 제아무리 좋은 대본이 있어도 연출이 그 감정을 켜켜이 쌓지 못하고 훑어지나가 버리면 그 느낌이 살 리가 없다. 오랜만에 느껴 보는 멜로 연출의 맛에 시청자들은 우동커플(우주와 동진) 얼굴만 봐도 눈물 나는 먹먹한 경험을 하고 있다. (사진:디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