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파벨만스’, 위대한 영화, 재능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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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벨만스’, 위대한 영화, 재능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D.H.Jung 2023. 3. 30.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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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스필버그의 ‘파벨만스’, 기술과 예술, 현실과 상상 사이

파벨만스

극장 앞에서 어린 샘(마테오 조리안)은 겁에 질려 있다. 영화에는 거인이 등장한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던 모양이다. 그런 샘에서 아버지 버트(폴 다노)는 영화가 사진과 다르지 않으며 여러 사진을 빠르게 돌려 빛에 투과시키면 동영상이 된다는 ‘모션 픽처’의 원리를 설명한다. 그것이 그저 기술이고 허구라는 걸 알려줌으로써 샘이 겁먹지 않게 하려는 아버지의 노력이다. 

 

버트는 컴퓨터 천재 공학도로서 산업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문제들을 기술적인 아이디어를 통해 극복해가며 기술을 발전시키는 인물이다. 그래서 그가 샘에게 하는 영화에 대한 설명은 다소 어린 아이에게는 과하고 딱딱하게 느껴지지만 이해되는 면이 있다. 하지만 그런 버트와 달리 피아노에 천재성을 가졌지만 아이 셋을 낳고 가정에 눌러 앉게 된 엄마 미치(미셸 윌리암스>는 샘에게 다른 이야기를 건넨다. “아들아, 영화는 꿈이란다. 영원히 잊히지 않는 꿈.”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파벨만스>의 이 같은 오프닝은 짧지만 영화에 대한 두 관점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영화는 카메라로 찍고 이를 편집해 영사기에 돌림으로써 가능한 과학적 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기술이 발전해 더 좋은 카메라가 등장하면 더 좋은 영상들을 보다 쉽게 찍어 영화로 만드는 게 가능해진다. 그것은 결국 영화 역시 자본이 투입되는 현실과 무관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영화는 미치가 말하듯 현실을 훌쩍 넘어서는 상상의 세계를 담아내고, 인간이 꿈꾸는 것을 영상으로 표현해내는 예술이다. 샘은 그래서 버트와 미치라는 서로 다른 삶과 예술에 대한 입장을 가진 인물들 사이에서 태어났고, 그들의 영향을 받아 성장한다. 서로 다른 성향을 가진 부모는 ‘이기적인 삶’을 살지 않기 위해 애써 자신을 누른 채 가족을 지키려 하지만 그건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어서 결국 파열음을 낸다. 

 

샘은 아버지가 평생 엄마를 숭배하듯 헌신해왔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예술과 예술적 삶에 대한 갈증을 억누른 채 평범한 가정에 눌러 앉아 스스로 파괴되어가는 엄마를 이해한다. 어린 샘은 서로 다른 부모를 각각 이해하지만 그들의 부딪침이 갈등을 만들어내는 것을 수용하기가 어렵지만 영화 속에서는 이 배타적으로 보이는 양자들을 끌어안는다. 친구들과 영화를 찍으면서 아버지가 아이디어를 내 문제해결을 해나가는 것처럼 특수효과를 만들어내는데 재기발랄한 아이디어를 낸다. 그러면서 기술과 현실의 차원을 뛰어넘는 예술과 상상으로 그가 만든 영화를 보는 관객들을 감동시킨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파벨만스>는 샘이라는 아이를 통해 그가 가족들과 더불어 친구, 연인들과의 관계는 물론이고 그 과정에서 보고 찍은 영화에 어떤 영향을 받고 성장했는가를 에둘러 담고 있다. 엄마와 아빠의 설득을 통해 처음 그가 보게 된 영화 <지상 최대의 쇼>에서 기차와 자동차가 충돌하는 장면을 보고 충격에 빠진 샘이 선물로 받은 장난감 기차와 자동차를 충돌시켜 보고 엄마의 제안으로 그걸 카메라에 찍게 되는 장면은 그의 영화가 어떻게 탄생했는가를 잘 보여준다. 

 

영화에 대한 헌사를 담은 영화들이 있다. 엔리오 모리꼬네의 음악으로 기억되는 <시네마 천국>이 그렇고, 최근 방영됐던 <바빌론>도 그렇다. 이중 <파벨만스>는 <시네마 천국>에 더 가까운 영화지만, 그 안에는 스티븐 스필버그라는 거장의 영화가 어떤 토양에서 어떤 영향들을 받아 탄생했는가에 대한 단초들이 담겨있다. 영화 속에서 보리스 삼촌이 등장해 “예술과 가족, 그게 너를 둘로 찢어놓을 거란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가족과 예술의 대립항은 그에게는 중요한 숙제였던 걸로 보인다.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동화 같은 가족애를 담은 영화를 그려내곤 했던 감독이다. <파벨만스>라는 제목이 달린 것도 그래서다. 이것은 샘 파벨만이라는 거장의 탄생을 그리는 영화지만, 그걸 만들어낸 건 그를 둘러싼 가족들의 영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술을 향해 달려가지만 그 지향점으로서 늘 가족을 담았던 스티븐 스필버그의 자전적 이야기지만, 동시에 <파벨만스>는 이를 기반으로 영화가 어떻게 탄생하는가에 대한 이야기까지 담아낸다. 

 

그리고 가족에 대한 각별한 영향을 주고받는 우리에게도 이 영화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그것은 한 재능 있는 아이가 현실을 넘어 꿈을 이뤄가는 그 과정들을 부모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지지해줘야 하는가에 대한 단초가 이 영화 속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두 시간이 훌쩍 넘는 영화지만 가슴 따뜻한 이야기를 보고 나오는 길에 그 누구라도 자신의 가족들을 되돌아보게 되는 영화가 아닐 수 없다. 아마도 그것이 스티븐 스필버그가 끝내 이 영화를 통해 하고픈 말이었을 지도.(사진:영화 '파벨만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