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스', 위험사회에서 가장 큰 위험요인은 인재라는 건

 

밤 10시 33분. 단 1분 간 현재를 살아가는 김서진(신성록)과 한 달 전을 살아가는 한애리(이세영)가 서로 통화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린다. MBC 월화드라마 <카이로스>는 바로 이 하나의 판타지 설정을 세계관으로 갖고 있는 드라마다. 단 1분간의 통화지만, 두 사람이 겪고 있는 사건들은 이 1분에 대한 깊은 몰입감을 만들어낸다.

 

김서진은 딸이 유괴 살해당했고 그 소식을 들은 아내마저 극단적 선택을 함으로써 이 1분이 이 사건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된다. 한애리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엄마를 찾아야 하는데 한 달 후를 살아가는 김서진은 그의 엄마가 외딴 곳에서 사망한 사실을 알게 된다. 결국 김서진은 이 사실을 한애리에게 알려 이런 비극이 벌어지지 않게 하려 할 것이고, 한애리는 이를 막기 위해 김서진과의 하루 1분 공조에 기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사건에 김서진의 회사 오른팔인 서도균(안보현)과 그의 수행비서 이택규(조동인)가 관련되어 있고, 김서진의 아내 강현채(남규리)와 서도균이 과거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로 현재까지 불륜관계를 이어오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또 한애리의 엄마 곽송자(황정민)가 사라지기 직전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 유중건설이 불량자재를 써서 난 화재 때문에 아이를 잃게 된 김진호(고규필)라는 사실 또한 드러난다.

 

이야기는 점점 유중건설이 과거 참여했던 태정타운 붕괴사고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알고 보니 한애리의 아버지가 바로 그 태정타운 붕괴사건의 피해자였고 김진호 역시 그 사건과 관련이 있었다. 그리고 김서진 또한 아버지와 함께 그 붕괴현장에 있었다. 즉 아직까지 전말이 밝혀지진 않았지만 김서진의 딸 유괴사건이나 한애리의 어머니 실종사건 모두 과거 이 유중건설의 건물 붕괴사건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어떤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갈지 현재 예측하긴 어렵다. 하지만 건물 붕괴 사건이 보여주고 있는 건 이 드라마가 현재 우리가 무수히 맞닥뜨리고 있는 위험에 대한 이야기를 바탕에 깔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이른바 '위험사회'라 불리는 세상의 살풍경한 모습이 그것이다. 김서진은 그런 위험이 자신과는 멀리 있다고 여겼지만 아이가 유괴되는 사건을 겪으며 그 위험이 너무나 가까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또 그 사건과 연관된 일들이 건설현장에서 벌어진 붕괴사고와 불량자재로 인한 화재사고와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은 그 위험의 실체를 드러낸다. 그건 사고가 아니라 사건이었다는 것. 위험사회의 가장 큰 위험요인은 결국 인재라는 사실이다.

 

<카이로스>가 김서진과 한애리 사이에서 한 달의 시간차를 두고 서로를 연결시키는 판타지를 설정한 건, 때로 우리 앞에 벌어지는 거대한 비극을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인간의 노력으로 바꿀 수도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건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사고나 천재지변이 아니라는 것. 그래서 결국 우리가 처한 많은 위험요소들의 대부분은 막을 수도 있었던 인재였다는 걸 <카이로스>는 이 긴박한 1분의 스릴러로 말해주고 있다.(사진:MBC)

'카이로스' 과거를 바꾸려는 신성록, 미래를 바꾸려는 이세영

 

지금껏 시간을 넘나드는 판타지 드라마들이 적지 않았지만, 아마도 이런 드라마는 처음이 아닐까 싶다. MBC 월화드라마 <카이로스>는 한 달 후를 살아가는 김서진(신성록)과 한 달 전을 살아가는 한애리(이세영)가 하루 딱 1분 동안 핸드폰으로 연결되는 색다른 시간 판타지를 설정으로 가져왔다. 밤 10시 33분에서 1분 동안 연결되는 미래와 과거지만, 그 1분이 그들에게는 미래와 과거를 바꿀 절박한 기회가 될 수 있다.

 

김서진은 과거를 바꾸려 한다. 유중건설의 최연소 이사로 승승장구하고 있었지만 어느 날 딸이 유괴되어 살해되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아내 강현채(남규리)마저 자살하면서 모든 게 무너져버린 김서진. 그래서 자신 또한 삶을 포기하려 하지만 그에게 실낱같은 기회가 찾아온다. 그것은 한 달 전 과거를 살아가는 한애리(이세영)에게서 걸려온 전화다. 한 달 전을 살고 있다면 자신에게 벌어진 비극을 한애리가 막아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황당하고 믿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는 걸 알게 된 김서진과 한애리는 공조하기 시작한다. 아이를 유괴한 자가 유중건설이 불법 자재를 사용함으로써 딸을 잃게 된 김진호(고규필)라는 사실을 알게 된 김서진은 한 달 전을 살아가는 한애리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고 한애리는 한 달 전을 살아가는 김서진을 찾아가 김진호가 그런 일을 벌이지 않게 미리 만나 사태를 해결하라 충고한다. 하지만 이 황당한 이야기를 믿지 않는 한 달 전의 김서진은 연거푸 한애리의 경고를 무시한다.

 

한편 김서진은 한 달 후 한애리가 살인사건으로 감옥에 가게 될 거라는 사실을 알고는 한 달 전 한애리에게 그 사실을 알려 사건을 막는다. 수년 간 모아왔던 엄마 수술비를 사기를 쳐서 가져간 임건욱(강승윤)에게 살의를 느꼈던 한애리는 김서진의 충고로 인해 칼을 버리고 돌아선다. 대신 잃은 돈은 한 달 후의 김서진이 알려준 로또 당첨 번호로 채워진다.

 

과거를 바꾸면 현재가 바뀐다는 사실을 알고는 김서진이 여전히 자신의 가족에게 벌어진 비극을 돌릴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의 일에 개입된 한애리는 이제 겪지 않을 수도 있었던 위험에 노출되게 된다. 김진호를 찾아갔다가 살해당할 위기에 처하기도 하고, 김서진의 아내 강현채(남규리)가 김서진의 손발 역할을 해온 서도균(안보현)과 내연관계라는 사실을 알고는 찾아가려다 역시 살해될 위기에 처한다. 물론 그 때마다 한 달 후의 김서진이 미리 일어날 일들을 경고해줌으로써 위기를 벗어나지만.

 

<카이로스>가 흥미로운 건 과거에서 미래로 가거나 미래에서 과거로 오는 타임슬립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가 연결됨으로써 생겨날 수 있는 '작은 기회'가 예측할 수 없는 결과로 흘러가는 과정들이 담기기 때문이다. 김서진이 과거를 바꾸려 하고, 한애리가 미래를 바꾸려 하는 그 과정들을 보다보면 우리가 스스로에게 주어진 시간과 기회에 대한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된다. 과거의 어떤 선택이 미래의 어떤 모습을 결정한다는 것을 드라마가 끊임없는 선택을 통해 그려내고 있어서다.

 

김서진과 한애리의 시간은 그 누구보다 절박하다. 그것은 이들에게 주어진 기회가 여전히 있기 때문이다. 물론 판타지 설정을 통해 주어진 기회지만, 그래서 절박해진 이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무얼 말해주는 걸까.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무심코 했던 많은 선택들을 하나의 기회로서 다시금 보라는 의미는 아닐까. <카이로스>는 그래서 지금의 나를 만든 과거의 선택들을 다시 보게 만든다. 물론 지금의 선택이 미래의 나를 만들 거라는 의미에서 더더욱 절박한 시선으로.(사진:MBC)

‘의사요한’ 지성과 이세영의 해피엔딩, 만족스럽지 않은 이유

 

때론 해피엔딩이 전혀 만족스럽지 않을 때가 있다. 그건 지금껏 드라마가 달려온 주제의식이 엔딩에 이르러 흔한 ‘사랑타령’으로 끝나버릴 때가 있기 때문이다. SBS 금토드라마 <의사요한>이 딱 그렇다. 통증의학이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가져와 고통과 삶과 죽음에 대한 만만찮은 이야기들을 그려왔던 <의사요한>이 마지막회에 이르러서는 차요한(지성)과 강시영(이세영)의 흔한 멜로드라마로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사실상 <의사요한>의 마지막회는 사족에 가까웠다. 통증에 대한 임상실험 참가자이자 연구자로서 미국에 간 차요한의 바이탈 기록을 매일 같이 체크하며 기다리는 강시영의 헤어질 듯 다시 만나는 뻔한 이야기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갑자기 연락이 두절되고 그렇게 3년이란 세월이 흐른 후 다시 나타난 차요한과 사랑을 확인하는 강시영의 이야기. 거기에 <의사요한>이 지금껏 다뤘던 주제의식은 희석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차요한은 자신이 내리는 고통에 대한 마지막 처방전으로서 의사의 역할이 병을 고치는 것만이 아닌 고통을 알아주고 나누는 것이라는 걸 드러냈다. “고통은 살아있다는 증거다. 고통은 우리 안에 살고, 우리 삶은 고통과 함께 저문다. 그 고통을 나누는 누군가가 곁에 있다면 고통의 무게는 줄고 고통을 끌어안는 용기는 더해질 것이다. 누군가의 고통을 알아주고 나누는 것, 이것이 삶이 끝나야 사라질 고통에 대한 나의 마지막 처방이다.”

 

즉 고통뿐인 삶 앞에서 의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던진 질문에 이 드라마는 호스피스 완화 치료를 답으로 제시한 것이다. 즉 치료는 완치만이 목적이 아니고 완화도 그 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 그래서 의사는 환자 옆에서 그 고통을 들여다보며 고칠 수 없다면 그것을 완화해주는 치료를 해주는 것이 응당한 역할이라고 드라마는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의사요한>은 이 무거울 수밖에 없는 삶과 죽음과 고통에 대한 주제를 다루면서 의식적으로 멜로 라인을 통해 그 무거움을 덜어내려는 모습을 보인 바 있다. 강시영과 차요한의 멜로 라인이 그렇고, 이유준(황희)과 강미래(정민아)의 멜로 라인 또한 그렇다. 게다가 통증의학과 레지던트들은 상당부분 희화화된 캐릭터로 그려졌다. 드라마가 지나치게 무거워지는 걸 막으려는 의도적인 구성이고 연출이다.

 

그게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주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의사요한>이 지나치게 멜로로 기운 건 오히려 한계로 지목된다. 차요한이라는 캐릭터가 전반적으로 드라마의 주제의식을 담아내며 잘 살아난 데 비해, 강시영은 의사로서는 너무 감정적이고 또 사랑을 갈구하는 인물로 그려진 것도 이런 드라마의 한계 때문에 생겨난 일이다. 연기를 잘 하는 배우들에 비하면 너무 아쉬운 캐릭터의 면면이 아닐 수 없다.

 

의학드라마는 이제 너무 많아져 특별한 소재나 주제의식 혹은 형식실험을 가져오지 않으면 뻔한 드라마라는 인식을 갖게 될 정도다. 그러니 의학드라마가 뾰족한 주제를 가져와 끝까지 밀고 나가는 건 그만큼 중요해졌다. <의사요한>은 그런 점에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 드라마다. 뾰족한 주제의식을 갖고 오고도 뭉툭한 멜로의 결말로 끝내버렸다는 점에서다.(사진:SBS)

‘의사요한’, 단순 사랑 아닌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려는 사랑

 

SBS 금토드라마 <의사요한>에서 강시영(이세영)은 차요한(지성)에게 “좋아해요”라고 말한다. 실제로 강시영은 차요한이 사실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질환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밤이고 낮이고 그를 걱정한다. 함께 데이트를 나와서도 앞에서 달려오는 사람이 혹여나 차요한에 부딪칠까를 걱정하고, 뜨거운 커피를 쏟을까를 걱정한다.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은 제 몸이 망가지고 있어도 그걸 모른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차요한은 자신의 집에 대신 몸 상태를 체크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매일 퇴근해서는 제 몸을 검사하고 잠을 잘 때도 카메라에 영상으로 그 모습을 일일이 기록해 혹여나 있을 수 있는 수면 중 행동의 위험성 또한 예방하려 한다.

 

그 질환에 걸린 이들이 손가락이 뜯기는 지도 모르고 손을 물어뜯거나, 각막이 손상되는 지도 모르고 눈을 비비는 그런 행동들을 하다 결국은 일찍 사망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강시영은 눈물을 쏟아낸다. 병원에 바이러스성 질환이 의심되는 환자가 들어오고 그 병동이 폐쇄 격리되자 강시영은 혹여나 그 곳으로 차요한이 들어오지 않을까를 걱정한다. 하지만 강시영이 환자를 돌보다 쓰러지게 되자 차요한 역시 그를 걱정해 폐쇄 병동에 들어와 문제를 해결한다.

 

좋아한다 말하고, 매일 밤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상대방을 걱정하며, 데이트를 하면서도 혹여나 있을 위험을 피하려 하는 강시영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의학드라마 속에서도 보게 되는 멜로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의사 요한>이 강시영을 통해 그려내는 멜로는 분명히 다른 지점이 존재한다. 그건 그가 사랑하는 차요한이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인물이라는 점 때문이다.

 

그래서 강시영과 차요한의 멜로는 스킨십보다는 감정을 공감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차요한의 상황을 애써 이해하려는 강시영에게 차요한이 그건 불가능한 일이라며 애써 그러지 말라고 하고, 그럼에도 강시영이 그걸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이들이 보여주는 멜로의 방식이다. 그건 남녀 간의 사랑으로 그려져 있지만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려는 의사로서 혹은 한 인간으로서의 사랑으로도 보인다.

 

차요한이 인간은 ‘타인의 고통’을 완전히 알 수 없다고 말하자 강시영이 그렇기 때문에 그걸 ‘이해하려 노력한다’는 이야기는 그래서 사랑이야기의 차원을 넘어 보다 깊은 인간애에 대한 통찰로 다가오는 면이 있다. 우리는 과연 ‘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 이해했다 생각하지만 착각인 경우가 많고, 그것이 미디어를 통해서 오해 혹은 오역되기도 하는 문제. 우리는 공감한다 말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공감인가에 대한 질문. 그런 것들이 <의사 요한>에서는 멜로에서조차 담겨진다.

 

강시영의 차요한에 대한 애착은 그래서 함께 산을 오르다 사고를 당해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채 삶을 이어가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상처가 겹쳐진다. 그래서 강시영이 차요한을 이해하려 애쓰는 건 마치 자신이 더 이상 아버지의 고통을 없애줄 수 없다는 사실과 그럼에도 이해하려 애쓰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차요한은 고통을 느낄 수 없는 병을 갖고 있어 환자의 고통을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그 고통을 경감시키려 노력한다. 통증 그 자체가 아닌 그 사람을 들여다보려 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무통 증상을 보이는 환자에게 자신의 질환을 보여주면서 그래도 살 수 있다는 희망을 던진다. 타인의 고통을 우리는 완벽히 알 수 없지만 우리가 겪는 고통이 있어 타인의 그것을 미루어 이해하려 노력한다.

 

자신이 겪는 고통 혹은 우리가 갖게 되는 어떤 결핍이나 상실감. 그것이 있어 우리는 어쩌면 타인의 고통과 결핍, 상실감 같은 걸 이해하려 노력하게 되는 건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통증은 그저 고통만이 아니라 무언가를 이해하게 만드는 신호라고도 볼 수 있다. <의사 요한>은 이처럼 통증이라는 화두를 통해 우리네 인간은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를 그려내는 면이 있다.(사진:SBS)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