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계획

이 가족, 어딘가 괴상하고 수상하다. 할아버지와 엄마, 아빠 그리고 쌍둥이 고등학생으로 구성된 가족이지만 딱 봐도 진짜 핏줄로 이어진 가족은 아니다. “내가 그 엄마 코스프레 좀 하지 말랬지. 친엄마도 아니면서 XX.” 엄마 역할(?)을 하고 있는 영수(배두나)에게 딸 역할 지우(이수현)가 욕설을 섞어 하는 말 속에 이들 가족이 얼마나 모래알 같은가가 잘 드러나 있다. 게다가 할아버지 강성(백윤식)은 지우에게 새로 전학 온 학교에서 건드리는 애들을 대비해 쇠구슬이 들어간 무기를 만들어주는 인물이고, 아빠 철희(류승범)는 영수 말이라면 물라면 물고 멈추라면 멈추는 인물로 아이들에게 제발 평범하게 좀 지내라고 당부한다. 

 

쿠팡플레이 드라마 ‘가족계획’은 제목에 ‘가족’이 들어가 있긴 하지만 어딘가 진짜 가족처럼 보이지 않는 영수네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 이상한 가족은 드라마 시작과 함께 짧게 보여주는 1996년도 특수교육대대라 불리는 곳에서 만났다. 버려진 아이들을 감금해 놓은 곳. 그 곳을 이끄는 안소진 대위(진서연)는 거기가 이제 ‘집’이고 자신이 앞으로 그 아이들의 ‘엄마’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탈출’은 생각도 하지 말라며 바깥세상은 더 큰 고통이 될거라고 엄포를 놓는다. “여길 나가는 순간 진짜 지옥이 시작될 거다. 너랑 그 핏덩이들 갈기갈기 찢어 죽일 때까지 내가 매일 추적자를 보낼 거니까.” 그 엄포에도 불구하고 영수네 가족은 그 곳을 탈출했고 그래서 늘 따라붙는 추적자들로부터 도망치며 맞서는 중이다. 

 

물론 그 곳에서 특수한 교육(?)을 받은 이 이상한 가족의 삶이 평범할 수는 없다. 맨손으로 수십 명 때려눕히는 건 일도 아니고, 특히 영수는 ‘브레인 해킹’이라는 기막힌 능력을 갖고 있다. 그녀가 “주목”이라고 외치는 순간 시작되는 이 브레인 해킹은 실제로 하는 것이 아니지만 상대의 기억 속에 고통스런 고문의 기억을 새겨넣을 수 있는 능력이다. 전학 오자마자 지훈(로몬)과 지우를 괴롭히는 일진 조규태(배재영)에게 영수는 허벅지 살을 도려내는 고통의 기억을 심어 놓음으로써 결국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만든다. 이 일로 인해 영수네 가족은 조규태네 가족인 조폭 조해팔(유승목)과 오길자(김국희)와 대결하게 되고, 그들을 뒤에서 조종하는 열망교회 윤명환 목사(남윤호)와도 맞서게 된다.

 

수위 높은 폭력과 액션이 펼쳐지는 19금 드라마지만, 이 드라마가 독특한 건 ‘가족’과 ‘기억’이라는 키워드를 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집과 엄마라고 부르는 특수교육대대와 그 곳을 이끄는 안소진 대위로부터 탈출한 영수네 가족은 역시 핏줄로 연결된 진짜 가족은 아니지만 시시각각 그들을 위협해오는 외부세력과 맞서 나가며 점점 가족이 되어간다. 그 가족의 중심에는 엄마 영수가 있다. 외부에 알려지면 안된다는 이유로 사진조차 찍지 못하게 하는 엄마에게 ‘엄마 코스프레’ 하지 말라며 툴툴대던 지우는, 그것이 플래시만 터지면 발작하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영수를 엄마라 부르기 시작한다. 브레인 해킹을 하면 영수 또한 고통을 겪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지훈은 엄마를 걱정하기 시작한다. 희대의 빌런으로 등장한 오길자가 지우를 납치하자 맨몸으로 뛰어들어 사투를 벌이는 영수의 모습은 이들이 영락없는 가족이라는 걸 증명해 보여준다. 

 

또한 이 이상한 가족은 과거 특수교육대대에서의 끔찍한 기억 속에서 살아간다. 그래서 그 곳으로부터 탈출하긴 했지만 그 트라우마가 트리거가 되어 한 순간에 괴물처럼 변하기도 한다. 플래시가 터지면 눈이 돌아 누군가의 피를 봐야 진정되는 지우가 그렇다. 그런 지우를 위해 영수는 기꺼이 자신의 피를 흘려줄 수 있는 엄마다. 잔혹극의 형태를 가졌지만 ‘가족계획’에는 이처럼 아픈 기억을 극복해가며 진짜 가족이 되어가는 따뜻한 가족드라마가 숨겨져 있다. 

 

‘마음은 혼자만의 장소다. 그 안에서는 지옥도 천국으로, 천국도 지옥으로 바꿀 수 있다.’ 존 밀턴의 ‘실락원’에 나오는 한 대목을 자막으로 보여주며 시작하는 이 드라마는 잔혹극 형태로 진짜 가족의 의미를 묻는다. 가족이라고 하지만 타인보다 더 잔혹한 가족이 있는 반면, 완전한 타인이지만 잔혹한 바깥세상으로부터 안전하게 보듬어주는 진짜 가족이 있다. 어떤 마음으로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지옥도 천국도 될 수 있는 가족. ‘가족계획’이라는 잔혹하지만 따뜻한 세계가 그려놓은 가족의 풍경이다. (글:일간스포츠, 사진:쿠팡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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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남자와 거친 남자 사이, 이준기

참 지독한 배역을 맡았다. ‘개와 늑대의 시간’ 속에서 이수현과 케이 사이를 오가는 연기를 펼치고 있는 이준기를 두고 하는 말이다. 연기자들과 캐릭터는 적어도 드라마를 찍는 동안에는 동일인물이다. 그렇게 감정이입이 되지 않으면 캐릭터가 살 수 없기 때문. 그런 면에서 보면 지금 기억과 관련해 자기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인물은 비단 ‘개와 늑대의 시간’의 이수현만이 아니다. 그 연기를 하고 있는 이준기 역시 똑같은 개와 늑대의 시간을 겪고 있다.

이준기라는 배우를 발굴해낸 멘토의 김우진 이사는 “이준기의 인기는 순정만화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중성적 매력에 있는 듯하다”고 말한 바 있다. 여기서 중성적 매력이란 여성적이란 뜻이 아니다. 여성적인 꽃미남의 외모를 갖추고 있지만 또한 남성적인 날카로움 혹은 터프함도 동시에 갖고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무려 10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지금의 이준기를 있게 만들어준 캐릭터는 ‘왕의 남자’의 공길이다.

공길이란 캐릭터는 말 그대로 중성적이다. 겉으로 표현된 것은 여성적인 모습이 대부분이지만 그의 배역을 두고 게이라던가, 동성애 같은 말들이 나오지 않았던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그가 연기한 공길은 기본적으로 남성이지만, 모성애 같은 여성성이 극대화된 캐릭터였던 것.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연산군이나 장생을 보듬는 모성애로서의 여성성은 이준기의 여장남자 연기에 사회적 편견의 잣대가 적용되지 않게 했다.

문제는 공길이란 캐릭터를 벗고 스크린 밖으로 나온 중성적 이미지의 이준기가 공길을 통해 얻게된 이미지, 즉 여성성이 강조된 꽃미남, 예쁜 남자 같은 크로스 섹슈얼로 소비되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이후 이준기가 토로했듯이 ‘벼락스타가 짊어질 운명’ 같은 것이었다. 이미지 자체가 자산인 연기자들에게 있어서 하나로 굳어진 이미지는 양날의 칼이다. 연기자의 본분이라고도 할 수 있는 ‘다양한 역할로의 변신’에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개와 늑대의 시간’은 따라서 연기자 이준기에게도 똑같은 개와 늑대의 시간으로 작용한다. 살해당한 부모의 아픔을 갖고 자라온 이수현이 강중호(이기영)의 보살핌 속에서 국정원 요원이 되고, 상처가 지워질만할 때 원수인 마오(최재성)를 만나는 장면에서 이준기는 첫 번째 개와 늑대의 시간을 겪었다. 평범한, 어찌 보면 ‘마이걸’의 서정우 같은 이미지의 이준기는 돌연 눈에 핏발을 잡아가며 총을 들이대는 거친 남자로 돌변했다.

하지만 그것은 신호탄이었을 뿐. 언더커버로 들어간 청방에서 갑작스런 사고로 당한 기억상실은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 원수 밑에서 충실한 개가 되어 비열한 썩소를 날리는 이준기는 복수심과 따스함의 이중성을 갖고 있던 이수현에서 어두운 그림자로서의 케이라는 인물을 끌어낸다. 그리고 결국 정해진 대로 케이가 자신이 이수현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캐릭터는 더 복잡해진다. 그리고 모든 걸 포기하려 할 때,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처럼 청방에서 언더커버로 활동하다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것은 기억의 양파껍질을 벗겨내는 과정처럼 보인다. 이수현이란 한 인물 속에서 벌어지는 것이지만, 거기에 기억이 덧붙여지면서 이 캐릭터는 다양한 프리즘의 빛깔을 쏟아낸다. 그리고 이준기가 연기하는 이수현의 이런 다양한 모습들은 이 드라마가 하고자하는 이야기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복수심은 때론 훌륭한 동기부여가 된다”거나, “기억을 잃었다는 건 완벽한 언더커버 요원이 됐다는 걸 뜻한다”는 식의 대사들은 이 드라마가 한 가지 현상에 부여된 양면을 읽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걸 말해준다.

그래서 드라마를 죽 보다보면 이런 생각이 들게 된다. 도대체 무엇이 저 이수현이란 친구를 저렇게 힘들게 만드는 걸까. 물론 그것은 정보를 쥐고 있는 자들인 정학수(김갑수)나 마오(최재성) 같은 인물들이, 정보가 없는 자들을 이용해 벌이는 권력게임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내는 것 같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양파껍질 같은 기억을 갖게 된 인간이란 존재의 문제다.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기억이란 장치 하나로 숨가쁘게 변신하는 감정을 가진 존재. 따라서 이준기에게 이런 양면을 보여주는 이수현이란 캐릭터는 넘어야할 산이면서도 그 자체로 이미지 변신의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한 드라마에서 두 이미지가 다 보인다)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지금 이준기는 개와 늑대의 시간을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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