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션 프로그램 심사위원을 위한 멘토링

'위대한 탄생'(사진출처:MBC)

“위대한 탄생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드라마를 사랑하는 분들이 유독 많은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위대한 탄생은 음악을 통한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이은미가 백청강을 심사한 후 한 발언이다. 짧은 발언이지만 이 속에는 이은미가 오디션 프로그램을 어떻게 생각하는가가 잘 담겨져 있다. 에둘러 표현했지만 이은미는 이 발언을 통해 '위대한 탄생'이 드라마가 아니라 음악을 평가하는 오디션임을 강조했다.

사실 '위대한 탄생'이 그저 기획사 같은 곳에서 가수지망생들을 뽑는 오디션이라면 이 말은 틀린 게 없다. 하지만 '위대한 탄생'은 그런 오디션이 아니라, 이 과정이 TV로 방영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이 둘은 확연히 다르다. 즉 일반적인 오디션에서 후보자를 뽑는 당사자는 심사위원이지만, 오디션 프로그램은 그 형식상 후보자를 뽑는 당사자가 심사위원이 아닌 투표에 참여하는 일반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은미의 이 발언은 (드라마를 사랑하는) 일반인들의 선택을 꼬집은 것이고, 자신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하고 있는 '음악을 통한 오디션' 심사가 정당한 것임을 밝힌 것이다. 소신을 밝힌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잘못됐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은미의 생각과 그 소신 있는 발언이 대중들과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오디션 프로그램 속에서 그녀의 심사와 평가가 대중들의 투표에 영향을 주기 어렵고, 때론 정반대의 결과로만 흘러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 오디션에서 심사위원은 말 그대로 심사하는 사람이지만,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심사위원이라는 존재는 대중들의 인식에 의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는다. 즉 오디션 프로그램의 심사위원은 평가자이면서도 대중들의 가이드 역할을 하며 나아가서는 대중들의 감정이입 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즉 심사위원의 독설은 대중들의 반감을 갖게 만들기도 하지만 공감 가는 독설은 대중들을 속 시원하게 한다. 이때 심사위원은 대리충족을 시켜주는 대변자 역할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심사위원 역할이 늘 대중들과의 관계 속에 놓이기 때문에, 여기서 심사위원은 사실상 이 오디션 프로그램이 흘러가는 방향(어쩌면 스토리)을 읽어야 한다. 대중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간파해야 한다. 이것은 대중들의 생각에 휘둘린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들의 생각을 알아야 거기에 맞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그것으로 소기의 성과를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 비교점으로 생각해야할 인물이 '슈퍼스타K'에서 독설가였지만 많은 대중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켰던 심사위원 이승철이다. 그는 도대체 어떻게 했기에 이은미와는 사뭇 다른 결과를 만든 걸까. 이승철은 우선 '슈퍼스타K'의 흐름 전체와 거기서 심사위원의 역할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즉 초반 경쟁자들의 수가 많을 때는 이를 걸러내기 위해 거침없는 독설을 내뿜었다. 지적도 발성문제에서부터 음정문제까지 구체적이었다. 때론 지나치다 싶은 독설 때문에 그걸 바라보는 대중들과의 대립적인 관계가 형성되기까지 했다.

하지만 후반부로 가면서 10여 명으로 경쟁자들이 좁혀졌을 때 이승철은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구체적인 지적은 피했고(사실 이 단계에 올라온 경쟁자들에게 이런 지적은 큰 의미가 없다) 오히려 그토록 까칠하던 그가 칭찬을 아끼지 않음으로써 무대에 선 경쟁자들에게 권위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이러한 변화 지점에서 대중들은 심지어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얻기도 했다. 이것은 단순히 대중들을 의식한 인기발언이 아니다. 이승철은 이 지점부터 심사위원의 역할은 심사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거기 무대 위에 선 경쟁자들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보통 기획사에서 치러지는 오디션과 TV로 방영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다른 점 중에 또 한 가지는 그 심사위원 역시 재평가된다는 점이다. 즉 이승철은 '슈퍼스타K'를 통해 가수로서의 자신의 권위를 다시 세웠고 대중들은 이를 수긍했다. 하지만 이은미의 경우는 어떤가. 사실 '위대한 탄생'의 심사위원으로 서기 전까지 이은미는 우리들에게 '맨발의 디바'였다. 가창력 하면 떠오르는 인물. 오로지 노래 그 자체로 대중들을 쥐고 흔드는 카리스마. 그런 것이 이은미의 아우라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위대한 탄생'을 거치면서 그녀는 어딘지 대중들과는 동떨어져 혼자 달려가는 독선적인 이미지를 덧씌우게 되었다. 이것은 분명 이은미의 진정한 모습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위대한 탄생'이라는 드라마 속에서 이은미는 지금 그 악역이 되어가고 있다. '위대한 탄생'이라는 드라마를 이해하지 못한 결과치고는 가혹한 일이다.

 '슈퍼스타K', 심사위원들의 프로그램 기여도는 몇 점?

"심사는 심사일 뿐, 심사하지 말자." '슈퍼스타K2'의 심사위원 윤종신은 이렇게 말했다. 심사에 대해 쏟아지는 많은 논란들을 유머 섞인 말로 일축한 것. 하지만 '슈퍼스타K2'는 기본적으로 오디션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심사위원의 말 한 마디가 가진 힘은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그 말에 대한 논란 역시 나오기 마련이다.

심사위원인 이승철, 엄정화, 윤종신은 심사 스타일이 각각 다르다. 이승철은 가창력에 중점을 맞추고 엄정화는 무대 스타일을 주로 본다. 윤종신은 프로듀서적인 관점에서 경쟁자의 상품으로서의 가능성에 더 초점을 맞춘다. 이승철이 초반부 심사에서 지나친 독설이 아니냐며 논란에 오른 것은 그가 맡은 영역이 가수로서의 기초에 해당하는 가창력에 있었기 때문이다. 즉 그의 독설에는 확실한 이유가 존재한다. 그는 아주 구체적인 부분을 지목해가며 비판을 가한다.

하지만 이승철은 '슈퍼스타K2'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심사의 역할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 즉 심사는 수많은 경쟁자들에서 옥석을 골라내는 역할에 충실해야 하면서도 동시에 그렇게 경쟁을 뚫고 올라온 가수들에게 어떤 권위를 만들어주는 역할도 해야 한다. 따라서 초반부 독설에 가까운 심사를 하던 이승철은 차츰 올라온 가수들에게 찬사를 던짐으로써 확실하게 그들을 띄워준다. 독설가로서의 이승철의 이미지는 이 부분에서 상당히 부드러워질 수밖에 없고, 따라서 비호감은 호감으로 반전된다. 이것이 이승철이 '슈퍼스타K2'의 가장 주목받는 심사위원인 이유다.

반면 엄정화의 심사가 논란에 선 것은 그녀가 맡은 분야가 어찌 보면 노래 외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는 무대 스타일이나 퍼포먼스에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경쟁자들이 부른 노래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고, "보기 좋았다"를 연발하는 모습은 시청자들에게는 함량 미달의 비전문가로 비춰졌을 것이다.

이런 비판을 넘어서기 위해 엄정화는 심사에 있어서 좀 더 디테일한 부분들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미진한 감이 없지 않지만, 그냥 "보기 좋았다"는 표현만 반복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보이고, 또 무엇보다 무대에서 긴장될 수 있는 경쟁자들에게 따뜻한 미소를 던져주는 존재로 자신을 세웠다. 사실 이것은 심사위원으로서의 역할은 아니다. 하지만 '슈퍼스타K2'를 하나의 오디션 쇼로 생각한다면 무대에 오르는 이들을 절절히 호응해주고 공감해주는 역할로서 엄정화는 꼭 필요한 존재라고 볼 수 있다.

예외적으로 윤종신은 심사에 대한 논란이 그다지 없다. 그렇다고 할 얘기를 안 하는 것은 아닌데도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그가 자신의 심사에 있어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때론 유머를 섞고 떨어진 후보들에게는 격려의 말을 빼놓지 않았다. 그는 심사위원으로서 해야 하는 말과 선배 가수로서 해야 하는 말을 늘 구분한다. 강승윤이 떨어졌을 때 "떨어졌으니까 하는 얘긴데, 너 오늘 최고였다"고 말하는 식이다.

물론 심사위원을 심사한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지만, '슈퍼스타K2'라는 프로그램 속에서 각자의 역할을 중심으로 보면 이것은 꽤 의미 있는 일이다. '슈퍼스타K2'는 슈퍼스타K가 되려는 경쟁자들의 성장드라마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심사위원들도 동시에 성장하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그들은 프로그램에서의 역할을 어느 정도 해내느냐에 따라 개인적인 주가도 올릴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승철은 100점 만 점에 95점 이상을 줄 수 있는 심사위원이다. 그는 이 프로그램이 주는 재미의 뼈대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프로그램 초반부의 걸러내는 재미와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커지는 북돋워주는 재미다. 엄정화는 심사위원으로서는 90점 이하대지만 프로그램이 지나치게 경쟁적으로 흐르지 않게 균형을 잡아준다는 점에서는 90점 정도를 줄 수 있는 심사위원이다. 한편 윤종신은 이승철이 만든 뼈대 위에서 확실히 재미의 살을 붙여준다는 측면에서 90점 이상의 심사위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점수란 임의적인 것이지만.

TV가 버린 가요, 라디오로 회귀하나

침체된 가요계에도 봄은 오는가. 최근 라디오를 통해 또 라이브 무대를 통해 그동안 실종되었던 우리네 가요들이 조금씩 귓가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것은 마치 봄날 눈 녹듯이 서서히 그러나 확실한 변화라고 밖에 할 수 없는 가요계 전반의 움직임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것은 바로 ‘보는 음악’에서 ‘듣는 음악’으로의 회귀이다.

눈감고 음미하게 만드는 관록의 중견가수들
그 변화의 중심에 서 있는 이들은 90년대 가요의 호황을 이끌고는 한동안 긴 동면을 하고 있던 중견가수들. 이승환, 현진영, 이승철, 신해철, 신승훈, 김현철, 김동률, 김건모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모두 최근 십대 중심의 댄스음악시장으로 침체된 분위기에, 일제히 신보를 들고 나왔다. 그들의 면면을 하나하나 열거할 수는 없지만 한 마디로 압축해 말한다면 “역시 관록! 아직도 쟁쟁하다”는 것이다. 그 노래들은 과거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눈을 감고 음미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그들이 동시에 비슷한 행보를 보이는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숨어있다. 가장 큰 이유는 과거 90년대 가요계의 호황을 만들었던 7080이라는 구매력을 갖춘 가요소비층이 존재한다는 것. 그동안 몇몇 기획사들이 독점하다시피 한 가요시장이 다양성보다는 10대 중심의 획일성을 보여왔고 이로써 그간의 가요소비층들은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런 지점에서 중견가수들의 복귀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그간 가창력과 음악성으로 승부해온 가수들의 든든한 뒷심을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섹시컨셉을 벗어나려는 가수들
‘10대 중심의 가요’라는 상품기획에는 반드시 댄스뮤직이라는 장르와 TV라는 매체의 결합이 포함되어 있다. 즉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 팔짱끼고 앉아 듣는 음악보다는 좀더 ‘참여하고 행동하는 음악’으로서 댄스뮤직은 10대의 전유물이 되었고, 그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는 TV는 ‘보는 음악’에 폭발적인 엔진을 장착시켰다. 가수들은 점점 더 현란한 댄스와 파격적인 의상으로 무대에 올랐다. 이른바 섹시컨셉가수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이들은 처음 몇 번 눈길을 끌면서 눈을 즐겁게 해줬는지 모르겠지만 귀는 그다지 즐겁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최근 이들 섹시컨셉가수들은 발라드라는 장르를 선보이거나(이효리), 섹시컨셉을 벗으려 하거나(서인영), 가창력과 도전적인 여성상으로의 변신을 꾀하고(아이비) 있다.

비트보다 멜로디를 택한 힙합
그나마 힙합이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해줬지만 여기에는 하나의 과제가 존재한다. 그 하나는 힙합이라는 장르가, 마치 이전 가요계에서 정통 록이 처한 위치에 서 있다는 것. 너무 파격적이면 대중성이 따르지 않고 적절한 타협(?)은 자칫 정체성의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파격적이라는 것은 힙합이나 정통 록 자체가 갖는 특성(이를테면 저항정신 같은)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타협이라 함은 서구장르를 우리 것화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변화를 지칭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통 힙합의 인기는 대중성보다는 매니아적인 특성이 강하게 되었다. 몇몇 대중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바비 킴이나 윤미래 같은 아티스트는 그저 힙합이라 부르기보다는 ‘바비 킴적인’, ‘윤미래적인’이란 수식어가 더 잘 어울린다. 그들의 성공은 힙합의 성공이라기보다는, 힙합이란 장르 속에서 살아온 그들이 우리 가요문화와 절묘한 결합을 이뤄냈다는 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만들어내 성공한 힙합(?)들의 특징 역시, 퍼포먼스적인 랩보다 멜로디성이 강조된 ‘듣는 음악’이라는 점에서 최근의 가요경향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라디오, 비디오스타 죽일까
이러한 ‘보는 음악’에서 ‘듣는 음악’으로의 회귀에는 재미있는 현상이 있다. 그것은 TV와 라디오 사이에서 가요가 점차 라디오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점이다. 가요순위 프로그램들의 TV로부터의 퇴출은 사실상 이 ‘보는 음악’이 자초한 결과가 크다. ‘TV 가요 프로그램 = 10대 프로그램’이라는 인식이 박히게 되면서 요란한 의상에 현란한 몸 동작이 난무하는 가요 프로그램의 시청률은 점점 떨어진 것. 게다가 자정에나 편성되는 라이브뮤직 프로그램들은 그저 명맥만 유지할 뿐, 과거의 영광을 가져다주지는 못했다.

이제 TV와 가요가 동거하던 시대는 끝나고 있는 것 같다. 대신 그 자리를 차고 들어오는 것은 라디오다. 이것은 TV가 가요를 버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라디오라는 특성이 지금의 ‘듣는 음악’으로의 회귀현상과 잘 맞아떨어지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나 쉽게 들을 수 있고, 듣는 것만으로도 만족감을 주는 공개방송이란 장점을 가진 라디오는 기획과 상품화로 치달으면서 가요계가 처한 현실을 본 모습으로 돌리는 기능을 해준다. 여기에 컴퓨터와 라디오가 만나자 그 폭발력이 더해진다. 컴퓨터라는 일상도구에 자연스럽게 음악이 붙게된 것이다.

비디오가 라디오스타를 죽였다(Video killed the Radio star)고 하지만, 이제는 라디오가 비디오스타를 죽이는(Radio killed the Video star) 시대가 아닐까. 역시 노래는 귀로 듣는 것이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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