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면 뭐하니?’, 텅 빈 객석 콘서트를 가득 채운 건

 

텅 빈 객석 앞에 서는 아티스트들의 마음은 어떨까. 아마도 착잡함을 넘어 참담함 기분까지 들을 수 있을 게다. 하지만 MBC 예능 <놀면 뭐하니?>가 마련한 방구석 콘서트의 텅 빈 관객은 그런 쓸쓸함이 보이지 않았다. 그 빈자리를 이 프로그램을 기획한 제작진들과 관객을 만나고 싶어도 코로나19로 만날 수 없는 아티스트들의 진심이 꽉 채워줬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인해 공연계는 모든 게 정지되어버린 상태다. 그래서 봄날의 공연을 준비해오던 아티스트들은 무산된 콘서트 앞에 허탈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 허탈함을 누구보다 잘 들여다본 게 바로 <놀면 뭐하니>다. 이 프로그램은 콘서트가 무산되어 설 무대가 사라진 아티스트와, 그런 무대를 고대했던 팬들을 이어주겠다는 취지에서 기획되었다.

 

관객 없는 공연을 방구석에서 관람하게 해주겠다면 사실 스튜디오에서 혹은 녹음실에서 촬영해도 큰 문제는 없었을 기획이었다. 하지만 굳이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이 콘서트를 진행한 데서 이 기획의 진심이 느껴졌다. 그건 설 수 없게 된 무대에 대한 아티스트들의 마음을 배려한 것이고, 제목은 ‘방구석 콘서트’지만 더 웅장한 무대를 선사하겠다는 다짐과 같은 것이니 말이다.

 

유산슬의 응원봉 ‘짬봉’을 일일이 3천여 개의 빈 객석 하나하나에 세워 둔 데서도 그 마음이 느껴졌다. 관객의 환호를 그 응원봉의 불빛을 통해서나마 전하겠다는 의도다. 그리고 이 콘서트를 진행하는 유재석, 유희열, 이적, 김광민이 아티스트가 무대에 올라 공연할 때 보여준 리액션들도 콘서트를 더욱 흥이 돋게 만들었다.

 

이런 제작진의 마음이 느껴져서일까. 텅 빈 객석을 뒤로 하고 선 아티스트들의 무대 역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첫 무대에 오른 장범준은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 향이 느껴진 거야’와 ‘벚꽃엔딩’을 불러 코로나19로 멈춰서 버린 봄을 느끼게 해줬다. 이 노래를 들으니 봄이 왔다는 게 느껴진다는 유희열의 말처럼.

 

뮤지컬 맘마미아팀은 유재석의 첫 뮤지컬 도전(?)과 함께 신영숙이 ‘The winner takes it all’을 불렀고 홍지민, 박준면과 환상적인 앙상블까지 총동원되어 ‘Dancing queen’, ‘Waterloo’ 같은 아바의 명곡들을 들려줬다. 최근 온라인에 ‘아무노래’ 챌린지 열풍을 일으켰던 지코는 이 노래를 댄스에 맞춰 원 테이크로 찍어내는 놀라운 무대를 선보였다. 마치 한 편의 완벽한 뮤직비디오를 보는 듯한 완성도 높은 무대였다.

 

그리고 드디어 ‘공연의 신’ 이승환이 무대에 올랐다. 텅 빈 객선이지만 이승환은 영화 <엑시트>의 삽입곡이었던 ‘슈퍼히어로’를 오케스트라 연주가 더해진 웅장한 무대로 선보이며 세종문화회관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이건 끝이 아니었다. 다음 주 예고에는 이승환의 무대와 힙합 레이블 AOMG, 혁오, 잔나비, 선우정아와 새소년, 이정은이 함께 하는 뮤지컬 <빨래>팀, 소리꾼 이자람 그리고 유산슬과 송가인의 무대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놀면 뭐하니?>의 방구석 콘서트는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캠페인으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역발상이 돋보인 기획이었다. 방구석에 관람하는 콘서트지만, 공연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펼쳐짐으로써 그 의미는 더해졌다. 그것은 마치 가뭄에 기우제를 올리듯 코로나19로 오지 않는 공연의 봄을 재촉하는 무대가 아닐 수 없었다. 그 진심은 아마도 머지않아 텅 빈 객석 가득 열광할 관객들을 부르는 단비로 채워지지 않을까 싶다.(사진:MBC)

‘더 마스터’, 음악장르는 달라도 저마다 감동을 준다는 건

클래식과 국악, 재즈, 뮤지컬, 대중가요, 밴드음악. 어찌 보면 우리는 이런 서로 다른 장르의 음악들과 그 음악들이 서는 무대가 저마다 다르다고 생각해왔다. 실제로 클래식 공연을 보러가면 느껴지는 건 숨조차 크게 내쉬지 못하는 진중함 같은 것이었고, 국악 공연하면 먼저 떠오르는 건 마당 같은 널찍한 공간에 둘러 앉아 그 절창의 목소리에 빠져드는 관객의 모습이었다. 또 재즈라면 어딘가 바 한 구석에 앉아 있어야 될 것 같은 기분이 들고, 뮤지컬이라면 감동적인 공연무대의 한 장면을 떠올린다. 이런 다른 느낌은 대중가요나 밴드음악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tvN <더 마스터-음악의 공존>은 이렇게 전혀 다른 무대를 떠올리는 음악 장르들이 한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게 가능하고, 또 그렇게 다른 장르들이라고 해도 똑같은 관객들이 저마다의 감동을 받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음악의 공존’이라는 부제는 그저 그럴 듯한 수사가 아니라 이 프로그램이 도전적으로 시도하는 음악의 새로운 가치지향을 드러내준다.

매회 하나의 주제를 갖고 6명의 각 장르 마스터들이 자신들이 준비한 무대를 보여주는 <더 마스터>는 첫 회 첫 무대부터 놀라운 감동을 선사한 바 있다. 클래식의 마스터 임선혜가 들려주는 ‘울게 하소서’는 이미 일반 대중들도 잘 알고 있는 곡이지만 자유자재로 구사되는 고음과 특히 한 음 한 음 낼 때마다 저마다의 색깔이 다르게 느껴지는 음색을 통해 클래식의 묘미가 무엇인가를 제대로 보여줬다. 그리고 임선혜는 ‘사랑’을 주제로 한 2회에서 패티김의 ‘이별’을 담백하게 불러 클래식도 충분히 친숙한 장르라는 걸 확인시켜줬다. 

국악 마스터인 장문희는 2회에서 ‘하늘이여’라는 곡을 통해 아이를 잃은 엄마의 마음을 절절하게 표현해 관객들을 눈물짓게 만들었다. 국악 특유의 한이 서린 그 목소리가 가진 힘이 제대로 느껴지는 무대였다. 최백호는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를 불러 특유의 쓸쓸한 목소리에 관객의 귀를 집중시켰다. 대중가요가 갖는 대중적인 정서를 최백호다운 무대로 보여줬던 것.

<더 마스터> 2회에서 그랜드 마스터가 된 최정원은 에디뜨 피아프의 ‘사랑의 찬가’를 한 편의 뮤지컬을 보는 것처럼 소화해냈다. 실제 사랑했던 연인의 갑작스런 죽음에 대한 애도를 담은 이 곡을 대사까지 담아 &#47583; 연기하듯 해석해낸 것. 뮤지컬이 가진 장르적 매력을 가장 잘 보여준 무대였다. 

밴드 마스터인 이승환이 부른 자신의 곡 ‘내게만 일어나는 일’은 발라드지만 록 코러스와 하모니를 만들어 웅장하고 스펙터클한 무대를 선사했고, 재즈 마스터 윤희정의 ‘서울의 달’은 폭풍 성량을 가진 그 목소리에 재즈 특유의 다양한 변주를 보여줌으로써 재즈가 가진 자유로움을 잘 표현해냈다. 

매회 관객들의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이를 선정해 그랜드마스터를 뽑지만 그건 그래서 전혀 순위적인 의미를 갖고 있지는 않다. 다만 다양한 장르들의 저마다 다른 색깔들 중 그 날의 무대에서 인상 깊었던 한 무대를 선정하는 것 뿐. 무엇보다 이 다양한 장르들이 한 무대에서 공연되는 것 자체가 자연스럽게 다가온다는 점은 <더 마스터>가 이미 성취한 음악 다양성의 가치를 잘 드러내준다. 흔히 음악하면 저마다 떠올리는 한두 가지의 장르들. 그 편견을 깨는 것은 물론이고 <더 마스터>는 저마다의 장르가 얼마나 색다른 음악의 매력을 드러내주는가를 감동적인 무대를 통해 설득시키고 있다.

'팬텀2', 치밀한 전략가 조민규를 따라하기 시작했다는 건

이보다 노래를 잘할 수는 없다. 매회 귀호강 무대를 선사하는 JTBC 오디션 프로그램 <팬텀싱어2>는 성악가, 뮤지컬배우 등이 참여하는 오디션인 만큼 그 기량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특히 이번 시즌2는 시즌1의 성공에 힘입어 국내외 유명한 성악가와 뮤지컬배우들이 참여했다. 

'팬텀싱어2(사진출처:JTBC)'

하지만 각자 기량이 뛰어나다는 점은 적어도 <팬텀싱어>라는 4중창 하모니를 지향하는 오디션에서는 오히려 장애요소가 될 가능성도 크다. 누구 한 사람의 목소리가 너무 튀어나오면 자칫 그 하모니가 깨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점점 더 중요해진 것이 바로 전략이다. 그냥 목소리를 맞추는 수준이 아니라 저마다 가진 목소리의 장단점과 기존 불렀던 노래들의 특색 등을 분석해서 새롭게 꾸미는 무대가 식상하지 않고 새로운 충격을 줄 수 있도록 구성해내는 것. 

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준 참가자가 바로 조민규다. 그는 ‘전략가’라는 닉네임에 걸맞게 계속 새로운 무대의 실험을 보여줬다. 이번 무대에서 강형호, 안현준, 한태인과 선보인 유리 스믹스의 ‘Sweet Dreams’ 역시 파격적인 무대였다. 윤종신 프로듀서의 말대로 모두가 하모니를 통해 아름다운 소리를 내려고 했다면 이 무대는 강렬한 한 편의 퍼포먼스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줬다. 

안현준과 한태인의 저음이 주는 묵직함에 강형호와 조민규가 선사하는 고음의 날카로움은 그 대비효과만으로도 듣는 이들의 소름을 돋게 만들었다. 곡을 전략적으로 구성하면서 생겨난 반전효과가 매력적인 무대가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동작 하나하나까지 맞춰서 안무적 배려까지 한 대목은 조민규가 얼마나 치밀하게 무대를 계산하는 프로듀서적인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줬다. 

흥미로운 건 이런 전략적 선택을 이제 다른 팀들도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세계적인 성악가인 김주택이 들어가 염정제, 김동현, 시메와 함께 꾸려진 팀이 부른 이승환의 ‘꽃’은 그 점을 잘 보여준 무대였다. 이태리 성악곡만 줄곧 불렀던 김주택과 김동현, 그리고 팝송만 불렀던 시메. 그래서 그들은 우리 감성을 적실 수 있는 가요 ‘꽃’을 선택했다.

그리고 이 노래를 보다 효과적으로 들려주기 위해 창법 또한 성악적인 면을 많이 누그러뜨렸다. 김주택은 그간 해왔던 다소 부담스럽게 느껴졌던 성악 발성을 내려놓고 마치 편하게 가요를 부르는 것처럼 이 노래를 소화해 새삼 크로스오버의 맛을 살려냈고, 그간 우리말 가사를 선보이지 않았던 시메는 놀랍게도 괜찮은 발성으로 노래를 불러내는 반전을 보여줬다. 

물론 이번 오디션에서 1위를 차지한 이충주, 조형균, 정필립, 고우림의 ‘La Vita’라는 곡 역시 잘 부르려하기보다는 즐기려는 자세를 보여줘 더 감동적인 무대가 될 수 있었다. 특히 정필립 특유의 음색이 주는 매력은 이 무대에서도 단연 두드려졌다. 조형균과 이충주의 뮤지컬배우 다운 감성적 표현도 빼놓을 수 없지만. 

노래만 잘 한다고 해서 우승할 수 없다. 아마도 <팬텀싱어2>가 가진 그 어떤 오디션과는 다른 특징이 여기서 나오는 것일 게다. 혼자 잘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잘 해야 하고 그러기위해서는 최적의 곡 선정과 구성 그리고 그 구성에 대한 전략이 필요해졌다. 이제 시청자들은 이 귀호강 오디션에서 바로 그 전략들을 보는 또 다른 재미를 기대하게 됐다.

현실 앞에 음악은 어떠해야 할까

 

길을 잃었다는 것은 새로운 길을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부터 새로운 길찾기 1일입니다. 국민이 버려진 것이 아닌 나쁜 대통령을 버리는 것입니다. 해고한 것입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승환과 이규호가 공동프로듀싱하고 이승환, 이효리, 전인권이 함께 부른 길가에 버려지다라는 곡에 대해 SNS에 이런 글을 남겼다. 이 곡이 건드리고 있는 현 시국에 대한 메시지를 공감하고 있다는 표현이다.

 

'길가에 버려지다(사진출처:드림팩토리)'

길가에 버려지다는 현 시국에 의해 상처받은 국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어지고 무료 배포된 국민 위로곡’. 노래가 발표되기 전 현 시국에 대한 국민적 분노를 떠올리며 어딘지 행진곡같은 풍의 곡이 아닐까 생각했던 분들이라면 이 노래가 가진 잔잔함에 놀랐을 지도 모른다. 또한 그 잔잔함에 얹어진 아름다운 가사에도.

 

내 꿈에 날개가 돋아서 진실의 끝에 꽃이 필 수 있길.’ 같은 가사나 감정이 절정에 오른 지점에 들어가 있는 난 길을 잃고 다시 길을 찾고 없는 길을 뚫다 길가에 버려지다라는 가사는 지극히 서정적이다. 물론 이런 서정성에 현 시국의 문제를 담는 세상은 거꾸로 돌아가려 하고 고장난 시계는 눈치로 돌아가려 하네같은 가사나 내 의지에 날개가 돋아서 정의의 비상구라도 찾을 수 있길같은 가사는 이 노래가 가진 메시지를 명확히 한다.

 

침착한 분노’. 지난 12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 켜진 100만 개의 촛불을 누군가는 그렇게 불렀다. 그 많은 인파들이 모여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질서정연한 모습을 보였고, 비폭력을 외치며 마치 문화 행사의 하나같은 새로운 집회 문화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길가에 버려지다라는 노래 역시 이 침착한 분노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곡이다. 잔잔하지만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어떤 힘이 그 노래에는 담겨져 있다.

 

그 실체는 굉장한 멜로디나 우리의 마음을 격동시키는 리듬 같은 것이 아니라 진정성이다. 노래 역시 마치 이야기를 건네는 것처럼 담담하기 이를 데 없다. 하지만 그 담담한 목소리의 노래를 이승환이나 이효리 같은 자신의 생각하는 삶을 당당하게 행동으로 살아가는 가수들이 함께 부른다는 건 듣는 이들에게는 더 강렬한 진정성으로 다가온다.

 

사실 밥 딜런 같은 가수가 60년대 반전 운동의 메시지를 담아 부른 ‘Blowing in the wind’‘Times They are a-Changin’ 같은 곡은 굉장히 멜로디가 강조되거나 했던 그런 곡은 아니다. 하지만 이 곡이 시대를 바꿔놓았던 건 거기 담겨진 메시지가 당대의 현실을 음악적으로 승화해내면서 그 깊은 진정성으로 대중들의 마음을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길가에 버려지다는 그래서 우리에게 지금 현 시국이 나가야할 길을 묻는 동시에 다시금 음악의 길을 묻고 있다. 물론 음악이 가진 상업성을 우리가 부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음악은 그저 돈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위로해주는 어떤 것이라는 걸 새삼 되새겨볼 필요는 있지 않을까. 또한 그 마음과 위로란 현실과 무관할 수 없는 것일 게다.

 

현실의 부조리를 비판하거나 그래서 받은 상처들을 위로하는 그런 노래들이 더 많이 등장하길 기대한다. 당장의 돈벌이로서의 가수가 아니라 자신의 길을 찾고 없는 길을 뚫고 나가 그 삶 자체가 노래가 되는 그런 가수들이 더 많아지길 기대한다. 혹여나 우리도 모르게 길가에 버려진 노래와 가수들이 또 다른 꽃으로 피어나 번져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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