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얄로더’, 밑바닥 청춘들이 진창을 벗어나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것들

로얄로더

“굳이 따지자면 친구보단 파트너가 맞겠다. 나 평생 마이너리그에서 살다 늙어 죽을 생각 없어. 그래서 널 좀 이용하려고. 메이저리그로 오르는 동아줄로.” 디즈니+ 오리지널 드라마 <로얄로더>의 한태오(이재욱)는 강인하(이준영)에게 대놓고 속을 드러낸다. 친구 하자고 했지만 사실은 그를 이용하겠다고. 

 

그는 살인자의 아들이다. 그 살인자는 다름 아닌 아버지고. 물론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살인죄로 감옥에 간 아버지는 그 안에서도 여전히 한태오와 그의 엄마에게서 떨어지지 않는 위협이자 꼬리표다. 다른 깡패들을 시켜 복수하겠다 으름장을 놓는 그런 인물. 살인자의 자식이라는 주홍글씨는 한태오가 이 진창으로부터 어떤 방법을 써서든 벗어나고픈 욕망에 간절한 이유다. 

 

그런데 강인하 역시 진창에 빠져 있다. 그건 재벌가 혼외자라는 위치 때문이다. 혼외자라는 이유로 그 집안 가족들은 물론이고 아버지인 강오그룹 강중모 회장(최진호)까지 그를 가족의 일원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강중모 회장의 첫째 아들이자 한량인 강인주(한상진)가 매일밤 파티를 벌일 때, 강인하는 홀로 방에서 터지는 폭죽을 텅빈 눈으로 바라볼 뿐이다. 가족이든 재벌가든 그건 그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들이니.

 

그걸 알고 있는 한태오가 강인하에게 손을 내민다. 파트너가 되자고 한다. 자신의 동아줄이 되어주면 강인하가 원하는 건 뭐든 해주겠다고 한다.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어 보이는 한태오의 그런 말을 강인하는 비웃지만, 한태오는 말한다. 그 누구도 갖지 못한 걸 자신이 갖고 있다고. 그건 바로 ‘간절함’이다. 

 

<로얄로더>는 흙수저, 아니 그보다 더 못한 밑바닥에 떨어진 청춘이 재벌가 금수저를 동아줄 삼아 신분상승하려는 욕망을 그린 드라마다. 이런 성공을 향해 질주하는 절실한 청춘들의 서사는 <이태원 클라쓰> 같은 작품에서도 등장한 바 있지만, <로얄로더>는 좀더 게임적인 느낌이 더해진 드라마라는 특징이 있다. 자기 인생을 건 이 신분상승 게임에 한태오는 모든 걸 걸고 강인하를 그 재벌가 일원이 되게 만들려 하고 결국 그 왕좌에 앉히려고 한다. 그래서 이를 위한 치밀한 전략을 짜고 또 행동하는데도 주저함이 없다. 

 

‘강오에게 전하는 미래 전략’이라는 리포트를 일부러 채동욱 교수(고창석)의 눈에 띠게 만든 것도 다 한태오의 계획이다. 그가 강오그룹 막내이자 실세로 떠오르는 강성주(이지훈)와 관계가 있다는 걸 알고는 그 리포트가 강성주의 손에 들어가게 하려한 것. 그 리포트는 향후 강오의 미래가 될 ‘상생협력센터’의 밑그림으로 강성주가 그걸 만들어놓으면 훗날 강오그룹에 입성한 강인하가 그걸 집어삼키게 하겠다는 게 한태오의 큰 그림이다.

 

이처럼 한태오와 강인하가 뛰어든 이 진창을 벗어나 신분을 바꿔보려는 그 일련의 과정들은 인생 전체를 두고 그려나가는 그림이자 계획이라는 점에서 마치 ‘인생리셋’의 욕망을 건드리는 면이 있다. 끊어진 성장의 사다리 밑에서 ‘이생망’을 외치는 청춘들이라면 이들의 계획에 판타지로라도 동승하고픈 욕망이 느껴지지 않을까. 

 

그런데 친구가 아니라 파트너(인생 비즈니스쯤이 될 게다)로 시작한 관계라도 그것이 중첩되면서 마음이 오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파트너처럼 계획한대로 하나하나 실천해나가는 두 사람이지만 둘 사이에는 어느새 친구 사이의 우정 같은 감정들이 더해진다. 하지만 여기에 또 다른 변수로서 나혜원(홍수주)이 이들 사이에 들어온다. 

 

나혜원은 빚쟁이의 딸로, 도박장 돈을 갖고 도망간 엄마 때문에 조폭들에게 시달린다. 그녀 역시 이 지긋지긋한 진창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래서 건너편 옥탑방에 살고 있는 한태오를 알게 되고 그를 통해 강인하가 자신에게 감정을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그녀는 갈등하게 된다. 한태오에게 마음이 있지만 그 진창을 벗어나기 위해 강인하라는 동아줄을 잡고 싶은 욕망 또한 간절하다. 

 

결국 진창을 벗어나 신분상승을 하고픈 한태오나 나혜원은 그걸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의 감정을 속여야 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물론 이건 강인하에게도 대가를 요구한다. 그 역시 한태오와 나혜원이 서로를 마음에 두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동아줄이라는 사실을 이용해서라도 한태오나 나예원을 모두 우정과 사랑으로 갖고 싶지만, 그건 이루기 어려운 일이다. 

 

<로얄로더>가 흥미로운 건 그래서 두 가지다. 하나는 이 진창에 빠진 청춘들의 신분상승을 향한 질주를 마치 ‘인생리셋’ 같은 느낌으로 하나하나 그려가는 걸 따라가는 재미가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 욕망들이 이들에게 가져다 주는 것만큼 이들에게 요구하는 대가가 만만찮다는 걸 통해 자본주의 사회가 가진 부조리를 드러내는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이제 막 시작했지만 이 청춘들의 무한질주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흔히 꿈꾸는 ‘인생리셋’의 판타지의 짜릿함과 더불어 또한 그만큼 소중한 걸 잃어버리는 아이러니를 만나게 되지 않을까. (사진:디즈니+)

‘이재, 곧 죽습니다’, 재난부터 학원물, 조폭누아르, 멜로까지 없는 게 없네

이재, 곧 죽습니다

이 작품 신박하다. 시작은 끝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취준생 이재(서인국)의 아픔을 다루는 사회극처럼 보이더니, 금세 저 세상이 등장하고 다짜고짜 나타난 죽음(박소담)이 그에게 12번 죽을 기회(혹은 살 기회)를 제공하고, 그래서 다른 이의 삶으로 회귀해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들이 펼쳐진다. 추락하는 비행기에서 살아남으려 안간힘을 쓰는 삶 속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끝없는 학교폭력 앞에 죽고 싶어하는 학생의 몸에 들어가기도 하며, 보스의 돈과 여자를 훔쳐 추격을 당하는 조폭에, 돈 때문에 뺑소니범 대신 감옥에 들어간 격투기의 꿈을 가진 사내의 몸에 들어가기도 한다.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이재, 곧 죽습니다>는 이처럼 회귀물을 죽음과 환생이라는 틀로 변주했다. 사는 게 더 무섭고, 죽는 건 무섭지 않다며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취준생 이재에게 죽음이 얼마나 무서운 건가를 새삼 알려주겠다며 나타난 죽음이라는 존재가 그를 죽을 위기에 처한 이들의 몸으로 12번 환생시킨다는 설정이다. 그러니 이 작품은 적어도 12가지의 ‘위급한 상황’이 펼쳐지게 되는 셈이다. 그 위급한 상황은 하나하나가 새로운 장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다채롭다. 

 

추락하는 비행기의 긴박한 상황이 펼쳐지는 첫 번째 환생이 ‘재난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면, 낙하산도 없이 하늘에서 떨어져 목표지점에 도달하면 거액의 돈을 벌 수 있는 상황이 전개되는 두 번째 환생은 ‘모험극’과 ‘코미디’가 엮였다. 지독한 학교폭력을 당해 죽을 결심까지 했던 학생으로 환생해 보기좋게 자신을 괴롭히던 가해자에게 시원한 한 방을 먹이는 세 번째 환생이 ‘학원 액션물’의 묘미를 살렸다면, 보스의 돈과 여자를 훔쳐 추격당하는 네 번째 환생은 숨돌릴 틈 없이 전개되는 오토바이 추격 액션이 돋보이는 ‘조폭 누아르’다. 

 

이처럼 매번 새로운 삶 속으로 들어와 죽음의 위기에 처한 그 삶을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서사는 다채로운 장르들을 한 작품으로 즐길 수 있게 해준다. 이재가 환생한 몸은 저마다 다르다는 점에서 연기자들도 계속 변주된다. 서인국이 이재라는 인물로 그 중심에서 연기를 펼친다면, 여기에 최시원, 성훈, 김강훈, 장승조, 이재욱, 이도현 등등 다양한 배우들이 이재가 환생한 몸 역할을 연기한다. 

 

여러 배우들, 그것도 호화 캐스팅이 총동원되었다는 점은 여러 장르를 가진 독자적인 여러 작품들을 보는 맛을 제공한다. 하지만 결국 지옥 앞에 선 이재라는 인물로 수렴되는 서사구조는 이러한 다채로운 재미를 흩어지지 않고 하나의 일관된 서사로 묶어주는 힘을 만들어준다. 게다가 각각의 환생한 인물들이 저마다 다른 삶을 살아가는 그 삶 속에 이전 삶에 이미 인연을 맺은 인물이 들어오기도 하는 점은 흥미롭다. 

 

예를 들어 세 번째 환생에서 등장했던 학교폭력 가해자는 다섯 번째 환생에 또 등장하는데, 감방에서 싸움짱인 이재 앞에 그 가해자는 오히려 거꾸로 당하는 입장이 된다. 회귀물이 갖는 사이다 카타르시스 복수 서사가 극대화되는 설정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이재, 곧 죽습니다>는 죽음과 환생을 12번 반복하는 회귀물의 틀을 가져와 그 다양한 변주의 재미를 극대화하면서,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어째서 삶이 더 중요한가를 이야기한다. 

 

다섯 번째 환생에서 태상(이재욱)의 몸으로 환생한 이재에게 감방동료가 감옥에 들어온 걸 후회하냐고 묻는 질문에 그가 하는 답변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처음에는 엄청 억을했는데 스스로 인생 망쳐버리고 죽음이란 감옥에 갇히게 된 걸 후회해. 너무 늦게 알았는데.. 지옥을 보고 나니까 살아있는 거 자체가 기회였더라.“ 

 

결국 <이재, 곧 죽습니다>는 절망적인 상황에 죽음까지 생각하는 현실 앞에 진짜 지옥이 무엇인가를 12번의 죽음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건 허망한 죽음도 있지만 못내 안타까운 죽음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는 낫고, 사는 것 자체가 하나의 기회라는 걸 드라마는 에둘러 말하고 있다. 눈이 핑핑 돌아가는 다채로운 장르의 화려함 속에서도 밑그림에 깔린 단호한 메시지가 느껴지는 이유다. (사진:티빙)

‘환혼’이 훌쩍 뛰어넘은 무협, 멜로 그 이상의 성취

환혼

“넘치는 힘이란 건 네가 기쁜 만큼만 쓰고 말 수는 없어. 비를 바라면 홍수를 피할 수 없고 바람을 원하면 태풍을 맞아야 하듯이 감당해봐.” tvN 토일드라마 <환혼>에서 무덕이(정소민)는 얼음돌 한 가운데서 환각처럼 어린 시절의 자신과 대화를 나눈다. 그 말은 지금까지 술력을 쌓아 더 강한 자가 되고픈 이 드라마가 그려내던 그 욕망들을 무화시키는 말이기도 하다. 

 

무덕이는 “이 힘을 두고도 내 맘대로 쓸 수 없다는 것이냐”고 묻는다. 그러자 어린 시절의 무덕이가 말한다. “당신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있긴 합니다. 쓰지 않는 겁니다. 그 힘을 쓰지 않는 선택은 당신 뜻대로 할 수 있어요.” 아이러니한 이야기다. 얼음돌이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인간이 제 뜻대로 할 수 있는 건 그 힘을 쓰지 않는 선택뿐이라니. 이건 도대체 무슨 이야기일까. 

 

여기서 <환혼>의 이야기는 ‘자연의 힘’과 ‘인간의 힘’에 대한 다소 철학적인 이야기를 그려낸다. 인간이 수련을 통해 수기를 모으고 그것으로 술력을 키워 자기 것이라 착각하지만, 그건 사실은 수기라는 자연의 힘(하늘의 기운)을 활용하는 것일 뿐,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건 아니라는 이야기다. 자연의 힘을 있는 그대로 놔두고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걸 소유해 그 힘으로 권력을 잡으려는 욕망이 만들어내는 파국. <환혼>이 그리려한 세계가 그저 술력 키우는 무협에 적당히 달달한 멜로를 섞어 낸 그런 세계가 아니라는 걸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얼음돌은 그래서 이러한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 어리석은 인간들이 드러내는 욕망을 끄집어내는 일종의 리트머스지 같은 장치다. 얼음돌을 통해 환혼술을 소환해 제 몸을 장강(주상욱)과 바꿔 그의 아내를 탐한 선왕의 욕망이 그렇고, 뱃속에서 13개월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은 아이를 구해내려 금기를 어겨가며 얼음돌을 꺼내와 장강을 통해 아이를 살려낸 진요원의 원장 진호경(박은혜)이 그렇다. 얼음돌의 힘을 통해 권력을 쥐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천부관 부관주 진무(조재윤)도, 그 얼음돌로 환혼해 왕비 행세를 하는 당골네도 모두 그 비뚤어진 욕망 앞에 무너진 어리석은 선택을 한 자들이다. 

 

만장회에 모인 모든 이들이 얼음돌의 힘을 궁금해하고 그래서 그 욕망에 눈 멀어 무덕이를 죽이고 되살리는 시연을 하는 걸 막지 않는 것도 그런 어리석은 선택의 결과다. 결국 그 선택은 이들 앞에 거대한 자연의 환란으로 돌아온다. 정진각 주변을 거대해진 얼음돌의 힘이 결계를 만드는 것. 그래서 그 안에 갇힌 장욱, 무덕이는 물론이고 서율(황민현), 고원(신승호) 같은 청춘들이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과, 그 바깥에서 아이들의 운명은 깜빡 잊은 채 얼음돌의 힘에만 눈이 멀었던 만장회 어른들의 모습은 극명히 대비된다. 

 

이건 마치 자연의 힘(하늘의 기운)을 제 것으로 가지려는 어른들의 욕망이 후대를 살아가야 할 아이들(청춘들)에게 어떤 비극으로 돌아오는가를 그려내는 은유 같다. 과학의 힘을 과신해 환경을 훼손해가며 마구 에너지를 끌어온 그 대가가 현재 후대들 앞에 어떤 암울한 미래를 펼쳐놓고 있는가를 떠올려 보라. <환혼>이 무협의 세계를 통해 그려놓은 얼음돌이라는 하늘의 기운을 가진 힘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상징과 은유로 다가오는가 새삼 느껴질 게다. 

 

“인간의 기운인 수기도 내 몸 속에서 돌리지 못하면 내 것이 되지 못하는데 하늘의 기운을 돌려서 가질 수 있는 인간이 있겠어?” 하지만 장욱의 이 말처럼 <환혼>은 저 어른들과는 다른 선택을 하는 청춘들을 통해 희망을 담는다. 장욱은 그 하늘의 기운을 가질 수 없다면 다 내어주면 어떻겠냐고 되묻는다. “내 기운을 다 하늘의 기운에 내어준다면 내 기운이 다 하늘의 기운이 되는 거잖아.” 

 

술력을 쓰면 기력을 모두 빨아들이는 얼음돌의 결계 속에서 장욱은 탄수법을 써서 그 결계를 깨기 위해 자신의 기력을 다 내어주고 대신 물 한 방울을 만들려 한다. 그 물 한 방울이 결계를 깨고 수 천 수 만 개의 빗방울이 될 거라 믿는다. 그간 벼랑 끝에 제자를 세워 술력을 키우게 해온 사부 무덕은 장욱의 그런 선택을 반대한다. 하지만 결계를 깨지 않으면 다친 서율이 죽을 수도 있다며 던진 장욱의 한 마디는 무덕을 수긍하게 만든다. “무덕아 네가 포기한 건 지키기 위해서지? 나도 지키려는 거야. 그리고 유리도 그동안 널 지켜왔어.”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갖기 보다는 다 내어주는 것. 이 청춘들은 술력을 갖기 보다는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기 위한 선택을 한다. 이 부분에서 <환혼>의 멜로는 달달한 청춘들의 사랑 그 이상의 함의로 확장된다. 스승 무덕은 장욱 앞에서 힘을 되찾을 기회를 버리고, 제자 장욱은 소중한 이들을 지키기 위해 그간 어렵게 쌓아온 기력을 버린다. 그렇게 대호국에 나타난 거대한 환란은 이들의 희생에 의해 사라진다. 

 

“스승님, 제자 오늘로 파문하겠습니다. 그간 못난 제자를 벼랑 끝에 세워두고 떠밀며 여기까지 이끌어주셔 감사했습니다. 비록 스승께선 힘을 찾을 기회를 버리시고 제자 또한 그동안 쌓아온 기력을 버렸지만 그로인해 평생 곁에 둘 소중한 이를 얻었습니다. 쓰이고 버려지지 않고 지키고 간직하고자 하니 파문을 허락해주십시오.” 장욱이 무덕에게 파문을 요구하고 그러자 무덕은 이를 허락한다. 사제지간은 그것으로 끝이 난다. 

 

대신 장욱과 무덕의 연인 관계가 남는다. “아 그럼 이제 도련님한테 시집와라. 무덕아.” 술력 대신 사랑의 선택. 그건 사적 욕망 대신 공존을 선택한 것이란 점에서 그 의미가 깊어진다. 이 쿨내 진동하는 장욱과 무덕이 그려낸 <환혼>의 서사가 그저 가벼운 무협과 멜로 그 이상의 성취를 갖게 된 이유다. (사진:tvN)

‘환혼’의 멜로가 특별한 건 사제, 주종 케미를 가장해서다

환혼

“제가 무덕이를 많이 좋아합니다.” “지가 도련님을 진짜로 좋아해유.” tvN 토일드라마 <환혼>에서 장욱(이재욱)과 무덕이(정소민)는 그렇게 각각 송림의 총수 박진(유준상)에게 말한다. 둘 사이의 비밀이 무엇이냐고 각각 물어보며 만일 답변이 틀릴 시 무덕이를 죽이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박진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각자 갖고 있던 음양옥을 꺼내 보이며 그렇게 말하자 박진은 실소를 터트리며 그들을 풀어줄 수밖에 없었다. 

 

이 장면은 <환혼>이 장욱과 무덕이의 멜로를 그리는 특별한 방식이 들어있다. <환혼>은 두 사람의 마음을 확인하는 순간을 절묘한 위기 상황과 엮어 드러낸다. 환혼인을 추적하며 장욱과 무덕이의 비밀을 캐묻는 박진 앞에서 두 사람은 피해나갈 묘수로서 서로 사랑한다는 말을 털어 놓는다. 그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서처럼 보이지만, 단지 그것만은 아니다. 실제로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하지만 아닌 척 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죽도록 좋아한다는 말을 죽지 못해 자백”한 것처럼 꾸미지만, 실제로 무덕이 역시 장욱을 좋아하는 마음을 여러 차례 들킨 바 있어서다. 

 

무덕이 얼버무리며 자신의 속내를 숨기려 하자 장욱은 진지하게 속내를 꺼내놓는다. “스승님 죽어도 좋으면 버리지 않고 하던 거 계속 해도 됩니까? 제자가 죽을 결심을 할 땐 스승님도 함께 해야 된다고 했지? 난 죽어도 계속 할 거야. 그러니 우리 무덕이도 어렵게 자백한대로 계속해서 도련님을 죽도록 좋아해봐.” 그런데 그 말투가 존대와 하대를 넘나든다. 스승에게 하던 말투에서 하인에게 하는 말투로 넘어가는 것. 그건 사제 관계이기도 하고 주종 관계이기도 한 두 사람의 애매모호한 관계를 드러내는 것이면서, 그것이 그저 가장하는 것일 뿐이라는 걸 말해준다. 실상은 연인 관계라는 것. 

 

<환혼>에는 이처럼 장욱과 무덕이가 어떤 위기상황에 놓였을 때 그간 사제이자 주종을 가장했던 관계를 뚫고 드러나는 실제 연인 관계의 스토리가 자주 등장한다. 천부관에 갇혀 죽을 위기에 처한 무덕이가 어찌된 일인지 수기를 빼내려는 환관으로부터 거꾸로 수기를 흡수하는 모습을 보이고, 그러자 자신이 폭주한 줄 알고 다가오는 장욱을 무덕이가 막으려했을 때도 이런 멜로의 한 장면이 연출된다. “안돼. 만지지마 내가 폭주한 거면, 네가 나를 만지면 너는 수기를 빼앗겨 죽을 거야.” 하지만 그 말에도 불구하고 장욱은 무덕이를 꼭 껴안아준다. 그건 장욱의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면서 무덕이가 폭주한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해주는 대목이다. 

 

장욱이 송림의 정진각 술사로 들어가고, 자격이 없는 무덕이는 송림에 들어갈 수 없게 되자 이른바 ‘송림하인선발대회’에 나가겠다며 장욱에게 던졌던 고지문에 대한 에피소드도 이들의 애틋한 관계를 에둘러 드러낸다. 결국 무덕이가 대회에 나가 하인으로 선발되고 송림에 들어오게 됐을 때 장욱은 무덕이가 던졌던 그 고지문을 꺼내 보이며 거기 담긴 의미를 자신이 읽었다고 말한다. “내가 이 짓을 해서라도 너를 꼭 보러 가겠다. 너만 볼 수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다.”라는 것. 

 

그러자 무덕이는 애써 이를 부인하며 그 종이를 태워버린다. 하지만 장욱은 “이미 주고받은 게 태운다고 없어지겠냐”며 이렇게 말한다. “근데 스승님. 제자가 최근에 안 보이느 걸 읽는 걸 읽는 술법을 익혔습니다. 심서를 읽었다고 했잖아. 한번 보실래요? 보이지 않는 걸 읽을 땐 이렇게 집중해서 들여다 봐야 돼. 그리고 받을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거야. 무덕아.” 결국 장욱의 그 말에 무덕이는 속내를 들켜버린다. 그러자 장욱이 말한다. “읽혔다. 안 보인다고 없는 게 아냐. 그저 숨기고 있는 거지.”

 

안 보인다고 없는 게 아니다. 그저 숨기고 있는 것일 뿐. 아마도 <환혼>에서 장욱과 무덕이의 사랑이 이토록 애틋하게 느껴지는 건 바로 이 점 때문일 게다. 사제와 주종을 가장해 숨기고 있지만 특정한 상황 속에서 저도 모르게 불쑥 불쑥 나오는 마음들과, 거부하려 해도 어쩔 수 없는 마음들이 서로를 향해 가는 것. 마치 음양옥이 서로 반응하듯 불이 켜지고 부인하려 해도 어쩔 수 없이 서로를 향해 다가가게 되는 그 마음을 읽게 되는 것. <환혼>의 멜로는 그렇게 무심한 척 시청자들의 가슴을 툭툭 건드리고 있다.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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