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의 기술’로 전설의 협상가가 되어 돌아온 이제훈

협상의 기술

배우의 자질 중 목소리가 가진 지분은 얼마나 될까. 대부분 보여지는 게 직업인 배우인지라 비주얼이 가장 중요할 거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배우는 보여지는 것만으로는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 보는 이들을 그 역할에 몰입하게 만들어야 하고 그가 하는 말과 행동에 설득되게 해야 한다. 여기서 진짜 중요해지는 건 목소리다. 중저음의 차분하고 진중한 목소리가 주는 신뢰감은 똑같은 대사도 달리 들리게 만든다. 그런 점에서 이제훈은 바로 그 차분하고 진중한 목소리가 매력적인 배우가 아닐 수 없다. 그의 목소리를 듣다보면 뭐든 설득될 것 같은 신뢰감이 느껴진다. 

 

최근 드라마 ‘협상의 기술’은 그래서 이제훈이라는 배우가 가진 이 신뢰감이 제대로 힘을 발휘하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 M&A 전문가로서 전설의 협상가로 불리는 윤주노라는 인물이 그가 맡은 역할이다. 그는 위기에 처한 산인그룹을 회생시키기 위해 돌아온 M&A 팀장으로 ‘백사’라 불린다. 하얀 머리 때문에 붙은 이름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행동하기 전에 ‘백 번 생각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별명이다. 그는 과거 함께 일했던 오순영(김대명) 변호사와 탁월한 암산 능력을 가진 곽민정(안현호) 그리고 신입 인턴이지만 학창시절 주식 투자 동아리 회장까지 했을 정도로 나름의 능력을 갖춘 최진수(차강윤)로 팀을 꾸려 본격적인 M&A에 들어간다.

 

협상가의 첫 번째 덕목은 어떤 상황에서도 속내를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인지 윤주노는 거의 표정이 없고 말하는 톤도 거의 변화가 없다. 협상이 마무리되어 계약을 하는 당일에 갑자기 틀어진 계약 취소 상황에서도 그는 감정을 좀체 드러내지 않을 정도로 차분하다. 문제가 생기면 일단 그 문제의 원인을 들여다보고 곰곰이 그 해결책부터 차근차근 찾아나가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일견 망한 것 같은 협상에서도 그는 막판에 상황을 뒤집는 놀라운 결과들을 만들어낸다. 협상가의 두 번째 덕목은 냉철하면서도 담대한 대응이다. 제 아무리 아픈 제 살이라고 해도 결과를 도출해내기 위해서는 과감하게 도려내는 차분하고도 대담한 선택이 요구된다. 그는 산인그룹의 중심이 건설업이라는 걸 알면서도, 바로 그 건설을 먼저 M&A 하겠다고 선언한다. 파는 물건은 사는 이들도 그 가치를 인정해야 제값을 받을 수 있다는 걸 냉정하게 판단한 결과다. 그리고 이 윤주노가 보여주는 협상가의 세 번째 덕목은 비즈니스 그 이면에 사람을 본다는 점이다. 윤주노는 이커머스에 진출하기 위해 택배왕을 만든 차차게임즈라는 게임회사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이 자질을 발휘한다. 모두가 비즈니스에 집중할 때 그는 그 게임 개발자가 왜 그런 게임을 만들게 되었는가 하는 그 마음을 들여다봄으로써 끝끝내 그 회사를 인수하는 결과를 도출해낸다. 

 

이제훈은 이 윤주노라는 협상가의 캐릭터를 구축해내기 위해 이 세 가지 덕목을 드러내는 연기요소들을 보여준다. 어떤 상황에서도 바위처럼 흔들리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는 모습과, 모두가 반대하는 상황 속에서도 과감하게 나서서 그들을 하나하나 설득해가는 모습 그리고 차가운 모습 이면에 슬쩍 슬쩍 드러나는 따뜻한 인간미가 그것이다. 이런 요소들은 이제훈이 지금껏 해왔던 연기 필모를 들여다 보면 그 다양한 얼굴들 속에 이미 들어 있었던 것들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이를 테면 영화 ‘건축학 개론’의 그 순하고 순수한 청년의 미소나, 드라마 ‘시그널’에서의 절박한 모습, 영화 ‘박열’의 무정부주의자가 보여주는 자유로움, ‘아이캔스피크’의 공무원 역할로 보여준 반듯함, 그리고 드라마 ‘모범택시’의 장르화된 액션 히어로의 모습과 ‘무브 투 헤븐’의 따뜻한 인간애, 게다가 ‘수사반장 1958’에서의 활극 히어로 같은 다채로운 역할들 속의 얼굴들이 그것이다. 앳된 얼굴이지만 벌써 마흔의 나이에 연기경력만 20년에 육박하는 이 배우는 그간 참 다양한 역할들을 통해 성장해오면서 이제는 여러 면들을 자유자재로 꺼내 쓸 수 있는 위치에 올랐다. 

 

그런데 이런 다양한 면모들을 하나로 꿰어주는 데는 앞서 말했던 이제훈의 차분하고도 진중한 목소리가 중요한 몫을 했다. 물론 거기에는 매 역할을 분석하고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한 연습과 노력이 전제된 것이지만, 이제훈의 목소리는 그 노력들을 보다 효과적으로 만드는 힘을 발휘했다. 예를 들어 ‘시그널’처럼 무전기를 통해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는 판타지 설정이 들어있는데, 이제훈의 진실된 느낌의 목소리는 어찌 보면 믿기 힘들어지는 이 판타지조차 믿게 만드는 힘이 되기도 했다. 또 ‘모범택시’처럼 판타지적 인물을 장르적으로 해석한 캐릭터에 특유의 현실감이 부여된 것 역시 그의 진중한 목소리가 주는 신뢰감이 큰 역할을 했다. 

 

‘협상의 기술’은 냉정함과 따뜻함의 양면을 담은 드라마다. 즉 냉정함이란 협상으로 대변되는 비즈니스의 세계를 말한다. 실로 ‘협상의 기술’에서는 같은 회사의 동료들마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배신을 저지르는 정치싸움 같은 것들이 펼쳐지는 냉정 그 이상의 비정한 세계를 그리고 있다. 하지만 진짜 협상에 이르는 힘은 그 속내를 먼저 들키면 안되는 냉정한 세계 속에서도 상대의 마음을 애써 읽어내려는 따뜻함에서 나온다는 걸 이 작품은 보여준다. 무표정한 얼굴 사이사이로 조금씩 드러나는 마음들은 그의 협상력이 어디서 나오는가를 말해준다. 

 

연기도 일종의 협상이지 않을까 싶다. 믿고 싶어하지 않는 관객과 시청자들을 앞에 두고 믿고 싶게 만드는 협상의 과정이 그것이다. 무표정할 때는 일견 차갑게 보이는 이제훈의 얼굴은 그 무표정을 거두고 살짝 미소 지을 때 보는 이들을 설레게 만들고, 숨겼던 감정을 드러낼 때 더 강력한 폭발력을 갖는다. 특히 차분하고 진중한 목소리로 이야기할 때 그 역할이 무엇이든 우리는 이 배우에게 설득된다. 이것이 이제 20년에 다다른 연기 경력을 통해 이제훈이 갖게 된 연기 협상력이다. (글:국방일보, 사진:JTBC)

‘협상의 기술’, 냉정한 비즈니스의 세계에도 순애보가 담긴다는 건

협상의 기술

망한 게임 택배왕을 만든 회사 차차게임즈는 망하기 일보직전이다. 이 회사를 산인그룹 M&A 팀장 윤주노(이제훈)는 사려고 한다. 택배왕이라는 게임 때문이다. 워낙 게임의 차원을 넘어서는 디테일 때문에 그 시스템(지도나 물류 시스템 등)을 활용해 쉽게 이커머스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다. 전통적인 유통과 물류를 해온 산인그룹은 이커머스에 일찍이 뛰어들지 않아 한계에 봉착했다. 차차게임즈를 사는 일은 회사의 사활이 걸린 문제가 됐다. 

 

JTBC 토일드라마 <협상의 기술>은 이처럼 M&A라는 치열하고 냉정한 비즈니스의 세계를 소재로 하는 드라마다. 지금껏 직장을 다룬 작품들이 적지 않았지만, <협상의 기술>은 본격 기업극화라고 해도 될 정도로 그 디테일이 다르다. 실제로 이승영 작가는 이 작품을 쓰기 위해 무수한 사례들과 취재를 거쳐 실제 비즈니스의 리얼리티를 만들려 노력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작품에 담긴 M&A 관련 에피소드들이나, 기업 내부에서의 권력 다툼, 건설로 성장했지만 이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야 살아남게 된 회사 인물들의 고뇌 같은 것들이 실감나게 그려진다. 

 

M&A라는 비즈니스의 세계가 냉정하다는 걸 잘 말해주는 건 이 팀을 이끄는 윤주노라는 인물의 캐릭터에도 담겨있다. 위기에 처한 산인그룹을 회생시키기 위해 M&A 전쟁에 뛰어든 윤주노는 도통 표정이 없고 그래서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인물이다. ‘백사’라 불리는데, 머리를 하얘서 그렇게 불리는 줄 알았더니 실은 행동하기 전 ‘백번 생각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만큼 신중하고, 협상에 있어서는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 그것이 협상의 우위를 가져갈 수 있는 선택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즈니스의 세계가 냉정하다는 건 그 치열한 경쟁을 말하는 것이지 그렇다고 기계적인 차가움만 존재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건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고, 그래서 어디든 감정이 투영되기 마련이다. <협상의 기술>이 3,4회에 다룬 차차게임즈 인수 에피소드는 이를 잘 말해주는 소재다. 차차게임즈 차호진(장인섭) 대표가 오수연(박하랑)을 짝사랑해 자신이 만든 게임 택배왕과 하이스퀘어에 똑같은 이스터에그(개발자들이 자기 흔적을 숨겨두는 것)를 남기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차호진은 게임에 브금을 녹음했던 오수연을 짝사랑했지만, 공대생답게(?) 그 마음을 드러내고 표현하지 못했다. 대신 오수연의 집 앞 꺼진 가로등 대신 랜턴을 100일동안 걸어두고 가져오고 하는 일을 했던 차호진은 결국 오수연이 자신과 함께 게임 개발을 했던 선배 형 도한철(이시훈)과 사귀게 되자 그 회사를 나와버렸다. 도한철은 오수연도 빼앗고, 차호진이 개발했던 게임도 도둑질해 하이스퀘어라는 게임을 출시해 큰 성공까지 거둔다. 차호진은 억울해 도한철에게 절도로 소송을 걸었지만 회사는 망하기 직전까지 몰린다. 

 

게임 안에 심어 둔 이스터에그는 차호진이 오수연에게 계속 보내는 사랑의 고백이 됐다. 게임 안에서 꺼진 불을 밝히는 인물은 차호진의 분신이고, 그 불빛 저편에는 오수연의 분신인 캐릭터가 그림자로 어른거린다. 차호진 대표의 오수연에 대한 순애보는 이 차갑고 비정하기만 할 것 같은 비즈니스의 세계가 그것 역시 심장이 뜨거운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는 걸 드러낸다. 기업 극화이지만 멜로의 감성들이 피어나는 에피소드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협상의 기술>이 이스터에그 속 순애보를 통해 담은 건 그저 멜로 서사만이 아니다. 그 이스터에그는 도한철이 차호진의 개발물을 훔쳐갔다는 증거로 제시되기 때문이다. 택배왕의 이스터에그와 하이스퀘어의 이스터에그가 똑같이 어두운 밤길 불을 밝히는 것이라는 걸 알아낸 M&A팀은 이를 통해 도한철과 딜을 함으로써 그로부터 차차게임즈에 100억을 투자하게 만든다. DC의 지분 10%까지 얹어서. 그리고 이 에피소드의 마무리는 오수연이 우연히 택배왕의 이스터에그에 담긴 비밀을 알고 놀라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협상의 기술>은 이처럼 디테일한 비즈니스의 세계를 담으면서도 그 안에 살아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놓치지 않으려 한다. 안판석 감독 특유의 서두르지 않고 하나하나 쌓아나가는 연출력은 이 복잡해 보이는 서사들을 어렵지 않게 풀어내고, 그래서 빠져서 보다보면 M&A라는 비정한 세계 안에서도 얼마나 많은 인간적 감정들과 분노와 희열이 교차하는가를 실감하게 해준다. 좋은 대본에 베테랑 연출이 더해지고 그 위에서 배우들의 단단한 연기가 펼쳐지면서 생겨난 간만에 보는 흥미진진한 본격 기업극화가 아닐 수 없다. (사진:JTBC)

“가라, 가서 마음껏 실패하라.” 이종필 ‘탈주’

탈주

북한의 최전방 군부대에서 10년 만기 제대를 앞두고 있는 규남(이제훈)은 탈북을 꿈꾼다.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셨고, 제대 후에도 그의 출신성분으로 할 수 있는 일은 ‘하급 노동’뿐이다. 이미 미래가 결정되어 그 어떤 선택들도 가능하지 않은 삶. 규남이 철책을 넘어 지뢰지대를 뚫고 남으로 가려는 이유다. 하지만 규남의 탈북을 어떻게든 막으려는 현상(구교환) 역시 그 상황이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귀족에 해당하는 출신성분으로 러시아 유학까지 다녀와 보위부 소좌로 권력을 누리고 있지만, 그 역시 피아노에 대한 꿈을 접었다. 무엇 하나 선택할 수 없고 정해진 운명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삶. 이종필 감독의 ‘탈주’는 그 감옥 같은 삶으로부터 탈주하려는 청춘들의 사투와 고뇌를 그린 작품이다. 

 

왜 갑자기 북한 청년들의 이야기인가 싶지만, 규남이 남으로 가고픈 욕망을 드러내는 모티브로, 남측으로부터 라디오로 들려오는 자이언티의 ‘양화대교’가 흐를 때 이 영화가 진짜 하려는 이야기는 따로 있다는 걸 알게 된다. 택시운전수 아버지의 삶을 나이 들어 양화대교를 건너며 이해하게 되는 화자의 이야기를 담은 이 노래는 부모의 삶이 다음 세대로 유전되는 우리네 현실을 표현한 곡이다. 즉 우리의 상황도 북한처럼 극단화되진 않았지만 그 공고한 시스템에 청춘들을 가둬놓은 건 마찬가지라는 현실인식이 이 작품에는 담겨있다. 

 

“마음껏 선택하고 실패하는 삶을 살겠다”고 말하는 규남의 절실함을 마주한 후 현상은 그를 보내준다. 그러면서 “가라, 가서 마음껏 실패하라”고 말한다. 우리는 청춘들에게 마음껏 선택하고 실패할 수 있는 기회를 허용하는 사회일까. 곱씹어봐야 할 대목이다. 어쩌면 우리 사회에도 규남 같은 탈주하려는 청춘들이 적지 않을 테니 말이다. (글:동아일보, 사진:영화'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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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반장 1958

 

‘낭만닥터 김사부’ 이전에 낭만 형사 박반장이 있었다. 1971년부터 18년 간 방영되며 최불암을 국민반장으로 만들었던 레전드 수사물 ‘수사반장’의 주인공 박영한이 바로 그다. 경찰 재직 기간 동안 1300여명의 범죄자를 체포해 ‘수사의 전설’이자 ‘포도왕’으로 불렸던 실존인물 고 최중락 총경을 모델로 한 박영한 형사는 당대를 살았던 이들이라면 그 인간적인 면모가 여전한 여운으로 남을만큼 낭만적이고 휴머니즘 가득한 형사였다. 오죽하면 ‘수사반장’이 수사극이 아니라 휴먼드라마라는 이야기까지 나왔을까. 지금이야 범죄자가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담으면 서사를 제공한다며 비난받기 마련이지만, 당대에는 극악범죄보다 생계형범죄가 많아 때로는 그 눈물겨운 사연을 들어주는 박반장의 따뜻함이 오히려 도드라지기도 했다. 

 

그렇다면 종영한 지 35년의 세월을 훌쩍 넘어 다시 돌아온 MBC ‘수사반장 1958’의 박영한은 어떨까. 먼저 이 작품은 ‘수사반장’ 박반장의 젊은 시절로 돌아간 프리퀄이다. 당시 드라마 속 박반장의 나이가 40세였기 때문에(당시 최불암은 30대 초반이었다), 훗날 국민반장으로 성장할 싹으로서의 20대 시절이었던 1958년을 시대배경으로 가져왔다. 여러모로 이제훈이 이어받는 박영한이라는 인물에 걸맞는 나이대로 돌아간 듯 보이지만, 이 1958년은 전후 이승만 정권 자유당 시절이라는 시대적 어둠이 깃든 시기다. 60년에 3.15 부정선거가 있었고 4.19 혁명이 일어났으며 61년 5.16 쿠데타로 벌어진 격동기이기도 하다. 

 

극중 이미 등장한 것처럼 자유당을 비호하는 정치깡패 이정재의 존재는, 이 시대가 가진 치안부재와 부정부패가 일상이던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시장 상인들을 폭력으로 제압해 돈을 뜯어가는 건 물론이고, 경찰 조직부터 정계까지 손을 잡음으로써 범죄를 저지르고도 버젓이 풀려나는 모습이 그려진다. 나아가 아예 몇몇 부패 경찰들은 저들과 결탁해 범죄를 저지르는 일도 자행된다. 그러니 전국에서 소도둑을 가장 많이 잡은, 황천에서 올라온 시골뜨기 형사 박영한이 서울 종남경찰서로 올라와 ‘꼴통 형사’가 된 건 그저 본분을 지키는 일 자체가 특별해진 부패한 현실 때문이다. 도무지 상대할 수 없을 것 같은 깡패들을 뱀을 풀어 제압하기도 하고, 미군 부대의 물자를 빼돌리는 조폭들과 협력하는 경찰들에 반기를 드는 등 박영한이 보여주는 모습은 현실성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낭만’ 그 자체다. 

 

굳이 무거운 당대의 현실을 그대로 그리기보다는 다소 낭만적인 방식을 택한 건 보다 폭넓은 대중성을 염두에 두겠다는 포석이다. 그래서 실제로는 더 살풍경한 무거운 현실이었겠지만, 드라마는 너무 무겁지 않은 활극을 선택했다. 박영한을 중심으로 그를 든든하게 지지해주는 유대천 반장(최덕문)에 종남서의 미친 개로 불리는 김상순(이동휘), 쌀집 일꾼에서 종남서의 불곰으로 일하게 된 조경환(최우성) 그리고 유학을 준비하다 경찰의 꿈을 선택한 종남서 제갈량 서호정(윤현수)이 팀으로 뭉쳤다. 이들은 유비, 관우, 장비에 제갈량을 더한 삼국지의 영웅들처럼 이제 돈으로 권력마저 등에 업은 범죄와 맞서는 활극 수사 판타지를 그려낼 참이다. 

 

1958년이라는 복고적 감성이 허용하는 낭만은, ‘수사반장 1958’이 현재의 시청자들에게도 어필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갈수록 살벌해지고 지능화되는 범죄 속에서 어딘가 무력해보이기도 하고 때론 신뢰할 수 없게된 공권력의 결핍을 1958년의 꼴통 형사들이 보여주는 낭만적인 활약이 채워주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깡패와 부패경찰이 결탁하기도 했던 당대 실제 현실의 암담함 속에서 그들과 맞서는 박영한 팀의 대결은 시대를 훌쩍 뛰어넘어 현재에도 작지 않은 울림을 전한다. 

 

리메이크가 가진 장점이자 단점이 원작이 있다는 사실이다. 즉 원작의 아우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지만, 동시에 원작과 비교된다는 점이 단점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최불암으로 드라마의 문을 열어 원작에 대한 예우를 담으면서도, 1958년이라는 새로운 시점으로 되돌아가 젊은 시절의 박영한이 그려나가는 새로운 이야기를 허용해놓은 건 ‘수사반장 1958’의 좋은 선택으로 보인다. 이로써 중장년 세대에게는 향수를, 젊은 세대에게는 새로움을 보여줄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글:일간스포츠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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