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생존자’, 정치드라마일까 또 다른 액션 스릴러일까

 

tvN 월화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는 과연 정치드라마일까 아니면 액션 스릴러일까. 국회의사당 폭탄 테러라는 국가 위기 상황을 상정하고 있으니 액션 스릴러적 장르의 색깔이 묻어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 국가 위기 상황에서 졸지에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 박무진(지진희)의 국정 수행에 관한 이야기는 정치드라마적 색채를 띤다.

 

게다가 60일 이후의 선거를 예고하고 있는 상황이다. 권한대행으로 왔지만 북한 관련 이슈가 터지면서 오히려 지지율이 반등한 박무진이 대통령 후보로 나설 것으로 보이는데다, 야권 주자인 윤찬경(배종옥)은 애초에 그 싹을 잘라버리려 갖가지 정치적 포석을 두고 있다. 여기에 여권의 유력 차기 대권주자로 꼽히는 서울시장 강상구(안내상)가 만만찮은 야심을 드러내니 정치드라마로서의 치열한 복마전이 벌어진다.

 

하지만 이런 정치드라마적 색깔보다 더 액션 스릴러에 가까운 색깔을 만드는 인물은 오영석(이준혁) 의원이다. 무너진 국회 건물 더미에서 유일한 생존자로 구조된 오영석 의원은 바로 그 사실 때문에 국민적인 영웅이 된다. 박무진은 정치적인 포석으로 오영석 의원을 끌어들여 국방부장관에까지 임명시키려 하지만, 그는 국정원 한나경(강한나) 요원에게 국회의사당 테러의 주범으로 의심받는 인물이다.

 

유일한 생존자라는 것에 의구심을 가진 한나경은 폭탄이 터질 당시 오영석 의원이 자리를 비웠다는 걸 알게 되고, 누군가의 제보에 의해 그가 국회 내에 은밀하게 만들어진 방공호에 들어갔다는 사실까지 증거로 확보하게 된다. 결국 국회의사당 테러는 오영석 의원이 정치적 승부수를 던지기 위해 자행한 사건이었다는 것. 하지만 그 증거를 갖고 오던 한나경은 교통사고로 위장된 사고를 당한다. 즉 오영석 의원을 의심하고 그 행적을 추적하는 이야기는 전형적인 액션 스릴러 장르로 <60일, 지정생존자>의 색깔을 만들어낸다.

 

여기에 테러범이라 주장하며 캄보디아에 숨어 지내는 북측의 명해준(이도국) 고위 장교를 검거해오기 위해 특수부대가 투입되는 장면 역시 정치드라마의 틀에서 훌쩍 벗어난 전쟁 액션 장르 같은 느낌을 더한다. 그렇게 잡혀와 국정원에서 심문을 받던 중 누군가에 의해 명해준이 살해되고, 한나경이 찾은 증거를 공유했던 정한모(김주헌) 국정원 대테러팀장이 갑자기 자신이 명해준을 살해했다고 자백하는 장면 역시 이 드라마가 흘러갈 스릴러적 장치들을 예감하게 한다.

 

이처럼 <60일, 지정생존자>는 정치드라마와 액션 스릴러의 중간 지점에서 애매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애매함을 만드는 중요한 인물이 바로 오영석이다. 그의 정체가 전면에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정치드라마로서의 이야기보다 음모가 숨겨진 액션 스릴러적 이야기가 더 전면에 등장하는 것. 게다가 이 오영석 의원의 정체를 이제 시청자들은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상황이지만 드라마 속 인물들은 그걸 모르고 있는 지점은 드라마를 조금 답답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오영석 의원의 실체가 빨리 드러나야 <60일, 지정생존자>가 가진 정치드라마적 요소들이 좀 더 전면에 나올 수 있지 않을까. 결국 위기 상황에서 국정운영을 맡게 된 인물이 어떻게 그 현실 정치에서 살아남는가가 이 드라마가 가진 백미라고 볼 때, 지나치게 오영석 의원이 만들어내는 스릴러적이고 음모론적인 색채는 정치드라마가 가진 현실 공감을 흐리는 부분이 아닐까. 정치드라마든 액션 스릴러든 좀 더 분명한 색깔로 나갈 필요가 있어 보인다.(사진:tvN)

'나 혼자 산다'가 만드는 독특한 관계망, 그 끈끈함

일주일 내내 전현무와 한혜진의 결별 이야기와 MBC 예능 <나 혼자 산다> 동시 잠정하차 이야기가 끊이질 않는다. 하지만 성인 남녀가 만나 사귈 수도 있고, 또 헤어질 수도 있는 일에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이렇게 계속 회자되고 있는 건 어딘가 좀 과한 느낌이다. 

물론 <나 혼자 산다>의 주축이었던 두 사람의 하차가 이 프로그램에 영향을 미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심각한 수준의 파장을 일으킬 것 같지는 않다. 윤균상이 게스트로 출연했던 방영분은 향후 잠정적으로 전현무와 한혜진이 하차한다고 해도 이 프로그램이 끄떡없을 거라는 걸 보여주는 것만 같다. 

<역적>에서 홍길동 역할로 선 굵은 카리스마를 보여줬던 윤균상. 하지만 일상에서는 전혀 다른 고양이들의 윤집사가 그의 진짜 모습이었다. 훤칠한 키가 어딘가 강인한 인상을 주는 윤균상이지만, 함께 살아가는 고양이들 앞에서 한없이 편안한 느낌을 주는 그다. 사실 이런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일상을 보여주고 거기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 이것이 <나 혼자 산다>가 가진 진짜 힘이 아닐까 싶다.

고양이 발톱과 털을 깎아주고 매일 하는 운동이라며 계단을 오르내리는 그 모습은 특별한 것 없는 일상이지만, 여기에 더해지는 편집과 스튜디오에서 덧붙이는 이야기들은 이것을 독특한 예능의 웃음으로 만들어낸다. 계단 오르는 운동을 보이기 전에 카리스마 넘치는 연예인들의 몸 만드는 장면을 전제로 슬쩍 편집해 넣는 것만으로도 ‘일상의 예능화’는 쉽게 가능해진다.

그리고 어느 카페에서 윤균상이 만난 이준혁과 심희섭과의 수다는 과거 <역적>을 찍었을 때의 이야기들과, 밀리터리 덕후인 이준혁의 엉뚱한 유머가 뒤섞이며 편안한 재미를 준다. 취미라고 보기에는 과한 듯 모형 총을 가방 가득 갖고 나타난 이준혁이 군대에서 먹는 비상식량과 맛다시 같은 걸 꺼내놓는 장면에, 마치 방문판매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가 더해지자 그 상황 자체가 우습게 다가온다. 무엇보다 윤균상이 마치 친형들처럼 따르는 이들과의 따뜻하고 편안한 관계가 보는 이들마저 흐뭇하게 만든다. <역적>을 좋아했던 팬들이라면 그 때의 장면들도 떠올리게 할 만큼.

요리보다는 조리를 잘 한다는 윤균상이 라면에 햄, 소시지 그리고 마라 소스를 넣은 부대찌개를 끓여내고, 소면을 삶아 골뱅이와 맛다시를 버무려 내놓은 안주에 찾아온 친구들과 술 한 잔 곁들인 수다를 떠는 장면도 그렇다. 그건 우리 누구나 한번쯤 하는 일상 중 하나가 아닌가. 그러니 저 반짝반짝 빛나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연예인들이 우리와 똑같은 일상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한 공감대가 생겨난다. 

술만 마시면 노래를 부른다는 윤균상이 그 노래 부르는 장면을 화면으로 보며 창피해 어쩔 줄 몰라하는 장면은 관찰카메라가 잡아내는 일상에 자신도 모르는 모습이 담긴다는 걸 보여준다. 술에 취해 노래 부르고 들을 때는 그토록 좋았던 그 순간들이 영상으로 들여다보자 적나라한 실체를 드러낸다. 그 민망한 순간을 스튜디오에서 MC들이 공유하며 함께 괴로워하는(?) 장면에 웃음이 터지는 건 그래서다. 

최근 들어 예능 프로그램에서 중요해진 건 시청자들이 그 출연자들에게 느끼는 친밀감이다. 멀리 떨어진 어떤 존재를 바라보는 관점이 아니라, 나와 그다지 다르지 않은 일상을 공유하는 존재를 들여다본다는 그 지점은 <나 혼자 산다>가 갈수록 시청자들을 끌어들이는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다. 그래서 윤균상처럼 한번 슬쩍 나와 그 일상을 공개하는 것만으로도 이제는 마치 친구 같은 친밀함을 갖게 되고, 프로그램이 끝날 때쯤이면 다음에 또 만나고픈 아쉬움을 갖는 것. 

전현무와 한혜진의 잠정 동반 하차는 아쉬운 면이 있지만 그래도 <나 혼자 산다>가 잘 될 거라는 건 그렇게 만나고 헤어지고 잠시 떨어져 있어도 여전히 유지되는 관계의 지속성 때문이다. 이처럼 이 프로그램에는 어느 순간 조금 편안해졌을 때 다시 돌아와 근황을 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다. 윤균상 편을 보면서 이 인물이 언젠가 또 이 프로그램을 통해 관계를 이어갈 거라는 예감처럼,(사진:MBC)

입체적인 인물들의 반전, ‘비밀의 숲’이 남달랐던 까닭

첫 회에서부터 몰입하게 만들었던 tvN 주말드라마 <비밀의 숲>이 어느덧 종영을 맞았다.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매회가 영화 같은 몰입의 연속이었던 <비밀의 숲>. 검찰의 비리를 담는 이야기가 이전에 없었던 것도 아니고, 스릴러물이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지만 도대체 이 괴물 같은 드라마가 시청자들을 빨아들인 그 힘의 원천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비밀의 숲(사진출처:tvN)'

“이마에 착한 사람, 무서운 사람 써 붙여놨으면 좋겠어요.” 같은 특검에 있던 윤세원(이규형)이 박무성(엄효섭)을 죽인 범인이었다는 것을 못 믿겠다는 듯 김정본(서동원)이 그렇게 말하자 한여진 경위(배두나)는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덧붙인다. “그럼 여기도 애매한 사람 꽤 많을 걸요... 있습니다. 그런 사람. 범인 잡겠다고 먼지 뒤집어쓰고 애쓰는 거 보면 좋은 사람 같은데 남한테 몽땅 뒤집어씌우는 거 보면 이건 또 뭔가 싶은 사람.”

한여진이 지목하는 그 애매한 사람은 바로 팀장이다. 열심히 범인을 잡으려 뛰어다니는 것도 사실이지만 자신이 문제에 연루되자 자기는 잘못이 없다고 발뺌하려 애쓰는 모습을 한여진이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녀의 동료인 장건(최재웅)이 말한다. “사람들 다 거기서 거기에요. 막 죽일 새끼도 아니고 천사도 아니고 그냥 흐르는 대로 사는 거지.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은.” 한여진은 그의 말에 또다시 의미심장한 반론을 달아놓는다. “그렇게 흐르기만 하다가 자기도 모르는 곳에 닿아 버리면요?”

아마도 이 짧은 대사 안에 <비밀의 숲>이 인물을 바라보는 남다른 시각과 그로 인해 이 드라마가 얼마나 큰 몰입감을 만들어냈는가에 대한 비밀이 들어 있지 않을까. 그 비밀은 입체적인 인물에 있다. <비밀의 숲>은 우리가 스릴러 장르에서 늘 접하던 착한 사람과 무서운 사람의 경계를 세워두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든 이 양면을 갖고 있고,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면을 보인다는 것. 

이 점은 우리가 드라마를 보며 믿었던 어떤 인물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어떤 행동을 했다는 것에 놀라움과 충격을 받게 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 영은수(신혜선) 검사가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사건을 추적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동시에 아버지가 불명예를 안고 물러나게 된 것에 대한 사적 복수심을 드러내는 인물로 그려진 면이나, 서동재(이준혁)처럼 적인지 아군인지 알 수 없는 캐릭터, 겉으론 황시목(조승우)을 지원하는 듯 보이지만 알고 보면 그를 이용하고 있는 이창준(유재명) 수석이나, 결정적인 반전을 보여준 윤세원 등등. <비밀의 숲>의 인물들은 한여진이 말하듯 어느 한 쪽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애매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저마다 갖고 있는 비밀들이 있어 평시에는 그토록 정의롭게 보였던 인물도 어떤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 정반대의 실체를 드러냈다는 것. 그렇다면 <비밀의 숲>은 어차피 인간은 상황에 좌지우지되는 존재라는 걸 말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한여진이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흘러 다니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곳 깊숙이 닿아 버린 자신을 발견하게 될 수 있다. 그러니 그 흐름에 자신을 맞기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다. 

자신의 아이가 끔찍하게 죽게 된 사건으로 인해 윤세원이 박무성에게 복수하려 했다는 건 마치 그런 흐름을 이해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 흐름이 잘못됐다는 걸 황시목은 지적한다. “윤세원 씨가 그걸 처벌할 권한이 있습니까.”하고 묻는다. 그러자 윤세원은 자신의 선택이 어쩔 수 없었던 아픈 이유를 드러낸다. “그럼 권한을 가진 사람은 대체 뭘 했는데요?” 누군가의 잘못된 결정이 만들어내는 비극은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피해자를 낳는 결과로 돌아온다. 

<비밀의 숲>은 그래서 검찰 비리라는 그 원류가 얼마나 멀리까지 잘못된 흐름들을 계속 양산해내는가를 드러내준다. 그 흐름 안에서 피해자는 가해자가 되고 그 가해자는 또 다른 피해자가 된다. 도저히 이겨낼 수 없는 그 흐름 속에서 인물들은 ‘애매해진다’. 그 애매함이 <비밀의 숲>에 시청자들이 빠져드는 이유였고, 그 애매함을 만들어내는 원류의 잘못된 흐름을 비판적인 시선을 담아낸 것이 바로 이 작품의 주제의식이었다. 재미와 의미가 입체적인 인물들의 면면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작품. 우리가 <비밀의 숲>을 수작이라 부를 수 있는 이유다.

왕따, 동거, 워킹맘, 졸혼...‘아이해’가 보여주는 가족의 변화

KBS 주말드라마는 사실상 가족드라마의 최후보루나 마찬가지다. 기본이 20% 시청률부터 시작한다는 이 KBS 주말드라마는 가족드라마의 전통적인 시청층의 충성도가 대단히 높다. 별다른 일이 없으면 채널을 이 주말드라마에 고정시켜놓는 것이 당연한 주말의 풍경이 되어버릴 정도로. 

'아버지가 이상해(사진출처:KBS)'

하지만 주말드라마는 최근 들어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그것은 그 가족드라마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네 가족의 형태가 급격한 변화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1인가구가 전체 가구 수의 4분의 1을 넘어선 지 오래고, 결혼률은 물론이고 출산률 또한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현실의 가족이 가족드라마가 늘 구성하던 대가족 형태에서 이미 벗어나 있기 때문에 주말드라마의 양태들은 어찌 보면 시대와 맞지 않는 틀로 보이기 십상이다. 

지금 현재 방영되고 있는 <아버지가 이상해>를 보면 그래서 이러한 시대성을 따라가기 위한 현실적 상황들을 다수 포진시키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변미영(정소민)과 김유주(이미도) 사이를 통해 보여줬던 왕따문제, 변준영(민진웅)이라는 공시생을 통해 보여준 우리네 청춘들의 취업현실, 변혜영(이유리)과 차정환(류수영)의 동거, 계약결혼 등을 통해 보여준 현 세대들의 달라진 결혼관, 임신을 하게 된 후 겪는 경력 단절의 고충을 통해 김유주가 간접적으로 드러내준 워킹맘의 비애, 실력이 출중해도 돈이 없어 아이를 보낼 수 없는 나영식(이준혁)과 이보미(장소연)의 고충을 통해 드러낸 특목고의 문제, 그리고 차규택(강석우)과 오복녀(송옥숙)를 통해 보여준 졸혼이라는 새로운 노년의 풍경까지.

물론 <아버지가 이상해>는 이토록 많은 현실적 문제들을 담으면서도 우리가 익숙하게 봐온 가족드라마의 공식들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안전한 방식을 취했다. 즉 변라영(류화영)과 박철수(안효섭)를 통해 여전히 등장하는 신데렐라 이야기가 그렇고, 변혜영과 차정환의 결혼 과정을 통해 그려내는 혼사장애의 이야기도 그렇다. 여기에 배우 안중희(이준)가 뒤늦게 변한수(김영철)가 자신의 친부가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는 ‘출생의 비밀’ 코드도 빠지지 않았다. 

즉 <아버지가 이상해>는 우리네 가족이 변화하고 있다는 걸 인식하면서도 동시에 과거의 가족 형태에 대한 여전한 향수를 가족드라마라는 틀에 녹여내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식상할 수 있는 가족드라마의 여전한 공식들을 가져오지만(그래서 주제 역시 가족애라는 틀로 많은 갈등들이 봉합되는 보수적 형태를 유지한다), 그래도 그 안에 많은 현실적인 질문거리들을 담아내려 노력했다는 점이다. 

특히 변혜영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보여준 달라진 여성의 면면은 주목할 만하다. 기성세대는 이해하기 어려운 동거를 당당히 밝히는 모습이나, 결혼에 계약 조건을 단다거나, 시댁에 살면서도 시부모와 거리를 유지하며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려는 모습은 지금의 결혼 세대들이 충분히 공감할만한 이야기다. 

사회 현실이 대중들의 생각만큼 변화하지 않는 것도 많다. 그래서 김유주 같은 인물이 임신을 한 후 일에서 점점 배제되고 그래서 더 무리하게 되는 그 안간힘은 달라지는 가족의 변화만큼 달라지지 않고 있는 우리네 사회의 면면을 꼬집는다. 아이를 결국 잃게 된 김유주가 뒤늦게 그것이 자신의 탓이라며 후회하는 장면은 그래서 이런 문제들이 여전히 개인의 차원에서 그들의 희생으로 덮여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드러낸다. 

물론 가족드라마는 앞으로도 한동안 지속될 것이다. 하지만 가족의 양태가 바뀌고 있는 한 그 가족드라마의 틀이 언제까지 그대로 유지될 것인가는 미지수다. <아버지가 이상해>는 그 과도기적 성격을 잘 드러내는 작품이다. 가족을 향수하는 보수적 틀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생각해볼만한 많은 현실적인 변화와 문제들을 꺼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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