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육룡>은 다 아는 역사도 흥미진진하게 만들까

 

도대체 척사광은 누구인가. 사실 SBS <육룡이 나르샤>가 아니었다면 이런 궁금증은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척사광은 역사적 실존인물이 아닌 가상인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척사광이 실존인물인 고려 최고의 무장 척준경의 유일한 계승자라는 설정은 이 가상인물에 대한 관심을 최고조로 끌어올리게 만든다.

 


'육룡이 나르샤(사진출처:SBS)'

척준경이 누구인가. 인터넷에 이 인물에 대해 쳐보면 상세한 역사적 기록들이 나온다. 그는 고려 중기의 무신, 정치인, 군인으로 황해도 곡산 출신이다. 우리가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는 윤관과 함께 동북 9성을 쌓는데 기여한 인물로 뛰어난 용맹으로 여진족 정벌에 종군하여 많은 공을 세웠다. 곡산 척씨 가문의 시조다.

 

하지만 이런 역사적 기록보다는 거의 하나의 신화처럼 전해지는 그의 놀라운 전공에 대한 이야기가 대중들에게는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그가 여진족을 상대로 싸운 전공은 마치 <삼국지>의 조자룡 같은 이야기로 회자된다. 심지어 수만의 여진족 병사들 속으로 단신으로 뛰어들어 적장의 수급 수십 개를 가져왔다는 이야기는 이게 사실인지 무협지의 한 대목인지 알 수 없을 지경이다. 그만큼 무협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뛰는 인물이 척준경이다.

 

척준경의 유일한 계승자라는 이야기는 무수한 추측들을 불러 일으켰다. 무휼(윤균상)의 무술 스승인 홍대홍(이준혁)이 척사광이 아니냐는 예측들이 쏟아진 건 그래서다. 하지만 <육룡이 나르샤>는 그가 사실은 여자였고 왕요가 사랑하는 인물 윤랑(한예리)이었다는 사실로 이를 뒤집음으로써 최고의 반전을 만든다.

 

척사광의 등장 또한 그저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대단히 드라마틱하게 전개된다. 이방지(변요한)가 그토록 수련을 통해 성공시키려 했으나 되지 않았던 검 위에 잔을 올려놓고 하는 검법을, 윤랑이 중독된 왕요를 치유시킬 수 있는 해독제가 담겨진 날아가는 잔을 검으로 받아냄으로써 그녀가 심상찮은 무공을 가진 척사광이라는 걸 드라마틱하게 알려준다.

 

척사광이라는 캐릭터를 이토록 흥미진진하게 등장시키는 방식은, <육룡이 나르샤>가 이미 역사를 통해서 또는 무수한 사극을 통해서 이미 알려진 역사적 인물들을 활용하는 방법이다. 생각해보면 <육룡이 나르샤>는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남은(진선규)이나 조준(이명행), 하륜(조희봉) 같은 인물들을 처음부터 그 이름을 밝히지 않고 인상적인 에피소드의 주인공으로 다룬 후 그가 사실은 이 인물이었다고 나중에 알려주는 방식을 써왔다. 이것은 이 사극의 주인공들인 이성계(천호진), 이방원(유아인), 정도전(김명민) 같은 육룡들을 매력적인 캐릭터로 세우는 과정에서부터 썼던 방식이다.

 

알다시피 여말 선초의 역사는 무수한 사극을 통해 재현된 바 있다. 게다가 웬만한 시청자들이라면 이 시대의 역사와 그 인물 정도는 잘 알고 있다. 다 알고 있는 역사를 재현한다는 것은 과거 정통사극의 시대라면 모를까 지금이라면 맥 빠지는 일이다. <육룡이 나르샤>는 이 역사라는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인물들의 등장을 비밀스럽게(?) 슬쩍 등장시켜 나중에 정체를 밝히는 방식으로 흥미진진하게 만들어왔던 것.

 

척사광이란 가상인물이 실제 역사적 인물인 척준경과의 연관성으로 흥미로운 인물이 되는 것처럼, <육룡이 나르샤>의 가상설정 주인공들인 이방지, 무휼, 분이(신세경) 같은 인물이 흥미로워지는 것도 이들이 유명한 역사적 인물들인 이성계, 정도전, 이방원과 관계를 맺기 때문이다. 실제는 가상에 흥미로움을 덧붙이고, 가상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실제 역사 이야기에 새로운 이야기를 부가시킨다. <육룡이 나르샤>가 왜 실제 역사 인물 3인이 아니라 가상인물 3인을 합쳐 육룡을 만들었는가를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적도', 시각장애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

 

우리는 눈을 통해 얼마나 진실을 볼 수 있을까. 어쩌면 눈이 있기 때문에 진실은 오히려 가려지는 것이 아닐까. '적도의 남자'는 주인공 선우(엄태웅)가 눈이 멀게 되는 상황을 통해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아이러니하게도 눈을 뜨고 있을 때 선우는 장일(이준혁)의 실체를 보지 못했다. 선우가 그 실체를 보게 된 것은 바로 그가 눈을 멀게 되는 사건을 통해서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그 세계 속에서 선우는 차츰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게 된다.

 

 

'적도의 남자'(사진출처:KBS)

그 세상은 냉혹한 공포와 분노이면서, 동시에 따뜻한 마음이기도 하다. 공포와 분노는 성공과 욕망을 위해서라면 친구마저 뒤통수를 칠 수 있는 장일이라는 인물로 대변되는 세상이고, 그 따뜻한 마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둠 속에서 구원처럼 손을 내밀어주는 지원(이보영)이라는 인물로 표상되는 세상이다. 그래서 이 세상을 담는 '적도의 남자'는 두 가지 장르를 담는다. 선우와 장일의 관계가 풀어져가는 복수극이 그 하나고, 선우와 지원이 점점 진심으로 다가가는 드라마틱한 멜로가 다른 하나다.

 

'적도의 남자'가 초반 부진을 털어내고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복수극과 멜로라는 두 가지 씨줄과 날줄이 바로 '눈을 멀었다'는 그 설정을 통해 절묘하게 엮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시각장애라는 설정이 있었기 때문에 '적도의 남자'는 상투적인 복수극과 상투적인 멜로의 틀을 벗어날 수 있었다. 이 드라마에는 시각장애라는 설정에서만 가능한 극적인 상황과 장면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선우가 못 보기 때문에 장일이 선우를 대하는 섬뜩한 실체가 더 부각되고, 안마 실습을 하면서 아버지를 죽게 한 진노식 회장(김영철)과 선우가 대면하는 극적인 장면이 가능해진다. 보이지 않는다는 선우의 장벽을 세워두자 그 앞에 이 철면피 같은 인간들이 하는 섬뜩한 짓들이 부각되는 식이다. 그리고 끔찍하게도 우리는 그것을 바라봐야 한다. 아마도 선우의 복수극은 그래서 이 못 본다는 설정을 뒤집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못 본다고 생각했던 선우가 사실은 그들의 치부를 보고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복수의 서막이 되지 않겠는가.

 

하지만 못 본다는 설정을 단지 이런 복수극으로만 활용했다면 이 드라마는 자칫 너무 건조한 느낌에 머물렀을 지도 모른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 설정이 멜로에도 대단히 효과적이라는 점이다. 선우가 스카프를 사면서 옆에 따라온 지원이 있는 줄도 모르고 마음을 고백하는 장면이 그렇고, 연주회장 앞에서 난 자동차 사고 소식을 들은 선우가 지원이 다친 줄 알고 안 보이는 와중에도 그녀를 애타게 찾는 장면이 그렇다. 불 꺼진 방안에서 선우가 지원에게 책을 읽어주는 장면은 또 얼마나 시적인가. 또 눈이 보이게 된 선우가 지원과 다시 만나는 과정이 아련하게 이어지는 것도 과거 시각 장애를 겪었던 사실에서 비롯된다.

 

물론 이 시각장애라는 설정이 장르적으로 훌륭한 장치라는 것에만 머무는 건 아니다. 이 설정은 그 자체로 이 드라마의 메시지에 접근한다. 보지 못하는 선우라는 존재가 겉으로만 번지르르 한 세상의 더럽고 잔혹한 치부를 제대로 바라보고, 허위와 욕망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진실된 사랑을 찾게 된다. 이는 또한 보지 못하는 자와 보는 자로서 선우와 장일이라는 두 인물의 대비를 통해서도 나타난다. 보지 못하는 선우가 보는 장일보다 더 진실 되고 따라서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아이러니. 이것은 상황 자체만으로도 전해지는 세상에 대한 통렬한 비판의식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이 보지 못하는 남자와 보는 남자, 그리고 그 사이에 놓여진 구원 같은 여자를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게 해준 연기자들의 힘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준혁은 연기의 재발견이다. 이준혁은 순간순간 욕망에 따라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거짓말을 하고 행동하는 이 섬뜩한 장일이라는 인물을 통해, 현대인의 어두운 이면을 드러내주었다. 지원이라는 구원자의 역할을 연기한 이보영도 빼놓을 수 없다. 지금껏 그다지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았던 이보영은 이 역할을 통해 그 투명할 정도로 순수한 매력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적도의 남자'는 엄태웅의 존재감이 깊이 각인된 드라마임에 분명하다. 그는 왜 그가 엄포스라고 불리는가를 이번 드라마를 통해 보여주었다. 투박해 보이지만 진짜 선우라는 캐릭터가 되기 위해 온몸을 던지는 그 자세에서 우리는 이 인물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만일 이 절절한 진심이 담긴 엄태웅의 연기가 받쳐주지 못했다면 자칫 이 드라마는 그저 답답하게만 여겨졌을 지도 모른다. 엄태웅이 있어, 이 시각장애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이 더 섬뜩하고 더 절절하게 여겨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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