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라도 상관없어...” 신혜선의 상처를 치유시킨 강훈의 고백(나의 해리에게)

나의 해리에게

“전 상관없어요. 혜리씨. 왜냐하면 난 그냥 혜리씨가 있어주기만 하면 되거든. 내 옆이 아니어도 살아서 건강하기만 하면 난 그걸로 충분해요. 날 사랑하지 않아도 되고 다시 숲으로 들어간대도 난 괜찮아. 원하면 내가 거기 같이 가줄 수도 있어요. 나 진짜 다 버리고 같이 가줄 수 있어요. 그딴 건 조금도 무섭지 않아요. 혜리씨. 왜냐하면 전요 혜리씨. 처음부터 혜리씨가 그 누구라서 좋아했던 게 아니거든. 그저 이런 내게 와준 사람이라… 내가 혜리씨를 그래서 좋아했던 거고 그래서…”

 

지니TV 오리지널 드라마 ‘나의 해리에게’에서 강주연(강훈)은 갑자기 사라져 너무나 보고 싶었던 주은호(신혜선)를 보고는 그렇게 외친다. 물론 강주연이 기다렸던 건 주은호가 아니라 그의 안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인격 주혜리(신혜선)였을 게다. 어느 날 우연히 만나 마음을 나눴고 그리워하게 됐던 주차관리소에서 일하던 주혜리를. 그래서 돌아온 그가 주은호인지 주혜리인지 너무나 궁금해하지만 그는 결국 그게 아무 상관이 없었다는 걸 알게 된다. 그가 주혜리를 좋아했던 건 ‘누구라서’가 아니라 ‘그저 이런 내게 와준 사람’이어서였으니까. 

 

그 말을 들은 주은호는 강주연에게 다가가 그를 꼭 안아준다. 바로 옆에 서서 주은호를 걱정하고 보살피려 한 정현오(이진욱)는 그 광경을 눈앞에서 보고는 깜짝 놀란다. 주은호이기를 간절히 바랐던 정현오다. 너무나 사랑했지만 결혼을 꿈꾸는 주은호에게 이를 거절하고 이별 통보까지 했던 그였다. 자신이 홀로 감당해야할 할머니들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지만, 주은호가 해리성 정체성 장애를 갖게 된 사실이 그는 마치 자신 때문인 것 같아 괴롭다. 주은호가 아닌 주혜리가 되고 싶을 정도로 그 이별 통보가 아팠던 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주은호가 주혜리가 되어 돌아온 것 같은 그 광경이 그에게는 몹시 아프다.

 

실제로 주은호는 자신과의 결혼을 거부하던 정현오가 결혼을 한다는 사내에서의 소문을 듣고 충격에 빠진다. 부모를 잃었고, 숲으로 들어간 동생을 잃었으며 그 빈 자리를 유일하게 채워줬던 사랑하는 사람 정현오와도 헤어졌다. 헤어진 이유가 비혼주의자라서인 줄 알았는데 결혼을 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다니. 물론 그건 소문에 불과한 것이었지만 주은호는 무너지고, 방송사고를 내고 결국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게 되는 지경에 이른다. 주은호는 자신을 버리고 싶어진다. 대신 주혜리가 궁금하고 되고 싶어진다. 그 애가 왜 행복했는지 알고 싶어진다.

 

그래서 주은호는 숲으로 들어간다. 자신을 버리고 주혜리가 되고 싶어서 심지어 자기 팔에 주혜리가 가졌던 상처까지 내며서 자기를 버리려 한다. 그는 그렇게라도 행복해지고 싶었다. “난 언제나 혜리에게 묻고 싶은 게 있었어요. 주혜리. 넌 행복해? 만약 니가 행복하다면 나는 이제 너로 살아보려해. 내가 노력한다면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지금까지 내가 그래 왔던 것처럼.” 하지만 그는 끝내 혜리가 되지 못한 채 돌아왔다고 강주연에게 고백한다. 그건 그가 모든 걸 버리고 그 숲 속 오두막집을 찾아가면서도 버리지 못한 한 가지가 있어서였다. 정현오가 작은 메모지에 그린 목걸이 그림이었다. 그 그림은 주혜리가 되려는 주은호의 손을 끝까지 잡아주었다. 

 

‘나의 해리에게’는 구도로만 보면 주은호를 두고 정현오와 강주연 그리고 문지온(강상준)까지 사랑하게 되는 4각구도의 멜로처럼 보인다. 하지만 경계성 정체성 장애를 겪으며 주은호와 주혜리를 오가는 이 인물의 사랑 이야기는 그렇게 밀고 당기는 꽁냥꽁냥 멜로와는 차원이 다른 걸 담고 있다. 그건 강주연이 ‘누구든 상관없다’고 말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보다 ‘존재론적인 사랑이야기’다. 

 

누구나 행복해지기를 원한다. 심지어 동생이 실종되면서 결코 행복할 수 없던 삶을 살아온 주은호 같은 인물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 불행의 늪을 벗어나기 위해 다른 인격을 꿈꾸기도 한다. 흔히들 말하는 ‘이번 생은 망했다’며 다음 생을 꿈꾸거나, 과거로 되돌아가 다른 선택을 하는 삶을 꿈꾸는 회귀물에 빠지는 건 그래서가 아닌가. 그런데 그렇게 현재의 내가 싫고 불행하게만 느껴져 차라리 다른 인격이 되고 싶은 그를 끝내 붙잡아주는 건 뭘까. ‘나의 해리에게’는 그 질문에 강주연이라는 인물의 사랑을 통해 답하고 있다. 그 누구여서가 아니라 그런 내게도 와준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이 우리가 설혹 불행의 늪에 빠져 있어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이라는 것이다. 

 

“마음은 딱 하나”라고 믿는 강주연에게 주은호는 자신이 주혜리가 되지는 못했다며 대신 그에 대한 고마움을 전한다. “누구보다 사랑이 필요했던 나를 아껴주고 사랑해줘서 고맙다고. 아까 주연씨가 했던 말은 내가 주연씨한테 하고 싶었던 말예요. 맞아요. 나도 처음부터 그 누구라서 그쪽을 좋아했던 게 아니고 그저 내게 와줘서 이런 내게 와줘서 고마웠어요. 주연씨.” 그가 강주연을 꼭 안아줬던 건 주혜리여서가 아니라 고마움 때문이었다는 걸 말해준다. 

 

그래서 주은호가 강주연을 안아주는 장면은 이 대목에서는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강주연의 말이 사실 주은호가 하고 싶었던 말이라는 뜻은, 자신이 주혜리가 되면서까지 찾고 싶었던 행복의 비밀이 바로 그것이었고, 그래서 강주연의 그 말은 주은호가 스스로를 되찾을 수 있는 열쇠가 되었다는 의미다. 주은호가 안은 건 강주연만이 아니다. 바로 자기 자신을 드디어 껴안을 수 있었던 것이다. 

 

현실이 너무 아파서 다른 인격을 가진 이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됐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로 시작한 드라마는 이제 그 모험 같은 여정을 돌아서 인간 존재의 사랑과 행복에 대해 이야기한다. 누군가를 잃는다는 상실감과 그 상처를 어떻게 회복하고 돌아올 수 있는가를 이야기한다. 단 한 순간도 행복한 적 없었다고 생각했던 주은호는 드디어 그 먼 길을 돌아와 알게 된다. 자신이 너무나 행복했던 순간이 있었다는 걸. 어느 날 아침 출근하려던 정현오를 붙잡아 잠깐 동안 함께 있었던 그 순간을 떠올린다. 그러면서 다짐한다. “그 사람이 다시 돌아와준다면 말해야지. 말해줘야지. 말해줘야지. 고마워. 내 사랑. 이런 내게 와줘서 정말 고마워.” 

 

‘나의 해리에게’는 그래서 해리성 정체성 장애라는 다소 우리에게는 낯선 장애를 소재로 삼은 멜로드라마지만, 그런 일들이 우리에게도 마음 속에서 계속 벌어지는 일들일 수 있다고 말하는 드라마다. ‘나의 해리에게’는 묻고 있다. 당신의 혜리는 어떤 존재인가. 또 우리 모두의 혜리는? 그리고 우리가 붙박혀 살아가는 현실과 우리가 꿈꾸는 행복 사이에서 저마다 하나씩 혜리를 갖고 있으면서도 우리를 다시 현실로 되돌리는 진짜 행복이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다. 이런 내게 와준 소중한 존재들이 옆에 있어서 힘겨워도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고. (사진:지니TV)

‘나의 해리에게’, 사랑을 넘어 삶을 이야기하는 로맨스라니

나의 해리에게

“선생님. 사랑을 하니 모든 게 반짝반짝거린다고요. 행복을 눈으로 본 적은 없지만 볼 수만 있다면 만질 수만 있다면 이런 게 아닐까요?” 지니TV 오리지널 드라마 ‘나의 해리에게’에서 주혜리(신혜선)는 정신과 의사에게 그렇게 말한다. 주혜리, 아니 주은호(신혜선)는 해리성 정체성 장애를 겪는 중이다. 본래는 PPS 아나운서지만 또 다른 인격으로 생겨난 주혜리는 미디어N 주차관리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런데 그 곳에서 만난 미디어N 아나운서 강주연(강훈)과 사랑에 빠진다. 

 

주혜리는 그렇게 강주연을 사랑하게 되지만, 잠을 자고 일어나면 되돌아오는 주은호는 8년 동안 만나왔던 같은 회사 에이스 아나운서 정현오(이진욱)와 헤어졌다. 하지만 헤어진 후에도 정현오가 주은호에게 일을 챙겨주는 식으로 두 사람의 관계는 끊어진 듯 끊어지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정현오는 주은호에게 네가 “창피하다”며 헤어진 후에도 왜 너 같은 사람을 사귀었냐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핑계 삼아 자꾸 주은호를 도와주려 한다. 

 

“네가 좀 괜찮은 사람이면 좋겠거든?” 이렇게 말하는 정현오는 사실 헤어진 후에도 주은호가 신경쓰인다는 걸 그렇게 말하는 것이지만, 주은호는 그 말에 상처받는다. “근데 내가 좀 별로면 안되나? 아니 그렇잖아. 내가 좀 별로고 괜찮지 않은 게 뭐. 그게 뭐 어떻다는 거야?” 주은호가 발끈하는 건 사실 그 스스로도 불안감을 느끼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애써 안하던 현장 리포트를 나가서라도 VCR 분량을 독점하고 싶어하고 그렇게라도 자기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어한다. 하지만 주은호의 그런 선택은 다른 아나운서들의 반발을 불러온다. 아나운서의 명예를 실추했다며. 

 

‘나의 해리에게’는 그래서 로맨스 드라마의 틀로만 보면 해리성 경계성 장애를 가진 주은호가 주은호로서 정현오와 주혜리가 됐을 때 강주연과 엮이게 되는 기막힌 멜로의 구도를 그려낸다. 정체성이 왔다 갔다 하는 것도 힘겨운 일이지만, 각각의 정체성이 사랑을 하게 되면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행복감을 느끼고 그래서 그 정체성을 잃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혜리가 강주연이 점점 좋아지는 상황에, 주은호 역시 정현오의 진심을 알게 되는 사건을 겪는다. 생방송 중 실종된 언니를 찾는 동생의 사연을 보다가 사라진 동생을 떠올리며 충격에 빠져 방송사고가 날 뻔한 주은호를 정현오가 챙겨주게 되면서다. 

 

이처럼 ‘나의 해리에게’는 주혜리로 정체성이 분리된 주은호가 정현오와 강주연과 각각 사랑에 빠지면서 겪게 되는 로맨스를 그리고 있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진짜 하려는 이야기는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해리성 정체성 장애라는 병명에서 드러나듯이 어째서 이런 장애를 이 인물이 갖게 됐는가가 더 중요하다. 주은호가 그 장애를 갖게 된 건 늘 자신처럼 되고 싶어하고 따랐던 동생이 실종되어서다. 실종된 지 오래되어 사망한 것처럼 처리되어 있지만 실종자 가족들이 이를 받아들일 리가 없다. 주은호는 그 상처가 깊어지며 동생 주혜리의 삶과 꿈을 이어주고 싶어지고 그것이 해리성 정체성 장애로 나타난다. 그렇게라도 동생을 붙들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그런 상처를 겪은 건 주은호만이 아니다. 그가 주혜리가 되어 만나게 된 강주연 역시 아버지 같던 형이 교통사고를 겪고 식물인간이 됐다. 강주연의 어머니는 그가 육군사관학교 임관식에 형을 부르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거라 원망한다. 결국 강주연은 군인의 길을 포기하고 형의 꿈이었던 아나운서의 길을 선택한다. 그래서 그의 삶은 마치 그의 것이 아닌 것처럼 무감해진다. 그 무감한 삶에 어느 날 갑자기 주혜리가 뛰어든 것이다. 

 

그래서 ‘나의 해리에게’는 사라진(어쩌면 죽은) 이들 때문에 상처 입고 그들을 끝내 보내지 못하는 남은 자들의 상처를 그리는 작품이기도 하다. 주은호는 동생 주혜리를 보내지 못해 해리성 장애를 겪고 있는 것이고, 강주연은 형을 보내지 못해 자신의 삶이 아닌 형의 삶을 대신 살아가는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두 인물의 삶에 뛰어들어 그걸 변화시켜 나가는 존재는 바로 주혜리다. “행복을 눈으로 본 적은 없지만 볼 수만 있다면 만질 수만 있다면 이런 게 아닐까요?” 주혜리는 단순하게 삶을 직시한다. 그러면서 과거에 집착해 사라진 것들을 놓지 못한 채 힘겨워하는 주은호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병상에 있는 강주연의 어머니가 강주연을 형과 혼돈하자 주혜리는 그 손을 덥석 잡아주며 대뜸 “밥을 잘 드셔야 한다”는 엉뚱한 말을 한다. 그러면 아가씨처럼 예뻐지냐고 강주연의 어머니가 묻자 주혜리는 놀랍게도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아니요. 살아있을 수 있죠. 살아있다는 건 좋은 거거든요 아줌마.... 그럼요. 너무너무 좋은 거예요. 그러니 감사해주세요. 아줌마가 살아있다는 것과 주현씨가 살아있다는 것에.” 그러면서 주현이가 잘해주냐고 묻자 그가 아줌마 손처럼 따뜻하다며 “따뜻하다는 건 좋은 것”이라고 한다. 그건 살아있다는 거니까. 과거와 죽음의 그림자를 놓지 못하고 사는 이들에게 현재와 삶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려주는 이 장면은, 마침 쓰러질 뻔했던 주은호의 손을 잡아 준 정현오의 에피소드와 교차 편집된다. 손을 잡는다는 것. 그건 현재의 온기를 느낀다는 것이고 바로 살아있다는 것이라는 걸 이 손을 잡는 시퀀스들의 교차가 보여준다. 

 

대본이 기막힌 작품이지만, 주은호와 주혜리를 넘나들어야 하는 1인2역 연기가 밑바탕되지 않으면 감흥을 주기 어려운 작품이다. 그런 점에서 흔히 표현하는 ‘연기차력쇼’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신혜선의 연기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여기에 이진욱, 강훈의 단단한 연기가 받쳐주고 조혜주, 강상준, 김나미, 오경화 같은 배우들의 호연도 빼놓을 수 없다. 또한 복잡할 수 있는 서사 구조를 감정선이 느껴지는 미장센으로 풀어낸 연출의 공도 칭찬할만하다. 사랑을 넘어 삶을 이야기하는, 오랜만에 보는 기막힌 힐링 로맨스다. (사진:ENA)

이진욱과 권나라 그리고 공승연의 인연 혹은 악연(‘불가살’)

불가살

고려시대의 이야기에서 600년을 훌쩍 뛰어넘어 현대로 와서도 tvN 토일드라마 <불가살>의 긴장감은 여전히 팽팽하다. 사실 어찌 보면 다소 뻔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단활(이진욱)을 민상운(권나라)이 칼로 찌름으로써 불가살이었던 민상운이 단활의 혼을 빼앗아 죽음을 맞이하고 대신 단활이 불가살이 되었던 과거의 악연. 아내인 단솔(공승연)과 아이까지 죽인 민상운에 복수하기 위해 600년간의 세월을 인간으로 환생한 민상운을 찾아다닌 단활. 두 사람의 악연에 얽힌 복수극만으로 전개되었다면 <불가살>은 다소 앙상한 이야기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불가살>은 현대로 오면서 다양한 스토리의 변주를 가능한 장치들을 뒀다. 그건 환생, 업보 같은 인연 혹은 악연을 통해서다. 단활이 불가살이 되기 전에 그를 거둬준 아버지 단극(정진영)과 함께 모조리 잡아 죽인 귀물들은 인간으로 환생해 본능적으로 사람들을 해치는 살인마로 다시 등장한다. 그런데 이 귀물들이 단활과의 전생 악연으로 그의 혼을 빼앗아간 민상운을 죽이기 위해 하나 둘 몰려든다. 혼을 되찾고 복수를 하기 위해서라도 단활은 민상운을 귀물들의 공격으로부터 지켜내야 하는 흥미로운 상황이 만들어졌다. 제 손으로 죽이기 위해 귀물들로부터 보호해야 하는 상황. 

 

<불가살>이 가져온 인간으로 환생한 살인마 귀물들이라는 설정은 이 작품을 쓴 권소라, 서재원 작가의 <손 the guest>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동쪽바다 깊은 곳에서 찾아온 큰 귀신, 손이 어두운 마음을 가진 인간들에게 빙의되어 갖가지 엽기적인 살인을 저지르고 이를 막기 위해 영매, 사제, 형사가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이야기. 손에 빙의된 인간이 살인마가 된다는 설정은, <불가살>에서는 전생의 귀물이 환생해 살인마가 된 인간으로 재탄생한 느낌이다. 다만 달라진 건, <손 the guest>에서는 손에 의해 인간들이 속절없이 죽어나가는 광경이 이어지지만, <불가살>은 바로 그런 귀물들을 해치우는 불가살이라는 존재를 세워뒀다는 점이다.

 

흥미로운 건 업보에 의해 환생하는 인물들이 전생과는 다른 관계로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불가살이 된 채 600년을 살아온 단활이 드디어 민상운을 찾아냈지만 두 사람이 어딘가 그 이전에 다른 인연으로 엮여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지점이 그렇다. 단활의 상처를 민상운이 만지자, 순간 단활은 오래 전 그 여인과의 어떤 기억 한 자락을 환시처럼 보게 된다. 그 기억 속에서 민상운은 활짝 웃고 있다. 단활과 민상운이 혼과 불가살이라는 존재로 뒤얽힌 악연은 그 이전에 있었던 어떤 인연과 그것으로 생겨난 환생의 결과는 아니었을까. 

 

그런 추론을 하게 만드는 건 민상운에게 처절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서 단활로 하여금 복수를 다짐하게 만들었던 아내 단솔이 현대로 와서는 민상운의 동생으로 환생했다는 사실이다. 복수만을 꿈꾸며, 민상운을 지하 깊은 곳에 가둬 억겁의 세월을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만드는 형벌을 주겠다는 일념으로 살아온 단활로서는 혼돈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가 민상운을 죽인다면 그건 또다시 단솔과의 악연을 만드는 일이 된다. 

 

인연과 악연이 환생이라는 설정으로 반복되는 <불가살>의 세계관은 죽고 죽이는 치열한 싸움이 이어지지만,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모든 연을 끊어야 해탈할 수 있다는 불교의 세계관을 담고 있다. 복수 같은 욕망의 고리를 끊지 않는 한, 인연과 악연은 끝없이 이어진다. 그런 점에서 불가살이라는 죽지 않는 존재는 사실상 연의 고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모든 인간들도 마찬가지라는 걸 보여주는 것만 같다. 연의 고리 속에서 그들 역시 죽어도 다시 태어나는 불가살이나 마찬가지니 말이다. 

 

<불가살>의 독특한 세계관은 이처럼 불교적 연기론을 가져옴으로써 가능해졌다. 환생한 귀물들의 이야기는 마치 연쇄살인마들이 등장하는 범죄스릴러를 가능하게 하고, 그들과 싸우는 단활은 그래서 다크 히어로의 액션을 현대에서도 그려낼 수 있게 했다. 게다가 전생의 인연으로 엮어진 단활과 민상운 그리고 단솔의 얽힌 관계는 보다 복잡한 멜로적 색채까지 띠게 만든다. 흥미로운 재해석이 아닐 수 없다. 우리네 전통 설화 속 이야기를 끌어와 이토록 세련된 현대물의 스릴러 판타지를 구현해내고 있으니 말이다. (사진:tvN)

‘보이스2’, 성공적인 시즌제 드라마의 틀이 보인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끝난 것 같은 몰입감이다. OCN 주말드라마 <보이스2>가 또 한 시즌을 마무리했다. 총 12부작. 보통 16부작에서 20부작인 우리네 드라마 미니시리즈의 통상적인 양으로는 짧다. 하지만 이렇게 줄여놓으니 드라마의 압축도가 도드라진다. 워낙 한번 보면 빠져들 듯 볼 수밖에 없는 긴박감을 그 중요한 관전 포인트로 삼는 드라마인지라, 시쳇말로 ‘시간 순삭’한 그 느낌은 이 시즌 전체를 관통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번 <보이스2>는 엔딩에 이르러 실로 충격적인 결말과 함께 시즌3 예고를 내놓았다. 아예 시즌3의 부제가 ‘공범들의 도시’라고 붙여진 걸 보면 이미 작업이 들어갔다는 걸 알 수 있다. 미세한 소리까지 듣는 골든타임팀의 수장 강권주(이하나)가 아이의 구해달라는 소리를 따라간 곳에 녹음기가 설치되어 있고, 그 뒤로 시한폭탄이 폭발하는 장면으로 끝나는 엔딩. 

사실 보통의 드라마에서 이런 엔딩은 무수한 뒷말을 남기기 마련이다. 그것은 시청자들이 기대했던 엔딩이 아니라는 점도 있지만, 시즌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없는 우리네 드라마에서 엔딩은 말 그대로 드라마 전체를 끝맺음하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열린 결말이나 새드엔딩 같은 충격적인 끝마무리가 유독 비난을 많이 받는 건 그래서다. 

하지만 <보이스2>가 강권주가 폭탄과 함께 폭발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은 것은 다른 의미로 바라볼 수 있다. 그것은 이 드라마가 본격적으로 시즌제 드라마를 지향하겠다는 뜻이고, 그래서 시즌3에 대한 확실한 ‘떡밥’을 남기겠다는 의지로 읽히기 때문이다. 아쉬운 엔딩이나 충격엔딩은 그래서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점 때문에 다음 시즌에 대한 기대감을 크게 만든다. 애초 12부작의 짧은 틀을 만들었던 것도 그런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미드 같은 경우 이러한 시즌제의 흐름은 이미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래서 시즌1의 충격적 엔딩은 다음 시즌의 유입을 위해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 

<보이스2>는 12부작으로 짧게 만든 대신, 범죄 스릴러가 그 특성상 늘 해오던 구성방식을 살짝 벗어났다. 즉 범죄 스릴러는 한 가지 사건만으로 전체 분량을 채우기가 어렵기 때문에, 중간 중간 여러 사건들을 병렬적으로 보여주고, 전체를 꿰뚫는 중심 사건을 다루기 마련이다. <보이스> 시즌1은 그 방식을 그대로 따랐다. 그래서 2회에 한 사건 정도가 등장하고 해결되는 과정을 보여줬다. 

물론 <보이스2>도 전반부에는 각각의 몇 개의 독립적인 사건들을 배치했다. 하지만 중반 이후를 넘어가면서 도강우(이진욱)와 희대의 살인마 방제수(권율)가 대결구도를 이루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를 끝까지 풀어나갔다. 전체적으로 <보이스2>가 하나의 강렬한 사건을 다뤘다고 여겨지게 되는 건 한 사건에 대한 집중도가 훨씬 높았기 때문이다. 

<보이스>는 이제 시즌제를 표방하면서 시즌2가 해왔던 방식을 추구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여러 사건들을 그저 병렬적으로 해결해가는 게 아니라 하나의 중대한 사건을 좀 더 집중적으로 다루는 방식이다. 줄어든 회차는 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압축적인 힘을 부여한다. 

<보이스>의 본격적인 시즌제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건, 범죄스릴러라는 장르에 충실하다는 점과 강권주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구축해냈다는 점 덕분이다. 확실한 대표성을 지니는 캐릭터와 다양한 범죄스릴러의 소재들이 있다는 건 <보이스>가 가진 시즌제의 필요충분조건이 된다. 

성공적인 시즌제의 틀이 보이는 <보이스>가 지금의 우리네 드라마 제작에 있어 시사 하는 바는 적지 않다. 이제 눈높이가 높아진 시청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대안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덕지덕지 군더더기를 붙여 괜히 시간만 늘리는 드라마보다는 <보이스> 같은 압축적인 이야기의 힘을 추구하는 시즌제 드라마가 이제는 본격적인 우리네 드라마의 새로운 제작방식으로 자리할 그런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사진:O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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