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좋은 점은 좀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이진주 PD의 진심

연애남매

JTBC X 웨이브 ‘연애남매’의 이진주 PD를 만났다. 인터뷰는 아니었다(그래서 사실 현장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이 없다). 그저 차 한 잔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누고 싶었다. 도대체 이토록 따뜻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연달아 내놓는 이 인물이 궁금했다. 이 사람의 어떤 태도와 시선이 그걸 가능하게 하는가가. 

 

‘환승연애’라는 공전의 히트 프로그램을 탄생시킨 이진주 PD를 처음 만났던 건 꽤 오래 전 일이다. 아마도 나영석 사단에서 ‘꽃보다’ 시리즈를 경험하며 조연출로서 색깔을 드러내기 시작했던 시절이었다. 기억하기론 당시 이진주 PD는 엉뚱하게도 프로그램 이야기보다는 음악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관심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알았다. 그것이 ‘환승연애’에서 ‘연애남매’로 이어지는 그의 프로그램에 어떤 색깔을 입히게 됐는지. 

 

음악에 리듬과 박자 같은 흐름이 중요하듯이, 이진주 PD는 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감정의 흐름이었다. 그래서 주로 멜로드라마가 그러하듯이 어떤 인물이냐가 가장 중요하고 그 인물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감정들을 갖게 되고 그것이 관계 속에서 어떤 변화들을 갖게 되는가가 자연스러운 흐름 안에 들어가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채널 십오야 ‘빠삐용편’에 출연했을 때 나영석 PD가 이진주 PD에게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는 PD’로 소개하며 하지만 그만큼 ‘많이 벌어주는 PD’라 상찬한 건, 그의 연출방식이 인물의 감정에 집중함으로써 프로그램에 폭발력을 만드는 것이고 그래서 그 감정의 흐름이 끊기지 않게 하기 위해 몇 배의 제작비도 감수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감정들을 어떤 이유로 보여줘야 할까. 여기에는 갖가지 기획의도들이 의미를 더해 붙여지곤 하지만, 사실 대부분은 연출자가 재미있어하고 그래서 시청자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은 것들이 그 이유가 되곤 한다. 이진주 PD는 그걸 이런 말 한 마디로 담아 전했다. “출연자들을 여러 차례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들여다보려 하는데, 문득 어떤 좋은 점들이 보일 때가 있어요. 가슴을 툭 건드리는. 이런 좋은 점은 좀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시청자분들에게.” 

 

이런저런 수다를 떨었지만 그 많은 이야기들 속에서도 이 한 마디가 유독 내 마음을 움직였고 이진주 PD와 그가 만들어온 프로그램들을 이해하게 해줬다. 이진주 PD는 사람에 애정이 깊은 연출자다. 그래서 사람을 들여다보고 싶어하고 그 사람이 가진 좋은 점들에 먼저 감정적 요동을 경험하는 것 같다. 그러고나면 그런 점들을 또한 시청자분들에게도 전해주고 싶다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단순해 보여도 이 한 가지는 엄청난 출연 후보자들을 만나보고(그것도 여러 차례 다양한 방식으로 사전 인터뷰를 한다고 한다) 프로그램의 기획의도에 맞는 이들을 추려내며, 이들이 가진 ‘좋은 점들’을 끄집어내 시청자들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상황이나 미션들을 고민하고, 그렇게 찍어낸 수 백 개의 영상자료들을 매주 수십 명의 PD들이 달라붙어 편집을 통한 스토리텔링하며, 끝내는 하나의 관통되는 서사로 한 회분의 그 주 방영분을 내놓는 그 지난한 과정들을 즐겁게 견뎌내게 해주는 힘이 될 것이다. 

 

또한 이 인물의 ‘좋은 점들’을 시청자분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욕망은 프로그램을 따뜻하게 만드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연애남매’는 어쩌다 통념에 의해 ‘납작하게’ 소비되어 왔던 남매라는 관계를, 다양한 가족 구성과 정서적 관계를 가진 남매들을 출연시킴으로서 입체적으로 되살려낸 면이 있다. 겉으론 ‘킹받아’ 하면서도 속으로는 남다른 애정을 가진 남매들이나, 아예 대놓고 서로를 의지하는 존재라는 걸 드러내는 남매들이 등장해 보는 이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좋은 점들’을 꺼내보인다. 

 

연애라는 다소 사적인 지점에 가족이라는 보다 확장된 관점을 더함으로써 프로그램은 ‘연애 리얼리티’라는 틀의 한계를 벗어나 인간을 바라보는 ‘휴먼 리얼리티’로 나아간다. 그리고 이건 어쩌면 이진주 PD가 궁극적으로 나가보려는 세계일 것이다. 그는 연애는 하나의 좋은 계기이자 동력일 뿐, 궁극적으로는 사람을 들여다보려는 예능 PD다. 특히 사람의 ‘좋은 면’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수다를 떨던 와중에 문득, 이진주 PD가 하는 일이 내가 하는 일과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그램(영상)을 보고 거기서 어떤 의미나 가치를 찾아내려 애쓰는 일이라는 점 때문이다. 그 많은 영상자료들을 통해 하나의 의미가 되는 것들을 연결해 스토리텔링하는 것이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방식이 아닌가. 그래서일까. 자꾸 수다를 떨며 이진주 PD를 나도 모르게 ‘이진주 작가’라 부르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가 실제 인물들을 통해 써나가고 있는 작품의 세계에 우리가 깊게 빠져들어가는 건, 그 연출 필력이 만만찮은 이 작가와 우리가 같은 ‘좋은 점’ 속에서 공명하고 있다는 증거다. 우린 마치 음악을 듣는 듯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그 좋은 감정의 흐름 속으로 기꺼이 빨려들어가고 있다. 그 좋은 점들이 주는 웃음과 눈물을 공유하며. (사진:JTBC)

‘스케치’, 정해진 미래와 그 미래를 깨려는 사람들

JTBC 금토드라마 <스케치>는 일종의 두뇌게임 같은 드라마다. 미래에 벌어질 사건이 그려진 스케치라는 판타지 설정은 이 두뇌게임의 판을 제공한다. 그 능력을 가진 유시현(이선빈)이 그리는 스케치를 보며 그 그림이 어디서 누구에게 언제 벌어진 것인가를 찾아내고, 사건이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뛰고 또 뛰는 나비 프로젝트팀이 있지만, 이야기는 결코 ‘벌어질 사건’과 그 ‘사건을 막으려는 이들’의 단순한 과정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성 범죄자에게 아내를 잃고 폭주하는 김도진(이동건)과, 그를 회유해 미래에 사건을 저지를 인물을 사전에 제거해나가는 장태준(정진영)이라는 미스터리한 인물, 그리고 김도진에 의해 아내를 잃은 강동수(정지훈) 형사 같은 인물들이 가진 저마다의 욕망이 뒤얽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신약을 출시하려 하는 제약회사 대표 남선우(김형묵)를 김도진은 사전에 제거하려하지만, 남선우는 오히려 김도진의 아내를 죽인 강간범 정일수(박두식)를 감옥에 빼내고 그를 미끼삼아 김도진을 납치한다. 

남선우는 또한 제약회사의 신약 부작용 자료를 갖고 있는 오박사(박성근)를 제거하고 강동수에게 그 살인누명을 씌우려 계획한다. 하지만 스케치를 통해 오박사의 심장약이 바꿔치기 될 것을 알게 된 강동수는 마치 남선우의 계획대로 속는 척 하면서 김도진을 찾아내려 한다. 모든 게 강동수의 계획대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여기서 또 다른 변수가 발생한다. 그것은 무슨 일인지 장태준이 남선우에게 전화를 해 그가 함정에 빠져 있다는 걸 알려준 것. 결국 경찰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남선우는 장소를 바꿔 강동수와 김도진을 마주하게 만든다. 

이 정도의 스토리를 정리해보면, 사실 <스케치>라는 드라마가 결코 쉽지만은 않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이야기는 계속해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여기에 스케치로 그려진 그림들은 단서이면서 동시에 보는 이들을 혼돈에 빠뜨리는 트릭처럼 활용된다.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라 생각했던 이야기는 갑자기 어느 한 인물의 욕망이 개입되면서 방향을 틀어버린다. 시청자들의 예상은 여지없이 깨지고, 그 깨진 스토리만큼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이게 바로 <스케치>라는 드라마가 작동되는 방식이다. 이야기의 흥미를 계속 이어가기 위해서는 시청자가 갖는 예상치를 어느 지점에서 깨는 반전의 이야기가 들어가야 하고, 그렇게 틀어진 이야기도 또 어느 정도 흘러가서는 다시 또 다른 반전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렇지 못하고 시청자가 예상한 대로의 이야기가 전개된다면 맥이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뒤집히고 또 뒤집히는 두뇌게임의 연속은 그 이야기 속에 처음부터 깊이 발을 디딘 시청자들에게는 충분히 흥미로운 일이지만, 우연히 드라마를 보게 된 새로운 시청자들에게는 엄청난 진입장벽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저 인물들이 왜 저런 행동을 하는 것인지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애초에 이 드라마가 ‘인과율’이라는 치밀한 논리 게임으로 짜여지고, 그 인과율을 깨는 변수들에 의해 또 다른 인과율이 이어지는 과정을 이야기의 중요한 기폭제로 삼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한계다. 두뇌게임은 어느 정도 그 게임판에 익숙해져야 즐길 수 있는 것이 된다. 이것이 <스케치>가 가진 남다른 묘미인 동시에 한계가 겹쳐지는 부분이다. 

ㅁ이런 한계를 넘기 위해서 무엇보다 필요한 건 김도진이나 강동수 같은 주요인물들이 가진 감정과 정서에 시청자들을 깊이 이입시키는 일이다. 복잡하게 얽힌 거미줄 같은 사건 속에서 적어도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인물들이 갖는 감정선을 손에 쥐어주는 것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케치>는 따라가야 할 인물들이 너무 많다는 느낌이다. 김도진과 강동수의 이야기에 이어 이제는 유시현의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고 거기에는 다시 나비 팀을 이끌고 있는 문재현(강신일)과의 관계도 얽혀있다. 여기에 유시현의 오빠인 유시준(이승주)까지 등장하면서 인물들은 더 복잡해졌다. 장태준이라는 미스터리한 인물도 빼놓을 수 없고.

두뇌게임의 묘미를 안겨주는 이야기 전개의 재미는 물론 충분하지만, 좀 더 상황을 정리해줄 수 있는 인물들에 대한 집중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이미 이 드라마를 즐기고 있는 시청자들이라면 상관이 없겠지만 이제라도 드라마에 관심을 갖는 이들을 위해서는 이 게임판과 인물들에 대한 보다 명쾌한 설득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사진:JTBC)

장단점을 공유한 인물들, ‘라이브’ 그 따뜻한 느낌의 정체

사실 공권력을 행사하는 모습으로 우리 앞에 등장하곤 하는 경찰의 인간적인 모습을 담아낸다는 시도는 간단치가 않다. 대학생들의 총장실 점거 농성을 해산시키기 위해 투입된 경찰들의 모습은 자칫 잘못하면 드라마가 그 공권력 행사 자체를 미화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tvN 주말드라마 <라이브>는 실제로 이 장면으로 인한 논란을 겪기도 했다. 

제작진이 해명한 것처럼, 그 장면은 미화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고 그런 명령을 내리는 상부에 대한 비판이 담긴 장면일 게다. 상명하복의 경찰조직에서 퇴출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이제 갓 경찰제복을 입은 신출내기들은 위에서 떨어지는 명령에 복종할 수밖에 없다. 물론 드라마이니 그걸 거부하는 문제적 인물을 그려낼 수도 있는데 어째서 그렇게 하지 않았냐고 물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서민적 영웅상을 판타지로 그려내려는 건 <라이브>가 애초에 하려던 이야기가 아니다. 

<라이브>가 하려는 이야기는 힘 있는 자들이 공권력을 행사하는 걸 정당화하려는 것이 아니고, 그 공권력 행사에서 피해를 보는 일반 국민들이 있지만, 그 명령을 따라야 살아갈 수 있는 경찰들도 그 힘 있는 자들에 의한 또 다른 피해자일 수 있다는 거다. 제아무리 술에 취해 난장판을 벌여도 자신들이 지켜야할 국민이기 때문에 “선생님”이라 부르며 챙기는 그들 또한 국민을 향해 공권력을 행사하고픈 마음이 있을 리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들의 애환만을 담는다는 건 자칫 미화의 소지가 남을 수 있다. 그래서 <라이브>가 선택하고 있는 건 각각의 인물들이 특정한 상황 속에서 때론 좋은 선택을 하지만 때론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한다는 걸 제목처럼 ‘가감 없이’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인간관은 노희경 작가가 인물을 바라보는 일관된 시각이기도 하다. 사람은 단순히 선악으로 나뉘어질 수 없고 장단점을 공유하고 있다는 시각이 그것이다.

오양촌(배성우)은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일에 있어서 마치 ‘살아 움직이는 매뉴얼’ 같은 경찰이다. 하지만 강력계에서 오래 일하다 보니 생겨난 ‘거친 면’들이 그의 일상까지도 조금씩 갉아먹기 시작한다. 그는 현장에서는 누구보다 능력 있는 경찰이지만,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끔찍한 인물이다. 아내가 그에게 불쑥 이혼하자고 말하게 된 건 바로 이런 점들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이제 갓 경찰생활을 시작한 염상수(이광수)가 부사수가 되었으니 갖은 가시밭길이 펼쳐질 수밖에 없다. 툭하면 폭력을 행사하고 욕을 해대는 오양촌에게 염상수는 결국 폭발하고 만다. 그것 역시 염상수라는 인물이 가진 단점 중 하나다. 그는 무조건 살아남기 위해 어떤 굴욕도 참아내려 하지만 그건 진심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문제를 일으킨다. 

취객에게 두드려 맞을 때 그를 제압하지 않고 참고 있었던 일 때문에 그는 오양촌에게 심한 질책을 듣는다. 그래서 신고를 받고 오양촌과 함께 간 어느 집에서 쓰러져 위급한 상황에 처한 사람을 ‘현장 보존’을 하지 않고 구해내려다 또 질책을 듣는다. 매뉴얼대로 하지 않아 질책을 듣고, 매뉴얼을 어기고 사람을 우선 구해내려 한 행동 때문에 또 질책을 듣는다. 그가 가진 문제는 경찰로 살아남기 위해 너무 열심히 노력한다는 점이다. 자기 존재를 그렇게라도 드러내기 위해. 

그러니 오양촌도 염상수도 장점만큼 단점이 뚜렷한 인물들로 그려진다. 두 사람은 결국 갈등이 극에 달하게 되고 염상수는 오양촌의 멱살을 쥔다. 그런데 그런 폭발은 어쩌면 오히려 이 인간관계에 부족한 면을 보이는 두 사람에게 해결책이 되어줄 수도 있다. 그건 다른 측면에서 보면 두 사람이 하는 어색한 방식의 소통일 수도 있으니.

그래서 <라이브>에는 서민의 편에 선 판타지적인 영웅도 아니고 그렇다고 서민들을 향해 발길질을 해대는 부정적인 공권력도 아닌 경찰의 모습이 그려진다. 음주운전을 하고도 자신들이 국회의원이라며 지구대에서 그들은 대장 기한솔(성동일)을 불러 오히려 뺨을 올려 부친다. 하지만 그 권력자들 앞에서 기한솔은 뭐라 항변하지 못한다. 물론 그 장면들을 몰래 카메라에 담고 그들을 제압해 넘기지만 결국 서장은 그들을 풀어준다.

이 씁쓸한 현실 속에서 기한솔과 지구대 사람들은 소주 한 잔으로 그 설움을 달랜다. 기한솔은 자신이 몰래 카메라를 찍었고 그걸로 선거철에 이들을 한방에 날려버릴 거라고 호언장담했지만 그건 말 그대로 잠시라도 지구대 사람들이 기분 좋으라고 한 말일 뿐이다. 실제 그런 영웅적인 행동(?)을 한다는 건 자신의 생계를 포기하는 일일 수 있으니 말이다. 

지구대 경찰관들의 이러한 딜레마에 빠지는 상황들은 그래서 미화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그렇게 만드는 권력시스템의 구조적 문제들을 비판적으로 드러내기 위함이다. 또 그들은 모든 걸 국민의 편에서 척척 해내는 영웅들도 아니다. 그저 우리와 같은 직업인의 한 사람일 뿐이다. 단점도 있지만 사람으로서 어떤 인간적인 고민도 하는 그런 한 사람으로서의 경찰. 그것이 <라이브>가 가감 없이 그려나가는 경찰의 진면목이 아닐까. 노희경 작가의 특별한 인간관이 그러하듯이.(사진:tvN)

‘감빵생활’, 신원호 PD가 보여주는 인물에 대한 무한애정

예능 프로그램을 연출했던 경험이 있어서일까. tvN 수목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한 감방에서 지내던 고박사(정민성)가 다른 교도소로 이감되어 가게 된 그 과정을 보면 신원호 PD가 얼마나 인물 하나하나에 애정을 쏟는가가 느껴진다. 장기수(최무성)와 사실은 동갑이었던 고박사가 헤어지는 순간에 즈음에 서로 말을 놓으며 친구처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시청자들의 아쉬움을 마치 장기수의 시선으로 다독여주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떠나는 고박사를 이송하는 팽부장(정웅인)이 가는 길에서나마 편하라고 수갑을 풀어주자 고박사가 법조항을 들먹이며 다시 수갑을 채우라 하는 장면도 훈훈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고박사의 캐릭터가 아닌가. 겉으로는 툴툴대고 거칠어 보이지만 수감자들에게 남다른 애정을 보여 왔던 팽부장에게 고박사는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떠나면서 고박사가 제혁(박해수)에게 남긴 노트 선물은 묵직한 울림을 남긴다. 고박사의 방식으로 제혁에 대한 애정이 그 노트 속에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제혁이 재활훈련을 할 때 매일 매일 던진 공의 수나 그 때 그 때 달라진 컨디션의 변화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늘 서류를 통해 잘못된 것들의 시정을 요구하고 툭하면 법 조항을 꺼내는 고박사라는 다소 딱딱해 보일 수 있는 인물이 어느새 정이 들었고, 그래서 떠나는 과정에서 그 예우를 다하는 듯한 마음이 고박사의 퇴장에서 여지없이 느껴진다.

드라마 초반에 장기수(최무성)와 마치 부자지간처럼 등장했던 장발장(강승윤)은 석방이 되어 감방을 떠나게 되면서 그것으로 끝이라 여겨진 바 있다. 실제로 장발장은 감방을 나서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버린 인물이었다. 하지만 장발장이 장기수를 잊지 않고 다시 면회를 오고 그와 함께 지낼 집을 마련하기 위해 돈을 벌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내놓는 장면을 보면 이 드라마가 장발장이라는 인물을 잊지 않고 끝까지 챙기려 하고 있다는 걸 새삼 확인하게 된다. 바로 이 장발장의 재등장이 있어 고박사의 퇴장 역시 그걸로 끝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처음 구치소에 제혁이 들어올 때 같이 들어오게 된 법자(김성철)도 다른 교도소로 이감해가면서 그걸로 끝이라 생각했지만 다시 돌아와 제혁을 돕는 인물이 되었다. 제혁에 의해 죽을 위기에 놓였던 엄마가 수술을 받은 은혜를 입은 법자이기 때문에 그는 제혁을 위해 어떤 일이든 보은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일찍 퇴장했지만 다시 돌아와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 것.

제혁을 찌르고 갔던 똘마니(안창환)가 다시 돌아오는 이야기도 그렇다. 물론 이미 그런 폭력을 저질렀던 인물을 다시 한 감방에 들어오게 한다는 설정은 조금 현실성이 떨어지는 면이 있지만, 분명 이 인물은 다시 제혁과 어떤 관계의 반전을 보여줄 것으로 보인다. 지금껏 거의 모든 인물들이 우리가 생각해왔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면서 어떤 놀라움과 감동까지 줬던 것처럼 말이다. 

사실 드라마에서 조연의 경우 몇몇 역할을 수행하고 사라지는 경우도 흔하다. 그것은 조연이 드라마 스토리를 위한 기능적인 역할에 머물 때는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완성도 높은 드라마일수록 주연만큼 조연의 존재감이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드라마의 완성도를 판정하는 기준으로서 주연이 아닌 조연을 들여다보는 일은 꽤 의미가 있다. 그건 작품이 얼마나 세세하게 주변 인물들까지 허투루 활용하지 않는다는 걸 드러내는 일이고, 또한 작품이 그만큼 풍부하다는 걸 말해주는 것이니 말이다.

예능 프로그램의 경우 한 팀이 결성이 되면 마치 유사가족 같은 끈끈함이 만들어지고, 그렇기 때문에 인물 하나가 빠지거나 새로운 인물이 들어가는 일은 그만큼 신중해진다. <무한도전>이나 <1박2일> 같은 프로그램에서 그 구성원들이 바뀔 때마다 얼마나 많은 말들이 나왔던가를 확인해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비롯해 <응답하라> 시리즈까지 신원호 PD가 연출한 작품들을 보면 바로 이런 예능적인 팀의 끈끈함이 드라마 속에서도 고스란히 발견된다. 어느새 이 감방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는 제혁과 장기수, 문래동 카이스트(박호산), 한양(이규형), 유대위(정해인) 그리고 고박사까지 한 가족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이러한 신원호 PD의 인물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정성 때문이다. 

떠나는 고박사와 떠났다 다시 등장한 장발장 그리고 그 자리에 새로 들어온 똘마니 같은 인물들의 들고 나는 과정에서 신원호 PD는 허투루 인물을 쓰는 법이 없다. 그 무한애정은 이 드라마의 모든 인물들에 닿아 있다. 이를 테면 제혁의 친구 역할인 준호(정경호)의 남다른 훈훈함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이나, 그와 연애를 시작하는 제혁의 동생 제희(임화영)나 해수의 연인인 지호(정수정) 같은 인물들도 잠깐씩 등장하지만 그 존재감만큼은 남다르다. 이 많은 인물들이 하나하나 빛나게 느껴지는 건 그래서 그저 우연히 생긴 기적이 아니다. 그것은 신원호 PD의 정성어린 손길이 닿아 생겨난 당연한 결과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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