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수다’ 출연 이후, 가수들에게 무슨 일이

'나는 가수다'(사진출처:MBC)

‘나는 가수다’가 시작된 지 채 1년도 안된 상황이지만, 이제 어디서든 우리는 이 괴물 같은 프로그램의 힘을 느낄 수 있다. 그 힘은 이 무대에 섰던 가수들을 통해 드러난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기 전 틀어주는 광고 속에서도 우리는 이들을 발견하고, TV는 물론이고 인터넷 포털 사이트 메인 광고에도 등장하는 이들을 보게 된다. 대학생이라면 축제 무대에서, 직장인이라면 행사 무대에서, 혹 지역민이라면 인산인해를 이룬 콘서트장이나 지역 축제에서 이들을 발견했을 것이다. 심지어 여행길 우연히 들른 휴게소의 불법복제 음반 가판대에서도 우리는 이들을 발견한다. 가수들. 그것도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전까지 대중들에게 그처럼 익숙하지만은 않았던 그들이 이제는 방송프로그램, 광고, 콘서트, 음원차트, 행사 등을 거의 독식하고 있는 상황. 도대체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의 출연 이후 이 가수들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 임재범, 김범수, 박정현, 윤도현 등 ‘나는 가수다’ 출신 가수들의 방송 출연 이후 성적표를 들여다봤다.

임재범, 단 세 곡으로 100억 원대 가치를 만들다
임재범은 우리네 록의 역사에서 한 지점을 차지하는 록커지만,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기 전까지 힘겨운 삶을 살아왔다. 록이라는 장르는 대중들에게서 점점 멀어졌지만, 록커라는 자존심이 그로 하여금 대중들과의 야합(?)을 허락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가수다’는 달랐다. 가수의 정체성을 묻는 이 예능 프로그램은 임재범의 록커로서의 날개를 다시 달아주었다. 그는 이 무대에서 ‘너를 위해’, 남진의 ‘빈 잔’ 그리고 윤복희의 ‘여러분’ 단 세 곡을 부르고 맹장수술 때문에 자진 하차했다. 하지만 이 세 곡이 가진 임팩트는 컸다. 단 세 곡만으로도, ‘나는 가수다’에서 9개의 음원을 내놓고 최대의 음원수익을 가져간 윤도현, 박정현, 김범수와 비교될 정도다. 평균적으로 4,5억 원의 음원수익을 올렸다고 평가되는 윤도현, 박정현, 김범수만큼 임재범도 그에 상응하는 수익을 올렸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것은 다른 수익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그는 국내 최대 음반 매니지먼트사인 예당과 전속 계약을 체결했는데 업계 관계자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계약금만 10억 원이 넘었을 거라고 한다. 이것은 예당 측에서 밝힌 임재범 개인의 경제효과가 무려 100억 원에 달한다는 분석을 통해서도 대충은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이미 광고계에서 특 A급 대우를 받고 있는데 통상적으로 A급대우가 연간 출연료 5억 원 정도를 받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의 출연료는 6,7억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박지성, 박태환, 김연아 같은 특A급 스포츠스타들과 거의 비슷한 수치다. 이런 광고 제안이 현재 7,8군데에서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 상황을 생각해보면 그 액수는 50억 원에 달한다. 여기에 콘서트 수익과 행사 수익 또한 빼놓을 수 없다. 100만 원대의 암표가 논란이 됐을 정도로 폭발적인 임재범의 콘서트는 연말까지 콘서트가 잡혀진 상태이고, 그의 행사비는 한 회 출연에 5,6천만 원까지 치솟아 올랐다. 전속계약을 맺은 예당 측이 8,9개월이면 계약금 이상을 간단히 벌어들일 수 있으리라 판단하는 건 속단이 아닌 셈이다.

임재범의 ‘나는 가수다’ 임팩트가 특히 컸던 점은 그가 가진 거친 매력의 캐릭터와 그간 살아왔던 록커로서의 삶이 파괴적인 가창력을 가장 잘 돋보이게 해주는 이 프로그램과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여러분’ 같은 곡은 임재범이 살아왔던 삶의 이야기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대중들의 심금을 울렸다. 여기에 이른바 김건모 재도전 여파로 1달 간 방영되지 않으면서 그만큼 증폭되었던 기대감도 한 몫을 차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새로 시작하는 자리에 임재범은 그 기대감을 충족시켜준 주인공이 되었던 것이다.

대세 김범수, 비주얼의 역습
임재범이 새로 시작한 ‘나는 가수다’의 수혜를 입었다면, 김범수는 재도전 여파로 잠정 중단된 프로그램의 수혜를 입은 가수다. 가온차트에 의하면 그가 잠정 중단 직전에 부른 이소라의 ‘제발’은 전체 디지털 종합 차트 1위를 기록했는데, 2월28일부터 6월25일까지 무려 다운로드 231만4723건, 스트리밍 2365만3211건으로 약 2600만 명이 온라인을 통해 들었다고 한다. 즉 국민의 절반이 이 노래를 들었다는 얘기다. 즉 이렇게 된 데는 ‘제발’이 1위를 기록한 후 한 달여 간 ‘나는 가수다’의 새로운 음원이 등장하지 않았던 효과도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김범수의 노래에 대한 관심은 고스란히 최근 그가 발표한 정규 7집 앨범 파트2로 이어졌다. 타이틀곡인 ‘끝사랑’을 비롯해 수록된 7곡 모두가 음원차트 10위 권에 오른 것. 음반의 음원수익만으로도 수억 원을 벌어들인 셈이다.

하지만 명예졸업을 하기까지 누적된 음원들로 인해 5억 원에 달하는 음원수익을 얻은 것보다 더 큰 것은 그가 ‘비주얼 가수’로의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한때 심지어 ‘얼굴 없는 가수’로 생활했던 그가 이제 광고에서까지 ‘대세’가 된 것은 그의 가창력을 통해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바꾼 ‘나는 가수다’의 무대 덕분이다. 그는 최근 현대자동차그룹의 광고 캠페인 '버스 콘서트'의 모델로 발탁돼 데뷔 13년 만에 CF촬영을 했다. 또 가전제품과 금융업계 쪽과도 얘기가 진행 중이어서 최소 2,3개의 광고를 더 찍을 전망이라고 한다. 물론 처음 찍는 만큼 광고료는 1억 원 미만으로 책정되어 있지만 이것이 ‘비주얼 가수’에게 상징하는 바는 크다.

김범수의 대박 수익은 결국 그의 가장 큰 장기인 무대에서 나온다. 즉 콘서트와 행사 수입이다. 지난 8월 김범수의 전국 콘서트의 시작을 알린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의 ‘겟올라잇!’ 콘서트는 총 1만 명의 객석을 가득 메울 정도로 성황리에 끝이 났고, 11월까지 총 11개 도시를 돌며 전국 투어가 이어질 예정이다. 보통 회당 수익으로 1억 원 정도를 받는 상황을 감안해보면 10억 이상의 수익을 낸다는 얘기다. 여기에 대학축제나 기업행사 수익 또한 쏠쏠하다. 한 번에 3,4000만 원의 최고 대우 출연료도 출연료지만 부쩍 늘어난 행사횟수는 가희 제2의 전성기라 해도 전혀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달라진 것은 김범수에 대한 방송가의 입장이다. 그간 ‘얼굴 없는 가수’로 섭외 대상조차 되지 못했던 김범수는 최근 ‘승승장구’에 1인 게스트로 출연했고, ‘힐링캠프’에 초대되어 특유의 예능감을 뽐냈다. 진정한 비주얼 가수로 탈바꿈한 김범수의 창창한 앞날이 예상되는 지점이다.

박정현, 음악 요정의 탄생
임재범과 ‘너를 위해’를 불렀을 때부터 박정현의 가창력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박정현의 이미지는 ‘노래 잘하는 가수’ 그 이상을 넘지 못했다. 오히려 그녀 특유의 자유자재로 고음과 저음을 넘나들며 한 편으로는 속삭이듯 다른 한 편으로는 절규하듯 부르는 창법은 심지어 ‘가창력만 자랑하는 가수’로 여겨지기도 했다. 게다가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탓에 어색한 한국어는 대중들과의 거리를 더 멀게 만들었다. 하지만 ‘나는 가수다’를 통해 그녀는 이 모든 것들을 뒤집었다. 그저 노래를 잘하는 게 아니라 마치 연극을 하듯 노래를 잘 표현하는 그녀를 발견하게 되었고, 무엇보다 무대 바깥에서의 여전히 소녀 같은 순수함을 보게 되었다. 왜소한 체구는 엄청난 가창력과 반전을 이루며 그녀의 가수로서의 이미지를 더욱 크게 만들었고, 어색한 말투는 귀여움으로 바뀌었다. 노래를 통해 대중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 그녀는 노래라는 아우라를 날개로 가진 요정이 된 것이다.

명예졸업을 하기까지 9곡 거의 모두를 음원차트에 올려놓은 박정현은 중간 중간 발표한 드라마 OST 등을 합쳐 5억 원 이상의 음원수익을 확보했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껏 계속 음반을 발표했지만 주목받지 못했던 그간의 상황과 비교해볼 때 이건 거의 벼락에 가깝다. 특히 콘서트와 행사에서 박정현의 존재감은 더더욱 빛나고 있다. 지난 5월 LG아트센터에서 열린 단독콘서트는 5회 연속 매진을 기록했다. 또 그녀는 김범수, 윤도현과 함께 가을 대학 축제와 행사 섭외대상 1순위로 불리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녀의 부가수익으로 놀라운 점은 그녀가 14년 만에 처음으로 CF를 찍었다는 점이다. 음료브랜드 '아침에 주스'에 이어 친환경 유기농 생리대 브랜드인 '나트라케어', 보험, 제약광고까지 연이어 모델로 발탁된 그녀는 지금도 10여 개 업체로부터 모델 제의를 받고 있다고 한다. 광고료는 1억 원 미만으로 알려져 있지만 박정현으로서는 이른바 요정으로 불릴 만큼의 가창력과 외모를 이미지로 가졌다는 큰 의미가 있다.

이런 이미지 변신이 가져온 효과는 방송출연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녀는 ‘무릎팍 도사’에 게스트로 출연한 데 이어 ‘위대한 탄생2’의 멘토로서 자리하고 있다. 과거 방송 출연이 전무했던 그녀로서는 엄청난 변화인 셈이다.

윤도현, 가장 대중적인 록커의 탄생
윤도현은 록커이면서도 방송 출연에 있어 활발한 활동을 해온 이례적인 경력을 갖고 있다. 즉 록커이면서도 대중적인 이미지를 동시에 갖춘 인물이라는 얘기다. 그런 그가 ‘나는 가수다’라는 제 물을 만났다. 노래에 방송에 익숙한 토크 능력까지 갖춘 그는 이소라 하차와 함께 ‘나는 가수다’의 MC 역할을 맡기도 했다. ‘윤도현의 러브레터’로 최고 주가를 올리다 프로그램이 바뀌면서 방송활동이 위축됐던 상황을 생각해보면 ‘나는 가수다’는 윤도현이 다시 재도약하는 계기가 되어준 프로그램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역시 명예졸업은 아니지만 끝까지 노래를 불러 가장 많은 음원을 차트에 올림으로써 명예줄업을 한 박정현, 김범수만큼의 음원수익을 얻었다. 하지만 이러한 음원 수익보다 더 중요한 것은 ‘누구나 좋아할 수 있는 록커’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했다는 점이다. 이로써 그 역시 광고계가 주목하는 인물이 되었다. 그는 정엽과 함께 해태 ‘부라보콘’을 또 정엽, 김건모와 함께 진로 ‘참이슬’ CF에 나란히 출연했다. 이밖에도 특유의 바른 이미지 덕분에 공익광고에도 등장하는 등, 그의 광고 이미지는 다양한 연령대를 포괄하는 특징을 보여준다. 윤도현의 광고료는 A급에 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역시 록커 윤도현의 자리는 무대다. 윤도현의 행사는 대학에서 특히 빛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만큼 록이 가진 젊음의 느낌이 어필하는 탓이다. 대학 축제 섭외에 있어 작년보다 두 배 이상이 들어왔다는 YB는 올해 5월 한 달 동안 매주 4,5회의 대학축제 무대에 섰다고 한다. 3,4000만 원의 가장 높은 수준의 행사료를 받는 YB의 경우 이 한 달 동안 약 5억 원 정도의 수익을 올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윤도현의 진가는 음악 프로그램이 날로 많아지는 현재의 방송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만큼 검증된 진행능력과 가수로서의 실력, 게다가 대중적인 호감도까지 두루 갖추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의 인기는 록이라는 음악에 있어서의 비인기종목(?)의 부흥을 이끌고 있다는 가치를 갖는다. 대중적인 록커, 윤도현. 그로 인해 이제 록은 남녀노소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장르로 다가오게 되었다.

재미 못 본 백지영, 재미 본 정엽, 김연우, JK김동욱
모두가 ‘나는 가수다’를 통해 재미를 본 건 아니다. 대표적인 가수가 백지영이다. 백지영은 ‘나는 가수다’ 초반에 확실한 자신만의 스타일을 선보였지만 재도전 여파로 한 달 간 방송이 중단되는 상황에서 스스로 하차선언을 함으로써 이런 모든 부가수익을 얻지 못하게 되었다. 그녀가 하차선언을 한 것은 물론 8집 앨범 발매를 위한 것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앨범은 ‘나는 가수다’의 경연곡에 밀려 음원차트에서 부진을 면치 못했다. 결국 음반 활동 자체를 조기 중단하게 된 그녀는 인터뷰를 통해 “‘나는 가수다’ 하차를 후회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첫 번째 탈락자가 됐던 정엽이나 노래 두 곡 부르고 탈락했던 김연우, 그리고 어이없게도 노래를 부르다 멈추고 다시 불러서 스스로 하차하게 된 JK김동욱은 짧은 출연이었지만 대중들에게 강한 임팩트를 남김으로써 ‘나는 가수다’ 효과를 톡톡히 입은 가수들이다. 이들은 ‘나는 가수다’ 출연 이후 콘서트 대박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방송이 짧았던 만큼 큰 아쉬움이 콘서트 수익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나는 가수다’를 통해 확실한 자기만의 색깔을 드러낸 정엽은 윤도현과 함께 두 편의 광고를 찍었고, 김연우는 ‘라디오스타’ 같은 토크쇼를 통해 숨겨둔 예능감을 선보이며 이른바 ‘연우신’으로 불리는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본 원고는 <우먼센스>에 게재된 글입니다)


'나가수', 경쟁말고도 할 이야기는 많다

'나는 가수다'(사진출처:MBC)

'나는 가수다'의 핵심은 누가 뭐래도 경연이다. 그 서바이벌이 있기 때문에 긴장감이 생기고 최고의 무대가 생기며 최고의 가수들이 재발견된다. 하지만 '나는 가수다'는 예능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경쟁에만 집중하게 되면 자칫 웃음을 잃어버릴 수 있다. 처음 '나는 가수다'라는 새로운 예능을 짤 때 가수만이 아니라 매니저로 개그맨들이 그들과 짝패를 이루게 한 것은 이 균형을 맞추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나는 가수다'의 카메라가 지금껏 지나치게 무대에만 집중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이것은 이 특별한 예능의 첫인상을 만드는 일이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 '나는 가수다'는 대중들에게 특별한 무대를 선물하는 프로그램이다. 가수들은 긴장하고, 긴장한 만큼 최대치의 무대를 선보이며, 관객들은 호응을 넘어서 감동한다. 무엇보다 무대 위에 오르는 가수들이 가진 이야기들은 노래와 어우러져 깊은 감흥을 선사한다.

이 '신들의 무대'에, 개그맨들이 낄 자리는 없어 보인다. 자칫 나댔다가는 오히려 욕을 먹기 일쑤다. 대중들은 팽팽한 긴장감을 즐기고 있는 중인데, 개그맨들이 웃음을 주기 위해 툭 던지는 한 마디는 빵 터지지 않으면 긴장감만 뺏는 객쩍은 소리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경연이 벌어질 때 재미를 위해 하는 개그맨들의 순위놀이가 논란이 된 것은 '나는 가수다'라는 무대가 어떤 균형을 잃고 예능의 틀을 벗어나고 있다는 전조이기도 하다.

임재범의 등장은 '나는 가수다'의 득이면서 독이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큰 효과는 경연의 야생성을 임재범이 확실하게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헝그리 록커 같은 이미지로 정글 같은 무대에 올라 마치 죽을 듯이 노래하는 그 모습은 우리는 물론 가수들마저 소름끼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야생의 느낌은 '나는 가수다'의 무대를 피가 철철 흐르는 전쟁터처럼 인식하게 만들었다. 가수들은 지쳐갔고 무대를 씹어 먹을 듯 피를 토하며 부르는 모습들은 처음에는 전율이었으나 차츰 피로감으로 변하게 되었다.

다시 예능으로의 귀환이 필요해진 시점이었다. 마침 임재범이 맹장수술로 하차하게 된 것은 물론 신정수 PD의 말대로 어떤 존재감의 상실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나는 가수다'의 기회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 물꼬를 누가 트느냐는 것이다. 개그맨들이 다시 전면에 나서는 것은 대중들이 바라는 일이 아니다. '나는 가수다'의 주인공은 개그맨이 아니라 가수이기 때문이다. 결국 나설 수 있는 건 가수들이다. 김범수는 고맙게도 그 총대를 기꺼이 멨다.

고 앙드레 김의 의상을 입고 무대에 오르고 비주얼에 집착하는 김범수의 변신은 그 신호탄이 되었고, 무대에서 쪼쪼댄스를 박명수와 함께 추려고 준비하는 김범수의 모습은 유쾌한 도발이었다. 한때 '얼굴 없는 가수'를 콘셉트로 활동하기도 했던 그가 거꾸로 비주얼을 강조하고 춤을 추는 모습은 지금까지 경쟁의 긴장감으로 굳어진 '나는 가수다'의 어깨를 풀어주었다. 가수들은 웃었고, 조금 풀어진 분위기에서 개그맨들은 그간 참아왔던 애드립을 쏟아냈다.

애초에 이렇게 과도한 긴장감을 털어내기 위해 노력했던 가수가 바로 김건모다. 김건모가 '립스틱 짙게 바르고'를 부르다 입술에 진짜 립스틱을 바르는 퍼포먼스를 보였던 건 그가 이 균형점(오디션의 긴장감과 예능의 이완)을 맞춰 보려한 시도였다. 물론 시기가 좋지 않았다. 그 시기는 '나는 가수다'의 무대가 대중들에게 오롯이 긴장감이 넘치는 경연장으로 받아들여지던 때였으니까. 즉 '나는 가수다'의 가수들이 자신의 가창력을 완전히 대중들에게 인식시키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김범수는 상황이 다르다. 그는 이미 이 무대에서 최고의 가창력을 가진 가수라는 것을 입증했다. 이소라의 '제발'을 재해석한 무대에서 경연 1위를 차지했고, 그 어려운 조관우의 '늪'을 가성이 아닌 진성으로 마치 헤비메탈을 하듯 불러 대중들을 소름끼치게 만들었다. 그러니 김범수는 이제 가창력이 아니라 가수의 또 다른 면모들을 보여줘도 되는 상황이다. 무대를 즐기는 것이 가창력 자랑보다 관객들을 더욱 즐겁게 할 수 있다는 걸 그는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나는 가수다'의 무대가 가진 가창력은 이미 확고하게(어쩌면 지나치게) 대중들의 인식에 자리했다. 하지만 이것은 가수의 정체성에 일부분에 불과하다. 이제 가창력 자랑을 넘어서서 가수의 또 다른 정체성을 끄집어낼 시기다. '나는 가수다'는 바로 그 다양한 가수의 매력을 하나하나 뽑아내 정체성으로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아닌가. 김범수의 댄스가 기대되는 건 '나는 가수다'가 지나친 경연의 피로감을 덜어내고, 이 다양한 가수의 매력을 볼 수 있는 신호탄이 되지 않을까 기대되기 때문이다.


가수, 무대, 음악의 조화가 불러온 진정성의 힘

'나는 가수다'(사진출처:MBC)

도대체 무엇 때문이었을까. 임재범도 울고 동료가수도 울고 관객도 울고 시청자도 울었다. 이것은 '나는 가수다'라는 무대의 힘이었을까, 임재범이라는 가수의 힘이었을까, 아니면 '여러분'이라는 노래의 힘이었을까. 아마도 이 세 요소 모두였을 것이다. 거기에는 가수들의 스토리를 담고 그들의 무대를 최고치로 끌어올려주는 '나는 가수다'라는 무대가 있었고, 그 무대라는 정글에 거친 삶을 그대로 노래에 녹여내며 부르는 가수 임재범이 있었으며, 무엇보다 가사 하나하나가 힘겨운 이들에게 위로를 주는 '여러분'이라는 곡이 있었다. 이 진정성 덩어리의 무대를 보고 눈물을 흘리지 않을 강심장이 있을까.

임재범이 '나는 가수다'에서 '여러분'을 부른다는 그 사실 자체가 기대감을 자아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것은 아마도 '여러분'이라는 곡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서울국제가요제에서 윤복희가 불러 대상을 탄 이 곡은 당시에도 큰 화제가 되었었다. 윤복희의 절절한 가창력에 가요제가 갖는 라이브 무대의 감동, 게다가 '여러분'이라는 곡이 전하는 가수의 진정성이 그걸 바라보는 관객들의 심금을 울렸기 때문이다.

'여러분'이라는 곡은 노래가 주는 기쁨과 가수라는 직업이 가진 소명을 담은 자기 고백이다. 괴로울 때 위로해 주는 존재이고 서러울 때 눈물이 되는 존재이며 두려울 때 등불이 되고 쓸쓸할 때 벗이 되어주는 존재. 그것이 가수의 소명이고 노래의 힘이다. 그래서 가수는 '여러분의 영원한 노래'가 되고픈 것이다. 그리고 정작 자신이 힘들 때 자신을 위로해주는 건 그렇게 자신을 노래가 되게 해주는 '여러분'이라는 존재라는 것.

윤복희가 처음 이 노래를 불렀을 때 대중들이 감동한 것은 그 놀라운 가창력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 노래가 전하는 절절한 진정성이 그녀의 삶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러분'이란 곡은 무대에서 살며 성장해온 윤복희라는 가수의 삶이 그대로 녹아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한 각오까지.

임재범이 '나는 가수다'에서 부른 '여러분'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은 가창력이라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진심의 무대였다. 경연이 끝난 후 임재범이 이 거대한 노래에 대한 부담감을 전하면서 이 노래를 "너무 완벽해 편곡 자체를 할 수가 없는 곡"이라고 말한 것은 사실이다. 그는 이 노래가 입으로 불러서는 대중들에게 온전한 감동을 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대신 그는 온 몸으로, 자신의 삶을 온통 다 담아서 부름으로써 윤복희가 보여줬던 그 진정성의 힘을 되살려냈다. 임재범의 재해석은 노래가 아니라 그 노래에 담겨지는 자신만의 진정성을 넣는 것이었던 것.

이 진정성이 감동으로 전해질 수 있었던 것은 '나는 가수다'라는 무대의 힘이기도 하다. '나는 가수다'라는 무대에서의 '여러분'이라는 곡은 여러 모로 우리에게 잊혀졌던 한 시대의 라이브 무대들을 떠올리게 한다. 해외에서 돌아와 첫 무대에서 대중들을 울렸던 조용필의 무대, 국제가요제에서 감동을 주었던 윤복희의 무대... 그 무대들은 음악이 리듬과 멜로디와 가사의 조합이 아니라 그 이상의 감동이라는 것을 보여주곤 했다. 언제부턴가 이 사라져버린 무대의 감동을 '나는 가수다'가 되살려 놓은 것이다. 임재범의 '여러분'은 바로 그 무대의 감동을 가장 최고점으로 끌어올려 보여주었다. 이것이 가수이고, 이것이 음악이며, 이것이 진정한 노래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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