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규의 '고해', 피 흘리는 짐승의 고백

노래는 물론 작곡가와 작사가가 있고 가수가 있지만, 그래서 저작권 같은 돈의 문제로 들어가면 그 소유자가 정해지지만, 그저 불려지고 들려지는 그 과정에 특별한 소유자란 있을 수 없다. 노래는 그 자체로 공유되어지는 것으로 그 존재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군가 곡을 만들고 가사를 붙였으며 누군가 그 노래를 불렀다고 해도 그것은 또한 듣는 사람의 것일 수 있고, 또 그 노래를 또 다른 사람이 부른다면 그 부른 사람의 것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가수다'에서 박완규가 부르기로 한 '고해'를 두고 임재범이 한 일련의 얘기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 지 모르겠다. 그것은 임재범이 부르는 '고해'일 뿐이고, 박완규는 자신의 '고해'를 불러야 듣는 이에게도 다가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노래가 10분 만에 만들어졌건, 아니면 송재준의 문제제기처럼 1년 가까이 준비해서 나온 곡이든 그런 것도 중요하지 않다. 적어도 박완규가 '고해'를 부를 때는 말이다. 박완규는 '고해'에 자신만의 성격을 부여했고, 청중들은 그것에 전율을 느꼈다.

따라서 임재범이 "어찌합니까-"하는 첫 구절을 죽기 직전의 절망과 체념으로 불렀다고 박완규도 그럴 필요는 없다. 박완규는 특유의 투정하듯 마치 "어쩌란 말이냐"고 반항하듯 '고해'를 불렀다. 강한 인상을 갖고 있고 또 록에 있어서는 그 어느 누구보다 꼿꼿하게 자존심을 드러내는 그지만 사실 박완규는 선글라스를 벗으면 보이는 순박함과 투박함이 진면목인 가수다. '남자의 자격' 청춘합창단에서 어르신들의 오디션을 보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던 그의 모습은 이 짐승 같은 야성 밑에 감춰진 심지어 가녀리게 느껴지는 감성이 묻어나지 않았던가.

신 앞에 자기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는 '고해'라는 곡을 통해 박완규는 바로 이 겉면의 야성과 그 속에 숨겨진 부드러운 감성을 드러냈다. 이 노래에서 '그녀'란 참으로 많은 의미로 읽힐 수 있는 상징이다. 말 그대로 한 사랑하는 여성이 될 수도 있고,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인간으로서의 소중한 가치가 될 수도 있다. 박완규에게 그것은 어쩌면 노래가 될 지도 모르겠다. 생계에 지쳐 혹사하던 목이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하게 되었을 때, 그는 이렇게 외치지 않았을까. "노래만은 허락해주세요."하고.

그것은 또한 어쩌면 박완규에게는 임재범 같은 선배들의 노래가 될 지도 모른다. '나는 가수다'에 나오면서 그가 던진 출사표처럼, 그는 자기를 일으켜주었던 많은 선배들의 노래를 더 많은 청중들에게 알리고픈 마음을 이 노래에 담았을 지도. 그래서 '고해'는 마치 박완규가 '나는 가수다'에 나온 후 오르게 된 갖가지 구설수들(이를테면 건방지다는)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노래하는 그 마음을 절절하게 담아낸 인상이다. "벌하신다면 저 받을게요. 허나 그녀만은 제게 그녀 하나만 허락해 주소서."라는 가사가 진정성을 얻게 되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다.

박완규는 이 노래를 부르며 여러 모로 임재범을 의식했다. 임재범이 '나는 가수다'에서 '여러분'을 불렀을 때, 그 절절한 마음을 청중들에게 전하며 마지막 한쪽 무릎을 꿇고 '여러분'이라고 외쳤듯이, 박완규 역시 말미에 청중들에게 무릎을 꿇었다. 이것은 '고해'를 통한 박완규 식의 '여러분'이다. 힘겨울 때 위로해주는 '여러분'이 있어 노래 부른다던 임재범이었다면, "세상의 비난도 미쳐 보일 모습도" 모두 다 알고, "그게 두렵지만" 그래도 허락해달라며 "피 흘리는 가엾은 사랑"을 드러낸 것이 박완규였다.

그 절절함은 고스란히 청중들의 마음에 닿았다. 벌을 주신다고 해도 노래를 부르겠다는 그 마음은 마치 해일처럼 듣는 이의 감성을 파고들었다. 이 즈음에서 떠오르는 건 그가 '나는 가수다'의 인터뷰를 통해 짐짓 거친 듯 던진 "다 쓸어버리겠다"는 발언이다. 그는 실로 다 쓸어버렸다. '고해'라는 피 흘리는 짐승의 고백을 통한 진심이 주는 감동으로.


'나가수'의 성공방정식, 생존과는 무관하다

'나는 가수다'(사진출처:MBC)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에서 정엽과 김연우는 모두 단 두 곡씩을 부르고 탈락했다. 김건모는 재도전의 여파로 역시 두 곡을 부르고 무대를 떠났고, JK김동욱은 노래를 부르다 멈추고 다시 부른 것 때문에 자진 하차를 선택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짧은 출연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에게 강한 임팩트를 남김으로써 이른바 '나가수' 효과를 톡톡히 입었다. 이들은 '나가수' 출연 이후 콘서트 대박 행진을 이어갔다. 방송이 짧았던 만큼 큰 아쉬움이 콘서트 수익으로 이어졌다는 얘기다.

그것만이 아니다. '나가수'를 통해 확실한 자기 색깔을 드러낸 정엽은 윤도현과 함께 두 편의 광고를 찍었고, 김연우는 '라디오스타' 같은 토크쇼를 통해 숨겨둔 예능감을 선보이며 이른바 '연우신'으로 불리는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이렇게 가장 짧은 출연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수혜를 입은 가수는 임재범이다. ‘너를 위해’, 남진의 ‘빈 잔’ 그리고 윤복희의 ‘여러분’ 이렇게 단 세 곡을 부르고 맹장수술 때문에 자진 하차했지만, 이 세 곡이 남긴 임팩트는 컸다. 이 세 곡의 음원수익이 '나가수'의 명예졸업자들인 박정현이나 김범수와 비교될 정도다.

게다가 그는 예당과 전속계약을 맺었고 예당측은 임재범의 경제적 가치가 100억대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런 그의 몸값은 광고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그는 광고계에서도 박지성, 박태환, 김연아 같은 특A급 광고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 물론 명예졸업을 한 박정현이나 김범수, 그리고 마지막까지 버텨낸 YB가 거둬간 성공 수익(?)은 엄청나다. 하지만 단 두 곡을 부르고 하차했다고 해서 그 '나가수 효과'가 적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중요한 건 여러 라운드를 오래 버텼다는 게 아니라 한 번을 해도 확실하게 인상을 남기는 그 임팩트다.

김범수나 박정현, YB가 그만한 '나가수 효과'를 가져간 것은 버틴 횟수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무대를 통해 보여준 자신들만의 확실한 개성과 경쟁력 때문이다. 이소라는 세 차례의 경연 후에 탈락했지만, 그녀가 남긴 인상은 깊었다. 그녀가 이 무대 첫 문을 열며 부른 '바람이 분다'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음원 차트를 장식했고, 보아의 'No.1'을 재해석해 부른 파격은 여전히 대중들의 뇌리에 남아있다. 하지만 단 한 번의 일등도 차지하지 못한 채, 무려 다섯 차례의 경연을 버텨냈던 조관우는 탈락 후 다른 이들과 비교해 반향이 적은 편이다.

이것은 이제 마지막 명예졸업을 남기고 있는 장혜진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그녀는 매번 '나가수'라는 무대가 원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경연을 잘 버텨왔다. 하지만 명예졸업에 즈음해 확실하게 뇌리에 남겨지는 임팩트는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결과를 가져왔을까. 결국은 자기만의 개성을 얼마나 잘 드러내느냐의 문제다. 즉 '나가수'가 이른바 '지르는 창법'이나 퍼포먼스를 요구하는 무대라고 해서 생존하기 위해 본래의 색깔을 억누르는 것은 당장 살아남을 수는 있어도 그 가수만의 정체성을 강하게 대중들에게 어필하는 데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끊임없이 감정 과잉으로 치닫는 윤민수의 무대와 '나가수' 무대의 특성을 파악하고 단번에 정점에 올랐지만 좀 더 자기만의 색깔로 돌아온 자우림의 무대는 확실히 비교되는 지점이 있다. 차라리 조규찬처럼 짧고 굵게 자신의 무대를 고집한 가수는 떨어진 후에도 대중들의 지지를 얻는다. 조규찬 탈락 후, '나가수'에 대해 이른바 '목청 대결' 논란이 벌어진 건, 그만큼 조규찬 탈락에 대한 안타까움이 컸다는 반증이다. 결국 '나가수'의 본질이 경연이라고 해도 버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오히려 '나는 가수다'라는 그 제목이 지칭하듯, 자신만의 가수로서의 색깔을 드러내는 일. 그것이 당장 탈락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가수에게 이득으로 돌아갈 수 있는 좋은 선택이라는 것을 역대 '나가수' 출신 가수들의 행보가 보여주고 있다.


'정글의 법칙'과 '바람에 실려', 이 예능이 보여주는 것

'정글의 법칙'(사진출처:SBS)

본래 리얼리티쇼는 일반인들이 출연해 그 사생활을 드러내는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일반인의 사생활 노출에 대해 갖는 우리 대중들의 정서는 예민한 편이다. 따라서 서구에서 한창 리얼리티쇼가 붐을 이룰 때조차 우리네 방송은 쉽게 그것을 시도하지 못했다. 그래서 대안처럼 등장한 것이 이른바 '리얼 버라이어티쇼'다. 일반인을 연예인으로 대체했고, 연예인의 사적이 부분들이 노출되지만 거기에 캐릭터쇼라는 안전한 가면을 씌웠다. '무한도전'이 성공한 것은 이 서구적인 리얼리티쇼의 형식을 우리네 정서에 맞는 리얼 버라이어티쇼로 코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대중정서가 변한 것일까. 리얼 버라이어티쇼에 익숙해진 대중들이 이제는 좀 더 강한 리얼리티를 원하게 되었기 때문일까. 최근 들어 리얼리티쇼가 심심찮게 방송을 타고 있다. '짝'이나 종영한 '도전자' 같은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물론 이들 리얼리티쇼들에 대해서 대중들의 시선은 그다지 좋지만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리얼 버라이어티쇼에 적응되어 있던 대중들이 리얼리티쇼의 상황을 받아들이는 게 쉽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리얼리티쇼와 리얼 버라이어티쇼는 보여주는 것도 다르고 보여주는 방식도 다르다. 즉 리얼리티쇼는 실제로 벌어진 상황 그대로를 보여주지만, 리얼 버라이어티쇼는 특정 가상 상황 속에서의 반응을 보여준다. 리얼리티쇼가 조금은 어두운 현실의 이면까지 적나라하게 끄집어낸다면, 리얼 버라이어티쇼는 상황극이라는 설정 속에서 하나의 우화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현실 자체보다는 판타지에 가깝다. '무한도전'이 그 안에 아무리 적나라한 얘기들을 꺼내도 그것은 결국 '도전'이라는 판타지로 귀결되는 안전함이 있다. 하지만 '짝' 같은 프로그램은 '결국 짝을 결정하는 건 스펙'이라는 식의 현실 그대로를 보여줄 수밖에 없다.

흥미로운 건 최근 이 리얼리티쇼가 일반인만이 아닌 연예인으로까지 넓혀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임재범의 '바람에 실려'와 김병만의 '정글의 법칙'이다. 물론 이 두 프로그램은 리얼리티의 강도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즉 '바람에 실려'는 그래도 예능의 틀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반면, '정글의 법칙'은 심지어 다큐적으로 느껴질 수 있을 정도로 리얼리티에 더 천착한다는 점이다. 그래도 이 두 프로그램에서 임재범과 김병만은 우리가 음악 프로그램이나 개그 프로그램을 통해 봐왔던 모습과는 다른 실제의 모습을 포착해낸다는 점에서 리얼리티쇼에 가깝다 할 수 있다.

'바람에 실려'에서 미국에 도착한 임재범이 즉석 공연 도중 음이탈을 한 후 갑자기 잠적해버리는 상황은 연출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실제상황으로 임재범이라는 가수의 성격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기존의 규범이나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진짜 '바람' 같은 성정이 보여졌고, 이것 때문에 당황해하고 화를 내는 다른 멤버들의 모습도 그대로 보여졌다. 하지만 그래도 예능의 유지하기 위해 임재범을 찾아다니는 모습을 연출해 넣은 것은 이 프로그램이 완전한 리얼리티쇼라기보다는 하나의 예능임을 고집한다는 뜻이다.

임재범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지점에서 어쨌든 이 프로그램은 확실히 리얼 버라이어티쇼와는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대중들의 이 실제 모습으로서의 임재범에 대한 호불호는 엇갈린다. 이것은 프로그램에 대한 호불호로도 이어진다. 당연한 일이다. 리얼 버라이어티쇼를 기대했던 시청자라면 이 리얼리티쇼 같은 부분이 불편했을 것이고, 리얼리티쇼를 기대했다면 어색한 예능적인 연출이 어딘지 맞지 않는다 여겨졌을 테니까.

새로 시작한 김병만의 '정글의 법칙'은 좀 더 리얼리티쇼에 가깝다. 김병만은 '달인'에서 보여주었던 캐릭터가 아니라 김병만 자신의 얼굴을 이 프로그램을 통해 보여주었다. 리키 김과의 팽팽한 갈등과 대립이 그대로 드러났고, 그 속에서 김병만이라는 인물이 가진 고집스러움도 동시에 보여졌다. 역시 대중들의 마음은 갈릴 수밖에 없다. 그 모습은 상황극이나 콩트 속에서 대중들이 친숙하게 봐왔던 그런 캐릭터가 아니기 때문이다. 불편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자극도 강하고 물론 역으로 리얼리티가 주는 감동도 커질 수 있다. 이것이 리얼리티쇼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연예인 리얼리티쇼는 물론 이것이 처음은 아니다. 이효리가 출연했던 '오프 더 레코드' 같은 프로그램도 셀러브리티 다큐적 속성을 갖는 리얼리티쇼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홍보적 성격이 강한 프로그램과 지금 현재 방영되고 있는 '정글의 법칙' 같은 리얼리티쇼는 확연히 다르다. 한 때 신비화되기까지 했던 연예인들은 차츰 리얼리티의 시대를 맞아 지상으로 내려왔고 그 맨얼굴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모습조차 장점으로 부각된 캐릭터였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는 확연히 달라지고 있다. 이들은 이제 캐릭터가 아닌 진짜 얼굴을 드러내려 하고 있다. 대중들은 그 진면목을 확인하고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 여전히 판타지로서 연예인을 보고 싶어할까, 아니면 진짜 모습을 보고 싶어할까.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강호동에 이어 임재범 수컷호랑이로 자리한 까닭

'바람에 실려'(사진출처:MBC)

요즘 예능에는 야생 수컷호랑이가 출몰한다? '일밤'의 새로운 코너 '바람에 실려'는 마치 '동물의 왕국' 같은 분위기로 시작되었다. 붉은 조명 아래 음영이 잡힌 임재범의 날카로운 눈빛이 화면을 가득 채우며 등장한 뒤, 자막은 그를 '예능 밀림에 뛰어든 야생호랑이'로 설명했다.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출정식에서도 임재범의 느낌은 야생 그 자체였다. 어슬렁어슬렁 걸어 들어온 그와, 이어 소개된 선 굵은 배우 김영호의 등장은 묘한 긴장감을 만들었다. 지상렬은 "느낌 자체가 사자와 호랑이예요"라고 이 분위기를 설명했다.

흥미로운 건 이 야생의 팽팽한 느낌이 웃음으로 바뀌는 과정이다. 그들을 사자와 호랑이로 비유한 지상렬에게 임재범이 "그렇다면 그대는?"하고 묻자 "형님의 먹잇감?"이라고 답하는 식으로 긴장을 살짝 살짝 무너뜨리는데서 웃음이 생겨난다. 대장이라 불러야 될지 형님이라 불러야 될지 고민이라는 지상렬에게 임재범이 "대장은 건강해요"라고 답하고, "오늘 컨디션은 어떠세요?"라는 질문에 제품 광고하듯 "컨디션!"하고 엉뚱한 답변을 던지는 식이다. 또 임재범의 야생의 느낌을 세워 주변인물들이 꼬리를 내리는 모습도 웃음으로 만들어낸다. 지상렬이 "재범이 형님과 촬영할 때는 기저귀차고 나와야 돼요"라는 말은 그런 야생의 긴장관계에서 나오는 유머다.

그런데 이 '야생 호랑이'라는 표현이 낯설지가 않다. 이것은 바로 '1박2일'에서 강호동이 스스로를 표현하던 것이다. "시베리아 야생 수컷 호랑이!" 이 선언은 '1박2일'의 야생을 위해서 한 몸 기꺼이 던지겠다는 선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강렬한 야생의 느낌을 세워두고 그것을 통해 예능의 웃음을 뽑아내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 집단에서의 강력한 카리스마(그것도 야생의)는 그 자체로 위계질서를 만들고, 이것은 예능의 이른바 '서열 놀이'의 전제가 된다. 군대 개그가 재밌는 것은 바로 이 위계를 깨는 지점에서, 혹은 그 과장된 위계 그 자체가 웃음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야생 호랑이'의 이 같은 예능 출몰(?)은 그런 웃음의 목적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말 그대로 야생의, 즉 '날 것의' 프로그램을 보여주겠다는 얘기기도 하다. '1박2일'이 때로는 꾸며지지 않은 날 것의 '다큐' 같은 느낌을 주는 것처럼, '바람이 실려' 또한 그런 장면을 보여줄 것이라는 예감. 물론 그 중심에는 어디로 튈 지 알 수 없는 야생 호랑이 임재범이 있다. 이미 많은 관계자들을 통해 알려진 것처럼, '바람이 실려'의 미국 촬영은 변수와 의외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실로 제작진에게는 고역이었겠지만 그만큼 임재범의 돌발 행동 그 자체가 이 프로그램의 핵심적인 스토리가 되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이 야생의 프로그램을 통해 '바람이 실려'는 도대체 무엇을 보여주려는 걸까. 임재범의 존재감에 가려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이미 이 프로그램은 시작과 함께 그 의도를 자막으로 보여준 적이 있다. 그것은 '음악과 생존의 공존' 그리고 '대자연 속에서 만들어가는 새로운 노래'다. 즉 '일밤'의 '나는 가수다'가, 만들어진 음악의 퍼포먼스를 무대 위에서 보여준다면, '바람이 실려'는 그 음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추적하는 프로그램이다. 예술의 탄생은 우리가 무대에서 봤던 퍼포먼스처럼 그렇게 깔끔하지는 않다. 오히려 일상의 틀을 깨는 그 무언가가 예술을 아름답게 만든다. 그것을 위해 낯선 곳을 기웃거리고 체험하면서 그 속에서 느껴지는 그 무언가를 예술로 만들어내는 것. 이것이 '바람이 실려'가 보려주려는 것이다.

예능에 야생 수컷 호랑이가 출몰하는 것은 거꾸로 작금의 예능이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가를 잘 말해준다. 이제 예능은 야생 그 자체를 지향하게 되었고, 거기서 생겨나는 돌발적인 경험들을 재미의 차원으로 담아내게 되었다. 그 야생이 음악과 기묘하게 공존하는 건 그 창작의 과정이 지극히 영감에 의한 돌발적인 순간에 벌어진다는 점에서 야생을 닮았기 때문이다. 마치 아기가 태어날 때의 그 야생적인 느낌 그대로, 우리는 어쩌면 '바람이 실려'를 통해 음악이 태어나는 그 날것의 장면을 목격하게 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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