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어게인3’가 발굴해낸 가수들, 이번 시즌은 레전드였다

싱어게인3

JTBC <싱어게인3>의 최종 우승은 홍이삭에게 돌아갔다. 마지막까지 치열한 경쟁을 벌였던 소수빈은 준우승을 차지했고, 이젤은 톱3에 들어갔다. 톱3에 들진 못했지만 톱7, 아니 톱10까지 이번 <싱어게인3>는 순위를 매기기 어려울 정도의 매력적인 가수들이 가득했다. 4위를 차지한 신해솔, 5위 리진, 6위 강성희 7위 추승엽은 물론이고, 아깝게 톱7 문턱에서 고배를 마신 호림, 임지수, 채보훈도 사실상 이번 시즌이 배출해낸 가수들이나 다름 없었다. 

 

사실 <싱어게인>은 ‘다시 부른다’는 그 특징에 걸맞게 실력자들이 모일 수밖에 없는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충분한 실력을 가졌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무명에 가까운 삶을 살아가는 가수들에게 제공되는 무대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특히 이번 시즌에 실력자들이 쏟아져 나온 건 <싱어게인>이라는 프로그램이 가진 위상과 인지도가 그만큼 분명했다는 말해주는 것이고, 코로나19가 지나간 후 무대가 더 간절해진 가수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싱어게인3>가 특히 좋았던 건, 출연자들의 개성이 저마다 겹치지 않고 선명하게 대중들에게 전해졌다는 점이다. 그것은 본래 가수들이 개성적이기도 했지만, 그걸 심사위원들과 제작자들이 하나의 캐릭터로 묶어내는데 있어서 성공적이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듣기 불편한 목소리’라고 스스로도 말했지만 그걸 강한 개성과 매력으로 극복해내 ‘추진수와 이승엽을 합쳐놓은 듯한’ 한 방을 보여줬던 추승엽이 그렇고, 특유의 쓸쓸하지만 다정함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외로웠던 나날들을 깨치고 나와 점점 관객들과 눈을 마주치며 응원을 받아 성장해온 리진이 그렇다. 

 

연습생으로 활동하며 무수한 오디션에 참여했지만 거절당하며 8년 간을 지하 연습실에서 보냈지만 <싱어게인3>를 통해 세상 밖으로 나와 자신의 한계없는 가능성을 펼쳐보였던 이젤은 물론이고, 한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첫 등장부터 듣는 이들의 폐부를 찌르는 노래로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게 만든 강성희도 마찬가지였다. 또 산골 캠핑장에서부터 매주 그 곳을 찾는 이들을 위해 노래부르며 꿈을 키워오다 <싱어게인3>에서 꾹꾹 눌러왔던 끼를 발산한 신해솔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여러 차례 라이벌로 지목되어 경합을 치르고, 마지막까지 최종우승 자리를 놓고 대결한 소수빈과 홍이삭의 서사는 <싱어게인3>의 가장 흥미진진한 대목이었다. 2위에 머물렀지만 소수빈은 처음 등장부터 자신을 설명했던 ‘쉬운 가수’라는 표현의 의미를 완전히 달리 들리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윤종신의 표현처럼 좋은 음색에 테크닉까지 갖춘 가수이고 김이나가 말했듯 여기에 감정까지도 잘 얹는 이 괴물 같은 발라더는 그러나 그 뒤에 엄청난 노력이 숨겨져 있다는 걸 매 무대마다 증명했다. 

 

‘본인을 쉬운 가수라고 소개하셨지만 듣는 사람에게 쉽게 전달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이 있었을지...’라는 한 시청자의 평이 너무나 공감될 정도로 그는 한 음 한 음에 공을 들이는 무대를 선보였다. 그가 마지막 무대를 서면서 남긴 “저만 어려우면 되는 거니까”라는 말은 그래서 향후 소수빈이라는 가수의 시그니처처럼 각인될 것으로 보인다. 정성어린 무대가 주는 남다른 감동의 실체가 바로 거기서 나올 테니 말이다. 

 

최종우승을 차지한 홍이삭은 물론 마지막 무대에서 약간의 음이탈을 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그간 <싱어게인3>의 매 무대에서 보여줬던 그만의 색깔이 이미 막강한 팬덤을 만들어냈던 것으로 보인다. 무슨 노래를 해도 그의 색깔로 바뀌는 마법 같은 무대를 선사한 홍이삭은 낮게 읊조리듯 시작되던 노래가 어느 순간 광활한 벌판 위에서 외침으로 바뀌는 시원하면서도 감동적인 장면들로 이어지곤 했다. 

 

이번 <싱어게인3>에서 임재범 심사위원이 하나의 유행어처럼 만들었던 ‘참 잘했어요’라는 칭찬처럼, 이번 시즌은 참가자들도 또 제작진도 심사위원들도 모두 ‘참 잘한 오디션’으로 남았다. 이제 막 세상 밖으로 나왔지만, <싱어게인3>라는 프로그램의 막강한 영향력 속에서 이미 강력한 팬덤을 갖게 된 이 가수들의 향후 행보가 더더욱 기대되는 건 이들 모두가 잘 해낸 덕분이 아닐까 싶다. (사진:JTBC)

JTBC ‘싱어게인3’, 다시 부른다는 취지가 주는 이 오디션의 특별함

JTBC <싱어게인3>는 그 제목에 ‘다시 부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는 서바이벌에서 ‘다시’라는 말은 어딘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단 한 번의 기회를 살려야 살아남는 게 오디션이 아닌가. <싱어게인3>의 어떤 차별점이 이 오디션을 돋보이게 할까. 

싱어게인3

유정석의 ‘질풍가도’와 <싱어게인3>의 만남

‘나는 응원을 부르는 가수다.’ JTBC <싱어게인3>에 등장한 74호 가수는 자신을 그렇게 먼저 소개했다. 그러면서 그 이유로 자신이 부른 애니메이션 OST가 ‘응원가’로 사용되고 있다는 걸 들었다. 야구장과 농구장 같은 각종 스포츠 응원가로 유명하다는 것. 심사위원들은 무슨 곡일지 궁금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서 ‘나는 응원을 부르는 가수다’라는 의미는 실제 응원가로 쓰이고 있어서이기 때문인 줄 알았다. 하지만 거기에는 또 다른 깊은 이유가 있었다. 개인사정으로 노래를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안 좋은 생각을 하셨던 분이 제 노래를 듣고 생각을 바꿨다”는 그런 글들을 굉장히 많이 받았다고 했다. 그 때 자신도 좀 힘들 때였는데 그 글들이 위로가 됐다는 거였다. 즉 그가 자신을 소개하는 글귀로 써 놓은 ‘응원’은 야구장만이 아니라 삶이 힘든 분들이 힘을 얻게 되는 그런 응원의 의미도 담겨 있었다. 그 응원이 그가 <싱어게인3>에 나오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그리고 시작된 무대. “한 번 더 나에게, 질풍 같은 용기를-” 그 첫 소절만으로 충분했다. 유정석이 부른 ‘질풍가도’로 알려진 이 곡을 모두가 바로 떠올렸다. 애니메이션 <쾌걸 근육맨 2세>의 OST였지만 야구장에서 더 많이 울려 퍼져 익숙해졌던 그 노래였다. 규현 심사위원은 이 곡이 <싱어게인>의 주제가로 쓰여도 좋을 것 같다고 했는데, 실제로 “한 번 더 나에게, 질풍 같은 용기를-”이라는 가사는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모두의 심장을 울리게 만드는 면이 있었다. 모두가 한번 더 용기를 내서 나온 무대가 아닌가. 이 순간은 그래서 <싱어게인3>의 상징 같은 장면으로 남았다. 그리고 그 응원의 ‘질풍가도’는 대중들에게도 질풍처럼 번져나갔다.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이 무려 796만 조회수를 기록했고 유정석을 응원하는 댓글이 2만1천개가 넘게 붙었다. 

 

그런데 유정석의 ‘질풍가도’와 <싱어게인3>의 만남은 이 오디션 프로그램이 갖는 차별점과 가치를 다시금 되새겨주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즉 이 프로그램은 무대 하나로 당락이 결정되는 오디션이지만, ‘다시 부른다’는 취지가 더해져 있다. 자신들의 인생의 무대에서 저마다의 이유로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됐거나, 이름이 알려지지 않아 아르바이트를 하며 무명 가수로 살아가거나 혹은 이름이 잊혀진 가수가 됐거나 하는 이들에게 ‘다시’ 주어진 무대라는 것이다. 실제로 현실은 ‘질풍가도’의 가사처럼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경우가 드물다. 오디션 서바이벌이 사실상 우리의 실제 현실이라는 거다. 그래서 <싱어게인>에 등장한 유정석은 그 ‘한 번 더’가 갖는 이 프로그램의 응원과 위로의 의미를 ‘질풍가도’라는 곡을 통해 보여준 면이 있었다. 대중들이 반색한 이유다. 

 

이번에도 넘쳐나는 숨은 실력자들

오디션 프로그램의 성패는 얼마나 많은 개성의 실력자들이 출연하는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싱어게인3>은 그 오디션의 취지 자체가 다양한 숨은 실력자들을 끌어모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점이다. 조편성을 보면, ‘찐무명’도 있지만 ‘재야의 고수’ 같은 이미 다운타운에서는 유명한 가수들도 있고, ‘슈가맨’이나 ‘OST조’처럼 얼굴은 낯설어도 노래만 들으면 단박에 기억나는 가수들도 있다. 심지어 타 오디션 참가자들을 묶어 놓은 ‘오디션조’는 그 오디션에서 1등을 했던 가수들까지 참가했다. 그 면면을 보면 특유의 허스키 보이스로 이미 다운타운에서는 유명가수인 김마스타, 국카스텐 하현우와 함께 이른바 4대 천왕 출신인 김길중, 신촌블루스 보컬 강성희 같은 재야의 고수는 물론이고,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OST로 잘 알려진 가수 소수빈, ‘질풍가도’의 유정석 같은 OST로 유명한 가수들도 있다. 또 <팬텀싱어> 시즌1 우승팀 포르테 디 콰트로의 김현수, <슈퍼밴드>에 출연했던 홍이삭, 임윤성, 오디션 프로그램 <새가수> 우승자 류정운, <보컬플레이> 우승자 임지수 등등 타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왔던 가수들도 다수다. 

 

사실 이런 실력자들이 찐무명들과 한 무대에 올라 경연을 벌인다는 건 오디션 프로그램으로서 공정하지 않다고 여겨질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싱어게인>의 출연자들이나 이를 바라보는 시청자들 모두 이 부분을 그다지 불편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것은 이들에게 적어도 무대에 설 기회를 제공하고 ‘다시 부른다’는 그 취지가 이 모든 것들을 허용하게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찐무명이라고 해서 우승이 요원한 일도 아니다. <싱어게인> 시즌1의 우승자 이승윤은 실제로 ‘찐무명조’로 출연했던 가수다. 

 

<싱어게인>이 가진 ‘다시 부른다’는 콘셉트는 무명 가수들에게 다시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의미도 있지만, 또한 실력자들을 모을 수 있는 장치도 되어준다. 다시 부른다는 건 이미 불렀다는 의미다. 즉 이미 데뷔한 가수이고 그래서 자기 노래가 하나 이상은 있는 것이 참가자격이 된다. 이 오디션은 그래서 아마추어들의 그것과는 다르다. 이미 프로들이고 그래서 실력은 갖추고 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무명이 된 가수들이다. 예를 들어 신촌블루스의 강성희 같은 가수는 이 블루스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유명가수다. 그럼에도 그가 무명가수를 자청하고 나온 건 ‘블루스’라는 장르를 좀더 대중적으로 알릴 수 있는 기회도 된다. 무대에 서는 자세는 더 진지하고 절박할 수밖에 없다. 

 

무명을 유명으로 만드는 시간

오디션 프로그램은 대부분 최후의 승자를 뽑는 걸 목표로 세운다. <싱어게인>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 목표에만 집중하는 게 아니라 그 과정의 무대들 하나하나에 공을 들이는 것이 여타의 오디션 프로그램들과 다른 지점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여기 나온 가수들이 그간 무명의 세월 속에서 해온 노력들에 대한 예우가 당연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색채를 극명하게드러내는 건 심사위원들의 심사다. 이들은 엄밀한 심사를 하면서도 표현에 있어서 극도의 조심스러움과 예우를 담는다. 김이나 심사위원이 문학에 가까운 표현으로 가수들의 목소리와 무대를 해석해낸다면, 규현이나 이해리 같은 심사위원들은 찐 팬에 가까운 리액션을 심사에 담는다. 또 백지영이나 윤종신 심사위원은 가창력에 대한 부분들을 좀더 분석적으로 해석해 그 가수의 매력을 설명해줌으로서 시청자들이 받은 감동이 어디서 온 것인가를 깨닫게 해준다. 여기에 이번에 처음으로 심사위원으로 합류한 임재범은 많은 말 대신 한두 마디의 ‘촌철살인’으로 참가한 가수들을 먹먹하게 만들기도 하고 활짝 웃게 만들기도 하며 때론 더 정진하게 만들기도 한다. 

 

심사는 그래서 <싱어게인3>에서는 당락을 결정하는 시간만이 아니라, ○○가수라고 달고 나온 무명가수들을 유명가수로 만들어가는 시간의 의미도 담겨 있다. 심사위원의 심사들은 그래서 이들 가수들의 서사가 되기도 한다. 그 서사는 오디션이 뒤로 갈수록 쌓이고 쌓여 어엿한 팬덤을 확보한 가수들로 이들을 변모시킬 것이다. 과연 이번 시즌3에는 얼마나 많은 이들이 유명가수로서의 서사를 갖게 될까. 다시 부르는 그들을 통해 얻는 위로와 그래서 하게 되는 응원이 교차되는 특별한 오디션이 지금 펼쳐지고 있다. (매일신문)

<나가수>, 가능성 있지만 보완해야할 것들

 

MBC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이 여전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것은 정작 이 프로그램이 국내에서는 고개를 숙였지만 중국에서 그네들 버전으로 만들어져 계속 화제를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 같은 외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다. <나는 가수다>를 떠올리면 여전히 생각나는 무대와 가수가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나는 가수다(사진출처:MBC)'

첫 무대에 올랐던 이소라가 잔뜩 긴장한 얼굴로 앉아 조용히 바람이 분다를 불렀을 때의 그 감동, 백지영의 마음을 건드리는 그 절절한 목소리, 김건모의 애절하면서도 엉뚱하고 그러면서도 파워풀 했던 무대. 돌아온 임재범이 마치 짐승처럼 불러댄 남진의 빈 잔은 물론이고 비주얼 가수로 자리매김한 김범수의 님과 함께’, <나는 가수다>의 요정으로 등극했던 박정현이 부른 조용필의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등등. 우리는 여전히 한때 <나는 가수다>가 만들어냈던 그 무대들을 하나의 추억처럼 얘기한다.

 

추석특집 <나는 가수다>에서 시청자들이 기대한 것도 바로 그런 무대였을 것이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감도 큰 법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추석특집 <나는 가수다>는 별로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았고, 그래서인지 무대도 그다지 큰 감흥이 없었다. 그나마 효린이 애절하게 불러낸 박선주의 귀로<나는 가수다> 무대에 최적화된 더 원이 부른 백지영의 잊지말아요가 약간의 감흥을 만들었을 뿐, 다른 무대들은 그다지 임팩트가 보이지 않았다.

 

혹자들은 이렇게 된 이유를 가수에서 찾는다. <나는 가수다>를 부활시키려면 임재범, 김범수, 박정현, 이소라 같은 가수들을 섭외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분명 이 프로그램의 당장의 가능성은 보여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임시처방이 될 것이다. <나는 가수다>가 특정 가수들의 전유물이 된다는 건 특정한 무대에 묶인다는 뜻이다. 이것은 좀 더 많은 가수들이 이 무대에 올라 자신들의 가능성을 보여주기를 바라는 시청자들의 바람과는 어긋나는 일이다.

 

추석특집 <나는 가수다>가 예전만큼의 감흥을 주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연출 구성이 너무 밋밋했던 탓이다. 무대에 오르기 전에 갖는 가수들의 긴장감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고 그들의 이야기 또한 그다지 없었기 때문에 무대 역시 그만한 집중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저 무대에 올라가 노래하고 내려오는 것이 반복된다면 그것은 여타의 추석특집 음악방송과 다를 것이 없다.

 

이렇게 된 것은 편성시간이 상대적으로 짧은 데다 보여주려는 무대는 너무 많았던 것에서 비롯된 일이다. 7명의 가수가 한 곡씩 부르는 시간도 빡빡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추석특집 <나는 가수다>는 먼저 자신들의 곡을 부르고 그 순위에 따라 메인 무대의 순서를 정하는 것으로 경연방식을 구성했다. 이렇게 되자 두 곡씩 그 짧은 시간에 담아내느라 보다 압축적인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데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즉 자신의 노래를 부르는 앞부분은 마치 사족처럼 보였고 오히려 긴장감을 흩트리는 시간이 되었던 것.

 

또한 야외무대에서 펼쳐진 경연은 노래에 대한 집중력을 그만큼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다. 라이브 무대의 공연은 현장에서 봤을 때 훨씬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집에서 TV로 볼 때는 그 감흥이 그만큼 느껴지기가 어렵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까지 내리는 야외에서 리액션이 중요한 <나는 가수다>의 무대가 살아날 리가 없었다. 오히려 실내 스튜디오에서 촬영했다면 좀 더 음 하나하나의 묘미를 더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추석특집 <나는 가수다>는 정규 프로그램이 아니라 일회적인 이벤트다. 그러니 그저 추석에 하는 쇼의 하나거니 하면서 넘겨도 될 문제다. 하지만 아쉬움이 더 깊게 남게 되는 것은 이 프로그램은 분명히 다시 정규화해도 될 만한 가능성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번 MBC 추석특집 <나는 가수다>8.2%(닐슨 코리아)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동시간대 타 방송사 프로그램들을 압도하는 수치다. 그만큼 대중들에게는 그 기대감이 남아있다는 반증이다.

 

최근 <비긴 어게인>이라는 영화는 다양성 영화로 100만 관객을 넘기는 기적 같은 결과를 만들어냈다. 그 기적이 가능했던 건 거기 음악이 있었고 그 음악의 묘미를 효과적으로 만들어내는 이야기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가수다>는 그렇게 음악이 빛나는 순간들을 포착하는 방식으로 스토리텔링을 다변화할 수는 없는 일일까. 만일 그것이 가능하다면 이 프로그램은 정규화해도 충분히 <비긴 어게인>이 보여준 음악의 기적을 다시 만들어낼 수도 있지 않을까.

 

송승헌의 전쟁 같은 사랑, 연우진의 시 같은 사랑

 

남자의 사랑, 뭐가 달라서 <남자가 사랑할 때>라는 제목을 붙인 걸까. 임재범은 ‘너를 위해’라는 곡에서 남자의 사랑을 이렇게 표현했다.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너. 그건 아마도 전쟁 같은 사랑- 난 위험하니까 사랑하니까 너에게서 떠나줄 거야. 널 위해- 떠날 거야.’ 아마도 송승헌이 연기하는 한태성이라는 남자의 사랑이 이럴 것이다. 남자의 사랑은 팩을 하고 인증샷을 찍어 보내달라는 여자 친구 앞에서 당황하는 것만큼 어색하고 면구스러운 그런 것이 아닐까.

 

'남자가 사랑할 때'(사진출처:MBC)

남자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은 그래서 여자들이 사랑을 통해 받고 싶은 표현과는 동떨어질 때가 많다. 한태성에게 짐짓 다가와 자신의 딸 미도(신세경)가 피아노 치는 남자를 멋있어한다며 슬쩍 귀띔을 해주듯이 여성들이 원하는 사랑의 표현방식은 현실적이기보다는 로맨틱한 어떤 것일 게다. 따라서 여성들을 주 타깃으로 삼는 멜로드라마에서 그려지는 남자의 사랑이란 현실적이기보다는 여성들의 판타지가 묻어난 것일 때가 많다.

 

그런 점에서 <남자가 사랑할 때>는 이 판타지와는 조금 결이 다른 남자의 사랑을 전면에 내보인다. 한태성의 사랑은 첫눈에 반한 미도에게 달려가 사랑고백을 하는 그런 식이 아니다. 그는 미도의 뒷바라지를 하고 그 집안을 돕고 가끔은 현실에 찌든 삶을 털어낼 여유를 제공하며 앞으로의 미래와 꿈을 돕는다. 물론 가끔 얼굴에 진짜 팩을 붙이고 인증샷을 보내거나, 시집의 한 문구를 그녀의 집 앞 칠판에 적어놓기도 하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그녀가 좋아할 거라는 생각 때문이지 그의 사랑의 진짜 얼굴은 아니다.

 

그래서 신사의 모습으로 사랑 앞에 어린아이처럼 쑥스러워하는 한태성이 그에게 도발하는 구용갑(이창훈)에게 야수성을 목격했을 때 미도는 놀랄 수밖에 없다. 그녀 앞에서는 한없이 어린아이 같지만 그것은 사랑 앞에 모든 것이 무장해제 된 남자의 모습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 남자는 저 전쟁터 같은 세상에 나가면 또 치열한 싸움을 벌일 것이다. 가족을 위해서 혹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것이 남자들의 사랑 방식인 셈이다.

 

하지만 <남자가 사랑할 때>에는 전쟁 같은 사랑을 하는 한태성이라는 인물과 대척점으로서 여성들의 판타지를 충족시켜주는 이재희(연우진)라는 인물도 있다. 한태성이 보내준 해외출장에서 ‘인생에 가장 행복한 순간’을 경험하게 해준 인물. 본래 인생에서의 판타지란 이처럼 현실적인 공간에서 몇 시간은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야 겨우 얻을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짧지만(어쩌면 짧기 때문에) 더 강렬한 한 때의 추억은 어쩌면 여자들이 사랑에 빠지는 이유일 것이다.

 

이재희는 그래서 짧지만 긴 여운을 남기는 시 같은 사랑을 하는 캐릭터다. 칠판에 ‘이 봄이 좋아. 네가 있어서’라고 적어 놓은 그에게 미도의 아버지가 “그게 끝이냐?”고 묻자 그는 “내가 봄을 불렀어. 너를 주려고.”하고 그 시의 뒤를 말해준다. 젊은 시절 문학을 했다는 미도의 아버지는 “유치하니 좋구만.”하며 이재희에 대한 호감을 드러낸다. 이재희는 퀸의 앨범이나 대학의 티셔츠 하나로 마음을 전하는 그런 사랑을 하는 존재다.

 

한태성과 이재희의 사랑은 이렇게 극과 극으로 갈린다. 한태성이 남자의 사랑을 보여준다면, 이재희는 여자들이 갖는 판타지의 하나로서의 남자의 사랑을 보여준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이재희가 이러한 판타지적인 사랑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한태성과 이재희의 형인 이창희(김성오)의 전쟁 같은 삶을 통해 그에게 주어진 여유 덕분이다.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가지만 우리가 누군가를 심지어 판타지에 빠진 것처럼 사랑할 때 그 밑에는 누군가의 현실적인 희생이 있기 마련이다. 미도에게 그래서 한태성의 사랑은 연인보다는 아버지 같은 느낌일 때가 많다.

 

그렇다면 남자의 이 전쟁 같은 사랑은 결실을 보게 될 것인가. 어쩌면 한태성은 저 임재범이 부른 ‘너를 위해’의 노래가사처럼 ‘위험하니까 사랑하니까’ 떠나주는 사랑을 할 지도 모르겠다. 미도의 행복을 위해 그녀의 판타지를 깨지 않고 든든히 지켜주는 현실적인 테두리로 남을 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남자가 사랑할 때>의 진짜 모습이라고 이 드라마는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네 아버지들이 저 뒷전에서 남모르게 해왔던 것처럼. 어딘지 옛사랑의 느낌이 묻어나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서 <남자가 사랑할 때>의 사랑은 천편일률적인 판타지 멜로와는 확실히 차별화되는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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