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물의 선구자였던 SBS드라마, 잇따른 부진의 이유

물론 지상파 드라마들의 시청률이 10% 넘기가 어려워진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어느 특정 채널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그만큼 종편과 케이블까지 더해 늘어난 채널수와, 점점 달라지는 드라마 시청패턴(본방사수란 옛말이 되어가고 있다)으로 인해 전반적인 시청률 하락은 이제 지상파 드라마들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때 한국형 장르물들을 대거 쏟아내며 지상파 드라마의 권좌에 올랐던 SBS 드라마가 최근 들어 뚜렷한 추락을 보이고 있는 건 눈에 띄는 일이다. 현재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들, 월화에 방영되고 있는 <기름진 멜로>가 5%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고, 수목에 방영됐던 <스위치>가 6,7%의 시청률에 머무른 데다 새롭게 편성된 <훈남정음>도 5.3% 시청률을 기록했다. 주말드라마로 새롭게 들어온 <시크릿 마더> 역시 6.6% 시청률이다. 전반적인 드라마들이 모두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셈이다. 

시청률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최근 장르물에 있어서도 과거만큼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한번쯤 생각해볼 문제다. <스위치>가 장근석을 주연으로 내세웠지만 지나치게 가벼운 틀을 가져와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은 바 있고, <리턴>은 방영 도중 연기자가 바뀌는 파행을 겪었다. 제목과 달리 의문의 일패를 당한 <의문의 일승>이나 제목처럼 너무 나가버린 <이판사판> 같은 드라마들이 모두 실패의 고배를 마셨다는 건 SBS 드라마로서는 뼈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잇따른 부진을 만들어낸 걸까. 가장 큰 건 tvN이나 JTBC처럼 채널이 다변화되고 드라마가 설 자리가 늘어나면서 작가들의 이탈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과거 <연인> 시리즈부터 SBS에서 뼈가 굵어온 김은숙 작가가 KBS에서 <태양의 후예>를, 또 tvN에서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를 연달아 히트시켰고, 역시 SBS에서 스릴러 장르로 주목받았던 김은희 작가가 tvN에서 <시그널>로 드디어 큰 성공을 거뒀으며, 역시 SBS 작가군의 한 명으로 여겨졌던 소현경 작가도 KBS에서 <황금빛 내 인생>을 성공시켰다. 

물론 작가들은 기본적으로 프리인 경우가 많고, 또 지금의 드라마판은 외주제작이 하나의 틀로 잡혀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이런 결과가 나온 건 방송사가 그 작품이나 작가를 잡지 못해서 생겨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작품이나 작가를 잡지 못하게 되는 이유는 원고료가 너무 비싸 채산성이 없어 포기하는 경우도 있고, 작품을 두고 벌어지는 작가와의 갈등 때문에 빚어지는 경우도 있다. 어떤 경우에는 방송사가 가진 이미지 때문에 자신의 작품을 그 방송사와 하기를 꺼리는 작가들도 있다. 

결과적으로 보면 SBS드라마의 전반적인 부진은 ‘기획’의 부진이고, 거기에는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투자’의 부진이라는 점이다. tvN처럼 공격적인 투자를 하는 방송사 앞에서 작가들의 이탈(?)이 많아지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SBS 역시 시대의 변화를 재빨리 읽어내지 못한 부진한 기획의 책임을 피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한때 이른바 복합장르물을 통해 한국적 장르물의 선구자처럼 여겨져왔던 SBS 드라마지만 이제 미드 등을 통해 장르물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이 본격 장르물을 찾기 시작했다는 걸 SBS 드라마국은 자꾸만 놓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머뭇댈 것이 아니라 과거처럼 과감한 기획과 투자가 이뤄져야 지금의 위기를 넘어설 수 있다는 걸 깊이 생각해봐야할 시점이다.(사진:SBS)

일상과 정치의 접점, 유시민 작가가 선 자리

바야흐로 유시민 작가의 전성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JTBC <썰전>으로 화제의 중심이 된 그는 최근 나영석 PD의 새 예능 프로그램 tvN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의 주요 출연자로 자리했고, MBC <마이리틀텔레비전> 100회 특집에도 출연해 ‘토론과 글쓰기’를 주제로 방송을 진행할 예정이다. 그는 정치인에서 작가로 그리고 지금은 방송인으로서 웬만한 스타들보다 더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 됐다. 

'차이나는 클라스(사진출처:JTBC)'

사실 JTBC <썰전>에 출연하기 전까지만 해도 유시민이 이 정도로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정치인 시절 호불호가 갈린 스타일이었고 예능을 주로 소비하는 젊은층에게는 과거 <100분 토론>을 이끌던 명 진행자이자 패널의 이미지보다는 보건복지부 장관 시절의 이미지와 그 후 작가로서 활동하며 쌓은 식자로서의 이미지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썰전>의 자리에 앉으면서부터 유시민은 한 마디로 날개를 달았다. 강하게 목소리를 높이는 것 같지는 않은데 조곤조곤한 그 이야기에 시청자들은 조금씩 설득되었다. 상대적으로 강성으로 여겨졌던 전원책 변호사의 목소리는 갈수록 작아지는 느낌이었고 대신 그 조용히 할 말을 하는 유시민의 목소리가 더 커졌다. 

유시민이 이렇게 갈수록 존재감이 높아진 건, 외교부터 군사 게다가 나아가 대중문화에 이르기까지 모르는 게 없는 해박한 지식이다. 자신만의 확고한 소신을 가진 지식인의 면모가 <썰전>에서는 느껴졌다. 하지만 해박한 지식만큼 중요했던 건 그가 가진 작가로서의 설득력이다. 그는 어렵게 느껴지는 시사 문제들을 특유의 비유를 들어 쉽게 시청자들에게 전해주었다. 물론 과거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내며 겪었던 정치인으로서의 경험은 이런 시사 문제의 겉모습이 아닌 진면목을 대중들에게 알려주기에 충분했다. 

물론 이것은 <썰전>이라는 그에게 최적화된 프로그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최근 유시민이 이제 <썰전>의 틀에서 확장되어 <알쓸신잡> 같은 대중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다는 사실은 그 행보가 어떨 지에 대한 기대감을 자아내게 만든다. <썰전>은 물론 예능의 속성들을 활용하고는 있지만 실질적인 틀은 토론 프로그램에 가깝다. 하지만 <알쓸신잡>은 다르다. 여행 같은 일상을 보여주는 것이고, 그 안에서 지식 같은 정보는 물론이고 재미를 줄 수 있는 유머 같은 것들 또한 도외시할 수는 없다. 

물론 나영석 PD는 그 특성상 웃음을 강요하는 법은 없다. 그저 일상적인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유시민 작가가 <알쓸신잡>에서 어떤 모습을 보였는가에 대해 묻는 필자의 질문에, 나영석 PD는 “굉장히 유머가 있는 분”이라면서 “무엇보다 아는 게 너무 많은 분”이라고 짤막하게 답한 바 있다. 사실 그 안에 다 들어 있을 것이다. 박학다식한 그 지식의 부분을 유머를 섞어 전하는 모습. 그것이 유시민 작가가 가진 매력이니 말이다. 

유시민 작가의 전성시대가 말해주는 건, 한때는 우리와 유리된 어떤 것으로 여겨지던 정치나 시사 같은 사안들이 이제는 우리네 일상으로 성큼 들어오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그가 보여주는 것은 정치나 시사문제와 일상의 접점 같은 것들이다. 지금까지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여겨져 왔으나 사실은 밀접하게 연결된 그 양자가 활짝 열려 연결되어지는 그 지점에 유시민 작가가 서 있다. 그러고 보면 유시민 작가의 전성시대는 시대가 요청한 면이 있다.

 '시카고 타자기', 임수정에 더 집중해야 산다

기대했던 것에 비하면 너무 초라해져가는 시청률이다. 2.4%(닐슨 코리아)로 시작한 tvN <시카고 타자기>. <해를 품은 달>과 <킬미 힐미>의 진수완 작가의 신작인데다, 유아인이 출연했다는 소식만으로도 기대감은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 수준이었다. 하지만 2회에 잠깐 2.8% 시청률로 정점을 찍은 후 줄곧 시청률이 빠지더니 5회에는 1.9%까지 떨어졌다. 

'시카고 타자기(사진출처:tvN)'

작품의 완성도나 유아인, 임수정, 고경표의 연기 모두 명불허전인 건 사실이다. 특히 이 작품은 소설이라는 지금껏 드라마 소재로는 잘 다뤄지지 않은 세계를 담는 실험을 하고 있다. 1920년대 경성과 현재를 넘나들고 타자기와 회중시계가 일종의 판타지 장치처럼 활용되며 작가인 한세주(유아인)와 진짜 유령인 유령작가 유진오(고경표)라는 존재의 관계는 상상과 현실 사이의 경계마저도 흐릿하게 만들고 있다. 

시간과 공간 그리고 가상과 현실을 말 그대로 ‘종횡무진’하는 <시카고 타자기>는 그래서 굉장한 야심작이다. 그 안에는 스릴러에 판타지 로맨스 같은 다양한 장르들의 편린이 녹아 있다. 하지만 그래서인지 일반 시청자들에게 이 드라마는 ‘종을 잡을 수 없는’ 드라마처럼 다가온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하는 그 목표의식이 5회가 지난 지금까지도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있어서다.

이건 5회에 이르러 유진오가 그저 유령작가가 아니라 실제 유령이었다는 사실을 깜짝 밝히는 반전을 보여주는 그 장면에 잘 드러나 있다. 드라마는 지나치게 반전에 집착하며 어떤 이야기로 튈지 알 수 없게 현재 상황을 숨기고 있지만 시청자들은 그것이 궁금하기보다는 다소 복잡하고 나아가 답답하게 여겨진다. 드라마에서 반전 장치란 터트릴 때는 효과가 있지만 터지기 전까지 숨길 때는 이야기 전개의 원활한 흐름을 오히려 막아 시청자들을 답답하게 만들 수 있다. 

게다가 유진오가 유령일 거라는 추측은 이미 대부분 시청자들이 알고 있었던 사안이다. 이러니 반전의 효과는 줄어들고 대신 반전을 보이기 위해 그간 숨겨놓고 눌러놓았던 이야기 전개만 더 복잡하게 보이는 역효과가 생길 수밖에.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복잡한 이야기 속에서 시청자의 몰입 포인트를 드라마가 제대로 콕 집어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한세주라는 베스트셀러 소설가가 이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세워져 있지만 일반 대중들 입장에서 소설가가 겪는 창작의 고통이라는 지점은 그다지 큰 공감대를 만들지 못한다. 물론 창작자들에게는 이 드라마의 문제의식이 흥미롭게 다가올 테지만 말이다. 

대신 이 드라마에서 대중들이 쉽게 몰입할 수 있는 인물은 바로 한세주의 뮤즈로 나타난 전설(임수정)이라는 평범 속에 비범을 숨기고 있는 인물이다.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있지만 어째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었는지’ 늘 하던 일이 어그러지는 그런 인물. 그러면서도 끝까지 한세주 작가의 초심을 믿고 신뢰함으로서 그를 진정한 창작자로 살게 하는 존재. 

한세주와 전설의 관계는 그래서 창작자와 독자의 관계가 지금 현재 어떻게 역전되어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과거의 창작자와 독자의 관계는 창작자에서 독자로 향하는 일방향적 힘이 더 우세했지만, 지금은 거꾸로 독자가 창작자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기도 하는 뮤즈가 되기도 한다는 것. 

<시카고 타자기>가 좋은 실험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이렇다 할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까닭은 바로 이 ‘몰입의 대상’을 제대로 짚어내지 못하고 있어서라고 생각된다. 창작자의 고민은 분명 중요한 일이지만 시청자들이 관심을 갖는 사항은 아니다. 대신 시청자들이 더 주목하는 건 독자의 확장된 역할이 아닐까. 전설의 활약이 중요해진 이유다.

유아인, ‘시카고 타자기’라는 현실과 판타지의 미로를 읽는 법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판타지인가. 또 무엇이 소설이고 무엇이 현실인가. tvN 금토드라마 <시카고 타자기>는 그 모호한 경계 사이에 놓여 있다. 슬럼프에 빠진 베스트셀러 작가 한세주(유아인), 어느 날 시카고에서 보게 된 미스터리한 느낌을 주는 타자기, 그 타자기를 배달하며 그와 가까워진 전설(임수정) 그리고 슬럼프에 빠진 그에게 전속출판사 대표 갈지석(조우진)이 은근히 제시한 유령작가 유진오(고경표). 이들의 이야기는 현실과 판타지 사이에 걸쳐 있어 모호한 느낌을 준다. 

'시카고 타자기(사진출처:tvN)'

슬럼프에 글이 써지지 않는 한세주가 마감 스트레스에 차를 몰고 나왔다가 사고를 당하고, 그를 마침 전설이 구해주는 이야기는 현실적인 느낌이 별로 없다. 그런 큰 사고를 당하고도 살아있는 게 놀라운 데 마침 그 시각에 하필이면 아버지 기일에 맞춰 별장을 찾은 전설이 그를 발견해 구해내는 것도 지나친 우연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그러고 보면 한세주의 첫 번째 팬이었던 전설이 그 미스터리한 타자기를 다름 아닌 한세주에게 직접 배달하게 되는 상황도 우연이다. 문을 열어주지 않는 한세주의 집 앞에서 커다란 개를 만나고 그 개로 인해 그의 집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전설의 이야기 역시 개연성이 아닌 우연적인 사건이다. 

드라마는 이런 우연적 사건들을 계속해서 터트리면서 코미디를 통해 그 우연을 봉합하려 한다. 즉 전설이 한세주의 집으로 들어가게 되는 시퀀스는 개가 소설파일이 있는 USB를 먹는 상황이 만드는 왁자지껄하고 과장된 코미디로 처리되어 있다. 또 자동차 사고를 당한 한세주를 전설이 구해내는 장면 역시 영화 <미저리>의 패러디를 덧씌워 우스운 장면들로 연출된다. 

이런 우연적 사건들의 반복은 그 비현실성 때문에 그것이 실제로 벌어진 현실인지 아니면 한세주의 판타지거나 상상 혹은 환상인지를 의심하게 만든다. 즉 한세주와 전설 사이에 계속 벌어지는 우연은 마치 오래 전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엮어진 운명처럼도 이해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슬럼프에 빠져 정상적인 상태가 아닌 작가 한세주의 환상이나 판타지처럼도 보인다. 

유령작가 유진오의 등장 또한 마찬가지다. 사고를 당해 마감을 할 수 없었던 한세주 대신 유진오가 ‘시카고 타자기’의 첫 회 소설을 내보내지만 한세주는 그것이 자신이 쓴 것이고 자신은 잠시 단기기억상실을 겪은 것이라 합리화한다. 물론 갈지석이 유령작가 이야기를 운운한 건 맞지만 그것이 실제 유진오를 지칭하는 것인지도 모호하다. 결국 한세주는 자신이 집을 비운 사이 그 의문의 타자기로 소설을 쓰고 있는 유진오를 마주하게 된다. 그런데 그것 역시 실제인지 아니면 한세주의 환상인지가 애매하다. 

그것은 한세주가 문득 문득 보게 되는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전설과 유진오가 엮어가는 어떤 사건들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진짜 한세주와 전설 그리고 유진오가 과거부터 엮어진 어떤 운명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한세주의 환상이며 그가 지금 쓰고 있는 ‘시카고 타자기’의 소설 내용일 수도 있다. 

이런 현실과 환상 사이의 애매함은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안개처럼 시청자들의 시야를 가린다. 시청자들은 그 안개 속에서 호기심을 느끼며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상인가를 궁금해 하지만, 동시에 그 낯선 이야기의 미로 속에서 머리가 복잡해질 수도 있다. 이것은 <시카고 타자기>가 가진 신선함이면서 동시에 대중성의 한계로 지목된다. 

사실 이 안개 같은 흐릿한 미로의 끝이 어디로 갈지 전혀 종을 잡기가 어려운 드라마가 바로 <시카고 타자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애매모호한 걸음을 앞으로 나가게 하는 건 다름 아닌 한세주라는 인물과 그를 연기하는 유아인이라는 배우의 몰입 덕분이다. 사실 논리적으로 접근해 해석해보려 하면 이 드라마는 한없이 복잡한 미로를 들이밀지만, 한세주라는 캐릭터가 가진 심리적인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면 그리 어렵지 않게 이 길을 걸어 나갈 수 있다. 

그가 갖고 있는 자존심과 막막함 그리고 창작에서 오는 극심한 스트레스와 그럼에도 창작자이기에 어디서든 튀어나오는 뮤즈 같은 창작의 단초들. 그런 의식의 흐름들은 현실과 환상 사이에 걸쳐져 있지만 그래도 한세주라는 인물에게는 모든 것이 당장 눈앞에 닥친 현실일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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