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이 출생의 비밀을 활용하는 색다른 방식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은 대놓고 ‘출생의 비밀’ 코드를 쓰고 있다. 사실 무수한 막장드라마들이 이 출생의 비밀을 활용하고 있어서 이걸 또 쓴다는 것이 KBS 주말드라마 같은 성격에는 부담이 될 수도 있었을 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금빛 내 인생>은 어째서 이런 부담을 감수하려 했던 걸까.

'황금빛 내인생(사진출처:KBS)'

그것은 <황금빛 내 인생>이 궁극적으로 다루려고 하는 금수저 흙수저 계급으로 나뉘는 사회의 허위의식을 드러내는데 있어서 바로 이 ‘출생의 비밀’ 코드만큼 효과적인 게 없기 때문이다. 보통의 ‘출생의 비밀’ 코드를 활용한 드라마들은 금수저 흙수저 계급 사회가 가진 판타지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곤 했다. 사실은 금수저인 ‘출생의 비밀’을 가진 주인공이 흙수저 인생을 살다가 부모를 만나 다시 금수저 인생으로 신데렐라가 되는 과정이 그 천편일률적인 활용법이었던 것.

하지만 <황금빛 내 인생>의 출생의 비밀 코드는 이 방향과는 정반대다. 그걸 단적으로 드러내주는 장면이, 하루아침에 금수저가 되어 재벌가 딸로 둔갑한 서지안(신혜선)이 노명희(나영희)의 미술관 모임에 불려와 자신의 미술지식을 통해 인정을 받는 장면 같은 것이다. 혹여나 실수를 하면 어쩌나 하고 노심초사했지만 서지안은 그들 앞에서 전혀 주눅들지 않고 미술에 대한 자신의 식견을 드러낸다. 

그런 일이 있었던 걸 알게 된 최재성(전노민)이 노명희에게 자신의 욕심을 위해서 딸을 그런 위험한 상황에 내놓은 걸 나무라자 노명희는 말한다. “내 딸이니까” 잘 할 거라 믿었다고. 핏줄이 어디 가는 것이 아니라고. 또 서지안이 해성그룹 마케팅팀에 들어가자마자 자신이 예전에 내놨던 기획안으로 성과를 내기 시작하자 이 집안은 또 그놈의 핏줄을 꺼내놓는다. 그 피가 어디 가냐는 말은 이 집안사람들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이다. 

그런데 알다시피 서지안은 그들의 친딸이 아니다. 그저 평범한 서태수(천호진)와 양미정(김혜옥)의 딸일 뿐이다. 그런 그가 이른바 저들의 세계에서도 인정받고, 회사에서도 특별한 능력을 발휘하는 건 그래서 핏줄과는 아무 상관없는 그의 노력 때문이다. 이것이 <황금빛 내 인생>이 출생의 비밀 코드를 활용하는 색다른 방식이다. 이것은 금수저 흙수저의 세계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판타지를 공고히 하는 게 아니라, 그 허위를 드러내는 방식이다. 

<황금빛 내 인생>의 출생의 비밀 코드가 굉장한 속도로 전개되는 건 그래서다. 판타지를 지속시키려면 그 비밀을 오래 유지해야 가능해진다. 하지만 이 50부작 드라마는 고작 10회 남짓 넘었을 뿐인데, 출생의 비밀의 당사자가 되어버린 서지안이 스스로 자신이 그 주인공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이런 전개는 향후 서지안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가에 시청자들을 주목하게 만든다. 계속 가짜노릇을 할 것인가 아니면 진짜의 자신으로 돌아올 것인가. 

물론 이런 방식으로 출생의 비밀을 활용하려다 보니 양미정이 진짜 재벌가 딸인 서지수(서은수) 대신 친딸인 서지안을 재벌가 딸로 둔갑시키는 다소 과한 설정이 들어간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선택 역시 출생의 비밀을 안고 재벌가에 들어가는 것이 막연히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는 부모의 편견 또한 깨기 위함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는 태생으로 누군가는 선택받고 누군가는 힘겨운 삶을 살게 되는 금수저 흙수저 사회가 가진 부조리에 대한 폭로다. ‘출생의 비밀’ 따위는 사실 허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흙수저가 금수저로 둔갑하자마자 그 능력을 발휘하는 건 핏줄 때문이 아니고 다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짜 인생을 황금빛으로 반드는 건 그래서 그 수저를 나누는 ‘황금’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공평해야할 기회가 아닐까.

‘병원선’, 그저 오지 소재의 의학드라마 같지 않은 이유

“치료가 아니라 실험이겠지. 논문에 칸 채우고 싶어 몸살 났잖아.” 송은재(하지원)가 국내에서는 한 번도 시도된 적 없는 ‘엑시투 간절제술’을 통해 직장암 말기환자 설재찬(박지일)을 수술하려고 하자 이를 막으려는 김도훈(전노민)은 비꼬듯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송은재는 오히려 그에게 이렇게 쏘아붙였다. “논문에 칸 채우는 게 뭐가 나쁩니까? 언제나 처음은 있죠. 두려워해야 하나요?”

'병원선(사진출처:MBC)'

MBC 수목드라마 <병원선>의 이 대화는 마치 새로운 수술을 두고 모험이라도 시도를 해보려는 의사와 이를 위험하다고 막는 의사의 진보-보수 논쟁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다르다. 송은재가 그토록 위험한 수술을 하려는 건 환자를 생각해서라기보다는 자신의 실적을 위한 선택이기도 하다. 그녀는 이렇게 큰 케이스를 성공시켜 쫓겨난 서울대한병원으로 화려하게 복귀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물론 이런 속사정은 김도훈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환자의 생명을 걱정해서 송은재를 말리려는 것이 아니다. 그녀가 만일 그 수술을 성공이라도 하게 돼서 다시 서울대한병원으로 복귀하면 자신의 입지가 어려워진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다. 겉으로는 도전이니 모험이니 생명이니 하고 있지만 실상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서로 대립하고 있는 것. 

이런 송은재에게 곽현(강민혁) 역시 반대의사를 드러낸다. 그는 송은재에게 “선생님이 실패하면 설재찬이라는 사람이 죽는 거예요”라며 그 도전의 대상이 다름 아닌 생명이라는 걸 환기시킨다. 그러자 송은재는 “과학은 실패를 통해 진보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곽현은 거기에 대해 “이런 비정한 진보라면 거절합니다.”라고 응수한다. 

병원에서 환자의 수술을 놓고 벌어지는 논쟁이고, 그것도 진보와 보수의 논쟁처럼 포장되어 있지만 그 실상은 저마다 ‘생존하기’ 위한 안간힘이라는 시청자들은 알고 있다. 아마도 이런 상황을 보며 정치권의 진보 보수 대립을 떠올리는 분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저렇게 대립할 동안 이제 죽을 지도 모를 누워 있는 환자는 어쩌면 그들의 생존 게임 아래 방치된 국민들이라는 느낌마저 들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송은재가 왜 이렇게 실적에 목숨을 걸게 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그것은 권력 시스템의 문제다. 저들만의 공고한 권력 시스템 안에서 내부고발자가 된 그는 남다른 실력에도 불구하고 변방으로 밀려났다. 애초에 실력만으로 온전히 자신을 세울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 역시 김도훈의 밑에서 그의 뒤치다꺼리를 도맡아 하고 있지 않았던가. 하지만 도무지 환자의 생명을 두고 진실을 덮을 수 없었던 그의 마지막 양심이 그를 이런 변방으로 내몰았다. 

그래서 서울대한병원이라는 권력시스템은 우리네 사회의 권력 구조를 그대로 떠올리게 한다. 그 권력 구조를 더 명쾌히 보려면 거기에 ‘여성’이라는 관점 하나를 더 집어 넣어보면 쉬워진다. 송은재는 그 남성성의 공고한 권력 시스템이 작동하는 곳에서 저 스스로도 남성성의 작동방식대로 살려하다 어느 날 엄마의 죽음을 통해 최후로 남은 여성성의 한 자락이 밖으로 나오게 되고 그래서 밀려나는 캐릭터라고도 읽을 수 있다. 

반면 이 섬마을을 다니는 오지의 병원선이 가진 시스템은 이런 남성성의 권력 시스템과는 거리가 멀다. 그들은 권력을 쥐기 위해서 의료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눈앞에 촌각을 다투는 환자가 있는 것이고 그들이 하나하나 소중한 생명이며 자신은 다름 아닌 그 생명을 지키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 의사이기 때문에 의료행위에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 저 남성성의 권력 시스템으로 굴러가는 서울대한병원이 생명을 소외시키고 있다면 이 병원선은 그 소외된 생명들을 다시 들여다보는 여성성의 공간이다. 

<병원선>이 가진 대결구도는 그래서 단지 송은재와 김도훈의 대결구도가 아니라 이 서울대한병원의 시스템과 병원선의 시스템 사이의 대결이고, 남성성과 여성성의 대결이기도 하다. 송은재는 그 중간에 서 있다. 다시금 실적을 통해 그 권력 시스템으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이 곳에 남아 생명을 돌보는 의사 본연의 모습으로 살아갈 것인가. 그 선택 하나에 따라 환자가 대상이 되느냐 아니면 목적 그 자체가 되느냐의 차이가 생긴다. 

진보 보수 논쟁을 하면서도 정작 국민이 소외되어 있는 현실을 살아가고, 그 남성성이 지배하는 권력 시스템 안에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끼면서도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실적을 추구하는 삶을 살고 있는 우리네 현대인들에게 <병원선>의 이야기가 낯선 오지에서 벌어지는 의학드라마로만 보이지 않는 이유다.

작품에 불을 붙이는 밑그림 전문 허준호의 존재감

이 정도면 허준호는 작품의 ‘밑그림 전문’이라고 불러도 될 듯싶다. 허준호는 드라마든 영화든 주인공 역할로 등장한 적은 별로 없다. 대부분 악역이나 중요한 조연이 그가 연기해온 전문분야다. 하지만 그의 악역과 조연 역할은 그저 보조적인 것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그 작품의 전체적인 정서나 분위기 혹은 팽팽한 긴장감 같은 것이 그의 연기로부터 부여된다는 점에서 그는 작품의 밑그림을 그려내는 숨은 주인공이 아닐까. 

'군주(사진출처:MBC)'

MBC 수목드라마 <군주>에서의 허준호가 그렇다. 사실 이 사극에서 편수회라는 조직이 갖는 존재감은 전체 이야기의 모티브라는 점에서 가장 중요하다. 왕의 뒤편에 서서 사실상 비선실세 역할을 하는 편수회의 국정농단으로 인해 파탄 나는 국가와 핍박받는 백성들이라는 이야기의 동기가 없다면, 이에 맞서 싸우며 스스로를 성장시켜 진정한 왕으로 돌아오는 세자 이선(유승호)의 모험담이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편수회의 수장으로서 대목을 연기하는 허준호는 그런 점에서 보면 이 편수회라는 조직의 비정함을 거의 혼자서 만들어내는 역할을 부여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왕(김명수) 앞에서 예의를 갖추는 듯싶지만 실상은 왕을 허수아비처럼 여기는 인물. 그래서 결국 자신의 말을 듣지 않게 된 왕을 잔인하게 죽여 버리는 인물이 바로 대목이다. 

하지만 <군주>에서 대목이 더 살벌한 존재로 여겨지는 건 그가 돈과 권력이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꿰뚫고 있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가짜 세자를 허수아비 왕으로 세우려던 걸 군권을 쥐고 있는 대비가 막고 수렴첨정을 하자 대목은 돈줄을 죄어 군권마저 흔들 수 있다는 걸 보여 주려 한다. 편수회가 이끄는 양수청은 그래서 백성들을 상대로 돈을 빌려줬다가 일시에 회수함으로서 나라의 돈 가뭄을 만들어 버리려 한다. 결국 돈이 없으면 군사들도 흩어질 수밖에 없다는 걸 간파한 것. 

<군주>의 이야기는 한편의 게임처럼 구성되어 있다. 왕세자로 있던 이선은 부모를 모두 잃고 또 충신이었던 한규호(전노민)마저 자신의 잘못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만든다. 결국 죽을 위기를 간신히 벗어나지만 세자의 신분은 이제 저잣거리의 장사꾼 막내가 되어버린다. 그 밑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해 자신의 신분을 되찾는 이야기가 바로 <군주>다. 그런데 그 모든 이선의 이야기의 근거가 바로 편수회의 대목 때문에 비롯된 것들이다. 

허준호의 이런 존재감을 우리는 과거 사극 <주몽>에서 일찍이 발견한 바 있다. 주몽의 탄생 이전에 그의 길고 긴 모험담의 전사를 만들어낸 장본인이 바로 허준호가 연기한 해모수였다. 마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 같은 형상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해모수의 존재감은 그래서 <주몽>이라는 사극의 초반 동력을 만들기에 충분했다. 

사극뿐만이 아니다. 최근 개봉된 영화 <불한당>에서 허준호는 정통파 주먹의 보스 역할로 등장해 처연함마저 느끼게 하는 최후를 보여준 바 있다. 결국 그 장면을 통해 주인공들의 브로맨스가 시작된다는 점을 두고 보면 역시 허준호는 출연하는 작품마다 뒤편에 서서 실제 작품의 동력을 만드는 연기자라는 걸 확인하게 된다. 

옆에 서거나 아니면 반대편에 서서 빛나는 역할을 하는 것보다 중심에 서서 빛나는 건 어쩌면 더 쉬운 일인지도 모른다. 빛을 받는 주인공이 더 빛나는 순간은 그 반대편에 서 있는 그림자가 더 깊어질 때다. 허준호라는 연기자는 바로 그 깊어진 그림자다. 그것이 작품 전체에 드리워져 있어 힘을 만든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주인공이라 해도 무방할.

독해질수록 주목받는 악역의 재발견

 

새로 시작한 KBS <국수의 신>의 이야기는 주인공 무명(천정명)이 아닌 악역 김길도(조재현)라는 괴물의 탄생 과정(?)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학대받으며 자라난 김길도는 타인을 흉내내는 <태양은 가득히>의 리플리 같은 인간. 가짜 대학생 행세를 하며 과외를 하러 들어간 집에서 금고를 털다가 들키자 살인을 저지르고 도망친다. 그는 마치 카멜레온처럼 변신을 거듭하며 도주하고 급기야 산 속에서 국수를 연구하던 무명의 아버지 집으로 들어와 그를 벼랑 끝에서 떨어뜨리고 국수비법을 가로챈 후 도망친다.

 


'국수의 신(사진출처:KBS)'

김길도라는 희대의 괴물은 <국수의 신>이라는 드라마에 강력한 동력을 만들어낸다. 가까스로 목숨은 구했지만 머리를 다친 무명의 아버지는 자신을 구한 여인과 무명을 낳고 행복하게 살아가지만 어느 날 그가 살아있다는 걸 알게 된 김길도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다. 불길 속에서 혼자 살아남은 무명이 복수에 불타게 되는 건 바로 이 괴물 김길도라는 인물 때문이다. 그가 결국 이 드라마에서 가장 강력하고 중요한 인물로 부각되는 건 그래서다.

 

무명이 주인공이지만 그 역할을 맡은 천정명보다 오히려 김길도 역할을 연기하는 조재현의 존재감이 빛난다는 이야기는 연기력의 차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드라마가 악역에 상당히 빚진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불길 속에서 슥 뒤돌아보며 미소 짓는 조재현의 연기는 소름 끼치도록 살벌한 악마의 얼굴을 보여준다. <국수의 신>이라는 드라마가 바로 그 김길도를 무너뜨리는 이야기라면, 그 전제조건으로써 확실한 악역을 세운 조재현이야말로 이 드라마의 일등공신이 아닐 수 없다.

 

JTBC 금토드라마 <욱씨남정기>의 주역들은 옥다정(이요원)과 남정기(윤상현)지만 이 드라마의 핵심적인 힘을 만들어내는 장본인은 바로 황금화학의 김상무(손종학)와 기업사냥꾼이자 옥다정의 전남편으로 등장하는 지상(연정훈) 같은 악역들이다. <욱씨남정기> 초반의 힘은 사실상 갑질하는 김상무로부터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김상무가 있어 그 얼굴에 물을 끼얹고 하청계약을 파기하는 옥다정이라는 사이다 캐릭터가 가능했고, 그에게 고개를 조아릴 수밖에 없는 을 중의 을 남정기가 주목될 수 있었다.

 

그리고 중반을 넘어 후반으로 가면서 지상이 그 악역의 중심으로 들어온다. 물론 지상 역시 김상무와 끈이 연결되어 있다. 잘 나가는 러블리 코스메틱에 엔젤투자가인 척 접근해 경영권을 빼앗고 회사를 공중분해해 황금화학에 넘기려는 것. 갑질 중 최고는 역시 돈이라고 지상은 돈을 앞세워 러블리 코스메틱 직원들이 자중지란을 일으키게 만든다. 이에 맞서는 옥다정과 남정기의 사투가 <욱씨남정기> 후반부의 핵심적인 재미요소다. 특별출연이라고는 하지만 미친 존재감을 드러내는 연정훈이 돋보이는 건 이런 극성을 만들어내는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tvN 금토드라마 <기억>에는 아들의 뺑소니 사실을 덮으려는 아버지 이찬무(전노민)나 그의 어머니 황태선(문숙) 같은 인물은 물론이고 재벌3세로서 드라마에 의외의 변수를 집어넣는 신영진(이기우) 같은 악역도 있다. 뺑소니로 죽은 아들의 진실을 찾으려는 아버지의 사투를 그린다는 점에서 그걸 덮으려는 자들인 이찬무가 그 반대에 서 있지만, 신영진은 어떤 면에서는 이 모든 사건들을 만들어내는 돈과 권력을 표징한다는 측면에서 중요한 캐릭터라고 말할 수 있다. 결국 이 모든 사건들의 배경이 신영진이라는 악역을 배경으로 깔고 있다는 얘기다.

 

신영진을 연기하는 이기우는 늘 밝은 이미지로 대중들에게 각인되어 있었지만 이번 작품을 통해 의외로 강렬한 악역을 보여줌으로써 연기자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해주고 있다. 어떤 면으로 보면 최근 주목받은 재벌3세 역할을 연기한 <베테랑>의 유아인, <리멤버 아들의 전쟁>의 남궁민을 잇는 연기로 보인다.

 

결국 악역이 떠야 극이 산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드라마나 영화에서 악역은 그 위치가 중요해졌다. 악역들은 지금 우리 현실의 갈증들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결국 악역이 제기하는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하고픈 욕망이 그 악역 캐릭터에 들어 있다는 것. 현실 공감으로서의 악역은 그래서 주인공만큼 중요한 역할로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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