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수선공',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 깨는 드라마가 된다면

 

"선생님도 병이 있으시네요. 직업병. 사람들을 죄다 환자로 보시나 봐요. 근데 저는 아픈 거 아니에요. 그냥 성질이 더러운 거지. 호의는 고맙지만 제 성격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KBS 수목드라마 <영혼수선공>에서 한우주(정소민)는 정신과 의사 이시준(신하균)에게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한우주는 사귀던 남자가 다른 여자를 만나는 걸 보고는 격분해 주차장에서 차를 부실 정도로 분노조절장애를 가진 인물이다. 사소한 말다툼에도 화를 참지 못해 언성을 높이기 일쑤다.

 

그런 그에게 이시준은 다가가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하지만 한우주는 또 화가 난다. 자신을 정신병 환자 취급하는 것 같아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마음에 병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렇게 분노를 터트려 일을 그르치기도 하는 자신의 문제를 '성격' 때문이라 치부한다.

 

아마도 이 상황은 정신과를 바라보는 편견과 선입견을 잘 드러내는 에피소드일 게다. 어느 날부터인가 거식증을 갖게 된 환자는 마치 자신이 그 이유를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한다. 자신의 엄마가 자신을 인형처럼 마음대로 키웠다는 것. 그래서 거기에 자신이 반항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를 상담해 치료해주려는 의사를 거부한다. 거식증을 앓고 있는 건 드러난 현상이니 맞지만, 그렇다고 정신과 환자라는 걸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영혼수선공>은 그래서 어찌 보면 시청자들도 잘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일상에서의 어떤 행동들이나 말들이 '정신 질환' 중 하나일 수 있다는 다소 불편할 수 있는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드라마 속 한우주가 그런 것처럼 우리는 정신과 하면 "미쳤다"는 표현에 담겨 있듯이 아프다기보다는 그 이상의 부정적인 의미를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

 

또한 정반대로 어떤 환자가 저지른 다소 심각한 사건들이 정신 질환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에서도 심리적 저항감을 느끼기 쉽다. 이 드라마의 첫 번째 에피소드로 등장했던 자신이 경찰이라고 착각하는 남자의 이야기가 그렇다. 그는 결국 병원을 탈출해 뮤지컬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받는 한우주를 음주운전을 한 것처럼 오인시켜 버린다. 이로서 한우주는 이제 막 날개를 펴려던 찰나 그 날개가 꺾여버린다.

 

그건 분명 그 환자의 망상장애가 원인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주치의인 이시준이 한우주를 찾아와 사정을 이야기하고 선처를 해달라 고개를 숙이는 장면에서 다소의 불편함이 느껴진다. 그건 그저 정신질환이라 치부하고 넘어가기에는 한 사람의 일상이 너무나 크게 파괴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혼수선공>은 정신질환이 마음에 병이 든 것일 뿐 그 이상의 어떤 부정적인 의미가 있는 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감기에 걸리면 내과에 가듯, 정신적 아픔이 있으면 찾아야 할 곳이 정신과라는 것. 이것은 어쩌면 요즘처럼 정신 질환이 훨씬 더 많아질 수밖에 없는 현실에 중요한 편견의 극복일 수 있다.

 

굉장히 특이한 어떤 일들도 들여다보면 우리네 관계에서 비롯되기도 하는 상처가 원인일 수 있다는 걸 애써 드라마는 이야기한다. 종이로 주택의 모형을 만드는 회사에서 모형 중 집 한 채를 입 안에 넣어 병원에 실려온 한 환자의 이야기가 그렇다. 위 속에 있는 종이조각들을 꺼내는 수술을 받은 그는 정신과 상담을 하라는 이야기에 어리둥절해하지만 거기서 이시준을 통해 과거의 상처를 마주하게 된다. 편애가 심해 자신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던 아버지가 원인이었다. 어려서 가출해 일주일 후 돌아왔는데도 자신이 집 나간 사실 조차 몰라서 혼자 화장지를 먹었던 과거가 환자에게는 있었다.

 

그리고 이런 영혼의 상처는 환자가 아닌 의사도 똑같이 갖고 있다. 이시준은 유명한 외과의사였던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했다. 하지만 현재 그 아버지는 정신을 놓고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이시준이 환자들의 집을 찾아 나설 정도로 마음의 병을 앓는 이들에게 열성적인 건 아버지의 인정을 끝까지 받지 못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게다.

 

한우주 역시 어려서 입양되었다가 파양된 경험을 했다는 게 드러났다. 그의 분노조절장애가 어쩌면 이 때의 상처와 관련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것. 한우주는 파양한 어머니를 찾아갔다가 이시준을 찾아와 말한다. "지금 아니면 절대 말 못할 것 같아서 왔어요. 선생님 말이 맞았어요. 저 환자에요. 저 좀 치료해 주세요. 치료해 줄 수 있죠?" 그는 자신이 아프다는 걸 인정하고 치료를 요구한다.

 

아마도 <영혼수선공>이 하려는 이야기가 시청자들에게 공감되기 위해서는 저 한우주가 스스로를 환자라 인정하고 치료를 해달라 말하는 것처럼, 우리들 역시 누구나 선선히 정신적인 병을 앓을 수 있고 그럴 때면 정신과를 찾아가 도와 달라 말할 수 있는 상황이어야 할 것이다. 그 편견을 넘어서는 것이 이 드라마의 목적이고 또 하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과연 이 다소 괴짜처럼 보이지만 따뜻함이 느껴지는 이시준이라는 정신과 의사는 이런 편견을 극복하고 시청자들까지 치유해줄 수 있을까. 궁금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사진:KBS)

정현종에 이은 도리스 레싱, ‘이번 생은’이 품은 문학들

드라마에 문학이 더해지자 그 울림이 커진다. tvN 월화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라는 시를 인용해 남세희(이민기)와 윤지호(정소민)의 관계가 어떻게 진전되는가를 보여준 바 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라는 시구가 어쩌다 계약 결혼을 하고 한 집에서 살게 된 두 사람의 우연적 만남이 사실은 운명적인 만남이었다는 걸 암시해줬던 것. 

그리고 이번엔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도리스 레싱의 <19호실로 가다>가 드라마에 울림을 더했다. 윤지호가 20대에 읽고 이해하기 어려웠던 그 소설 속에서는 자신만의 공간을 찾기 위해 결국 모텔을 찾게 된 주인공이 그게 들키자 바람을 피웠다고 거짓말을 한다는 줄거리를 갖고 있다. <이번 생은 처음이라>가 처음부터 현실적인 문제로 내세웠던 집, 즉 ‘자기만의 공간’에 대한 생각을 이만큼 환기시켜주는 작품도 없다.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당신의 방은 처음이라’라는 부제를 갖고 저마다 가진 19호실에 대한 이야기를 건넨다. 남세희와 윤지호는 같은 집에 살지만 서로의 19호실을 지켜주며 살아간다. 그것은 계약결혼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함께 지내는 것과 혼자 사는 것 사이에서 두 사람이 갖고 있는 양가적 감정 때문이기도 하다. 남세희와 윤지호는 처음으로 같은 방에서 함께 잠을 청하고 그것이 그토록 아름답게 느껴지지만 또한 자신만의 19호실을 버릴 수가 없다. 

마침 윤지호에게 드라마 작업을 같이 하자는 제작사의 제안이 오자 그는 더 이상은 글을 쓰지 않는다며 그 이유로 “결혼을 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윤지호는 이내 느끼게 된다. 그렇게 결혼 핑계를 대는 것이 자신 안에 있는 19호실을 부인하고 안주하려는 것이라는 걸. 남세희는 결혼이 윤지호의 걸림돌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결혼을 했지만 그의 19호실을 지켜주고 싶은 것이다. 

걸크러시의 면면을 보여주며 살아가는 듯 보였던 우수지(이솜) 역시 자신만의 19호실을 갖고 있다. 그것은 불편한 몸으로 억척스레 일을 해 자식을 잘 키워낸 엄마라는 존재다. 그가 결혼을 부인하는 가장 큰 이유는 몸이 불편한 엄마와 함께 살기 위해서다. 그는 바로 이 사적 비밀을 담은 자신만의 19호실에 그 누구도 발을 들이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그의 19호실을 보게 된 남자친구 마상구(박병은)는 그 방으로 들어와 그의 엄마와 인사를 한다. 우수지는 숨기고픈 사적 비밀을 들킨 일로 화를 내지만 마상구는 그를 위로해주며 오히려 그 현실을 피해 19호실을 숨기려 하지 말고 세상과 당당히 맞서라고 해준다. 자신이 항상 옆에 있어주겠다며. 

오랫동안 함께 같은 집에서 살아온 양호랑(김가은)과 심원석(김민석)은 이별을 준비한다. 결혼을 요구하는 양호랑과 그래서 노력을 해봤지만 서로의 불행만을 확인하게 된 심원석은 어찌 보면 같이 살고 있으면서도 저마다의 19호실에서 살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심원석의 이야기에서 남세희가 항상 주어가 자신이라는 걸 알려주자, 심원석은 비로소 깨닫는다. 양호랑의 19호실을 지켜주기 위해서라도 헤어져야 한다는 걸. 

결혼이라는 것은 결국 그 19호실을 여는 것이면서 동시에 또 다른 19호실을 만드는 과정이 아닐까. 남세희의 19호실은 과거 첫 사랑에 대한 아픈 기억이다. 그는 그 곳으로부터 나오고 있는 중이지만 우연히 윤지호의 제작사 대표가 된 그와 다시 마주하게 된다. 남세희의 19호실에는 이제 첫 사랑도 있지만 윤지호도 새로 들어와 있는 셈이다. 그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그 시작을 집을 가졌지만 하우스푸어인 남자와 홈리스인 여자가 동거하게 되는 이야기로 열었다. 현실적인 문제를 담아낸 블랙코미디에 멜로드라마가 섞인 형태였던 것. 하지만 이 드라마는 어느새 집이라는 공간이 갖는 깊은 의미를 말하기 시작했다. 공간과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이토록 깊어질 수 있었던 건 아마도 이 드라마가 인용하고 있는 문학적 감성들이 더해져서가 아닐까. 삶에 대한 통찰까지 엿보이는 이런 로맨틱 코미디는 정말 최근 들어 처음이다.

‘이번 생은 처음이라’, 처음이기에 좋은 것들

‘사람이 온다는 건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남세희(이민기)의 방에서 우연히 찾아낸 정현종 시인의 시집에서 윤지호(정소민)는 ‘방문객’이라는 시를 읽는다. 그 시가 말하는 ‘부서지기 쉬운’ 마음이나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마치 윤지호와 남세희의 이야기처럼 다가온다. 

tvN 월화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에서 집주인과 세입자의 관계에서 계약결혼을 한 두 사람. 그래서 공식적으론 부부지만 여전히 핸드폰에는 집주인과 세입자로 전화번호가 입력되어 있던 두 사람은, 타인의 시선을 핑계 대며 은근히 남편과 아내로 그 이름을 바꾸지만 실제로도 마음이 움직인다. 다만 부서지기 쉽거나 부서지기도 했던 마음이라 그 마음이 쉽사리 표현되지 않을 뿐이다. 

하지만 결혼은 양가의 일이기도 해서 두 사람의 관계는 어쩔 수 없이 얽혀든다. 세희의 제사에 불려간 지호가 시댁에서의 제사상을 차리는 일을 하게 된 것이 영 마음에 걸리는 세희는 지호네 고향집에서 하는 김장에 그만한 ‘노동’을 하겠다고 나선다. 제사와 김장. 서로의 마음이 직접 다가가지 못하는 관계지만 이런 집안 행사를 통해서나마 그들은 그 마음을 움직인다. 고향집에서 고생할 세희가 걱정되어 뒤늦게 내려온 지호의 마음과, 그를 보고 반색하는 세희의 반가운 마음이 교차한다.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두 사람은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라는 시를 얘기하고 바다를 이야기한다. 지호는 이렇게 바다를 “남자랑 보는 게 처음”이라고 한다. 그러자 세희는 그 처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가를 말하며, “알고 나면 못하는 게 많다”고 한다. “모른다는 건 좋은 것”이라고 한다. 세희는 한 차례 사랑의 상심을 겪었다. 다시 사랑을 시작한다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러자 지호는 저 바다가 다 똑같은 것 같아도 다 다르며, 지금 보는 바다는 또 “처음”이라고 말한다. 세희의 두려움을 아는 지호는 바다에 빗대 그 마음을 전한다. 지호는 부서지기 쉬운 마음이지만 그래도 모든 건 처음처럼 새로운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흘러가는 대로 가보자고 하는 중이다. 지호의 말을 들은 세희는 새삼 깨닫는다. 한 번 겪은 일은 결코 또다시 똑같이 반복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새로 시작하는 그것은 또 다른 ‘처음’이라는 걸.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화두처럼 ‘처음’이라는 단어를 집어넣어 부제를 달았다. ‘결혼은 처음이라’, ‘남편은 처음이라’, ‘시월드는 처음이라’ 같은 식이다. 그것은 제목에서 변주한 재치있는 부제들이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왜 작가가 ‘처음’이라는 단어를 하나의 키워드로 사용했는가를 알게 된다. 우리가 겪는 모든 일들이 반복적인 것 같지만 사실은 같은 것이 없고 모두 ‘처음’이라는 것이다. 같아 보이지만 같은 바다가 없는 것처럼. 

사람도 같은 사람이 아니다. 그 사람은 과거와 현재가 함께 하며 변화해 있는 것이고 그래서 또 다른 미래가 펼쳐지는 사람이다. 과거에 부서졌던 마음이거나 미래에 부서지기 쉬운 마음이어도 그렇게 다가오는 마음이란 그래서 시인이 말하듯 ‘어마어마한 일’이다. <이번 생은 처음이라>가 하고픈 말도 이것일 게다. 그 어마어마한 처음이 얼마나 좋은 것이냐는.

그저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로 여겼던 이 드라마는 어느 순간부터 삶에 대한 통찰을 담아내는 깊이를 장착하기 시작했다. 특히 드라마 말미에 인물들의 내레이션이 깔리며 전개되는 성찰적인 ‘시적 엔딩’은 이 드라마가 끝나고 나서도 깊은 울림으로 전해진다. 마치 잔잔해보여도 들어왔다 나가는 파도가 만들어내는 잔상들이 마음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 것처럼, 이 드라마는 시인이 말하는 ‘방문객’을 닮아간다. 실로 이런 시적인 엔딩은 처음이라.(사진:tvN)

‘이번 생은’, 공대 출신들이 가진 마성의 매력 그 원천은

“저는 그렇게 무서운 프로그램은 못 다뤄요. 얘는 저 같은 똥멍청이 너드가 감당할 수 있는 그런 소스코드가 아녜요. 수준이 달라요.” tvN 월화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에서 심원석(김민석)이 IT회사 사장인 마상구(박병은)에게 하는 이 말은 업무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마상구가 짐짓 모른 체하며 연애 대상으로서 우수지(이솜)라는 인물에 대해 묻자 심원석이 던지는 답변이다. 

'이번 생은 처음이라(사진출처:tvN)'

그러면 자신은 어떠냐고 마상구가 묻자 심원석은 말한다. “형이랑 수지요? 어 그럼 뭐 바로 랜섬웨어 감염되는 수준? 완전 복구 불가능에다가 인생 망하는 느낌 조금 나는데요.” 연애를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빗대 얘기하는 이들은 공대 출신들이다. 물론 모든 공대 출신들이 다 이런 건 아니겠지만 어쩐지 연애도 공식처럼 할 것 같은 이들 캐릭터가 만들어내는 대사는 웃음이 난다. 

일이 우선이라 남자는 하룻밤 정도로만 생각하는 우수지는 이들 공대 출신 남자들과 비교하면 연애에 있어서는 선수 중의 선수다. 그래도 마음을 열어 마상구와 연애를 하겠다는 조건으로 연애계약서를 내미는 정도. 반면 마상구는 회사로 엮어진 관계에서 연애는 결국 자신의 회사생활에도 영향을 미칠 걸 아는 우수지가 자신과 연애하려면 회사 팔고 오라고 하자, 진짜로 회사를 팔아야 하나 고민하면서 그럴 수 없는 자신 때문에 괜스레 눈물만 떨구는 연애 숙맥이다. 

이런 마상구가 ‘결혼 말고 연애 앱’을 만들어 다운로드 1위를 기록한 회사의 오너라는 사실은 이 로맨틱 코미디를 더 우습고 달달하게 만든다. 연애를 이론으로만 배운 듯 심원석이 함께 동거하는 양호랑(김가은)과 문제가 생겼을 때 나름의 심리분석을 해가며 그럴 듯한 솔루션을 제공하지만 영 헛다리만 짚는 인물. 이 드라마는 심원석도 그렇고 마상구도 바로 그 공대 출신이라는 특징을 캐릭터로 가져와 그 ‘이론으로만 배운 연애’를 하나의 장애요소로 만들어놓는다. 

그러고 보면 이 드라마의 남자주인공인 남세희(이민기)는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하는 행동은 저 공대 출신들과 그리 다르지 않다. 그 역시 연애라는 건 실제로 해본 일이 전혀 없고, 또 해볼 생각조차 없어 보인다. 어찌 어찌해 가짜 결혼을 하고 같이 살게 되면서 은근히 호감을 느끼고 있는 윤지호(정소민)에게 그는 조금치의 틈도 보이지 않는다.

결혼조차 조건을 위한 합리적인 선택이고, 결혼 후 갖게 되는 어떤 소속감조차 심리학에 근거한 인간 욕구의 한 단계로 생각한다. 시댁에서 갑자기 전화가 와 제사를 지내게 된 윤지호가 그래도 잘 해보고픈 그 마음에 대해 ‘착한 며느리병’이라는 이야기를 꺼내자, 남세희는 이렇게 그 병(?)을 분석한다. 

“일종의 인정욕구네요. 제가 전에 말했던 매슬로우 욕구단계요. 하위단계의 욕구가 충족되면 그 다음 단계의 욕구들이 나타나기 마련인데 결혼을 통해 소속감의 욕구가 충족되었으니 그 다음 단계인 인정욕구가 나타나게 되는 건 뭐 자연스러운 심리적 현상입니다. 특히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욕구이기도 하구요.”

하지만 그건 이론적인 해석일 뿐이다. 윤지호는 그것이 단지 “인간의 동물적인 욕구단계가 아니라 마음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좋아하는 사람의 가족들이니까 잘 해주고 싶은 마음. 좋아하는 사람을 기쁘게 편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

이들은 어쩌다 이렇게 연애에 숙맥이 되었을까. 이 드라마의 멜로는 현실적인 것들이 연애 혹은 결혼 자체를 뒤로 밀어내는 장애로 작용하고 있다. 하우스푸어로서 그저 큰 욕심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꿈이 된 남세희, 아직 현실적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 결혼을 미룰 수밖에 없는 심원석, 그리고 남녀관계가 역전된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지만 회사 생활을 버텨내기 위해 연애에 어떤 선을 그어버리는 우수지. 

어딘지 무거울 수밖에 없는 현실이지만 그래도 이 드라마가 로맨틱 코미디로서의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인물은 마상구나 심원석 같은 공대 출신들의 사랑이야기가 아닐까. 사랑을 이론으로 말하며 마치 자신들이 최고의 전문가인양 행동하지만 어딘지 어수룩하고 그래서 사랑스러울 수밖에 없는 인물들. 심지어 우수지나 양호랑 같은 선수들마저 빠뜨리는 마성의 매력을 가진 이들이 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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