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친구아들’, 친구, 가족, 사랑, 휴먼까지 다 담은 종합선물세트

엄마 친구 아들

정해인과 정소민이 출연한다는 것만으로도 tvN 새 토일드라마 ‘엄마친구아들’에 대한 기대감은 한껏 커진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와 ‘봄밤’으로 멜로의 결을 제대로 보여줬던 정해인이고 ‘이번 생은 처음이라’부터 ‘간 떨어지는 동거’ 그리고 ‘환혼’에서 무덕이 역할로 강렬한 존재감을 보여줬던 정소민이다. ‘엄마친구아들’은 캐스팅부터 제대로 힘을 줬다. 

 

그래서인지 첫 회는 사실상 이 두 배우가 입은 캐릭터들의 매력으로 온전히 채워졌다. 잘 나가는 젊은 건축가인 최승효(정해인)와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글로벌 대기업에 입사해 이제 결혼식까지 앞둔 탄탄대로의 배석류(정소민)가 그들이다. 어려서 같은 목욕탕 그것도 같은 탕에서 목욕까지 같이 했던 소꿉친구지만, 이제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던 두 사람이 다시 만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결혼식을 앞두고 청첩장까지 찍었던 석류가 미국에서 돌아온 것. 게다가 폭탄 발언까지 한다. 회사도 그만 뒀다고. 그 사실을 알고는 너무나 황당해 화가 잔뜩 난 석류의 엄마 미숙(박지영)이 대파로 딸을 때릴 때 그걸 온전히 다 맞은 건 다름 아닌 승효다. 미국에서 돌아온 석류와 승효가 진짜 엄친아, 엄친딸처럼 티격태격하며 보여주는 그 친밀함으로 가득 채워진 첫 회. 두 사람이 연애 감정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그 모습에서 오히려 그들이 앞으로 펼쳐나갈 로맨스가 더더욱 기대된다. 

 

드라마는 신하은 작가의 전작이었던 ‘갯마을 차차차’가 그랬던 것처럼, 인물들 간의 다양한 관계성들이 담는 재미들로 포진되어 있다. 시작부분에 승효의 엄마 혜숙(장영남)과 석류의 엄마 미숙, 또 모음(김지은)의 엄마 재숙(김금순)과 이들 4인방과는 조금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듯한 인숙(한예주)이 함께 등산을 하며 자식 자랑으로 늘어놓는 이야기는 마치 가족드라마의 도입부분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 작품이 ‘가족’이라는 소재를 먼저 밑그림으로 깔고 있다는 걸 그 도입이 보여준다. 

 

그러면서 혜숙과 미숙이 자식 자랑 배틀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는 승효와 석류로 옮겨가고 석류의 귀국으로 그들이 다시 만나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거기에는 석류의 둘도 없는 친구 모음의 이야기도 슬쩍 들어가 있다. 119 구급대원으로 시원시원하고 털털한 그의 매력을 우연히 보고 겪게 된 청우일보 기자 단호(윤지온)와의 심상찮은 멜로가 벌써부터 예고된다. 또 119 구급대원인 모음이 술 취해 쓰러진 당뇨 노숙인을 도와주는 이야기에서는 이 작품이 뻗어놓은 이야기가 휴먼드라마적인 부분까지 나아갈 거라는 걸 기대하게 만든다. 

 

따라서 이 작품은 엄친아, 엄친딸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가족드라마적 서사와 더불어, 승효와 석류 그리고 모음과 단호의 멜로가 더해져 있고 그들 간의 끈끈한 우정 또한 빠지지 않는다. 나아가 각각의 인물들이 숨겨온 서사들이 등장하면서 아마도 이 작품은 휴먼드라마의 결까지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관계의 묘미를 종합선물세트처럼 담아내는 작품이 될 거라는 것. 따뜻한 온기를 전해주는 관계에 있어서 없는 게 없는 ‘엄친아’ 같은 드라마랄까. 

 

어찌 보면 대단한 사건이 벌어지는 게 아니어서 슴슴한 맛으로 시작되지만 인물 간의 관계성이라는 건 차곡차곡 쌓여서 결국은 더 큰 에너지를 만들어내기 마련이다. 무엇보다 요즘처럼 삶이 팍팍해 더더욱 웃음이 간절해지는 시기에 이 드라마가 가진 코미디의 밀도는 승효와 석류가 주고받는 대사의 말맛에서부터 느껴진다. 

 

끝없이 티격태격 말장난을 하는 것 같은 모습으로 무심한 척 가장하지만 승효와 석류가 던지는 몇 마디는 두 사람의 진심을 슬쩍 꺼내보인다. “인생에서 큰 결정을 한꺼번에 둘이나 내렸잖아. 타격이 없으면 그게 사람이냐? 인형이지.” 석류에 대한 승효의 걱정이 담긴 말이다. 그런데 그 잘나가던 석류는 왜 퇴사에 파혼까지 하고 귀국하게 된 걸까. 석류 또한 승효에게 그 이유를 차분히 꺼내놓는다. 

 

“그냥 내 인생이 너무 과열됐던 것 같아. 나 엄청 빡세게 살았잖아. 한국에서 학교 다니다가 갑자기 미국으로 유학가고 거기서 또 적응하고 취직하고 결혼까지 그렇게 내내 풀가동을 돌리니까 CPU가 멈춰버린 거지. 화면도 멎고 아무 키도 안 먹고 별 수 없더라. 그냥 전원을 껐다 켜는 수밖에.” ‘갯마을 차차차’에서부터 일관된 주제의식이지만 ‘엄마친구아들’ 역시 치열한 삶에 방전된 이들이 잠시 멈춰 서서 삶을 되돌아보는 그런 이야기를 그려나갈 거라는 걸 말해주는 대목이다. 

 

이른바 ‘엄친아’, ‘엄친딸’을 이야기할 때 그 의미에 담겨 있는 건 ‘비교’이고 마치 성공의 지표처럼 내세워지는 어떤 삶이다. 그래서 그 삶 바깥으로 나오면 마치 실패한 것처럼 여기는 사회가 꺼내놓은 게 바로 ‘엄친아’라는 단어가 아닌가. 그런 점에서 보면 이걸 제목으로 세워놓은 이 작품은 그런 비교와 경쟁 사회의 강박관념을 잠시 벗어던지게 해주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치열한 성공이 아니라도 행복할 수 있다고. 우리 주변에는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고 사랑이 있고 사람이 있으니. (사진:tvN)

‘환혼’이 훌쩍 뛰어넘은 무협, 멜로 그 이상의 성취

환혼

“넘치는 힘이란 건 네가 기쁜 만큼만 쓰고 말 수는 없어. 비를 바라면 홍수를 피할 수 없고 바람을 원하면 태풍을 맞아야 하듯이 감당해봐.” tvN 토일드라마 <환혼>에서 무덕이(정소민)는 얼음돌 한 가운데서 환각처럼 어린 시절의 자신과 대화를 나눈다. 그 말은 지금까지 술력을 쌓아 더 강한 자가 되고픈 이 드라마가 그려내던 그 욕망들을 무화시키는 말이기도 하다. 

 

무덕이는 “이 힘을 두고도 내 맘대로 쓸 수 없다는 것이냐”고 묻는다. 그러자 어린 시절의 무덕이가 말한다. “당신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있긴 합니다. 쓰지 않는 겁니다. 그 힘을 쓰지 않는 선택은 당신 뜻대로 할 수 있어요.” 아이러니한 이야기다. 얼음돌이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인간이 제 뜻대로 할 수 있는 건 그 힘을 쓰지 않는 선택뿐이라니. 이건 도대체 무슨 이야기일까. 

 

여기서 <환혼>의 이야기는 ‘자연의 힘’과 ‘인간의 힘’에 대한 다소 철학적인 이야기를 그려낸다. 인간이 수련을 통해 수기를 모으고 그것으로 술력을 키워 자기 것이라 착각하지만, 그건 사실은 수기라는 자연의 힘(하늘의 기운)을 활용하는 것일 뿐,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건 아니라는 이야기다. 자연의 힘을 있는 그대로 놔두고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걸 소유해 그 힘으로 권력을 잡으려는 욕망이 만들어내는 파국. <환혼>이 그리려한 세계가 그저 술력 키우는 무협에 적당히 달달한 멜로를 섞어 낸 그런 세계가 아니라는 걸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얼음돌은 그래서 이러한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 어리석은 인간들이 드러내는 욕망을 끄집어내는 일종의 리트머스지 같은 장치다. 얼음돌을 통해 환혼술을 소환해 제 몸을 장강(주상욱)과 바꿔 그의 아내를 탐한 선왕의 욕망이 그렇고, 뱃속에서 13개월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은 아이를 구해내려 금기를 어겨가며 얼음돌을 꺼내와 장강을 통해 아이를 살려낸 진요원의 원장 진호경(박은혜)이 그렇다. 얼음돌의 힘을 통해 권력을 쥐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천부관 부관주 진무(조재윤)도, 그 얼음돌로 환혼해 왕비 행세를 하는 당골네도 모두 그 비뚤어진 욕망 앞에 무너진 어리석은 선택을 한 자들이다. 

 

만장회에 모인 모든 이들이 얼음돌의 힘을 궁금해하고 그래서 그 욕망에 눈 멀어 무덕이를 죽이고 되살리는 시연을 하는 걸 막지 않는 것도 그런 어리석은 선택의 결과다. 결국 그 선택은 이들 앞에 거대한 자연의 환란으로 돌아온다. 정진각 주변을 거대해진 얼음돌의 힘이 결계를 만드는 것. 그래서 그 안에 갇힌 장욱, 무덕이는 물론이고 서율(황민현), 고원(신승호) 같은 청춘들이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과, 그 바깥에서 아이들의 운명은 깜빡 잊은 채 얼음돌의 힘에만 눈이 멀었던 만장회 어른들의 모습은 극명히 대비된다. 

 

이건 마치 자연의 힘(하늘의 기운)을 제 것으로 가지려는 어른들의 욕망이 후대를 살아가야 할 아이들(청춘들)에게 어떤 비극으로 돌아오는가를 그려내는 은유 같다. 과학의 힘을 과신해 환경을 훼손해가며 마구 에너지를 끌어온 그 대가가 현재 후대들 앞에 어떤 암울한 미래를 펼쳐놓고 있는가를 떠올려 보라. <환혼>이 무협의 세계를 통해 그려놓은 얼음돌이라는 하늘의 기운을 가진 힘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상징과 은유로 다가오는가 새삼 느껴질 게다. 

 

“인간의 기운인 수기도 내 몸 속에서 돌리지 못하면 내 것이 되지 못하는데 하늘의 기운을 돌려서 가질 수 있는 인간이 있겠어?” 하지만 장욱의 이 말처럼 <환혼>은 저 어른들과는 다른 선택을 하는 청춘들을 통해 희망을 담는다. 장욱은 그 하늘의 기운을 가질 수 없다면 다 내어주면 어떻겠냐고 되묻는다. “내 기운을 다 하늘의 기운에 내어준다면 내 기운이 다 하늘의 기운이 되는 거잖아.” 

 

술력을 쓰면 기력을 모두 빨아들이는 얼음돌의 결계 속에서 장욱은 탄수법을 써서 그 결계를 깨기 위해 자신의 기력을 다 내어주고 대신 물 한 방울을 만들려 한다. 그 물 한 방울이 결계를 깨고 수 천 수 만 개의 빗방울이 될 거라 믿는다. 그간 벼랑 끝에 제자를 세워 술력을 키우게 해온 사부 무덕은 장욱의 그런 선택을 반대한다. 하지만 결계를 깨지 않으면 다친 서율이 죽을 수도 있다며 던진 장욱의 한 마디는 무덕을 수긍하게 만든다. “무덕아 네가 포기한 건 지키기 위해서지? 나도 지키려는 거야. 그리고 유리도 그동안 널 지켜왔어.”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갖기 보다는 다 내어주는 것. 이 청춘들은 술력을 갖기 보다는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기 위한 선택을 한다. 이 부분에서 <환혼>의 멜로는 달달한 청춘들의 사랑 그 이상의 함의로 확장된다. 스승 무덕은 장욱 앞에서 힘을 되찾을 기회를 버리고, 제자 장욱은 소중한 이들을 지키기 위해 그간 어렵게 쌓아온 기력을 버린다. 그렇게 대호국에 나타난 거대한 환란은 이들의 희생에 의해 사라진다. 

 

“스승님, 제자 오늘로 파문하겠습니다. 그간 못난 제자를 벼랑 끝에 세워두고 떠밀며 여기까지 이끌어주셔 감사했습니다. 비록 스승께선 힘을 찾을 기회를 버리시고 제자 또한 그동안 쌓아온 기력을 버렸지만 그로인해 평생 곁에 둘 소중한 이를 얻었습니다. 쓰이고 버려지지 않고 지키고 간직하고자 하니 파문을 허락해주십시오.” 장욱이 무덕에게 파문을 요구하고 그러자 무덕은 이를 허락한다. 사제지간은 그것으로 끝이 난다. 

 

대신 장욱과 무덕의 연인 관계가 남는다. “아 그럼 이제 도련님한테 시집와라. 무덕아.” 술력 대신 사랑의 선택. 그건 사적 욕망 대신 공존을 선택한 것이란 점에서 그 의미가 깊어진다. 이 쿨내 진동하는 장욱과 무덕이 그려낸 <환혼>의 서사가 그저 가벼운 무협과 멜로 그 이상의 성취를 갖게 된 이유다. (사진:tvN)

‘환혼’의 멜로가 특별한 건 사제, 주종 케미를 가장해서다

환혼

“제가 무덕이를 많이 좋아합니다.” “지가 도련님을 진짜로 좋아해유.” tvN 토일드라마 <환혼>에서 장욱(이재욱)과 무덕이(정소민)는 그렇게 각각 송림의 총수 박진(유준상)에게 말한다. 둘 사이의 비밀이 무엇이냐고 각각 물어보며 만일 답변이 틀릴 시 무덕이를 죽이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박진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각자 갖고 있던 음양옥을 꺼내 보이며 그렇게 말하자 박진은 실소를 터트리며 그들을 풀어줄 수밖에 없었다. 

 

이 장면은 <환혼>이 장욱과 무덕이의 멜로를 그리는 특별한 방식이 들어있다. <환혼>은 두 사람의 마음을 확인하는 순간을 절묘한 위기 상황과 엮어 드러낸다. 환혼인을 추적하며 장욱과 무덕이의 비밀을 캐묻는 박진 앞에서 두 사람은 피해나갈 묘수로서 서로 사랑한다는 말을 털어 놓는다. 그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서처럼 보이지만, 단지 그것만은 아니다. 실제로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하지만 아닌 척 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죽도록 좋아한다는 말을 죽지 못해 자백”한 것처럼 꾸미지만, 실제로 무덕이 역시 장욱을 좋아하는 마음을 여러 차례 들킨 바 있어서다. 

 

무덕이 얼버무리며 자신의 속내를 숨기려 하자 장욱은 진지하게 속내를 꺼내놓는다. “스승님 죽어도 좋으면 버리지 않고 하던 거 계속 해도 됩니까? 제자가 죽을 결심을 할 땐 스승님도 함께 해야 된다고 했지? 난 죽어도 계속 할 거야. 그러니 우리 무덕이도 어렵게 자백한대로 계속해서 도련님을 죽도록 좋아해봐.” 그런데 그 말투가 존대와 하대를 넘나든다. 스승에게 하던 말투에서 하인에게 하는 말투로 넘어가는 것. 그건 사제 관계이기도 하고 주종 관계이기도 한 두 사람의 애매모호한 관계를 드러내는 것이면서, 그것이 그저 가장하는 것일 뿐이라는 걸 말해준다. 실상은 연인 관계라는 것. 

 

<환혼>에는 이처럼 장욱과 무덕이가 어떤 위기상황에 놓였을 때 그간 사제이자 주종을 가장했던 관계를 뚫고 드러나는 실제 연인 관계의 스토리가 자주 등장한다. 천부관에 갇혀 죽을 위기에 처한 무덕이가 어찌된 일인지 수기를 빼내려는 환관으로부터 거꾸로 수기를 흡수하는 모습을 보이고, 그러자 자신이 폭주한 줄 알고 다가오는 장욱을 무덕이가 막으려했을 때도 이런 멜로의 한 장면이 연출된다. “안돼. 만지지마 내가 폭주한 거면, 네가 나를 만지면 너는 수기를 빼앗겨 죽을 거야.” 하지만 그 말에도 불구하고 장욱은 무덕이를 꼭 껴안아준다. 그건 장욱의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면서 무덕이가 폭주한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해주는 대목이다. 

 

장욱이 송림의 정진각 술사로 들어가고, 자격이 없는 무덕이는 송림에 들어갈 수 없게 되자 이른바 ‘송림하인선발대회’에 나가겠다며 장욱에게 던졌던 고지문에 대한 에피소드도 이들의 애틋한 관계를 에둘러 드러낸다. 결국 무덕이가 대회에 나가 하인으로 선발되고 송림에 들어오게 됐을 때 장욱은 무덕이가 던졌던 그 고지문을 꺼내 보이며 거기 담긴 의미를 자신이 읽었다고 말한다. “내가 이 짓을 해서라도 너를 꼭 보러 가겠다. 너만 볼 수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다.”라는 것. 

 

그러자 무덕이는 애써 이를 부인하며 그 종이를 태워버린다. 하지만 장욱은 “이미 주고받은 게 태운다고 없어지겠냐”며 이렇게 말한다. “근데 스승님. 제자가 최근에 안 보이느 걸 읽는 걸 읽는 술법을 익혔습니다. 심서를 읽었다고 했잖아. 한번 보실래요? 보이지 않는 걸 읽을 땐 이렇게 집중해서 들여다 봐야 돼. 그리고 받을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거야. 무덕아.” 결국 장욱의 그 말에 무덕이는 속내를 들켜버린다. 그러자 장욱이 말한다. “읽혔다. 안 보인다고 없는 게 아냐. 그저 숨기고 있는 거지.”

 

안 보인다고 없는 게 아니다. 그저 숨기고 있는 것일 뿐. 아마도 <환혼>에서 장욱과 무덕이의 사랑이 이토록 애틋하게 느껴지는 건 바로 이 점 때문일 게다. 사제와 주종을 가장해 숨기고 있지만 특정한 상황 속에서 저도 모르게 불쑥 불쑥 나오는 마음들과, 거부하려 해도 어쩔 수 없는 마음들이 서로를 향해 가는 것. 마치 음양옥이 서로 반응하듯 불이 켜지고 부인하려 해도 어쩔 수 없이 서로를 향해 다가가게 되는 그 마음을 읽게 되는 것. <환혼>의 멜로는 그렇게 무심한 척 시청자들의 가슴을 툭툭 건드리고 있다. (사진:tvN)

신무협 트렌드에 올라탄 tvN 토일드라마 ‘환혼’

우리에게도 ‘무협’이라는 장르는 익숙하다. 하지만 영상물로서 무협 판타지를 다루는 작품들은 대부분 중국 콘텐츠에서 많이 시도됐던 게 사실이다. tvN 토일드라마 <환혼>이 과감하게 펼쳐놓은 무협 판타지의 세계가 남다른 의미와 가치로 보이는 건 그래서다. 

환혼

홍자매가 가져온 신무협의 세계

우리에게 과거의 어떤 시공간을 배경으로 다루는 드라마는 주로 ‘사극’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즉 진짜 역사가 아니라고 해도 적어도 ‘조선시대’나 ‘고려시대’ 같은 시대적 배경을 담은 삶의 공간이 제시되고 그 위에서 펼쳐지는 어떤 이야기를 시청자들이 기대하곤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tvN 토일드라마 <환혼>은 작품의 시공간을 ‘역사에도 지도에도 존재하지 않는 대호국’으로 삼고 있다. 게다가 여기에는 ‘영혼을 바꾸는 환혼술’이 등장하고 이로 인해 ‘운명이 뒤틀린 주인공들’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환혼>은 대놓고 이 작품이 사극이 아닌 ‘무협 판타지’라는 걸 분명히 해놓고 시작한다. 이렇게 한 건, 워낙 최근에 ‘동북 공정’이니 ‘문화 공정’ 같은 역사 왜곡 논란들이 드라마 한 편의 성패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큰 파장을 일으킨 전례들의 영향도 있어 보인다. 즉 완전한 가상이고 상상의 산물이라는 걸 전제함으로써 이러한 논란의 빌미 자체를 사전 차단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그러한 방어적인 선택만이 아닌 보다 공격적인 의지의 표명도 들어 있다. 그것은 주로 중국 콘텐츠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곤 했던 무협 판타지를 이제 우리도 본격적으로 해보겠다는 의지다. 사실 무협소설의 역사가 우리도 결코 짧지 않고, 최근에는 웹툰, 웹소설을 통해 이른바 ‘신무협’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우리에게도 무협 장르는 그 저변이 넓어지고 있는 추세다. 다만 드라마 분야에서 무협 판타지가 많이 시도되지 않았던 건, 제작비, CG기술 같은 현실적인 문제와 더불어 어딘가 이 장르에 ‘중국의 이미지’가 덧씌워지는 정서적 거리감이 있어서였다. 

 

하지만 중국의 무협소설보다 우리의 무협소설이 훨씬 재밌다는 건 단지 ‘국뽕’의 차원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 중국의 현실적인 배경 위에서 펼쳐지는 무협소설들은 바로 그렇게 때문에 중국보다 우리의 상상력을 더 무한하게 자극하는 면이 있다. 현실을 모르고 가본 적이 없어 하나의 상상의 세계로서 마음껏 그려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앞서 말했듯 최근 웹툰이나 웹소설의 ‘신무협’ 트렌드는 이러한 국적성 자체가 사라진 세계의 이야기가 적지 않다. 이들은 소림파 무당파 등이 등장하는 무협소설과 달리 몸을 바꾸거나 인생을 리셋하거나 시간을 되돌리는 판타지 설정 같은 것들이 더해진 특징을 갖고 있다. <환혼>은 바로 그런 신무협의 세계를 드라마로 가져왔다. 물론 홍정은, 홍미란 작가는 이미 이전부터 <쾌도 홍길동(2008)>에서부터 <화유기(2017)>에 이르는 액션 판타지를 선보인 바 있다. 하지만 이번 작품 <환혼>은 훨씬 더 과감하고 본격화된 무협 판타지를 내세우고 있다. 어찌 보면 많은 중국의 무협 판타지들 속에서 한국형 무협 판타지의 출사표를 던지는 듯한 과감함이 엿보인다. 

 

혼을 바꾸는 설정, 그래서 만들어진 신박한 스토리

많은 판타지물들이 그렇지만 <환혼> 역시 ‘혼을 바꾼다’는 하나의 판타지 설정이 다채로운 스토리의 재미를 만들어낸다. 일단 주인공 장욱(이재욱)이 가진 출생의 비밀이 바로 이 설정에서 비롯된다. 환혼술을 알게 된 장강(주상욱)에게 병든 선왕 고성(박병은)이 자신과 7일간만 혼을 바꿔달라 요구하고 그렇게 환혼술로 장강의 몸에 들어간 왕이 장강의 아내인 도화와 동침해 장욱이 태어난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 분노한 장강은 태어난 아들 장욱의 기문을 막아 술법을 배우지 못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런데 기문이 막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장욱에게 나타난 희망이 바로 무덕이(정소민)다. 무덕이는 실제로는 물 한 방울 튕겨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초절정 살수 ‘낙수(고윤정)’가 부상을 입은 후 환혼한 인물이다. 낙수와는 정반대로 기력 하나 없는 무덕이는 어쩌다 장욱의 몸종으로 들어가지만, 장욱은 그가 낙수라는 사실을 알아채고는 그를 자신의 막힌 기문을 뚫어줄 사부로 삼는다. 그래서 이 관계는 복합적으로 뒤얽힌다. 겉으로 무덕은 장욱의 몸종으로 이들은 주종관계를 이루지만, 실제로는 장욱이 무덕의 제자가 되는 사제관계가 생겨난다. 무협 판타지지만 홍자매 특유의 로맨틱 코미디가 가미된 작품은 그래서 이 관계의 비틀어짐에서 만들어지는 웃음과 그러면서 점점 연인 관계로 발전하는 달달함까지 더해진다. 

 

물론 무협의 핵심일 수밖에 없는 ‘성장스토리’는 이러한 관계의 재미라는 구슬들을 하나로 꿰는 실이다. 무덕이는 기문이 막혀버린 장욱을 한 단계씩 업그레이드시켜주는데, 그 방식은 그들이 함께 벼랑 끝에 서는 것이다. 죽을 위기에 처하게 함으로써 조금씩 어떤 한계를 넘어 성장해가는 이들의 이야기는 그래서 현재를 살아가는 청춘들을 떠올리게도 만든다. 무한한 잠재성과 가능성을 가진 청춘들이지만 기성세대들에 의해 꼬인 현실 속에서 그 꿈과 능력을 제대로 펼쳐나가지 못하게 되었다는 그 설정이 그렇다. 물론 이런 한계를 넘어 한 단계씩 성장하는 인물의 이야기는 RPG 같은 게임에 익숙한 세대들이 좋아할 수 있는 포인트다. 

 

보다 깊은 질문들까지 던질 수 있을까

이러한 다양한 장점들과 재미있는 관전 포인트들이 효력을 나타내면서 <환혼>은 최고 시청률 7.0%(닐슨 코리아)를 넘겼고 높은 화제성도 기록했다. 파트1, 파트2로 나뉘어진 작품으로 파트1이 20부로 편성되었고 이미 촬영을 마쳤으며, 최근 파트2 촬영에 들어갔다고 한다. 보기보다 <환혼>이 대작이라는 의미다. 

 

톡톡 튀는 대사와 흥미진진한 설정이 만들어내는 신박한 관계의 재미가 이런 결과들을 만들어냈지만, <환혼>은 시작부터 여주인공 교체로 말이 많았던 작품이다. 본래 박혜은이 캐스팅되었지만 부담감을 이유로 하차했고, 대신 정소민이 그 역할을 맡았다. 다행스러운 건 정소민이 몸종과 사부 나아가 연인의 면면을 오가는 결코 쉽지 않은 연기를 잘 소화해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시즌2 촬영에 들어가면서 또다시 여주인공 교체 이슈가 떠올랐다. 시즌2에는 정소민이 아닌 본래 낙수 역할을 했던 고윤정이 주인공으로 나선다는 소식이다. 아마도 이건 ‘환혼’이라는 이 드라마의 설정으로 인해 낙수가 제 몸을 찾아가거나 회복하는 새로운 스토리로 인해 나온 이야기일 듯싶다. 

 

하지만 이런 이슈들 속에는 ‘환혼’이라는 혼이 바뀌는 설정이 뒤로 갈수록 관계들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도 담겨 있다. 즉 무덕이만 봐도 그 몸은 진요원을 이끄는 진호경(박은혜)이 잃어버린 첫째 딸로 추정되고, 그 몸에 혼으로 들어간 낙수는 진무(조재윤)에게 속아 살수로 키워진 인물이다. 이렇게 인물의 정체가 ‘환혼’이라는 설정 때문에 복잡해질 수 있고, 자칫 ‘출생의 비밀’ 같은 ‘정체의 비밀’ 코드 활용에 빠져들 수 있다. 정작 이렇게 혼을 바꿔 삶을 연장하거나 어떤 욕망을 취하려는 이들의 파국이 담아내려는 메시지가 흐려질 수 있다. 요컨대 마치 옷을 바꿔 입듯 혼을 바꾸는 잔재미(?)에 빠지다보면 보다 깊은 드라마의 질문들이 가려질 수 있다는 우려다. 

 

진짜 한국형 무협 판타지가 중국의 그것들을 뛰어넘는 성과를 내려면 이러한 판타지 설정의 함의하고 은유하는 묵직한 메시지까지를 이 발랄한 드라마가 담아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장르적 묘미를 충분히 즐기면서도, 그 여운이 오래 갈 수 있는 작품이 되길 기대한다.(글:매일신문,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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