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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극의 새로운 도발, 착한 주말극이 반가운 이유

'글로리아'의 첫 장면은 요즘 드라마에서는 보기 드문 달동네 풍경에서 시작한다. 그 불빛이 반짝거리는 동네의 원경에서 안으로 들어가면 새벽부터 일어나기 위해 맞춰놓은 서너 개의 알람시계가 시끄럽게 울어대고, 주인공 나진진(배두나)이 부스스 일어난다. 그녀 옆에서 같이 일어나는 언니 나진주(오현경)는 어딘지 상태가 온전치 못하다. 척 봐도 알 수 있는 나진진의 곤궁함. 하지만 그녀는 씩씩하게 새벽부터 신문배달에 김밥장사, 게다가 세차 알바까지 분주한 시간을 보낸다. 가끔 진주가 사고를 치지만 진진은 그렇다고 절망하지 않는다.

반면 이 달동네 풍경과 대비되는 또 다른 그림으로 '글로리아'는 시작한다. 그것은 어딘지 절망적인 얼굴로 비행기에 앉아 있는 정윤서(소이현)다. 그녀 옆에 우연히 앉게 된 이지석(이종원)의 말대로 그녀는 "창문이라도 열려 있으면 꼭 뛰어내릴 것 같은 표정"이다.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정황으로 보면 그녀는 하고 싶던 발레를 못하게 되었다. 나진진과 비교해보면 절망의 이유조차 될 수 없는 것이지만, 그녀는 심지어 자살까지 생각한다.

달동네의 이웃들은 가족 같다. 사고뭉치지만 하동아(이천희)는 진진의 오빠나 되는 것처럼 그녀를 챙기려 들고, 그의 조카인 하어진(천보근)은 아침마다 진진의 김밥 장사를 돕고 진주와는 연인(?)처럼 친하게 논다. 김밥을 만들어 진진에게 납품(?)하는 셋집 주인 오순녀(김영옥)는 진진의 할머니 같다. 셋집에서 살며 나이트클럽 '추억 속으로'에서 일하는 손종범(이성민)이나 밴드마스터인 이윤배(김병춘), 웨이터인 박동철(최재환) 역시 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가족의 일원이다. 그들은 가난해도 가족 같은 끈끈한 정이 있다.

반면 정윤서의 집안이나 이강석(서지석)의 집안은 모두 마치 모래알 같은 관계를 보여준다. 정윤서의 엄마(정소녀)는 딸을 제대로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윤서가 자살을 기도하자 그녀는 "사는 게 힘들어서 수면제 없이는 살 수 없는 나도 살아!"하며 딸을 나무란다. 이강석은 집안에서 이른바 서자다. 그의 친모는 자신을 찾아주지 않는 강석의 아버지 이준호 회장(연규진)의 관심을 끌려고 늘 사고를 친다. 아마도 그래서 홍콩으로 보내졌지만 질리게 술 마시고 도박하고 하는 것도 질려버린다. 그녀는 사는 게 너무너무 지겹다고 말한다. 서자 취급받는 이강석은 의붓형제인 이지석이 귀국하자마자 자신의 자리를 빼앗자 절망한다.

이 피 한 방울 안 섞여도 가족처럼 지내는 달동네 가족들과, 가족이란 테두리로 묶여있어도 모래알처럼 반목하는 상류층 가족들은 '글로리아'라는 드라마의 선명한 주제의식을 그대로 드러낸다. 돈 천 만원이 없어서 감방에 가게 된 진진을 빼내기 위해 전전긍긍하다가 결국에는 진진의 월셋방 보증금으로 문제를 해결한 것을 알게 되자 절망하는 진진에게 "그 천 만원 없다고 사람이 죽겠냐? 지금까지 살던 것처럼 어떻게든 살겠지 뭐."하고 말하는 하동아의 대사는 이 드라마가 가진 정서를 말해준다.

절망의 바닥에서도 서로를 위무해주며 어떤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것. 달동네 월셋방이지만 기타 하나 들고 "떡볶이를 사랑한 계란. 떡볶이 당신을 닮고 싶어서 난 하얀 얼굴에 고추장까지 뒤집어썼지. 아- 무정한 당신은 어묵에게로..." 같은 얼토당토않지만 이웃들을 웃게 만드는 노래를 멈추지 않는 것. 나진진의 말대로 솔잎을 먹고 살게 태어난 송충이라도 태어난 이유는 있는 법. 그래서 '추억 속으로'라는 한 물 간 나이트클럽은 이들에게는 새로운 희망의 무대가 된다.

"너희들은 여기가 삼류 나이트라고 비웃겠지만 난 아냐." 이 한 물 간 나이트클럽을 여전히 쥐고 놓지 않는 정우현(이영하)은 그래서 이 '글로리아'라는 조금은 구식의 드라마를 여전히 손에 쥐고 어떤 희망을 꿈꾸는 정지우 작가의 분신처럼 보인다. 이것은 세련된 상류층의 이야기들로 우리의 눈과 귀를 자극해왔던 주말극들에 대한 신선한 도발이다. '글로리아'라는 착한 주말극이 반가운 이유는 그 때문이다.

Posted by 더키앙
"당신이 신경쓰인다"는 말은 정지우 작가의 작품에서는 "사랑하게 됐다"는 말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는 멜로드라마를 그리지만, 그 멜로는 우리가 생각하는 남녀 간의 관계만을 다루지는 않습니다. 그것보다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인간애를 바탕에 깔고 있죠. 그래서 그녀의 드라마는 '측은지심의 드라마'가 됩니다. 우물에 빠지려는 아이를 보면서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져야될 그 마음을 이끌어내는 드라마죠.

변호사 원강하(김지훈)는 스스로 자신을 '마음이 없는 인간'이라고 말합니다. "마음을 드러낼 때마다 맞았다"고 술회하며 그래서 "마음이라는 것이 없는 것처럼 살아왔다"고 말하죠. 그의 집은 그 마음이 없는 원강하의 그 텅빈 공허를 형상화해낸 공간입니다. 그런데 그 마음 속으로 진빨강(최정원)과 동생들이 불쑥 허락도 없이 들어오죠. 그러면서 이 '마음 없는 공간'은 질서가 깨지기 시작합니다.

원강하의 단단한 방호벽(?)을 뚫고 진빨강과 아이들은 무차별 진격해 들어옵니다. 처음 진빨강은 그 '염치없음'에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차츰 과감(?)해집니다.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간신히 한 달간의 유예기간을 얻은 그녀는 어차피 쫓겨날 거, 이 '마음이 없는 인간'에게 대들기 시작합니다. 자기 주장을 하기 시작합니다.

사실 객관적으로 보면 가정부로 들어온 여자가 가사일을 전혀 모르고, 그것도 모자라 아이들까지 줄줄이 숨겨서 들어와 버젓이 살아보겠다고 주장하는 건 몰염치에 가깝습니다. 그것은 타산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방식으로 살아가는 쿨한 이 집의 원강하 같은 인간에게는 엄청난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죠. 그런데 원강하는 이들의 침범에 조금씩 동화되어 갑니다.

몽유병을 갖고 있어 매일 밤 자신의 침대로 침범해들어오는 파랑(천보근)을 처음에는 어이없어 하다가 나중에는 오히려 기다리게 됩니다. 그런 호의를 가진 그에게 그러나 아이들은 아랑곳없이 괴롭힙니다. 호의로 아이들을 데리고 중국집에 가서 음식을 시켜주면, 자장면을 뒤집어쓰게 만드는 식입니다. 그런데 이 몰염치는 단단한 원강하의 방호벽을 뚫고 들어옵니다. 그는 자신을 짝사랑해온 정재영(채영인)에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지만 진빨강에게는 결국 "당신이 신경쓰인다"고 말합니다.

'별을 따다줘'의 몰염치가 기분좋은 것은 이 '마음이 없어 보이는' 사회를 침범해들어오는 그 인간적인 염치없음이 보기좋기 때문입니다. 쿨한 사회. 상대방을 위해 웃음을 지으면 마치 자신이 지는 것이라도 되는 양 무표정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진빨강과 아이들의 도발은 신선하기 그지없습니다. 이 드라마의 배경이 보험회사라는 설정은 이러한 드라마의 메시지를 잘 보여줍니다. "가족처럼!"을 늘 입에 달고 다니지만, 그 이면에는 돈의 논리가 꿈틀대는 JK생명의 일단은 우리 사회의 차가움을 대변해줍니다. 그 속에 들어간 진빨강은 마치 마음 없이 살아가는 원강하의 마음 속에 들어간 것처럼 사회에 따뜻함을 전하려 합니다.

멜로에서부터 인간애를 얘기하는 것은 정지우 작가 작품의 특징입니다. 조금은 세련되지 못해 보이지만 그것이 오히려 인간적인 따뜻함을 느껴지는 것은 그녀의 드라마만이 갖는 매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녀는 이 사회가 얼마나 차가운 것인가를 절감하고 있고 그래서 그렇게 차갑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에 허락없이 불쑥 발을 디디는 작가입니다. '몰염치'조차 인간적인 매력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것은 그 때문일 것입니다.
Posted by 더키앙

약자에 대한 편견을 깨는 착한 드라마, '별을 따다줘'

“별을 따다준다”는 말은 언뜻 듣기엔 유치하고 상투적으로 느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이 말을 늘 상투적으로만 사용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별을 따다줘’라는 드라마가 이 말을 다시 시청자들에게 건네는 방식은 자못 도전적이다. 우리가 상투로 생각하던 그 말에 대한 작가의 동심 같은 순수한 진정성이 절절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별을 따다줘”라는 말을 유치하게 여기는 이제는 어른이 되어버린 시청자들에게, 그 말이 본래는 감동적인 것이라는 걸 알게 해주는 드라마다.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부모가 모두 하늘의 별이 되어버리고 갑자기 혹처럼 달리게 된 다섯 명의 동생들을 데리고 살아내야 하는 진빨강(최정원)은 절망적이다. 자기 하나도 건사하지 못할 정도로 철없이 살아온 그녀에게, 가장의 책무가 내려진 것. 집도 절도 없는 그녀는 아이들을 데리고 길거리를 떠돌다, 원강하(김지훈)의 집의 가정부로 아이들을 숨긴 채 들어온다. 회사에서는 꼴찌 보험설계사, 가정부로서도 빵점인 그녀는 아이들과의 생존을 위해 할 짓 안할 짓 다하지만 나아지는 건 없어 보인다.

아직 아기인 막내를 짐처럼 등에 업고, 벤치에 앉아 절망에 빠져있는 그녀. 그 때 마치 하늘의 별이 된 부모가 건네는 말에 대한 대답처럼 막내의 옹알이가 들려온다. “별을 따다줘.” 그것은 어쩌면 그녀의 마음이 만들어낸 환청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하지 않은 그 옹알이를 듣는 순간, 진빨강은 절망을 뚫고 올라오는 희망의 빛을 보게 된다. 어찌 현실에서 별을 따다 줄 수 있겠냐마는 그 말은 진빨강의 마음 속에 있던 짐을 희망으로 바꿔버린다. 부양해야할 짐으로만 생각해왔던 아이들은 이제 그녀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된다. “그래 저 별 다 따다 줄께!”하고 진빨강은 소리친다.

‘별을 따다줘’는 짐처럼 거치적거리게 생각되던 가족이라는 존재가 바로 자신이 살아가는 힘의 원천임을 말해주는 드라마다. 남겨진 다섯 명의 아이들은 그렇게 먼저 진빨강의 마음 속으로 들어와 그녀를 바꾸어놓는다. 남자 뒤꽁무니만 쫓아다니면서 친구의 등이나 쳐먹던(?) 그녀는 달라진다. 살아가야할 이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타인(혹은 타인이라고 생각했던 이들)을 가족처럼 대하기 시작하면서 자신만을 생각하며 물기 없이 살아가던 그녀의 삶에는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 아이들이 바꿔놓는 존재가 진빨강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이들은 그 스스로 주변에 벽을 치고 살아가는 원강하의 영역으로 자꾸만 침범해 들어온다. 원강하의 집은 피도 눈물도 없는 그의 마음을 똑같이 그려낸다. 그는 가정부로 들어온 진빨강에게 늘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어야 하고, 음식도 입맛에 정확히 맞춰야 하며, 자신이 있는 이층방에는 절대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심지어 “투명인간처럼 일하라”고 말한다. 그러니 그 집의 말끔함은 원강하의 무미건조한 삶을 그대로 담아 보여준다.

그의 집으로 숨어들어온 아이들은 그러니까 그의 마음 속으로 숨어들어온 존재들이나 마찬가지다. 아이들은 어느 날 잠을 자고 일어나 보니 몽유병 증세가 있는 아이 진파랑(천보근)이 자신의 침대에 들어와 자고 있는 것처럼 자신의 마음 속으로 조금씩 스며든다. 그러면서 그 마음은 조금씩 열린다. 그렇게 자신의 마음 속으로 불쑥 들어온 아이에게 이불을 덮어주는 원강하는 그 침범이 싫지만은 않다는 것을 조금씩 느끼게 된다.

이 드라마는 힘겨운 상황에 처한 이들을 보면 누구나 갖게 마련인 ‘측은지심’을 말한다. 소파에서 떨어지려 하는 아이를 보며 어떻게 지나칠 수 있으랴. 쓰러지려는 막내를 껴안아 올리고 우는 아이를 본능적으로 달래기 시작하는 원강하처럼, 드라마는 이 힘겨운 삶에 처한 진빨강을 향해 손을 내밀기 시작한다. 같은 집에 살아가는 원강하의 동생 원준하(신동욱)와 조카 우태규(이켠)는 그녀와 아이들이 밖으로 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 형을 설득하려 한다. 회사의 팀장은 위험을 무릅쓰고 그녀에게 기회를 주려한다.

이러한 변화는 결국 그녀가 짐이라 생각했던 아이들이 거꾸로 그녀에게 제공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아이들을 위해 “별을 따다주겠다”는 그 마음이 그녀를 변화시킨 것. 이것은 사회가 흔히 보여주는 약자에 대한 편견을 뒤집는다. 약자라 하면 늘 돌봐 주어야 할 존재로서만 여기지만, 사실 그들이 있어 우리가 살아간다는 생각을 우리는 하지 않는다. ‘별을 따다줘’는 이 이야기를 웃음의 코드로 유쾌하게 우리에게 전하는 드라마다.

이 드라마는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과 ‘가문의 영광’을 쓴 정지우 작가의 작품들과 궤를 같이 한다. 정지우 작가의 작품들은 주로 유쾌한 멜로를 다루지만 그건 사랑이라기보다는 정, 어쩌면 인간애에 더 가깝게 그려진다. 그 안에는 부족한 듯 보이는 인간 군상들이 등장하지만 작가는 그들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지 않는다. 그 변화 가능성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정지우 작가의 작품을 훈훈하게 만드는 이유다. ‘별을 따다줘’는 그 훈훈함이 무미건조해져버린 우리네 마음까지 녹여주는 착한 드라마다.

Posted by 더키앙

완벽한 이웃 같은 작가, 정지우

금요일 저녁, 도무지 금요드라마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드라마가 있었다. 정지우 작가를 주목하게 된 작품, ‘내 사랑 못난이’다. 이 드라마는 성인극과 가족극을 오가던 금요드라마에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사람냄새 나는 드라마’로 승부해 놀랄만한 결과를 얻어냈다. 그런 그녀가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이후 완벽한 이웃)’을 들고 우리 옆을 찾아왔다.

‘완벽한 이웃’은 여러모로 ‘내 사랑 못난이’의 연장선상에서 읽혀진다. 멜로 라인이 강하게 어필하면서도 그 속에 점점이 박혀있는 보석 같은 우정이나 정 같은 사람관계들이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내 사랑 못난이’에서 다 하지 못한 이야기를 이번 작품을 통해 하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게 한다. 늘 따뜻한 느낌을 주는 이웃 같은 드라마를 선보이고 있는 완벽한 이웃 같은 작가, 정지우씨를 만났다.

‘완벽한 이웃’은 멜로로 시작하지 않았다
- 지난 번, ‘내 사랑 못난이’의 결말 부분이 의외였다는 반응에 상당히 신경을 쓰시는 것 같다. 드라마는 때론 의외의 방향으로 변수가 생길 수 있는 것인데.
▲ 본래 동주(박상민)와 차연(김지영)의 멜로 라인은 의도했던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호태(김유석)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시청자 분들이 호감을 갖고 봐줄 거라 예상했는데, 의외로 동주와 차연 쪽에 더 무게중심이 가게 됐다. 그래서 결말부분에 대해 의외라는 반응을 갖게 된 거 같다.

- 호태란 캐릭터는 어쩌면 정지우 작가가 갖는 독특한 부분으로 여겨진다. 보통 멜로 드라마를 보면 남녀의 연애관계로 많이 흐르는데 호태라는 인물은 의리나 우정 측면이 강한 캐릭터로 차연과 관계를 갖는다. 이 부분이 시청자분들에게는 좀 낯설게 다가가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것과 연관지어 ‘완벽한 이웃’에서는 이웃을 들고 온 것이 특이하다. 멜로 드라마라면 역시 낯선 소재인데.
▲ 처음부터 이 드라마가 멜로 드라마로 시작한 것은 아니다. 사람과 사람들이 어떻게 관계를 맺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지금 사람들은 혈육이 아니면 이웃일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는데 지금 앞에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를 캐보자 하는 마음에서 이 드라마를 시작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부분에 그렇게 많은 관심을 보이지는 않은 것 같다.

- 아니 사실 초반부에 거기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그 이유는 ‘내 사랑 못난이’에서 못한 이야기를 이어서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드라마는 초반부에 휴먼드라마로 시작했지만 차츰 멜로 라인이 생기면서 유준석(박시후)과 정윤희(배두나)가 엮어 가는 멜로드라마로 가고 있다. 초기 하고싶은 얘기가 이웃에 관한 것이었다면 사실 멜로 라인은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지 않았나.
▲ 유준석과 백수찬(김승우)이란 캐릭터를 부딪치게 하려는 생각이었다. 유준석을 통해서는 지금까지 여타의 드라마에서 있었던 돈 있는 남자의 이미지를 깨보고 싶었다. 하지만 역시 모든 멜로는 로망이고 동화다. 이것을 무시할 수는 없는 거다. 그러면서도 어느 정도는 현실을 가미하기 위해 처음부터 계획했던 것이 ‘세컨드 제안’이었다. 돈 있는 남자들이 너무나 쉽게 아무 것도 아닌 캐릭터를 선택하는 것은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세컨드 제안을 하는 재벌2세의 모습은 어떨까로 인물을 처음부터 잡았다. 그것이 욕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이 캐릭터들에게도 분명히 어떤 변명거리는 있다. 그걸 놓치고 싶지 않았다.

- 우리나라 사람들은 신분이나 빈부가 맞닿는 멜로 관계에 더 열광하는 것 같다. ‘내 사랑 못난이’에서의 신동주와 진차연, ‘완벽한 이웃’의 유준석과 정윤희 같은 관계가 더 각광을 받았다. 상대적으로 멜로 라인보다는 인간적인 정을 느끼게 하는 백수찬은 괜찮은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호태 비슷한 느낌으로 빠지고 있다. 하지만 요즘 드라마가 달라지면서 너무 멜로, 연애가 강조되면 트렌디 드라마다 하면서 욕을 먹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 다른 성격의 캐릭터들은 어떤 균형감각을 만들어주는 것 같다.
▲ 그런 점도 있다. 백수찬과 호태란 인물은 앞으로 쓸 다른 드라마에서도 계속 나올 것이다. 우정이라는 이름이지만 그것이 사랑 관계에서는 더 소중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어느 땐가는 사람들이 받아들여줄지 모른다는 짝사랑으로 늘 제시할 것이고, 또 유준석이나 신동주 같은 상처받은 있는 자들의 이야기도 늘 가져가게 될 것이다.

멜로에는 비관적, 우정에는 낙관적?
- 정지우 작가의 드라마를 보면 멜로에 있어서는 비관적인 시선, 우정에 있어서는 낙관적인 시선이 읽혀진다. 정윤희와 백수찬의 우정이 밝은 반면, 정윤희와 유준석의 애정은 어둡다. 이것은 ‘내 사랑 못난이’에서의 진차연과 호태, 신동주의 관계와도 유사한데 이런 시선은 작가가 갖고 있는 세계관이 반영된 것인가.
▲ 그렇다. 호태라는 인물은 모자라지만 타인을 위해서는 다 던진다. 백수찬이란 인물은 조금 틀리다. 제비로 살다가 어느 순간 변해 가는 데 그것이 여자 캐릭터에 의해서다. 호태는 그렇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늘 따뜻함을 주는 캐릭터로 별거 아니라 생각될 수도 있지만 늘 기억에 남는 인물이다. 그래서 ‘내 사랑 못난이’에서 호태를 버리지 못한 것이다. 어차피 다른 누구와 결혼해도 평생 가슴에 기억을 묻고 다녀야 하는 인물이다. 그러니 함께 가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

- 정지우 작가의 드라마에서는 못난 이와 잘난 이의 대결구도가 많이 보이는데 애착을 양쪽에 모두 두고 있어서 그런지 그 화학반응이 따뜻하다. 많은 걸 갖고 있지만 또한 부족한 면을 가진 인간이란 측면을 건드리기 때문인 것 같다. 또한 준석 아버지나 ‘내 사랑 못난이’의 조옥자 여사가 가진 캐릭터, 그리고 꼭 등장하는 부성애 혹은 모성애. 이런 걸 보면 이건 멜로 드라마의 구조로 보기가 어려워진다. 그럼에도 멜로에 대한 요구가 큰 이유는 무얼까.
▲ 아무래도 갖고 싶고, 성공하고 싶고, 출세하고 싶어하는 욕망을 무시할 수는 없는 거 같다. 이번에도 유준석 캐릭터를 제시하면서 물론 어떤 상처를 가진 사람 이야기를 하려 의도했지만, 시청자분들이 그 멜로 부분에 많이 쏠린다는 건, 자신들이 가진 욕망을 대치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저런 부분은 백수찬보다는 훨씬 낫잖아, 그리고 현실적으로 더 좋은 길인데 뭐 어때’하는 욕망. 그 부분이 크게 작용을 하는 것 같다.

- 만약에 멜로가 아닌 사람다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아예 애초부터 멜로 라인을 빼고 가는 건 어땠을 것 같나.
▲ 기본적으로 멜로가 좋다. 본질적으로는 멜로가 하고 싶은데 거기에 인간적인 냄새가 들어있는 멜로를 하고 싶다.

- 이 드라마에는 멜로와 함께 미스테리도 섞여 있는데 거기서 얻어지는 드라마의 이득이 있나.
▲ 별로 없다. 다만 관계에 대한 이야기 때문에 그랬다. 연수연이란 캐릭터가 살인사건과 연관지어 등장하는데, 이것은 부부 관계에서 삐걱거렸을 때 존중하지 않는 관계가 얼마나 큰 불행을 가져올 수 있는가 하는 이야기를 가져가기 위한 설정이었다. 엉성한 미스테리지만 포기가 안되더라.

- 엉성하다 하지만 드라마 상에서는 이게 기능을 했다. 초반부에 흩어지는 캐릭터를 모아주는 역할도 하고 긴장도가 떨어지는 소소한 얘기에서 극을 긴장하게 해주는 맛도 있었다.
▲ 그건 의도했지만 사실 의도대로 잘 먹히지는 않는 것 같다.(웃음)

사람냄새 나는 드라마, 그 이유
- 완벽한 이웃이라고 제목을 붙였는데 본인은 완벽한 이웃이 뭐라 생각하나
▲ 제비의 전적을 갖고 있는 백수찬이 이런 얘길 한다. “전에 만난 여자는 지금 현재 여자 앞에서는 동네 수퍼 아줌마보다도 못한 존재다.” 이것이 완벽한 이웃을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다. 네 앞에 지금 앉아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지금 백수찬을 비롯해 다른 가정들의 인물들도 다 그런 측면에서 이야기가 흘러가고 있다. 그들을 보면 자기 옆에 있는 사람을 돌아보지 않는다. 즉 현재 맞대고 있는 주변사람들에게 충실한 사람을 완벽한 이웃이라 생각한다.

- 정지우 작가의 드라마는 사람냄새 난다는 얘기가 있다. 어떤 느낌이 그런 이야기를 나오게 하는 걸까.
▲ 모든 작가들의 작품은 사람냄새가 있다.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열정이 있기 때문에 작업에 뛰어든다. 나보다 앞서 많은 작가 분들이 그런 얘길 해왔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노희경 작가 같은 분들을 존경한다. 그런 얘기가 공감이 되고 용기가 있다 생각한다. 제 입장은 그런 연장선에 있지만 어떤 면을 확 부각시키는데 있어 능력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도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차라리 용기가 더 있다면 백수찬이란 인물을 갖고 더 드라마를 끌고 갔을 것이다. 하지만 천성적으로 소녀취향이다 보니까 유준석 캐릭터에 나도 매력을 더 느끼고, 멜로 대사에 있어 감성적인 부분들을 많이 만들게 된다. 이런 복합적인 부분들이 얽혀서 사람냄새 난다는 얘길 하는 것이지 나만 그런 건 아니라고 본다.

- 영화로 치면 ‘스모크’ 같은 느낌을 가도 괜찮을 거 같다 생각한다. 멜로가 아니어도 정감을 주는 여러 관계들, 예를 들면 남자와 남자 간의 의리나, 부모 자식 같은 관계, 아니면 지나가는 어떤 인물에 대한 정 같은 걸 보여줘도 좋지 않을까. 그런 작품은 혹시 생각하고 있는 건 없는지.
▲ 그런 작품은 늘 생각한다. 다음 작품에는 백수찬이나 호태 같은 캐릭터가 다른 모습으로 어떻게 더 사람들에게 정을 느끼게 해줄까 늘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남의 돈 갖고 예술하고 싶지는 않다. 소설을 써봤고 데뷔도 해봤는데, 소설은 써서 출판하시겠습니까 하고 물어보면 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 때는 할 수 있는 것을 다했던 것 같다. 하지만 드라마를 쓰면서는 이건 남의 돈이고 자본이 돌아가는 시장이기 때문에 내 얘기만 지루하게 늘어놓고 싶지 않다라는 생각이 늘 강하다.

- 소설과 드라마는 어떤 차이가 있나.
▲ 소설은 전적으로 작가의 작품으로 자기의 세계관을 다 드러낼 수 있다. 어떤 부분에서는 주책스러울 정도로 수다를 떨 수 있는 분야인 것 같은데, 드라마는 공동작업이라는 걸 많이 느낀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반향을 일으키는 게 있고, 내가 쓴 느낌과 다르게 연기자가 해석해주는 경우도 있다. 이런 부분에서 재미를 느낀다.

백수찬의 이야기를 좀더 들려주고 싶다
- 게시판에 본인도 결말이 궁금하다고 했다. 아무래도 지난번 ‘내 사랑 못난이’의 결말 때문에 그걸 염두에 둔 것 같은데, 사실 드라마는 어디로 튈지 모를 공처럼 갈 순 없는 게 아닐까. 요즘 사전 제작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온다. 최소한 사전 대본이라도. 거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 장단점이 둘 다 있다. 사전 제작 좋다. 하지만 작가 역시도 그게 공동작업이다 보니 내 대본이 감독이나 연기자에게 어떻게 소화될지 모른다. 다 써놓고 한다는 것은 완성도라는 측면에서 역시 장점도 있지만 그런 단점도 있는 거 같다. 어떤 면에서 사전 제작은 스스로 미리 만들어놓은 대본의 족쇄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때론 본 방송을 보면서 그런 감을 잡을 때가 많다. 이번 경우에는 한 3, 4회를 보면서 어느 정도 마음을 정했다. 그것은 백수찬이란 인물을 공공의 적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 백수찬이란 인물이 조금 더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그를 보호할까, 또 백수찬이 하는 이야기를 흘려 듣게 하고 싶지 않다, 조금 더 백수찬이 시선을 받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같은 것이다. 이런 걸 고민하다 어느 정도는 방향성을 정하게 됐다.

- 백수찬을 주목시키려면 강한 유준석 캐릭터를 좀 약화시킬 필요가 있는 건 아닐까
▲ 나도 여자다 보니까 남자 주인공 캐릭터에 매력을 느끼면서 쓰게 된다. 따라서 유준석이란 캐릭터는 백수찬과 비교해서 보다 남성적이고 매력 있다는 걸 인정한다. 굳이 유준석의 캐릭터를 약하게 하면서까지 할 필요는 없다 생각한다. 유준석은 겉으로 완벽해 보이지만 사실 부족한 캐릭터다. 그래서 약간의 성장 드라마의 요소를 가져가자 생각했다. 즉 이들이 어떤 모습으로 변해 가는가 하는 걸 가족 속에서 찾아보려고 했다. 윤희라는 가족 속에 들어왔을 때 갖는 어떤 편안함 같은 것을 통해서 유준석은 변화해나갈 것이다.

- 정미희와 양덕길의 관계가 궁금하다. 이런 일반적이지 않은 관계가 이 드라마의 장점이다. 환타지의 요소가 있는데 캐릭터를 봤을 때도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존재했으면 싶은 그런 사람들인 거 같다.
▲ 이 드라마에는 현실적인 인물이 거의 없다. 다 극대화되어 있고 어떤 부분들만 포장이 되어 있는 캐릭터들이다. 양덕길은 현실적으로 보면 말도 안 되는 캐릭터다. 아무리 농촌총각이라 해도 그토록 순박하고 헌신적인 인물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정미희도 마찬가지다. 세 번 이혼하고도 제비한테 목매는 이상한 캐릭터다. 그게 강점이 될 수도 있는 거 같다.

약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
- 앞으로 쓰고 싶은 드라마는?
▲ 나는 여러 장르, 사극 같은 것도 하고 싶고 진짜 밑바닥 인생들의 이야기도 해보고 싶다. 나이 들어서는 특집극만을 전문으로 쓰는 그런 작가로 남고 싶다. 일일 드라마는 너무 많이 써봤다. 아직은 나이가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조금 더 실험적인 걸 하고 싶다. 일일 드라마는 아마도 제일 잘 만든 장르일 것이다. 특히 저녁시간대에 가족드라마 성격을 가진 일일드라마는 평범한 사람들 보통사람들 이야기가 나온다. 이런 부분이 내 성격적으로 맞을 수는 있지만 빨리 눌러 앉고 싶진 않다.

- 작가로서 제일 어려운 점은.
▲ 조율이다. 특히 이번 드라마를 쓰면서 능력의 한계에 자괴감을 많이 느꼈다. 많은 사람들 이야기를 가져왔는데 그게 전부 드러나지 않은 것 같다. 우리 드라마에는 의처증, 애처가, 아내에 관심 없는 남자 같이 많은 남자들이 나오는데 한 신이라도 나올 때 그걸 다 얘기해야 한다. 멜로를 그리면서도 이들을 같이 가져가는 것에 항상 힘들고 한계를 느낀다.

- 시청자와의 조율은 어떤가.
▲ 시청자는 제일 무섭다. 조금 얘기했음에도 크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다. 내가 드라마를 통해 이렇게 얘기했지만 너무 여기만 보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있다.

- 약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은 계속 가져갈 건지.
▲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나 스스로도 소아마비를 가진 약자이기에 그렇다. 사범대를 나왔지만 교육공무원이 될 수 없다라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이건 참 불합리하다 생각했다. 나 같은 경우는 그래도 교육의 기회를 많이 받았고 사회에 진입할 수 있는 여러 통로를 가질 수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이런 것들이 차단되어있는 분들이 많다. 선천적으로 갖고 있는 약자라는 삶을 살아오다 보니까 그런 쪽으로 당연히 시각이 가게 된다.

- 그런 부분이 분노보다는 사랑으로 많이 승화되어 나오는 거 같다.
▲ 분노한 시기도 있다. 어렸을 때는 좌절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인복이 많았던 것 같다. 그 사람들과 만나면서 약자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날 공정하게 대우해주고 인정해주는 것들이 받아들여질 때 고맙고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이 많았다. 너무나 감사한 것이 사회적인 약자로서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황금시간대에 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천운이라고 생각한다. 분노로 터뜨리기에는 시간이 아깝지 않은가.

인터뷰를 통해 느낀 정지우 작가는 본인이 써온 드라마들, 즉 ‘내 사랑 못난이’, ‘완벽한 이웃’을 고스란히 닮은 작가였다. 그렇게 세련된 느낌은 들지 않지만 그 질박함이 보면 볼수록 자꾸만 보고싶은 드라마 속 캐릭터들처럼, 작가 역시 굳이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짙은 삶의 냄새가 묻어나는 그런 인물이었다. 아직 ‘완벽한 이웃’의 결말은 나오지 않았지만 미루어 짐작하건대 적어도 우리는 그 끝에서 완벽한 이웃 같은 따뜻한 드라마 한 편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늘. 따뜻한 시선을 가진 작가가 있는 한.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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