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라도 상관없어...” 신혜선의 상처를 치유시킨 강훈의 고백(나의 해리에게)

나의 해리에게

“전 상관없어요. 혜리씨. 왜냐하면 난 그냥 혜리씨가 있어주기만 하면 되거든. 내 옆이 아니어도 살아서 건강하기만 하면 난 그걸로 충분해요. 날 사랑하지 않아도 되고 다시 숲으로 들어간대도 난 괜찮아. 원하면 내가 거기 같이 가줄 수도 있어요. 나 진짜 다 버리고 같이 가줄 수 있어요. 그딴 건 조금도 무섭지 않아요. 혜리씨. 왜냐하면 전요 혜리씨. 처음부터 혜리씨가 그 누구라서 좋아했던 게 아니거든. 그저 이런 내게 와준 사람이라… 내가 혜리씨를 그래서 좋아했던 거고 그래서…”

 

지니TV 오리지널 드라마 ‘나의 해리에게’에서 강주연(강훈)은 갑자기 사라져 너무나 보고 싶었던 주은호(신혜선)를 보고는 그렇게 외친다. 물론 강주연이 기다렸던 건 주은호가 아니라 그의 안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인격 주혜리(신혜선)였을 게다. 어느 날 우연히 만나 마음을 나눴고 그리워하게 됐던 주차관리소에서 일하던 주혜리를. 그래서 돌아온 그가 주은호인지 주혜리인지 너무나 궁금해하지만 그는 결국 그게 아무 상관이 없었다는 걸 알게 된다. 그가 주혜리를 좋아했던 건 ‘누구라서’가 아니라 ‘그저 이런 내게 와준 사람’이어서였으니까. 

 

그 말을 들은 주은호는 강주연에게 다가가 그를 꼭 안아준다. 바로 옆에 서서 주은호를 걱정하고 보살피려 한 정현오(이진욱)는 그 광경을 눈앞에서 보고는 깜짝 놀란다. 주은호이기를 간절히 바랐던 정현오다. 너무나 사랑했지만 결혼을 꿈꾸는 주은호에게 이를 거절하고 이별 통보까지 했던 그였다. 자신이 홀로 감당해야할 할머니들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지만, 주은호가 해리성 정체성 장애를 갖게 된 사실이 그는 마치 자신 때문인 것 같아 괴롭다. 주은호가 아닌 주혜리가 되고 싶을 정도로 그 이별 통보가 아팠던 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주은호가 주혜리가 되어 돌아온 것 같은 그 광경이 그에게는 몹시 아프다.

 

실제로 주은호는 자신과의 결혼을 거부하던 정현오가 결혼을 한다는 사내에서의 소문을 듣고 충격에 빠진다. 부모를 잃었고, 숲으로 들어간 동생을 잃었으며 그 빈 자리를 유일하게 채워줬던 사랑하는 사람 정현오와도 헤어졌다. 헤어진 이유가 비혼주의자라서인 줄 알았는데 결혼을 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다니. 물론 그건 소문에 불과한 것이었지만 주은호는 무너지고, 방송사고를 내고 결국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게 되는 지경에 이른다. 주은호는 자신을 버리고 싶어진다. 대신 주혜리가 궁금하고 되고 싶어진다. 그 애가 왜 행복했는지 알고 싶어진다.

 

그래서 주은호는 숲으로 들어간다. 자신을 버리고 주혜리가 되고 싶어서 심지어 자기 팔에 주혜리가 가졌던 상처까지 내며서 자기를 버리려 한다. 그는 그렇게라도 행복해지고 싶었다. “난 언제나 혜리에게 묻고 싶은 게 있었어요. 주혜리. 넌 행복해? 만약 니가 행복하다면 나는 이제 너로 살아보려해. 내가 노력한다면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지금까지 내가 그래 왔던 것처럼.” 하지만 그는 끝내 혜리가 되지 못한 채 돌아왔다고 강주연에게 고백한다. 그건 그가 모든 걸 버리고 그 숲 속 오두막집을 찾아가면서도 버리지 못한 한 가지가 있어서였다. 정현오가 작은 메모지에 그린 목걸이 그림이었다. 그 그림은 주혜리가 되려는 주은호의 손을 끝까지 잡아주었다. 

 

‘나의 해리에게’는 구도로만 보면 주은호를 두고 정현오와 강주연 그리고 문지온(강상준)까지 사랑하게 되는 4각구도의 멜로처럼 보인다. 하지만 경계성 정체성 장애를 겪으며 주은호와 주혜리를 오가는 이 인물의 사랑 이야기는 그렇게 밀고 당기는 꽁냥꽁냥 멜로와는 차원이 다른 걸 담고 있다. 그건 강주연이 ‘누구든 상관없다’고 말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보다 ‘존재론적인 사랑이야기’다. 

 

누구나 행복해지기를 원한다. 심지어 동생이 실종되면서 결코 행복할 수 없던 삶을 살아온 주은호 같은 인물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 불행의 늪을 벗어나기 위해 다른 인격을 꿈꾸기도 한다. 흔히들 말하는 ‘이번 생은 망했다’며 다음 생을 꿈꾸거나, 과거로 되돌아가 다른 선택을 하는 삶을 꿈꾸는 회귀물에 빠지는 건 그래서가 아닌가. 그런데 그렇게 현재의 내가 싫고 불행하게만 느껴져 차라리 다른 인격이 되고 싶은 그를 끝내 붙잡아주는 건 뭘까. ‘나의 해리에게’는 그 질문에 강주연이라는 인물의 사랑을 통해 답하고 있다. 그 누구여서가 아니라 그런 내게도 와준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이 우리가 설혹 불행의 늪에 빠져 있어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이라는 것이다. 

 

“마음은 딱 하나”라고 믿는 강주연에게 주은호는 자신이 주혜리가 되지는 못했다며 대신 그에 대한 고마움을 전한다. “누구보다 사랑이 필요했던 나를 아껴주고 사랑해줘서 고맙다고. 아까 주연씨가 했던 말은 내가 주연씨한테 하고 싶었던 말예요. 맞아요. 나도 처음부터 그 누구라서 그쪽을 좋아했던 게 아니고 그저 내게 와줘서 이런 내게 와줘서 고마웠어요. 주연씨.” 그가 강주연을 꼭 안아줬던 건 주혜리여서가 아니라 고마움 때문이었다는 걸 말해준다. 

 

그래서 주은호가 강주연을 안아주는 장면은 이 대목에서는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강주연의 말이 사실 주은호가 하고 싶었던 말이라는 뜻은, 자신이 주혜리가 되면서까지 찾고 싶었던 행복의 비밀이 바로 그것이었고, 그래서 강주연의 그 말은 주은호가 스스로를 되찾을 수 있는 열쇠가 되었다는 의미다. 주은호가 안은 건 강주연만이 아니다. 바로 자기 자신을 드디어 껴안을 수 있었던 것이다. 

 

현실이 너무 아파서 다른 인격을 가진 이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됐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로 시작한 드라마는 이제 그 모험 같은 여정을 돌아서 인간 존재의 사랑과 행복에 대해 이야기한다. 누군가를 잃는다는 상실감과 그 상처를 어떻게 회복하고 돌아올 수 있는가를 이야기한다. 단 한 순간도 행복한 적 없었다고 생각했던 주은호는 드디어 그 먼 길을 돌아와 알게 된다. 자신이 너무나 행복했던 순간이 있었다는 걸. 어느 날 아침 출근하려던 정현오를 붙잡아 잠깐 동안 함께 있었던 그 순간을 떠올린다. 그러면서 다짐한다. “그 사람이 다시 돌아와준다면 말해야지. 말해줘야지. 말해줘야지. 고마워. 내 사랑. 이런 내게 와줘서 정말 고마워.” 

 

‘나의 해리에게’는 그래서 해리성 정체성 장애라는 다소 우리에게는 낯선 장애를 소재로 삼은 멜로드라마지만, 그런 일들이 우리에게도 마음 속에서 계속 벌어지는 일들일 수 있다고 말하는 드라마다. ‘나의 해리에게’는 묻고 있다. 당신의 혜리는 어떤 존재인가. 또 우리 모두의 혜리는? 그리고 우리가 붙박혀 살아가는 현실과 우리가 꿈꾸는 행복 사이에서 저마다 하나씩 혜리를 갖고 있으면서도 우리를 다시 현실로 되돌리는 진짜 행복이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다. 이런 내게 와준 소중한 존재들이 옆에 있어서 힘겨워도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고. (사진:지니TV)

왜 오수재인가

‘왜 오수재인가’, 우리의 정체에 대해 묻는 드라마

 

“빼어날 수 맑을 재. 근데 그 이름을 함부로 쓴 거야. 빼돌린 돈을 세탁하는 계좌에 그 이름을 막 쓴 거야.” 오수재(서현진)는 TK로펌 최태국(허준호) 회장이 바하마에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하고 그 돈 세탁에 사용된 해외계좌 이름에 자신의 이름을 마구 사용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그 사실을 밝히고 저들과 싸우는 건 무모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최태국 회장에게 이 일을 묻어주는 대가로 700억을 요구한다. 그걸 최태국 회장은 이렇게 말한다. 이름값이 700억이냐고. 

 

SBS 금토드라마 <왜 오수재인가>가 드디어 이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 놨다. 어쩌면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는 바로 그 누군가의 ‘이름값’에 대한 것이 아닐까. 아버지가 ‘빼어날 수에 맑을 재’라고 이름을 지어준 건 그렇게 빼어나고 맑게 자라라는 염원이 있어서였을 게다. 하지만 최태국 회장 같은 이들은 그의 이름을 함부로 돈 세탁에 이용한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오수재는 자기 이름이 땅바닥에 굴러다니는 기분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듣는 공찬(황인엽)은 그게 남 이야기가 아니다. 그가 김동구라는 이름을 쓸 때 의붓동생을 살해했다는 누명을 썼고 진범이 잡혀 풀려났지만 그럼에도 그의 이름은 이미 더럽혀져 있었다. 누명을 벗고 출소하던 날 의붓엄마는 그의 뺨을 때렸고, 그가 김동구라는 걸 알아보는 학교 친구들은 그를 재수 없어 했다. 눈빛도 이상하다며. 오수재가 더럽혀진 자신의 이름에 분노하는 것처럼, 공찬은 자신의 진짜 이름 김동구를 찾기 위해 여전히 노력하는 중이다. 당시 진범이라 자수한 이가 진범이 아니라며 그 때의 진실을 낱낱이 밝혀내려한다. 그것이 자신의 이름을 되찾는 길이라 여긴다. 

 

오수재는 자신의 이름이 돈세탁에 쓰였다는 사실을 공찬이 찾아내 준 것이 다행이면서도 마음이 영 좋지 않다. 뭔가 들킨 거 같고 쪽팔린 것 같다. 그래서 공찬을 피한다. 그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속내를 드러낼 때 공찬은 말한다. “나도 그런 거 있어요. 차라리 들켰으면 싶기도 한데 또 몰랐으면 싶기도 하고 교수님만 그런 거 아니라고요. 그러니까 또 퉁쳐요. 우리. 안 좋은 일들만 몰아닥치는 것 같은 때가 있잖아요. 그런데 조금만 기다리다 둘러보면 좋은 일들이 옆에 와 있어요. 일도 사람도.” 그건 오수재에게 하는 말이면서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오수재는 최태국 회장이 부탁한 아들 최주완(지승현)의 이혼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의 아내를 임승연(김윤서)을 만난다. 양육권과 친권을 요구할 줄 알았는데 의외의 말을 꺼낸다. 딸 재희가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는 것. 그러면서 재희 때문에 자신의 아이를 잃었다고 말한다. “난 재희 때문에 내 아이를 잃었어요. 튼튼이. 뱃속에서 튼튼하게 자라라고 태명을 그렇게 지었는데 어느 날 뱃속에 있는 튼튼이가 심장이 안 뛴다고 하더라구요. 재희가 있다는 거 알고 내가 매일 같이 울고 토하고 잠도 못자고 그렇게 두 달을 보냈더니.”

 

그런데 더 충격적인 건 임승연에게 최태국 회장이 재희를 자신이 낳은 딸로 세상에 알리겠다고 했다는 거였다. 너도 그게 좋지 않겠냐며. 그 이야기에 오수재는 잊고 있던 자신의 아이를 떠올리며 절망한다. 최태국 회장에 속아 미국까지 보내져 사산된 아이. 하지만 그 아이에게도 ‘하늘이’라는 태명이 있었다. 그는 깨달았다. 그 예쁜 이름을 지우고 살았다고. 그래야 살 것 같아서. “아무한테도 말 안하고 아무도 모르길 바라고...”

 

<왜 오수재인가>라는 제목이 붙여진 건 이 드라마가 결국 이름으로 대변되는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이기 때문일 게다. 누군가는 함부로 이름을 이용해먹고, 누군가는 누명 때문에 진짜 이름을 숨긴 채 살아간다. 또 누군가는 대외적으로 그럴 듯하게 보이기 위해 타인의 딸을 친딸인 양 속이며 살아가고, 또 누군가는 너무 아픈 상처라 살아가기 위해 죽은 아이의 이름을 지우며 살아간다. 또 누군가는 죽은 아이를 잊지 못해 그 이름 언저리 한쪽을 쥐고 원망의 대상으로서 누군가의 이름을 증오하며 살아가고.

 

오수재는 자신의 이름값으로 복수하듯 700억을 요구하고, 그래서 그걸 받아내지만 그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그건 700억이 별거 아니라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름값의 무게와 가치가 그것보다 더 크게 느껴져서다. 그래서 이 오수재가 갖고 있는 ‘이름값’에 대한 서사는 우리에게도 결코 가벼울 수 없는 질문을 던진다. 월급이나 연봉처럼 이름은 이 자본화된 세상에서 흔히 가격으로 그 가치가 매겨지곤 한다. 하지만 그건 가당한 일일까. 당신의 이름은 어떤 가치를 갖고 있는가. 아니 어떤 진짜 가치가 있는 이름값을 하고 있는가. (사진:SBS)

‘파친코’의 진가는 단역조차 이런 묵직한 대사를 던진다는 것

파친코

오사카에서 전도사로 일하는 이삭(노상현)은 아들이 위험한 일에 빠져 있다며 이를 막아달라는 한 어머니의 부탁을 받고 그 아들을 찾아가 만난다. 얼굴에 잔뜩 흙이 묻은 채 이삭과 함께 거리를 걷는 사내는 설득하러온 이삭에게 오히려 “눈을 뜨라”고 일갈한다. 

 

“눈을 뜨실 때가 됐어요. 전도사님. 여기 인부들이나 나나 땅굴 들어가서 철로를 깔아요. 인부들 더 빨리 더 많이 먼 곳으로 실어 나르려고. 그래서 우리처럼 뼈 빠지게 부려 먹으려고요. 그렇다고 우리가 대단한 대우를 해달래요? 최소한 길바닥에 똥 싸지르는 짐승이랑은 다른 꼴로 살게 해줘야 할 거 아니에요.”

 

애플+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에 등장하는 이 사내는 단역이다. 이삭이 우연찮게 만나고 지나치는 인물 중 하나일 뿐. 하지만 이 사내가 던지는 대사는 <파친코> 6회 전체를 관통하는 묵직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건 살기 위해 조선 고향 땅을 떠나 낯선 오사카로 와 갖가지 차별 속에서 살아나가던 조선인들이 가진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다. 저들처럼 살라고 하고 그렇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고 총칼을 앞세워 요구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본질을 부정하거나 부인하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고민이다. 

 

그런 이야기만으로도 위험해질 수 있고, 그 위험이 그 자신과 가족만이 아닌 모든 조선인들에게 화살로 돌아올 수 있다는 걸 이삭은 말하지만, 그런 이삭에게 던지는 사내의 일갈은 얼얼하기만 하다. “제가 그걸 모를 거 같으세요? 저라고 꿈속에서 어머니 얼굴 보고 울다 깨는 일 없겠냐고요. 형제들, 누이들 만나 본 적 없는 생판 남들까지 다 걱정되고 신경 쓰인다고요. 하지만 두려움이 내 몸을 멋대로 주무르게 놔두면요, 나중엔 내 몸의 윤곽조차 낯설어질 거예요. 그걸 내 몸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자기 몸도 없는 게 사람이에요?”

 

1920년대 일본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조선인들의 삶은 1980년대 일본에서의 그 삶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파친코>는 이런 현실을, 이삭과 사내의 에피소드에 이어 솔로몬(진하)과 하나의 에피소드로 교차 편집함으로써 드러낸다. 에이즈에 걸려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하나는 솔로몬이 미국으로 떠난 후 ‘예쁜 집’에 사는 애들은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이 걸린 이 병이 바로 그런 집에서 자란 남자한테서 옮은 거라며 솔로몬에게 이렇게 말한다. “솔로몬 날 봐. 넌 절대 그들이 될 수 없어. 그렇게 비싼 옷을 입고 좋은 학위를 따도 그들은 네가 기회가 있다고 착각할 딱 그만큼만 문을 열어 놓을 거야. 넘어가지 마.”

 

끝까지 조선말을 쓰고 조선의 이름을 버리지 않고 김치를 담가 먹으며 살아온 재일 한인들의 삶을 그래서 수십 년이 지났지만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솔로몬은 회사로부터 땅을 팔지 않는 한 재일한인 할머니를 설득해야 자신도 살아남을 수 있는 처지에 몰렸지만, 그래서 저들을 위해 나섰지만 끝내 할머니가 그간 겪어온 아픈 차별의 이야기들을 마주하고는 땅을 팔라 말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걸 실패한 솔로몬을 가차 없이 버린다. 하나의 말대로 저들은 솔로몬에게 ‘기회가 있다고 착각할 만큼만’ 문을 열어 놓은 것. 

 

“사람이 아니에요. 우린 저놈들 눈에 사람이 아니라고요. 그 굴욕감에 술 처먹고 싸움질 하고 집구석에 들어가서 마누라나 패고... 적어도 나 바닥은 아니다. 내 밑에 누가 더 있다. 저 놈들의 법을 따라 줬어요. 그런데 아직도 춥고 아직도 배고프잖아요. 이젠 그 법을 때려 부숴야 합니다.” 이삭이 만난 사내가 쏟아내는 그 말은 1980년대의 솔로몬이라는 후대에까지 그 울림이 이어진다.  

 

사내의 그 말에 무언가 깨달은 이삭은 사사건건 그의 아내 선자(김민하)를 깎아내리는 형에게 꾹꾹 눌렀던 감정을 폭발한다. 형의 모습은 저 사내가 말한 “굴욕감에 술 처먹고 싸움질 하고 집구석에 들어가서 마누라나 패는” 그런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삭은 그 사내가 했던 말을 빌려 형에게 말한다. “우리 아이는 이런 세상에서 살고 싶게 하고 싶지 않아. 난 내 자식이 자기 몸의 윤곽을 똑바로 알고 당당하게 재량껏 살았으면 좋겠어. 우리 자식들도 그럴 자격 있는 거 아냐 형? 형도 나도.” 

 

그리고 이삭의 이 이야기는 나이든 선자(윤여정)가 과거 대놓고 두 집 살림을 하려던 한수(이민호)가 집도 사주고 뭐든 해주겠다고 한 제안을 거절한 이유를 솔로몬에게 털어놓는 에피소드로 이어진다. “내를 반으로 쪼개놓고 살수는 없다 아이가. 뭐는 당당히 내놓고 뭐는 숨키가 살고. 니 그 아나? 잘 사는 거보다 어떻게 잘 살게 됐는가, 그게 더 중한 기다.” 그 이야기는 선자가 아이 아버지인 한수가 아닌 이삭을 선택해 결혼해 살아가게 된 이유를 말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일본 땅에 이주해 살아가는 재일 한인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놀라운 건 이처럼 묵직한 메시지를 담은 대사를 단역이라고 할 수 있는 한 사내의 목소리를 통해 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분히 의도적인 이런 선택은 <파친코>라는 작품이 주인공에서부터 저 단역에 이르기까지 등장인물을 대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면서, 작가가 가진 이름 모를 민초들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의식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슬쩍 지나가는 어부나 어시장 한 편에서 쌀을 파는 쌀집 할아버지, 이역 땅에 와서 땅굴에 들어가 철도를 놓는 일을 했던 인부까지 중하게 바라보는 시선. 그것은 어쩌면 이주민이라는 위치에서 살아오며 내재된 관점이 아닐까 싶다. <파친코>라는 작품이 특히 감동적인 이유이기도 하고.(사진:애플TV+)

'윤스테이', 문화공정 시국이라 더욱 빛난 나영석표 K예능

 

tvN 예능 <윤스테이>가 종영했다. 총 21팀 64명의 외국인 손님들을 위한 1박2일 간의 한국문화 체험. 전남 구례의 아름다운 한옥집 쌍산재에서 가을과 겨울에 걸쳐 촬영된 <윤스테이>에는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요소 하나하나가 우리네 문화의 다양한 요소들로 채워졌다.

 

처마 밑에 매달려 익어가는 곶감과, 가만히 서서 귀 기울이면 마치 바닷가에 온 듯한 파도소리를 들려주는 대나무숲, 아담하고 소박하지만 엄마 품처럼 포근히 손님들을 품어주는 객실들. 뛰어 놀 수 있을 만큼 넓은 정원에서 아이들이 연을 날리고, 저수지를 산책하며 처음 만난 국적도 다른 이들이 마음을 열고 소통하는 광경들.

 

그 한옥이 넉넉히 품어주는 풍경은 그 곳을 찾은 외국인 손님들도, 그걸 TV로 보는 시청자들도 잠시간의 기분 좋은 휴식을 주기에 충분했다. 여기에 저녁과 아침으로 준비되는 참 많은 한식들이 빛을 발했다. 정성껏 손을 일일이 다져 만든 떡갈비와 기름을 쪽 빼고 담백하게 요리된 수육 그리고 달콤 짭쪼름한 양념이 잘 배인 찜닭은 물론이고,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궁중떡볶이처럼 손님 한 명 한 명을 배려한 한식들은 단지 식욕을 자극하는 쿡방과 먹방의 차원을 넘어 마음까지 포만감을 줬다.

 

그 마음의 포만감은 다름 아닌 외국인 손님들을 대하는 윤스테이 사람들의 진심과 정성 덕분이었다. 하나하나 세심하게 세팅하고, 한국문화 체험을 하는 것이지만, 타국의 문화를 존중하는 마음은 어떤 음식을 준비하고 서빙하며 설명하는 그 과정 속에서 충분히 묻어났다. 우리 문화를 소개하면서 저들의 문화를 존중하는 태도. 그것이 어쩌면 외국인들이 한국인들의 '친절함'을 이야기하는 이유이고, 한국문화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싶다. 그런 점에서 <윤스테이>는 단지 한옥에서의 하룻밤과 한식 대접 그 자체만이 아닌 그 이상의 '한국인의 마음'이라는 한국문화의 진짜를 끄집어내 보여준 면이 있다.

 

물론 나영석 PD표 예능이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 <윤스테이> 역시 그 익숙함의 반복처럼 보이는 면이 존재했다. 음식이 있고, 손님이 있고, 특정 공간에서 그들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이야기가 존재하는 나영석 PD표 예능. 하지만 <윤스테이>의 시도가 가치 있게 느껴진 건, 하필 코로나 시국에 맞춰 한국에 온 외국인들이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한 한국문화를 경험하게 해준다는 그 지점이 우선 의미 있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또한 <윤스테이>는 최근 들어 중국의 문화공정으로 인해 김치도, 비빔밥도 다 그들 것이라 주장하는 어이없는 상황 속에서 더욱 의미 있고 가치 있는 프로그램이 됐다. 이 프로그램은 저들의 문화공정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아도, 그 과정 하나하나를 통해 진짜 한국문화가 무엇인가를 강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타국의 문화를 무시하고 존중하지 않는 저들과는 정반대로 외국인들을 대하고 그들을 존중하는 모습들은 무엇이 자신의 문화를 더 돋보이고 분명하게 해주는 것인가를 보여준 면이 있다. 타국의 문화를 존중하는 것이, 또한 자국의 문화를 존중하는 일이 된다는 것.

 

혹여나 그럴 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하지만 늘 이런 일이 벌어지곤 했다) 만일 중국에서 <윤스테이>마저 베껴 프로그램을 만든다면 아마도 너무나 어색한 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 타국의 문화를 존중하며 자국의 문화를 소개하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진면목이기 때문이다. 그건 베껴서 얻을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이미 그 타국의 문화를 존중하지 않는 베낀다는 행위 자체가 프로그램의 정체성과는 맞지 않는 일이 될 테니 말이다. 코로나든 문화공정이든 지금 같은 시국이라 더더욱 빛나고 더할 나위 없던 <윤스테이>였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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