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시현상, 수애는 여전히 가면을 벗는 중

 

가면을 쓴 삶은 결코 행복해질 수 없어요.” SBS <가면>에서 서은하와 변지숙, 두 인물을 오가는 수애는 배우로서 이 대사를 하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가면의 삶. 가난의 꼬리표를 떼고 가족들을 그 구렁텅이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자신의 존재를 지워버린 채 서은하의 삶을 살게 된 변지숙은 과연 행복할까.

 

'가면(사진출처:SBS)'

<가면>이라는 작품은 여러모로 연기를 하는 배우들에게는 각별한 의미를 담을 수밖에 없다. 연기라는 직업이 결국은 여러 개의 가면을 써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가면에 대해 민우(주지훈)나 석훈(연정훈)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석훈은 가면을 써라. 그럼 세상은 당신 편이 될 것이다라고 말하고, 민우는 가면을 쓰면 행복해질 수 없다고 했냐. 틀렸다. 가면을 써야 행복한 척이라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서은하의 삶을 선택한 변지숙은 그러나 완벽한 가면을 쓰지 못한다. 그녀는 여전히 변지숙이란 인물로 서은하인 척 할 뿐이다. 그래서 자신이 죽은 걸로 알려진 후 자신의 엄마가 사라졌다는 사실은 그녀의 정체성을 명확히 드러내게 해준다. 그녀는 순간 가면을 벗어던진 채 엄마를 찾기 위해 폭주한다. 그런 그녀에게 어떻게든 다가가 다시 가면을 씌우려 하는 건 바로 석훈이다. 가면 쓴 변지숙은 석훈의 야망을 채워줄 도구다.

 

민우 역시 석훈에 의해 가면이 씌워진 인물이다. 지숙과 차이점이 있다면 그는 자신이 가면을 쓰고 있고, 그것이 석훈에 의해 씌워졌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점이다. 석훈에 사주 받은 정신과의사에 의해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자의 가면이 민우에게 씌워졌다. 그 가면은 변지숙의 그것보다 더 견고하다. 스스로도 가면이 씌워진 줄 모르기 때문이다. 결국 변지숙과 민우는 석훈의 마리오네트 같은 인물들이다. 석훈에 의해 두 사람은 가면의 결혼생활을 시작한다.

 

중요한 건 가면을 쓴 삶은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이 가면 쓴 두 사람이 모두 알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 가면의 결혼생활은 차츰 두 사람이 진짜로 가까워지는 시간들로 변해간다. 쇼핑몰이 들어온다는 사실에 격분한 재래시장 사람들이 두 사람에게 달려들 때 손을 잡고 도망치는 장면은 그래서 긴박하다기보다는 그 위험 속에서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렇게 된 것은 변지숙의 가면을 쓰지 않은 모습에서 민우의 마음이 조금씩 열리기 때문이다.

 

결국 이 드라마는 가면의 삶을 벗어던지고 행복을 찾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다. 그런데 어찌 보면 이 새로울 것 없어 보이는 메시지의 드라마가 수애라는 연기자에게는 각별하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연기자 수애. 그녀는 꽤 오랫동안 자신에게 덧씌워진 이미지들로부터 벗어나려 안간힘을 써왔다. 매력적인 굵직한 저음이 주는 신뢰감은 오히려 연기자 수애에게는 하나의 족쇄처럼 작용했다. 늘 단아하고 우아한 모습으로만 이미지화되었기 때문이다.

 

영화 <심야의 FM>에서 목소리로 누군가의 판타지가 된 그녀가 연쇄살인범 앞에서 쌍소리를 해대는 모습은 그래서 자못 진지하게 다가왔다. 가녀리게만 보였던 그녀가 <아테나>에서 니킥을 날리며 순식간에 액션수애의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은 마치 자신의 고정화된 이미지를 통쾌하게 부숴버리는 장면처럼 여겨졌다. <야왕>의 주다해라는 악녀는 그녀의 단아하게만 보였던 목소리가 때로는 악다구니를 들려주기도 한다는 걸 보여줬다.

 

이미지와의 사투, 그 연장선에 <가면>은 연기자 수애에게 의미 있는 작품으로 다가온다. 서은하라는 우아하고 부유한 이미지의 인물을 연기하는, 사실은 소박하고 가난한 변지숙은 그래서 어쩌면 수애의 진짜 모습 같다는 생각도 든다. 눈물 많고 정 많고 소탈한 모습이 누군가 덧씌워놓은 이미지라는 가면에 의해 가려져 있었다는 것. 그러니 그 가면을 벗고 자신의 모습으로 서는 이 드라마의 이야기가 수애에게 더 절절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가면>은 수애가 그 덧씌워졌던 가면의 이미지를 벗는 시간이기도 하다.

 

<냄보소>, 사람이 어떻게 책 한 권에 담길 수 있나

 

달달했다가 섬뜩했다가. SBS <냄새를 보는 소녀>는 도무지 하나로 묶여지지 않을 것 같은 이질적인 느낌들을 오가는 작품이었다. ‘냄새를 보는 소녀오초림(신세경)을 가운데 두고 벌어지는 최무각(박유천)과 권재희(남궁민)의 팽팽한 대결은 섬뜩한 긴장감을 만들어냈지만, 동시에 오초림과 최무각의 멜로는 이와는 상반된 달달한 이완을 선사했다.

 

'냄새를 보는 소녀(사진출처:SBS)'

<냄새를 보는 소녀>는 이 긴장과 이완을 동시에 품는 복합장르의 재미적 요소들을 가장 극대화한 작품. 하지만 이런 시도는 결코 쉽게 성취해낼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말이 쉽지 스릴러의 긴장감 속에 코미디의 웃음과 멜로의 달달함을 넣는 것이 어떻게 쉽겠는가. 특히 연기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당장 자신의 동생을 죽인 살인범을 알게 된 주인공이 여자친구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듯 웃거나 웃기려는 모습이 자연스러우려면 그만한 연기력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박유천의 연기는 이번 작품을 통해서 훨씬 더 성숙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가 연기하는 최무각은 연쇄살인범 권재희 앞에서는 분노로 이글이글 타오르다가, 오초림 앞에 서면 한없이 녹아내리는 그런 인물이었다. 형사로서 범인을 잡기 위해 뛰어다닐 때는 한없이 진지한 얼굴이지만, 오초림과 개그 무대에 서서는 자신을 망가뜨려 웃음을 줄줄도 아는 그런 인물.

 

박유천과 대립하는 권재희 역할을 연기한 남궁민도 마찬가지다. 친절하고 매너 있는 눈웃음의 남자처럼 보이던 그는 그 눈빛 이면에 숨겨진 광기를 조금씩 드러냈다. 그의 광기가 일단 드러나자 매너 있는 웃음조차 살벌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남궁민이라는 연기자가 이 드라마에 세워놓은 기둥은 충분히 든든했다고 여겨진다. 여러 장르들과 사건들의 혼재 속에서도 드라마의 힘을 일관되게 흘러가게 해준 건 남궁민의 연기로부터 비롯된 일이다.

 

박유천과 남궁민이 가진 캐릭터의 이중성은 <냄새를 보는 소녀>가 갖고 있는 인간관 또한 담고 있다. 즉 인간은 일면적인 모습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상황 속에서 다양한 얼굴을 갖고 있다는 것이 이 작품이 보여주는 인간관이다. 최무각은 동생을 죽인 범인을 추적하는 절실한 얼굴이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게 인연이 되어 오초림 같은 사랑을 만나게 되고 그 복수심에서 조금씩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것.

 

권재희는 이런 인간의 다양한 면면들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인물이다. 그가 안면인식 장애를 갖고 있다는 건 이처럼 복잡다기한 사람의 내면을 하나의 인격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상징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가 살인을 하기 전에 그 희생자들에게 자신의 삶을 글로 남기게 하여 책으로 묶어내려는 건 그의 이런 장애를 극복해보려는 안간힘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묶어진 책이 보여주는 일면이 어찌 그 사람을 전부 담을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은 권재희의 착각이다.

 

<냄새를 보는 소녀>는 제목에서 암시되는 것처럼, 한 가지의 감각이나 느낌 혹은 일관성으로 뭉뚱그려진 생각 따위가 모든 걸 말해주지는 못한다는 걸 보여주었다. 냄새는 맡아지는 것만이 아니라 보여지기도 하는 것이고, 살인사건을 당한 주인공도 달달한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도저히 웃을 수 없는 일들을 겪으면서도 우리는 결국 웃으며 살아내고 있지 않은가.

 

박유천과 남궁민의 입체적인 연기에는 그래서 이 독특한 작품이 가진 메시지가 녹아 있다. 그것은 여러 면을 가진 인간의 발견이고, 그것이 있어 지속 가능한 삶의 긍정이기도 하다. 사람은 책 한 권에 오롯이 모든 게 담겨질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또 다른 존재가 되어 계속 살아갈 수 있다.

 

<히든싱어> 제작진이 저지른 몇 가지 실수

 

JTBC <히든싱어>에서 소녀시대 태연이 2회전에서 탈락한 사실로 인터넷이 뜨겁다. 탈락한 곡이 태연의 솔로곡이 아니라 소녀시대의 (Gee)’였다는 것은 논란의 빌미가 되고 있다. 즉 자기 파트도 아닌 부분을 태연이 부르게 해놓고 진짜와 가짜를 찾으라는 건 복불복에 가깝다는 것.

 

'히든싱어(사진출처:JTBC)'

사실이 그렇다. 노래의 정체성은 단지 목소리의 정체성만을 얘기하지 않는다. 즉 비슷한 목소리라도 어떤 노래를 어떤 방식으로 발성해 부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을 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 소녀시대의 (Gee)’에서 태연이 제 목소리를 내는 건 사실상 자기 파트뿐이다. 혹여나 행사 같은 데서 다른 파트를 부를 수도 있겠지만, 일반 대중들에게 다른 파트를 부르는 태연은 낯선 느낌을 줄 수밖에 없다.

 

즉 소녀시대가 아닌 태연을 <히든싱어>의 무대에 세웠다면 그녀만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곡이 선별됐어야 했다. 이런 잘못된 선택을 갖고 태연의 경우 소녀시대 보컬로서의 의미가 가장 크다며 그래서 소녀시대의 노래 1을 넣었다는 건 대중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무려 9명의 목소리가 들어있는 곡이다. 그것 자체도 일반인들은 구별하기 애매모호한데 그런 곡을 갖고 태연의 목소리를 구별해낸다는 건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물론 조승욱 PD가 왜 이런 논란을 억울해하는지는 이해되지 않는 바가 아니다. 그는 <히든싱어>가 누가 노래를 잘 하느냐를 가리는 경연이 아니며, 또 진짜와 가짜만 가리는 프로그램도 아니고, 싱크로율만 따져 기계적인 판정을 내리는 곳이 아니라고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밝힌 바 있다. 그는 <히든싱어>가수의 음악세계와 발자취를 음미하는 시간이라고 했다.

 

좋은 의미다. 하지만 그것은 의미일 뿐, 이 프로그램의 핵심적인 재미 부분을 설명해주지 못한다. <히든싱어>가 그가 말하듯 가수의 음악세계와 발자취를 음미하는 시간이라면 그냥 팬 미팅을 하거나 몇 주년 기념 쇼를 하면 된다. 굳이 <히든싱어>라는 형식을 빌어서 무대를 꾸밀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히든싱어>의 핵심적인 재미는 그가 부정하는 부분에 다 들어가 있다. 가수와 일반인이 함께 무대에 오르지만 실제 이름과 얼굴이 가려져 있고 오로지 목소리로만 들리는 무대에서 누가 노래를 더 잘할까가 대중들은 궁금하다. 또 자신이 뽑은 인물이 진짜인지 아니면 가짜인지가 궁금하고, ‘싱크로율이 높으면 높을수록놀라움을 느끼게 된다. <히든싱어>라는 프로그램에서 이런 재미 부분을 떼어놓으면 남는 건 그저 밋밋한 팬 미팅이라는 점이다.

 

바로 이 재미 부분을 부각시켰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은 승승장구한 것이다. 그런데 태연 탈락의 논란이 불거지면서 이 재미 부분이 핵심이 아니고 오히려 다른 의미가 핵심이라고 말하는 건 궁색한 변명이다. 태연 탈락 논란에는 <히든싱어> 제작진의 명백한 잘못과 실수가 들어 있다.

 

사실 아이돌 그룹을 <히든싱어> 같은 프로그램에 세운다는 건 여러 모로 무리가 따르는 일이다. 아이돌 그룹은 리드 보컬이라고 해도 전체 곡 속에 일부로서 기능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제작진이 태연의 곡 선정을 통해서 거론한 것처럼 그 리드 보컬은 아이돌 그룹을 배제하고는 온전한 정체성을 보여주기 어렵다. 여기에 자가당착이 있다. 그런 이유로 아이돌 그룹이 단체로 부르는 곡을 선정해 놓으면 이번 태연 탈락 논란 같은 사태는 언제든 벌어질 수 있다. 그래서 뒤늦게 제작진은 앞으로 아이돌 그룹 출연은 없을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조승욱 PD 말대로 중도 탈락이 불명예가 되지 않는 곳이 바로 <히든싱어>. 조성모의 탈락은 어떤 면에서는 그 옛 목소리를 여전히 기억하고 똑같이 재현해내는 놀라운 팬심으로 읽혀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탈락했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합당한 룰에 의해 탈락했냐 아니냐의 문제다.

 

새로운 시도들을 하는 과정에서 누구나 실수와 시행착오는 겪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 실수와 시행착오가 훗날의 거름이 되기 위해서는 이를 스스로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물론 본인은 전혀 의도한 바가 아닐 것이다. 따라서 억울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의도하지 않아도 벌어진 명백한 실수와 잘못을 다른 이유를 들어 자꾸 부정하는 건 대중들과 함께 호흡하는 제작진이 취할 자세는 아니다.

 

<개과천선> 김명민의 딜레마가 담는 예사롭지 않은 질문들

 

<개과천선>의 이야기 전개는 생각보다 예사롭지 않다. 어느 날 겪은 기억상실로 인해 윤리적으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김석주(김명민) 변호사라는 인물은 그 자체로 흥미로웠다. 같은 사람이지만 김석주는 과거와 현재가 분리되어 있는 것. 현재의 김석주는 과거의 김석주가가 저지른 잘못들을 스스로 고쳐나가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개과천선(사진출처:MBC)'

따라서 <개과천선>은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다. 한 사람의 정체성이란 과거와 현재가 단절되지 않고 일관되게 흘러온 사적인 역사에 다름없다. 그런데 김석주 변호사는 기억 상실로 인해 이 정체성이 단절되어 버린 것이다. 현재가 과거를 부정할 때 과연 그 사람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터미네이터>나 최근 개봉한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패스트>가 보여주듯 과거를 바꾸려는 현재의 노력은 현재의 자신을 변화시킬 수밖에 없다.

 

<개과천선>이 놀라운 것은 이 드라마가 기업의 편에 서서 서민들의 힘겨움 따위는 신경쓰지도 않던 피도 눈물도 없는 변호사가 그저 서민들을 위한 변호사로 변신하는 이야기 정도를 다루는 단계에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이런 이야기였다면 김석주는 서민들의 슈퍼히어로로 그려졌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아마도 시청자들에게 꽤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줬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개과천선>은 단순한 서민들을 위한 슈퍼히어로 이야기를 선선히 던져버리고 진지한 정체성의 문제로 돌아간다. 그것은 기억상실로 개과천선한 김석주 변호사가 과거 약혼녀였던 유정선(채정안)을 만나면서부터 다시 시작한다. 김석주 변호사가 유정선에게 인간적인 끌림을 느끼게 되는 동시에, 유정선은 서민들을 나락으로 몰고 간 주가조작 혐의로 법정에 서고 구속을 당하게 된다.

 

여기서 김석주 변호사의 정체성 혼란에 의한 두 번째 딜레마가 시작된다. 첫 번째 딜레마가 서민들을 위한 변호사냐 아니면 가진 자들을 위한 변호사냐를 두고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려는 변호사로 재탄생된 김석주의 문제를 다뤘다면, 두 번째 딜레마는 이렇게 서민들을 위한 변호사로 변신한 김석주가 개인적인 사랑을 앞에 두고 겪는 문제를 다룬다. 변호사는 공적인 직업이지만 그 역시 지극히 사적인 감정을 가진 한 인간이라는 것.

 

무수한 사람들을 피해보게 만들고 그것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서민들을 생각한다면 개과천선한 김석주 변호사는 그들의 편에 서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한 여인에게 점점 마음을 주기 시작한 한 남자의 입장에서라면 상황이 달라진다. 곤경에 처한 여인, 그것도 모든 죄를 뒤집어쓰게 된 여인을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개과천선>은 올해 보기 드문 문제작이다. 그저 그런 판타지를 주는 단계를 넘어서서 인간의 딜레마를 탐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직업으로서의 변호사인가 아니면 한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인간으로서의 변호사인가. 또 공적인 일을 하는 변호사인가 아니면 한 사적인 존재로서의 변호사인가. <개과천선>은 능력을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이미 능력은 검증된 김석주라는 변호사가 서게 되는 딜레마의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를 질문한다.

 

아마도 이런 전개는 시청률면에서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시청자들이 원하는 건 서민들을 위한 변호사로 개과천선하는 과정이 주는 통쾌한 카타르시스일 가능성이 높고, 또 한 여인을 위해 목숨을 걸고 변호하는 한 남자의 절절한 멜로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개과천선>은 이런 일반적인 선택을 하지 않는 놀라운 드라마다. 그래서 <개과천선>이라는 드라마의 입장 또한 딜레마에 처하게 된다. 시청률인가. 아니면 좀 더 진지한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인가. 만일 후자라면 이 드라마는 비록 시청률은 떨어지더라도 그 어떤 드라마도 가지 않은 선택을 하게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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