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처럼, 보다보면 살고 싶어지는 드라마가 있다

 

까불이라는 연쇄살인범의 위협 때문에 결국 옹산을 떠나려는 동백(공효진)이는 이삿짐을 싸기 위한 박스가 있냐고 조심스레 떡집 아주머니 김재영(김미화)에게 묻는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아주머니는 얼굴이 어둡다. 돌아가려 하는데 아주머니가 동백을 부르고 무언가 한 가득 채워진 박스를 건넨다. “언니 여기 뭐가 많이 들었는데...” 아주머니는 퉁명스럽게 말한다. “여기 뭐가 들었다고 그랴. 그냥 아무 소리 말고 그냥 가져가. 그 홍화씨는 관절에 좋아.”

 

박스를 들고 가는 동백에게 준기네 엄마인 박찬숙(김선영)도 슬쩍 박스에 담은 마음을 전한다. “동백아 우리집서도 어 박스 가져가.” 야채가게 아줌마 오지현(백현주)도 박스를 잔뜩 들고 오더니 말한다. “동백아! 박스는 배추박스가 제일 커.” 저마다 박스를 챙겨들고 나타나는 옹산 동네사람들을 보며 동백의 눈가가 촉촉해진다. 그간 자신을 편견어린 시선을 바라봐 힘겹게 만들기도 했지만, 대놓고 욕을 하면서도 “김치는 가져가라”고 말하는 옹산 사람들에게서 동백은 따뜻한 정을 느낀다. 문짝에 떡하니 붙여놓은 ‘옹산 이웃 여러분 지난 6년간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라는 글귀에 동백의 진심이 담기는 이유다.

 

KBS 수목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을 보다보면 까불이라는 희대의 연쇄살인범이 있어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지만, 어쩐지 옹산 같은 곳에서라면 살고 싶은 마음까지 든다. 어딘지 시골마을이 갖는 편견과 선입견 게다가 금세 구설수에 오르게 만드는 소문들이 살기에 불편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그래도 뒤끝 없고 무엇보다 없는 삶을 너무나 잘 알아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이해하려는 순박하고 따뜻한 사람들이 있어 특히 그렇다.

 

이 부분은 <동백꽃 필 무렵>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중요한 요인이 아닐까 싶다. 주인공들에게만 집중된 이야기가 아니라, 거기 함께 살아가는 단역들의 삶들 또한 주인공처럼 따뜻하게 그려내는 시선. 그래서 결국은 그 동네가 가진 훈훈함이 전해지고, 드라마를 보는 일이 마치 그런 동네에서의 한 시간을 보내며 힐링하는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 이 드라마가 가진 강력한 매력의 원천이 아닐까.

 

그러고 보면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남는 드라마들의 대부분은 이상하게도 그 동네가 떠오른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많은 시청자들을 웃고 울게 만들었던 JTBC <눈이 부시게>의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어 수다를 떨던 혜자네 행복미용실이 있던 동네가 그렇고, tvN <나의 아저씨>의 퇴근 후 술 한 잔에 하루의 피로와 스트레스를 날리고 무엇보다 약자를 위해 모두가 출동하는 따뜻한 정을 느끼게 했던 후계동이란 가상의 동네가 그렇다.

 

이렇게 동네 자체가 먼저 떠오르는 드라마란 결국 거기 사는 여러 사람들의 훈훈한 온기들이 소외되지 않고 전해졌다는 뜻이다. <동백꽃 필 무렵>은 그래서 이 훈훈함과 더불어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가 어우러져 훨씬 더 입체적인 드라마가 되고 있다. 주인공 한두 명의 존재감만을 집중하는 드라마가 아니라, 거기 등장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모두 집중하게 만드는 그런 드라마.(사진:KBS)


'샐러리맨 초한지', 많은 조역들이 아쉽다

'샐러리맨 초한지'(사진출처:SBS)

'샐러리맨 초한지'가 어느새 종영이다. 이제 겨우 시작일 것 같은데 벌써. '초한지'를 탐독한 시청자였다면 그 기대했던 만큼 아쉬움도 클 것이다. 원전인 '초한지'가 다루고 있는 그 수많은 인간군상들이 상당 부분 삭제되어 있고, 그들을 통해 우리네 삶을 통찰하게 하는 깊이 역시 부족하기 때문이다(어떤 면으로는 의도적으로 깊이는 제거한 듯한 인상이 짙다). 깊이를 삭제했다면 풍자 같은 장치를 통해 현재적인 의미를 살려놓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물론 중간에 팽성실업이 등장하면서 이런 기대를 갖게 만들었지만 이마저 폐업되면서 이야기는 단순한 복수극으로 흘러갔다. '초한지', 역시 드라마로는 한계가 있었던 걸까.

'샐러리맨'이라는 전제를 제목에 붙여놓은 것처럼 이 작품은 '초한지'의 샐러리맨 판 재해석으로 기획된 것일 게다. 하지만 초반에 일찌감치 유방(이범수)이 초고속 승진을 하게 되면서 샐러리맨의 느낌은 사라지기 시작했고, 중반을 넘어서 천하그룹 진시황(이덕화) 회장이 모가비(김서형)에 의해 살해당하면서 이야기는 엄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즉 그 안에 강호에서 명멸해간 수많은 인간군상을 보여줌으로써 현대인들에게까지 삶의 처세를 알려주던 '초한지'는 이 부분에서부터 기업 간의 암투와 개인적인 복수극으로 치달았다.

결국 모가비라는 극단적인 악역이 탄생한 것은 어쩌면 이 드라마의 강점이면서 한계를 드러내는 것일 게다. 모가비와 그녀를 돕게 되는 항우(정겨운), 그리고 할아버지의 복수를 꿈꾸는 백여치(정려원)와 그녀를 돕는 유방의 대결구도를 만들어놓고, 그 안에 적절한 멜로구도를 반복했던 것이 이 드라마 후반부의 대부분이 아닌가. 삶의 처세는 차치하고라도 적어도 샐러리맨이라는 서민적인 포인트라도 짚어줬어야 했지만, 그 부분 역시 복수극이라는 커다란 극성 속에 빨려 사라져버렸다.

선악구도의 대결 속에서 몇몇 인물들에 집중하다보니, 본래 '초한지'가 갖고 있던 매력적인 인물들은 대부분 병풍처럼 되어버렸다. 유방이 가진 최고의 책사인 장량(김일우)과 한신은 유방의 그림자에 가려졌고, 항우 최고의 책사인 범증(이기영)은 모가비의 애인 정도로 전락해버렸다. 본래 '초한지'의 재미가 이들 책사들 간의 두뇌싸움과 인생에 대한 통찰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렇게 뒤로 밀려난 책사들은 드라마를 너무 투톱 대결(유방과 항우)이라는 틀 안에 가둬놓고 단순화한 결과를 가져온 셈이다. 게다가 항우는 후반부에 이르러 멜로가 커지면서 이 대결구도의 전면에 나서지도 않는다(대신 모가비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결과적으로 보면 '샐러리맨 초한지'는 드라마의 대중성을 위해서 상당 부분 타협을 한 작품이 되었다. 물론 이런 타협을 통해 뛰어난 재해석이 가능했다면 그것은 괜찮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런 결과가 나왔을까.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다. 드라마이기 때문에 단순하면서도 경쾌한 스토리 라인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복잡한 구도를 그려내기보다는 한 사람의 절대 악(모가비)을 세워놓고 그것에 대항하는 단순한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었을 지도 모른다. 주인공에 유독 집중하기 마련인 대중들을 염두에 두고는 책사들 같은 인물들을 주인공의 그림자에 숨겨둘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샐러리맨'이라는 포인트 하나만이라도 일관되게 잡으면서 갔다면 종영에 이르러 도대체 이 작품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것인가 하는 의구심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무언가 현실적인 재해석이 빠져버린 복수극으로의 끝맺음을 향해 달려가는 '샐러리맨 초한지'는 그래서 많은 아쉬움을 남긴 작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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