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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무신'은 왜 굳이 정통사극이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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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이 정통사극을 고집하는 이유

'무신'(사진출처:MBC)

'무신'은 기묘한 조합의 사극이다. 이환경 작가는 '용의 눈물', '태조 왕건' 같은 정통사극의 정점을 찍은 작가로 KBS 사극의 대명사 같은 인물이다. 그런데 그가 MBC에서 사극을 한다. 알다시피 MBC 사극 브랜드는 정통사극에서 벗어난 지 오래다. 이병훈 감독을 중심으로 하는 '대장금', '허준' 같은 일련의 퓨전사극이 새로운 브랜드가 되었다. 이런 퓨전화되고 허구화된 MBC 사극의 경향은 지금도 여전하다. '해를 품은 달'이 대표적이다.

그렇다면 '무신'은 MBC가 회귀한 정통사극일까. 아니면 정통사극을 쓰던 이환경 작가의 퓨전화일까. 정통사극을 차별점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지금까지의 전개로 보면 후자에 가깝다. 물론 '무신'은 고려시대 역사 속 실존인물인 김준(김주혁)을 다루고 있다. 그는 천민 출신으로 최씨 무인정권의 마지막 계승자인 최의를 타도하고 왕권을 회복한 뒤 10년 간 권력을 장악했던 실제 인물이다. 하지만 김준, 최충헌, 최우, 최향 등등의 역사 속 실존인물들을 빼놓고 보면 그 스토리의 힘은 역사에서 나온다기보다는 서사에서 나온다고 볼 수 있다.

그 서사의 전범들은 '글래디에이터', '스파르타쿠스' 같은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은 또 그 고전이 되는 '벤허'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스팔타커스'와도 닿아 있다. 공역장에 끌려간 김준이 쓰러진 동료 노예를 감싸주며 감시관과 대적하는 장면은 '스팔타커스'의 도입부분에 들어있는 장면과 똑같다. 알다시피, 격구장은 콜로세움과 같고, 경기에 광분하는 관람자들이나, 경기 도중 목이 잘려나가는 극한 장면들 역시 미국드라마 '스파르타쿠스'의 그것과 거의 유사하다.

물론 이것은 장면 연출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오마주가 가능하다. 실제로 김진민 PD는 "영화 '글레디에이터'와 미국드라마 '스파르타쿠스'를 많이 참고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스토리는 어떨까. 흥미로운 일이지만, 스토리 역시 비슷하다. '스파르타쿠스'나 '무신'이나 모두 경기장 밖에서의 정치적인 상황들이 등장하고, 그렇게 엮어진 갈등들이 경기장 안에서 폭발하는 이원적인 스토리 구조를 갖고 있다. 경기장 안에서의 사투를 통한 김준이라는 인물의 성장스토리나, 그 안에 들어있는 월아(홍아름)와의 안타까운 사랑이야기 역시 마찬가지다.

'스파르타쿠스'와 '무신'. 역사는 완전히 다른데, 어째서 서사는 같을까. 그것은 이 서사가 그만큼 근원적인 영웅서사에 닿아있기 때문이다. 추락과 대결, 성장과 복수의 서사는 그만큼 고전적이다. 그래서 이 서사는 우리네 역사적 영웅을 다루는 사극에서도 단골로 등장하기도 했다. '태조 왕건', '해신', '대조영' 같은 작품은 그 인물의 서사구조가 '글레디에이터'나 '스파르타쿠스'와 거의 유사하다. 하지만 이들 사극들과 비교해 '무신'이 다른 점이 있다. 그것은 '무신'이 훨씬 더 '스파르타쿠스'의 서사와 연출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세월이 흘러도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서사인 만큼 그 파괴력도 막강하다. '무신'은 그래서 일단 그 서사의 힘으로 한 번 빠져보기 시작하면 꽤 깊은 몰입감을 안겨주는 작품이다. 고문 장면, 격구장에서의 사투 장면이 주는 폭력성과 여자 노예들을 물건 다루듯 다루는 장면들은 그것이 '리얼리티'라고 주장하지만, 실상은 반복된 서사가 가진 약점을 시각적인 자극으로 극복하기 위한 의도다. 이것은 과거 고전 영화였던 커크 더글라스 주연의 '스팔타커스'보다 다시 돌아온 미국드라마 '스파르타쿠스'가 훨씬 더 수위가 높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의문점이 생긴다. 누가 봐도 역사라기보다는 서사에 훨씬 가까운(물론 실존인물이 있다고 해도) '무신'이 굳이 왜 정통사극이라는 기치를 내걸었는가 하는 점이다. 과연 이처럼 철저히 서사의 힘에 의존하는 '무신'을 정통사극이라 부를 수는 있을까. 정통사극이라면 역사적 사실 그 자체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따라서 그 역사적 사실 자체가 현재적 의미를 환기시키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과연 '무신'은 그런 점들을 충족시키고 있을까.

여러 모로 퓨전사극이라는 타이틀이 걸맞아 보이는 '무신'은 왜 정통사극이라 고집할까. 이환경이라는 작가 때문에? 이것은 오히려 '무신'이라는 작품에서 역사를 떼어버리고 나면 어떤 결과로 보일 것인가를 떠올려보는 것이 훨씬 그 질문에 맞는 답일 것 같다. '무신'은 이미 고전이 되어버린 서사를 너무나 충실히 따르고 있는 작품이다. 그러니 역사가 빠져버린다면 '무신'만의 차별점이 사라지게 된다. 따라서 이 작품의 최대 성과는 이 유사하면서도 본원적이고 강력한 서사구조가 가능한 김준이라는 인물을 우리네 역사 속에서 찾아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