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은 가득히>, 단순한 복수극도 멜로도 아니다

 

시청률 3.8%. 낮아도 너무 낮은 시청률이다. 이렇게 시청률이 낮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만 그렇다고 시청률이 모든 걸 말해주는 건 아니다. 즉 시청률이 낮다고 작품의 완성도나 재미가 떨어지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역사왜곡과 역사의식 부재를 드러내고 있는 경쟁작 <기황후>25%의 시청률을 낸다고 해서 좋은 드라마라고 말하기 어려운 것처럼.

 

'태양은 가득히(사진출처:KBS)'

<태양은 가득히>는 동명의 알랭 드롱이 나온 영화에서 제목을 따왔다. 아마도 지금의 세대에게는 <리플리>라는 제목의 영화가 더 쉽게 다가올 게다. 가난하지만 야심가인 톰 리플리가 자신을 하인 취급하는 고교동창 필립을 살해하고 그의 행세를 하다가 결국 파멸하는 이야기. 물론 <태양은 가득히>의 이야기는 리플리의 이야기와는 완전히 다르다. 다만 그 안에 깔려 있는 모티브들이 유사한 점이 있다.

 

즉 정세로(윤계상)가 이은수라는 이름으로 돌아오는 것이나, 가진 것 없는 자가 결국 모든 걸 다 가진 자들에 의해 모든 걸 빼앗기고 분노하는 정황, 또 복수 속에 사랑이 얽혀 들어가는 과정 같은 것들이 그렇다. 무엇보다 이은수라는 이름으로 돌아온 정세로의 정체가 무엇이냐는 것에 향후 드라마의 극적 전개가 요동칠 거라는 점이 <리플리>를 떠올리게 한다.

 

고시에 패스하고 이제 삶의 정점을 향해 날개를 펴려는 순간 정세로의 인생은 갑자기 나락으로 떨어졌다. 아버지를 만나러 간 태국에서 억울하게 살인자로 몰려 5년 감방 생활을 하게 되었고 그 와중에 아버지는 사고로 죽게 되었다. 5년 후 복수를 꿈꾸며 돌아온 정세로는 자신의 할머니가 살인자 가족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폐지를 주워 근근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는 오열한다. 정세로가 박강재(조진웅) 앞에서 터뜨리는 분노 속에는 이 드라마가 하려는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다.

 

. 우리 할머니가 박스를 주워. 이 추운 날 산동네서 내 할머니가 박스를 줍는다고. 그래 맞아. 내가 가진 게 참 없지. 많이 없지. 예전에 내가 주제도 모르고 책상 앞에 붙어있었을 때 저 빌딩이 갖고 싶은 게 아니었어. 그냥 저기 작은 불빛 하나 딱 하나만 내거였음 했어. 근데 그 꿈조차 짓밟았어. 저 빌딩 가진 새파란 여자가. 그 가족들이. 난 왜 그랬는지 이유도 모르고. . 나 아버지처럼 살기 싫었어. 근데 아버지처럼 살 거야. 아니 그보다 더 할거야. ? 우리 아버지가 죽었으니까. 내 할머니가 라면박스를 주우니까. 내가 정세로로 못 사나까 내가 이은수. 내가 살인자니까. 내가 살인자니까!”

 

정세로의 분노 속에는 가진 것 없는 자들이 겪는 삶의 부당함이 들어있다. 작은 불빛 하나 가지려고 해도 그 꿈조차 짓밟는 세상. 그리고 결국은 살인자로까지 내모는 세상. 돌아온 정세로가 왜 당시 태국에서의 사건을 한영원(한지혜)과 그 집안에서 자세히 조사하지도 않고 급히 덮으려 했는지를 알고는 분노하는 대목도 그렇다. 한영원은 자신의 피앙세였던 죽은 공우진(송종호)이 다이아몬드 도둑의 오명을 쓰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 결국 가진 자들의 고작사랑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삶이 파탄 났다는 것에 정세로는 분개하는 것이다.

 

<태양은 가득히>를 단순한 복수극으로 보지 않게 되는 지점은 이 정세로라는 인물이 가진 억울함과 갈증을 서민들의 낮은 시선으로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사회적인 부조리와 시스템을 쥔 자들(이를 테면 회사 비리를 덮기 위해 딸의 피앙세까지 살해하는 한영원의 아버지 같은)의 잔혹함이 묻어난다. 따라서 이 드라마는 좀 더 근원적인 사회 시스템의 문제를 건드릴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 드라마가 단순한 멜로에 그치지 않을 거라는 건, 이렇게 정세로가 복수하려는 한영원이라는 인물이 사실은 똑같은 피해자의 입장이라는 점이다. 그녀는 자신의 연인을 잃었고 또한 이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는 순간 아버지를 잃게 된다. 이 모든 걸 알고 있는 정세로가 만일 한영원을 같은 피해자로서의 고통을 공감하게 된다면 이렇게 만들어진 멜로는 어떤 방향으로 튀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태양은 가득히>는 물론 어딘지 익숙한 복수극과 멜로를 반복하고 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단순 복수극이나 멜로가 담아내지 못하는 묘한 흡인력을 발견할 수 있다. 심도가 느껴지는 안정된 연출력과 윤계상의 광기 가득한 연기만으로도 <태양은 가득히>는 단지 3%대의 시청률로 속단할 수 없는 드라마다.


한석규에서 최민식까지, 신들린 연기 전성시대

사진출처:'범죄와의 전쟁'

드라마든 영화든 요즘 이 맛에 본다. 바로 연기의 재발견이다. '뿌리 깊은 나무'는 그 팽팽한 대본과 군더더기 없는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이었지만, 무엇보다 두드러진 건 연기자들의 '신들린 연기'였다. 송중기는 꽃미남 이미지에 연기자 이미지를 확실히 부각시켰고, 한석규는 한 가지 장면에서도 계속 변화하는 섬세한 감정 연기로 보는 이를 소름 돋게 만들었다.

'브레인'의 신하균은 야비하게 느껴질 정도로 욕망에 충실한 역할을 보여주면서도 한 편으로 그 인물에 공감하게 만들었다. 하균신이라고까지 불린 신하균과 팽팽한 대결양상을 보여준 정진영 역시 인술을 행하는 명의에서부터 그 껍질을 하나 벗겨낸 가식어린 모습까지 드러내줌으로써 연기의 새로운 경지를 보여주었다.

한편 '해를 품은 달'에서는 여진구와 김유정이라는 놀라운 아역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아이들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운 섬세한 멜로 연기는 초반부터 이 사극에 깊은 여운을 남겼다. 이미 30%를 넘어 4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게 된 데는 전적으로 이 두 아역이 남겨놓은 강한 여운이 한 몫을 하고 있다는 데 이의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영화에서도 '신들린 연기'들이 주목을 받았다. '부러진 화살'에서 안성기는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이 오히려 강한 효과를 남겼고, 판사 역할로 나온 김응수, 이경영, 문성근의 보는 이를 치 떨리게 만드는 연기가 흥행에 한 몫을 차지했다. 아쉽게도 흥행에는 그다지 재미를 보지 못했지만 '페이스메이커'의 김명민은 역시 메소드 연기의 또 한 차원을 보여주었다. 완전히 페이스메이커에 빙의된 그의 연기는 그 앙상한 몸과 발만으로도 보는 이를 찡하게 만들었다.

'범죄와의 전쟁'은 그 '나쁜 놈들 전성시대'라는 부제가 '신들린 연기 전성시대'로 보일 지경이다. 최민식은 이 작품에서 나쁜 놈들 중의 나쁜 놈 역할을 연기하지만, 그 안에 진한 페이소스까지 담아냈다. 한 시대를 풍미한 나쁜 놈의 전형 속에서 가장의 고단함까지 느껴지는 이 작품은 최민식 특유의 광기어린 연기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여기에 하정우라는 든든한 아우라가 덧붙여지고, 최근 '뿌리 깊은 나무'로 주목받은 조진웅이 빛을 발하니 그 연기력 대결을 보는 것만으로도 현란할 지경이다.

최근 들어 확실히 연기는 재발견되고 있다. 물론 그간 연기력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한 논란은 늘 있어왔다. 특히 드라마에서 툭하면 벌어지는 '연기력 논란'은 이제 대중들이 얼마나 연기에 민감해 하는가를 잘 말해준다. 사실 영화계에서 최민식이나 하정우 같은 배우들의 연기력은 늘 인정받아왔다(물론 영화에서도 겉멋든 배우들에 대한 논란은 계속 있어왔다). 반면 드라마에서 연기력이란 영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만큼 엄밀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감히 이 영역에 전혀 준비되지 않은 연기자들이 잘 생긴 얼굴 하나로 투입 되었던 것은 이제 시대착오적인 일로 여겨질 정도다. 최근 들어 러시를 이루는 가수들의 연기 영역 진출은 그 상업적인 목적은 알 수 있지만, 연기자로서의 진정성을 느끼기 어렵다는 점에서 큰 문제로 지적된다. 하지만 한석규나 신하균이 보여준 것처럼 이제 드라마에서의 연기력에 대한 대중들의 기대감도 한껏 높아져 있는 게 사실이다. 드라마든 영화든 연기라는 영역이 가진 가치가 재발견되고 있다는 얘기다.

한 편에서는 신들린 연기의 전성시대가 열리고 있는 마당에 다른 한 편에서는 끊임없이 연기력 논란이 쏟아지는 것이 현재 연기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이다. 그만큼 겉멋이나 외모가 아니라 진정한 연기를 보고 싶은 대중들의 열망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져 있다. 이 정도 되면 연기자들도 각자 작품을 대하면서 '나는 연기자다'라고 스스로 주장할 수 있을 만큼 온 몸을 던져야 하는 상황이다. 연기가 어디 장난인가. 어쨌든 연기의 재발견, 요즘 이 맛에 드라마든 영화든 보게 된다.


'뿌리 깊은 나무', 미친 존재감의 사극

'뿌리깊은나무'(사진출처:SBS)

도대체 숨겨진 미친 존재감이 얼마나 되는 걸까. 사극 '뿌리 깊은 나무'는 까면 깔수록 더 강한 존재감의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양파(?) 사극이다. 그 첫 번째는 태종 이방원(백윤식)이었다. 목적을 위해서는 아들을 사지에 내몰 수도 있을 정도로 강력한 카리스마의 이방원은 이 사극이 넘어야 할 하나의 전제를 만들었다. 즉 칼의 힘으로 통치하는 아버지 이방원을 세워둠으로써, 그 아들인 세종 이도(송중기)에게 트라우마를 안겨주고, 그것을 뛰어넘고 또한 자신이 생각하는 조선을 만들기 위해 한글 창제에 몰두하는 세종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었던 것. 따라서 이방원이 사극 초반에 만들어낸 미친 존재감은 어쩌면 이 사극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었는 지도 모른다.

이방원을 세워두자, 자연스럽게 그 대적자가 되어버린 세종 이도의 캐릭터가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초반에는 이방원의 칼날 아래 유약하게만 보이던 세종은 그러나 자신이 살릴 첫 번째 백성 똘복 앞에서 이방원에게 맞서면서 미친 존재감을 드러낸다. "내가 조선의 임금이다!"라고 선언하면서 세종은 당당히 자신이 꿈꾸는 조선을 막연히 그리게 된다.

젊은 이도에서 이제 어엿한 임금 티가 나는 이도(한석규)로 넘어오면서도 또 한 번의 미친 존재감이 드러난다. 첫 등장에서부터 "제기랄", "빌어먹을" 같은 욕을 입에 달고 다니고, 똥지게를 지고 다니는 세종의 모습은 그 자체로 백성과 똑같이 생각하려 하는 왕의 풍모를 그려냈다. 세종이 "전하의 잘못이 아니옵니다"고 간하는 소이(신세경)에게 불같이 화를 내며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이다!"라고 외치는 장면에서는 이 세종의 또 다른 존재감이 드러난다. 그것은 끝없이 백성을 생각하는 그 마음이다.

세종이 아무도 모르게 한글을 창제하고 있는 과정에서 이를 막으려는 세력, 밀본의 존재가 드러나고, 그 밀본의 본원 정기준(윤제문)이 사실은 백정 가리온이었다는 사실은 또 다른 미친 존재감을 보여주었다. 굽신대던 모습에서 점점 굳은 얼굴의 카리스마로 돌아오는 정기준의 모습은 보는 이들을 소름끼치게 만들었다.

이방원에서 젊은 이도, 나이든 이도 그리고 정기준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미친 존재감'이 한 축을 그린다면, 또 다른 축은 무휼(조진웅)과 똘복 강채윤(장혁), 윤평(이수혁), 이방지(우현) 그리고 개파이(김성현)로 이어지는 이른바 무술 실력의 미친 존재감들이다. 사극의 시작을 연 강채윤의 상상 속의 세종 시해 장면에서 그의 강력한 무술 실력이 드러났다면, 그를 막는 존재로서의 내금위장 조선제일검 무휼의 존재감이 생겨났다. 특히 무휼은 세종의 그림자가 되는 인물로서 강인한 무사로서의 면모와 함께 세종 앞에서는 한없이 부드러운 남자로서의 면모도 보여준다.

집현전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윤평이라는 고수가 드러나고, 무휼의 대적자로서 출상술의 대가 이방지가 모든 사건의 열쇠를 쥔 인물로 등장하며, 그 이방지를 무너뜨리는 개파이가 등장한다. 이처럼 '뿌리 깊은 나무'는 계속해서 미친 존재감을 드러내는 인물들이 끊임없이 등장해 이야기를 반전시킨다. 여타의 사극에서 미친 존재감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한두 명에 국한되는 것과 비교하면 실로 놀라운 인물들의 연속이 아닐 수 없다.

미친 존재감이란 말 그대로 짧은 순간에 강력한 인상을 남기는 인물을 말한다. '뿌리 깊은 나무'에 미친 존재감이 너무나 많게 느껴지는 건, 그 작품의 밀도가 그만큼 높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즉 짧게 인물이 출연해도 그 순간에 강력한 흔적을 남길 수 있을 만큼 이야기의 얼개가 꽉 짜여져 있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 연기자들의 공을 뺄 수는 없다. 백윤식, 송중기, 한석규, 윤제문, 조진웅, 장혁, 우현. 이런 연기자들의 열연이 있었기에 이러한 미친 존재감들이 가능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이렇게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캐릭터들이 즐비한 사극이니 그 사극이 미친 존재감을 발휘하는 건 당연할 터. '뿌리 깊은 나무'를 미친 존재감의 사극이라 불러도 무방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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